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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30호
2012.12.3 (음10.20)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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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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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공이란 사다리를 올라갈 수는 없다. - 美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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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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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바루기] 외곬, 외골수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성(性)이론에만 매달린 외곬이 아니었으며 성이론은 정신분석학의 일부일 뿐이다.” 이 문장의 앞부분(‘지크문트…아니었으며’)은 비문(非文)이다. 주어와 술부가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까닭을 알아보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알다시피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 창시자로서 사람이다. 그런데 프로이트를 설명하는 술부 ‘외곬이 아니었으며’의 ‘외곬’은 사람이 아니다. ‘외곬’은 ‘단 한 곳으로만 트인 길’ ‘단 하나의 방법이나 방향’을 의미한다. 사람이 주어인데 술어는 길이나 방향이어서 주어와 술부가 호응하지 않는다.
‘곬’은 ‘한쪽으로 트여 나가는 방향이나 길’을 뜻한다. 여기에 ‘혼자인’ 또는 ‘하나인’ 또는 ‘한쪽에 치우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외-’가 붙어 ‘외곬’이 됐다. “자네는 그렇게 외곬으로만 생각하는 게 문제야”처럼 쓰인다. ‘외곬’은 ‘외길’ ‘외통’과 통한다.
주어인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호응하는 술어가 되려면 동일한 사람이 따라 나와야 한다. ‘외곬’과 관련된 단어로 사람을 뜻하는 말은 ‘외골수’다. ‘외골수’는 단 한 곳으로만 파고드는 사람이란 뜻이다. 따라서 예문의 ‘외곬이’를 ‘외골수가’로 고쳐야 바른 문장이 된다.
[우리말바루기] 수입산? 외국산?
‘잔뿌리가 많이 붙어 있으면 국산, 매끈하면 중국산 도라지’ ‘선홍색을 띠며 지방층이 잘고 고루 분포하면 국내산, 검붉으며 지방층이 두껍고 안 고르면 수입산 쇠고기 등심’ ‘과육이 탄력 있으면 국산, 물렁물렁하면 외국산 곶감’….
설 제수용품 원산지 식별법을 보면 ‘○○산’이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이때의 ‘-산(産)’은 지역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거기서 산출된 물건이란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중국산’은 중국에서, ‘미국산’은 미국에서 생산됐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나라나 지역 이름을 붙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뭉뚱그려 국내 혹은 국외에서 생산한 물품을 이를 경우엔 어떻게 써야 할까? 국내에서 생산한 물건을 일컬을 때는 ‘국산’이라고 하면 된다. ‘국내산’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국(내)산’과 대비해 외국에서 생산한 물건을 가리킬 때는 ‘외국산’ 혹은 ‘수입산’이라고 흔히 사용하는데, ‘수입산’은 삼가야 할 표현이다. 다른 나라에서 물품을 사들이는 게 ‘수입’이므로 ‘수입산’이란 말의 조합은 어색하다. “수입산 농산물”은 “수입한 농산물”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 ‘-산’을 붙이려면 “외국산 농산물”과 같이 쓰는 게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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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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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 - 유현숙 - 늙은 상궁의 말
능화문 문살 틈으로 황초불이 흔들립니다
여인의 깊은 바닥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금침을 밟고 문턱을 넘어 대청바닥을 적십니다 급기야 조바심이 옥체의 등골을 타 내리고 용안이 남루해지며 미간에 그늘이 들고 수심 깊습니다
방금 문틈으로 엿 본 몸짓들은 전하의 분부도, 그 분부를 따르는 홍림*이나 중전도 아닌 궐 밖 창가娼家에서나 봄직한 것들이었습니다 애써 마음을 굶기며 화선지 가득 난을 치던 어수御手가 가늘게 떱니다 난 잎 끝에서 불길이 번집니다 하늘 아래 남녀상열지사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익스피어가 그러했고 스탕달이 그러했으며 장안에 떠도는 이 나라 시편詩篇 들이 또한 그러하옵니다
뼈와 뼈가 부딪혀 타는 이토록 지극한 몸 안의 불꽃을 이제 그만 통촉 하십시오 대전大殿으로 드시지요 전하, 등촉을 들고 따르겠습니다
이 또한 만다라가 아니겠습니까
*영화 ‘쌍화점’에서 왕이 동성애 하는 인물-후사를 위하여 중전과 합궁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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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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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1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4. 가정과 가족을 위한 수프
아이들에 대하여
너희의 아이는 너희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의 아들 딸이니 저들은 너희를 거쳐서 왔을 뿐 너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또 저들이 너희와 함께 있기는 하나 너희의 소유는 아니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어도 너희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마라. 저들은 저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너희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마라. 저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다. 너희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 속에서조차도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너희가 아이들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너희같이 만들려고 노력하진 마라.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르는 법이 없으므로. 너희는 활이요, 그 활에서 너희의 아이들은 살아 있는 화살처럼 앞으로 날아간다. 그래서 활 쏘는 이가 영원의 길에 놓인 과녁을 겨누고 그 화살이 빠르고 멀리 나가도록 온 힘을 다하여 너희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너희는 활 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듯이,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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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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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계 교수의 철학 이야기 - 탈레스에서 라캉까지
제6부 현대 철학 이야기
실용적인 것이 진리이다
19세기 후반 퍼스로부터 시작되는 실용주의는 전통적인 유럽의 합리주의 사상과 미국의 서부 개척 정신이 결합된 미국의 고유한 철학 경향이다. 실용주의는 19세기 후반 퍼스로부터 시작되는 미국의 철학이지만, 실용주의를 대표하는 퍼스, 제임스, 듀이 등은 실용주의 범주 안에서 제각기 조금씩 다른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실용주의는 전통적인 유럽의 합리주의 사상과 개척 정신이 결합된 미국의 고유한 철학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퍼스의 발상법과 기호론 퍼스의 실용주의는 개념의 의미를 명백하게 하는 방법이다. 퍼스는 <우리들의 관념을 분명하게 만드는 방법>에서 개념의 의미가 명백하지 못하면 공허한 논쟁을 되풀이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공허한 논쟁을 막기 위해서는 실용적 준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개념의 대상이 실천적 영향을 소유하리라고 여겨지는 어떤 결과들을 가질 것인지 고찰하라. 그러면 이러한 결과들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개념 전체이다." 이 말은, 개념이 포함하는 가능적 경험을 생각할 경우 개념의 의미가 파악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만일...라면, 그렇다면...이다"라는 실용적 준칙이 성립하는데, 실용적 준칙이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이 요구됨을 말한다. 칸트의 '실천적'이라는 표현과 '실용적'이라는 표현은 다같이 행위에 관계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대립된다. 실천적이라는 표현은 단적으로 타당한 것을 말하는 반면, 실용적이라는 말은 "만일 A를 원한다면 B를 해야 한다"는 가언명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보여준다. 실용적 준칙이 적용될 경우 개념의 의미는 실천적 결과에 의해서 명석하게 판명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실험주의적 성격을 가진다.
퍼스는 일생 동안 칸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인식론은 기호론을 기초로 한 발상법(abduction)이다. 기호, 대상, 해석자 및 해석의 네 가지 요소에 의해서 기호론이 성립한다. 퍼스가 기호론을 근거로 전개하는 발상법은 과학적 탐구에 필요한 가설의 논리이다. 퍼스에 의하면, 발전적 과학 지식에 있어서 새로운 관념을 가설적으로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발상법을 사용해야 한다. 발상법에 의해서 일단 어떤 가설이 성립되면 연역법에 의해서 어떤 결과가 생길지를 예견한다. 다음으로 예견될 결과가 사실과 일치하는지는 귀납법으로 검증한다. 그렇게 해 검증된 타당한 것이 곧 진리이다. 퍼스의 실용주의는 실상 실험주의이고 그가 말하는 진리는 제임스가 말하는 실제적 유용(practical utilities)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실제적 유용성과 제임스의 실용주의 제임스(1842~1910)는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진리는 고정 불변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생활에 실제적 유용성을 가져다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지 못하는 관념은 여분의 진리로서 쓸모 없는 것이다. 제임스는 일원론을 거부하고 다원적 세계관을 옹호한다. 유물론적 일원론 내지 관념론적 일원론은 절대 실체를 내세워 개인을 무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일원론의 체계는 인간의 본성에 깃들어 있는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세계의 가변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원적 세계관을 가질 때 인간의 행위는 성공적일 수 있다는 것이 제임스의 주장이다.
제임스는 프랑스의 삶의 철학자 베르그송과 오랜 친교 관계를 유지했고 생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제임스에 의하면 다원론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대상은 생명의 직접적 흐름으로부터 파악된다. 참답게 존재하는 것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리는 미완성의 것이며 경험 안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신의 존재 또한 실용적 방법에 의해서 정당화되어야 한다. 신 존재는 과학적 논증의 대상이 결코 아니고 인간의 믿으려는 의지(will to believe)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제임스는 실용주의의 극단적인 입장에서 신을 믿는 사람에게는 신 존재가 참답고 신을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신 존재가 참답지 않다고까지 말한다.
듀이의 도구주의 듀이(1859~1952)는 퍼스와 제임스의 실용주의를 종합하면서 칸트의 인식론, 헤겔의 변증법 그리고 다원의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실용주의를 도구주의로 발전시켰다. 듀이는 <탐구의 이론>에서 논리적 체계를 확립했다. 듀이에게 있어서 탐구란 문제가 생긴 상황을 몇 가지 단계를 거쳐서 해결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안에 살면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문제적 상황에 직면한다. 듀이의 '탐구의 이론'은 불확정한 상황, 가설 형성, 추리, 실험, 확정된 상황의 단계를 거쳐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시한다. 듀이의 탐구 이론은 퍼스의 발상법과 유사하며 실험주의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탐구의 최종 단계에서 듀이는 확정된 상황에 도달해 '보증된 언명 가능성'(warranted assertibility)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문제적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무엇일까? 듀이는 그것을 창조적 지성이라고 부른다. 지성은 현재 우리의 행동의 지침이 되며 동시에 현재의 조건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미리 예견한다. 지성은 인간의 창조적 도구이다. 우리는 지성에 의해서 이미 주어져 있는 것과 불필요한 것 사이의 충동을 제거할 수 있다. 듀이는 도구주의적 입장에서 진리관을 제시한다. 지성의 산물인 관념, 견해 그리고 개념 등은 모두 문제적 상황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도구이고 이 도구가 환경과의 조화와 아울러 적응을 우리에게 보장한다면 도구는 진리로 일컬어질 수 있다. 듀이에 의하면 도구의 성공적 작용은 진리의 기준이나 원인이 아니고 진리 자체에 해당한다.
듀이의 실용주의는 도구주의이며 또한 그것은 실험주의이다. 듀이는 도구주의에 의해서 개념과 판단을 논리적으로 정학하게 만들고자 했으며, 그럼으로써 미래의 결과를 실험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파악하고자 했다. 그의 도구주의 사상은 오늘날 철학을 비롯해 교육학, 심리학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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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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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人捉刀(대인착도) 代(대신할 대) 人(사람 인) 捉(잡을 착) 刀(칼 도)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위(魏)나라 무제(武帝) 때, 흉노의 사신이 위 무제를 만나러 왔다. 위 무제는 자신의 키가 작고 풍채가 초라하여 사신들에게 위풍을 보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위무제는 대신(大臣) 최계각(崔季珪)으로 하여금 흉노의 사신을 접견하게 하고, 자신은 칼을 잡고 시위(侍衛)처럼 서있었다(帝自捉刀立牀頭). 최계각은 본시 큰 몸집에 짙은 눈썹과 큰 눈으로 풍채가 당당하고 위엄있었으며, 우렁찬 목소리에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흉노의 접견을 마친 후, 위 무제는 몰래 사람을 보내어 흉노의 사신이 위 무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 보게 하였다. 흉노 사신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위왕의 고상한 덕은 대단했습니다만, 칼을 들고 옆자리에 서있던 그 사람은 위풍이 당당하여 정말 영웅같았습니다. 위 무제는 이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 흉노의 사신을 죽여 버렸다. 위 무제는 다름아닌 조조(曹操)인데, 그는 체구가 작았다고 한다. 代人捉刀란 사람을 대신하여 일을 함 을 비유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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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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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1편
21. 니르발라 케 발라 라마*1
내가 비록 힌두교나 그 밖의 종교에 대하여 얼굴을 아는 정도의 지식을 얻기는 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는 내가 시험에 빠졌을 때 건져내 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았어야 할 것이었다. 사람은 시험에 빠졌을 때 거기서 자기를 붙들어 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는 고사하고 눈치도 못채는 법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살아난 것을 우연에 돌릴 것이요, 만일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이 나를 건져 주셨다 할 것이다. 그는 아마 자기의 종교적 연구와 정신적 단련이 자기속에 있는 그 은총의 상태의 배경이 되었다고 결론지을 것이요, 사실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구원을 받는 그 순간에 그는 자기의 정신적 단련이 자기를 구했는지 혹은 그밖의 다른 무엇이 자기를 구했는지 모른다. 제 정신적 단련의 힘을 자랑하던 사람으로서 그것이 티끌보다도 더 무력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일까? 종교적 체험과는 달리, 종교적 지식이란 것은 그런 시련의 순간에는 겨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단순한 종교 지식이 쓸데 없다는 것을 내가 처음으로 깨달은 것은 영국에서였다. 그전에는 내가 어떻게 구원이 됐는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때는 나는 아주 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나는 스무 살이 됐고, 남편과 아버지로서 어느정도 체험을 얻었다. 내 기억이 미치는 대로는, 내가 영국에 머물렀던 마지막 해에, 그러니까 1890년에 포츠머스에서 채식주의자 회의가 열렸는데, 인도 친구 한사람과 내가 거기에 초청을 받고 갔다. 포츠머스는 해군들이 많이 사는 항구다. 소문이 좋지 못한 여자들이 사는 집이 많았다. 매춘부는 아니지만, 그러면서도 도덕적 순결을 지키려 하지 않는 여자들이다. 우리는 그런 따위의 집에 들었다. 말할 것도 없이, 접대위원회에서는 그런 줄은 전혀 몰랐다. 포츠머스 같은 도시에서 우리같이 잠깐 거칠 여행자로서는 어느집이 좋은 여관이고 어느집이 나쁜 데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우리는 저녁에 회의를 마치고 돌아왔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러버 오브 브리지(rubber of bridge : 트럼프 놀이의 일종)를 하려고 앉았는데 주인 여자도 거기 끼어들었다. 그것은 영국에서는 점잖은 집안에서도 보통 있는 일이다. 저마다 트럼프를 치면서 흠없는 농담을 재미삼아 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내 친구와 주인 여자는 음탕한 짓을 시작했다. 내 친구가 그런데 선수인 것을 나는 몰랐다. 거기 잡혀서 나도 한데 어울렸다. 카드와 놀음을 그들에게 내맡기고, 내가 막 경계선을 넘어서려는 순간, 하느님은 그 착한 동료를 통해서 축복의 경고를 발하였다. 자식아, 네 속에 이 악마가 웬말이냐? 물러가, 빨리! 나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 경고를 받아들여, 마음속으로 내 친구에게 감사했다. 어머니 앞에서 세운 맹세를 기억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왔다. 비트적거리며, 떨며,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안고, 쫓아오는 사냥꾼에게서 도망하는 짐승처럼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내 아내 아닌 다른 여자가 내 속에 정욕을 일으킨 첫 경우라고 나는 기억한다. 그날밤을 자지 못하고 새웠다. 갖가지 생각이 나를 뒤흔들었다. 이 집을 나가야 할까? 이곳을 떠나야 할까? 내가 어디 있었느냐? 내가 만일 조심하지 않았다면 어떤일이 일어났을까? 앞으로는 절대 조심해서 행동할 것을 결심했다. 그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포츠머스를 떠나기로 작정했다. 회의는 이틀 이상 갈 것이 없었다. 나는 그 이튿날 저녁 포츠머스를 떠났고 내 동료는 거기에 좀 더 있었다.
나는 그때 종교의 알짬, 또는 하느님의 알짬을 몰랐고, 그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도 몰랐다. 다만 어렴풋이 하느님이 그때 나를 건져 주셨다고만 알았다. 모든 시련의 경우 그가 나를 건져 주셨다. 오늘날은 나는, 하느님이 나를 건지셨다. 는 그 말이 더 깊은 의미를 가지는 것을 알지만, 그러면서도 아직도 나는 그 뜻을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다고 느낀다. 더 풍부한 체험이 있어야만 완전한 이해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모든 시련에 있어서 - 정신적인 성질의 것에서, 하나의 변호사로서, 기관을 운영해 가는데 있어서, 그리고 또 정치에 있어서 - 하느님이 나를 건져 주셨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모든 희망이 다 사라졌을 때, 돕는 자들이 거꾸러지고 위로가 끊어졌을 때 나는 도움이 어떻게 해서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간구와 예배와 기도는 미신이 아니다. 그것은 먹고 마시고 앉고 걸어다니는 행동보다도 더 참된 행동들이다. 그것만이 참이고 다른 모든 것은 헛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러한 예배나 기도는 결코 청산유수의 말을 날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입술로만 하는 충성이 아니다. 그것은 심정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심정을 온전히 정결케하여, 그속이 텅비어 아무것도 없고 다만 사랑뿐인 지경에 도달한다면 그것들은, 떨리는 음악이 되어 볼 수 없는 세계로 들어간다. 기도에는 말이 필요치 않다. 그것은 그 자체가 어떠한 감각적인 노력으로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기도가 심정의 정욕을 씻어 깨끗이 하는, 틀림없는 방법이란 것을 터럭만큼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또 절대의 겸손과 결합하지 않으면 안된다.
*1. Nirbala ke bala Rama-유명한 수르다스의 찬송의 후렴이다. 그는 의지없는 자의 도움이시요, 약한 자의 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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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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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 6장 제우스의 아들과 딸
5. 디오뉴소스
디오뉴소스(Dionysus)는 포도신 혹은 식물신으로 숭배되었으나 점차 주신 혹은 음주자의 신으로 전칭되었다. 그의 별칭은 매우 많은데 친근한 이름(주로 장소명)으로는 리베르, 브로미오스, 류아이오스, 디튜람보스, 프실라스, 바쿠스 등을 들 수 있다. 디오뉴소스 숭배는 옛적 동방에서 시작되어 트라키아와 프리지아로 퍼졌다가 이어서 그리스, 이탈리아로 들어왔다. 신화에서는 디오뉴소스를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이라 한다. 즉 제우스는 테베 왕 카드모스의 공주 세멜레를 사랑하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을 하고 그녀를 유혹하였다. 티베의 노파 또는 늙은 유모인 베로이드 변장하여 그녀를 찾아갔다. 세멜레와 친숙해지자 베로이는 사랑의 상대자가 누구인가를 묻고 그가 정말 제우스 신이라면 위엄 있고 휘황찬란한 차림이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는 세멜레가 분명 상대를 확인하게 될 것을 짐작하고 만족하며 떠났다. 과연 세멜레는 그녀를 찾아온 제우스에게 청을 하나 꼭 들어준다는 약속을 얻어내었다. 그런데 막상 그녀의 청을 듣고보니 제우스는 그녀가 죽음을 자청한 것을 알게 되었다. 헤라 여신 이외에는 아무도 제우스의 휘황한 전광에 싸인 모습을 쳐다보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멜레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어 제우스는 주신의 의상을 입고 찾아갔고 제우스를 맞이한 그녀는 불에 타기 전에 잠깐 광채로 싸인 제우스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그녀는 불에 타죽고 불사신인 태아도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에 제우스는 불 속에서 아기를 꺼내 사타구니에 넣고 있다가 달이 찬 다음 출생시켰다. 일설에는 카드모스 왕이 미혼모가 된 딸을 아기와 함께 궤에 넣어 바다로 띄워 보냈고, 그 궤는 브라시아이 해안에 표착하였으나 세멜레는 그 안에서 죽어 있었고 아기만 살아남아 그 곳에서 정중히 세멜레의 장례를 치러 주었다고 한다. 제우스는 탄생한 아기를 세멜레의 동생 이노와 그 남편 아타모스에게 맡겨 기르게 하였으나 아기를 파멸시키려는 헤라의 앙심을 피하지 못하고 양부모는 실성해 버렸다. 이에 다시 헤르메스를 시켜 아이를 헬리콘 산 두메의 요정 뉴사에게 데려가 키우게 하였다. 당시 헤르메스는 복수심 강한 헤라의 눈을 피하고자 아기를 어린 양 혹은 어린 송아지로 변장시켰다 한다. 그 곳에서 성장한 디오뉴소스는 포도의 성질을 알게 되고 포도즙을 만들어 인간에 나누어 주고, 유익함을 알게 하였으리라 추측된다.
젊을 때 디오뉴소스는 신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자신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처형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를 떠나 아는 사람이 없는 동양쪽으로 가서 신통력을 체득하였다고 한다. 미모를 지녔던 디오뉴소스는 어느 곳에서나 젊은 남녀들에게 열광적인 숭배를 받고 신도들에게 충절을 지키라고 하였다. 충분한 수양을 거쳐 신격을 획득한 디오뉴소스는 제우스의 아들로서 그리스로 돌아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경내에 신전을 갖게 됨으로써 원시신앙에서 벗어나 이성화하고 올림포스 신족의 일원이 되었다.
초기의 디오뉴소스 숭배자는 자체적으로 정신이 앙양되어 흥분이 일어나고 무아지경에 들어갔다. 그 후 음주난무하면서 상기된 여성의 무리는 기를 띠게 되어 눈에 띈 동물이나 때로는 아이들까지 발기발기 찢어 먹어치웠으므로 이들과 우연히 맞부닥치게 되면 매우 위험하였다. 그들은 생육을 성찬으로 믿고 게걸스럽게 먹었는데 동물 중에서도 소를 디오뉴소스의 화신으로 보고 생으로 먹음으로써 자신의 내부와 신이 결부하여 그 정기를 얻게 된다고 확신하였다.
디오뉴소스의 예찬자는 부녀자가 주이며 가정이건 일이건 모두 팽개치고 산중의 예배장소에 몰려와 지팡이와 횃불을 들고 원을 그리며 난무하고 황홀경에 빠졌다. 이는 거의 광적인 상황을 연출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마이나데스(단수형은 마이나드), 또는 이 신앙에 합류하는 야성적 숲의 정의 이름을 따서 실레니, 사뉴로스, 바사리데스 혹은 가장 흔히 바코이라 하였다. 이렇게 볼 때 디오뉴소스 신앙은 여러 그리스 신앙 중에서도 가장 감정적이고 흥미로운 신앙이며 인간의 원천적 본능과 욕구의 발현을 용인하여 구제를 약속하는 신앙으로서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는데, 본능과 욕구의 거부나 반대로 과잉상태가 모두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테네의 2대 연극제는 비극을 주로 하는 바카이제와 희극을 주로 하는 레나이아(디오뉴소소의 별명)제로, 신선미가 넘치고 가장 성대히 거행되는 그리스 세계 최대의 연극축제였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야수적 오르기에스(마시고 노래와 춤으로 도취하는 주신제)에서는 가면을 쓰고 모피를 깐 높은 대에 구세주를 모시고 희생공양을 하는 비밀의식이 거행되었는데, 점차 의식을 갖추어 예술적으로 극화되고 자리를 잡아나가면서 그리스 문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
디오뉴소스의 사랑 행각은 많지 않다. 테세우스가 낙소스 섬에 버린 아리아드네와 만나 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두었는데 알려진 아들로는 케라노스, 토아스, 오이노피온, 타투로폴리스, 등이 있다. 혹 디오뉴소스를 휴메나이오스(혼인의 신, 처녀막)의 아비라고도 하며 아테네 사람들은 결혼의 신으로 모셨다. 디오뉴소스에 바치는 나무로는 전나무, 주목, 무화과나무, 머루, 포도나무 등이며, 동물로는 퓨마, 산양(포도를 망친다), 돌고래(낙소스 섬으로 갈 때 튜레니아의 해적들을 화신시킨 것) 등을 희생공양하였다. 좋아하는 새는 까치인데 환희에 찬 여성 신도들이 까치와 같이 마음껏 지저귀므로 택한 것이었다. 디오뉴소스는 명계에서 내려가 어머니를 데리고 나왔고 제우스는 그녀를 여신으로 신격화시켜 튜오네라고 명명하였다. 디오뉴소스의 조각상은 일반적으로 포도잎이나 머루잎 관을 쓰고 지팡이(Thyrsus)를 가진 청춘신으로 표현되며 때로는 동안의 노인으로 분장하고 나신으로도 표출된다.
펜테우스 펜테우스(Pentheus)는 아가베의 아들로 보이오티아 지방 테베의 왕이며 디오뉴소스의 신격을 거부하였다가 엄청난 화를 당하였다. 그는 온 나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신을 섬기는 일을 금하였으나 테베의 여성들이 성문을 나가 디오뉴소스의 예배외 축제에 가담하자 이를 뒤쫓아가 엄숙한 의식을 치르고 있던 예배자들을 체포하라고 법석을 떨었다. 이 명령은 마지못해 실행되었다. 그러나 디오뉴소스를 감금한 감옥의 문이 저절로 열리는 일이 벌어지고 이에 더욱 화가 치민 펜테우스는 병사들을 시켜 디오뉴소스를 숭배하는 모든 무리를 잡아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은 실행되지 않는다. 그것은 왕 자신도 주신 숭배의 축제(제를 올리고 진탕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는 오르기에스)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왕은 그 자리를 떠나 여장을 한 채 키타이론 산 숲속에 숨어 그 곳에서 모든 행사를 몰래 숨어서 보게 된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참변을 불렀다. 주신 숭배자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어미 아가베가 맨 처음으로 쫓아와 그를 공격하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두 자매인 이노와 아우토노에가 뒤이어 공격을 가하였으며 다시 뒤쫓아 온 여성들에 의해 펜테우스는 박살이 났다. 그 후 디오뉴소스 추종자들은 펜테우스가 숨었던 나무를 신탁에 의해 베어 쓰러뜨리고 코린트 사람들은 이 나무로 주신상을 쌍으로 만들어 예배장소에 모셔 놓았다.
사튜로스 사튜로스(Satyrs)는 숲에 사는 반인반수의 남자신으로 요정들의 형제이며, 말귀와 말꼬리 혹은 산양의 다리와 머리에 짧은 뿔이 달린 형상을 하고 숲과 젊은 여자를 좋아한다. 음란하고 짐승같은 욕망에 차 있으며 남자의 성행위를 상징한다고 전한다. 그러나 일부 신화는 실레노스의 친척으로서 모범적이고 현세의 지자로 그려져 있으며 디오뉴소스를 위탁받아 교육시켰다고도 한다.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파우니, 파네스 또는 실바니라 표현되며 호색가를 의미하였다.
[사티로스와 요정들]
실레노스 실레노스(Silenus)는 목신 판 혹은 헤르메스의 아들이라 하며 또한 크로노스에게 거세당한 우라노스의 피가 대지에 떨어져 생겼다는 설도 있다. 매우 영리한 반인반수로, 켄타우로스 폴로스 혹은 아폴로 노미오스의 아비로 존중되며 특히 아르카디아 사람들의 목축을 보호하는 존재로서 사후에는 신으로서 추서되었다. 외모는 사자 코에 두꺼운 입술, 황소 눈을 방불케 하는 매우 못생긴 얼굴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한편으로는 유쾌한 배불뚝이 노인으로 꽃관을 쓰고 나귀를 타고 다니거나 술에 취한 몸을 가까스로 가누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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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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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
영혼의 푸른 버스
라니켓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초만원이었다. 각양각색의 인도인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차 있었다. 10루피(3백원)짜리 싸구려 사리 입은 여자와 머리에 터번을 쓴 남자와 오렌지색 누더기를 걸친 수도승이 한 무리로 뒤엉켰다. 그 틈새를 비집고 차장이 차비 안 내고 숨은 사람을 찾아나섰다. 들킨 승객은 돈이 없으니 한번 봐달라고 통사정했지만 소년 차장은 막무가내였다. 마침내 할 수 없다고 여긴 승객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는데 지폐가 여러 장이었다. 기가 막힌 차장이 째려 보자 승객은 당당하게 소리쳤다. "내가 이까짓 차비를 안 내려고 꾀를 부린 게 아니야. 난 어디까지나 너의 자비심을 시험해본 거야. 돈 몇 푼에 그렇게 인색하게 군다면 넌 이미 영혼을 잃은 거나 다름없어." 그 당찬 입심에 어린 차장은 말을 잃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승객들이 더 올라타서 이젠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버스 지붕으로도 사람들과 염소가 올라타고, 난데없이 닭 비명소리가 들렸다. 의자 밑에 있는 닭을 누가 밟은 모양이었다.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내 옆에는 이마에 붉은 점을 친 힌두교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내가 차를 올라탄 다음부터 한 순간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커다란 두 눈이 마냥 찌를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인도인은 얼굴이 아니라 영혼을 바라본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인도인은 중간에 시선을 돌리는 법도 없이 사람을 끝까지 쳐다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은 영화를 보러 극장엘 들어갔는데 내 왼쪽에 앉은 남자가 영화 화면은 보지 않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줄곧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이 인도인 역시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날 쳐다보기로 작정한 듯싶었다. 이런 경우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만큼 난감하다. 같이 쳐다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기도 어색하다. 탈 사람이 다 탔는지 이윽고 버스는 출발했다. 금방 부서져버릴 것 같은 차체는 그 안에 탄 온갖 희한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동화의 세계로 인도하듯 숨을 몰아쉬며 히말라야 기슭으로 내달렸다. 그러다가 버스는 몇 사람을 더 태우기 위해 코딱지만한 어느 마을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영영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은 덥고, 사람들 한복판에 끼여 있으니 인도인 특유의 카레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서는 힌두교인 남자가 차가 들리든 말든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 버스를 내리고 싶었지만 그 작은 마을에 여인숙이 있을 성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세 시간을 더 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마을에 멈춰선 버스는 도무지 떠날 기미가 안 보였다. 검문을 받는 것도 아니고, 차가 고장난 것도 아니었다. 버스는 그렇게 그 자리에 30분이 넘도록 마냥 서 있었다. 하지만 승객들은 아무도 불평하거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북인도 나이니탈에서 이틀을 머물고 더 북쪽의 라니켓으로 가는 중이었다. 버스 안에 있는 외국인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리고 버스가 떠나지 않는 것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도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한시간이 지날 무렵 나는 그만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 달리는 만원버스 안에서도 한 시간은 긴 시간인데 찌는 날씨에 이유도 모르는 채 무작정 멈춰 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어딜 가나 이럴 상황이니 나라가 발전할 리가 없었다. 나는 누구한테랄 것도 없이 큰소리로 물었다. "이 버스, 왜 안 떠나는 거요?" 그러자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아무도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힌두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화가 나서 소리쳤다. "버스가 한 시간이 넘도록 서 있는데 당신들은 바보처럼 기다리기만 할 겁니까? 이유가 뭔지 알아봐야죠." 그러자 그때까지 줄곧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 힌두교인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운전사가 없으니까요."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운전사는 그곳에 도착한 순간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조차 볼 수 없었다. 내가 바라는 대답은 그런 멍청한 게 아니었다. 나는 마치 그 힌두인 때문에 버스가 움직이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따져 물었다. "그렇다면 운전사가 어디로 갔는지 밝혀내야 할 게 아닙니까? 갑자기 배탈이 나서 쓰러졌는지, 아니면 옛날 동창생이라도 만난 겁니까?" 그때 더욱 화를 돋우는 대답이 버스 앞쪽에서 들려왔다. "맞아요. 운전사가 친구를 만났어요. 둘이서 저쪽 찻집으로 갔어요." 나는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콩나물 시루 속에 사람들을 가둬놓고서 친구와 함께 노닥거리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그가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불평 한마디 없이 무한정 기다리고만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인도라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다. 나는 당장 뛰어내려 운전사를 메다꽂고 싶었다. 그때 그 힌두교인 남자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나는 화가 나서, 라니켓으로 간다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더이상 그와 얘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가 또 묻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또 어디로 갈 예정입니까?"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 엉뚱한 인도인의 호기심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 다음엔 다시 남쪽으로 내려올 거^36^예요. 그래서 뉴델리에 들렀다가 며칠 뒤 우리 나라로 돌아갈 겁니다. 이제 됐습니까?" "그럼 그 다음엔 또 어디로 갑니까?" "그거야 아직 모르죠. 또 인도로 올지도 모르고, 네팔로 갈 수도 있고, 하지만 오늘 라니켓에 도착하는 것조차 불확실한 마당에 나중의 일을 어떻게 안단 말이오?" 그러자 그 힌두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린 우리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서둘러 어딘가로 가려고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말문이 막혔다. 곁에 서서 한 시간이 넘도록 내 영혼을 꿰뚫어본 이 남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버스는 떠날 시간이 되면 정확히 떠날 겁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한다 해도 신이 정해 놓은 순서를 뒤바꿀 순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조용히 덧붙였다. "여기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마구 화를 내든지,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을 평화롭게 갖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당신이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왜 어리석게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쪽을 택하겠습니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바보들이 아닌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문득 남루한 인도인들로 변장한, 인생을 초월한 대철학자들 틈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로마의 대철학자 에픽테투스는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라. 그때 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에픽테투스는 원래 노예였다고 한다. 그의 주인은 늘 그를 학대했는데, 어느 날 주인이 심심풀이로 에픽테투스의 다리를 비틀기 시작했다. 에픽테투스는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계속 비틀면 제 다리가 부러집니다." 주인은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계속해서 다리를 비틀었고, 마침내 다리가 부러졌다. 그러자 에픽테투스는 평온하게 주인을 향해 말했다고 한다. "거 보십시오. 부러지지 않았습니까." 그날 그 낡은 버스 안에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감정에 흔들림 없이 현실을 수용할 줄 아는 수많은 에픽테투스들을 만난 셈이었다.
마침내 나타날 시간이 되자 운전사는 미안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타났고, 떠날 시간이 되자 버스는 떠났다. 그리고 수천 년 전부터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라니켓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삶이 정확한 질서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데, 내 자신이 계획한 것보다 한 두 시간 늦었다고 해서 불평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넉넉한 마음을 지닌, 영혼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짓고 버스는 7천 8백 미터의 난다 데비 히말라야의 품안으로 성큼 달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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