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이 울고 있다 - 김광섭
백도(白桃) 하얀 꽃송이들이 백옥(白玉)같이
눈부시게 조롱조롱 피더니
얼굴을 맞대고 서로 비쳐서
한 송이가 백(百) 송이의 웃음을 웃고 갔다
이것은 덧없는 인생의 가지가지
슬픔에 대한 한 토막 이야기다
저녁 등불 아래 앉아서
어느 마지막 잔 같은 차를 마신다
나는 무심히 내 주변을 살펴본다
나의 청춘의 모든 것도 다 그렇게 작별되었다
지금 다시 눈에 보이고 생각나는 것은 모두
그 작별(作別)의 짤막한 유서(遺書)들이다
그러니 황혼이 울고 있다.
김광섭 시집 "겨울 날" [창작과 비평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