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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40호
2013.1.7 (음11.26)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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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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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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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이란 선조의 땅을 지키는 마음이라기보다 후손의 땅을 보존하는 마음이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스페인 철학자, 1883~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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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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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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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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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서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들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 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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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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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1. 꿈을 이루기 위한 스프
위험한 일
웃음을 웃는 건 바보스럽게 보일 위험이 있다. 눈물을 흘리는 건 감상적인 사람으로 보일 위험이 있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건 남의 일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자신의 참모습을 들킬 위험이 있다. 대중 앞에서 자신의 기획과 꿈을 발표하는 건 그것들을 잃을 위험이 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되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고 산다는 건 죽을지도 모를 위험이 있다. 희망을 갖는 건 절망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시도를 하는 건 실패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위험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으려는 것이니까.
아무런 위험에도 뛰어들지 않는 사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으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는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는 배울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달라질 수 없으며, 성장할 수 없다. 살고, 사랑할 수 없다.
자신의 두려움에 갇힌 그는 노예와 다를 바 없다. 그의 자유는 갇힌 자유이다.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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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과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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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제4장 - 유전자 기계 (2/2)
프로그래머 유전자 복잡한 세계를 예언하는 것은 불확실한 일을 동반하는 것이다. 생존기계가 내리는 결정은 모두 도박이다. 그리고 평균하여 잘 되는 결정을 내리도록 뇌를 미리 프로그램해 놓은 것이 유전자의 일이다. 진화의 카지노에서 쓰이는 통화는 생존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유전자의 생존인데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개체의 생존을 그 타당한 비슷한 일로 보아도 좋다. 만약 물을 마시러 물가로 내려 간다면 물가에 접근하는 포획물을 숨어서 기다리는 포식자에게 먹힐 위험이 많다. 물가로 가지 않는다면 결국은 목이 말라 죽을 것이다. 어느쪽을 택하든지 위험은 있으며 자기의 유전자가 살아 남는 기회를 긴 안목으로 보아 최대로 하도록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아마도 최선의 수단은 목마름을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다가 정 못 참을 지경일 때 내려가서 오랫동안 견딜 수 있도록 물을 잔뜩 마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물가에 가는 횟수를 줄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물을 마실 때에 오랫동안 머리를 숙이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신하는 가장 좋은 요령은 조금씩 마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가 옆을 뛰어가는 도중에 황급히 조금씩 마신다. 작전 요령으로서 어떤 것이 가장 좋은지는 여러 가지의 복잡한 사정에 따른다. 가령 포식자의 수렵 습성들이 그것인데, 이것들은 각각의 포식자의 입장에서 최대의 효과를 올리도록 진화하고 있다. 안정성의 성공 여부에 관해서는 무엇인가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는 하나, 물론 동물이 의식적으로 계산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유전자가 가급적 개체로 하여금 도박을 할 수 있도록 뇌를 만들어 준 그 개체는 당연히 보다 잘 살아 남고, 따라서 그 같은 유전자를 늘려갈 석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유전자는 도박꾼이다 도박의 비유를 좀더 써 보기로 하자. 도박꾼은 주로 거는 돈과 승산과 상금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상금이 크면 기꺼이 큰 돈을 걸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박꾼은 큰 돈을 모을지도 모른다. 또는 큰 손실을 볼지도 모른다. 평균적으론 큰 돈을 거는 도박꾼은 적은 돈을 걸어서 적은 상금을 노리는 승부사와 비교하여 벌이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주식 시장에서 투기적인 투자가와 착실한 투자가의 경우에도 그렇다. 어떤 점에서 주식 시장의 예는 카지노의 예보다 더 많이 닮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카지노는 주인에게 유리하도록 미리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돈을 많이 건 승부사는 조금 건 승부사보다 할당이 나쁘고 조금 건 사람도 전혀 안 건 사람보다는 재미 볼 확률이 나쁘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논의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이것을 무시하면 건 돈이 큰 도박이건 돈이 적은 도박이건 둘 다 이치에 맞는 것처럼 생각된다. 동물에도 큰 판돈이 적은 도박이건 둘 다 이치에 맞는 것처럼 생각된다. 동물에도 큰 판돈을 거는 도박꾼이나 작은 판돈을 거는 도박꾼이 있을까? 제9장에서 보게 되듯이 수놈은 큰 돈을 건 모험적인 큰 도박꾼이고, 암놈은 착실한 투자가로 봐 줄 수가 있다. 여러 수놈이 암놈을 놓고 싸우는 일부 다처형의 종류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박물학자는 판돈도 크고 위험도 큰 승부사로 볼 수 있는 종과 더 작은 승부를 거는 종이 생각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유전자가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는가 하는 보다 일반적인 테마로 이야기를 돌려 보자.
시행 착오 다소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예측해야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는 학습 능력을 짜 넣는 것이다. 이 경우 프로그램은 생존 기계에게 다음과 같은 지령을 행할 것이다. "여기에 보수가 되는 사물의 리스트가 있다. 즉, 달콤한 것, 오르가슴, 따스한 기후, 방실거리는 아이, 그리고 싫은 사물의 리스트가 있다. 즉, 여러 가지의 고통, 토할 기분, 공복, 울고 있는 아이이다. 만약 무엇인가를 하고 그 후에 싫은 것이 생기면 또다시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좋은 일이 생기면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이점은 최초의 프로그램에 짜 넣어야만 될 자세한 규칙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과 자세히 예측 못한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예측들은 여전히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유전자는 사탕의 섭취나 교미가 유전자의 생존에 적합하다는 의미로 입속의 단맛이나 오르가슴은 '좋은 것'이어야 된다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 예를 따르면 사카린과 수음의 가능성은 예측되지 않으며, 사탕이 부자연스럽게 과다한 오늘날의 환경하에서 사탕의 과다도 예측되지 않고 있다. 장기를 두는 컴퓨터의 프로그램 속에도 학습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인간이나 다른 컴퓨터를 상대로 승부하는 데 따라 실제로 장기가 숙달된다. 그것은 규칙과 전술의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는데 결정의 수순에는 다소 거칠은 경향도 짜 넣어져 있다. 이와 같은 컴퓨터는 과거의 결정을 기록해 가며 승부에 이길 때마다 승리로 이어지는 전술에 더 많은 비중이 놓여지게 되어 다음에 그 전술을 또다시 선택할 확률이 조금 놓아지는 것이다.
시뮬레이션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 중에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의 하나는 시물레이션(simulation:모의 실험)이다. 한 장군이 어떤 작전 계획이 좋은가 하는 여부를 알고 싶을 때 그것을 예언하기는 어렵다. 날씨도, 자기 부대의 사기에도, 적의 작전에도 미지의 요소가 있다. 그것이 좋은 계획인지 어떤지를 아는 하나의 방법은 그것을 시험해 보는 것인데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한 젊은이가 얼마가 있든 한계가 있고 가능한 작전 계획이 매우 많은 것만 보아도 여러 모양의 계획을 닥치는 대로 모두 시험해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목숨을 걸고 착실히 행하는 것보다 모의적으로 여러 가지의 작전 계획을 시도해 보는 편이 좋다. 이것은 공포탄을 써서 '북'과 '남'이 싸우는 대훈련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시간과 자재면에서 비경제적이다. 덜 허비하려면 큰 지도상에서 인형 군대와 장난감 탱크를 가지고 전쟁놀이를 하면 좋다.
컴퓨터와 시뮬레이션 최근에는 군사 전략뿐만 아니라 경제학, 생태학, 사회학, 기타 미래의 예측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서 컴퓨터가 대부분의 시뮬레이션을 맡아 보고 있다. 그 기술은 다음과 같이 작용하고 있다. 세계의 한 측면을 컴퓨터로 꾸민다고 해도 이것은 컴퓨터의 뒷뚜껑을 열면 속에 시뮬레이크된 것과 같은 형의 작은 모형이 보인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를 두는 컴퓨터의 기억 장치 속에 기사나 졸이 놓인 장기판으로 보이는 '상상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장기판과 그 편재 위치는 전자적으로 기호화된 수치표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는 세계의 일부를 2차원으로 압축한 축소 모형이다. 컴퓨터가 필요로 하는 지도는 아마도 거리와 다른 지점을 각각 위도와 경도라는 두 가지 수치로 표시한 도표임에 틀림없다. 어떻든 간에 컴퓨터가 머리 속으로 세계의 모형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조작하고 처리하고 그것을 사용해서 실험하는 형태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리고 오퍼레이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보고를 해 온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시뮬레이션 기술 중에 모델 전쟁은 이기는 수도 있고 지는 수도 있으며, 시뮬레이트 된 항공기는 날 수도 있고 추락할 수도 있다. 경제정책은 번영으로 이끌기도 하고 파멸에 귀착할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도 컴퓨터는 실생활에서 걸리는 시간의 몇 분의 일로도 전과정에 걸리는 일을 한다. 물론 훌륭한 세계 모형이 있으면 좋지 못한 모형도 있고, 좋은 모형조차도 그저 유사한 것에 불과하다. 시뮬레이션의 결과일지라도 실제로 생기는 것을 반드시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엉터리 시행 착오보다는 훨씬 낫다. 시뮬레이션은 대리 시행 착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됐지만 이것들은 오래 전에 쥐 심리학자에 의해 사용된 말이다.
시뮬레이션이 그렇게 좋은 방안이었다면 생존 기계는 벌써 옛날에 그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존 기계는 인간이 쓰고 있는 기타 여러 가지의 공학 기술을 우리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발명해 낸 초점 렌즈와 반사 망원경, 음파의 주파수 분석 장치, 항공 서보 조정장치, 수중 음파 탐지기, 인력 정보의 완충 기억 장치, 그 밖의 긴 이름이 붙은 무수한 기술(이들의 상세한 것은 중요치 않음)이 그것이다. 시뮬레이션에 대해서는 어떠할까? 아마도 당신 자신이 미래의 미지수를 견적한다는 어려운 결정을 요구당했을 때 당신은 반드시 시뮬레이션이라는 형태를 취했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취할 수 있는 길을 각각 취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를 상상한다. 머리에 그리는 것은 세계의 모든 모형이 아닌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한정된 일련의 모형이다. 당신은 그것을 생생하게 마음에 그리기도 하고 그것들의 형태로써 추상 개념을 상상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당신의 뇌 속에 있는 장소가 상상하고 있는 사실의 실험 공간 모형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컴퓨터의 경우와 같이 뇌가 어떻게 세계의 모형을 표현하느냐는 세부보다는 뇌가 그 모형을 사용하여 가능한 사건을 예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미래의 시뮬레이션을 행하는 생존 기계는 명백한 시행착오에 근거하지 않고는 학습이 안 되는 생존 기계보다 일보 진보되어 있다. 명백한 시행의 난점은 시간과 에너지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명백한 착오의 난점은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뮬레이션은 보다 안전하면서도 신속하다.
시뮬레이션 능력의 진화는 주관적인 의식의 발생으로 장점에 이른다. 왜 그와 같은 것이 생기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는 현대 생물하기 당면한 가장 심오한 미스터리이다. 컴퓨터가 시뮬레이션을 할 때에 의식이 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으나, 그것들이 장래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인정해야 한다. 다분히 의식이 생기는 것은 뇌에 의해 세계의 시뮬레이션이 완전하게 되어 그 자체의 모형을 포함해야만 될 정도로 되었을 때일 것이다. 분명히 생존 기계의 사지와 몸은 그것이 시뮬레이트 되어 있는 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비슷한 이유에서 시뮬레이션 그 자체가 시뮬레이트 되어야 할 세계의 일부로 생각된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자기를 알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되는데, 나는 이로 인해 의식의 진화가 충분히 설명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의 하나는 무한 복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형의 모형이 있다면 왜 모형의 모형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할 수 있다 이 책의 논지로 말한다면, 의식에 의하여 어떤 철학적 문제가 생기든 의식이란 실행상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 기계가 궁극적인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된다고 하는 진화 경향의 극치라고 생각할 수가 있다. 뇌는 생존 기계의 일을 매일 관리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언하고 그것에 따라 행위하는 능력도 손에 넣고 있다.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가급적 많은 아이를 낳기를 거부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후술하는 바대로 인가는 이런 점에서 대단히 특수한 경우인 것이다.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나는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간에 동물의 행동이 그저 간접적이라는 것만으로도 매우 강력한 의미에서의 유전자의 제어하에 있다고 하는 견해를 확립하려고 하고 있다. 생존 기계와 신경계를 조립하는 방법을 지령하는 것에 따라 유전자는 행동에 기본적인 힘을 내고 있다. 그러나 다음에 무엇을 할까를 순간순간 결정해 가는 것은 신경계이다. 유전자는 방침 결정자이고 뇌는 실시자이다. 그러나 뇌는 다시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차츰 실제의 방침 결정까지도 맡게 되어, 이때에 학습이나 시뮬레이션과 같은 책략을 쓰게끔 됐다. 어떤 종도 아직 거기까지는 도달되어 있지 않으나 이 경향이 계속적으로 진행되면 논리적으로는 결국 유전자가 생존 기계에 단 하나의 종합적인 방침을 지령하게끔 될 것이다. 즉, 우리를 살려 두는 데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될 것이다.
컴퓨터의 비유와 인간의 의지 결정과의 비유는 어느 것이나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현실 문제로 돌아와 진화는 실제로 유전자 풀 속의 유전자 생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통하여 단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만 된다. 따라서 행동 패턴-이타적인 것이든 이기적인 것이든- 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위한 유전자가 행동을 '위한'또 다른 경제적 유전자, 즉 대립 유전자보다도 유전자란 신경계의 발달에 영향을 주고 신경계를 이타적으로 행동하기 쉽도록 하는 유전자이다. 그러면 이타적 행동의 유전에 대한 실험적 증거는 있는 것일까? 그것은 없다. 그러나 놀랄 것은 없다. 왜냐하면 행동에 관해서도 유전의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불행히도 완전히 이타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매우 복잡하여 흥미로운 행동 패턴의 연구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자. 이 이야기는 이타적 행동이 어떻게 유전할 수 있는가를 가리키는 모형으로서 필요하게 될 것이다.
꿀벌의 유충버리기 꿀벌은 부저병(foul brood)이라는 세균성 전염병에 걸린다. 이것은 봉방 속의 유충을 해치는 병이다. 양봉가가 키우고 있는 꿀벌에서는 어떤 계통이 다른 계통보다 이 병에 걸리기 쉽고 이러한 계통간의 차이는 적어도 몇 개의 예로서 행동의 차이에 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말하자면 위생적이 계통은 병에 걸린 유충을 발견하고 봉방에서 끄집어 내어 벌집 밖으로 버리고 병을 빨리 근절해 버린다. 한편 감염되기 쉬운 계통은 이 '유충버리기'를 안하기 때문에 병에 걸리기 쉽다. 이 위생법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행동이다. 일벌은 병에 걸린 각각의 유충 봉방을 발견해 그 봉방의 뚜껑을 떼고 유충을 벌집의 출입구로 끄집어내어 쓰레기장에 내던져야 한다. 꿀벌을 이용하여 유전 실험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귀찮은 일이다. 일벌 자신은 번식하지 않으므로 한 계통의 여왕벌과 다른 계통의 수벌을 섞어서 그것에서 생긴 일벌의 행동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한 사람은 로센부러(W.C. Rothenbuhler)였다. 그는 잡종 제1세대의 꿀벌이 모두 위생적이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즉, 위생적인 어미의 행동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후에 알았는데 위생적 형질의 유전자는 인간의 푸른 눈의 유전자처럼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열성이었던 것이다. 로센불러가 잡종 제1세대와 위생적 형질의 계통과를 '역교배'해 본 결과(물론 여왕벌과 수벌을 써서) 아주 좋은 결과를 얻었다. 태어난 꿀벌은 3개의 그룹은 전혀 위생적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세 번째 그룹은 어중간한 생동을 했다. 맨 나중 그룹은 병에 걸린 유충이 있는 봉방의 뚜껑을 뜯는 데는 성공했는데도 유충을 버리는 데 관한 두 종류의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위생적 계통은 그 양쪽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감염되기 쉬운 계통은 이 두 개의 유전자의 라이벌인 대립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어중간한 일밖에 못하는 잡종은 아마도 뚜껑을 떼는 유전자를 (2배수로) 가지고 있으나 버리는 쪽의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로센불러는 완전히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꿀벌의 그룹 중에 유충을 내버리기 위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나 뚜껑을 떼는 유전자를 잃었기 때문에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그룹이 숨겨져 있지나 않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뚜껑을 열어 주고 이 추측의 정확함을 잘 증명했다.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벌의 반수는 이때에 완전히 정상처럼 '유충버리기' 행동을 보여 주었다.
이 이야기는 앞 장에서 나온 수많은 중요한 문제점을 예증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가령 유전자로부터 행동에 이르는 배발생상의 원인의 화학적인 사슬이 어떠한 것인가를 전혀 모르면서조차도 '무슨 무슨 행동을 위한 유전자'라는 논법을 써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원인의 사슬에는 학습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예컨대 뚜껑을 떼기 위한 유전자는 벌이 병에 감염된 밀랍의 맛을 좋아하게 하므로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그들로서는 병에 걸린 유충을 덮고 있는 밀랍의 뚜껑을 먹는 것이 보수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되풀이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유전자의 일하는 법이 이렇다 할지라도 다른 조건이 같을 때에 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벌은 뚜껑을 뜯고, 갖지 않은 벌은 뚜껑을 떼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뚜껑을 떼기 위한' 유전자라고 해도 좋다. 둘째로 그것은 유전자들이 공동 소유하고 있는 생존 기계의 행동에 '협력해서' 작용을 미치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유충을 버리는 유전자는 뚜껑을 떼는 유전자가 없다면 필요 없게 되고, 그 역도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전 실험에서 분명히 아는 바대로 이 두 개의 유전자는 세대를 통한 그들의 여행에서 원칙상 전혀 따로따로 행동한다. 그 작동을 보는 한 그것들은 단일 협동 단위가 되나 복제에 임해서는 두 개가 자유롭고 독립된 인자가 되는 것이다.
논의를 진행시키 위해 모든 종류의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수행하기 '위한' 유전자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물에 빠진 친구를 건지기 위한' 유전자에 대해 기술하고, 당신이 그와 같은 개념을 믿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위생적인 꿀벌의 이야기를 상기하라. 복잡한 근수축이나 감각 통합, 더 나아가서는 의식적인 결단에 이르기까지, 친구를 구조하게 만드는 유일한 원인이 유전자는 아니라는 것에 주의하기 바란다. 학습과 경험 또는 환경의 영향이 행동의 발달에 관여하는가 여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않고 있다.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다른 조건이 같고, 또 다른 다수의 중요한 유전자나 환경 요인이 존재하고 있다면 한 단일 유전자가 대립 유전자에 비해서 물에 빠진 친구를 더한층 잘 도와줄 법한 몸을 만들 수가 있음직도 하다는 것이다. 두 개의 유전자간의 차이가 실은 어떤 단순한 양적 변수의 근소한 차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때도 있을 것이다. 배발생의 상세한 과정은 흥미를 끄는 것이기는 하지만 진화적인 고찰에는 관계가 없다. 로렌츠는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유전자는 종합 기본 프로그램이다 유전자는 종합 기본 프로그램이고 자기의 생명을 위해 프로그램을 짠다. 유전자는 자기의 생존 기계가 생애에서 부딪치는 모든 위험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에 의해 심판받는다. 그 심판은 생존하느냐 소멸하느냐 하는 냉혹한 것이다. 유전자의 생존이 일견 이타적 행동처럼 보이는 것에 의해 재촉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후에 또 다루기로 하고, 여하튼 생존 기계와 생존 기계를 위해 결단을 하는 뇌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체의 생존과 번식이다. 이 '군체' 내의 모든 유전자는 이 두 가지에 우선권을 인정하기로 합의하고 있다. 그래서 동물은 먹이를 찾아 잡기 위하여, 자기가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하여, 병이나 사고를 피하기 위하여, 자기가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하여, 병이나 사고를 피하기 위하여, 매우 나쁜 기후 조건에서 몸을 지키기 위하여, 이성을 보고 교미를 유도하기 위하여, 그리고 자기들이 향수하고 있는 것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하여 어쨌든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구태여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원한다면 주위의 야생 동물을 잘 관찰해 보라. 그러나 특별한 종류의 행동에 대해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후에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의 이야기를 할 때에 재차 이 문제를 언급해야만 할 것 같아서이다. 그것은 대체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생존 기계의 커뮤니케니션 한 생존 기계가 다른 생존 기계의 행동 또는 신경계의 상태에 영향을 끼칠 때 그 생존 기계는 그의 상대와 커뮤니테이션했다고 할 수가 있다. 이것은 끝없이 주장하고 싶을 정도의 정의는 아니지만 당면한 목적에는 충분하다. 영향이라 함은 직접적인 인과적 영향을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의 예는 무수히 많다. 새와 개구리,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개가 꼬리치는 동작이나 털을 세우는 행동, 침팬지의 이빨을 내보이는 행동, 인간의 몸짓이나 말씨 등 생존 기계의 많은 동작은 다름 생존 기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자기의 유전자의 번영을 꾀한다. 동물들은 이 커뮤니케이션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옛부터 새의 노랫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이미 다루어 보았듯이 흑고래의 매우 정교하고 신비스런 노래는 그 음역이 무척이나 넓다. 즉, 그 주파수 범위는 가청 범위 이하의 웅웅거리는 소리부터 초음파의 쌩쌩거리는 소리까지 인간의 청력 범위를 훨씬 넘고 있다. 땅강아지는 착실히 옛 축음기의 나팔(hom)이나 메가폰과 같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 아래에서 울어 자기의 울음소리를 큰 소리로 증폭한다. 꿀벌은 먹이의 방향과 거리에 대해 다른 벌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하기 위해서 어둠 속에서 춤을 춘다. 그 커뮤니케이션의 교묘함은 인간의 언어에 필적한다.
동물 행동학자의 전통적인 이야기에 의하면 커뮤니케이션 신호는 송신자와 수신자 쌍방이 서로 이익을 받도록 진화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병아리는 길을 잃든지 춥든지 하면 큰 소리로 삐약거려 어미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이 음성은 보통 어미를 불러대는 직접 효과를 가지고 있고, 어미는 그 병아리를 찾아 모은다. 이 행동은 자연 선택이 길을 잃고 울던 병아리와 그 울음소리에 적절히 반응하는 어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의미로 상호 이익을 위하여 진화했다고 할 것이다. 바란다면(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이 울음소리를 어떤 의미를 가진 것, 즉 정보(이 경에는 '길을 잃었다'라고 하는 정보)를 번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제1장에서 말한 새의 경계음은 '매가 있다'라는 정보를 전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 정보를 받아서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은 이익을 얻는다. 따라서 이 정보는 진실한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이 틀린 정보를 전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동물들의 거짓말 동물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은 오해를 초래하기 쉬우므로 미리 고려해 두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가드너 부처(Beatrice and Alen Gardner)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들의 유명한 '말하는' 침팬지 와슈(Washoe; 이 침팬지는 아메리카식 수화법을 쓴다. 그 대단한 솜씨는 언어학자간에도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상기한다. 청중 중에는 몇 사람의 철학자가 있었다. 강의가 끝나자 그들은 와슈가 거짓말을 하는지 어떤지의 문제로 심한 토론을 했다. 나는 가드너 부처가 토론할 더욱 흥미로운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이 책에서는 철학자들보다 훨씬 솔직하게 '속인다'든가 '거짓말을 한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속이려고 하는 의식적인 의도에 관심을 표시했다. 나는 단순히 속이는 것과 기능적으로 같은 효과를 가진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예컨대 어떤 새가 매가 없을 때에 '매다'하는 신호를 써서 그 때문에 동료를 겁주어 쫓아버리고 먹이를 혼자 독점했다고 하면 이 새는 거짓말을 했다고 하겠다. 이 새가 고의로 속이려고 의도하고 작정한 것은 아니다. 의미하고 있는 것은 거짓말쟁이 새가 다른 새의 희생에 의해 먹이를 획득했다는 것과 다른 새가 도망친 것은 정말로 매가 있을 경우에 적합한 방법으로 거짓말쟁이 새의 소리에 반응했기 때문이라는 것뿐이다.
포식자도 의태한다 먹어도 독이 없는 많은 곤충은 앞 장에서 말한 나비처럼 다른 맛없는 곤충이나 핌을 쏘는 곤충의 모습을 흉내냄으로서 몸을 지키고 있다. 우리들 자신도 잘못하여 노란색과 흑색의 얼룩이 있는 장수말벌을 벌로 오인하는 수가 많다. 꿀벌로 의태한 몇 마리의 장수말벌은 그 속임수가 더한층 완벽하다. 포식자도 또한 속인다. 아귀(angler fish)는 해저에 파묻힌 채로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유일하게 보이는 부분은 머리의 끝에서 뻗어 있는 기다란 '낚싯대' 끝에 있는 지렁이같이 꿈틀거리는 몸의 부분이다. 작은 물고기가 접근하면 아귀는 그 작은 물고기 앞에서 지렁이 닮은 미끼처럼 움직여서 숨어 있는 자기의 입 가까이로 유인한다. 그러다가 아귀는 급속히 입을 벌려서 작은 물고기를 삼켜 버린다. 아귀는 꿈틀거리는 지렁이와 같은 것에 접근한다는 작은 물고기의 성질을 이용하여 속이는 것이다. 아귀는 '지렁이가 있다'라고 하여 그 거짓말을 '믿는' 작은 물고기는 모두 잡아먹는다. 어떤 생존 기계는 다른 생존 기계의 성적 욕망을 이용한다. 벌난초는 벌을 자기의 꽃과 교미시킨다. 그 꽃은 암벌과 꼭 닮았다. 벌난초가 벌을 속여서 필요한 것은 화분을 옮겨 주게 된다. 개똥벌레는 빛을 깜빡거려 교미 상대를 끈다. 각각의 종은 특유한 깜빡거림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그에 의해 종간의 혼란과 그 결과 생기는 유해한 난교를 방지하고 있다. 특정 등대의 깜빡거림 패턴을 찾는 선원처럼 개똥벌레도 같은 종임을 신호하는 깜빡거림 패턴을 찾는다. Photuris 속의 암놈은 Photinus 속의 암놈의 깜빡거림 신호를 흉내낼 경우 Photinus 속의 수놈을 유인할 수 있음을 '발견' 했다. Photuris의 암놈은 이것을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Photinus의 수놈이 이 속임수에 속아서 접근하면, 그는 즉석에서 Photuris 암놈에게 먹혀 버린다. 사이렌(Siren)과 로렐라이(Lorelei)의 이야기야 얼핏 떠오르는데, 콘 월(Cornwall) 지방의 사람들이라면 오히려 초롱불을 가지고 배를 벼랑으로 유인하여 난파선에서 나온 화물을 약탈했다는 옛 해적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진화할 때에는 어떤 것이 그 시스템을 자기만의 목적에 이용하려고 하는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우리는 '종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진화를 배워 왔기 때문에 자칫하면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은 포식자와 먹이 그리고 기생자 등과 같이 다른 종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른 개체의 유전자의 이해가 다양화되어가면, 항상 거짓이나 속임이나 커뮤니테이션의 이기적 이용이 생길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동일 종의 개체간에서도 말할 수 있다. 후술하는 바대로 아이가 어버이를 속이거나 남편이 처를 속이고 형제끼리 거짓말을 한다든가 하는 것조차 예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동물의 커뮤니케이션 신호는 본래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진화된 것으로 그 후에 불순한 친구들에 의해 악용되게끔 되었다고 믿는 것도 역시 너무 단순하다 동물의 모든 커뮤니케니션에는 처음부터 바로 속인다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동물의 모든 상호 작용에는 적어도 무엇인가의 이해 충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는 진화의 관점에서 본 이해 충돌에 관한 유력한 사고 방식을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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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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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道揚 (분도양표) 分(나눌 분) 道(길 도) 揚(오를 양) (재갈 표)
북사(北史) 하간공제전(河間公齊傳)의 이야기. 남북조의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가 다스리던 시기, 원지(元志)라는 사람이 도읍인 낙양의 경조윤(京兆尹)을 맡고 있었다. 원지는 뛰어난 문재(文才)와 능숙한 일처리, 그리고 황제의 목숨을 구했던 그의 부친 덕분에, 효문제의 깊은 총애를 받으며, 조정 관리들을 무시하였다. 한번은, 원지가 수레를 타고 길을 가다가 우연히 조정의 어사중위(御史中尉)인 이표(李彪)를 만나게 되었다. 원지는 관직으로 보아 마땅히 이표에게 길을 양보하여야 했으나, 오히려 그를 얕보고 길을 내주지 않았다. 두 사람는 하는 수 없이 이 일을 효문제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였다. 난처해진 효문제는 그들의 시비에 말리고 싶지 않아서 낙양은 과인의 도읍이니, 마땅히 길을 나누어서 수레를 몰아야 하오(應分路揚 ). 이제부터 길을 달리하여 다니도록 하시오. 라고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分道揚 란 취향이나 목표 등에 따라 각각 다른 길을 감 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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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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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2편
6. 나탈에 도착
남아프리카로 떠날 때는 영국으로 떠날 때처럼 이별의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이미 안 계시고, 세상도 좀더 알았고, 외국도 가 보았고, 라지코트에서 봄베이에 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번은 다만 아내와 헤어지는 것이 괴로울 뿐이었다. 영국에서 온 후 아가가 또 하나 태어났다. 우리 사랑은 아직도 정욕을 떠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차차 순화되어 가고 있었다. 내가 유럽에서 돌아온 뒤로는 함께 있은 일이 별로 없었다. 또 이제는 내가 변변치는 못하지만 아내의 선생 노릇을 하고 있고, 또 어떤 것을 개선해 가는 데 내가 아내의 도움이 된 것도 있으므로, 앞으로 계속 개선해 나가려면 더 같이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의 매력 때문에 헤어지는 것도 견딜 수 있었다. 나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1년만 있으면 다시 만날 거요 하고는 라지코트를 떠나 봄베이로 향했다.
여기서 나는 다다 압둘라 회사의 외판원으로부터 내 배표를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침대석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만일 그 배로 떠나지 않는다면 나는 봄베이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 외판원은 "1등 배표를 사려고 갖은 방법을 다했는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할수없이 3등 배표라도 마련했습니다. 식사는 1등 선실 식당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했다. 그 무렵 나는 1등으로 여행하던 때였는데 변호사가 어떻게 3등 여객으로 가겠는가? 그래 나는 그것을 거절해 버렸다. 나는 그 외판원의 진실을 의심했다. 1등 선표를 살 수 없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외판원의 승낙을 얻은 후 나는 나 자신이 직접 사보기로 했다. 나는 배에 올라 1등 항해사를 만났다. 그는 아주 솔직히 말했다. "보통은 이렇게 붐비지 않는데, 모잠비크 총독께서 이 배로 가시기 때문에 침대는 다 예약이 되었습니다." "나 하나만 어떻게 끼어 들어갈 수 없습니까?" 나는 물었다. 그는 나를 아래위로 어보더니 웃으면서 "단 한가지 길이 있을 뿐입니다. 제선실 안에 여분의 침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보통 승객에게는 안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한 다음 외판원을 시켜 표를 사게 했다. 1893년 4월, 나는 원대한 희망을 품고 내 운명을 한번 시험해 보려고 남아프리카로 떠났다.
첫 기항지는 라무라는 항구인데 약 13일만에 거기 닿았다. 이때에는 선장과 나는 매우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는 장기 두기를 좋아했는데, 아직 초보자라 상대자로 아직 시작도 했을까말까한 사람을 원했다. 그래서 나를 불렀다. 나는 장기 소리를 듣기는 많이 했지만 한번도 손을 대어 본 일은 없었다. 장기꾼들은 흔히 말하기를 이 놀이는 사람의 지능을 훈련시킬 기회를 많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선장은 내게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나는 한없이 참는 사람이기 때문에 선장의 좋은 학생 노릇을 했다. 그런데 나는 매번 졌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는 나를 더 가르쳐 주려 하였다. 나는 그 놀이가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 재미를 배 밖에까지 끌고 나온 일도 없고, 그 지식을 장기짝을 옮겨 놓는 일 이외에는 써본 적도 없었다. 라무에서 닻을 내리고 배는 3,4시간 머물렀으므로 나는 배에서 내려 항구 구경을 나갔다. 선장도 나갔는데, 그는 나에게 항구는 믿을 수 없는 곳이니 쉬이 돌아오도록 하라고 경고해 주었다. 항구는 매우 작은 곳이었다. 나는 우체국에서 인도인 사무원들이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워서 그들과 이야기를 했고, 또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생활방식이 매우 흥미있었으므로 그것을 좀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3등 선객 중에 서로 알게 된 사람이 몇 있었는데 강변에서 음식을 지어 조용히 먹을 생각으로 역시 배에서 내렸다. 그들은 배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함께 조그만 보트를 탔다. 포구 안에는 파도가 매우 심했는데 우리 보트는 짐이 너무 많았다. 조류가 너무 심해 보트를 기선 사다리에 접근시킬 수가 없었다. 사다리에 거의 가 닿았다가는 또 조수에 밀려 나가곤 했다. 출발의 첫고동이 이미 울렸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선장은 선교 위에서 우리가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5분간 연발 할 것을 명령했다. 그 배 옆에 다른 보트가 하나 있었다. 내 친구는 나를 위해 그것을 10루피에 삯을 냈다. 그 보트가 과중하게 짐을 실은 보트에서 나를 들어냈다. 사다리는 이미 걷어졌다. 나는 밧줄로 끌어올려졌고 기선은 곧 떠났다. 다른 선객들은 뒤에 남겨 놓았다. 그제서야 선장의 경고를 깨달았다.
라무 다음 항구는 몸바사, 그 다음은 잔지바르이다. 여기에서는 여드레인가 열흘인가 쉬었다. 그런 다음 다른 배에 바궈탔다. 선장은 나를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그 좋아함이 반갑지 않은 일로 되어 버렸다. 그는 한 영국 친구와 나를 초대하여 함께 외출을 하자고 해서 우리는 그의 보트를 타고 나갔다. 나는 그 외출의 목적이 뭔지 전혀 몰랐다. 그리고 선장은 내가 그러한 일에는 전혀 문외한인 것을 전혀 몰랐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따라 흑인 여인들의 숙소로 안내되었다. 각각 다른 방을 들어갔다. 나는 부끄러워 입을 다물고 그저 서 있었다. 그 가련한 여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선장이 나를 불렀을 때 나는 들어갔던 그대로 나왔다. 그는 내가 그냥 나온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몹시 부끄러웠다. 그러나 나는 소름이 끼쳐 그런 일은 감히 저지를 수 없었으므로 부끄럽다는 생각은 가셔 버렸고, 여자를 보고도 내 마음이 조금도 동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나는 나의 약함에 진저리가 났고, 그 방에 들어가기를 거절할 만한 용기를 가지지 못한 내가 가엾었다. 이것이 내 일생에 있어서 이러한 종류의 세번째 시련이었다. 많은 젊은이가 처음에는 순진했다가, 이 그릇된 부끄러움 때문에 죄 속으로 끌려들어갈 것이다. 설혹 몸을 더럽히지 않았다 해도 자랑할 것은 없다. 내가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자랑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건져주신 저 무한히 자비하신 이에게 온전히 감사해야 한다. 이 사건은 하느님에 대한 나의 신앙을 높여 주었고, 그릇된 부끄러움을 버릴 것을 어느 정도 가르쳐 주었다.
이 항구에 1주일을 머물러야 했으므로 나는 시내에 방을 얻어 놓고 돌아다니면서 그 부근을 많이 구경했다. 다만 말라바르만이 잔지바르의 풍성한 식물계가 어떻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었다. 그 거대한 나무들과 과일의 크기를 보고 나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 다음은 모잠비크이고, 나탈에 도착한 것이 5월 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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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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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 8장 인간의 탄생 및 기타
1. 인간의 탄생
오래 전부터 인간의 탄생을 둘러싸고는 예컨대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어 냈다든가 혹은 용의 이빨에서 사람이 튀어 나왔다는 등의 여러 설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신화 내지 전설을 아예 전혀 부정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그레이브스의 인간시대를 참조하여 인간의 탄생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첫 인간은 아티카의 흙에서 대지여신의 최고 결실로 자연 발생한 알랄코메네우스로, 달의 여신보다도 먼저 아티카 보이오티아에 있는 코파이스(현 림니) 호반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우스를 보좌하고 아테나의 교육을 맏았으며, 제우스의 여성행각에 마음이 상한 헤라 여신의 하소연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즉 헤라에게 그녀 자신의 조각상을 만들어 혼인예식을 올리라고 권하였던 것이다. 이에 헤라가 다이달로스에게 떡갈나무로 여신조각상을 만들게 하고 꽃다운 신부의상을 입혀 수레에 안치한 후 수행원을 딸려 엄숙히 거리를 행진하니 과연 제우스는 그 미모에 매료되어 다시 애정을 찾게 되었다. 그 후 매년 이에 연유한 신성 결혼의 상징으로 다이달로스 축제가 개최되었다. 알랄코메네우스는 신도시 알랄코메네스(아테네 시의 옛 이름)를 창건한 상징적 인물로서 보이오티아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다. 이 시대는 전적으로 부계 사회였으므로 여자는 여신일지라도 남자의 지시에 따라야 했고 남성 없이는 여신은 분별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달의 여신은 더 시대가 내려온 제우스 후기에 생겨났다. 이 시대를 인간의 황금기라 하며 크로노스 치하에 노역이나 근심없이 상수리 열매, 야생과일, 나무에서 흘러 떨어지는 꿀을 먹고 산양의 젖을 마시며 살았다. 노쇠하지 않고 춤추며 노래부르며 늘 웃고 살았던 이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잠자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인간들은 사라지게 되지만 그들의 영혼과 심성은 음악을 통해 천부적 예능으로 전승되고 정의와 행운의 수호자들의 성품으로 계승되었다. 이 황금기는 농경시대 이전의 미개한 인간시대지만 양봉여신을 모시고 마치 꿀벌과 같이 협조하며 살아간 이상적인 심성을 지닌 사람들의 시대였다. 다음은 은시대 인간인데 이전의 인간과 같이 거룩하게 발행하였다. 빵을 주식으로 하고 전적으로 어미에 존속되어 100년 이상 살았지만 어미의 의사에 감히 거역하는 일이 없었다. 무지하고 말다툼을 벌이며 신을 공양할 줄 몰랐지만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 시대 사람들을 모두 멸망시킨 것은 제우스였다. 은시대에는 모계사회를 형성하였으며, 이 습관은 고대에 무서운 문신을 한 픽트족, 흑해 연안의 모이슈노이키안스, 또는 발레아레스, 그 외에 갈리키아와 시르테(현 시드라) 만에 정착한 부족에게 전래되었고 성행위를 경멸하였다. 농경을 시작한 족속이다. 세 번째는 청동기시대 인간이다. 이들은 물푸레나무에서 마치 익은 과일이 떨어지는 것처럼 탄생하여 청동으로 무장하였다. 빵과 생고기를 먹고 호전적이면서 거만하고 무자비한 인종으로, 흑사병이 돌아 모두 멸망하였다. 초기 그리스에 침입한 부족이며 물푸레나무 여신과 그 아들 포세이돈을 숭배한 청동기의 유목민이다. 네 번째 인간족도 청동으로 무장한 부족이만 더 고상하고 원만하며 신과 인간의 어미 사이에서 탄생한 굳세고 위엄 있는 신의 아들과 손자들이다. 테베가 포위 공격 당했을 때 이를 물리쳤고, 아르고나우테스로서 콜키스 나라로 원정을 갔으며, 또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여 활약하고 빛나는 성과를 올렸다. 이들 족속은 미케네 시대의 무사들이며 패왕으로 이름을 날린 영웅들이고, 지하세계에서는 축복받은 낙원에서 살았다. 다섯 번째는 철기시대 인종으로 위의 부족 중 가장 하잘 것 없는 후예들이다. 타락하고 잔인하며 불의를 저지르고 악의에 찬 호색한들로 효도를 모르는 믿을 수 없는 족속이었다. 기원전 12세기에 그리스에 침입한 도리스족이 그들로 철제무기로 미케네 문명을 덮쳐 파괴하였다. 그 후 유사시대로 들어와 인간들은 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더욱 잔혹해지고 살육을 자행하였으며 도시왕국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이 외에도 인간의 시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예컨대 청동기시대에 인간들이 사악해지자 제우스는 큰 홍수로 인간을 멸망시킨 일이 있다. 이 때 오직 의로운 한 부부만이 살아남았는데 바로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과 그 아내 퓨라(에피메데우스와 판도라의 딸)였다. 대홍수 때 프로메테우스는 데우칼리온에게 방주를 만들어 물 위에 띄우라고 일러주었다. 9일 밤낮으로 홍수가 계속되는 동안 이들 부부는 배에서 지내다가 테살리아의 산악지대에 닿았는데 물이 빠진 후 지상으로 나가니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제우스의 사자 헤르메스를 만난 데우칼리온은 제우스에게 같이 살 사람들이 있기를 청원하였다. 제우스는 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어깨 너머로 모친의 뼈를 던지라고 지시하였다. 이는 불경한 행동이라 두려워하였으나, 모친의 뼈가 바로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의 뼈 즉 돌임을 깨닫고 돌을 집어던졌다. 이에 남편이 던진 곳에서는 남자가, 아내가 던진 곳에서는 여자가 나타났고 둘 사이에서 아들이 생기니 큰 아들을 헬렌이라 이름지었다. 이 헬렌의 후손이 번성하여 그리스인의 조상이 되었고, 현재 그리스는 이 헬렌이라는 이름에 연유하여 헬레네스라 칭하게 되었다. 그 외의 아들로 도로스, 크수토스, 및 아이올로스를 두었는데, 도로스는 도리스인, 아이올로스는 아이올리아인의 조상이되고, 크수토스의 아들들은 아카이오스 및 이온 부족의 선조가 되었다. 그리스의 인류 탄생에 관한 신화는 지역의 인종 또는 부족의 창조신화로 전해진다. 그 이전의 다른 인간 혹은 다른 종족의 존재도 상정하고는 있으나 그에 관해서는 아무 설명이 없다. 아르고스인의 선조는 이나코스 강의 신과 물푸레나무의 요정 멜리아스의 아들 포로네오스이고, 메세니아인의 조상은 메세네오스, 테살리아의 피티오티스 나라 조상은 피티오스이다. 특기할 부족은 기원전 대략 1883년경에 하이모니아를 넘어와서 펠로폰네소스의 아르골리스에 처음 정주한 사람들로, 이들은 펠라스기아(왕은 펠라스고스)라 하며 점차 에피로스, 크레타, 이탈리아, 레스보스 등지로 이동하여 정착하였다. 그리스 선주민족을 총칭 펠라스기안스, 그리스 나라를 펠라스기아라고 부르기도 하나 주로 테살리아와 에피로스, 펠로폰네소스를 말한다.
2. 네메시스
[루부르 박물관의 네메시스]
네메시스(Nemesis)는 그리스에서 가장 수수께기의 여신이다. 원래는 따뜻하고 인정 많은 전원의 여신으로 숭배되어, 예배자들에게 행운과 선물을 내리는 징험이 있었으나 점차로 여러 영험을 기원하게 되고 초기의 행운과 기회를 주는 기능은 의인신인 튜케(로마에서는 포르투나)에게 물려주고 주로 염원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하여 응징하는 여신으로 존경받았다. 그리스인 내면의 깊숙한 심리에 내재하는 한이 오만에 대한 보복으로 표현된 것이라 할 것이다. 신화에서는 뉵스의 딸이고 아비는 에레보스 혹은 오케아노스라 한다. 그녀의 미모에 매료된 제우스가 포옹하려고 가까이 왔을 때는 여러 동물 형태로 모양을 바꾸어 지상과 바다로 도피하였다. 그러나 결국 거위로 변신한 네메시스에게 제우스는 백조로 변신하여 접근, 관계를 하였다. 이 장면은 좀더 수식되어, 아프로디테가 독수리로 변하여 백조를 뒤쫓는 시늉을 하므로 백조는 거위의 살밑으로 피신하였다 한다. 그리고 거위가 잠들자 백조는 교합을 하고 그 결과 회임한 거위는 호숫가에 알을 낳았다. 이 알을 목동이 주워 스파르타 튠다레오스의 왕비 레다에게 바쳤고 여기에서 헬레나와 디오스쿠리(제우스의 아들들로 폴륙스와 카스토르를 말함)가 태어났다. 이 전설에서는 레다가 디오스쿠리의 양육을 맡았으며, 헬레나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많은 영웅들이 전사한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네메시스는 인간과 신들의 분수 넘친 행동에 끊임없이 화를 내고 지나친 행운이나 성공으로 오만해지면 제동을 걸고 틀림없이 처벌을 내렸다. 현세에서는 물론 사후세계까지 위력을 발휘하였으므로 종교적으로 가장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겠다. 실제로 불의로 졸부가 된 거만한 왕이나 폭력을 일삼는 영웅은 반드시 응보천벌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분수를 넘어 지나칠 때는 세계질서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으므로 신에게 틀림없이 벌을 받게 된다는 그리스인의 믿음을 반영한 것이다. 예컨대 크로이소스 왕은 지나치게 부자이고 힘이 강하며 탐욕스러웠으므로, 네메시스는 페르시아의 큐로스 왕국을 원정하도록 부추겨 결과적으로 그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오만, 맹목적인 어리석음 및 보복이 의인신화된 것이 휴브리스, 아테 및 네메시스 여신들이며 여기에서 휴브리스-아테-네메시스라는 원리가 정립되었다. 스토아 학파는 시간이 되면 모든 것이 원래의 구성요소로 환원되어 버리는 자연세계의 지배원칙으로 네메시스를 숭배하였다. 제우스조차 두려워한 이 네메시스 여신은 모든 신에게 생명과 죽음을 내리는 여신이라 하여 '피할 수 없는' 뜻을 가진 아드라스테이아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휴브리스는 코로스의 딸, 아테는 제우스와 에리스의 딸이라 하며 리타이도 등장시켜 아테의 터무니 없는 충동을 경감시키는 아테의 터무니없는 충동을 경감시키는 마음씨 좋은 여신으로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네메시스의 응징은 디케(정의), 포이나(형벌) 및 에리뉴에스(복수)의 3여신의 참여하에 내려졌다. 로마에서는 행운과 기회를 내리는 네메시스의 영험을 제우스의 달 튜케에 양도케 하여 튜케를 받들고 도시의 수호신으로 존경하였다. 또한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과 융화시켜 이시튜케라고도 불렀다. 가장 이름난 네메시스의 성지는 아티카의 마라톤 근교 렘노스인데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여신 조상이 있다. 파우사니아스에 의하면 그 입석은 페르시아가 아테네를 점거했을 때 사령관이 전승비로 하고자 파리아 섬에서 가져온 백색 대리석인데,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군이 패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계획을 중단하고 방치한 돌이라 한다. 페르시아가 승리를 과신하고 터무니 없는 위세를 표출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하고 만 것이다. 10년 전 마라톤에서 아테네 군이 승리하여 페르시아의 침범을 격퇴한 것도 네메시스의 징험이라 한다. 네메시스 여신상은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운 모습에 한 손에는 사과나무 가지, 또 한 손에는 수레바퀴를 들고 있으며, 머리에는 수사슴(악타이온의 변신)이 장식된 은관을 쓰고 허리에는 응징의 채찍을 차고 있다. 수레바퀴는 계절을 돌리는 상징이었는데, 로마 시대에 와서 포르투나 여신과 관련시켜 반바퀴를 돌리면 거룩한 제왕은 번영의 극치에 달하여 생을 마치게 되며 이는 관의 사슴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그러나 온 바퀴가 돌 때는 전에 쫓아낸 경쟁자에게 보복을 당한다는 징조로 보았다. 채찍은 원래 여신이 나무와 곡식을 채찍질하여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사과나무 가지는 제왕이 사후에 낙원으로 입국할 수 있는 여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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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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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2 - 류시화
타고르 하우스 가는 길
타고르 하우스에 가려고 마음을 먹고 숙소인 구세군 회관 호텔을 나선 것은 오전 열 시경이었다. 타고르 하우스는 동인도 캘커타가 낳은 위대한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생가이자 힌두 무용과 문학, 음악 등의 행사가 열리는 문화센터이다. 그런데 지도를 호텔방에 놓고 나오는 바람에 길에서 사람들에게 위치를 물어야만 했다. 거리엔 벌써부터 인도인들로 가득했다. 수레를 고정시키고 1루피짜리 차를 파는 사람, 재봉틀로 옷을 박는 사람, 코코넛 열매를 가득 싣고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는 남자. 그는 많이 팔게 해달라고 코끼리 얼굴을 한 가네쉬 신에게 연신 향을 피워 올리며 코코넛에 대고 절을 하고 있었다. 그 옆을 맨발로 달려가는 인력거꾼과 길게 하품하는 눈곱 낀 여자 거지. 나는 어떤 큰 호텔 근처에서 길가에 하릴없이 서 있는 중년 남자에게 타고르 하우스로 가는 방향을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뜸 내게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대충 구세군 회관 호텔 쪽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는 그런 뜻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내 국적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고 다시금 타고르 하우스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남자는 "아, 타고르 하우스!"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번에는 대뜸 내 나이를 물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에게 나이를 말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타고르 하우스의 위치를 물으려는 찰나, 그는 틈을 주지 않고 나의 직업과 월수입을 물었다. 오전이지만 벌써부터 태양이 뜨거웠다. 나는 약간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검은테 코안경을 쓴 그 인도인 남자는 마치 나에 대해 모든 사항을 알아야만 타고르 하우스로 가는 방향을 가르쳐주겠다는 태도였다. 그는 연거푸 "아, 타고르 하우스 말이오?"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또다시 터무니없는 것들을 묻는 것이었다.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얼마짜린가? 손목의 인도 팔찌는 어디서 샀는가? 그 파란색 바지는 한국의 전통 의상인가? 바라나시에도 가보았는가? 혹시 호텔이나 민박이 필요하진 않은가? 마치 그런 것들을 묻기 위해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캘커타에서 나를 기다려온 사람 같았다.
마침내 그 인도인이 정말로 타고르 하우스의 위치를 가르쳐주려고 마음먹은 듯했을 때, 뜻밖에 방해꾼이 나타났다. 이 방해꾼은 약간 나이를 더 먹은 힌두 노인이었는데, 입안 가득 물었던 붉은색 판(마약 성분의 씹는 담배)을 탁! 하고 땅바닥에 내뱉으며 우리들 사이에 끼여들었다. 그는 대뜸 무슨 일이냐고 우리에게 물었다. 위압적인 말투는 자신이 단순한 할 일이 없어서 묻는 게 아니라는 식이었다. 코안경을 쓴 인도인이 내가 지금 타고르 하우스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자기는 오랫동안 바라나시에 살다가 왔기 때문에 타고르 하우스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제서야 실토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가 막혀서 그 인도인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뭐가 어떠냐는 식으로 태연한 표정이었다. 나는 이번에는 힌두 노인에게 타고르 하우스의 위치를 물었다. "타고르 하우스?" 힌두 노인은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나더러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나는 구세군 회관 쪽을 가리켰다. 그는 엄숙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의 국적이 어디냐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길고 긴 일련의 질문에 대답해야만 했다. 타고르 하우스는 아득히 멀어 보였다.
타고르는 일생을 다 보낸 다음에 자기가 태어난 그 장소로 돌아와서 생을 마쳤다고 한다. 힌두 노인은 타고르 하우스를 정말로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엉뚱한 질문을 퍼부어대고, 그 사이에 자전거를 끌고 가던 또 다른 노인이 "무슨 일이야?" 하고 끼여들었다. 힌두 노인이 또다시 붉은색 침을 땅바닥에 뱉으며 나 대신 설명하고 나섰다. 자전거의 남자는 대번에 "요런 궁금한 인간이 다 있나!" 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대뜸 나보고 어디서 오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참에 보따리를 들고 가던 터번 두른 시크 교인도 참여했다. 맨발의 사내아이는 영어인지 힌두어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따고르, 따고르!" 하며 떠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일곱 명이 넘는 인도인들이 내 주위에서 와글거리고 있었다. 지나가던 택시 운전사도 이때를 놓칠세라 차를 멈추고 대화에 끼여들었다. 어떤 사람은 타고르 하우스가 후글리 강 건너편에 있다고 주장했고, 손바닥을 탁탁 치며 반대편 방향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었다. 시크교인은 나더러 도대체 무슨 이유로 타고르 하우스에는 가려고 이 난리냐고 따지고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온 남자는 누가 자전거를 훔쳐 갈까봐 핸들을 꽉 움켜잡은 채, 타고르 하우스라면 자기가 맨날 지나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무슨 주장들이 이렇게 많으냐고 언성을 높였다. 내가 맨 처음에 길을 물었던 검은테 코걸이 안경을 쓴 남자도 여전히 질세라, 자기는 바라나시에서 오래 살다가 이곳 거리를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타고르 하우스는 북쪽에 있는 게 틀림없다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광경을 줄곧 지켜보고 있던 근처 힌두 식당의 문지기도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논쟁에 합류했다. 그는 자기라면 골치 아프게 타고르 하우스에 가지 않고 시장에 가서 유명한 다르질링 차를 사겠다고 말하면서, 내가 원한다면 자기 삼촌이 운영하는 괜찮은 가게를 소개하겠다고 날 설득했다. 나는 뭐가 뭔지 알 수도 없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 자리를 떴다. 사람들은 이제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기들끼리 열을 올리며 입씨름을 벌이느라 정작 주인공인 내가 떠나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동인도 캘커타. 아직도 지구상에 동화의 나라처럼 존재하는 인도의 가장 가난한 도시. 공중에서는 햇빛에 섞여 모래와도 같은 것들이 반짝이며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공해 가루라고도 했고, 멀리 벵골만에서 날아온 황사가루라고도 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아득히 먼 히말라야의 눈가루처럼 보였다. 그것들은 가난하지만 순박한 인간들의 삶 위로 형형색색의 만다라를 그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날 나는 오후가 지나서 타고르 하우스에 도착했다. 더 많은 인도인들의 더 많은 질문에 답하고 나서야 제대로 길을 물을 수 있었다. 타고르가 "기탄잘리"에 쓴 시의 주인공이 곧 나 자신이었다.
"내 여행의 시간은 길고 또 그 길은 멉니다. 나는 태양의 첫 햇살을 수레로 타고 출발하여 수많은 별들에게 자취를 남기며 광막한 우주로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가는 것이 가장 먼 길이며, 그 시련은 가장 단순한 음조를 따라가는 가장 복잡한 것입니다. 여행자는 자신의 문에 이르기 위해 낯선 문마다 두드려야 하고, 마지막 가장 깊은 성소에 다다르기 위해 온갖 바깥 세계를 방황해야 합니다. 눈을 감고 '여기 당신이 계십니다' 하고 말하기까지 내 눈은 멀고도 광막하게 헤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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