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 김재진
문득 눈앞의 세월 다 지워지고
사람이 아름다울 때 있다.
수첩 속에 빽빽하던 이름들 하나같이
소나기 맞은 글씨처럼 자욱으로 번질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갈
사람이 아름다울 때 있다.
세파에 치어 각양각색인
남루 또한 지나간 상처 마냥 눈물겹고
서 있는 사람들이 한 그루 나무처럼
이유없이 그냥 아름다울 때 있다.
가파른 세월이야 지나면 그뿐,
코끝을 감고 도는
한 자락 커피 향에 두 눈을 감고
비 맞는 나무처럼 가슴 적시는
무심한 몸놀림이 아름다울 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