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리면 - 장지성
첫눈이 이 숲속에 내리면
그대는 오리라
내가 딛고 온 발자국을 따라
내 여기 서성이며 숲을 보고 있음을
그대 뿐 그 뉘가 알리
그 뉘가 알리.
그대는 오리라
발걸음 소리도 없이
마치 눈 내리는 양 사뿐이 흉내내어
내가 뒤돌아보지 않음을
그대 또한 모르는 체 토라지다
숲의 풋풋한 입김에
그냥 빠져들고 말리.
보라
전나무 가지 속 아기새를 품안은
어미새의 부리에서
몇송이 고요가 이 숲 위에 피어나고
그 따사한 둥우리 가장자리에서
이제 막 어둠이 나래 접는 모습을
그대는 보는가. 안보는가.
눈은 소리 없이 우리들 머리카락 위에 쌓인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숲 속을 바라보고 있다
어둠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이며
눈꽃이 피어나는 소리 속에서
우리들의 회화가 오고감을 엿듣는다.
엿듣는다.
내리어라 눈이여
내리어라 눈이여
아기새를 품안은 어미새의 품속이듯
우리들 속삭임 속 순수한 마음결에
눈은 쌓여 쌓여
설궁을 이루나니
숲이 흔들릴 때마다
어둠과 눈송이가 언저리 치는 저 편으로
은빛 비행체가 내려앉고
외계인인 듯 외계인인 듯
두런거리는 雪害木의 저 울림.......
우리는 이 한 밤
세기의 미아가 되어
묻힌 추억이 듯 표백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