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라 봄바람아 - 김용택
강변을 너무 오래 걸어서
내 발등에는
풀잎이 아닌
꽃잎이 아닌
이슬이 아닌
핏방울이 떨어진다.
산을 너무 오래 바라보았는가.
산을 기대고 선 내 슬픈 등을
산은 멀리 밀어낸다.
봄이 와서
꽃들이 천지간에 만발하고
나는 길을 잃었다.
너는 어디에서 꽃 피느냐
인생은 바람 같은 것이어서
나는 흩날리는 꽃잎을 뚫고 강변을 걸어 온 곳 같구나.
그래도 나는 꽃 핀 데로 갈란다.
막히고 허물어진
강변을 걸어 온
슬픈 내 발등을 들여다보며
슬픈 발등을 자꾸 쓰다듬으며
울던 날들.
강변을 너무 오래 걸어서
내 발등에는
풀잎이,
이슬이 아닌,
붉은 핏방울 같이 서러운 꽃잎이
날아와 얹힌다.
불어라 봄바람아
울어라 봄바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