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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929호
2012.11.30 (음10.17)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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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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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심판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시간이 없다. - 테레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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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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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살아있다
“용의 아홉 자식을 ‘구룡자’(九龍子)라 하는데 성격이 다 달랐다. 그중 툭하면 울음 터뜨리는 유약한 녀석이 셋째 아들인 ‘포뢰’(蒲牢)다. 이 녀석은 목청이 좋지만 겁이 많은데 특히 고래를 무서워해 고래가 나타나면 ‘고래고래’ 소리쳐 울었다. 종을 매다는 고리를 대개 ‘포뢰’ 형상으로 만드는 연유가 그래서이다. 종을 치는 통나무에 고래를 새기거나 그 형태로 깎은 게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유점사 청동범종’을 설명한 국립중앙박물관 해설사 말의 한 대목이다. 박물관을 둘러보는 재미는 전문가의 도움말 덕분에 더 쏠쏠했다.
박물관 한편에 펼쳐져 있는 병풍을 가만히 지켜보고 서 있노라니 붉은색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조선 정조 때 것이니 200년을 훌쩍 넘긴 것인데, 빛깔은 여전히 고왔다. 색이 여태 안 바랜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놀라운 답이 돌아왔다. 안료의 성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채색 방법이 달라서라는 것이다. 빛깔을 선명하게 하고 변색을 늦추는 ‘배채법’ 덕분이라는 것. ‘배채’(背彩)는 종이나 비단 뒷면에 물감을 칠해 앞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포뢰’, ‘배채’의 뜻을 제대로 새기려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배추의 방언(평안, 함경)’으로 ‘배채’가 나올 뿐 제 뜻에 걸맞은 풀이와 표제어는 나오지 않았다.(표준국어대사전) 박물관에 살아있는 말이 사전에는 없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방대한 어휘’를 자랑하는 국어사전을 들추고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낱말은 ‘포뢰’, ‘배채’뿐이 아니다. ‘우리는 물론 일본조차 쓰지 않는 한자말까지 실어 한자말 비중을 부풀렸고, 일제가 우리말을 한자말로 바꿔 쓴 낱말을 그대로 담았으며, 남북한 언어를 아우르려는 욕심에, 1992년에 나온 조선말 대사전을 그대로 베껴서 섞어 냈다’(위키백과)는 비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내년에 정식 공개될 ‘개방형 한국어지식대사전’이 이런 비판을 잠재울 수 있기 바란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우리말바루기] 서식지, 군락지, 군집, 자생지
동강할미꽃과 같은 귀한 야생 식물들이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채취해가는 바람에 멸종 위기에 몰려 있다고 한다. 이런 식물들을 원래 자라는 지역에서 더 이상 구경하지 못하고 식물원이나 식물도감에서만 봐야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희귀 야생 식물과 관련된 글을 검색하다 보니 “이 지역 주민들은 멸종을 막기 위해 봄이면 동강할미꽃 서식지를 지킨다”처럼 ‘서식’ ‘서식지’라는 단어를 쓴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서식(棲息)’은 ‘깃들여 산다’는 뜻으로 동물에게만 쓰는 말이므로 할미꽃과 같은 식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위 예문의 경우는 “주민들은 동강할미꽃의 멸종을 막기 위해 자생지를 지킨다”처럼 ‘자생’ ‘자생지’란 단어를 쓸 수 있다. ‘자생(自生)’은 저절로 나서 자란다는 뜻이다. “이 국립공원에는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에서는 ‘서식하고’를 ‘자라고’로 바꿔 주면 된다.
서식과는 반대로 ‘군락(群落)’은 식물에만 쓸 수 있는 단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무척추동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의 경우 동물 얘기이므로 ‘군락’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때는 ‘군집(群集)’이란 단어가 적절하다. 군집은 식물과 동물 양쪽에 쓸 수 있다. 순우리말 ‘무리’를 쓰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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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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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주(?廚)의 강 - 류성훈
더욱 굵은 의심을 가져야 한다 식은 밤을 거두는 실핏줄에 대해 시간을 쪼개며 천천히 무뎌지는 칼이 그늘로 돌아온다면 불순(不純)은 허황될수록 아름다운 것
이것은 아무도 숨겨주지 않는 죽은 강들의 밀담(密談) 모두가 진창을 가로지를 때, 빗속에 너의 살점을 두고 오곤 했지, 모두를 용서할 순 없어, 잘 봐 나의 조용한 일기를
꽃을 보았다 많은 눈들이 버릇없이 흐드러져, 쉽게 질 몸뚱이가 단단한 금을 넘는다 한 번도 둑에 이른 적 없는 발길 물길의 손을 잡고, 끝내 못 자란 손이 질긴 산도(産道)에 토사물처럼 노래를 부어 갖은 발짓으로 빈손으로, 김이 오르는 너의 문턱까지 안녕히 다녀왔기를 발은 손을 속이고 손은 손목 위를 속이면서, 물소리를 잘게 흉내 내면서 강보에 싸인 물이 잠들었던 척 한다 데운 울음으로, 더는 저주하지 않을 죽은 강들의 밀담
불을 올린다 너를 씻기고, 아직도 줄기에 빗소릴 숨긴 꽃을 저울에 달아보면서, 살이 나를 보는 소리 그 속에 네 흐드러진 손목을 잡으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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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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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1 -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4. 가정과 가족을 위한 수프
사랑한다는 말
만일 당신이 다음 순간에 죽기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으로 전화 한 통화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다면 왜 당신은 망설이고 있는가? - 스티븐 레바인
어느 날 밤, 그 동안 읽어 온 '좋은 부모가 되는 길'에 관한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나는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그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일 몇가지'를 내 자신이 그 동안 제대로 해 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부모는 자식에게 "난 널 사랑한다."는, 마술적인 힘을 가진 세 단어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식은 부모가 무조건적이고 분명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고 그 책은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덮고, 아들 방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가서 문을 노크했다. 그러나 들리는 거라곤 아들이 치는 드럼 소리뿐이었다. 아들이 방 안에 있는 게 분명했지만 노크를 해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한 대로 아들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 테이프를 들으면서 사정없이 드럼을 쳐대고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주의를 끌기 위해 슬쩍 몸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팀, 잠깐 시간 좀 내주겠니?"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물론이죠, 아빠. 언제든지요." 우리는 마주 앉아서 약간 어색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나는 그 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팀, 난 네가 드럼 치는 게 정말 좋다." 아들은 말했다. "아, 그래요? 고마워요, 아빠." 나는 문 쪽으로 걸어나가면서 말했다. "그럼 잘 자거라." 아래층으로 걸어내려가다 말고, 나는 내가 어떤 말인가를 하려고 아들 방에 올라갔던 것인데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올라가서 기회를 포착해 그 마술적인 세 단어를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나는 층계를 되올라가 문을 두드린 다음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시간 좀 낼 수 있니, 팀?" 아들이 말했다. "얘야, 내가 처음에 이 방에 올라왔을 때 난 너에게 어떤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그만 딴 얘기만 하고 말았다. 그것들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어. 팀, 넌 기억하니? 네가 처음으로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넌 나하고 많은 문제를 일으켰었지. 그때 난 네 베개 밑에다 세 개의 단어를 적은 종이 쪽지를 넣어 놓았었다. 그것이 우리의 갈등을 해결해 주리라고 희망하면서 말이다. 난 부모로서 내 할 일을 했던 것이고, 또한 아들에 대한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야." 잠시 더 얘기를 나눈 뒤, 마침내 나는 팀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가 널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말아 다오. 난 네가 그걸 알아 주길 바란다." 아들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그래요? 고마워요, 아빠. 아빠와 엄마가 그렇다는 말씀이시죠? 나는 말했다. "그래, 우리 둘 다. 다만 우리가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아들이 말했다. "고마워요. 말씀 안 하셔도 두 분이 절 사랑하신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나는 다시 문을 닫고 아들 방을 나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정말 믿을 수 없군. 두 번씩이나 올라갔는데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어. 내 입에선 계속 엉뚱한 말만 나왔단 말야.' 나는 다시 올라가서 팀이 내 마음을 정확히 알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들에게 분명히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아들이 현재 키가 180센티미터라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다시 올라가 노크를 했다. 그러자 아들이 안에서 소리쳤다. "잠깐만요. 말씀 안 하셔도 누군지 알아요. 아빠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나는 문을 열면서 물었다. "어떻게 나라는 걸 알았지?" 아들이 대답했다. "아빠의 아들이 된 다음부터 줄곧 아빠를 알아 왔잖아요." 내가 다시 말했다. "그럼 잠깐 시간 좀 낼 수 있겠니?" "그럼요. 아빠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드릴 수 있다는 걸 아빠도 아시잖아요. 어서 들어오세요. 제 생각에, 아빠는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을 아직도 못 하신 거죠?" 내가 물었다. "어떻게 그걸 알았지?" "기저귀 찬 뒤부터 줄곧 아빠를 알아 왔잖아요." 난 말했다. "팀, 내가 계속해서 마음 속에 묻어 둔 것이 있다. 난 네가 우리 가정에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가를 너한테 말해 주고 싶구나. 네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지금까지 무엇을 해 왔든, 또한 네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려 무슨 일을 한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넌 그냥 우리에게 한 사람의 인간이고 사랑스런 아들일 뿐이야. 난 널 사랑하며, 내가 널 사랑한다는 걸 네가 알아 주길 바란다. 이토록 중요한 사실을 왜 자꾸 마음 속에만 묻어 두는지 내 자신도 모르겠구나." 아들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저도 아빠가 절 사랑하신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아빠가 직접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기뻐요. 아빠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의도도 고맙구요. 그런 생각도 정말 고마워요." 내가 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아들이 나를 불렀다. "잠깐만요, 아빠. 잠시 시간 좀 있으세요?" 나는 멈칫거렸다. 이크! 저 애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난 얼른 말했다. "물론이지. 난 언제든지 시간을 낼 수 있잖니." 아이들은 어디서 이런 재치를 배운 걸까? 분명 부모들한테서 배운 건 아닐 테고, 아들은 내게 말했다. "아빠한테 한 가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그러니?" 아들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최근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세미나나 그런 비슷한 종류의 모임에 참석하신 적 있으세요?" 나는 당황했다. 이크! 역시 열여덟 살짜리 녀석답게 나보다 한 수 위군! 난 말했다. "아니야. 난 다만 어떤 책을 읽었다. 그 책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들의 느낌을 솔직하게 말해 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아들이 말했다. "그랬군요.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그럼 다음에 또 얘기해요. 아빠, 편안히 주무세요." 나는 그날 밤 팀에게서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웠다. 사랑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일이라고. 다시 말해, 상대방을 찾아가서 그것을 전하는 모험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진 베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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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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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계 교수의 철학 이야기 - 탈레스에서 라캉까지
제6부 현대 철학 이야기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한 마르크스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크게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구분된다. 변증법적 유물사관은 엥겔스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철학을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다. 우리들은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세 개념들을 혼동하기 쉽다. 사유재산 제도가 인정되지 않고 개인주의에 대립되는 개념이 사회주의이다. 공산주의나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 영국의 고전 경제학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요소로부터 영향 받아 자신의 고유한 사상을 형성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철학과 경제 및 정치를 종합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회 마르크스주의는 크게 유물론적 역사관과 변증법적 유물론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말할 수 있다. 변증법적 유물사관은 뒤에 가서 마르크스의 친구인 엥겔스에 의해서 명백하게 체계화되었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유물론적 역사관의 공식을 세 가지로 말한다. 가장 먼저 사회적 생산 활동에 있어서 인간은 물리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걸맞는 생산 단계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전체는 사회의 참다운 기초를 이루는 경제 토대를 형성한다. 이 토대는 근본적인 하부구조이고 이를 근거로 정신적인 것들, 즉 학문과 예술 및 종교 등의 상부구조가 성립한다. 다음으로 만일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이 일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하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생산 관계와 모순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사회 혁명의 시대가 다가온다. 경제기초가 무너지면서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붕괴된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정신이 변증법적으로 전개된다는 헤겔의 주장을 배격하고 물질적인 생산 관계의 변화에 따라서 사회가 역사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각 사회 발전 단계의 특징은 각 단계마다 생활 수단을 소유하는 방식에 따라서 파악되어야 한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입장을 사회구조론, 사회의 역사적 발전 이론, 사회의 역사적 인식 방법론으로 나누어 살필 수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생산 관계에서 규정한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서 사회 조직과의 관계를 뗄 수 없다. 인간과 사회 조직과의 관계는 생산 관계이다. 생산 관계의 총체는 역사 발전 단계에서 각 관계의 사회 경제적 구조를 형성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이 인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사회는 기본적인 하부구조와 부차적인 상부구조로 구분된다. 모든 생산 구조는 그 자체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부구조인 생산력 및 생산 관계의 경제 구조가 변하면 그에 따라 제약받고 변화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지금까지의 철학이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음에 비해 자신의 철학의 과제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변화에 따라서 사회가 역사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의 생산 관계가 무너지고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이 극도에 달하면 새로운 생산 관계가 형성되어 혁명이 일어난다고 한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에서 자본가의 착취가 극도에 달하면 노동자는 생산품이 자신의 노동에 의한 산물임을 의식하고 혁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혁명은 정신적 의식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 곧 물질적 생활의 모순으로부터 생긴다. 정신적 의식은 상부구조에 속하기 때문에 의식의 변혁은 물질적 삶의 모순으로부터 자동적, 법칙적으로 생긴다.
마르크스는 사회 발전에 관한 역사적 인식 방법을 생산 방식의 고찰에서 찾고 있다. 즉 역사는 생산력과 생산 관계에 의해서 일정한 사회의 형태를 가지고 변화하면서 발전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회는 역사의 필연적 발전 과정에 따라서 원시 공동사회로부터 노예제 사회로, 봉건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로, 마지막에는 사회주의 사회로 발전한다.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의 종착점은 사회주의 사회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회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공동 분배와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행복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칼 포퍼와 같은 현대의 사회철학자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일컬어 '역사법칙주의' 라고 칭하고, 그것은 폐쇄된 사회만을 가져온다고 비판한다.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사관 마르크스가 변증법적 운동법칙에 따르는 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논하고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면, 그의 친구인 엥겔스는 유물사관을 자연으로 확대해서 변증법적 유물론을 체계화하려고 했다. 엥겔스는 공장주의 아들로서 마르크스와 친교를 맺은 후 마르크스를 경제적으로 후원했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에 동조해 공동 저술 활동을 하기도 했고 마르크스가 죽은 후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확고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엥겔스가 주장한 '과학적 사회주의'는 후에 레닌과 스탈린에 의해서 '과학적 세계관'으로 일컬어졌다. 엥겔스가 체계화한 변증법적 유물론은 후에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핵심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엥겔스는 헤겔의 정신의 변증법을 철저하게 물질 내지 자연의 변증법으로 전환해, 정신에 대해서 물질이 근원적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발전의 동기는 사물 안에서 일어나는 모순에 있다고 보는 유물 변증법은 진보와 비약, 연속과 단절, 양적 변화와 함께 질적 변화가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사물 안에서 일어나는 모순은 사회에서 부르주아지(유산계급 또는 유산자)와 프롤레타리아트(무산계급 또는 무산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계급투쟁의 내면적 논리에 대응한다. 이 계급투쟁은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 수단의 개인적 소유 사이에 있는 모순으로부터 생긴다.
계급투쟁의 논리를 더 자세히 보면 다음과 같다. 낡은 질의 사회를 새로운 질의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전체 사회를 형성하는 긍정적이며 보수적인 힘과 부정적이며 혁명적인 힘의 투쟁이 필연적이다. 엥겔스에 의하면 모순이나 투쟁은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발전에 그리고 인간사회의 혁명적 발전에 있어서 가장 명확한 기본 법칙이다.
엥겔스는 헤겔의 예를 따라서 자연현상에도 변증법적 발전이 있고 이와 동일한 발전이 사회에서도 일어난다고 본다. 물이 일정 온도에 도달하면 수증기가 된다. 즉 사물의 양이 극한점에 달하면 사물은 질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에도 이와 같은 결정적인 비약이 있어서, 서로 다른 힘들이 충돌함으로써 발전의 역사가 전개된다. 결정적 순간이 지나면 투쟁은 법칙의 완성에 도달하는 사회가 형성된다. 엥겔스나 마르크스는 인간 해방을 위해서 사회의 개혁을 주장했으나. 엄밀한 인식론적 형이상학적 탐구가 부족했다. 1980년대 말을 기해 소련과 동유립의 공산주의가 붕괴되면서부터 마르크스주의는 점차로 철학적 비중을 잃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주장한 인간 해방이나 사회의 개선에 관한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들에 의해서 맥을 이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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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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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千里(일일천리) 一(한 일) 日(해 일) 千(일천 천) 里(마을 리)
후한서(後漢書) 왕윤(王允)전의 이야기다. 왕윤은 동한(東漢)때의 인물로서, 헌제(獻帝) 재위 시기에 사도(司徒)를 지냈다. 그는 젊은 시절, 열심히 공부하고 무예를 연마하였다. 그와 동향(同鄕)인 곽림종(郭林宗)은 왕윤의 총명함과 학문하는 태도를 보고, 그를 칭찬하여 왕윤의 학문은 매우 빨리 발전하고 있는데(王生一日千里), 장차 제왕(帝王)을 보좌하여 대사(大事)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王佐才也). 라고 하였다. 왕윤이 사도로 재임하던 때에, 동탁(董卓)은 전권을 잡고 방탕하고 도리를 모르는 포악한 생활을 하였다. 왕윤은 겉으로는 동탁에게 순종하였지만, 몰래 여포(呂布)를 부추겨 미인계로써 동탁을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동탁의 부하인 이각(李 )과 곽사(郭 )에게 살해되고 말았으니, 그의 나이 56세. 一日千里 라는 말은 본시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에 나온다. 기록에 의하면, 서주(西周)시대 주나라 목왕(穆王)의 휘하에 조보(造父)라는 마부가 있었는데, 그가 모는 말은 하루에 천리길을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一日千里 란 본시 말이 매우 빠르게 달리는 것을 뜻하였으나, 지금은 진보나 발전의 속도가 매우 빠름 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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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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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자서전. 시민의 불복종 - 간디 / 함석헌 역
제1편
20. 종교인들과의 교제
영국에서 이태째 되던 해 연말 무렵, 나는 두 신령학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둘은 서로 형제지간인데 다 독신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기타 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에드윈 아널드 경의 번역본 천상의 노래 를 읽고 있었는데, 나더러 그 원본을 함께 읽자고 청했다. 그런데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그 거룩한 시를 산스크리트로도 구자라트어로도 읽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득이 그들을 보고 기타 를 읽은 일이 없다는 말을 하고, 그러나 함께 읽은 것은 참 좋다고 하면서, 그리고 내 산스크리트 지식은 비록 형편이 없기는 하지만 번역에 어디가 잘못됐는지 지적할 정도로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들과 같이 기타 를 읽기 시작했다. 제2장에 있는 구절.
감각의 대상을 골똘히 생각하면 집착이 생긴다. 집착에서 욕망이 일어나고 욕망은 불타올라 맹렬한 정욕이 되고 정욕은 무분별을 낳는다. 그러면 기억이 온통 틀려져 고상한 목적이 사라지고 마음은 말라 버려 목적과 마음과 사람이 모두 망한다.
라는 말이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금도 그 소리가 귀에 울린다. 그 책은 무상의 값을 가지는 것으로 내게 느껴진다. 그 인상은 내 속에서 갈수록 더 자라, 오늘날 나는 그 책을 진리에 대한 지식을 담은 가장 뛰어난 책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내 마음이 음울에 빠졌을 때 그것은 말로 할 수 없는 도움을 내게 주었다. 나는 그 영어 번역본들을 거의 다 읽었는데 에드윈 아널드 경의 것이 가장 좋았다. 그는 원문에 충실했다. 그러면서도 읽기에 번역본 같지 않았다. 내가 그 친구들과 함께 기타를 읽기는 했지만 그때는 나는 그것을 공부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나의 매일 읽는 책이 된 것은 몇 해 후의 일이다.
그 형제들은 또 내게 에드윈 아널드 경의 아시아의 빛 을 권했다. 나는 그때까지 그를 단지 천상의 노래 의 저자로만 알았었는데, 이 책을 바가바드 기타 보다도 더 큰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 책을 한번 손에 드니 놓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한번은 나를 블라바트스키 집회소에 데리고 가서 블라바트스키 부인과 비전트 부인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두 부인 중에서 비전트 부인은 그즈음 신령학회에 바로 가입한 때였으므로 나는 그 부인의 개종에 관한 토론에 큰 흥미를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친구들은 나더러 그 회에 들어오라고 권했지만 나는 공손한 말로 이렇게 거절했다. 나는 내 종교에 관해서도 천박한 지식밖에 못가지면서 어떤 종교단체에 속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나는 그 형제들의 권유에 따라 블라바트스키 부인의 신령학 입문 을 읽었던 걸 기억한다. 그 책은 나를 자극하여 힌두교에 관한 책을 읽자는 욕망을 일으켰고, 힌두교는 미신투성이라던 선교사들로 인해 생겼던 모든 잘못된 생각을 다 씻어 버려 주었다.
그 무렵 나는 맨체스터에서 온 선량한 그리스도교인을 어떤 채식 기숙사에서 만났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내게 말해 주었다. 내가 그에게 라지코트에서의 지나간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매우 마음 아파하면서 말했다. 나는 채식주의자입니다. 술도 마시지 않습니다. 물론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고기도 먹고 술도 마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렇게 하란 말은 없습니다. 성서를 읽어 보십시오. 나는 그의 권면을 받아들였다. 그는 성서 한권을 내게 가져왔다. 희미하게 기억하지만 그는 성서를 팔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서 지도와 색인과 그밖의 참고자료가 붙어 있는 성서를 한 권 샀다. 나는 읽기 시작했으나 구약을 다 읽지는 못했다. 창세기 를 읽고 그 다음을 읽으려고 하니 읽으려면 꼭 잠이 왔다. 그러나 읽었다는 소리를 할 수 있기 위해 억지로 읽었으나 어렵고 흥미도 없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민수기 는 싫었다. 그러나 민수기 는 매우 다른 인상을 주었고 특히 산상설교 는 사뭇 내 가슴을 찔렀다. 나는 그것을 기타 에 견주어 보았다. 이런 구절들, 즉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악한 것을 대적하지 말라. 누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그에게 또 다른 편을 돌이켜 향하라. 또 누가 네 겉옷을 취하거든 그에게 속옷까지 가져가게 하라 하는 말이 나를 한없이 기쁘게 하여 샤말바트의 한 잔 물을 위해 잘차린 밥 한 상을 주라 하는 말을 더 한층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어린 마음은 기타 의 가르침과, 아시아의 빛과 산상설교를 하나로 통일해 보려 했다. 내버림이야말로 종교의 최고의 경지란 생각이 내 마음속에 강하게 울려왔다. 이런 글들을 읽음으로써 다른 종교의 위대한 교사들의 생애를 연구하자는 생각이 강렬히 일어났다. 어떤 친구가 칼라일의 영웅과 영웅숭배 를 읽으라고 권했다. 예언자로서의 영웅이라는 장을 읽고 나는 예언자의 위대함과 그 용기와 그 숭엄한 생애를 알았다.
시험 공부로 다른 것을 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이때에는 이 이상은 종교에 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종교 서적을 더 많이 읽고 주요한 종교를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고 마음속에 적어 두었다. 그리고 무신론이 어떤 것인가를 좀 알지 않고 어떻게 그냥 있을 수 있을까? 모든 인도 사람이 브라드러프의 이름과 그의 이른바 무신론이란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거기에 대한 책을 더러 읽었는데, 그 이름을 잊었다. 그것은 내게 별로 영향을 준 것은 없었다. 나는 무신론의 사막은 이미 건넜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있었던 비전트 부인은 이미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돌아온 때였으므로 그 사실은 나의 무신론에 대한 반대를 더욱 굳혀 주었다. 그녀의 저서 나는 어떻게 신령주의자가 되었나(How I became a Theosophist) 를 이미 읽었었다. 브라드러프가 죽은 것은 이때쯤이었다. 그는 워킹 공동묘지에 묻혔다. 나도 그 장례식에 참석했었는데 런던에 와 있던 인도인은 다 왔다고 내게는 생각됐다. 목사도 몇사람 그에게 최후의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었다. 장례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기차를 타려고 정거장에서 기다렸는데 군중 속에 있던 무신론의 기수 한 사람이 목사 한 사람에게 질문을 했다.
여보시오, 당신은 하느님의 존재를 믿소? 네, 믿습니다. 그 착한 사람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도 지구의 둘레가 2만8천 마일이란 것을 인정하겠지요, 그렇지 않소? 그 무신론자는 자만하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 그럼 당신의 하느님은 얼마나 크고 또 어디 계실까요? 말해 보시오. 그분이 당신과 내 가슴속에 계시다는 것을 좀 아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여보, 여보, 나를 어린애로 취급하지 마시오. 그 기수는 의기양양해서 우리를 보며 말했다. 목사는 겸손하게 침묵을 지켰다. 이 대화를 듣고 난 나는 무신론이 더욱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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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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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 - 홍사석
제 6장 제우스의 아들과 딸
4.아르테미스
아르테미스(Artemis,Diana)는 그리스 세계에서 널리 모시던 여신이며 유사 전 미노아에서 숭배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아르테미스라는 말이 어원상 도살자라는 뜻이고 선문자 B서판에 노예의 주인 이름으로 나와 있다. 때로 헤카테 여신이나 셀레네 여신과 혼동되기도 한다. 짐승이 많은 미개간 들판이나 산림, 고원지대에서 활동하며, 항상 젊음을 유지하는 처녀상과 야생미를 풍기는 사냥의 수호신이지만 후에는 우아한 초상화로 그려져 부녀자의 수호신이 되었다. 초기에는 연약하고 엉뚱한 역할을 하여 여신의 위치를 확보하지 못했으나 제우스의 딸, 아폴론의 자매, 수렵과 야생의 공주, 산욕기 여자에게 갑자기 동통 없는 죽음을 주는 여신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복수심이 강한 여신이기도 하여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 고통을 당한 예가 많이 나온다. 먼저 어머니인 레토를 모욕한 니오베에 복수를 하기 위해 그녀는 아폴론과 함께 니오베의 아이들을 죽였는데 아폴론이 키타이론 산에서 사냥하는 아들 여섯을 죽이고 아르테미스는 집에 있던 딸 여섯을 죽였다. 레토를 괴롭힌 거인족 티튜오스도 죽였다고 한다. 또한 트로이 원정에 나선 아가멤논이 아울리스에서 해풍을 기다리는 동안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사슴사냥을 하다 말 한 마디 잘못하여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샀다. 즉 그는 "아르테미스 여신일지라도 사슴을 이처럼 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큰소리를 쳐 여신을 멸시한 것이다. 이에 아르테미스는 출범에 꼭 필요한 바람을 잠재워 원정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아가멤논이 점쟁이 티레시아스에 문의하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왕의 미혼 공주인 이피게네이아를 여신에게 희생 공양하는 길밖에 없다고 대답하였다. 결국 그는 비통 속에서 자신의 딸을 바쳤고 아르테미스는 최후의 순간에 생희생을 암사슴과 바꾸어 공주를 데리고 멀리 타우리스(현 크리미아)로 가서 자신의 신앙을 받드는 여사제로 삼았다. 한편 아르테미스 숭배는 아시아의 태고 여신과 통합되어 출산의 여신 또는 남자와 동물에게 다산과 출생한 소산의 건강을 가져오는 여신으로 여겨졌다. 신화상 아폴론과 쌍둥이로 태어나지만 그녀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태어나자마자 곧 동생의 출산을 도왔다하여 산용의 여신(Locheia)이라는 호칭이 있고 에링레이뉴이아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아르테미스의 신화는 독자적인 것이 적고 아폴론과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녀와 관련된 신화로 유명한 것으로는 여신에게 매료당한 오리온이라는 거인족 미남 사냥인의 이야기가 있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을 덮치려 한 오리온을 전갈을 보내 찔려 죽게 만들고, 그 공으로 전갈은 별자리인 전갈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설에 따르면 오리온은 지상에서 플레이아데스 모녀들을 5년간 뒤쫓아 다녀 하늘의 별자리에서도 계속 뒤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에서 큰 동물의 공양은 매우 드물고 흔히 양을 희생물로 바친다. 매년 파트라이에서 열리는 아르테미스 라프리아 축제에는 야생동물을 통째로 구워(홀로코스트)공양을 하였다. 이 때 여사제는 아르테미스로 분장하고 수사슴이 끄는 이륜마차를 타고 축제를 집행하였다. 포카이아에서는 사람을 희생공양하였다고도 하나 확실치 않다. 타우리스에서는 야만적인 숭배 의식을 수용하여 이반인을 희생물로 바쳤다고 하며, 아르테미스를 모시던 이피게네이아와 그 남동생 오레스테스가 아르테미스를 여신상을 스파르타 할라이로 가져와 브라우론에 모셔 놓았다고 한다. 한편 아르테미스 여신은 그 성격으로 보아 아마존족의 수호신이 되기도 하였다.
아르테미스는 곰과 관계가 깊다. 칼리스토는 여신의 시녀인데 제우스와 관계한 것이 발각되어 여신의 대노를 사고 헤라는 질투로 그녀를 암곰으로 화신시켜 버렸다. 아티카의 브라우론에서 열리는 여신축제에는 어린 처녀를 암컷곰으로 분장하여 춤을 추게 하였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세계에서 빈번히 비슷한 여신과 동일시되었다. 특히 에베소 항구에 찬란한 사원을 가진 위대한 대지 여신과도 동일시되어 다수의 유방을 가진 다산의 아르테미스상이 세워졌다.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숭배는 포카이아인에 의해 마실리아이로 전파되었고 여기에서 로마로 들어가 아벤티네에 있는 이아나 사원에 에베소 형식의 조각상이 세워졌다. 초기 아르테미스 조각상은 긴 의상이나 동물 털가죽을 두르고 후기에는 튜닉을 걸치고 있다. 단독 혹은 아폴론이나 레토와 같이 있는 모습이 조각되고 거인족의 격전과 비밀회의 조각상에는 여러 신과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크레타의 여신 브리토마르티스(매력있는 낭자)도 아르테미스와 동일시하는데 큐도니아(현 카니아)에 신전이 있다. 브리토마르티스는 그녀를 사랑하는 미노스 왕에게 쫓겨 9개월간이나 도망다니던 끝에 발각되자 해안절벽으로 피했다가 마지막으로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어부의 그물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이에 연유하여 그물이라는 뜻을 가진 별칭 딕튠나로도 부른다) 아이기나로 떠나 다시 아르테미스 숲으로 도피하였다. 그 곳에서 그녀는 아파이아(은둔한 여신)로 숭상되고 신전도 세워졌다. 현재는 폐허화되고 다만 신전 지붕 아래 삼각벽 박공의 부조가 남아 있으며 아르테미스와 동일신(성)으로 되어 있다.
[ 아르테미스와 칼리스토 : 티치아노(Vecelli Tiziano, 1488/90~1576), 1568년 작, 캔버스, 183x200cm,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
칼리스토 아티카의 브라우론에서 아르테미스 의식에 두 처녀를 암곰으로 분장케 하였는데 여기에 연유하여 칼리스토(Callisto) 신화가 생겼다고 한다. 칼리스토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신화에서는 아르테미스의 시녀로 되어 있다.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아들 아르카스를 낳았으나 순결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여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샀으며 헤라의 질투로 말미암아 암곰으로 화신되었다. 아들 아르카스는 커서 사냥을 즐겼으며 아르카디아인의 선조가 되었다고 한다. 하루는 아르카스가 암곰과 마주쳐 곰을 잡으려는 순간 제우스가 나타나 화신한 어미를 죽이지 못하도록 둘을 별자리로 변화시켜 칼리스트는 큰곰자리, 아르카스는 작은곰자리가 되었다. 헤라는 칼리스토에게 영예를 주었다고 화가 나서 오케아노스에게 부탁하여 큰곰자리가 바다 저쪽으로 지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칼리토스는 잠시도 쉴새없이 영원히 북극성 주위를 돌게 되었다. 더 오랜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아르테미스를 유혹하자 아르테미스 자신이 곰으로 화신하고 얼굴을 흙으로 더럽혀 유혹으로부터 벗어났으나 원래 그녀가 다스리던 별의 영주권을 제우스에 빼앗겼다고도 한다. 천문학에서는 목성의 제4위성을 칼리스토라 부른다.
니오베 니오베(Niobe)는 탄탈로스의 딸이며 펠롭스의 여동생이다. 왕 암피온과 결혼하여 7남 7녀를 두었는데 어느 날 두 아이밖에 없는 레토를 멸시하며 자식복이 많은 것을 자랑하였다가 후에 레토의 쌍둥이 자식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아들딸 둘만 제외하고 모두 사살당하였다. 비통에 빠진 니오베는 시퓰로스산에 있는 아버지 탄탈로스 곁으로 피신한 후에는 계속 슬퍼하였으므로 제우스 그녀를 바위로 화신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하며 현재도 이 바위에서는 샘물이 흐르고 있다. 시퓰로스 산에 가서 니오베상을 본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가까이에는 바위절벽일 뿐 전혀 여신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멀리 떨어져서 보면 눈물에 젖어 비탄하는 여인상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니오베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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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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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 류시화
쉬
인도 대륙을 내 집처럼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병이 나서 호텔방에 쓰러졌다. 이국땅에서 병이 나면 말할 수 없이 두렵고, 이롭고, 아프다. 몸도 아프고 영혼도 아프다. 인도를 장기간 여행하다 보면 온갖 병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물이다. 오염된 물은 먼저 손톱 주위나 항문에 부스럼이 생기게 하고, 양치질을 한 다음에도 생수로 헹구지 않으면 수돗물 속의 병균이 잇몸을 붓게 만든다. 게다가 인도인들이 아무데서나 수돗물을 들이켜는 걸 보고 흉내를 냈다간 당장 이질이나 설사병에 걸리고 만다. 만일 인도 행을 다녀온 어떤 사람이 자기는 아무 물이나 마셨어도 괜찮았다고 말한다면 그는 순전히 허풍을 떨고있는 것이다. 게다가 인도는 눈에 보이는 풍경마다 가슴이 아려서 도무지 여행할 수가 없는 나라다. 어떤 모임에서 만난 한 여성은 인도에 처음 갔다가 여덟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가면서 내내 울었다고 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거지와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도처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한없이 광활한 들판들도 눈물이 번지게 만든다. 만일 인도 여행을 다녀온 어떤 사람이 자기는 인도에서 한 달이나 있었지만 운 적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를 경계하라. 그는 이미 가슴을 어딘가에 팔아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가이드북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눈물병도 인도에서 걸리는 심각한 풍토병 중 하나다. 물 때문에, 형편없는 음식 때문에, 그리고 가슴팍이 아파오는 병 때문에 나는 고열이 나고 신음까지 하기 시작했다. 낯선 곳이라 의사를 찾아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에서 기차를 타고 뉴델리로 왔는데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온몸에 오한이 나고 호흡곤란증이 시작된 것이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자꾸만 까부라졌다. 겁이 더럭 났다. 이러다가 인도땅에서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묵은 호텔은 뉴델 철도역 근처의 파할간지 구역에 있었다. 하룻밤 숙박료가 2천 원 정도로, 아래층에 식당이 딸려 있었지만 밥을 먹으러 갈 기운조차 없었다. 나는 완전히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졌다. 방안에 전화도 없어서 한국의 가족이나 출판사에 연락을 취할 수도 없었다. "이렇게 난 죽는구나. 그토록 인도에 오려고 난리를 치더니 드디어 인도땅에서 불귀의 객이 되는구나." 나는 그렇게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내가 내 이마를 짚어봐도 열이 40 도는 넘는 것 같았다. 입술이 자꾸만 껍질이 벗겨졌다. 물이 마시고 싶어도 생수가 없으니 참아야 했다. 나는 담요를 뒤집어쓴 채로 열에 들떠 온몸을 떨었다.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났다. 어스름푸레한 형체가 침대맡으로 다가오더니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이 꺼칠했지만 느낌은 부드러웠다. 그러더니 이윽고 그 형체는 욕실로 가서 수건에다 물을 축여다가 내 이마에 얹었다. 그리고는 내 귀에다 뭐라고 속삭이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후 그 천사는 미네랄 워터 한 병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베개로 내 머리를 받쳐 물을 마시기 편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천장에 설치된 팬을 돌려 방안에 시원한 바람이 돌게 했다. 침착하고 조용한 행동으로 그는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약간 정신이 들긴 했지만 아직도 온몸을 휘두르는 정체 모를 병 때문에 끙끙 신음소리를 냈다. 그때 그 천사가 다시 내 귓가에 대고 뭐라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처음에 나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내 귀에 대고 물었다. "두 유 원트 쉬?" 쉬 하고 싶은 가? 그런 뜻이었다. 어머니의 속삭임과도 같은 그 정겨운 '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에 있던 두려움과 고독감이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수없이 들어서 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그 한마디가, 낯선 곳에 병들어 쓰러진 내 영혼을 부드럽게 위로해주었다. 물론 나는 그 천사의 부축을 받아가며 오랫동안 '쉬'를 했다. 그것은 어떤 약보다 효과 있는 치료제였다. 그때 나를 치료해준 천사는 그 호텔에서 잡일을 하는 인도 소년 하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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