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 황정숙(난초)
내 몸에 물길 있어, 마르지 않는 우물 되었네
찌푸린 미간 사이로 생각을 몰아도
어디서 시작된 길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네
한 방울로 솟아난 물, 양수되어
자라게 했고 길을 만들었네
두레박줄이 내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릴 때마다
어둑살 무늬로 날, 힘들게 했네
멱까지 차오른 우물의 범람으로
나는 버둥거렸네
퉁퉁, 불어터진 눈으로 보는 것들은
다 퍼내고 싶었네
그때마다 찰랑찰랑 옹달지게 일으켜 세웠던
고달픔과 기쁨을 기록하던 물줄기
이제는 사랑할 수 있네
물길은, 본래 허공에서 시작된 길이었네
내 생의 마지막 날에,마를 우물
주름져 가는 몸뚱이가 물길 이었네
우물이 내 몸의 물길 속에 있네
하늘 허공에 첨벙, 떨어질 두레박줄
닻줄처럼 팽팽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