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에서 - 김지향
집앞의 호수에 담긴
가을의 옆얼굴을 들여다 본다
흠집 하나 없는 거울알이다
거울 속엔
털이 다 벗어진
숭어 몇이서
흩어져 있는 풍금소리를 모으고 있다
여름을 떠메고 돌아서는 시간의 손이
붉은 물감을 뿌려놓고 간 뒤로
한쪽 뺨이 붉은 사과알이 내려와
데굴 데굴 덜 찬 속살을 내비치고
한쪽 가슴이 붉은 나뭇잎은
가슴의 붉은 물을 씻어 놓고 있다
붉은 물감으로 생기를 얻은
집앞의 거울알은
나의 골 속까지 뚫고 들어가
때가 좀 끼인 골의 구석 구석을 비추어
어디서 혼자 우는 비를 피한
죄를 드러내고
항상 해가 지는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는
다 풀린 내 눈꺼풀을 뜯어 내면서
굵다란 회초리로
내 시든 종아리를 때리고 있다
나는 다시 물이 오른 종아리로
가슴을 떨면서
해묵은 헌 죄를 다 털어내고 털어내고
마침내 그 호수 속 생기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