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속에 꽃이 가득하다 - 김영자
오랜 시간 꽃피지 못하여 벗겨도 벗겨내야 하는 고목의 표피 같은 것들
내게는 머물지 마라 훠이훠이 물러가라 떠나는 당신에게 떠밀어 버렸네
서른아홉 이승의 저문 날을 곱게 빻아서 아들의 가슴으로 휘휘 저어내던
당신의 뼛가루들은 아이의 키로 그만큼씩 자라나고 있었지 옛날 옛적 할
머니, 어머니가 장독대에서 두 손 빌어 올리던 주문을 외며 나는 아이에
게 햇빛을 한 웅큼식 집어 내어주었네 정처 없이 떠돌던 햇빛들은 가슴
으로 파고들어 나는 마음속에 스며든 햇살을 골라내는 중이라네 넉넉한
바람과 햇살 고른 놈들의 힘은 불끈하여 고목 같은 슬픔은 우리집 베란
다에서 꽃대를 올리고 있는 중이라네 꽃잎 피어나고 있네 어둠의 살이
올려낸 꽃술들, 내 몸 속에 꽃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