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으로 돌아가서 - 이기철
양파 참깨들이 수돗물에 씻기고 있는
저녁으로 돌아가서
하루 중 가장 쉽고 편안한
식구들의 말소리를 듣는다
작은 불빛 따스하게 내리는 백열등을 켜면
탱자나무 울타리에 서성이는 굴뚝새의
저문 꿈이 보이고
야만의 저녁 들에 스미는 묻힌 씨앗들의
푸른 잠이 보인다
양말을 벗어던져도 춥지 않은 맨발의
이 저녁 온기
어디선가 길게 종이 울고
간혹 끊어지는 동촌 쪽의 물소리
어둠의 깊이 속에 묻혀서
이끼처럼 부서지는 생애의 파편들을 주우며
담요에 베어있는 생계의 절인 때를 떨면
맨드라미 씨처럼 조르르 구르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흩어지고
목조 층계에 덮여 있는 가업이
먼지처럼 내려와 불빛 아래 깔린다
하루의 소문은 굴뚝에 쌓이고
메밀밭에 묻어둔 사연이 일어서서
지상을 덮는 이 겨울 저녁
지붕과 하늘의 경께는 사라지고
세상은 다시 어제의 그 어둠 속으로 돌아갔다
부엌에선 밀감 담은 쟁반이 부딪히고
수돗물이 마지막으로 쏟아지며 잠긴다
털깃 외투처럼 부드럽고 짤막한
이 하루의 저녁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