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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38호
2012.12.24 (음11.12)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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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master@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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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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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눈감아 버리면 점점 크게 번져가는 것이 범죄의 속성. - 배리 파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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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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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바루기] 감질맛, 감칠맛
신세대 트로트 가수로 유명한 장윤정과 박현빈. 이들을 두고 노래를 ‘감질맛 나게’ 잘 부른다고 하면 어법에 맞을까? 그들의 목소리엔 가락에 취하도록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는 의미로 사용하려면 ‘감칠맛 나게’라고 해야 한다.
‘감칠맛’은 음식의 맛이 맛깔스러워 당기다는 뜻의 동사 ‘감치다’의 관형형에 ‘맛’이 결합된 합성어다.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뿐 아니라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감칠맛 나는 봄나물로 입맛을 돋운다” “감칠맛 나는 그의 이야기 솜씨에 감탄했다”처럼 사용한다.
이 ‘감칠맛’에 이끌려 잘못 쓰는 말이 ‘감질맛’이다. 일상생활에서 ‘감질맛 나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지만 ‘감질맛’이란 단어는 없다. 바라는 정도에 아주 못 미쳐 애타다는 뜻의 ‘감질나다’는 말의 어감을 강조하기 위해 ‘감질맛 나다’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나 이렇게 쓰는 건 어색하다.
“감질맛 나게 보여 주는 다음 회 예고편은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만 증폭시킨다” “감질맛 나게 흥얼거리지 말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 보렴”과 같이 사용해선 안 된다. ‘감질맛 나게’를 모두 ‘감질나게’로 고쳐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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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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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마법사 - 신미균
바다를 복사해 인터넷 창에 띄우고 기차를 끌어다 붙여넣기를 했다
바다 위로 기차가 달리고 파도가 꼬불꼬불 라면발이 되어 따라온다 허기진 마음에 무작정 그 기차를 탔다 물병자리 지나 전갈자리 지나 오리온자리의 말머리성운까지 가보는 거다 가다 심심해지면 연결 마법사를 불러 진작 술병 하나 들고 물병자리 옆으로 세상 떠난 그를 만나면 된다
그는 동영상으로 폴더에 잘 저장되어 있다 동영상 속의 그와 술 한 잔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안주는 불어터진 라면이다 그는 술 한 잔을 단숨에 마시고는 잔을 머리 위로 올려 뒤집는다 술 한 방울이 눈물처럼 얼굴 위로 똑 떨어지면서 죽어도 살아 있는 그가 잔을 내민다 무심코 그를 잡으려다 아무 키나 눌러버렸다
기차와 바다와 그가 겹겹이 모니터 위로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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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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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2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1. 꿈을 이루기 위한 스프
소망 그림책
1977년에 나는 혼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세 딸을 데리고 집세와 자동차 할부금을 부어 가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내겐 꿈과 희만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어떤 사람이 '상상력 * 생동감 = 현실'이라는 원리를 설명하는 걸 들었다. 강사는 우리가 생각을 할 때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 생각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의 화면에 생생한 그림으로 떠올릴 수 있으면 그 것이 곧 현실로 나타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세미나 내용이 내 안에 있던 창조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성경의 시편에 나오는 대로 신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준다는 사실을 난 믿고 있었다. 또한 잠 언 23장 7절의 말씀대로 '사람은 그 마음 속에 생각하는 바대로 된다'는 것이 거짓이 아님을 난 잘 알고 있었다. 집에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내 자신의 소망 목록을 작성해 그것을 그림으로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낡은 잡지들을 꺼내다 놓고 '내 가슴이 원하는 것'을 잘 묘사해 주는 그림들을 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멋진 사진 앨범 속에 정리해 놓고는 기대를 갖고 어떤 결과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내가 선정한 그림들은 내기 소망한 것들을 잘 표현해 주는 아주 구체적인 내용이었다.거기엔 다음의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1. 잘생긴 남자 2.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턱시도를 입은 남자 3. 꽃으로 만든 부케(난 낭만적인 성격이다.) 4.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보석 5. 카리브 해의 파란색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6.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가정 7. 새로 산 가구 8. 최근에 큰 회사의 이사가 된 여성(난 그 당시 여성 간부라고는 한 명도 없는 회사에서 근무 하고 있었다. 난 그 회사의 첫 번쩨 여성 이사가 되고 싶었다.)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났을 때, 아침 열시 반에 약속이 있어서 나는 차를 몰고 캘리포니아 프리 웨이를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멋진게 생긴 빨간색과 흰색 바탕의 캐딜락이 내 차 옆을 추월해 갔다. 너무 세련된 차였기 때문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흘끗 그 차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 차의 운전사도 나를 쳐다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무의식중에 미소를 지었다. 난 언제나 미소를 잘 짓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미소 때문에 그만 큰 문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 남자가 계속해서 날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당신도 그럴 경우를 당한 적이 있을지 모른다. 무심코 미소를 지은 건데 상대방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난 그 차의 운전사를 쳐다보지 않는 척 하느라고 애를 썼다. 그리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날 어떤 여자로 보는거야? 난 당신 같은 사람에겐 아무 관심도 없다구' 난 앞만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열심히 차를 몰았다. 그 남자는 그 이후 25킬로미터를 내 차를 쫓아왔다. 난 겁이 나서 죽을 것만 같았다. 몇 킬로미터를 더 달렸다. 그 역시 몇 킬로미터를 더 쫓아왔다. 내가 내 차를 세우자 그도 차를 세웠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남자와 나는 결혼하고 말 았다.
우리가 첫번째 데이트를 하고 난 날, 그 사람은 내게 장미 열송이를 보냈다. 그리고 그가 특별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의 취미는 특이하게도 다이아몬드를 수집하는 것이 었다. 그것도 큰 것들을! 게다가 그는 그 다이아몬드들로 장식해 줄 그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물 론 내가 지원하고 나섰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2년 동안 연애를 했으며,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줄기가 긴 붉은 색 장미와 사랑의 쪽지를 받았다. 우리가 결혼하기 석달 전쯤 그사람이 내게 제안했다. "우리의 신혼 여행 장소로 어울릴 만한 완벽한 장소를 발견했소. 카리브해의 세인트 존스 섬으로 가면 어떻겠소?" 난 함박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에요!" 그 사람과 결혼한지 일 년이 지나도록 난 내 소망 그림책의 비밍에 관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 무렵 우리는 멋진 새 집으로 이사를 했으며, 내가 그림책에 오려 두었던 것들과 똑같은 우아한 가구들로 집 안을 장식했다. 우연히도 남편은 동부 스타일의 품위 있는 가구들을 서부 지역에 판매하는 큰 가구 도매상을 경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의 결혼식은 미국 서부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도시로 알려진 라구나 비치에서 열렸으며, 웨딩 드레스와 턱시도 역시 현실로 나타났다. 그리고 내 자신의 소망그림책을 만든 지 여덟 달 만에 나는 내가 근무하던 인간 능력 연구소의 이사직에 취임했다. 어떻게 들으면 내 이야기가 동화 속의 일처럼 여겨지겠지만, 어쨌든 이 모두가 사실이다. 결혼 한 이후 지금까지 남편과 나는 많은 '소망 그림책'을 만들어 오고 있다. 신은 이 강력한 믿음의 원리를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실현시켜 주셨다.
당신의 삶에서 현재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결정하라. 그것을 마치 현실처럼 상상하라. 그런 다음 그것을 소망 그림책으로 구체화시켜 보라. 이 간단한 연습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들을 현실로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을 기억하라. 신은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가슴이 원하는 것'을 주겠노라고 약속했다는 사실을.
- 글레나 셀스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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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과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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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유전자 - 리처드 도킨스
제3장 - 불멸의 코일
노화 이론 '우리는 왜 늙어서 죽는가'하는 의문은 복잡한 문제이고 그 상세한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넘는 것이다. 특별한 이유에 덧붙여 보다 일반적인 이유가 몇 가지 제안되었다. 예를 들면 노쇠는 개체의 생애 동안에 일어나는 복제 과정의 유해한 잘못과 다른 유전자의 손상이 축적된 것이라는 이론이 있다. 또 메다워(Peter Medawar)경이 제창하는 또 하나의 이론은 유전자 선택에 의한 진화 사상의 좋은 예이다. 메다워는 우선 "늙은 개체는 그 종의 나머지 개체에 대한 이타적 행위로서 죽는다. 왜냐하면 번식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늙어서 공연히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종래의 설을 버렸다. 메다워가 지적하고 있듯이 이것은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즉 개체가 너무 늙어서 번식할 수 없음을 처음부터 가정하는 하나의 순환 논법이다. 그 부분은 더 훌륭하게 바꿔 말할 수 있을지라도 이것은 역시 단순한 그룹 선택 내지는 종 선택과 같은 종류의 설명이다. 메다워 자신의 이론은 훌륭한 논법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꾸밀 수가 있다.
우수한 유전자와 치사 유전자 '우수한 유전자'의 가장 일반적인 특성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그리고 '이기성'이 그 하나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성공한 유전자가 가지는 또 하나의 일반적 특성은 자기의 생존 기계의 죽음을 적어도 생식 활동 뒤로 미루는 경향이다. 확실한 것은 당신의 사촌과 종조부 중에는 아이 적에 죽은 자가 있다고 해도 당신의 조상은 단 한 사람도 아이 적에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젊어서 죽지 않은 자야말로 조상이다. 자신을 지니고 있는 개체를 죽게 하는 유전자를 '치사 유전자'라고 한다. 반치사 유전자는 어느 정도 개체를 쇠약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고, 다른 원인에 의해서 죽을 가능성을 높인다. 어떤 유전자도 생애의 한 특정 단계에서 몸에 최대의 효과를 나타내나 이점에서 치사 유전자와 반치사 유전자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유전자는 태아기에 그 영향을 나타내나 어떤 유전자는 유아기에, 어떤 유전자는 청년기에, 어떤 것은 중년기에, 그리고 어떤 것은 노년기에도 계속 영향을 끼친다(한 마리의 유충과 그것이 변태한 나비는 똑같은 유전자 세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분명히 치사 유전자는 유전자 풀로부터 제거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후기에 작용하는 유전자는 적어도 개체가 생식 활동을 할 때까지 그 치사 효과를 나타내지 않는다면 유전자 풀 속에서 지금도 번창할 것이다.
이를테면 늙은 몸에 암을 유발시키는 유전자는 암의 발현 전에 개체가 번식하기 때문에 다수의 자손에게 전해진다. 한편 젊은 성인에게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별로 많은 자손에게 전해지지 않으며, 어린아이에게 치명적인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자손에게 전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노쇠는 후기에 작용하는 치사 유전자와 반치사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 축적되는 현상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이들 치사 및 반치사 유전자는 단지 후기에 작용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연 선택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게 허락되어 온 것이다. 메다워 자신이 강조하고 있는 점은 선택이 다른 치사 유전자의 작용을 늦춰 주는 효과를 가진 유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좋은 유전자의 효과를 빠르게 하는 효과를 가진 유전자에게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진화의 많은 부분의 유전자 활동의 개시 시기를 유전적으로 조절하여 변화시키므로써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이 이론에서는 번식이 어떤 연령일 때에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 주의하길 바란다. 모든 개체가 연령에 상관없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첫째 가정으로 해도 메다워 이론은 후기에 작용하는 유해한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 축적되는 것을 즉시 예언한다. 그리고 그 다음 과정으로서 노년이 되면 번식하기 어렵게 되는 경향이 생긴다는 것은 틀림없다.
인간의 수명 의미는 좀 다르나 이 이론의 좋은 점의 하나는 이것으로부터 퍽 재미있는 추찰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이 두 가지 있다는 것이다. 그 하나는 어떤 연령, 예컨대 40세 이전에는 번식을 금지하는 것이다. 그 수백 년 후에는 최저 연령 한계를 50세로 올리고 그 후에도 조금씩 올려간다. 이 방법으로 인간의 수명은 수백 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누구도 이와 같은 방법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싶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두 번째는 유전자를 '속여서'품고 있는 몸이 실제의 연령보다 젊도록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을 행하려면 나이가 들어가는 사이에 일어나는 몸 속의 화학 환경의 변화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들 변화의 어떤 것이 후기에 작용하는 치사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면 젊은 몸의 표면적인 화학 특성을 흉내내는 것으로 인해 후기에 작용하는 유해한 유전자의 'switch on'을 막을 수가 있는 것은 아닐까. 흥미롭게도 노화의 화학신호는 통상의 어떤 의미로도 그 자체가 유해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물질 S는 젊은 개체보다 늙은 개체의 몸에 많이 농축되어 있다고 하자. S는 그 자체로는 전혀 무해하며 먹이에 함유되어 있던 것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점점 몸에 농축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종 S의 존재하에서는 유해한 효과를 끼치는데 그렇지 않으면 좋은 효과를 끼치는 유전자가 유전자 풀에서 자동적으로 확실히 선택되어 남아 있고, 그것이 사실상 '노쇠사의 유전자'라는 것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 그 치료법은 몸에서 S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 생각의 혁명적인 점은 S자체가 노령의 '표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S의 대량 축적이 죽음에 이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에 주목한 의사는 아마도 S를 일종의 독으로 생각하고 S와 몸의 기능 부전과의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발견하려고 고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말한 가설과 같이 되어 있다면 그는 시간을 낭비할 뿐이다. 늙은 몸보다 젊은 몸에 많이 저장되어 있다는 의미로 젊음의 '표시'인 물질 Y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역시 Y의 존재하에서는 좋은 효과가 있는데 Y가 없을 때에는 유해한 유전자가 선택될지도 모른다. S와 Y -이와 같은 물질은 만이 있을 수 있다- 가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단순히 늙은 몸으로 젊은 몸의 특성을 (그들의 특성이 아무리 표면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흉내낼 수가 있으면 그만큼 늙은 몸은 장수한다라고 하는 일반적인 예언을 할 수가 있다. 이것은 메다워 이론에 기초한, 완전히 추측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메다워 이론이 논리적으로 어떤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노쇠의 어떤 실례에 대한 옳은 설명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의 중요성은 유전자 선택 진화설이 개체가 늙어서 죽는 경향을 용이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 논의의 중심인 개체가 죽어야 한다는 가정은 이 이론의 체계 내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내가 말한 다른 가정, 즉 유성 생식과 교창의 존재라는 가정은 증명하기가 더욱 어렵다. 교차는 필히 일어나지 않아도 좋다. 초파리 수놈에게서는 교차가 일어나지 않는다. 암놈도 교차를 억제하는 유전자가 있다. 만약 이 유전자가 널리 퍼져 있는 파리의 개체군을 사육하려고 하면 유전자 풀이 아닌 '염색체 풀'내의 염색체가 자연 선택의 초소기본 단위로 됨은 틀림없다. 사실 우리의 정의의 논리적 결론에 따르면 한 개의 염색체 전체를 하나의 '유전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성 구별의 이로움 한편, 유성 생식에 대신하는 것도 존재한다. 초록진드기의 암놈은 부친이 없는 살아 있는 암놈새끼를 낳을 수 있으며 그 암놈들은 모두 모친의 유전자를 깡그리 이어받고 있다(때로는 모친의 '자궁'내의 배가 그 자궁 내의 더 작은 배를 기르고 있는 수가 있다. 이 경우 진드기의 암놈은 딸과 손녀딸을 한꺼번에 낳는 꼴이 되어 깔과 손녀는 둘 다 모친의 일란성 쌍생아에 상당한다). 많은 식물은 흡착근을 뻗어서 무성적으로 번식한다. 이럴 경우에는 번식이라기보다 '생장'이라고 하고 싶으나 생각해 보면 생장과 무성 생식은 단순히 체세포 분열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어쨌든 이 양자간에는 거의 구별이 없다. 때로는 무성 생식에 의해 번식한 식물이 '부모'로부터 떨어지는 일도 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예컨대 느릅나무에 있어서는 흡착근이 그대로 남아 이어져 있다. 실제로 느릅나무 삶 전체를 한 개체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초록진드기와 느릅나무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데 우리는 왜 아이를 만들 때까지 자기의 유전자와 다른 누군가의 유전자를 걷어 붙여야 하는 귀찮은 짓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런 방법이 생기는 것은 기묘한 것처럼 생각된다. 단순 명쾌한 무성 생식대신에 성이라는 어쩌면 기묘하고 번거로운 방식을 취하게 된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성의 장점은 무엇일까?
이것은 진화론자가 답하기에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다. 이 의문에 대해 신중한 답을 시도한다면 대개 복잡한 수학적 추리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나는 다음 한 가지 이야기만 하고, 복잡한 수학적 추리는 솔직하게 피하려고 한다. 그것은 이론가가 성의 진화를 설명하려고 하다 부딪치는 어려움의 일부는 그들이 관습적으로 개체란 살아 남는 유전자 수를 최대로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기인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고 방식에 의하면 성은 역설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체가 자기의 유전자를 증식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비능률적인'것이기 때문이다. 즉 각각의 새끼에는 개체의 유전자의 단 50%만이 주어지며 다른 50%는 배우자로부터 공급되기 때문이다. 만약 진드기와 같이 다만 무성 생식에 의해 자기의 정확한 사본인 새끼를 만드는 것이라면 모든 새끼의 몸을 토해 차세대에게 자기의 유전자를 100% 전할 수가 있다. 이 뚜렷한 모순에서 일부의 이론가들은 그룹 선택설로 빠져들었다. 성에 대한 그룹 수준의 이점은 비교적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보드머(W.F.Bodmer)가 간결히 지적한 것처럼 성은 "다른 개체에서 따로따로 일어난 유리한 돌연변이를 개체에 모으는 역할을 한다."
유전자의 이기성 그러나 이 역설도 이 책의 논의에 따라서 개체를 영원한 유전자의 잠깐 동안의 연합에 의해 만들어진 생존 기계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역설 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경우 개체 전체라는 관점에서의 "효율성'은 잘못 본 것 같다. 유성 생식 대 무성 생식은 푸른 눈 대 갈색 눈과 똑같이 단일 유전자의 제어하에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유성 생식을 위한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 모두를 자기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조작한다. 교차의 유전자도 역시 그렇게 한다. 다른 유전자 복제의 오차율을 조작하는 유전자(돌연변이 유전자)까지 있다. 정의에 따르면 복제 과정의 실수는 복제되는 유전자에게는 명백히 불리하다. 그러나 만약 이 일이 그것을 유발시킨 이기적인 돌연변이 유전자를 이롭게 한다면 그 돌연변이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 분포를 넓힐 수가 있다. 같은 식으로 교차가 교차의 유전자를 이롭게 한다면 이 때문에 교차의 존재가 충분히 설명된다. 무성 생식에 대립하는 유성 생식이 유성 생식의 유전자를 유리하게 한다면 이것으로서 유성 생식의 존재는 충분히 설명된다. 그 유전자가 개체의 나머지 유전자 모두에게 필요한가 아닌가의 여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유전자의 이기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결국에 가서 성은 그다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이렇다면 논의가 순환 논법이 될 우려가 있다. 성의 존재는 유전자를 선택의 단위로 생각하는 일련의 논의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순환성을 피할 방법이 있다고 보나 이 책은 이 문제를 추구하는 입장은 아니다. 성은 존재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작은 유전 단위, 즉 유전자를 진화의 기본적인 독립한 인자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성과 교차가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이기성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기 시작할 때에 역설이 풀리 게 되는 것은 성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생물체의 DNA 총량은 그 생물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것 같다. DNA의 많은 부분이 단백질로 번역되지 않는다. 개개의 생물체의 관점에서 고찰해 보면 이것은 역설적으로 생각된다. 만약 DNA의 '목적'이 몸을 만드는 과정을 지휘하는 것이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는 DNA가 대량으로 발견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생물학자들은 이 여분으로 생각되는 DNA가 어떤 유익한 일을 하고 있나를 생각해 내려고 머리를 쓰고 있다. 그러나 유전자의 이기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모순은 없다. DNA의 진정한 '목적'은 생존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여분의 DNA를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려면 그것을 기생자 또는 대체로 다른 DNA가 만든 생존 기계에 편승하고 있는 무해하고 무용한 길손으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지화를 지나치게 유전자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결국 실제로 살거나 죽거나 하는 것은 유전자 전부를 가진 개체 바로 그것이다. 이 점에 이견이 없는 것은 이장에서 충분히 기술한 탓이다. 경기에 이기로 지는 것은 보트 자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살거나 죽거나 하는 것은 개체이고, 자연 선택이 직접 나타나는 것은 항상 개체 수준이다. 그러나 개체의 죽음과 번식의 성공이 아무렇게나 생기는 것은 안기 때문에 오랜 동안에 유전자 풀내의 유전자 빈도가 변한다는 결과를 초래한다. 조건부이기는 하나 유전자 풀은 원시 수프가 옛날의 자기 복제자에 대해 하고 있던 것과 같은 역할을 현대의 자기 복제자에 대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과 염색체의 교차에는 현대판 원시 수프의 유동성을 유지시키는 효과가 있다. 성과 교차에 의해 유전자 풀은 잘 섞어지며 유전자는 부분적으로 뒤섞여진다. 진화는 유전자 풀 속에서 어떤 유전자는 수를 늘리고, 어떤 유전자는 수를 줄이는 과정이다. 이타적 행동 등과 같은 어떤 형질의 진화를 설명하려고 할 때는 언제든지 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좋다. "이 형질은 유전자 풀 속에서 유전자의 빈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때로는 유전자 용어가 다소 지루할 수가 있으므로 간결히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비유를 쓰기로 한다. 비유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을 품어 오던 사람도 필요한 때에는 그것을 유전자 용어에 적용할 작정을 한다.
유전자의 측면에서 보면 유전자 풀은 새로운 형태의 수프, 즉 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다. 옛날과 달리 오늘날의 유전자는 죽을 운명에 있는 생존 기계를 하나하나 만들어 나가기 위하여 유전자 풀로부터 계속 뽑아낸 동지들의 집단과 협력하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생존 기계 자체에 주목하여 유전자가 어떤 의미로 그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눈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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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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擧案齊眉(거안제미) 擧(들 거) 案(책상 안) 齊(가지런할 제) 眉(눈썹 미)
후한서(後漢書) 양홍전(梁鴻傳)의 이야기다. 동한(東漢)시대, 양홍이라는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찍 부모를 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태학(太學)을 마쳐 많은 학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들에서 돼지를 기르며 살았다. 그런데 맹(孟)씨라는 사람의 집에 다 자란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뚱뚱한 몸매에 시커먼 얼굴, 게다가 힘은 장사였다. 그녀의 부모가 그녀에게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묻자, 그녀는 양홍처럼 덕 있는 사람이라면 시집을 가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양홍은 몹시 기뻐하며,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양홍 부부는 산에 은거하면서 쌀을 찧어 주는 일로 생활을 하였다. 양홍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의 아내는 감히 남편을 쳐다보지 못하고 밥상을 눈 높이까지 들고 왔다(不敢于鴻前仰視, 擧案齊眉).
擧案齊眉는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함 을 비유한 말이다. …………………………………………………………………………………………………………………………………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가 곧은 양홍(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다. 뜻이 있어 장가를 늦추고 있는데 같은 縣에 몸이 뚱뚱하고 얼굴이 못생긴 맹광(孟光)이라는 처녀가 서른이 넘은 처지에서 "양홍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한다는 소문을 들은 양홍은 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 색시와 잠자리를 같이 아니하자 색시가 궁금하여 자기와 잠자리를 같이 아니하는 이유를 물었다. 양홍이 대답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은 비단옷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라도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였소."하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후로 화장도 하지 않고 산골 농부의 차림으로 생활을 하자 양홍도 그녀와 둘이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생활했다. 양홍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들에게 보냈는데 그 시 속에 왕실을 비방하는 내용이 발각되어 나라에서 잡으려 하자 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皐白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 지기가 되어 지냈다. 그러나 양홍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아내는 밥상을 차리고 기다렸다가 눈을 아래로 깔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擧案齊眉] 남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고 한다. 고백통(皐白通)이 양홍 내외를 보통으로 보지 않고 도와서 양홍은 그 후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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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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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2편
4. 첫번 받은 충격
실망한 나는 봄베이를 떠나 라지코트로 가서 거기서 내 사무소를 차렸다. 여기서 나는 괜찮게 지냈다. 신청서나 진정서를 써서 매달 평균 3백 루피의 수입을 올렸다. 이것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배경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형의 친구가 안정된 변호사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제로 중요한 것이거나, 또는 자기 생각에 그렇게 생각되는 것은 모두 굵직한 변호사에게로 보내고 내 몫으로는 보잘것 없는 사건 의뢰인들의 신청서 작성만이 돌아왔다. 봄베이에서 그렇게도 조심스럽게 지켜왔던, 커미션을 안준다는 원칙을 여기서는 타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경우의 조건이 다르다는 말을 누가 해주었다. 즉, 봄베이에서는 커미션을 중개인에게 주었는데 여기서는 신청서 작성을 의뢰해 오는 변리사에게 주어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도 봄베이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등법원 변호사들은 모두 예외없이 변호료의 일부를 커미션으로 주도록 되어 있었다. 형의 이론에 나로서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는 말했다.
너도 아다시피 나는 다른 변리사와 동업을 하고 있다. 내 마음은 네가 능히 다룰 수 있는 사건은 모두 네게 넘겨주고 싶은데 내 동업자에게 커미션을 주기를 거절한다면 내 입장은 곤란해진다. 너와 나는 합동해서 하는 것이니 네가 받는 보수는 우리 공동수입이 되고, 나도 자동적으로 한 몫을 보게 되지만 내 동업자는 어떻게 되느냐? 가령 그가 그 사건을 다른 어떤 변호사에게 주었다 하자. 그는 그에게서 커미션을 받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는 이 권유에 넘어갔다. 그리고 또 나는 생각하기를, 내가 이왕 변호사 영업을 할 바에는 이런 경우에 커미션에 대한 내 주장을 고집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타일렀다. 솔직히 말해서 속였다. 그러나 다른 사건에 관해서는 커미션을 준 기억이 없다는 것을 말해 둔다. 이렇게 하여 수지를 맞추기 시작은 했으나, 이 무렵에 나는 내 일생에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다. 나는 영국 관리가 어떤 것이라는 말을 들어는 왔으나 그때까지 한 사람도 직접 대해 본 일은 없었다. 형은 포르반다르의 고 라나사헵이 가디*1에 오르기 전에 그의 비서 겸 고문으로 있었던 일이 있는데, 이즘에 와서 그가 그 자리에 있을 때 옳지 못한 조언을 했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 문제가 내 형에 대해 그러잖아도 편견을 가지고 있던 주재관에게로 넘어갔다. 내가 영국에 있을 때 이 관리를 알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나에게 상당히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형은 내가 그와 친면있는 것을 이용하여 자기를 위해 말을 잘 하여서 그 주재관의 편견을 풀도록 해주었으면 하고 생각을 했다. 나는 그런 생각을 조금도 좋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영국에 있을 때에 잠깐 알았던 사람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만일 형이 정말 잘못이 있다면 내 변명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또 만일 잘못이 없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탄원서를 제출하고, 자기의 무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정정당당히 얼굴을 들고 결과를 기다릴 일이다. 형은 내 말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너는 카디아와드가 어떤 곳인지를 모른다. 그리고 세상이 뭔지를 좀더 알아야 한다. 여기는 세력이 있어야만 산다. 네가 나의 동생으로서 네 의무를 다하지 않고 뒤를 빼는 것은 옳지 않다. 네가 아는 관리에게 나를 위해 한마디 말만 잘하면 될 터인데 말이다.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말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마음에도 없으면서 나는 그에게로 갔다. 나는 내가 그에게 접근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가 내 자존심을 꺾고 있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면회를 요청하여 허락을 얻었다. 나는 그에게 전에 서로 만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카디아와드는 영국과 다르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았다. 다시 말하면, 휴가중의 관리와 근무중의 관리는 같지 않았다. 그 주재관은 나를 안다고는 했지만, 그것을 말한 것이 그를 굳어지게 만든 듯했다. 설마 그 때 안것을 악용하러 여기 온 것은 아니겠지요? 하는 것이 그 굳어진 태도로 하는 말 같았다. 그것이 마치 그 미간에 쓰여져 있는 듯했다. 그렇지만 나는 본론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사힙*2은 참지 못했다.
당신 형은 음모자요, 여러말 듣고 싶지 않소. 난 시간없소. 당신 형이 정말 할말이 있거든 정당한 길을 밟아서 하라고 하시오.
그대답이면 그만이었다. 그말을 들을 만도 했다. 그러나 이기심이란 눈이 어두운 법이다. 나는 내 말을 계속했다. 그 사힙은 벌떡 일어서더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라고 했다.
죄송하지만 제 말씀을 좀 끝까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것이 그를 더욱 노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기 경호원을 불러 나를 내보내라고 명령했다.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경호원이 들어와 내 어깨를 붙잡아 나를 방 밖으로 끌어냈다. 사힙은 가버렸고 경호원도 갔다. 나는 화가 나 어쩔 줄을 모르며 거기를 떠났다. 나는 곧 다음과 같은 내용의 쪽지를 써 보냈다.
당신은 나를 모욕했소. 당신은 경호원을 시켜 내게 폭행을 가했소. 사과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고발할 수밖에 없소.
즉시 토인 기병을 시켜 답장이 왔다.
당신은 나에게 무례했소. 나는 당신에게 가기를 요구했지만 당신은 들으려 하지 않았소. 나는 부득이 경호원을 시켜 당신을 내보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소. 내가 당신보고 나가 달라고 한 후에도 당신은 나가지 않았소.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내보내는 데 필요한 힘을 쓸 수 밖에 없었소. 고소하고 싶거든 마음대로 해보시오.
나는 이 답장을 호주머니에 넣고 풀이 죽어서 집에 돌아와 일어났던 모든일을 형님에게 고했다. 그는 마음 아파했지만 나를 어떻게 위로해 줄 도리가 없었다. 그는 그의 변리사 친구에게 그 말을 했다. 나는 그 사힙을 어떻게 고소할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때 마침 페로제샤 메타 경이 어떤 소송사건 때문에 봄베이로부터 라지코트에 와서 머물게 되었다. 그러나 나같은 풋나기 변호사가 어떻게 감히 그를 볼 수 있을까? 그래서 그와 계약을 맺고 있는 변리사를 통하여 나의 경우를 써서 보내고 그의 조언을 구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해 보냈다.
간디에게 말하시오. 그런 일은 많은 변호사, 변리사가 보통 당하는 일이오. 그는 영국에서 갓 돌아왔고 혈기왕성하여 아직 영국의 관리를 모르오. 여기서 벌이를 하고 평안한 살림을 하려거든, 그더러 그 편지를 찢어버리고, 그 모욕을 참으라고 하시오. 사힙을 고소해서 그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소. 반대로 도리어 자기 신세만 망칠 것이오. 그더러 인생을 아직도 더 배워야 한다고 그러시오.
이 조언은 독약같이 썼으나 나는 그것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 모욕을 꾹 참았다. 그러나 또 유익한 점도 있었다. 다시는 절대로 그런 잘못된 자리에 나 자신을 두어서는 안되며, 다시는 절대로 우정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려 해서도 안된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다짐했고, 그 후 나는 이 결심을 깨뜨린 일은 한번도 없다. 이 충격은 내 생애의 방향을 변경시켰다.
* 1. gadi : 임금의 왕좌 * 2. Sahib : 영국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 씨,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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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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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 6장 제우스의 아들과 딸
13. 아레스
아레스(Ares, Mars)는 그리스 세계의 옛 전쟁신 혹은 군신으로, 로마인은 이탈리아의 전쟁신 마르스와 동일시하였다. 트라키아에서 마르스는 전쟁을 매우 좋아하는 신으로 등장하며 그 자매인 에리스는 전쟁이 나도록 선동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질투심을 부추겼다.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라고 하나 헤라가 데리고 온 아들이라는 설이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치 제우스가 아테나를 출생케 한 것처럼, 시문에서는 올레노스 근처 들에서 꽃의 여신 클로리스(로마에서는 플로라)의 도움을 받은 헤라가 이성 없이 꽃을 만진 것만으로 임신하였다고 읊고 있다. 헤라는 아레스를 프리아푸스에게 교육받게 하고 무용과 남성적인 모든 행동을 배우게 하였다. 아레스는 아글라우로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알키페가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로티오스에게 겁탈당하려는 것을 구하기 위하여 그를 죽였다 한다. 그러나 증인이 없어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열린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연유하여 이 언덕은 최고재판소로서 역사적 신기원을 이룩하게 되었다. 아레스의 연애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프로디테와의 관계였다. 둘의 부정한 소문을 들은 아프로디테의 남편 헤파이스토스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마법의 망으로 현장을 덮치고 올림포스 신들을 모두 불러모아 부정현장을 공개하였다. 아레스는 포세이돈이 개입한 후에야 겨울 풀려날 수 있었다. 크게 망신을 당한 아레스는 망을 보라고 한 알레트류온이 졸았기 때문이라고 하여 벌로 그를 수탉으로 변신시켰고,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정사를 남편에게 알린 헬리오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헬리오스의 아이들을 집요하게 학대하였다. 아레스는 티탄족과의 전쟁에서 오토스와 에피알테스에게 붙잡혀 15개월 동안 유폐되었는데 굶어 죽기 직전까지 헤르메스에게 발견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트로이 전쟁에서는 트로이쪽에 호의를 가진데다 특히 사랑하는 아프로디테가 이례적으로 트로이를 비호하였기 때문에 자신도 트로이쪽에 가세하였으나 용맹한 디오메데스에게 부상을 당해 곧 천상으로 철수하였다. 그는 디오메데스에게 당한 분통을 억지로 감추면서도 제우스와 아테나가 자기의 적수에게 예리하고 실수 없는 무기를 주었다고 불평하였다.
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신은 아레스를 싫어하였으나 자매인 에리스와 연인 아프로디테, 무엇이든 지하에 넣어 두는 욕심쟁이 하데스만은 그를 좋아하였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자주 인간의 전쟁에 개입하여 비호를 하거나 방해를 놓았는데 이는 자신들을 숭배하는 인간이나 용사를 구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레스만은 전쟁에서 적이건 우군이건 또는 정의의 싸움이건 아니건, 용맹하건 겁쟁이 건 관계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공격하고 유혈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아레스를 수호신으로 받드는 도시는 거의 없고 옛적 그리스 세계에 아레스 숭배가 보편화되지 않았다. 이는 에리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레스는 폭력을 좋아하고 광폭하였지만 악의 신은 아니었다. 로마로 들어오자 호전적인 성격의 로마인은 이 아레스를 무한히 영광의 신으로 숭배하고 도시의 보호신, 군주의 선조신으로 앙모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필리피 전을 끝내고 로마에 가장 훌륭한 신전을 건립하여 마르스(아레스) 신에 봉헌하였다. 당시 마르스를 모시는 사제들의 학교를 살리라 하였고 사제들은 누마라는 곳에서 하늘에서 내린 신성한 방패 안킬라를 지켰다.
아레스는 일반적으로 벌거벗은 노인의 모습이거나 혹은 헬멧과 창 및 방패를 지닌 상으로 표현된다. 때로 무장하고 긴 수염을 가진 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두필의 준마(Flight.Terror)가 끄는 이륜전차를 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아레스 제단은 말의 피 또는 이리의 피를 묻혀 호전성을 나타냈다. 까치와 솔개를 공양했는데 탐욕성과 탐식성이 있기 때문이며, 스키타이인은 나귀, 카리아인은 개를 바쳤다. 식물로는 개밀이라는 풀을 바치는데 전쟁터나 혹은 사람 피로 물든 땅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아레스는 각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예컨대 사비니족은 에뉴알리오스, 가울 사람은 카말로스, 카르타고에서는 마메르스라 하였다. 로마인은 그라디부스, 마보르스, 퀴리누스, 살리숩술루스라고도 하였다. 아레스는 아프로디테에게서 에로스(큐피드), 안테로스 및 하르모니아를, 아스튜오케에게서 아스칼라포스와 이알메노스를, 아글라우로스에게서 알키페를, 아게노르의 딸 데모니케와의 사이에서 몰로스, 퓰로스, 에우에노스 및 테스티오스를 두었다. 또한 로물루스, 오이노마오스, 뷰티스, 트락스, 트라키아의 디오메데스 등의 아비이기도 하다. 검사의 신이며 남성답고 호전적인 활동 오락에 관여되는 신으로 로마인은 원정에 나설 때 마르스 신전을 찾아 기원을 올렸다. 그러면 신상의 손에 지닌 창이 엄숙히 흔들려 응답을 하고 이와 동시에 사람들은 '전쟁의 신이 로마의 안전을 지키니(Mars vigila!)'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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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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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2 - 류시화
개와 함께 한 여행
늙은 개가 나를 따라왔다. 아마도 낙타상들을 따라다니다가 주인을 잃은 집 없는 개인 모양이었다. 그날 나는 북인도 자이살멜에서 서쪽으로 40 킬로미터 떨어진 샘 사구까지 도보여행을 출발했다. 사하라 사막 같은 모래언덕을 구경하기 위해 여행자들은 샘 사구까지 지프차를 빌려타고 가곤 했다. 하지만 나는 중간까지 도보로 갈 생각으로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부터 개는 나를 따라왔다.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황야를 걸었다. 풀 한 포기 없는 맨땅, 하늘에는 붓으로 그린 것처럼 구름이 한 가닥 걸려 있었다. 태양이 뜨거웠다. 나는 도중에 물과 비스킷을 사서 배낭에 넣었다. 가게 주인에게 돈을 치를 때까지 개는 멀찌감치 서서 딴전을 피웠다. 분명히 나를 따라오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하는 영리한 놈이었다. 자이살멜 시내를 완전히 벗어났을 때 우리는 한 떼의 염소들을 만났다. 백 마리가 넘는 염소떼가 황야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내가 염소떼를 앞지르기 위해 빙 둘러 돌아가자 개도 열심히 따라왔다. 이 더위에 사막을 걷는 것이 늙은 개에겐 무리였다. 돌아가라고 손짓을 했지만 개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마치 전생에 내가 자기의 친구였기나 한 듯이 멀찌감치서 계속 쫓아왔다.
그때 뿌연 흙먼지를 날리며 지프자 한 대가 뒤쪽에서 달려왔다. 샘 사구로 떠나는 여행자들이었다. 작은 지프차에 여덟 명이나 되는 서양인들이 착한 학생처럼 앉아 있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지프차는 휑하니 황야 저편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쪽을 방향삼아 걸음을 재촉했다. 한 시간도 걷지 않아서 목이 말랐다. 나는 물병 마개를 따고 물을 마셨다.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물병을 도로 집어넣자 개는 자기도 목말라 죽겠다는 듯이 혀를 길게 내밀고 헉헉거렸다. 손바닥에 물을 따라주었더니 개는 꼬리를 흔들며 받아먹었다. 그런 다음에도 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날 따라왔다. 그러나 더위와 허기 때문에 나보다도 개가 먼저 지쳐버렸다. 이윽고 초막으로 지붕을 엮은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사리를 머리에 뒤집어쓴 소녀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다녔다. 어른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를 보자 "포토! 포토!"하고 소리쳤다. 카메라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하니 아이들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개는 먼 발치서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내가 떠나는 걸 보고서야 황급히 달려왔다.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황야를 걷는 것이 나는 좋았다. 바람도 없고, 나무도 없고, 사람들도 없었다. 오직 나와 개와 태양뿐이었다. 개는 지쳤는지 나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중에는 백 미터 정도 간격이 벌어졌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개가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우리는 다시 물과 비스킷을 나눠 먹었다. 그리고 나는 배낭에서 선글라스를 꺼냈다. 인도에 와서 산 것인데, 얼마 가지 않아 테가 부러져버렸다. 그래서 검정 테이프로 붙들어 매야 했다. 선글라스를 쓰니 눈이 덜 부셨다. 그 사이에 또다시 지프차 한 대가 휑하니 지나갔다. 아까보다 더 많은 여행자가 타고 있었다. 지프차를 향해 손을 흔들다가 그만 선글라스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열기 때문에 테이프가 녹아버렸는지 안경테가 다시 벌어지고 알이 빠진 것이다.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나는 부서진 선글라스를 황야에 버려둔 채 걸음을 재촉했다. 개도 잠깐의 휴식에 기운을 얻어 열심히 따라왔다.
이대로 아무리 걸어가도 아무것도 나을 것 같지 않았다. 이따금 작은 마을이 나타났지만 그것들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언덕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났다. 처음엔 그것이 눈썹에 얹힌 흙먼지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언덕이었다.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면 그 언덕에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개는 언덕이 보이지도 않는지 헉헉대며 뒤로 처졌다. 나는 기다렸다가 한쪽 팔에 개를 안아들고 걸어갔다. 개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가벼운 존재. 나는 한참을 걷다가 개를 도로 내려놓았다. 가벼운 것도 오래 들고 있으니 무거웠다. 마치 인생이 그런 것처럼. 언덕에 이르러 우리는 한참 동안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그 언덕이 난 맘에 들었다. 멀리까지 황야를 내다볼 수도 있고, 자세히 보면 빛인지 먼지인지 풀씨인지 하는 것들이 바람에 떠다녔다. 개는 두 다리로 팔베개를 하고 엎드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얼마 후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벌써 해가 중천을 지나 있었다. 우리의 그림자가 등 뒤로 이동했다. 개를 데려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개는 더 이상 걷는 것이 고통스러운지 비틀거리며 쓰러지기까지 했다. 샘 사구까진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우리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나도 지쳤고 개도 지쳤다. 우리는 물과 비스킷을 몽땅 먹어치우면서 반 시간 정도 황야에서 기다린 끝에 마침내 뒤에서 달려오는 또다른 지프차를 만났다. 두 손을 마구 흔들자 차가 멈춰섰다. 개가 먼저 올라타고 내가 뒤따라 승차했다. 다행이 이번 지프차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왔다는 청년이 나더러 개를 데리고 인도 여행을 하는 중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는 그런 여행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부러워했다. 빨간 테의 선글라스를 낀 호주 여자는 개가 무척 더러워 보이자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개가 그녀의 무르팍에 턱을 올려놓고 자꾸만 침을 흘렸기 때문이다. 차는 흙먼지를 날리며 신나게 달렸다. 마침내 샘 사구에 도착했다. 샘 사구에서 보는 모래언덕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멀리 낙타 여행자들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개와 함께 나란히 서서 한참 동안 황혼녘의 모래언덕을 구경했다. 그날 밤 나는 개와 함께 슬리핑백 속에서 잠을 잤다. 사막이라서 일교차가 심했던 것이다. 슬리핑백 속이 비좁긴 했지만 낮의 피곤한 여행 때문에 한번도 깨지 않았다. 사막의 별들 아래서 개와 함께 슬리핑백 속에서 잠을 잔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개는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샘 사구는 작은 곳이라서 그곳에 있다면 쉽게 눈에 띌 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근처에서 다른 개를 만났는지, 아니면 사막으로 뼈를 묻으러 간 건지 모를 일이었다. 인사도 없이 가버린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그 늙은 개가 그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등 온몸이 가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개한테서 이가 옮은 것이다. 사막에서 머무는 동안 내내 나는 다른 여행자들이 지켜보는 중에도 온몸을 벅벅 긁고 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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