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에 빗자루 기대며 - 신현정(1948~ )
이 빗자루 손에 잡아보는 거 얼마 만이냐
여기 땅집으로 이사 와 마당을 쓸고 또 쓸고 한다
얼마 만이냐
땅에 숨은 분홍 쓸어보는 거 얼마 만이냐
마당에 물 한 대야 확 뿌려보는 거 얼마 만이냐
땅 놀래켜 보는 거 얼마 만이냐
어제 쓴 마당, 오늘 또 쓸고 한다
새벽같이 나와 쓸 거 없는데 또 쓸고 한다
마당 쓸고 나서
빗자루를 담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놓는다
빗자루야 그래라 네가 오늘부터 우리집 도깨비하여라.
곳곳에 아파트가 들어차면서, 원래의 집은 '땅집'이 되고 말았다. 그 사이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마당, 골목, 비 오는 소리…. 무엇보다 땅 밟는 시간이 없어졌다. 아스팔트나 시멘트일지언정, 땅 밟을 겨를이 없다.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와 승용차나 지하철을 타고 나와 다시 고층 빌딩으로 올라간다. 우리는 '공중(지하) 인간'들이다. 두 발 잃어버린 도깨비들이다.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