황홀 - 박재삼
미류나무들이 햇빛 속에서
제일 빛나는 일만 끊임없이 하고 있네.
옛날에도 불었던 한정 없는 바람에
온갖 것을 맡기고
몸을 이리저리 팔랑팔랑 뒤집어 가며
마치 나비와도 같이, 그러면서
선 자세로 하고 있으나
우리의 앉은 것보다 더 편해 보이네.
거기에는 슬픔이라곤 하나 없고
오직 기쁨만이
넘쳐나는 것을 보네.
우리의 몇 천리나 닦은 긴 수심도
실려 얹어 보라고 하네.
어디서부터 그것을
풀어야 하는지 얼떨떨하게
벌써 나는 쉰 두 해를 헛되이 보냈네.
박재삼 시선집"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오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