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을 기다리다 - 김종제
금강이나 화엄의
무거운 경經을 읽으면서
불경스럽게
첫날 밤의 순결한 피 같은
동백꽃을 생각하고 있다
그토록 기다려온 꽃이
나를 사랑한다고
붉은 입술을 내밀었다
쉽사리 문 열어 주지 않았으니
무쇠보다 강한 마음으로
번뇌를 깨뜨리는 것 아닌가
바다보다 깊은 마음으로
장엄하게 해 떠오르는 것 아닌가
내앞에 드러낸 젖가슴에
눈이 부시다, 혼절하겠다
질 때는 지더라도
한 삼백예순 날 만큼만
가슴에 품어봤으면 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살아서
탁탁 튀어 오르는 물고기 같은
불꽃이 될 수 있을텐데
그래서 어떤 심한 풍파에
무너진 기둥을 세우고
그래서 어떤 모진 세파에
부서진 지붕을 얹고
내게 다가온 꽃 하나로 말이다
언젠가 본듯한 상형문자로 쓰여진
동백꽃, 저 붉은 몸을 탐하여
시간 거슬러가며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