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에 큰 여름 와서 - 조정권(1949~ )
산천(山川)에 큰 여름 와서
뭉치고 뭉쳐 놓은
큰 꽃 하나 터진다.
이 길로 냇바닥에 달려가서
물줄기들
다시 살아오는가 보고 오너라.
이 길로 마을에 달려가서
논두럭길
다시 살아오는가 보고 오너라.
조이고 조여 놓은
큰 활 하나
퉁기어 볼 때가 되었나 보다.
활은 쉴 때, 시위를 벗어놓고 제 몸을 잠든 고양이처럼 둥글게 한다. 시위를 제 몸의 양끝에 걸 때, 활은 반대로 힘껏 펴져 팽팽해진다. 화살을 멀리 쏘기 위해, 활과 시위는 가장 멀리 떨어져야 한다. 활과 시위는 서로 끝까지 간다. 그래야 가장 빠른 속도로, 또 가장 먼 거리로 헤어지기 때문이다. 활과 화살의 역설이다. 그대, 활은 있는가. 과녁은 선명하게 보이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하게 기다렸는가. 꽃이 터지는가.
<이문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