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편지】: 제874호
2012.6.15 (음 4.26) / 발송인: |
|
(poemserver@paran.com) |
※ 한자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
|
|
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
|
힘과 인내를 알고자 한다면 나무를 벗으로 삼으라. - 할 보런드(美 자연주의자)
|
|
|
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
|
에너지 음료
영어의 치킨(chicken)은 닭고기이지만 우리나라의 치킨은 닭튀김이다. ‘영양센터’는 전기구이 통닭을 내놓고 ‘치킨집’에서는 닭튀김, 그러니까 ‘프라이드치킨’을 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닭튀김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쯤이다. 미국 켄터키 주에서 닭튀김을 팔던 커널 샌더스의 조리법을 바탕으로 만든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이 한국에 들어온 때이다. 지금 이 가게의 이름은 ‘케이에프시’(KFC)이다. ‘튀김 음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얘기가 나돌던 1990년대에 튀김 음식의 인상을 조금이라도 덜 주기 위해 ‘프라이드’를 간판에서 지우려 한 결과이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 등장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가족 손님을 위해 다양하고 싼 요리를 갖춘 식당’임을 내세우기 위해 ‘패밀리’를 앞세워 홍보했던 이 식당의 주 고객층은 가족이 아닌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으로 바뀌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아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패밀리’를 앞세우면 자녀 손잡고 오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고, ‘프라이드’를 간판에서 지우면 튀김의 부정적 인식을 덜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게 업자들이다.
‘기능성 음료’라는 게 있다. 마시면 ‘살이 빠지고’, ‘변비 해소에 도움이 되며’, ‘에너지를 공급해준다’고 선전하는 음료이다. 기능성 음료 중에 ‘에너지 음료’가 가장 많이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에너지 음료’의 칼로리는 110킬로칼로리 안팎으로 일반 청량음료와 비슷한 수준이니 ‘에너지 공급’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에너지 음료’가 여느 것과 다른 점은 카페인이 들어 있다는 것이니 ‘각성 음료’라 하는 게 성질에 더 맞는다. ‘각성 음료’라 하면 ‘에너지’라는 말에 넘어가 ‘카페인 흡입’하는 청소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우리말바루기] 주어와 술어를 가까이
"그런 만큼 ①국민들은 앞으로 제기될 각종 현안에 대해 ②헌재가 모든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③결정을 하는지를 늘 ④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⑤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 일간지에 실린 문장이다. 한 문장인데 호흡이 꽤 길고, 주어와 술어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며, 문장 안에 또 다른 문장을 안고 있어 그 의미가 명확하게 빨리 와 닿지 않는다. 더구나 이 문장엔 주어가 하나 빠져 있다. 문장의 얼개를 자세히 살펴보자. 주어 ②(헌재가)의 서술어는 ③(결정을 하는지)이 되고, 이 문장(②+③)을 목적어로 하는 주어 ①(국민들은)의 서술어는 ④(지켜보고 있다)가 된다. 그렇다면 술어 ⑤(잊지 말아야)의 주어는 무엇이며 어디 있는가. 없다. ⑤의 주어는 문맥으로 보아 '헌재'가 되어야 하므로 ⑤ 앞에 주어 '헌재는'을 넣어야 한다.
이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쓰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그런 만큼 앞으로 제기될 각종 현안에 대해 헌재가 모든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결정을 하는지를 국민들이 늘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헌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장이 길어질 경우 주어와 술어를 가까이 두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파악하기가 수월하다. 또는 예문과 같은 복문(複文)일 경우 이해하기 쉬운 몇 개의 단문(單文)으로 나누는 것이 좋다.
[우리말바루기] 차후, 추후
무더위가 시작된 8월의 어느 날, 민규 집에선 가족회의가 한창이다. 안건은 에어컨 교체 문제. 찬바람이 나오지 않는다며 툴툴대는 민규와 한 달 뒤면 가을인데 참아 보라는 어머니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일단 수리해 보고 '추후' 이 문제를 재논의하자는 안을 냈다. 하지만 민규는 '차후' 열심히 공부할 테니 에어컨을 바꿔 달라고 떼를 썼다.
민규 가족은 회의 중 '차후'와 '추후'라는 표현을 썼다. 두 단어는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차후(此後)는 '지금부터 이후'를 가리키는 말로 지금이 포함되고, 추후(追後)는 '어떤 일이 지나간 얼마 뒤'를 일컫는 말로 지금이 포함되지 않는다. 막연하게 '나중' '다음'을 뜻하는 '추후'와 달리 '차후'는 기준 시점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민규가 언급한 '차후'는 자신이 말한 시간 이후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의미가 되고, 아버지가 말한 '추후'는 에어컨 수리 이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교체 문제를 다시 의논해 보자는 뜻이 된다.
이처럼 '추후'는 시점이 확실하게 정해진 게 아니므로 "장소는 추후에 다시 정하기로 했다" "세부 사항은 추후 결정토록 하자" "날짜는 추후에 알려 주겠다"와 같이 과거.현재.미래 시제의 어느 문장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 '차후'는 "차후에는 그곳에 가면 안 된다" "차후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겠다"처럼 현재부터 앞으로의 의미가 있을 때만 쓰인다.
|
|
|
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
|
아내가 옳다 - 이동재
아내가 옳다! 젊어선 세상의 정의가 공자나 맹자 예수나 부처의 말씀에 있는 줄 알았다 조금 더 젊었을 땐 마르크스나 프로이트에게 있는 줄 알았고 한창 땐 레닌이나 모택동 체 게바라 루카치 마르쿠제 아드르노 벤야민 라깡이나 지젝 자유주의이니 자본주의, 사회주의니 공산주의 구조주의나 후기구조주의 리얼리즘 혹은 모더니즘 하다못해 신자유주의가 옳은 줄 알았다 독수공방, 아내가 외롭게 지새우는 긴 밤 그래도 세상의 정의는 바깥에 있는 줄 알았다 거리에서 술집에서 책상 앞에서 헤매던 시절 세상의 옳고 그름이 그 어디쯤에 있는 줄 알았다 마지못해 내는 학회지나 창비나 문지 같은 잡지에 숭고한 뭔가가 있다거나 요사스런 사설私設邪說로 가득찬 신문지 쪼가리 속에 찾아야 할 진실이 있다고 진정으로 믿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세상의 진리가 그 어디쯤에 서성이고 있을 줄 알았다 허나 찍히고 짤리고 미끄러지고 터지고 뭉개져 돌아와 식탁 앞에 앉은 어느 저녁 아내는 옳았다 아내가 옳다, 아내가 옳다 아내가 항상 옳다 라고 수없이 되뇌어 보는 중년의 어떤 나, 아내가 역시 옳다, 아내는 여전히 옳다, 무조건 옳다!
|
|
문학나눔 → 현대시조 |
|
|
갈대밭에 서다 - 이인자
목 놓아 하늘 향해 간절히 흔드는 손
마음의 징검다리 흔들리고 부딪쳐도
노을빛 그리움이야 지울 수가 있을까?
갈바람 여린 마음 새겨놓은 갈피마다
흰 날개 높이 세워 강물 따라 날아갈 때
야위는 붉은 그림자 여울목에 젖는다.
|
|
문학자료 → 수필 |
|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시애틀 추장 外
마음이 담겨 있는 길 - 돈 후앙( 야키 족)
"오직 당신 자신에게만 이 한가지를 물어 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
어떠한 길도 다만 하나의 길에 불과한 것이며, 당신의 마음이 원치 않는다면 그 길을 버리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나 다른 이에게나 전혀 무례한 일이 아니다. 모든 길을 가까이, 세밀하게 관찰하라. 필요하다면 몇 번이고 시도하라. 그런 다음 오직 당신 자신에게만 이 한 가지를 물어 보라.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느냐?' 그렇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길은 소용없는 길이다. 한쪽 길은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며, 그 길을 계속 걸어가면 당신은 그 길과 하나가 될 것이다. 다른 쪽 길은 당신으로 하여금 인생을 저주하게 만들 것이다. 한쪽은 당신을 강하게 해주고, 다른 쪽은 당신을 힘없는 인간으로 만든다.
지자가 되는 길은 전사의 길과 같다. 자기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면 서툴고 나약해져서 결국 실패하고 만다. 지자가 되기 위해선 가볍고 유동적이어야 한다. 진정한 지자는 '보는 것'과 '바라보는 것'의 차이를 안다.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지각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평범한 방식을 뜻하는 반면, 보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을 지각한다는 뜻이다. 우리 인간은 이 세계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으며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본다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보는 것'을 편애한다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나는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지. 지자는 보는 것을 통해서만 앎에 이르고 있기 때문일세." "어떤 것을 본다는 겁니까?" "모든 것." "하지만 나는 지자가 아닌데도 역시 모든 것을 보는 걸요." "아니. 자네는 보는 게 아닐세." "나는 본다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자네는 보지 못하네." "돈 후앙,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요?" "자네는 단지 사물의 표면만을 바라볼 뿐이지." "그렇다면 지자들은 모두 자기가 바라보는 것을 실제로 그 본질까지 꿰뚫어본다는 뜻입니까?"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닐세. 지자는 자기가 편애하는 것이 있다고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 다만 내가 편애하는 것은 '보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앎에 이른다는 것이라네.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것을 행하지."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죠?" "내 친구 사카테카의 예를 들어볼까. 그는 지자인데, 그가 편애하는 것은 춤추는 것이지. 그는 춤을 통해 앎에 이른다네." "그렇지만 춤추는 것이 어떻게 사카테카가 무엇을 알게 되는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세. 그가 춤추는 것은 자네가 춤추는 것과 같다기보다는 내가 '보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는 당신이 보는 것처럼 보기도 합니까?" "그렇지. 그는 내가 '보는 것'처럼 춤을 추지." "사카테카는 어떻게 춤을 춥니까?" "그것을 설명하기 어렵네. 앎에 이르기 위해 춤을 출 때면 그는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추지. 내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자네가 지자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춤추는 것이나 보는 것에 대해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야."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든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우리 눈이 그것을 보게끔 훈련시킨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미리 가지고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진정으로 보는 법을 배우게 되면, 그는 이제 더 이상 자기가 바라보는 것에 대해 생각을 앞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생각을 버리고 바라볼 때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웃기 위해서는 사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대상을 바라볼 때만 이 세상의 우스운 것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 눈이 진정으로 보게 된다면, 모든 것이 다 똑같기 때문에 우스운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돈 후앙,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겁니까?" "그것을 알려면 보는 법을 배워야 하지. 내가 말해 줄 수는 없는 걸세."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입니까?" "아닐세. 그저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 "왜지요?" "설명해도 자네는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한번 설명해 보십시오. 어쩌면 내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니야. 자네는 그것을 스스로 알아내야 하네. 자네가 일단 앎에 이르게 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지." "그렇다면 당신은 더 이상 세상의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진 않겠군요." "나는 양쪽으로 다 볼 수 있지. 세상을 그저 바라보기를 원할때면 나도 자네가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본다네. 그러나 내가 어떤 것을 진정으로 보겠다고 원하면 나는 내가 아는 방법으로 그것을 바라보며, 다른 식으로 그것을 지각하게 되는 것이지." "당신이 바라볼 때마다 사물을 항상 똑같이 보입니까?"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네. 우리가 바라보는 방식이 변할 뿐이지...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마다 사실은 그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네. 우리는 사물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지. 자네의 눈은 단지 겉모양을 바라보는 법만 배웠을 뿐이야."
인간으로서 우리의 숙명은 배우는 것이며, 지식(지혜)을 배우려는 자세는 마치 전투에 나가는 전사와 같아야 한다. 세상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지자의 삶에는 공허함이란 것이 없다. 모든 것은 넘칠 정도로 가득 차 있으며, 모든 것은 동등하다. 나에게는 승리도 패배도 그리고 공허함도 없다. 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는 아이가 아니라 전사가 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포기하거나 불만을 늘어놓거나 머뭇거려선 안 되며, 그때가 되면 이 세상에 중요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욕심을 무로 낮추는 법을 배움으로써 가능하다. 자신이 희생자라고 생각하는 한 그의 삶은 지옥과 같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무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을 배운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얻게 될 가장 작은 것도 진정할 선물이 될 것이다. 가난하다거나 부족하다는 것은 단지 생각일 뿐이다. 그리고 미움이나 배고픔, 또는 고통받는 것 역시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아는 전부다. 나는 그 기술을 터득했다. 그 힘이야말로 우리가 세속적인 물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 힘이 없다면 우리는 쓰레기일 뿐이다. 바람에 날리는 먼지에 불과한 것이다.
백인들이 와서 나의 아버지를 죽였을 때 나는 그들을 파멸시키고야 말겠다고 맹세했었다. 나는 수년 동안 그 약속을 간직했다. 그러나 이제 그 약속은 바뀌었다. 나는 누구를 파멸시키는 데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평생을 두고 지나가는 수많은 과정들은 모두가 똑같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결국 가서 만나게 되며, 오직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인생이 그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도 짧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슬프다고 느끼는 것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내가 슬프게 느끼는 것은 그들이 인디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인디언처럼 살았고 인디언처럼 죽었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했다.
'보는 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해준다. 세상은 정말로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는 불가해하고 물리칠 수 없는 세력들에 둘러싸인 무력한 존재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무지하기 때문에 그러한 세력들이 설명될 수 있고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면서도 인간의 행동이 조만간에 그것들을 설명해 주고 변화시켜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우리는 끝없이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실, 이 세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우리 자신과의 대화이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자신에게 말하기를 멈춘다면 세상은 비로소 그것이 지녀야 하는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스스로에게 이 세계에 대해 말하는 것을 멈추려고 노력한다. 지자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멈추자마자 세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상이 이런저런 모습인 것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세상의 모습을 그렇게 말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세상이 이렇고 저렇다고 말하는 것을 멈춘다면, 세상은 더 이상 이런저런 모습이 아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서서히 세상과 연결된 자신의 끈을 풀기 시작해야 한다.
세상은 불가해하다. 우리는 세상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비밀들을 절대 파헤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대해야만 한다. 완전한 신비 그대로!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세상은 결코 신비한 것이 아니며, 그들은 나이가 들게 되면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확신하게 된다. 자기가 세상을 소모해 버린 게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하는 일을 소모해 버렸을 뿐인데도! 그렇지만 어리석기 때문에 그는 세상이 자기에게 더 이상 신비스러운 것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지자는 이런 어리석음을 알고 있으며, 사람들이 행사는 일이 어떤 상황 아래서도 이 세상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지자는 이 세상을 끝이 없는 신비로, 그리고 사람들이 행하는 일을 끝이 없는 어리석음으로 여기는 것이다.
|
|
|
문학자료 → 수필 |
|
|
생활의 발견 2 - 임어당
제13장 사물을 사고하는 방법
1. 인간미 있는 사고방법이어야 한다.
사고란 하나의 기술이지 결코 과학은 아니다. 중국의 학문과 서양의 학문을 비교해 볼 때, 여러 가지 점에서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게 두드러진 한 가지 보기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들 수 있다. 중국인은 활자 문제에 대해 서양 사람보다는 훨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전문화된 과학이 없다. 이와 반대로 서양 사람은 전문적인 지식은 매우 풍부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의 지식은 매우 빈약하다. 서양에서는 과학적인 사고가 인간적인 면에서의 지식의 본래의 영역 안에 침입했다. 과학적인 사고의 특징은 한문의 고도로 전문화된 것과, 과학적 술어 또는 반 과학적인 술어를 풍부하게 구사하는 일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과학적>인 사고라는 것은 보편적인 뜻이며, 진실한 뜻으로의 과학적인 사고를 가리킴이 아니다. 만약 진실한 것이라면 한편에 상식, 한편에 공상, 이 두가지 것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보편적인 뜻의 <과학적>인 사고는 엄밀하게 말해 논리적이며 객관적이어서 고도로 전문화되며, 이 방법과 관찰력은 <원자적>이라고 할 만큼 매우 세밀하다. 동양의 학문과 서양의 학문, 이 두가지 학문의 형은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논리와 상식과의 대립으로 돌아가고 만다. 상식을 잃은 논리는 비인간적이 되고 만다. 논리를 잃어버린 상식은 대자연의 신비를 구명할 수 없게 된다.
중국 문학과 중국 철학의 세계를 훑어보면 무엇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중국에는 과학이 없다는 것, 극단적인 이론, 독단이 없다는 것, 실제로 서로 다른 철학의 대학파가 없다는 것이다. 대개 상식과 양식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 온갖 이론, 온갖 독단을 때려 부수고 만 것이다. 중국의 학자는 대시인인 백낙천처럼 <겉은 유교로써 그 몸을 닦고, 안은 불교로써 그 마음을 다스리며, 한편 산수풍월 가시금주로써 그 뜻을 즐기는도다> 이런 것이다. 그는 몸은 비록 이승에 있었으나, 정신은 이승밖에 있었던 것이다. 중국 문학은 전체가 짧은 시와 짧은 수필뿐인 사막과 같은 것이다.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사막은 끝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광야의 풍경 그 자체와 같이 그곳에는 또한 변화가 있는 무한한 아름다움이 있다. 중국에는 미국의 국민학교 학생의 글짓기보다도 훨씬 짧은 3백자나 5백자 정도의 짧은 글이나 수기에 인생관을 담으려는 수필가나 서한 작가 밖에는 없다. 이러한 우연한 기회에 쓴 문장, 편지, 일기, 문학적 각서, 수필 일반 등등 중에는 영고 성쇠를 읊은 짧은 감상이 있기도 하고, 이웃 마을에서 자살한 여인의 기록이 있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즐거운 봄의 잔치나 눈 속의 향연, 달밤의 뱃놀이, 무시무시한 번개 치고 비가 쏟아지는 밤을 절에서 보낸 추억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추억거리가 될 만한 인상적인 말을 그 사이에 엮어 가고 있다.그러므로 수필가이며 시인이고, 시인이며 수필가라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5백 자나 7백 자 이상 되는 긴 글은 쓰지 않지만 단 한 줄 속에도 온 인생 철학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 자기의 사상을 엄격한 체계 속에 넣으려고 하지 않는 우화 작가나 경구 작가, 가정적인 서한을 쓰는 필자도 있다. 이런 일이 중국에 있어서의 학파와 체계가 출현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양식, 다시 말해서 상식적인 판단을 귀중히 여기는 정신이나 또는 작가의 예술적인 감수성 뒤에 지성은 언제나 숨겨져 있다. 지성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과학의 정복을 가능하게 하는 논리적인 능력이 인간 정신의 지극히 강력한 무기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다. 서양에 있어서 인간의 진보가 지금도 여전히 상식과 비판적인 정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이 비판적인 정신은 논리적인 정신보다 위대한 것이어서 이것이야말로 서양에 있어서의 인간적인 사고를 나타내는 가장 높은 형식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보다 훨씬 발달된 비판적인 정신이 서양에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인정할 것까지도 없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나는 논리적인 사고의 약점을 지적했지만, 다만 서양 사상의 특수한 결함에 대해서 말했을 뿐이다. 또 이를테면 독일이나 일본에서의 무력 정책과 같이, 때때로 서양의 정치에서도 볼 수 있는 특수한 결함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논리에도 또 독특한 매력은 있다. 나는 탐정소설의 발달을 가장 흥미있는 논리적인 정신의 소산으로 보고 있으나, 이것은 중국에서는 전혀 발달되지 못했던 문학 형식이다. 그렇지만, 너무 열중하여 논리적인 사고에 빠져 버리면 역시 그 약점이 눈에 띄게 된다.
서양적인 학문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의 전문화와 지식을 잘게 썰어 넣어 각각 다른 구획 안에 집어 넣어 버리는 일이다. 논리적인 사고와 전문화가 지나친 발달을 이루고, 그에 따라 전문적인 말투도 매우 분화된 결과 철학이 매우 뒤쪽으로, 다시 말해서 정치나 경제보다도 훨씬 뒤쪽으로 물러나게 되어, 일반 사람 따위는 조금도 양심의 가첵을 느끼지 않고, 철학의 옆을 그대로 지나칠 수 있다는 현대 문명의 기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교육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일반 사람은 철학 따위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학과> 중에서도 첫째로 해당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현대 문화의 괴상한 변태 현상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과 일에 가장 가까와야 할 철학이 인생으로부터 가장 멀리 동떨어지고 만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인생에 관한 지식을 연구하는 일을 학자의 주요한 직분으로 여겨 오던 그리이스나 로마의 고대 문명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으며, 같은 중국에서도 그러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현대인이 철학의 본래의 제목인 생활 문제에 흥미를 느끼지 않게 되었거나, 또는 우리가 철학의 최초의 개념에서 너무 동떨어지고 말았거나 그 중의 어느 하나의 결과이다. 우리의 지식의 범위는 매우 넓어져서 저마다의 전문가에 의하여 열심히 지켜지는 굉장히 많은 <부문>이 발생되기에 이르렀으나, 철학은 그 여세로 인간 최고의 학문이라는 관록도 찾을 길 없이 겨우 아무도 자진해서 전문적으로 연구하려고 들지 않는 한 분야로서 남고 말았다.
전형적인 현대 교육의 상태는 미국의 어느 대학의 다음과 같은 발표를 읽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심리학부는 호의를 베풀어 경제학부의 3학년 학생에게 심리학부 4학년의 문호를 개방함> 그리하여 경제학부 3학년의 교수는 그의 사랑하는 학생들의 앞날을 축복하여 모든 시중을 심리학부 4학년 교수에게 맡기게 되는 것인데, 한편 그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친절한 환영을 나타내어 심리학부 4학년 학생이 경제학부 3학년의 성역에 들어갈 것을 허락한다. 이렇게 해서 학생의 수가 적은 학과는 차츰 보잘것 없이 몰락해 가는 것이다. 옛날 중국의 전국시대의 황제는 자신의 세력권 안에 속한 각 나라로부터 공물을 거두어 들이기는커녕 세력도 영토도 차츰 줄어들어 겨우 충성되며 선량한 배고픈 소수의 백성만을 심복으로 붙들어 두는 상태가 되고 말았는데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다. 지식의 왕좌를 자랑한 철학도 이럭저럭하는 사이에 그와 똑같은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식 그 자체는 없으면서 지식의 구획만이 있는 인간 문화의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전문화된 것은 있으나 하나로 종합된 것은 없다. 전문가는 있으나 인간적인 긍지를 다루는 철학자가 없다. 도가 지나친 지식의 전문화는 중국 궁정의 주방에서 볼 수 있는 지나친 전문화와 별로 다름이 없다. 옛날 어느 왕조가 멸망 하였을 때, 어떤 돈 많은 관리가 대궐의 수랏간 숙수로 있다가 도망쳐 온 한 여인을 자신의 숙수로 두게 되었다. 그는 그것이 자랑스러워서 여러 곳에 있는 친구에게 안내장을 보내어 수랏간의 숙수였던 여인의 음식 솜씨를 맛보아 주면 고맙겠다는 말을 퍼뜨렸다. 초대한 날이 가까와지자 그는 숙수에게 궁정 요리를 만들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여인 편에서는 음식 같은 것은 도저히 만들 자신이 없다는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그렇다면 너는 무슨 일을 했었단 말이냐?> 하고 관리가 따져 묻자, <예, 저는 만두를 만드는 일을 거들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그날이 되거든 손님에게 대접할 맛있는 만두를 만들도록 해라> 그런데, 숙수의 대답에는 그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전 만두를 만들 줄 모릅니다. 저는 폐하께서 드실 만두에 넣는 둥근파를 다지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태는 오늘날 인간 지식의 영역이나 아카데믹한 학문의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인생과 인간성에 대해서는 극히 조금 밖에 알지 못하는 생물학자가 있는가 하면 같은 부류의 정신병학자도 있다. 인류의 고대사만 알고 있는 지질학자, 문명인에 관한 일은 모르지만 야민인의 심리라면 알고 있다는 인류학자도 있다. 어쩌다 친절한 사람이 있어서 인류사에 반영된 인간의 예지와 어리석음에 대하여 가르쳐 주는 사학가도 있다. 심리학자는 곧잘 인간의 행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지식을 주지만, 동시에 또 루이스 캐럴은 새디스트(이성을 학대하고 쾌감을 느끼는 변태성욕자) 였었다느니, 실험실에서 닭을 실험한 결과 강렬한 소음이 닭에게 끼치는 영향은 심장을 뛰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느니 하는 것을 발표하여 공연히 아카데믹한 저능한 상태의 일단을 폭로하는 경우도 많다. 교육심리학자는 그 설명이 잘못되었을 때는 언제나 얼에 빠져 보이지만 옳았을 때는 더 한층 얼빠져 보인다.
그렇지만 이 전문화되는 과정의 한편, 종합의 과정 다시 말해서 이러한 모든 부문의 지식을 한데 모아서 인생의 슬기로움이라는 가장 높은 목적에 도움이 되게끔 하려는 노력은 뼈져리게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예일 대학의 인류 종합 학회나 하버드 대학 창립 3백 년 기념제의 식사에서 실증되었듯이 어느 정도의 지식을 종합할 준비는 오늘날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서양의 과학자들이 좀더 단순하고 좀더 비윤리적인 사고 방법을 취하게 되지 않는 한 종합이라는 것은 실현될 수 없다. 인간의 슬기로움은 단순한 전문적인 지식이 산더미처럼 쌓인 것도 아니거니와 통계적인 평균치의 연구에 의하여 얻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슬기로움은 오로지 견식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상식, 기지, 솔직 미묘한 직감이 좀더 널리 골고루 퍼지게 되어야만 비로소 사람은 슬기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논리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사고와의 사이에는 뚜렷한 구별이 있다. 이것은 또 아카데믹한 사고와 시적인 사고와의 다른 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카데믹한 사고의 예는 매우 많으나, 시적인 사고의 예는 오늘날 거의 찾아낼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고대 그리이스인이 현대인과 비슷했었기 때문이 아니라, 틀림없이 그들이야말로 현대 사상의 조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인간적인 사물을 보는 법, 생각하는 법이 있고, 중용설을 취하고 있던 점도 있으나, 분명히 현대적인 교과서를 쓴 필자의 조상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어서 의학, 식물학, 논리학,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지식을 많은 구획으로 분리시켜 버린 최초의 사람이다. 그는 또한 그로써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조금도 알 수 없는 터무니 없는 아카데믹한 잠꼬대를 입에 담기 시작한 맨 처음의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잠꼬대가 심한 것으로는 도저히 오늘날의 미국의 사회학자, 심리학자를 당해 낼 수는 없다.
플라톤은 진정한 인간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인데, 그 역시 새로운 플라톤 학파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관념이나 추상적인 개념을 숭배하게 만든 책임자이다.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추상적인 관념을 숭배하는 전통은 보다 통찰력이 풍부한 인물에 의하여 완화되는 일이 없이 오히려 관념이나 이데올로기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투로 논하고 있는 학자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오직 최근의 심리학만은 <이성>, <의지>, <감정>의 물샘틈 없는 구획을 깨뜨려 버리고 중세의 신학자에 있어서는 엄연한 실체였던 <심령>을 없애 버리는 일을 도왔다. <심령>은 죽이고 말았으나, 한편 우리의 사상을 제압하는 이상한 사회적, 정치적인 슬로우건이 수없이 만들어졌다. <혁명파>, <반혁명파>, <부르조아>, <자본주의-제국주의자>, <탈주파> 따위이며 또 <계급>이니 <운명>이니 <국가>니 하는 똑같은 것을 창조하고, 개인적인 자유를 말살하는 방향으로 논리적인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인생을 전체로서 바라볼 수 있는 참시하 사고 방식, 보다 재미있는 사고 방식이 오늘날 매우 요망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 제임즈 하베 로빈슨이 경고했듯이, <사상을 종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않는다면, 문명에 어떤 커다란 후퇴가 일어나리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안식이 갖추어진 관찰자는 극히 솔직하게 이와 같은 확신을 말하고 있다> 로빈슨 교수는 또한 현명하게도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 <실직과 달식은 서로 시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머지않아 서로 친구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경제학자와 심리학자는 양심적인 진실성은 지나칠 정도로 지니고 있으나, 달식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논리를 인간적 사상에 적용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며, 이 점을 크게 역설해야 한다. 그러나 근대에 있어서의 과학적인 사고의 힘과 위세는 너무나 크고 각종의 아카데믹한 사고는 온갖 경고에도 아랑곳 없이 인간의 정신은 하수도와 마찬가지로 측정할 수 있다느니 하는 따위의 천박한 신념을 지니고 끊임없이 철학의 영역으로 침입해 들어갔다. 그 때문에 우리 일상의 사고는 얼마만큼 어지럽혀진 정도로 그쳤으나 실제 정치에 있어서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
|
|
문학자료 → 철학 |
|
|
철학의 뒤안길 - 빌헬름 바이셰델/옮긴이 : 이기상, 이말숙
25. 키에르케고르 - 신의 첩자
많은 철학자들이 여자 문제로 인해 자신의 인생 행로 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요컨대 철학자가 여자에 의해서 비로소 자신의 올바른 길로 접어들게 되는 일은 정말 보기 드물다. 더욱이 이런 일이 상류 사회의 유명한 귀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겨우 15세의 소박한 평민의 딸에 의해서라면 더더욱 드문 경우라 하겠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일이 죄렌 키에르케고르에게 일어난다. 그에게 레기네 올센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키에르케고르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그가 써 놓은 철학적 작품들 또한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24세의 키에르케고르를 어린 소녀에게로 이끈 것은 말 그대로 첫눈에 반한 사랑이다. 그는 레기네를 보자마자 그녀와 결혼할 것을 결심한다. 3년 후 그는 그녀와 약혼한다. 그런데 바야흐로 이때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이 도대체 한 여자를 자기에게 묶어 놓을 권한을 갖고 있는지 숙고하기 시작했다. 결혼에 대한 그의 엄격한 생각에 따르자면, 결혼의 주요 부분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그에게는 함구해야 할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과 같은 남자를 위한 결혼의 가능성이란 점점 더 희박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다음부터 놀라운 연극이 시작된다. 키에르케고르는 약혼녀가 스스로 약혼을 파기하기를 바란다. 그는 자신이 혐오스럽게 처신하고 타락한 것처럼 보이게 하여, 마침내 레기네가 약혼 파기를 선언하도록 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다시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서 못된 놈으로, 그것도 가능한 한 최고로 못된 놈으로 행세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마침내는 잔인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녀는 나에게 당신은 결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하지. 10년 후 바람기가 좀 잠잠해지면 다시 젊어지기 위해 젊은 신부감을 찾게 될 거야." 이 가엾은 소녀가 그 일로 거의 심장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느꼈으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 역시 갈피를 못 잡는다.
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방식으로 새롭게 레기네와의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는 꼼꼼하게 그녀와의 모든 만남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그의 일기에 기록해 두었다. 그것이 코펜하겐의 작은 거리에서였든 교회에서였든 가리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았는지 바라보지 않았는지, 그녀가 방긋 웃었는지 웃지 않았는지, 그녀가 서 있었는지 앉아 있었는지 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감히 레기네에게 말을 건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는 마침내 그녀가 다른 남자와 약혼했다는 것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제 키에르케고르의 절망은 극에 달했다. 그는 그의 일기에 레기네의 배신을 비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죽을 때까지 레기네와의 관계는 그의 일기와 그의 저서에서 자학적 숙고의 주요 주제였다. 키에르케고르가 결혼의 가능성을 위해 요구했던 극단적인 솔직함은 왜, 그리고 무슨 일 때문에 그를 방해했는가? 그것은 별 문젯거리도 못되는 것이었다. 즉 그가 사창가에 한번 간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있는 여자와 은밀한 관계도 맺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의 조롱만 샀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키에르케고르에게는 이 과오가 어떤 심오한 일에 대한 하나의 징표였다. 즉 그와 그의 가족은 어떤 가혹한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그 숙명은 아버지에게서 비롯된다. 아버지도 역시 성적으로 탈선했던 것이다. 비록 그는 그 처녀와-훗날 키에르케고르의 어머니가 된다-결혼했지만, 일생 동안 그 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지냈다.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아버지는 취중에 그가 젊은 시절에 신을 저주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을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한 남자에게 일어난 끔찍한 사건, 그 남자는 어린 소년 시절 유틀란트의 황야에서 양떼를 지키면서 많은 어려움을 참아 내야만 했고 주리고 있었으며 비참했다. 그는 언덕 위에 올라가서 신을 저주했다. 이 남자는 그가 82세가 되어서도 이 일을 잊을 수가 없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사건으로부터 그의 가족과 그에게 벗어 던질 수 없는 저주가 시작되었다고 확신하였다. 키에르케고르가 이 사건을 극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그의 성격상의 기질적 특성인 우울증에 기인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매우 비참한 우울증에 빠졌던 사람이다. 가장 작은 모기에서부터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가 나를 불안하게 하였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았고 특히 나 자신이 가장 그러했다." 이 우울증은 엄청날 정도의 자기 연관성에 귀결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본질의 파악 불가능한 어디에 어떤 의미가 놓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을 필이 연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겉으로는 경망스럽고 멋이나 부리는 건달처럼 연극을 하면서 우울증을 지워 버리려 한다. 그는 옷에 지나치게 신경을 썼으며, 카페나 극장을 열심히 드나들기도 하고 코펜하켄의 거리를 빈둥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는 그 도시의 유원지 "티볼리"로 자주 놀러 간다. 그는 책을 하나 저술하는데, 그 중 한 장의 제목은 "유혹자의'일기"였다. 그는 이렇게 쓴다. "나는 지금 막 내가 혼백으로 있었던 그 사회에서 돌아왔다. 기지와 유머가 내 입에서 흘러 넘쳤고 모든 사람들이 웃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내게 경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나는 뛰쳐나왔고 총으로 머리를 쏘아 죽어 버리고 싶었다." 그렇지만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길은 시적이고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창작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에게는 수없이 많은 생각이 끊임없이 밀어닥쳐 표현되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책을 저술한다. 그 작품 속에서 그는 그의 개인적인 문제를 소재로 삼아 객관화했기 때문에 그 작품들은 자기 고백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저서들로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인생의 여정), (철학적 단편), (불안의 개념), (공포와 전율), (죽음에 이르는 병), (그리스도교 입문) 등이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작품 속에서 논쟁을 일삼았기 때문에 수많은 반대자를 갖게 된다. 그는 같은 시대 사람들의 평범한 지성을 공격한다. 그러면 그들은 나름대로 반응을 보인다. 즉 키에르케고르에게 모욕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그 도시의 유명한 풍자적인 신문에 계속해서 악의에 가득 찬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의 기이한 옷차림, 가는 다리, 척추의 기형으로 인해 그렇게 만든 짝짝이 바지 가랑이. 어디 그뿐이랴. 그는 그의 애인의 어깨 위에 말 잔등에 올라탄 것처럼 올라타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몹시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조롱받는 것이 그 시대에 어떤 특별한 말을 하는 사람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조롱받는 순교자"가 된 것을 감내했다. 그러나 이것뿐이 아니다. 키에르케고르가 그의 심사 숙고의 과정에서 그리스도교적인 실존의 참된 본질을 성찰하기에 이르렀을 때, 그는 공식 교회와 첨예한 논쟁에 휩싸인다. 그는 교회가 그리스도교 정신을 배반했다고 비난한다. 그는 매우 공격적인 반박문을 발표하여 교회, 특히 교회 주교들에게 도전한다 그는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인 1855년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우울증과 성찰을 뒤섞어 밭갈이한 토양에서 키에르케고르가 본질적인 언어로써 말하고자 했던 것이 모두 싹튼다. 키에르케고르처럼 내면 가장 깊숙이 자기 자신에 대해 물음을 던진 사람에게는, 그가 철학을 할 때에도 인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방관자로 내버려두는 학문적 문제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철학하는 사람 자신이 그 물음 속에서 최대의 관건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본질적인 인식은 인간의 실존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에 대해 깊이 숙고하는 실존적 사상가가 된다. 그는 인간이 포괄적 의미에서 그 자신에게 수수께끼가 되어 버린 그런 시대에 비로소 등장한다. 따라서 그는 우리 시대에 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철학 분야뿐만 아니라 신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철학에서는 야스퍼스와 하이데거, 신학에서는 바르트와 불트만에게 영향을 주었다.
모든 관심을 인간에 관한 물음에 집중시키는 것은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적 근본 신념에 있어 매우 중요한 귀결이다. 거기에서부터 자주 인용되거나 자주 오해되는 "주관성이 진리이다"라는 명제가 성립된다. 이로써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것은 단지 주관적일 뿐이다, 모든 것은 인간에게 순전히 상대적일 뿐이다, 객관적인 진리는 없다는 것 등은 아니다. 키에르케고르는 통속적인 상대주의에나 어울릴 그런 식의 이해를 단호하게 거부한다. 그가 주관성이 진리라고 거듭 반복할 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어떤 것이 인간에게 진리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인간이 그것에 온 정열을 다 쏟아 그의 개인적인 진리로 장악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실존을 건드리거나 변화시키지 않는 진리라면 그런 진리를 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점에서 그이 비판의 상대인 위대한 헤겔과 맞선다. 헤겔은 그의 웅대한 체계 속에서 현실을, 즉 자연뿐 아니라 역사도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실존의 곤궁 속에 빠져 있는 인간을 망각하였다. 아무리 포괄적인 전체 조망이라 해도 그것이 현존재를 변형시키지 못하는 한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진리란 결단을 내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서 자신의 실존 속에 구현시키는 그런 사람에게만 생생하게 존재할 뿐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관점을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한다. "나에게도 진리가 될 수 있는 그런 진리를 발견해야 하며, 내가 그것을 위해 살고 죽을 수 있는 그런 이념을 발견해야 한다." 그런데 키에르케고르가 그토록 정열적으로 탐구한 인간의 실존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실존적 사상가로서 그는 자신의 체험에서부터 인간의 개념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의 자기 체험은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낯설음, 분열, 밑도 끝도 없는 불안, 절망 등과 같은 경험들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모든 것을 그의 개인적 운명으로 파악할 뿐 아니라 인간의 근본 상황으로 파악한다. 인간은 피할 도리 없이 "불안",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이것을 전적인 성실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안-이것은 키에르케고르의 위대한 발견이다-속에서 인간은 자유의 가능성을 자신의 근본 본질로서 경험한다. 불안은 현실을 압박해 들어오는 가능성의 그물로 불어 보이며, 인간은 이 가능성에 직면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불안 속에서, 그가 한번에 영원히 확정되어 버린 존재가 아니며 그의 존재는 존재 가능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인간에게 부여된 그 무시무시한 것은 선택 그리고 자유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사상으로 그의 실존 가능성, 즉 "인생 여정의 단계"에 대한 중요한 이론을 전개시킨다. 첫 단계인 "심미적 단계"에 있는 사람은 풍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가능성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그는 단지 바라보거나 즐기기만 할 뿐 행위하지 않고, 그래서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산다. 그는 구미가 당기는 것이나 오락거리만 좇아 다니며 가능성을 구속력이 없는 실험으로 남김없이 다 써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순전히 심미적으로만 사는 사람은 마침내 존재의 공허감에 빠지게 되고, 본질적인 의미에서 비현실적으로 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키에르케고르는 심미적 단계가 인간에게 최종적인 실존 가능성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실존함이란 오히려 인간이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가능성 가운데 한 가지 가능성을 움켜쥐고 다른 가능성을 내던져 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인간의 자유는 결단으로서 실현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현실에 이르고 현존재 속에 자신의 자리를 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선택과 결단은 키에르케고르가 인간을 고찰하는 바로 그 본질적인 범주이다. 선택과 결단은 두 번째 단계인 "윤리적 단계"의 특색을 나타낸다. 인간은 이 윤리적 단계에 들어서서 실제로 결단을 내릴 때, 비로소 본래의 자기 자신에 이르고 자신의 과제가 될 수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으로도 여전히 키에르케고르의 가장 내면적인 사유의 정곡을 찌르지는 못하였다.
스스로 윤리적인 인간이 되어 보려는 노력도 절망으로 끝나 버린다. 결국 그는 인간은 그 혼자의 힘만으로는 진실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무력감이 바로 인간이 갖는 유한성의 가장 심오한 징표이다. 키에르케고르처럼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현존재의 수수께끼를 되씹는 사람은 마침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인간의 존재는 그 자체가 허무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사실에 대한 극단적인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에게-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새로운 가능성이 열려야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능성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단순히 유한한 존재만은 아니며, 유한과 무한으로 섞여 짜여진 경이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경험한다. 인간의 본질에서 유한은 인간을 이 세상 삶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져 그 속에 확 붙들어 두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 본질의 다른 부분은 인간으로 하여금 무한한 열망 속에서 다른 세계와 연관을 맺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인간은 그것으로부터 절망의 비애 속에서도 위안을 받으며, 동시에 자기형성, 행위와 결단에 필요한 지침을 획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무엇보다도 특히 현존재 안에 있는 무한성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무한을 깨닫게 된 사람은 세 번째 단계인 "종교적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철학자로서의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명확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신학자로서의 키에르케고르는 똑같은 것을 좀더 직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인간은 신의 절대적 요구에 처해 있다. 이것이 선택과 결단에 본래적인 준엄함을 준다. 즉 그것들은 신 앞에서의 선택과 결단인 것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마침내 이렇게 말한다. "한 인간이 완전히 자기 자신, 한 개별적인 인간, 이 특정의 개별 인간이 되는 것을 감행하는 것은 극히 중요하다. 이 모든 엄청난 긴장과 이 모든 엄청난 책임을 떠맡고 홀로, 신 앞에 홀로 서는 것 말이다."
키에르케고르가 끊임없이 정신적이며 영적인 고뇌 끝에 이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자, 그는 그의 우울한 기질 때문에 겪은 그 모든 시련 끝에 마침내 위안을 얻는다. 그는 자신이 지닌 매우 심한 우울의 본질에는 그 우울이 유한의 영역에서는, 특히 인간과의 교제에서는 제거될 수 없다는 사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우울함은 그것이 오직 무한 속에 근거를 둘 때만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울이 그렇게 해서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우울증이 어쩔 수 없는 운명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 속에 근거를 두게 되면, 그에게도 우울증을 견뎌 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바로 그토록 우울했기 때문에 마음의 고통 속에서 영원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내 인생은 끔찍스러운 우울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내 인생은 아주 어린 시절에 벌써 그 깊은 밑바닥까지 뒤죽박죽 엉켜 있었다. 존재 자체의 이러한 불행이 제거될 수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비록 나는 전 생애를 그토록 괴로워해야 했지만, 신은 분명 사랑이라는 사실을 즐거운 마음으로 확신하면서 영원한 것을 움켜쥐었다."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영원함 속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키에르케고르의 요구는 그의 시대에는 걸맞지 않았다. 그의 시대는 헤겔이 선포했듯이 인류의 진보와 "역사 속의 이성"을 믿던 세기였다. 키에르케고르는 대다수의 같은 시대 사람들보다 더 심오하게 통찰했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몰아 부쳤다. 이것은 그의 일기장의 메모와 저서 속의 격렬한 비방으로 표현된다 "전 유럽은 완전히 파산으로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는 절망의 시대이다." "비를 예고하는 한 마리 새가 있다. 그것이 바로 나다. 한세대에 금방 쏟아질 것 같은 폭풍우의 징후가 보이면 나와 같은 그러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키에르케고르는 특히 그가 살던 시대를 진정한 정열이 없는 시대, 사실에 대한 감동이 없는 시대라고 비난한다. 모든 직접적인 것은 통속적 이해의 지배 하에 침몰해 버렸고, 행위 해야 하는 그 모든 힘은 끝없는 성찰 속에서 질식해 버리고 말았다.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을 아주 명료하게 인식한다. 특히 그 자신이 자기 파괴에 이르게 될 정도로 이러한 지나친 지적 성찰의 위험성을 체험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리고 그는 통속적인 이해의 우세가 인간 현존재를 애매 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행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기껏해야 행위와 사건에 대해 사유하고 앉아 있기만 할 뿐이기 때문이다. "도처에 지성이 난무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연모 대신에 이성적인 결론, 무조건적인 복종 대신에 합리성에 근거한 복종, 모험 대신에 개연성 혹은 약삭빠른 계산, 행위 대신에 방관이 판을 치고 있다." 애매 모호하게 행위를 방해하는 끊임없는 성찰의 증세는 키에르케고르가 간파했듯이 인간을 치명적인 위험으로 몰고 간다. 만일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어떤 것을 결단하지 않고, 선택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과 깊은 의미에서 구별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삭막한 평준화가 만연된다. 인간의 공존은 "대중"이 되어버리고, 파악 불가능한 무명의 "공중"이 되어 버린다. 이들의 특징은 "수다"이다. 모든 책임 있는 이야기는 "잡담" 속에 묻혀 버린다. "아무도 더 이상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슨 위원회, 무슨 위원회를 세우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결국에 가서는 시대 전체가 위원회가 되어 버리는 것으로 끝장이 날 것이다." "그러나 무리(떼)는 비진리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익명으로 전체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키에르케고르는 같은 시대 사람들에게 지칠 줄 모르고 계속적으로 각자는 모두 단독자가 되라고 요구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가장 고유한 실존을 끊임없이 걱정하며 신 앞에 홀로 선 단독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단독자'라는 범주에 내가 의도하는 의미를 연결시킨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나의 사명임을 인식했다." 이 사명은 물론 무거운 짐이다. 그렇지만 이 사명을 실제로 떠맡는다면 그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단독자로 실존하는 것보다 더 엄청난 것은 없음을 습득한 사람은, 그것이 가장 위대한 일라고 말하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단독자가 되라는 요구를 특히 갈수록 대중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그 시대의 그리스도교를 향해 외친다. 세례 증서만 있으면 아무 문제없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은 그리스도교의 진지함을 천박한 유희로 뒤바꾸어 놓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의 귀결로서 키에르케고르에게는 다음과 같은 사명감이 분명해진다. 사이비 그리스도교에 맞서 참된 그리스도의 존재를 분명하고 강력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에게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군중의 관심사가 아니라 단독자-무조건적인 정열 속에 자신들의 영원한 행복을 염려하는 단독자-의 관심사를 뜻한다. 단독자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닌,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을 골라잡는다. 믿음은 영원한 것이 일시적인 것으로 되었다는 역설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기에 믿음은 오직 모든 평범한 이해를 떨쳐 버리는 "비약"으로만 도달할 수 있다. "믿음은 신을 얻기 위하여 지성을 잃어버림을 의미한다." 이러한 확신 속에 단독자로서의 키에르케고르는 자기 나라의 공공 교회를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이것은 "흡사 절망적인 발걸음으로 존립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에 도화선을 놓아야" 하는 것과 같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키에르케고르는 마침내 그의 우울한 실존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가장 심오하게 해석하기에 이른다. 이제 그는 신은 그러한 우울한 인간을, 그러한 외톨이를 세속화된 그리스도교 시대에 그리스도 복음의 진지함을 다시 선포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나는 마치 가장 높은 분을 위해 봉사하는 첩자와도 같다." "나는 실존함'이 인식과,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염탐해야 한다." "나의 삶은 다른 사람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하나의 끔찍한 고뇌이다. 모든 것이 자만과 오만으로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는 나의 삶 속에 가시를 가지고 있었다. 그처럼 걸리는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고, 어떤 직장도 가질 수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예외자로 남았다 낮에는 연구와 긴장으로 보내고 밤에는 증오나 편견 따위를 없애며 보냈다. 이것이 바로 예외이다." 그러나 끝에 가서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토록 우울했었다는 점은 어쩌면 내게는 하나의 행운이었다."
|
|
|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
|
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좋은 집
캘커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집 주인은 그의 집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다. 그 집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참으로 아름답고도 귀족적으로 멋지게 지어진 저택이었다. 캘커타의 중심지에서 10에이커의 정원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러한 정원을 가졌다. 그는 대단히 그 집을 사랑했으며 내가 그 집에 머무는 동안 풀장으로, 정원으로, 숲속으로 나를 안내해 주고는 했다.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보여주었다. 내가 거기에 머물러 있었던 마지막까지. 그러나 내가 그 집을 떠나게 될 무렵 그는 매우 불행해했다. 나는 말했다.
"무슨 일이죠? 당신은 나에게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소. 아직도 못한 무슨 일이 있나요?" 그는 말했다. "이제 흥미가 없습니다. 당신은 그 점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내 이웃이 나보다 더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그보다 더 좋은 집을 만들 수 없다면 나는 불행해질 겁니다."
- 이것은 누군가가 불행할 때 자기만은 행복하려는 하나의 폭력이다. 이것이 바로 그릇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방법이다. 박해자가 되고 착취자가 되며 위험한 그들은 세상의 큰 골칫거리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논리는 엄연히 존재한다.
|
|
|
문학나눔 → 고사성어 |
|
|
不恥下問(불치하문) 不(아닐 불) 恥(부끄러워할 치) 下(아래 하) 問(물을 문)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는 배움의 태도를 일깨워주는 대목이 있다.
춘추(春秋)시기, 위(衛)나라 대부(大夫)였던 공어는 매우 겸손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당시 사람들로부터 찬사와 칭송을 받았다. 공어가 죽자, 위나라 군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호학(好學) 정신을 배우고 계승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문(文) 이라는 봉호(封號)를 하사하였다. 당시 공자(孔子)의 제자였던 위나라의 자공(子貢)은, 공어에게는 잘못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 만큼 그렇게 훌륭하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자공은 스승인 공자에게 공어의 시호(諡號)는 무엇 때문에 문(文)이라 합니까? 라고 물었다. 공자는 말하길 그는 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아랫사람에게도 묻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敏而好學, 不恥下問). 그래서 그를 문(文)이라 하였던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不恥下問(Not ashamed to ask of one's inferiors) 은 하문불치(下問不恥)라고도 하는데, 이는 분발하여 학문을 함에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구하는 정신을 형용한 말이다.
…………………………………………………………………………………………………………………………………
|
|
|
문학자료 → 과학 / 예술 / 교육 |
|
|
생물의 다살이 - 권오길
13. 사막에서 개구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가 생물의 여러 가지 특징을 이야기 할 때 제일 먼저 그들의 다양성을 든다. 생물의 다양성은 환경에 따라서 적응한 결과 행동, 생리적으로 하나같이 모양, 색깔 등 같은 생물이 하나도 없게 된다. 그 예의 하나로 엄청난 적응력을 갖는 사막의 개구리와 두꺼비를 보자. 개구리는 살갗이 항상 축축하게 젖어 있어 가스교환이 잘되는 피부호흡을 많이 하는 동물로서 메마른 사막에서는 살기가 매우 어렵고 또 더위에 약해 섭씨 35도만 넘으면 죽어버린다. (파충류, 조류들은 섭씨 40도가 되어도 끄떡없다) 허파는 있지만 그 기능은 피부호흡의 보조역할 정도다. 그래서 물이 적은 사막에서 사는 개구리나 두꺼비들은 남다른 생리적 특성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은 3억 년 전 물에 살다가 땅으로 올라온 것들로 새끼를 아직도 물에서 키우는 특징이 남아 있다.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는 물고기처럼 아가미와 꼬리를 갖고 있으며 배에 긴창자(코일처럼 여러 겹으로 감겨 있다)를 가지고 있다가 네 다리, 허파가 새로 생겨 땅으로 올라오는 복잡한 변태를 하는 특이한 발생을 한다.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촌관계 양서류에서 개구리와 두꺼비는 유연관계가 가까워 탈바꿈하고 나면 모두 꼬리가 없어지기에 무미류에 넣는다. 그런데 학식이나 재능이 짧을 때를 비유할 때 "두꺼비 꽁지만하다"고 하는데 실은 꼬리는 몸 속으로 흡수되어 없어진 것이고 꼬리뼈 부분이 조금 튀어나와 있어 그것을 옛날 사람들은 '꽁지'로 봤던 모양이다. 두꺼비는 몸에 우둘투둘한 혹이 나 있어서 징그럽고 혐오감을 주는, 행동이 느린 동물인데 그래도 먹이를 잡아먹을때는 번개처럼 빠르다. 특히 눈 뒤의 독샘인 이선에서 분비하는 물질은 독이 강해 작은 항아리에 넣어놓고 약을 올리면 더 많은 독을 분비해 그것을 모아 한약으로도 쓴다고 한다. 그런데 개구리는 두꺼비처럼 살갗이 두껍지를 못하다. 땅 위에 사는 동물들은 모두가 살갗의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두꺼운 몇 겹의 죽은 각질 세포가 층을 이루고 있는데 유독 개구리만은 한 층의 각질세포층이라 살갗이 얇기 그지없다. 모든 것에 장단점이 있듯이 개구리의 살갗이 단층의 세포층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가스교환이 잘되어 피부호흡에 좋다는 것과 피부를 통해서 수분을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허파가 없는 도롱뇽의 경우는 피부호흡에만 의존하기에 살갗이 얇다는 것은 생존에 절대적이다. 반면에 살갗을 통해서 수분 증발이 많기 때문에 바람 불고 건조한 날에는 치명적일 수가 있다. 하지만 사막에 사는 개구리는 피부가 얇아서 식물의 잎에 묻은 물이나 바위, 흙 속의 물도 재빠르게 피부로 흡수할 수가 있다. 그리고 파충류와 조류는 단백질의 분해산물인 질소화합물을 물에 녹지 않는 요산이란 고체덩어리로 만들어 똥으로 배설하므로 물의 소비가 매우 적으나 양서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요소를 만들어 소변으로 배설하기에 다량의 물이 배설된다. 논두렁의 참개구리가 발등을 흠뻑 적셔놓고 내빼지 않던가. 실은 피보다 20배 진한 쥐나 14배나 되는 캥거루에는 못미처 피보다 약간 진한 오줌을 배설하지만 그래도 물을 많이 배설하게 된다. 토끼나 쥐의 오줌 냄새가 그렇게 독한 이유는 바로 고농도의 요소가 든 오줌을 누기 때문에 그렇다.
건조한 사막과의 싸움 그러면 이렇게 약한 살갗에 형편없는 콩팥, 게다가 온도에 약한 개구리가 건조한 사막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물론 사막이지만 벌레를 먹고살아야 하니 벌레가 뜯어먹을 풀이 있는 곳. 그 풀이 자랄 물이 조금은 있는 곳이어야 살 수 있다. 사막에서의 개구리는 물이 없으면 요소 생성을 중지시켜 그것을 몸에 쌓아두고 탈수상태가 되어 주변의 물이 피부에 빨리 흡수되도록 하고 또 방광이 물의 투과성이 바뀌어서 물의 재흡수가 되게 하는 등 여러가지 체내의 생리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다가 오아시스 같은 물을 만나면 살갗으로 재빨리 흡수하여 체중의 25퍼센트 이상까지 증가시켰다가 그 물을 재활용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아주 더운 여름에도 1미터 이하의 흙 속에 파고 들어가 떼를 지어 여름잠을 자기도 한다. 더운 여름 낮에는 숨고 서늘한 밤에는 이동하여 먹이찾기를 하는데 이 지독한 사막의 개구리는 물이 체액의 40퍼센트까지 줄어도 살아남는다. 그리고 아주 심한 한발이 계속될 때는 흙 속에서 배곯고 2년간을 버티는 놈도 있다고 한다. 여기 재미있는 관찰 하나를 소개하면 이놈들이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면 땅 위로 기어나오는데 여러 가지 실험 결과 흙으로 스며든 물 때문이 아니라 비오는 소리에 잠을 깨더라는 것이다. 마른 날 땅 위에 플라스틱을 덮어놓고 물을 부어서 비오는 소리를 나게 했더니 슬슬 기어나오더라는 것이다. 여름에 잠깐 나와 하루만에 교미 산란을 다 끝내고 흰개미를 체중의 2배나 잡아먹고는 다시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1년 후 또 기어나온다고 하니 말 그대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식이다. 땅속은 서늘하고(겨울은 따뜻하고) 물기가 많아서 피부로 물 먹고 그렇게 생명을 부지하고 산다. 그리고 두꺼비 중에는 땅속에 기어들어가 몸에 고치 같은 막을 둘러쳐 수분 손실을 막는 놈도 있다. 이 녀석은 온몸에서 점액을 분비하는데 그것이 죽은 피부세포와 같이 굳어져서 막이 생기고 그 피막을 둘러쓰고 웅크린 채 꼼짝 않고 있으면서 칼로리 소비를 줄인다. 그러다가 비가 오면 본능적으로 알고는 허물을 벗어제치고 나와 곧 제 몸을 싸고 있던 막을 먹어치운다고 한다. 집에서 기르는 소를 봐도 아기집에 싸인 새끼를 낳고 나면 송아지는 네 다리 힘주어 태를 뚫고 나와 양수가 묻은 채로 비틀거리며 소마구에서 마당으로 튀어나오고 어미는 새끼 부르면서 바닥의 태를 서둘러 주워먹는다. 아마도 영양이라는 점에서 그 행위를 보는 것보다는 천적들에게 냄새가 전해지는 것을 예방하자는 게 아닌가 싶다. 이것보다 더 기막힌 개구리가 있으니 살갗이 파충류처럼 두껍고 거칠면서 배설물로 요산을 만드는 것이 있다. 파충류를 닮은 양서류인 셈이다. 또 다른 놈은 앞다리로 온몸을 문질러 살갗에서 밀랍(wax) 성분을 분비하여 물이 날아가는 것을 막는다. 대신 살갗으로 물을 흡수하지 못해 몸에 떨어진 물방울을 몸을 꼬물거려 입가로 모아 마신다고 한다. 물을 마시는 개구리가 다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개구리뿐만 아니라 곤충의 외피나 식물의 잎에도 반짝 광이 나는 밀랍 성분이 있어서 수분의 증발을 막는다. 예를 들어서 사과 껍질에 왁스 성분이 없다면(닦으면 닦을수록 왁스광이 난다) 다음해 봄에는 사과를 먹지 못할 것이다. 다 말라 비틀어져 버리니까. 그리고 보통 때는 회갈색의 보호색을 가진 놈이 빛이 세계 비치면 빛을 반사시키기 위해서 흰색으로 변하는 묘기를 부리는 개구리도 있다고 한다. 1년의 대부분을 땅 밑에서 보내는 개구리, 방광을 물통 대신으로 물을 채워 사는 지혜로운 개구리, 모래흙 속에서 보자기를 둘러쓰고 건조를 피하는 개구리...... 인간들은 그 개구리를 구워먹느라 겨울 얼음판 밑의 개울 돌을 낱낱이 뒤집어엎어서 오글오글 모여 있는 물개구리(아므르산개구리)를 샅샅이 잡아내고 있으니 차라리 그런 점에서 보면 여기의 사막 개구리가 도리어 행복한 놈들이 아닌가 싶다.
|
|
|
|
바탕화면 |
|
|
|
『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