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1938~ )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 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어제를 동여맸으니,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다. 그대 뒤를 따르던 길은 바로 '나'의 길이었거니와, 길이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졌으니,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사랑할 때, 그대를 사랑할 때, 세상 모든 길은 그대에게 가는 길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랑이란 두 사람이 서로의 어제(기억)를 강력하게 공유하는 것이었다. 추억할 수 없는, 아니 홀로 '눈 뜨고 떨며' 추억하는 사랑처럼 가혹한 사랑이 또 어디 있으랴.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