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속에서 나는 - 조영미
누렇게 빛바랜 책이 가볍다
가벼워 너무 가벼워 손아귀에서 툭
떨어져버릴 것 같은
코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십 년
혹은 이십 년이 넘은 기억들
걸어나오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가시밭길 헤쳐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라고
누군가 입안에 돋친 가시 뽑아들다
산채로 송장 되었네
나뭇잎은 말라 뼛가루 바삭바삭
식용유는 해표
해표로 튀긴 튀김이 나는 좋아
잊지 못할 냄새
그의 목에 한겨울 매달려
좋았어 나도 좋았어
에로틱한 포즈로 춤추는 활자
오래된 책 속에서 나,
그의 체취 걷어내고 있네
식용유처럼 둥둥 떠다니는 그것들
빠르게 혹은 천천히 걷어내고 있네
광화문시인회 "시 2004 POETRY" [시와산문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