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 - 김명인
나를 쫓아온 눈발 어느 새 여기서 그쳐
어둠 덮인 이쪽 능선들과 헤어지면 바다 끝까지
길게 걸쳐진 검은 구름 떼
헛디뎌 내 아득히 헤맨 날들 끝없이 퍼덕이던
바람은 다시 옷자락에 와 붙고
스치는 소매 끝마다 툭툭 수평선 끊어져 사라진다
사라진다 일념도 세상 흐린 웃음 쇨에 감추며
여기까지 끌고 왔던 사랑 헤진 발바닥의
무슨 감발에 번진 피얼룩도
저렇게 저문 바다의 파도로서 풀어지는냐
폐선된 목선 하나 덩그렇게 뜬 모리밭에는
무엇인가 줍고 있는
남루한 아이들 몇 명
굽은 갑(岬)에 부딪혀 꺾여지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둡고 지친 길목에 자식 두엇 던져 놓고도
평생의 마음 안팎으로 띄워 올린
별빛으로 환해지던 어느 밤도 있었다.
희미한 빛 속에서는 수없이 물살 흩어지면서
흩어 놓은 인광만큼이나 그리움 끝없고
마주서면 아직도
등불을 켜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돛배 한 척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