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의 눈 - 이형기
그해 겨울의 눈은
언제나 한밤 중 바다에 내렸다
희뿌옇게 한밤 중 어둠을 밝히듯
죽은 여름의 반딧벌레들이 일제히
싸늘한 불빛을 어지럽게 흩날렸다
눈송이는 바다에 녹지 않았다
녹기 전에 또 다른 송이가 떨어졌다
사라짐과 나타남
나타남과 사라짐이 함께 돌아가는
무성 영화 시대의 환상의 필름
덧 없는 목숨을
혼신의 힘으로 확인하는 드라마
클라이막스 밖에 없는 화면들이
관객 없는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언제나 한밤 중 바다에 내린
그해 겨울의 눈
그것은 꽃보다 화려한 낭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