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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73호
2012.6.14 (음 4.25)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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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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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은 살아 남는 능력뿐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능력에서도 드러난다. - F.스코트 피츠제럴드(美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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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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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바루기] 중계(中繼)와 중개(仲介)
중계(中繼)와 중개(仲介). 발음도 비슷하지만 '둘 사이를 잇다'는 의미도 비슷해 헷갈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둘은 의미를 구분해 써야 한다.
중계는 '중간에서 이어주다'는 뜻으로 "산간 지대에서는 사단과 대대, 대대와 중대 사이의 교신이 잘 안 되니까 중계 역할을 하는 곳이 필요하다"와 같이 사용된다. 또 '라디오 중계' '텔레비전 중계' '스포츠 중계'에서처럼 중계방송을 의미할 때도 쓰인다.
중개는 둘을 이어주긴 이어주되 '제삼자로서 두 당사자 사이에 서서 일을 주선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부동산 중개' '중개 수수료'에서처럼 '소개'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때 사용된다.
경제용어 중에는 '중계무역'과 '중개무역'이 모두 있는데 각각 다르게 쓰인다. '중계무역'은 '다른 나라로부터 사들인 물자를 그대로 제삼국으로 수출하는 형식의 중간(통과) 무역'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중개무역'은 '수출국과 수입국 간의 무역 거래에 제삼국의 무역업자가 개입해 화물을 이동시키고 대금 결제의 당사자가 되는 무역 형태'를 나타낸다.
실제로 한국의 어떤 회사가 중국 회사의 제품을 수입해 미국 회사로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한다면 이는 '중계무역'이 된다. 그러나 직접 계약을 맺지 않고 중국 회사와 미국 회사가 서로 계약하는 것을 돕고 중개 수수료를 받는다면 '중개무역'이 된다.
[우리말바루기] 노력했지마는 / 노력했지만은
"그는 열심히 '노력했지만은' 이번 시험에서 성적이 좋지 않다." "다른 사람이 모두 떠나도 '나만은' 이곳에 남겠다."
앞의 두 예문에서 첫 문장의 '노력했지만은'은 조사 '만은'을 잘못 표기했다. '마는'이라고 써야 옳다. 둘째 문장에서의 '나만은'은 조사 '만은'이 올바로 쓰였다. 이처럼 '마는'과 '만은'은 혼동하기 쉽다. 특히 '마는'을 써야 할 자리에 '만은'을 쓰는 경우가 흔히 보인다. 이는 '마는'의 준말로 '만'이 쓰이기 때문인 듯하다.
'마는'은 종결어미 '다, 냐, 자, 지' 따위의 뒤에 붙어 앞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의문이나 그와 어긋나는 상황 따위를 나타내는 보조사다. "영화를 보고 싶지마는(만) 시간이 안 난다/ 노력은 가상하다마는(만) 그 정도로는 안 된다"처럼 대부분 '만'으로도 줄여 쓸 수 있다.
'만은'은 두 조사 '만'과 '은'이 결합된 형태다. 여기서 '만'은 생략해도 기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열 장의 복권 중에서 하나만은(하나는) 당첨돼야 한다"). 그러나 '은'을 생략하면 안 된다. 그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는'과 '만은'은 쓰임이 서로 다르다. 특별한 쓰임은 제외하고, 어미 다음에는 '마는'으로 적고, 명사 다음에는 '만은'으로 적는다고만 기억하면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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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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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녀론 - 김동호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일차대전 이차대전 한국전 월남전 중동전― 그 많은 전쟁에서 모든 것 다 잃고 새끼 세넷만 남은 거리의 저 聖女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폴란드 전쟁 잿더미에서 파리 밤거리로 쫓겨난 한 여인. 엄정하게 공평하게 공정가격으로 성을 파는, 팔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그러지 않고는 성도 종도 혼도 다 죽어버릴 것 같은 恨의 마을에서 죽기를 살기로 산 그 여인을 잔인하게 무책임하게 욕하는 것이다
창녀는 성을 파는 여자가 아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부쩍 늘어난 21세기 들어 더 더욱 늘어난 술과 마약과 성을 구분 못하는 여자
너무나 기름지고 한가해서 그 몸, 한 남자로선 기가 차지 않는 여자
동시에 두 남자 이상을 갖지 않고는 속이 허한 여자
이 산 저 산 다 잡아먹고 밤이면 입 딱― 벌리는 여자
그런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娼女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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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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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의 노래 - 이인자
그늘진 하늘자락 한 꺼풀 벗겨내고 투명한 별빛 모아 숨결로 스며들면
또로롱 풀잎 끝마다 눈을 뜨는 초롱꽃.
닫혀진 가슴열고 희망을 꿈꾸는 날 은물결 찰랑찰랑 하늘과 입 맞추면
잔잔한 선율을 타고 피어나는 방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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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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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시애틀 추장 外
겨울 눈으로부터 여름 꽃에게로 - 구르는천둥(롤링 썬더 : 체로키 족)
"사람은 저마다 그 자신만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이 세상에 온 그만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조금 전에 소개받은 대로 체로키 족의 주술사 '구르는천둥(롤링 썬더)'이다. 영적인 문제를 놓고 문명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나로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여기 오는 걸 망설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의 인디언들은 영적인 문제를 놓고 밤새워 대화를 나눈다. 허나 미리 말해 두겠지만, 오늘 나는 비밀로 지켜야 할 의식이나 명상법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은 아직 세상에 드러내지 않은 비밀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나는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해서는 어떤 영적인 것도 말할 수 없었다. 문명인들이 이 대륙을 차지한 이후로 그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암호로써 그것들을 주고받았고, 암호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랐다. 삶의 방식은 변하기 마련이어서, 6년 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약간의 가능성을 보았다. 우리는 문명인들의 세계 속으로 여행도 떠나고 그들과 섞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함께 대화를 나룰 수 있는 가슴을 지닌 사람들을 찾곤 했다. 처음에 말한 대로 나로서는 외부 세계에 나와서 영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상황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젊은 문명인들은 과거 세대와 많이 다르다. 그들은 인디언을 좋아하고 인간을 좋아하며 우리에게로 와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나는 인디언 주술사로 태어난 사람이다. 인디언 세계에서 주술사(medicine man)란 단순히 주술 행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가사의한 영적인 힘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그는 샤먼이기도 하면서 치료사이고 의사이며 영적 상담자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어떻게 하면 주술사가 될 수 있는가 묻는다. 주술사란 아무나 마음 먹는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거나 학교를 다녀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술사는 그런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치료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을 몇명 만나 본 적이 있는데, 이것을 분명히 밝혀 두고 싶다. 무엇보다도, 주술사가 되려면 주술사로 태어나야 한다. 그럼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자신이 주술사로 태어났는가를 아느냐고? 꿀벌에게 물어 보라, 어떻게 여왕벌을 아느냐고 인디언은 그냥 알 뿐이다. 우리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어떤 것을 행하지 않는다. 구경거리로 무엇을 하진 않는다. 세상의 돈을 다 갖고 와도 전통적인 인디언 주술사를 살 순 없다. 한참 전에 한 백인 친구가 비행기를 타고 내가 사는 곳까지 날아온 적이 있다. 그는 뉴욕에 있는 큰 회사의 사장 아들이었다. 그는 전용비행기를 타고 와서 나에게 1만 달러를 내밀었다. 등 전체에 난 붉은 피부병 반점을 치료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치료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렇다. 치료할 수 있다." 그는 그렇다면 치료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지금은 안 된다. 1년쯤 뒤에 다시 오라. 다시 올 때는 선물로 담배를 가져올 것이며, 나의 협력자(약초)들에게 먼저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나는 말했다. "당신이 꺼내 놓은 1만 달러는 도로 집어넣으라." 문명인들은 돈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될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 삶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몇 가지의 것들이 있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바로 그 기준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내가 원했다 해도 나는 1만 달러를 꺼내 놓은 그 사람을 치료할 수 없었다. 치료를 시도했다면 내 스스로 대가를 치뤄야만 했을 것이고, 내가 잘못된 행위를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큰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나는 전신마비에 걸린 한 노인을 치료했다. 그는 몇 해 동안 그 병을 앓았는데 의사들도 포기한 환자였다. 노인은 치료의 대가로 내 이름이 새겨진 이 목걸이를 나에게 선물했다. 이것을 나는 1만 달러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인디언이든 아니든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자기를 정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면 그는 인디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우리 인디언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자연에 자신의 모습을 자주 비추곤 한다. 자연의 숨결과 자신의 숨결을 동일시하고, 대지의 맥박과 자신의 심장을 한 박자로 여긴다. 문명인들은 인간의 힘이 자연을 다스리고 변형시키는 데 있다고 여기며 그것이 곧 생존의 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힘과 진정한 생존은 자신을 자연의 한 부분으로 여겨 대지의 모든 생명들과 조화를 이루는 일에 있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의 초기에는 대지가 마구 흔들리고 열기로 가득 차서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도 인간이 존재했지만 오늘날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 첫번째 부족의 후손들이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되는 큰발(빅 푸트) 족이나 티벳의 예티(설인) 족이다. 어떤 부족은 남태평양 한가운데의 바다로 침몰하는 대륙(사라진 대륙)에서 배를 타고 피난해 오기도 했다. 그들의 후손이 아직도 이곳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으며, 우린 그들이 누구인가를 안다. 인디언들의 얼굴 모습이 제각기 다르고 또한 유럽인이나 어떤 민족과도 비슷하지 않은 까닭이 거기에 있다. 우리는 아직도 1년에 한 차례씩 호피 족의 키바*에서 회합을 갖는다. 모든 부족의 대표들, 주술사와 추장들이 그곳에 모여 우리의 신성한 문서를 돌려 읽고 해석을 가한다.
*키바란, 푸에블로 인디언에게서 볼 수 있는 구조물로 반지하 형식이 많으며, 보통 둥근 형태로 되어 제사의식, 회의를 위한 장소로 쓰인다.
우리 인디언은 부족도 다르고 언어도 많이 다르다. 하지만 인디언들 사이에는 의사소통의 문제가 전혀 없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대화 방법을 갖고 있으며, 당신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캐나다의 퀘벡 주에서 온 인디언 주술사를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대화 없이 통하는 상태가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가능했다. 이것은 서부 인디언이나 아프리카 사람들과 동양인 사이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영적 차원이 비슷한 높이에 이르면 굳이 대화가 필요없어진다. 옛날에는 두 인디언 추장이 들판의 오솔길에서 몇 번이나 마주쳐도 아무런 말이 오가지 않았다. 내 어린시절의 기억으로는 노인들 몇 명이 햇살 아래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말이 필요 없었다. 언어 없이도 그들은 내면적으로 서로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오늘날의 우리들보다 훨씬 더 잘 통했다. 그들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디언은 우리가 사용하는 약초를 협력자라고 부른다. 약초를 캐러 가면 우리는 약초를 발견하기 전에 이미 그것이 어디쯤에 있다는 걸 안다. 때로는 필요한 약초들이 스스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문명인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식물을 잡초라 부르는데, 세상에 잡초란 없다. 모든 풀은 존중되어야 할 목적을 갖고 있고, 쓸모 없는 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풀들도 인간처럼 가족을 이루고 살고, 부족과 추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약초를 캐러 가는 사람은 그 약초의 추장에서 선물을 바쳐 존경심을 표시해야 한다. 그런 다음 실제로 그 풀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풀만 채취해 갈 것이고 그것도 좋은 목적에 사용하리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문명인들은 그러한 순서를 잊어버렸다. 그들은 목적만을 추구한 나머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무시하고 말았고 나아가 '자기를 아는 일'로부터 멀어지고 말았다.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닌데, 다른 지역에 사는 한 남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날 찾아왔다. 그는 인디언의 관습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담배 선물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병으로 고통받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치료를 해주었고, 그는 병이 나았다. 그러나 청년은 자기도 주술사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물론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3일간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말했다. 인디언들은 어떤 것을 결정할 때 대개 3일의 시간을 갖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이 청년을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래서 3일의 여유를 준 것이다. 하루하고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서 청년은 나를 찾아와 자기에게 의통을 전수할 것인지 물었다. 대단히 참을성이 없는 친구였다. 지금은 세상 사람 모두가 이처럼 끝없이 서두른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니다. 난 너에게 인디언 의술을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배운다 해도 넌 마법사 정도밖에 못 될 것이고, 결국 너 자신과 네 주위 사람들을 해칠 것이다." 청년은 무척 화를 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오직 주술사가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내가 치료하는 방식을 모방하기 시작했고, 우리 인디언들이 사용하지 않는 방법들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결국 몸 속의 기운이 치받쳐 그는 머리카락과 눈썹이 다 빠졌으며, 그것은 하나의 경고였다. 결국 그는 서둘러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만 했다. 문명인들은 모든 것을 서둘러 원하며, 많은 노력 없이 그것을 얻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더 많은 걸 놓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사물에 대한 이해를 놓치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해에 필요한 만큼 충분히 그 세계 속에 몸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당장 쉽고 빠른 대답을 원한다. 삶의 가르침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단순히 자리에 앉아서 진리에 대해 토론한다고 해서 진리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리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당신은 진리를 살아야 하고, 진리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해도 진리는 깨닫기가 어렵다. 진리는 아주 천천히, 점진적으로 다가오며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문명인들은 자연에 고삐를 채우고,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을 인간의 하인으로 만드는 일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문명인들이 자연의 방식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를 말해 준다. 또한 오늘날의 자연환경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고 있다. 대기오염을 두려워하고, 방사능과 더러워진 물을 두려워한다. 대지는 오염되고 자원은 사라졌거나 무용지물이 되어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너무 늦은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자연을 길들이려는 어떤 장치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연의 의식세계를 통제하려 든다면 그것은 비극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람의 본성과 존재 목적에 반해서 어떤 한 개인의 길을 결정짓거나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처음에는 가능할 것처럼 보이나 결과는 비극적이다. 결국 모두가 두려워하고 위험스럽게 생각하는 길로 향해 갈 뿐이다. 치료행위에 있어서도 우리는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진정한 치료사는 치료받는 사람의 카르마(업)와 운명을 충분히 고려한다. 더불어 진정한 치료사는 각 사람의 영혼이 걸어나가야 할 길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것만이 보다 실제적인 치료를 가능케 하며, 인간을 그가 처한 고통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 자연은 고귀한 것이며, 인간 내면의 자연 역시 고귀하다. 자연은 언제 어디서나 존중되어야 한다. 모든 생명,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존중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우리 인디언은 모든 것에는 필요한 때와 장소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말하기는 쉬워도 이해하기는 어렵다. 삶을 통해서 당신은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인디언은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삶을 살고 삶 속에서 그것과 조화를 이룬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약초를 구하는 때와 장소를 안다. 약초뿐 아니라 해와 땅, 구름, 모기, 식물, 사람과 동물이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해가 떨어진 다음에는 약초를 채집하지 않으며, 필요한 때만 약초를 수집한다. 어떤 풀을 뽑아서 그냥 내버리는 일이 없으며, 재미로 무엇을 죽이는 법이 없다. 우리에게는 잡초라는 것도, 모기에 물리는 것도, 원하지 않는 비도 없다. 바람과 비, 모기와 뱀이 모두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나면 겨울의 눈도 우리 자신이고, 여름의 꽃도 우리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본질은 우주의 본질과 하나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본성을 배울 수 있다. 문명인들의 삶은 자연이 아닌 것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나무와 새로부터, 곤충과 동물로부터, 변화하는 날씨로부터 아득히 멀어져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참된 본성으로부터도 멀어졌다. 그러한 나머지 문명인들은 자연스러운 것과 마주치면 낯설어하고 어색해한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책임을 져야 하며, 생각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어떤 특정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을 때 인디언은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먹을 필요가 없듯이, 생각에 떠오르는 것마다 말할 필요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하는 말을 잘 관찰하며, 오직 좋은 목적을 위해서만 말을 한다. 원하지 않는 생각을 비우고 마음을 맑게 가져야 할 때가 있다. 그때를 위해서 우리는 꾸준히 자신을 훈련시킨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생각이나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하다. 당신의 마음 속에 떠오르는 꿈과 생각과 관념에 대해 당신 자신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자신을 억압하거나 생각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 다만 자신이 생각과 말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생각이 줄곧 떠오를 경우 그것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라. "난 이런 생각들을 선택하지 않겠다."라고 말한 뒤 그 생각을 혼자 내버려 두면 곧 사라져 버린다. 인디언 전사와 같은 인내심으로 그것을 해나가면 언젠가는 몸과 마음이 정결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대지 위에서의 삶을 충분히 살고 나면 우리는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 할 일이 있고 이뤄야 할 목적이 있는 한 우리는 이곳의 삶을 계속해야 한다. 따라서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떠나는 것은 자신에게 거짓된 일이고, 어머니인 대지에게도 거짓된 일이다. 어떤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은 그것이 아직 우리의 성장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일이 그곳에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지 말 것이며, 그 길을 따르고 그 길을 존중하고 그 길과 직접 대면해야 한다.
모든 병과 고통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것들은 늘 지나간 어떤 것, 다가올 어떤 것에 따른 보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병과 고통에 대해 아무런 치료행위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왜 그 일이 일어났는가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문명인 의사들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 않다. 인디언 주술사의 역할이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어떤 것의 결과이며, 또 다른 어떤 것의 원인임을 안다. 그것은 하나의 사슬처럼 이어진다. 때로 어떤 병과 고통은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그것을 사라지게 하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자신은 그것을 모를지라도 그의 영혼은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3일 동안의 시간을 갖는 것이며, 그 결과 치료를 거부하기도 한다. 육체의 고통은 좋든 나쁘든 어떤 이유를 갖고 있으며, 그것들은 언제나 영적인 차원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어떤 질병에 감염된다는 것은 영적으로 순수하지 못했음을 뜻한다. 육체에 일어나는 일은 그것으로 전부가 아니며, 따라서 치료사는 육체 이상의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문명인 의사들은 환자가 찾아오면 질병만 관찰한 뿐 사람을 관찰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채 약을 주어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든지 신체의 어느 부위를 잘라 쓰레기통에 버린다. 어쩌면 그것은 불필요한 일일 수도 있고, 전혀 치료가 아닐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인디언은 신체적인 고통에 무척 관심이 높으며, 자연적인 수단으로 고통을 없애는 데 관심이 크다. 우주 안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영적 차원이 있다. 자연 속의 모든 물질은 그 나름의 영적 차원을 갖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약초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것은 바로 그 약초의 영적 차원의 협력을 얻는 일이다. 단순히 화학 물질의 합성만으로 치료가 가능하진 않다.
나는 우리 모두가 가슴 안에 자기만의 교회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도 자기만의 교회를 가슴 안에 갖고 있다. 당신이 그 교회를 따를 때 당신은 위대한 정령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세상의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해도 자기 가슴 속의 교회를 잃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우리 인디언이 가르침 받는 방식이다. 사람은 저마다 그 자신만의 모습을 갖고 있으며 이 세상에 온 그만의 목적을 갖고 있다. 또한 저마다 그만의 모습, 그만의 목적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그 자신만의 길을 갖고 있다. 따라서 누구도 그 길을 방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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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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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2 - 임어당
제12장 신에 가까운 것은 누구인가
2. 어째서 나는 이교도가 되었는가
종교는 언제나 자기만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종교관을 세워야한다. 진지하기만 하다면 결말은 어떻든, 신의를 어기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종교적인 경험은 각자가 모두 옳다. 왜냐하면 앞서도 말한 것처럼 각 개인의 종교적인 경험을 논의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 문제로 매우 괴로워한 정직한 영혼의 진지한 체험담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된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일반론을 피하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이교도이다. 이 성명 가운데는 기독교에 대한 반역적인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역이라는 말은 너무 가혹한 말이다. 나의 경우는 아주 천천히 걸음을 옮겨 기독교로부터 조금씩 멀어진 인간이며, 그동안에도 사랑과 경건한 마음으로 죽을 힘을 다해 여러 가지 교리에 매달려 보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모두 나에게서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반역이라는 말은 이러한 심정을 올바르게 표현한 것이 못된다. 즉 증오하는 마음은 절대로 없었으니까 반역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나는 목사의 집에서 태어나 한때는 기독교의 선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그 덕분에 종교적으로 고투한 모든시기를 통하여 묘한 나의 자연적인 감정은 반종교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의 편이었다. 감정과 이성과의 싸움을 거쳐 점차로 어떤 입장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테면 속죄설을 단호히 부정하였다. 그것은 이교도의 입장에서 가장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제다. 우주와 인생에 대한 이러한 신앙 상태는 내적인 투쟁을 할 필요도 없고, 나에게 자연스럽고도 편한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 지금도 그 점은 변함이 없다. 이런 마음의 과정은 갓난 아기가 젖에서 떨어지고, 잘 익은 사과가 땅에 떨어지듯이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사과가 떨어질 시기가 왔을 때에는, 나는 그 떨어지는 것을 막지 않는다. 노장 철학가의 말을 빈다면 도에 산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또 유럽인의 말투로는 자기의 영혼의 불길에 따라 자기와 우주에 충실하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지성적인 진지함이 없다면 아무도 진실되고 행복할 수는 없다. 이미 진실되다면, 천국에 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이교도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바로 진실된 것이다.
그러나 <이교도>라는 것은 <기독교이다>라는 것과 같으며, 단지 말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것은 소극적인 성명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 독자에게는 이교도라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는 뜻일 뿐이리라. 그리고 <기독교도이다>라는 것은 매우 막연하고 애매한 말이기 때문에 <기독교도가 아니다>라는 말로 오해되고 되고 있다. 이교도라고 하면 종교를 믿지 않고 신의 존재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석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신>이니 <인생에 대한 종교적인 태도>니 하는 의의는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위대한 이교도들은 자연에 대하여 언제나 몹시 경건한 태도를 가져왔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말을 보통 흔히 쓰는 그런 뜻으로 해석하여, 단지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그러나, 심미적인 영감을 얻으러 가는 것은 이뿐만은 아니다. 그런 것이라면 지금의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종단에 속하지 않고 보통의 정통파적인 교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이러한 식으로 생각해 두어야 한다. 적극적인 이교도로서 중국의 이교도가 있는데, 이들은 내가 누구보다도 친밀감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이교도이다. 그들은 이 땅 위의 생활이야말로 인간이 염두에 둘 수도 있고 또 염두에 두어야 하는 모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이 세상에서의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아주 즐겁게 살아가려는 것이다. 인생의 깊은 슬픔도 잘 알고 있지만, 쾌히 그것에 직면하고, 인간 생활의 착하고 아름다운 면에 마주치게 되면 언제나 날카로운 관찰안으로 이를 보고 착하 일을 행하는 것 그 자체가 충분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천국에 가기 위해 선을 행하거나, 천국에 마음이 끌리고 지옥에 위협을 받거나 하지 않으면 선을 행할 필요도 없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런 <종교인>에 대하여 그들은 가벼운 연민이나 경멸을 느끼고 있다. 이 점은 나도 수긍이 간다. 이 설명이 옳은 것이라면, 자기 자신이 자각하고 있는 이교도 외에도 아직도 많은 이교도가 미국에도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현대의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가진 기독교도와 이교도와의 간격은 사실상 종이 한 겹의 차이다. 다른 것은 그러한 기독교가 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때뿐이다.
종교적인 경험의 깊이를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황청 추기관인 뉴유먼과 같은 신학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란 하찮은 것이며, 오늘날까지 무서운 오해를 받았을 것이다. 현재 내가 보는 바로 기독교 신자와 이교도와의 정신 생활에서 서로 다른 점은 다만 다음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신이 지배하고 보살피고 다스리는 세계에 살며 끊임없이 신과 교섭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애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도하시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행동은 또한 때에 따라서는 신의 아들이라는 의식과 일치되는 데까지 높여지는 수도 있다. 물론 사람의 일이니까 모든 생애를 통해서 또는 1주일 동안을 통해서 또는 단 하루만이라도 이 수준을 줄곧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어서 그의 생활은 인간적인 수준과 참된 종교적인 수준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다. 한편 이교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흡사 고아와도 같은 것이다. 천국에 언제나 누군지 그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기도를 드린다는 영적인 관계를 통하여 자기의 복리를 지켜 주고 있다는 든든한 마음은 이교도에게는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기도교가 살고 있는 세계에 비하면 그다지 태평스러운 세계는 못된다. 그러나, 그곳에는 또한 고아로서의 은혜와 위엄이 있다. 필요에 의하면 독립을 배우고 자기를 지탱해 나가는 길을 알며, 원숙해질 수 있는 덕을 닦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아를 보면 알 수 있다. 모두 그와 같다. 이교로 개종하게 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참으로 나를 겁나게 한 것은 이지적인 신앙 문제는 아니었다. 신의 사랑을 받지 않고 세상에 내던져진다는 느낌이었다. 기독교도로 태어난 많은 사람들은 모두 그렇겠지만, 만일 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이 세상은 밑바닥이 없는 연못이 되고 말 것이라고 나는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이교도가 이윽고 도달할 수 있는 하나의 경지가 있다. 거기에 서서 기독교의 세계를 보면, 보다 따뜻하고 보다 유쾌한 듯이 보이지만 동시에 훨씬 유치해 보이며 아직 미숙하다고 말하고 싶은 데가 있다. 기독교 세계의 환각이 깨지지 않도록 가만히 놓아 두면 유익하기도 하고 활동하기에 편하게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참된 이교도의 생활 방법 이상의 것도 아니고 이하의 것도 아니다. 또 아름답게 채색된 세계이기는 하지만, 그 때문에 뚜렷하고 굳건한 진실성이 부족하며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낮은 세계이다. 나라는 인간은 무슨 일이건 적당히 채색되어 있다든가 실질적인 진리가 없다든가 하는 것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자진해서 치러야만 하는 댓가가 있는 법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입장은 살인자의 입장과 아주 비슷하며, 심리적으로는 똑같은 것이다. 즉 사람을 죽이면 다음에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죄를 자백하는 일이다. 이교도가 되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 점이다. 그렇지만, 한 번 최악의 것을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더 이상 두려워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음의 평화란 여러분이 최악의 것을 받아들였을 때의 정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여기서 나 자신이 이교 또는 도교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와 이교도의 세계가 서로 다른 점은 다음과 같이 말하여도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속에 있는 이교도는 긍지와 겸허한 생각 때문에, 다시 말해서 기분상의 긍지와 이지적인 겸허한 마음 때문에 기독교를 거절한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후자 편이 중요한 동기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우선 정서적인 자존심(긍지)이 어째서 동기의 하나가 되었는가 하면 우리가 근엄하고 단정한 신사 숙녀로서 행동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사실 외에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론상(또한 여러분이 굳이 분류하고 싶다면) 나의 이러한 생각은 전형적인 휴머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다. 다음에 겸허한 마음, 이지적인 겸허한 마음이 가독교를 배격하게 하는 좀더 강한 동기가 되었다는 것은 간단한 이유에서이다. 즉 이 우주의 극히 작은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 태양계, 그것의 극히 작은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구, 나아가 그 작은 지구의 극히 작은 한 조각인 하나하나의 인간이 대 조물주이 눈에 아주 중요한 것으로 비친다는 것은 우리의 천문학상의 지식으로 미루어 도저히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뻔뻔스러움과, 그 교만하게 거드름을 피우는 태도는 나를 아연하게 만들었다. 어찌 백 만분의 일도 모르는 지극히 높은 존재의 성질을 생각하거나 그 속성을 가정하거나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기독교의 근본 교의의 하나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일상생활의 실제에서 얼마나 우스운 불손한 태도를 발휘하고 있는가를 다음 두서너 가지로 알아 볼까 한다. 나의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기 나흘 전에 큰 비가 내렸다. 상주 지방에서는 7월에 흔히 있는 일이지만, 만일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면 시가지는 홍수가 나서 장례식은 거행할 수 없다. 가족의 대부분이 상해에서 와 있었기 때문에 장례식을 연기한다는 것은 좀 괴로운 입장이었다. 집안 식구들 가운데 한 기독교도가 있었다. 좀 극성스러워 보였으나 중국의 기독교도로서는 그다지 드물게 보는 편도 아니었다. 그 본인이 나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하느님을 믿고 있는데, 하느님은 자신의 자손들을 도와 주실 것이 틀림없다고 하면서 비를 멎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비가 멎었다. 마치 보잘것 없는 기독교도 집안에서 날을 연기하지 않고 장례식을 치를 수 있도록 비가 멎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때, 부인이 한 말이 정말 걸작이었다. 우리 한 가족이 없었다면 하느님께서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창주에 사는 몇 만명의 주민들을 무서운 홍수의 희생이 되게 하셨을 것이라느니, 비가 멎은 것은 창주에 사는 백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기독교도의 한 집안을 위해서인 것이며, 예정대로 장례식을 거행하고 싶으니 비를 멎게 해 달라고 기도드린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이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자기 본위인 사고방식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느님이 이토록 이기적인 자식들에게 은총을 내리시리라고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옛날 중국에 불교를 믿지 않는 학자와 신자인 어머니가 있었다. 독실하게 불교를 믿는 어머니는 밤낮으로 천 번씩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면서 부처님의 은총을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염불을 하기 시작하면 그녀의 아들이 번번이 <어머님도 참!> 하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어머니는 이를 몹시 귀찮게 생각했는데 아들이 말하기를 <이것 보세요 어머님, 부처님 역시 어머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머님이 귀찮아 하시는 것처럼 귀찮게 여길 거라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했다는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독실한 기독교도였다. 아버지가 저녁 기도를 드리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했다. 나는 다감하고 종교적인 아이였다. 목사의 아들로서 나는 종교 교육의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혜택을 받음과 동시에 그 약점 때문에 괴로움도 받았다. 종교 교육이 베풀어 준 은전에 대해서는 나는 언제나 감사했고, 그 약점을 자신의 힘으로 바꾸었다. 중국인의 철학에는 인생에 행운, 불운이란 따로 없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국 연극을 보러 가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고, 중국 악사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도 절대로 허용되지 않았다. 또한 위대한 중국 민족의 전설이나 신화와도 완전히 절연되어 있었다. 기독교 계통의 대학에 들어간 뒤로는 그나마 아버지에게서 받은 초보적인 중국 고전의 지식도 완전히 무시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오히려 좋았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 덕분에 뒷날 완전히 서구적인 교육을 받은 뒤에, 동쪽의 동화의 나라를 찾아간 서쪽 나라의 어린이처럼, 신선하고 발랄한 기쁨을 갖고 동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학생 시절과 청년 시절에 붓을 버리고 만년필을 쓴 것은 나에게는 가장 큰 행운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마음의 준비가 다 될 때까지, 동양 정신 세계의 신선함이 손상됨이 없이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베수비어스 화산이 폼페이 시를 뒤엎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폼페이의 기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돌을 깐 차도 위에 마차바퀴가 지나간 자국이 오늘날 보는 것과 같이 그토록 뚜렷하게 새겨져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 계통의 대학에서 받은 교육은 실로 나에게 있어서는 베수비어스 화산이었다.
사색한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색은 언제나 악마와 손을 맞잡고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젊은 대학생 시절이 나의 가장 종교적인 시대이기도 했다. 그 무렵에 기독교적인 생활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성과 무슨 일이나 이성으로 처리하려는 지성과의 싸움이 일어났다. 톨스토이로 하여금 하마터면 자살하게 만들 뻔했던 고뇌나 절망을 이상하게도 나는 느껴본 일이 없었다. 어느 단계에서도 나는 나 자신을 빈틈없는 기독교도라고 느꼈고, 신앙에도 파탄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톨스토이와 비교해 볼 때 약간 더 자유주의적이고, 기독교의 교의를 받아 들이는 것도 적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언제나 산상의 수훈으로 되돌아 올 수가 있었다. <들에 핀 백합을 보라>고 한 싯구는 너무나 잘된 말이었기 때문에 좀처럼 의심해 볼 수도 없었다. 나에게 힘을 부어 준 것은 이 싯구와 기독교도로서의 정신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식이었다. 그러나, 교리는 급속도로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우선 표면적인 문제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서기 1세기 무렵에 일어나리라고 예상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도 일어나지 않았고 사도 또한 부활되지 않았는데도, 이미오래 전에 깨져 버린 <육체의 부활>은 아직도 사도 신앙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의아하게 느끼게 한 일 중의 하나였다. 신학과에 적을 두고, 신성한 것 가운데서도 가장 신성한 것을 배우게 된 뒤로, 신앙 가운데의 또 하나의 제목, 처녀 잉태가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어서 미국 신학교의 여러 선생들의 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 신자는 세례를 받기 전에 우선 이 제목을 무조건 믿어야만 하게 되었는데, 같은 교회에 속하는 신학자들이 이 문제를 논의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분격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진지한 태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또한 아무래도 옳은 일이라고도 생각할 수 없었다. 또 나아가서, 천국의 <수문>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매우 하찮은 일에 대한 신학적인 주석을 공부하게 된 뒤로, 내 마음도 편해져서 이제는 더 이상 진지하게 신학을 연구해 보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따라서 내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교수들은 내가 기독교 선교사로서 알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장로도 내가 그만 두어도 좋다는 정도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나를 가르친다는 헛된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이것이 그 모습을 달리한 하늘의 축복이라는 것이었다. 만일 그대로 계속해서 성복을 입는 몸이 되었더라면, 뒷날 지금처럼 쉽게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었을는지 어떨지 의문이다. 그렇지만, 신학자에게 요구되는 신앙과 보통 일반 사람들이 개종할 때 요구되는 신앙과의 모순, 나는 이에 대하여 반항적인 마음을 느끼는데, 이것이야말로 내가 <반역>이라고 부르고 싶은 감정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에 와서는 기독교 신학자는 기독교의 적이라는 생각을 나는 갖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애써도 두 개의 커다란 모순을 극복할 수가 없었다. 첫째의 모순은, 신학자들이 기독교의 모든 구성이 능금의 존재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다. 만일 아담이 능금을 먹지 않았더라면 원죄는 없었을 것이며, 원죄가 없다면 속죄의 필요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능금이라는 것의 상징적 가치는 어떻든 간에 이것은 나에게는 자명한 이치였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도대체 예수 그분의 가름침에 대하여 불충실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예수 자신은 원죄니 속죄니 하는 말은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러 가지 문헌을 연구하여 나는 모든 현대 미국인들처럼 죄의식을 느끼지도 않을뿐더러 단순히 그것을 믿지도 않는다. 만일 신이 나의 어머니의 절반쯤이라도 나를 사랑해 준다면, 나를 지옥에 떨어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이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의식하고 있는 최종적인 사실이다.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나는 이 진리를 부정할 수는 없다. 또 하나의 명제는 이것보다도 더 한층 부자연하게 생각된다. 즉 이런 이야기다. 아담과 이브는 그들의 신혼 시절에 능금을 먹었고, 이에 신은 굉장히 노하여 두 사람을 벌주었는데, 이 두 남녀가 저지른 조그마한 죄 때문에, 그들의 자손인 인류는 대대로 맨 끝 대에 이르기까지 그 죄를 짊어지고 고통을 받아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이 벌 준 아담의 후손들이 신의 외아들인 예수를 죽였을 때, 신은 크게 기뻐하여 그들을 용서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설명을 할지 해설을 할지 모르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나는 도저히 묵인할 수가 없다. 이것이 나를 괴롭힌 마지막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나는 아직 열성 있는 기독교도였다. 자진해서 북평에 있는 예수교 계통이 아닌 대학인 정화 학당의 일요 학교에서 지도하여 많은 동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일요 학교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큰 고통거리였다. 마음 속으로는 전혀 믿지도 않은데, 맑게 갠 한밤중에 노래를 부르는 천사의 이야기를 중국 어린들에게 들려 주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미 무슨 일이나 이성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다만 사랑과 두려움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에게 행복과 평화를 느끼게 해 주는 전지전능한 신, 그 신의 사랑 없이는 행복이나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하고까지 생각되는 신, 그 신에 대한, 이른바 하나의 미련이었다. 공포라는 것은 고아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하는 두려움이었다. 마침내 구원이 왔다. 어느 날 나는 동료와 함께 토론을 하고 있었다. <만일 신이 없다면 사람은 착한 일을 하지 않게 되고, 인간 세계는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지 않겠는가> <어째선가?> 하고 유교도인 그는 말했다. <사람은 본디 올바른 마음을 갖고 태어난 동물일세. 그러니까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하는 걸세. 단지 그것뿐인 거야. 달리 이유 따위는 없는 것일세> 인간 생활의 존엄을 말한 이 한 마디는 기독교에 대한 나의 마지막 인연의 줄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는 이교도로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나에게는 뚜렷하다. 이교의 세계는 기독교의 세계보다는 단순하다. 기독교와는 달라서 아무것도 가정하지 않는다. 또 아무것도 가정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올바르고 착한 생활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것뿐인 것이다. 아무런 가설도 거치지 않았다. 이교가 선행을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좋은 행위가 좋은 행위 자신을 인정할 필요를 없앰으로써이다. 선은 그 자체가 선이다. 그러므로 이를테면 사람들에게 약간의 자선 행위를 하게 하는 데도 기독교적인 일련의 가설이나 가정, 다시 말해서 원죄니 속죄니 십자가니 천국의 축재니 천국에 있는 제3자를 위한 인간적인 서로간의 의무니 뭐니 하는 공연히 복잡하기만 하고, 아무도 그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도 없는 그러한 이야기 속에 사람을 끌고 들어가지는 않는다. 선행은 선행이기 때문에 선행이라는 설을 받아들인다면, 올바른 생활에 대한 온갖 신학상의 듣기 좋은 말은 장황하여 도덕적인 진리의 빛을 흐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애는 최종적인 절대적 사실이다. 구태여 천국에 있는 제3자에 관한 것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보는 바로는 기독교는 도덕성이라는 것을 공연히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죄라는 것을 무언가 조금 매력이 있고 그럴 듯해서 슬쩍 범하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만들어 버렸다. 이교는 이와는 다르다. 이교야말로 종교를 신학에서 구해 내어, 아름다운 신앙의 소박함과 인간적 감정의 위엄성을 되찾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1, 2, 3세기에 얼마나 많이 신학적으로 복잡한 일이 일어나고, 산상 수훈의 단 한 진리를 거북하고 독선적인 구성으로 바꾸어, 결국 성직이라는 것을 고마운 제도로 만들었는가. 나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묵시라는 말 속에 그 이유가 포함되어 있다. 예언자에게 주어지고 사도가 이어 받아서 끝까지 지키는 특수한 신비 또는 신의 계획의 묵시라는 생각, 이것은 마호멧교, 몰몬교, 활불을 숭상하는 라마교, 에디 부인의 크리스찬 사이언스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교에 있어서 인간을 구제하는 전매 특허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었다. 성직자는 모두 묵시라는 공통된 음식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 수훈에 담겨 있는 단순한 진리는 장식을 해야 하며, 그리스도가 그토록 탄상한 들에 핀 백합도 도금을 해야만 했다. 이리하여 생겨난 것이 <첫 번째 아담> <두 번째 아담> 등이다. 초대의 기독교 시대야말로 강한 설득력이 있어 반박하는 사람도 없었던 사도 바울식 논리도, 그 무렵보다는 훨씬 치밀해진 현대적인 비평 의식에 대해서는 이미 힘이 없고 나약한 것으로 생각된다. 엄중한 아시아식 귀납법과 그보다는 탄력이 있고 정교한 현대인의 진리관과의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모순과 거리감, 여기에 기독교적인 묵시나 그밖의 묵시가 현대인의 마음을 끌어 당기는 힘의 약함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교의 세계로 돌아가 묵시를 단념하는 것에 의해서만 원시적인(나에게 있어서는 보다 만족스러운) 기독교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교도를 가리켜 무종교자라고 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 다만 어떠한 종류의 묵시 따위를 믿기를 거부한다는 점만이 무종교라고 하면 할 수도 있다. 이교도는 모두 신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이교도는 모두 신을 믿고 있다. 중국 문학에서 잘 나타나는 호칭으로는 이른바 조물주라는 것을 믿고 있다. 다만 기독교와 달라서 중국의 이교도는 매우 정직하기 때문에 조물주를 신비로운 후광 속에 모셔 놓고, 거기에 외경과 존숭하는 마음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느낌을 갖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이 우주의 아름다움, 수천 만에 이르는 훌륭한 창조의 솜씨, 별이 지닌 신비, 하늘의 장엄함, 인간 정신의 존엄은 그들도 또한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그것으로 또 만족하다. 그들은 고통과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죽음도 또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또 생활의 은혜도 있다. 상쾌한 전원에는 시원한 바람도 불고, 산 위에는 밝은 달도 떠 있다. 인생의 명암을 적당히 받아들여 굳이 불평을 말하지 않는다. 하늘의 뜻을 좇는 일이야말로 진실로 종교적이며 경건한 태도라고 생각해 이를 <도에 따라 산다>고 말하고 있다. 조물주가 일흔 살에 죽으라고 하면 기꺼이 일흔 살에 죽는다. <천도는 운행>하는 것, 이 세상에는 영원한 부정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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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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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뒤안길 - 빌헬름 바이셰델/옮긴이 : 이기상, 이말숙
24. 쇼펜하우어 - 사악한 통찰력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확실히 박애주의자는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그는 인간을 극히 혐오했다. 그는 스스로를 "인간 혐오자" 라고 불렀다. 한때 유명한 여류 작가였던 그의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는 아들의 "비뚤어진 심성" 을 매우 한탄하였다. 아들의 "천박한 세계와 인간의 곤궁함에 대한 끊임없는 한탄"은 그녀의 신경을 몹시 건드렸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동료들이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항상 의심스런 눈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그는 침실에 항상 무기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또 집의 가장 은밀한 곳에 값나가는 물건을 숨겨두었다. 이발사가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벨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이발사에게 면도를 시키지도 않았다. 누군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그는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언젠가는 바느질하는 어떤 얌전한 여자가 수다를 떨어 그를 방해했다고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적도 있었다. 그 일로 인해 그녀는 평생 불구로 지내게 되었고, 쇼펜하우어 자신도 평생 보상의 의무를 지게 되어 두고두고 자책감과 경제적인 부담으로 괴로워했다. 그는 출판업자들이 그의 책을 보급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끊임없이 다투었다. 그는 말년을 프랑크푸르트에서, 그 스스로 그렇게 말했듯이 "염세주의자"로서 완고하게 외부인과의 접촉을 끊고 살았다. 함께 생활한 유일한 존재는 그가 아꼈던 충실한 부들 강아지뿐이었다.
그의 증오의 대상은 무엇보다도 특히 철학 교수들이었다. 물론 쇼펜하우어도 한번은 대학에서 강의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베를린 대학에서 그는 학생들이 자신의 강의를 몹시 원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고 유명한 헤겔의 강의 시간대에 자신의 강의를 개설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은 거의 없고, 나중에는 청강자가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자 몹시 놀란다. 그는 결국 교수직을 포기하고 재야 학자가 된다. 그렇지만 그는 그 같은 실패를 자기 자신의 탓이 아니라, 밤에는 늑대로 변하는 것 같은, 다른 철학 교수들의 그릇된 증오와 과도한 시기심 탓으로 돌린다. 물론 동료들은 그를 증오하거나 시기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그에 대해 도대체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몹시 실망한 그는 지독한 독설을 퍼붓기 시작한다. 그는 모욕할 대상을 선별하는 데 신중을 기하기 위해 법적인 자문까지 받았다. 그의 신랄한 인신 공격의 대상은 그 누구보다도 헤겔이었다. 헤겔의 학설은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허풍스런 헛소리에 불과한 철학" 이며, "허풍"이요, "사이비 지혜" 이며, "정신병자의 수다"로 여겨졌다. 또한 헤겔을 "허풍스런 도배장이", "사기꾼", "정신이 썩어빠진 추악한 남자"로 생각했다. 피히테에 대해서도 헤겔 못지 않게 나쁘게 평가한다. 쇼펜하우어가 판단하기에 피히테의 말은 "궤변" 이며, "요술장이의 주문" 일 따름이었다. 물론 그 시대의 철학에 대한 이러한 가차없는 선고에서 쇼펜하우어 자신은 제외시킨다. 그의 사상과 비교해 볼 때 이전의 철학자들-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몇 몇 영국 학자들을 제외하고는-의 사상은 "피상적인 것" 이라고 간주한다.
그는 자기가 "철학의 숨은 황제" 라고 자칭한다. 더 나아가 자신을 철학적 종교의 창시자로 부상시키기까지 한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을 따르는 몇몇 추종자들을 "사도", "복음사가" 라고 불렀다. 같은 시대의 사람들이 그를 거의 인정하지 않자, 그는 "후대의 판결" 에 호소한다. "내가 어떤 대상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식쟁이로 창피를 당하는 때가 올 것이다." 마침내 성공과 더불어 명성이 찾아들자, 그는 의기양양해 한다. "나는 수많은 철학 교수들의 오랜 세월에 걸친 똘똘 뭉친 저항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해냈다." 대학 교수 다음으로 쇼펜하우어의 경멸의 화살이 쏠린 대상은 "여성" 이었다. 비록 그 또한 젊은 시절에 몇 몇 여성들과 즐거운 경험을 나눈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성적 충동으로 이성이 흐려진 남자들만이, 키가 작고 어깨가 좁으며 엉덩이가 크고 다리가 짧은 이 여자라는 존재를 아름답다고 한다. 당연히 여자라는 족속은 속된 존재라고 불러야 한다. 여자들은 음악에 대해서도, 시에 대해서도, 조형 미술에 대해서도 아무런 참된 감정이나 이해력이 없다. 만일 그들이 그런 능력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남자들의 마음을 끌려는 의도로 꾸민 흉내일 뿐이다." 여자들의 특징이란 "미치광이에 가까운 낭비벽", "본능적인 교활함", "뿌리뽑기 어려운 거짓말 습관" 등이다. 요컨대 여자란 일종의 "하위의 존재"이며," 어린이와 본래의 인간이라 할 수 있는 남자 사이의 중간 단계" 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경멸은 그의 특징인 뿌리깊고 포괄적인 염세주의에서 비롯된다. 염세주의는 그의 사유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철학에 "음산함과 암담함"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염세주의적 특징 때문에 그는, 지난 반세기 동안 대단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이 그러한 사상에 특히 귀를 기울여 예상하지도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특히 인간 현존재에 초점이 모아지는데, 그에 따르면 인간 현존재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이다. 욕망은 끊임없이 가라앉힐 수 없는 새로운 욕망을 부채질해댄다. "인간 마음에 나 있는 바닥이 뚫린 심연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인생은 결국 "계속되는 사기" 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계속해서 욕망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 결국 인간은 이러한 무의미한 유희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피할 길 없이 권태로워지는데 이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권태,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인간 삶의 특징을 형성하는 불행이 싹트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갖가지 고난과 지속적인 불행의 상태" 이다. "개개인의 인생사는 고뇌의 역사이다." 이것은 특히 인간 현존재의 죽음에서 잘 드러난다. "인간의 인생 행로는 희망의 조롱을 받고 죽음의 팔에 안겨 춤을 추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은 모두 결국에는 난파를 당해 부서진 돛대를 안고 죽음의 항구로 흘러 들어온다." 인간의 삶은 희극과 비극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다. "왜냐하면 하루의 방황과 번뇌, 순간의 부단한 조롱, 한 주일의 소망과 두려움, 짖궂은 장난에 의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매 시간의 사건들 등은 완전히 희극적인 정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 헛된 노력, 잔인한 운명에 의해 짓밟힌 희망, 커지는 괴로움 끝에 마지막으로 죽음이 등장하는 전 생애의 불행한 오류는 언제나 비극을 연출한다." 여기에 덧붙여 인간들은 서로 아웅다웅 다투며 삶을 고해로 만들어버린다. "불의, 극도의 부당함, 냉혹, 심지어 잔인한 행위는 인간들이 서로를 괴롭히는 행동 방식" 이기 때문이다. "미개인은 서로를 잡아먹고, 문명인은 서로를 속인다. 사람들은 이것을 세상살이라고 말한다." 인간 세상은 "지옥이고, 그 안에서 인간들은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고통받는 영혼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옥의 악귀들이다. " 말하자면 삶이란 "비탄의 연속일 뿐이며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 따라서 쇼펜하우어가 보기에 "낙천주의는 순전히 허무 맹랑할 뿐만 아니라 정말로 사악한 사유 방식이며,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인류의 재난에 대한 쓰디쓴 조롱이다." 그러나 비참함은 단지 인간의 삶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고통 속에 내던져져 있다. 전체 자연은 존재하기 위한 무자비한 싸움터이다. 전체 자연은 "끊임없이 고통받고 불안에 떠는 생물들의 투기장이다. 한 존재는 다른 존재를 잡아먹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고, 그래서 맹수들은 저마다 모두 다른 수천의 존재들의 살아 있는 무덤이며, 이 맹수의 자기 보존은 수많은 고문에 의한 죽음의 연쇄 사슬인 것이다." 모든 현실을 특징짓고 있는 것은 "생명에서 본질적으로 생기는 고통이며, 세상은 그러한 고통이 넘쳐흐르고 있다." 이렇듯 세계는 "도처에서 결국은 파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를 가능한 최선이라고 간주한 라이프니츠와는 반대로, 쇼펜하우어에게 있어 이 세계는 모든 가능한 세계 중 가장 나쁜 세계이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알게 되는 모든 것이란 "모든 사물의 헛됨과 모든 화려한 세계의 공허함" 을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 한마디로 세계는 "있어서는 안 될" 어떤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현실에 대한 이러한 염세적인 시각은 바로 그의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기도하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고찰해 보아야만 한다. 그가 세계의 고뇌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 논증은 근본적인 철학적, 형이상학적 숙고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이 말은 인간이 사물을 표상한다는 단적인 행위의 사실 요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쇼펜하우어는 오히려 전체 현실은 단순히 인간에 의해 표상된 현실로서 실재한다는 것을 말하려하고 있다.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은 사물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그러한 방식으로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오직 사물에 대한 표상만이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을 뿐이다. 인간은 나무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단지 나무에 대한 그의 표상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쇼펜하우어는 똑같은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간은 "태양이나 대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단지 태양을 보는 눈과 대지를 만져 보고 느끼는 손만을 알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모든 사물은 단지 현상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쇼펜하우어는 그의 스승 칸트의 충실한 제자인 셈이다. 그가 사물의 시간과 공간 및 인과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들을 인간의 정신에 귀속시켰을 때에도 그는 칸트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시간적, 공간적, 인과적인 것은 사물 그 자체에 통용되지는 않는다. 시간적, 공간적 인과적인 것은 사람들이 사물에 던지는 시선에 통용되는 것이다. 인간은 시간, 공간, 인과성을 원래 자기 자신 안에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마치 세계 안에 있는 것처럼 본다. 세계의 현상에 대한 이 명제는, 나중에 드러나겠지만,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에서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쇼펜하우어가 실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현상이라면, 그것은 순수하고 적나라한 관념주의에 머물 것이다. 세계는 단지 가상일 뿐이며, 인간적인 정신으로 꾼 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쇼펜하우어처럼 현상의 개념을 좀더 정확하게 심사 숙고해 본다면, 현상의 배후에는 어떤 것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 점은 이미 칸트가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다만 최고로 규정되지 않은 "사물 그 자체", 즉 거기에 대해서 아무 것도 진술할 수 없는 "X" 만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쇼펜하우어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사물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진술을 과감히 시도한다. 이러한 의도에서 그는 간접적인 방법을 택한다. 처음에 그는 육체를 갖춘 본질로서의 인간이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인간은 자신의 육체를 이중적인 방식으로 인식한다. 첫째, 육체는 그에게 있어서 사물 가운데 하나의 사물이며 직관할 수 있는 표상의 객체이다. 그러나 둘째로, 인간 속에는 육체가 직접적으로 느끼는 내면의 시야도 있다. 이때 육체는 인간 의지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육체의 움직임은 의지의 자극에서 비롯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외적으로 관철된 의지의 자극일 따름이다. 쇼펜하우어는 신체의 기관과 형태도 인간 의지의 표현 방식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와 같은 명제에 이른다. 본질적으로 볼 때, 인간의 육체는 대상으로 관찰된 객관화된 의지이다. 육체는 물체로서 나타나지만, 그 자체 존재(즉자적 존재)는 의지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해서 인간 존재의 영역에서 자체 존재의 본질에 속하는 어떤 것을 발견하였다고 생각한다. 즉 의지는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본질인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육체에 대한 이와 같은 이중적인 관점을 모든 실재의 본질을 해석하는 열쇠로 이용한다. 현실에는 자체 존재의 영역이 있으며, 그 안에서 사물은 사물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의지의 구체화로서 이해된다. 왜냐하면 의지는 "식물을 싹트게 하고 성장시키는 힘이고, 수정을 결정시키는 힘이며, 자력이 북극으로 향하는 힘이고, 이질적인 금속들이 갈라져 나와 구별되게 하는 힘이며, 원심력과 구심력으로서 또는 분리와 결합으로서 나타나는 물질의 친화력 속에 있는 힘이며, 최종적으로는 돌을 대지로 끌어들이고, 지구를 태양으로 끌어들이게 하는 모든 물질 안에 강하게 작용하는 중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에서나 하나의 의지의 힘이 지배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쇼펜하우어는-인간 의지의 문제점에 대한 많은 유추를 통해-다음과 같이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세계란 그 자체 존재와 그 내면의 본질을 고찰해 볼 때 의지이다. 세계는 현상하는 의지로서 현존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의지를 자기 실현 속에서 많은 의지로 나뉘어진 단일한 원동력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원초 의지는 인간의 경우처럼 처음부터 의식된 의지의 형태로 나타날 수는 없다. 원초적 의지는 오히려 그 근원에서부터 "맹목적이고 제어될 수 없는 충동" 이다. 이러한 원초 의지가 자체로부터 이렇듯 풍부한 세계 현실을 산출시키는 것이다. 무기체의 세계에 작용하는 힘에서부터 인간의 인식된 의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외화의 단계에서 원초 의지는 스스로를 인식을 향해 정화시켜 나간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나의 철학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세계는 의지의 자기 인식이다. " 여기에서도 쇼펜하우어의 전체 사유를 규정하고 있는 염세주의가 대두된다. 왜냐하면 그는 세계를 철저하게 지배하는 고통을 원초 욕구에서 파악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쇼펜하우어가 간파한 원초 의지는 투쟁과 대립으로 가득 차 있다. 원초 의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분노한다. 따라서 원초 의지는 자기 구체화에서도 투쟁적이고 대립적이다. 즉 상호 충돌로서, 유기체의 세계에서는 끊임없는 투쟁으로서, 인간 세계에서는 항구적인 대결로서 나타난다. 세계의 불행이 바로 이 끊임없는 보편적인 투쟁에 의해 성립되고 있는 한, 세계를 산출해 내는 원초 의지에는 더욱 깊은 분열이 드러나게 된다. 즉 원초 의지는 고통을 야기시키지만, 여기서 고통을 받는 것도 역시 그 자신이다. 다시 말해 원초 의지의 자기 구체화의 단계에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내는 원초 의지로 모든 실재의 통일적인 해석을 위한 하나의 형이상학적 원리를 발견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원리를 전통이나 그 시대 철학의 유사한 원리들과 구별한다. 원초 의지는 세계에 내재하며 따라서 세계를 초월하는 신적인 근원은 아니다. 원초 의지는 헤겔에서처럼, 정신의 성격을 지닌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충동이며 의지이다. 쇼펜하우어는 그러한 형이상학적 근본 원리를 단초로 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사물들 사이를 어떤 깊은 통찰력 없이 단순히 헤매며 떠돌아다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형이상학적 동물" 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형이상학적 욕구를 부여받았다. 그것은 이미 종교에서 잠정적인 형태로 표현되며, 그 후 철학에서 최고의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철학은 세계에 대한 놀라움과 의혹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예외 없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가 작용한다. "철학을 하도록 만드는 경이감은 분명히 세계 안에 있는 고통과 악을 바라보는 데서 생겨난다." "의심의 여지없이 죽음에 대한 지식이나 삶의 고통과 궁핍에 대한 고찰은 철학적 성찰을 하고 세계에 대해 형이상학적 해석을 하도록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은 어떻게 끊임없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그것은 1차 단계에서, 인간이 그의 사유에서 의지에 의한 곤궁과 의지에 의한 규정성에서 벗어나며, 개별적인 것의 인식을 초월하여 자신을 세계와 사물의 순수한 직관으로 고양시킬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면 인간은 자신의 제한되고 고뇌로 가득 찬 개별성과 그것의 인식 방식을 초월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는 이해 관계가 없는 고찰에 이르게 된다. 비로소 순수한 관조의 상태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밝고 영원한 세계의 눈"이 된다. 인간이 이 단계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은, 의지의 덧없는 형태가 아니라, 그 순수한 본질에서의 사물, 또는 쇼펜하우어가 플라톤의 사상을 좇아서 표현하고 있듯이 사물의 이데아이다. 사물의 이데아는 본질적이고, 덧없이 지나가는 것들에서 끌어올려진 영원히 존재하는 실재의 원래 형상이다. 예컨대 광석의 원래 형상, 나무의 원래 형상, 인간의 원래 형상이다. 사물의 이데아는 실재 안에서 이 실재의 다양한 형태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렇지만 그 자체로서 볼 때 이데아란 과연 무엇인가? 이데아는 순수하고, 모든 실재에 앞서 가는 원초 의지의 표현이다. 원초 의지는 처음에 이데아의 영역에서 자신을 구현하고 그 뒤 그것에 따라 비로소 가시적인 현실 속에 자기를 구체화시킨다.
이데아에 대한 관조는 무엇보다도 예술의 관심사이다. 예술은 "세계의 유일한 본래의 본질적인 것, 세계 현상의 참된 내용, 전혀 변하지 않는 것, 따라서 어느 시대에나 똑같이 진리로 인식되는 것" 등을 고찰한다. 이것은 먼저 건축 양식에서 시작된다. 건축 양식은 무거움과 견고함의 이데아를 그 상호간의 투쟁 속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그 다음은 인간 육체의 순수한 이데아를 표현하는 조각품으로 진전된다. 그것은 다시 실재 이데아의 다양함을 재현하는 회화로 인도되며, 계속해서 시로 이어진다. 시는 인간의 이데아를 그 노력과 행위와 관련된 계열 안에서 나타나게 하고, 그것을 초월해서 모든 세계 이데아를 나타나게 한다. 그것은 음악에서 절정을 이루는데, 음악은 세계의 순수한 본질을 표현한다. 그렇지만 예술 작품의 창조와 감상은 인간을 의지와 결속된 고통에서 지속적으로 구제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인간을 단지 잠깐 동안 그의 고뇌에 가득찬 개별성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을 뿐이다. 이렇듯 예술은 단지 일시적인 위안일 뿐이다. 의지와 의지의 혼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일은 필연적이다. 이제 이것은 단지 고통만을 만들어 주는 의지가 근본적으로 부정됨으로써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어려움이 대두된다. 원초 의지에서 생겨나는 것은, 애초부터 필연적으로 생겨난다. 그렇다면 그 자신 역시 원초 의지에서 생겨난 인간이 어떻게 자유로이 의지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쇼펜하우어는 이 의문을 어떤 강인한 힘을 통해 해결한다. 그는 간단하게 이렇게 주장한다. 분명 인간은 순전한 필연성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그렇지만 그는 한 가지 점에서 자유롭다 즉 모든 것을 규정하는 의지에 맞서 자기 자신을 부정할 수 있다는 바로 그 가능성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에 대해 확실한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이때 윤리적인 행동 요소, 즉 책임감, 판단력, 죄책감에서 출발한다. 이것들은 분명히 자유를 전제한다. 그렇지만 자유는 자신의 자리를 어디에 둘 수 있는가? 행동과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것은 철저히 인과적으로 규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는 인간의 그때 그때의 개별적인 속성에 자리해야 한다 인간이 자기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것은 본래 그가 이런 저런 일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이런 저런 일을 행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쇼펜하우어는 다시 형이상학적 사변으로 돌아오게 된다 인간이 책임지게 되는 그러한 속성은 그의 경험적 특성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예지적 특성" 에서-쇼펜하우어는 칸트를 좇아 그렇게 말한다-성립된다. 예지적이라 함은 "모든 현실적 존재에 앞서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이러하다. 인간은 그의 출생에 앞서 자유로이 일정한 규정된 성격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택했으며, 따라서 그 후 자신의 삶에서 그 성격에 따라 행위하며 그 성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비록 그의 경험적 현존재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그의 본질의 뿌리에 있어서는 자유롭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의지를 부정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의지의 부정은 어떻게 수행되는가? 의지의 부정은 두단계, 즉 이론적인 단계와 실천적인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이론적인 길은 다음의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시작된다. 즉 모든 현실의 근본 예는 원초 의지가 지배하고 있으며, 그 원초 의지가 자신의 분열 때문에 세계에 고통을 야기 시키고 있다. 인간이 이 점을 파악한다면, 그는 또한 세계 안에서의 그 모든 고뇌에 가득 찬 사건이 단지 참된 실재의 현상, 즉 원초 의지의 현상일 뿐이고, 그 자체가 실제적이 아님도 통찰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사건은 그를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사유 속에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하게 된다. 그러면 근심과 절망을 대신해서 절묘한 태연함이 영혼에 찾아든다. 즉 마음이 집착하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체념과 무의지가 그것이다. 이러한 태도의 당연한 귀결은 금욕이다. 금욕의 마지막 완전한 단계에서는 내면의 평화가 찾아오며, 그 평화 안에서 의지는 완전히 소멸된다. 그것이 바로 "바다와 같이 고요한 상태" 이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두번째 단계에서 행위를 통한 의지 부정이 일어난다. 두번째 단계는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 주는 데에서 성립된다. 쇼펜하우어는 이것 역시 형이상학적으로 증명한다. 만일 모든 생명체가 단일한 원초 의지 안에 포용되어 있다면, 그것들은 서로 한 뿌리 안에서 결속되어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로써 믿을 수 없는 개별성의 울타리는 무너져 버린다. 다른 사람의 고통은 곧 나 자신의 고통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통찰에서 연민이 싹튼다. 인간은 연민으로 인류 전체의 고통을, 아니 모든 생물의 고통을 함께 견뎌 낸다. 연민은 이렇게 해서 이기주의를 극복하는 도덕적 자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연민은 정의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이 통용된다. 즉 이기주의에서 악이 생기고 연민 에서 선이 생긴다. 이것이 쇼펜하우어 윤리학의 기본 원칙이다. 그의 윤리학에 따르면 고통을 만들어 내는 의지는 연민의 행위를 통해 부정된다. 이것은 물론 쇼펜하우어에게는 순전히 이론에만 그치고 있다. 그는 그의 삶에서 동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에게도 연민을 갖지 않았다. 의지의 이론적인 부정도, 실천적인 부정도, 궁극적으로는 쇼펜하우어의 모든 사상의 맹아인 그 예외 없는 염세주의를 없앨 수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보다는 비존재를 단호히 더 선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는 니르바나(열반), 즉 존재하는 모든 것의 소멸을 갈망한다. 여전히 그에게는 세계와 인간의 참된 목표는 무이다. "우리 앞에 단지 무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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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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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깨달음
아프리카 사냥 여행에 참가한 한 여인이, 잘생긴 백인 사냥꾼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호랑이가 덫에 걸리면 그게 호랑이인지 어떻게 알죠?" "노란 털과 줄무늬를 보고 알 수 있답니다, 부인." 사냥꾼이 대답했다. "그리고 사자가 덫에 걸리면 그게 사자인지 어떻게 알죠?" "갈색 털과 휘날리는 갈기로써 알 수 있죠." "코끼리를 잡으면 어떻게 알아보죠?" "그건..." 사냥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장 쉽죠. 입에서 땅콩 냄새가 나는 것으로 알 수 있죠."
- 너무 걱정하지 말라. 깨달음은 실로 거대한 것이다. 일단 깨달음이 오면 그것이 무엇인지 입증할 필요도 없이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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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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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寒而慄(불한이율) 不(아닐 불) 寒(찰 한) 而(말 이을 이) 慄(떨 률)
사기(史記) 혹리(酷吏)열전에는 혹독한 관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漢)나라 무제(武帝)는 중앙 집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방호족 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채용하였다. 당시, 의종(義縱)이라는 사람은 왕태후의 총애를 받은 누님의 덕택으로 현령과 도위를 지내다가, 남양 태수를 거쳐 다시 정양 태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남양태수로 재임하면서, 도위(都尉)였던 영성(寧成)의 일가를 죽인 바 있어, 이미 법 집행이 엄격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정양 태수로 부임하자, 정양군 내의 호족세력을 평정한 후, 2백여명의 범죄자들을 체포하였다. 동시에 그는 사적(私的)으로 감옥에 드나들며 죄인들을 면회한 사람들을 죄수 탈옥 기도죄로 구속하였다. 의종은 이 자들은 사형수들을 탈옥시키려 하였다 라고 판결하고, 그 날 중으로 4백여 명을 전원 죽였다. 이후 군내의 호족들과 백성들은 춥지 않아도 벌벌 떨었으며(其後郡中不寒而慄), 교활한 자들은 알아서 관리에게 협력하여 공무를 도왔다.
不寒而慄(Trembling without being cold) 은 몹시 두려운 상황 을 형용한 말이다. 무더위 속에서 공포 영화를 즐기는 이들은 바로 이러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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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과학 / 예술 / 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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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다살이 - 권오길
12. 노래하는 나비 유충
여기에서는 브라질과 멕시코 사이에서 살고 있는 나비의 유충 똥구멍(사실은 뒤쪽의 돌기다)의 즙을 빨아먹는 개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놈 개미는 유충이 소리내어 오라면 달려오고, 머리에서 훅 화학물질을 분비하면 모두 머리를 쳐들고 날아드는 말벌을 쫓는다. 우리는 개미가 진딧물의 항문을 간질러서 나오는 액체를 받아먹는 대신에 진딧물을 천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공생이 있다는 것은 다 아는데 여기에 덧붙여 나비의 유충도 묶어서 생각해 나가길 바란다. 나비 유충 체액을 받아먹는 이 개미는 진딧물과도 공생관계를 맺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나비 유충이 나무의 잎을 갉아먹기는 하지만 다른 메뚜기 같은 먹새가 좋은 곤충들이 달려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개미와 공생관계라는 것이다. 혼란스럽지 않게 한 나뭇잎에 나비 유충, 진딧물, 개미가 같이 산다는것을 생각하면서 읽어주기 바란다.
개미가 먹이를 마련하는 방법은 다양해서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놈에서 시작하여 여기저기 죽어 있는 동물의 시체나 버려진 쓰레기를 먹는 놈, 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놈, 곰팡이를 키워먹는 놈, 여기 이야기의 주인공들처럼 식물이나 다른 곤충류에서 즙을 빨아먹고 사는 놈 등 다양하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나비의 유충은 개미가 달려들어 잡아먹는 밥이 아니었던가. 논두렁이나 밭가의 개미집을 건드려 본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날렵하고 사나운가를 알 것이다. 그런 류의 개미가 얌전하게 식물의 잎이나 잎자루 밑에서 분비하는 꿀을 빨아먹고(열대식물들은 잎자루 밑에서 꿀을 내는 경우가 많고 우리가 키우는 양란의 꽃대 아래에도 꿀이 있다. 이렇게 향기가 없는 꽃은 꿀을 뿜어서 곤충을 모은다. 그리고 세상은 묘해서 잎 좋고 꽃 좋은 난은 없다고 한다) 또 나비 유충과 진딧물에서 고급스런 먹이를 얻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개미 중에서 10퍼센트가 채 못되는 종들이 이렇게 살아간다고(공생하면서) 한다. 그리고 개미와 공생하는 나비는 세계적으로 2개 과뿐인데 부전나비과(Lycaenidae)와 미국 남부에만 사는 리오디니대(Riodinidae) 13,500종의 나비 중에서 약 40퍼센트의 유충이 개미를 보디가드로 두고 있고 색과 모양도 다양하다. 그런데 이들 나비의 유충은 3가지의 특수 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흥미를 끈다.
첫째, 뒤쪽 꼬리 근방에 툭 튀어나온 2개의 돌기가 있는데 그것을 개미가 슬쩍 건드리면 그 꼭대기에서 체액이 나오고 그것을 개미가 빨아먹는다. 액체 분비 후에는 몸 안으로 돌기를 집어 넣는데 그러면 개미는 계속 그것을 문질러댄다. 이것이 꿀샘으로 이들이 살고 있는 크로톤(Croton) 나뭇잎에서 나오는 꿀보다 유충의 것을 개미는 더 좋아한다. 식물의 꿀은 33퍼센트 정도가 설탕이나 유충의 체액에는 꿀말고도 아미노산이 들어 있어 더 좋아한다고 한다. 둘째, 머리 쪽에 1쌍의 촉수기관이 있는데 여기서는 개미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분비하는 페로몬과 똑같은 물질을 분비한다. 천적인 말벌이 날아오는 것을 유충이 지각하고 이 촉수기관에서 페로몬을 분비하면 개미들이 위험을 알아차리고(유충이 분비했지만 자기들이 쓰는 것과 같아서) 머리를 치켜들고 흔들어서 말벌을 쫓는다. 정말로 멋있는 적응이 아닌가. 개미들이 만들어 서로 뿌리는 화학성분과 똑같은 것을 나비의 유충이 만든다니, 생물에서 나타나는 의태의 또 다른 한면이다.
셋째, 머리 부분 제1 몸마디(체절)에 아주 작고 움직이는 막대 모양의 것이 붙어 있는데 긴 뿔을 가진 갑충이 잡히면 목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찌익찌익 소리를 내듯이 이 유충들도 개미만 알아듣는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그 소리는 개미들이 먹이를 발견하면 서로 알리는 진동소리와 같다고 하니(주파수와 펄스도 같다고 한다) 개미의 비밀을 유충이 멋지게 훔친 의태라 하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유충이 목을 들락거리면 소리가 나고 그러면 개미들이 먹이가 있는 줄 알고 몰려와서 체액(배설물)을 먹고 말벌로부터 유충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유충의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과 소리가 개미의 그것과 같다는 것은 이것들이 서로 평행하게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비의 유충이 향기(냄새)를 풍기고 매력적인 노래를 불러서 개미로 하여금 텃세나 먹이모으기의 본능을 유발시켜서 서로 도우면서 산다니 그냥 애벌레라 부르기가 민망하다.
대표적인 연구의 대상인 나비는 디스비 아이레내(Thisbe irenea)라는 종이었는데 크로톤이라는 나뭇잎에 나비가 산란하면 부화하여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커간다.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나비 유충이 잎을 갉아먹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잎이나 잎자루에서 나온 꿀은 개미와 진딧물이 먹고 있을 뿐더러 유충이 불러서 온 개미가 나무에 와서 설쳐대니 메뚜기, 풀무치 떼가 달려들어 왕창 뜯어먹히는 것을 피할 수 있어 좋다. 그래서 몇 마리의 나비 유충이 먹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미의 입장에서 보면 나무에서 나오는 꿀과 유충이 분비하는 단물만 먹고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급하면 소량이지만 진딧물에서도 얻어먹을 수 있어서 좋다. 이때 진딧물도 꿀 주는 대신 개미의 보호를 받는다. 즉 진딧물이 있어서 그 나뭇잎에 개미가 몰려오는 요인도 간과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진딧물이 진 빨아먹은 나무에 대한 보상이다.
나비 유충의 입장에서 한번 더 보면 나무에 다른 곤충들이 없어서 먹을 것(잎이)이 얼마든지 있고 개미소리 흉내 내어 부르기만 하면 개미가 오니 말벌한테 안 먹혀서 좋다. 또 말벌이 오면 개미 경고 페로몬을 분비해서 개미가 말벌을 쫓는다. 이렇게 식물, 진딧물, 나비 유충, 개미가 어울려서 공생생활을 해가고 있는 데 잘 들여다보면 이들이 상대방에서 서로 이득을 얻지만 생존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나비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들의 생활사를 잘 관찰하면 이와 유사한 마음을 현혹시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나비나 나방이의 유충들은 몸에 센털인 강모나 긴털을 가지고 있어 개미의 접근을 막고 힘 약한 유충은 사정없이 개미의 밥이 되는 것인데 저쪽 세상에 서로 돕고 사는 놈들도 있다니 믿어지지 않으나 사실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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