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시의 종교 - 김수우
우시장 한가운데 기우뚱한 은사시,
쇠뿔에 찍히고 찍혀 아랫둥치가 다 패인 절뚝발이 은사시는
새잎을 깨웁니다
새잎을 밀어냅니다
팔려간 새끼, 늙은 소로 돌아와 도축에 끌려가던 눈망울들
용달차 앞에서 버퉁기던 뒷발굽들
위태한 우듬지마다 푸른푸른 돋아납니다
새끼소 어미소 첩첩 울음으로 뿌리 굵은 은사시는
쇠털로 하늘의 부피를 재어 온 은사시는
돈다발 속 생과 죽음의 무게를 보아 온 은사시는
강물이 흘러흘러 제 자리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늘 제 자리를 흘러 사는 것임을 압니다
제 몸 패이는 슬픔쯤 가볍게 여기며 여름이면 지어야 할 그늘만 기억합니다
우걱뿔 무릎 찍을 때마다 왈칵, 연두를 내지릅니다
새잎이 끔벅거리는데
새잎이 절름거리는데
평생 그랬듯 제 그늘이 소를 사랑하는 마지막 방식이라고 믿는 은사시의 종교에
첫봄이 새떼로 퍼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