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구연옥
삶이란
창백한 미소 속으로
숨어 들어간 영혼으로
비릿한 흰 국화 향이
서럽게 공기를 삼키고 있다
날지 못하고 꺾여진 날개
선회하는 바람에 대책 없이 밀리고
돌아누운 주검 위로
황망히 내려앉는 스산한 세월의 무게
천근 만근으로
눈두덩 부풀게 하더니
인연의 끈을 풀고 있다.
한 줌 바람 앞에서도
참을 수 없던 객기 역풍 만들고
순리를 역행하여
기어오르던 막무가내의 자만심
소나무 껍질처럼 뻣뻣하던 과거들이
연의 끈이 풀릴 때마다
뚝뚝 떨어져 내린다.
명예와 탐욕으로 헤진 남루한 옷
주검 위에 한 겹씩 벗어 놓고
벗겨진 과거를 되씹다가
무력감조차 감사하게 받아들고
외줄을 잡는다
한 줌의 흔적으로 부서져 내리는
처연한 의식 위로
붉어진 눈두덩을 훔치면서
풀어 헤쳐진 연을 내려놓고
쓰린 마음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밟고 선다
구멍 뚫린 시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더듬다가
순간 일어나는 현기
틀어 내면서도
껴입어야 하는 이율배반의 옷
발길 닿는 잡초하나
옷깃 스치는 한 줌 바람에도
비틀리며 엉겨 붙는 이성의 집착
외줄 하나에
목숨을 달고
백짓장 같은 운명을 움켜 쥔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