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뒤안길 - 빌헬름 바이셰델/옮긴이 : 이기상, 이말숙
23. 헤겔 - 인간 내의 세계 정신
"천박하고, 우둔하고, 역겹고, 메스껍고, 무식한 사기꾼인 헤겔은 전례없이 뻔뻔스럽고 어리석은 실없는 소리들을 잔뜩 늘어놓았는데, 이것을 그의 상업적인 추종자들은 불멸의 진리인 양 나팔을 불어댔으며, 바보들은 그것을 진실인 줄로 알아 환호하며 받아들였다. 헤겔은 교육받은 한 세대 전체를 지적으로 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 지극히 명료하게 표현된 이 글은 어떤 사람이 순간적인 실수로 내뱉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은 분명 깊이 생각한 다음 발표한 것으로, 이 글을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였다. 쇼펜하우어는 일시적으로 치미는 분노에 못이겨 이런 글을 쓴 게 아니었다. 그의 저작들은 헤겔에 맞서 꾸준히 새로운 공격을 퍼붓는다. 그는 헤겔을 "불쌍한 후원자", "정신성을 가장한 괴물", "속을 뒤집어 놓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그의 철학에 대해서는 "내용 없는 헛소리", "무의미한 수다", "철학적인 희극", "지금까지는 그저 정신 병원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무의미하고 미친 듯한 언어들의 뒤범벅"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사람이, "그 이전의 어느 누구보다도 헛소리를 매끄럽게 번드르한 말로 지껄이는" 그가, "맥주집 주인 같은 모양을 한" 이 "모순 투성이의 서생" 이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독일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간주되어 왔다. 그렇지만 후세에는 헤겔에 대한 진실이 폭로될 것이라고 쇼펜하우어는 예언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헤겔이 너무 "지나치게 경멸스러운 짓"을 하고 있으며 따라서 "후세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것일 뿐"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후세 사람들은 헤겔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얼마 동안은 그를 거의 잊고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의 사유는, 쇼펜하우어의 그 모든 예언에도 불구하고, 근세에서는 오직 칸트만이 그에 필적할 만한 중요성을 획득하게 된다. 헤겔에 관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저작이 저술되었고, 전 세계에 헤겔 학회가 결성되었으며, 온갖 부류의 헤겔 학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헤겔에게 경도되기를 거부하는 사람조차도 진지한 의미로 철학을 하려고 든다면 그와의 한판 승부를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더 나아가 헤겔은 그의 제자인 마르크스를 통해 우리의 현 세계의 구체적인 사건에까지 관여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헤겔을 공격한 쇼펜하우어의 장광설은 잊혀졌다. 이 일은 후세 사람들이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쇼펜하우어의 글에서 보이는 도가 지나친 분노의 표현은 대체로 개인적인 원한에 근거를 두고 있는 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대학 교수로서 헤겔과 경쟁하려 했지만 참패를 당하고 만다. 그는 그의 사유가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고 확신한 나머지, 이제 신출내기 철학사 강사인 주제에 자신의 강의들을 헤겔의 강의와 동일한 시간대로 옮겨 개설한다. 그런데 예상과는 반대로 학생들은 헤겔의 강의실로 몰려들 뿐 쇼펜하우어의 강의실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한 학기를 마친 후 쇼펜하우어는 그의 강의를 중단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의 청중이란 텅 빈 의자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듯 학생들이 헤겔에게로 몰려들었다는 것은 물론 놀랄 만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의 강의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고, 헤겔 또한 학생들이 감동할 만한 달변가도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강의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있었다. 그에게는 강의를 듣는 학생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충실했던 한 학생은 우아한 필치로 이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기운 없이 다소 언짢은 듯 머리를 낮게 숙인 채 몸을 움츠리고 앉아서 그는 커다란 노트를 앞뒤로 넘기고 위아래로 훑으면서 계속 말을 하며 무엇인가를 찾았다. 끊임없는 헛기침과 잔기침은 말의 유연한 흐름을 계속 방해했고, 그래서 각 문장은 따로따로 떨어지거나 긴장된 어조로 갈라져 나왔으며 때로는 뒤죽박죽 섞이기도 했다. 모든 낱말과 모든 음절은 아주 힘들게 조각조각 발음되었는데 금속성의 음색을 띤 억센 슈바벤 지방 사투리는 마치 발음되는 하나 하나의 낱말인 가장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기이한 중량감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깊은 존경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에게 경의감을 품도록 만들었다. 가슴 벅차게 사람을 사로잡는 진지함과 소박함에 이끌려 그 모든 마땅찮은 상황 속에서도 끈기 있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 해독해 낼 수 없어 보이는 것들의 밑바탕을 저 위압적인 정신이 기막힐 정도로 훌륭하게, 담대한 자기 확신감으로 편안하고도 순탄하게 문제를 파헤치고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목소리는 차츰 커지고 눈은 모인 청중들 너머로 날카롭게 번득이며, 뿌리깊은 확신의 섬광이 소리없이 타오르며 빛을 발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결코 미욱한 점이 없는 말로 영혼의 그 모든 고상함과 심오함을 헤집고 다녔다."
이처럼 일에 신들린 듯 몰두하는 자세는 그의 소년 시절부터 나타난다. 슈투트가르트 김나지움 학생인 헤겔은 일기를 썼다. 그는 순수하고도 진지한 성찰들을 때로는 독일어로, 때로는 라틴어로 일기에 적었는데, 신과 세계에 대한 조숙한 견해와 행복, 미신, 수학과 자연 과학, 세계 역사의 흐름, 심지어 '여성의 성적 특성' 에 대해서까지 기록하고 있었다. 청년 헤겔이 여성들과 친밀한 교제를 빈번하게 가진 것은 물론 아니었다. 오히려 헤겔은 그의 동료 학우들에 대해 이렇게 분노하고 있다. "남자들은 쓸데없이 여자들과 산책 따위나 하면서 자기 자신을 망치고 터무니없이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나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 연주회에 다녀와서는 이렇게 쓴다.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보는 것은 상당한 즐거움을 준다." 이러한 사소한 자유 분망한 태도를 제외하면 헤겔의 성격의 근본 특징은 헝크러짐이 없이 진지하다. 이러한 성격은 유명한 슈바벤의 신학교인 튀빙겐 기숙사에 들어가서도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그는 같은 나이의 횔더린과 다섯 살 아래의 조숙한 천재 소년 셸링과 친해진다. 그들은 모두 칸트와 프랑스 혁명에 열광했다. 헤겔은 이러한 그의 청춘 시절의 심취를 일생 동안 변함없이 충실히 지켰다. 스스로 철학자가 됨으로써 칸트의 철학에 충실했으며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는 매년 조용히 혼자 포도주를 마시면서 그 혁명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런데 이 세 사람 가운데 자기 내부의 열광을 가장 잘 숨긴 사람은 헤겔이었으며, 그래서 친구들은 그에게 "노인" 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학업을 마친 후 헤겔은 맨 처음에 가정 교사가 된다. 이 자리는 횔더린이 소개해 주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23세의 나이로 교수가 된 셸링의 추천으로 그 당시 철학자들의 메카로 통했던 예나에 사강사로 초빙되어 간다. 그 곳에서 그는 매우 이해하기 힘들고 심오한 의미로 가득 찬 강의를 한다. 급료가 워낙 박해 그는 정기적으로 바이마르의 문교장관인 괴테에게 보조금을 달라는 청원을 해야만 했다. 그는 예나에서 프랑스 혁명군이 진입하는 것을 보았다. 나폴레옹이 도시로 들어왔을 때, 헤겔은 "세계 정신" 이 말을 탄 것을 보았다고 썼다. 그러나 그 세계 정신은 헤겔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그의 집은 약탈당했고, 전쟁의 혼란으로 봉급 지급이 중단되었다. 실직 당한 철학자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밤베르크에서 편집인으로 활동했으나 곧 "신문 함선" (Zeitungsgaleere)에 싫증을 느끼고 뉘른베르크의 김나지움 교장으로 간다. 난해한 철학자인 그가 어떻게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며 견뎌 냈는지에 대해서는 시인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편지에서 상당한 흔적을 찾아낼 수 있다. "나는 뉘른베르크에서 김나지움의 교장인 존경할만하지만 융통성 없는 헤겔을 보았다. 그는 영웅 서사집과 니벨룽겐의 노래를 낭독하면서 그것을 즐기기 위해 읽는 도중에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낭송하곤 했다."
마침내 헤겔은 46세 때 교수가 되는데, 처음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있다가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간다. 물론 베를린에 익숙해지기까지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베를린이 하이델베르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지겹도록 많은 술집" 이 있다는 점이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고, 꽤 비싼 생계비와 방세 때문에 걱정한다. 그러나 그는 곧 베를린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는 특히 이 점을 본을 여행하는 동안 분명하게 깨닫는다. 본은 전혀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그 점에 대해 아내에게 이렇게 쓴다. "본은 울퉁불퉁하고 거리는 좁아터졌다오. 시의 근교나 경치 또는 식물원이 매우 아름답기는 하지만 말이오. 그러나 나는 베를린이 더 마음에 드오." 사람들은 이에 대해 헤겔의 첫번째 전기 작가가 쓴 그의 사교적 기질에 대한 글을 읽는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은 베를린의 부인들의 사교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또한 반대로 부인들의 사교계는 곧 이 훌륭하고 재기 넘치는 교수를 좋아하게 되어 사랑으로 감싸고 돌보았다." 물론 헤겔이 항상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전기 작가는 계속해서 이렇게 쓴다. "그는 노하고 격분하는 데 대단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일단 증오하기로 작정하면 정말로 철저하게 실행에 옮겼다. 그의 질책 또한 대단히 매서웠다. 그에게 당하는 사람은 곧 사지를 바들바들 떨 정도였다." 때때로 동료들과 불화를 빚게 되는 것도 어찌 보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와 불화를 빚은 사람으로는 고집 센 대학 강사인 쇼펜하우어가 있다. 그리고 슐라이어마허와의 불화도 그중 하나다. 헤겔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는 슐라이어마허와 간단한 대화를 나누기는 했지만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대학 구내에서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이들 두 사람이 어떤 논문에 대해 토론하다가 서로 칼을 빼들고 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이 소문을 공적으로 부인하기 위해 티볼리에서 사이좋게 같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하찮은 일들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헤겔이 대학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는 것과 머지않아 독일의 철학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강의실은 발 들여놓을 틈이 없이 청중들로 꽉 들어찼는데 학생들뿐 아니라, "육군 소령, 대령, 추밀 고문관" 까지 왔다. 그의 철학은 이미 그의 전임자 피히테처럼 갈수록 프로이센 국가의 정신적인 형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것은 물론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 61세 되던 해인 1831년 헤겔은 콜레라로 죽는다. 당시 베를린 전역에는 콜레라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는데, 철학적 사유에 정진하고 있던 한 생명을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 그가 글로 남긴 최후의 말은 "오직 사유하기만 하는 인식의 열정 없는 고요함" 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바로 이 사유하는 인식에 그의 전 생애를 바쳤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밑바닥에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사유하고 행위하며 살고 있는 인간에게는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헤치려 했다. 그것은 모든 위대한 철학이 설정하고 있는 과제이다. 따라서 헤겔을 이해하려면 이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흔히들 그러하듯이 헤겔 사상의 업적을 피상적으로 배울 수 있는 변증법-정, 반, 합의 짤랑거리는 운율--에서 탐지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살아 있는 철학으로서의 그의 사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의 철학은 현존재에 대한 구체적인 물음에서 생겨 나와 체계로 발전해서 마침내 서양 정신의 거대한 형이상학이 된다.
헤겔은 그러한 구체적인 물음에 일찍이, 그것도 칸트를 공부할 때 부딪치게 된다. 칸트는 그의 거대하게 기획된 윤리학 구상에서 의무와 경향을 첨예하게 대립시킴으로써 인간을 두 부분으로 갈라놓았다. 한 부분은 도덕 법칙을 의식하는 "본래의 자기 자신" 이고, 다른 부분은 나쁜 성향을 갖고 있는 "경험적 자아" 이다 그런데 헤겔에게는 "전 인간의 일치"를 되찾는 일이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는 전체 인간의 일치를 사랑에서 찾는다. 사랑은 인간의 도덕적 본질의 표출일 수 있으며, 그것은 또한 인간의 자연적 성향과도 상응한다. 따라서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물음은 헤겔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여기서 그는 첫번째 결정적인 발견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후에 그의 전체 철학의 기본 윤곽을 형성한다. 왜냐하면 헤겔은 사랑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계기를 만나게 되는데, 그 후 그는 이 계기를 모든 현실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계기가 곧 변증법이다. 그러므로 변증법의 뿌리는 추상적 사유 가운데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변증법의 발견은 구체적인 현상의 고찰에서 비롯된다. 여기에서 헤겔은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는다. 변증법은 근원적으로 철학적 성찰의 관심사가 아니라 현실의 본질적인 구조계기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생생한 사건으로서의 사랑에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그는 자기 자신에게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긍정해야하고 정립해야 한다. 그것을 형식을 빌려 표현하자면, 사랑이라는 사건의 전체 속에 있는 정립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더 포함된다. 즉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서 나와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바치고, 이러한 헌신 속에서 자신을 잊어버리며, 그럼으로써 스스로 소외된다.
그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거부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처음의 정립을 부정하고 다른 사람을 자기 앞에 마주 서게 한다. 따라서 사랑의 형식적 구조에는 단지 정립만 속하는 것이 아니고, 부정하는 반 정립도 속한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현상이 완전히 파악된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사랑하는 자가 타인을 사랑하면서 자신을 잊고, 그럼으로써 본래적인 자신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헌신 속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더 심오한 의미에서 자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의 참된 본질은 자기 자신의 의식을 포기하여 자신을 다른 자기 속에서 망각하는데 있으며, 이러한 소멸과 망각을 통해 비로소 처음으로 자기를 소유하고 점유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 정립에 속하는 부정이 다시 부정된다. 소외는 지양되며 동시에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사이의 진정한 종합이 완성된다. 이렇듯 사랑의 사건은 변증법적 과정의 구조를, 그것도 하나의 생생한 사건으로서의 구조를 보인다. "사랑받는 사람은 우리와 대립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의 본질과 하나이다. 우리는 단지 사랑받는 자 안에서 우리를 본다.-그러나 사랑받는 자는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니다.-이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기적이다."
사랑이 현실 속에 있는 하나의 사건이라면, 이 말은 곧 변증법은 현실 속에서 드러난다는 것, 즉 모순과 모순의 화해가 드러난다는 뜻이다. 헤겔은 사랑을 좀더 상세하게 고찰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한다. 사랑은 단지 전체 현실의 개별화된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철두철미하게 꿰뚫고 있다. 사랑은 곧 현실의 근본 진행 과정이다. 모든 생명은 사랑하는 관계에서 생겨나며, 오직 이런 관계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보존한다. 이 말은 사랑 속에서 나타나는 것은 생 그 자체라는 뜻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또한 이 점을 알고있다. 그들은 사랑에 압도당하면서 그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생명이 싹트고 있음을 예감한다. 사랑 속에는 "생명 자체가 존재" 하는 것이다. 이렇듯 헤겔에 의하면 눈으로 보이는 사랑의 이면에는 "생명의 무한한 우주" 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은 거기에서부터 모든 생명체가 생성되는 근거로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비로소 헤겔의 사유는 더욱 심오한 의미에서 철학적 사유로 발전된다. 그는 더 이상 눈앞에 드러나는 것만을 보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의 존재 근원을 묻는다. 그는 또한 사랑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 즉 우주 생명은 현실 일반의 근원임을 깨닫는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에는 하나의 위대한 생명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헤겔은 모든 현실적인 것 중의 현실적인 것으로서의 존재 근원을 "절대적 생명", 또는 "절대자" 라고 부른다. 모든 현실이 절대자 속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보는 것, 모든 것이 한 절대자의 구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헤겔의 철학적 근본 지향이다. 이것은 또한 그의 사유에 형이상학적 특징을 부여한다. 왜냐하면 이제 현실은 바로 이러한 본래적으로 현실적인 것으로 절대자의 관점에서부터 고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은 "절대적인 학문"이 된다.
철학이 절대적인 학문이 되어야 한다는 헤겔의 생각은, 특히 그의 시대와 관련하여 절박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시대는 "생명의 현상에서 자취를 감춘 절대자", "신 자체가 죽었다는 느낌" 등의 표현으로 특징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생각대로라면, 그의 시대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절대자가 다시 그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적 생명은, 헤겔이 단호히 주장하듯이 그의 뛰어난 예시인 사랑에서와 똑같은 변증법적 구조를 보이고 있다. 그것도 또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그들 속에서 전개되는 생명의 표현으로서 고찰할 때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꿰뚫고 흐르고 있는 것이 하나의 동일한 생명이라는 것을 감지한다. 따라서 그 모든 것의 근원에는 생명의 단일성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분리된 본질임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나뉘어짐의 고통을 경험한다. 단일한 생명은 살아 있는 본질들의 다양함 속에 분산되어 나타난다. 그리하여 분열은 근원적으로 자기 자신과 일치하고 있는 생명이 된다. "필연적 분리는 영원한 대립 속에서 자신을 형성하는 생명의 요소이다." 그렇지만 모든 분리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일치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들 속에서 전개되는 생명은 분열에서 통일로 나아가기를 갈구한다. 사랑 속에서 "생명 그 자체는 자기 자신의 중복과 자기 자신의 일치로써 존재한다." 따라서 근원적으로 현실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생명은 스스로 변증법적인 과정인 분리와 결합의 자기 소외와 화해의 영원한 사건이다. 이러한 자기 내적인 리듬으로 생명은 끊임없이 새로운 형상을 창조하고, 그 속에서 자기의 창조적인 본질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은 이 우주 생명을 신성으로 지칭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신성 안에서 살고 있다." 신은 "무한한 생명" 이다. 따라서 헤겔의 사유는 철학적 신학이 된다. 철학의 대상은 "신과 그에 대한 해석일 따름" 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신을 처음부터 절대적으로 철학의 정상" 에 자리하게 하는 데 달려 있다.
모든 것 속에 살아 있고 그 속에서 모든 것이 살고 있는 바로 그 신성은 그리스도교적 의미의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창조주로서의 신이 아니라 "세계의 신" 이다 그렇지만 헤겔은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교의 신의 개념으로 접근해 가서 전통과 분명히 연계되는 점을 찾는다. 그는 신성을 정신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해석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헤겔에게 인간 정신이란 세계 속에서의 신의 가장 고귀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신성이 인간의 정신 속에서 가장 높은 단계로 자신을 구현하고 있다면 신성 자체도 정신적인 유형이어야 할 것이다. "절대자는 정신이다. 이것이 절대자에 대한 최고의 정의이다." 이렇게 헤겔은 그의 철학의 근본 개념, 절대 정신의 사유에 이른다. "신은 절대 정신이다." 그런데 신은 정신이고, 세계는 신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한다면, 거기에서부터 세계 또한 궁극적으로 정신적 존재여야 한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헤겔은 실제로 이러한 엄청난 결론을 이끌어 낸다. 우리가 우리 목전에 보는 모든 것, 즉 인간과 인간 정신의 창조물뿐 아니라 사물, 산, 동물, 식물, 요컨대 전체 자연이 그 근본에 있어서는 정신인 것이다. 사물들이 물질적 속성의 존재라고 여기는 것은 단지 우리의 제한된 유한한 관점일 뿐이다. 세계를 옳게 이해하거나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사람, 헤겔 식으로 말하자면, 세계를 진리에서 통찰하는 사람은 세계를 겉으로 드러난 정신으로 파악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신적인 것만이 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본래적으로 어려운 철학적 과제가 대두된다. 즉 어떻게 신이 자연으로서 그리고 인간 정신으로서 나타나고 있는지, 더 나아가서는 도대체 신성이 세계가 되어야 할 내적 필연성이 과연 있는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헤겔은 변증법이 어떻게 그것의 가장 높은 단계인 신 안에서 다시 한번 나타나는가를 보임으로써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신이 정말 우주 생명이라면, 신은 이러한 우주 생명과 똑같은 동일한 내적 구조를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 정신의 근본 개념" 은 "자신의 타자로부터 자기 자신에게로의 화해의 귀환" 이다. "신은 자기 자신과 구별된 것으로,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 속에서 단적으로 자신과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 즉 신은 정신이다." 바로 이러한 신성 안에서의 내적인 변증법적 사건은-헤겔이 깨달은 바와 같이--신성 스스로가 세계임을 입증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것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헤겔은 인간 정신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인간 정신을 신적 정신의 모상으로 보는데, 그것은 인간 정신이 신의 가장 고귀한 현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 정신의 특징은 무엇인가? 헤겔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존재라고 답한다. 정신은 본질상 자기 의식이다. 그렇지만 자기 의식이라 하여 완전히 완료되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자기 의식의 단계가 존재하며, 그것은 생성, 발전하는 자기 의식이다. 이것은 예컨대 어린 아이가 성장한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데에서도 직접적으로 잘 드러난다. 이제 헤겔은 생성되어 가는 의식의 도정이 변증법적 방식임을 보여주려고 한다. 다시 말해 그 도정이 사랑과 생명의 현상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바 있는 그런 세 단계로 수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신의 발전은 돌출이며, 자기 분리인 동시에 자기 복귀이다."
자기 의식의 제1단계는 정신이 아직 꿈을 꾸고 있는 상태와 비슷하다. 인간은 아직 명확히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의 자아 의식과도 같다. 어린 아이는 자신이 거기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단순한 현존재의 감정은 변증법적 도식에서 정립에 상응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자기 자신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꿈꾸는 상태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것이 제2단계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돌리게 되며,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헤겔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이제 매우 신기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정신이 자기 자신을 보는데, 그에게는 그가 본 그것이 어떤 낯선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는 말하자면 자신의 모습에서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는 놀라서 묻는다. 이것이 나란 말인가? 그리하여 자기 직관 가운데에서 자아에서의 소외가 일어난다 자아는 직관하는 자아와 직관된 자아로 분리된다. 이러한 "자기 소외"가 반정립의 단계이다. 그러나 이 반정립 단계에서도 인간은 아직 현실적이고 완성된 자기 의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자기 직관에서 본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즉 직관하는 자와 직관되는 자는 똑같은 자아라는 사실이다. 헤겔이 말한 바와 같이 이로써 인간은 이제 자기 소외 단계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그는 자기 자신과 화해하게 된다. 이것이 자기 의식에서의 종합단계이다. 이러한 숙고의 결과는 인간 정신은 자기 의식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기 의식은 생성되어 가는 자기 의식이며, 그 자체가 변증법적이다.
헤겔은 이렇게 인간 정신에서 발견한 것을 이제 신의 정신에 적용시킨다. 신의 정신도 생성하는 자기 의식이고, 이 자기 의식의 생성은 변증법적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헤겔이 신성을 이해하고 있는 바를 볼 때 제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신성은 단연코 완료된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어떤 내적인 생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성은 발전을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의식에 도달한다. 바로 이 점에서 헤겔의 신에 대한 사상은 그리스도교의 신에 대한 개념과 가장 명백하게 구별된다 그의 철학적 근본 사상은 신 자신이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신은 자기 자신의 본질을 완전하게 전개시키는 과정을 이행한다는 것이다. 헤겔이 설명해야 하는 두번째 것은, 어떻게 내적인 신의 역사가 변증법적 생성으로 수행되는가 하는 것이다. "절대 정신은 영원히 자기자신과 똑같은 본질로서 자신에 대해 타자가 되며, 이 타자를 자기 자신으로서 인식하는 그런 존재" 이기 때문이다. 이에 상응하는 제1단계가 있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여 절대 정신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과 같다. 헤겔은 엄청난 시도로 이러한 신성의 자신 안의 존재를 "논리학" 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해석하려고 한다. 논리학은 "어떻게 신이 자연과 유한한 정신의 창조 이전에 그 자신의 영원한 본질 내에 존재하고 있었는가를 기술하는 신에 대한 서술" 을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자기 의식이고자 한다면, 신성은 꿈꾸고있는 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다. 헤겔은 신이 완성된 자기 의식에 이르는 과정을 서술하기 시작한다. 먼저 신성은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야 한다. 신성은 제2단계에서 자기 소외를 감내하여 스스로 자신을 외화시켜야 한다. 신성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흡사 낯선 것을 보는 것처럼 직관하는 자아와 직관된 자아로 나뉘어진다. 헤겔은 다음과 같은 치밀한 주장을 내세운다 이렇게 자신 안에서 분열된 신성은 우리의 눈앞에 세계로 나타나는 바로 그것이다. 신성의 자기 소외는 곧 신성의 세계 생성이다. 이 말은 곧 헤겔이 엄청난 과제를 떠맡아야함을 뜻한다. 즉 현실 전체를 신과 절대 정신의 관점에서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의 철학함은 흡사 신의 관점으로 자리를 옮긴 듯하다. 헤겔은 인간 속의 세계 정신이 된다. 세계가 자신의 자기 소외 내에서의 신의 표현이라는 것을 헤겔은 세계 자체에서, 그리고 또한 세계가 우리에게 드러나는 그대로 명확히 보여주려 한다. 세계는 한편으로는 자연으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정신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양자 모두 그 밑바탕에 있어서는 신의 표현으로 파악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철학적 관점에서는 자연을 인식하는 인간 정신이란 곧 신 안에 있는 직관자로 이해된다. 그리고 인간 정신이 인식하는 자연은 이러한 신적인 직관이 관조한 것이 된다. 자연은 "자기 자신의 타자로서의 절대 정신"이다.
우리가 자연, 사물로서 인지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는 신 자신이다. 자기 자신을 낯선 것으로 직관하는 그대로의 신이다. 자연 철학은 헤겔에게 신론이 되며, 자기 소외 속에서의 신에 대한 학설이 된다. 인간의 정신이 자연을 인식한다고 할 때, 이것은 실제로는 인간의 정신 안에 현존하는 신성이 자기 자신을 인식함을 뜻한다. 이러한 자기 직관의 사건 속에서 이미 귀환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자기 의식의 제3단계를 특징짓는다. 왜냐하면 이제 신은 직관하는 자로서, 또 직관된 자로서 하나이며 동일한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자기 의식의 수행의 본질에 속한다. 이러한 신의 자기 자신에로의 귀환은 인간 속에서 수행된다. 인간 속에서 신은 완료된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으로 나타나며, 인간 안에서 신적 자기 의식의 변증법은 마침내 그 끝에 도달하게 된다. 헤겔은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그의 "정신의 철학" 에서 다양하게 기술하고 있다. 신의 자기 인식은 인간 정신의 차원에서 수행되고 있는 그 모든 것의 가장 내적인 의미이다. 신의 자기 인식은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개별 존재에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법, 국가, 학문, 예술, 종교, 그리고 최정점에서는 철학함에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인간이 마침내 전체 현실을 신적 정신의 표현으로서 파악하는 데 성공하게 되면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신성은 자신의 세계 생성과 균열의 긴 모험을 마치고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들어왔다고 말이다.
헤겔이 여기서 기도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다. 헤겔은 전체 현실을 절대 정신의 순수하고 완벽한 표현으로서 파악하려고 한다. 그는 "절대자가 영원히 자기 자신과 벌이고 있는 비극을 이렇게 묘사한다. 즉 절대자는 스스로 영원히 객관성 속에 탄생되고, 이러한 그의 형태 속에서 자신을 고통과 죽음에 내맡기고 자신의 죄로부터 스스로를 영광 속으로 고양시킨다. "왜냐하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황폐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보존하려는 그러한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견뎌내고 죽음 속에서 자신을 견지하는 생명은 곧 정신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정신은 절대적 균열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함으로써만 자신의 진리를 획득한다." 그렇지만 결국 헤겔의 이 웅대한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는 자신의 체계 안에 짜맞춰질 수 없는 냉혹한 사실 때문에 좌초하고 만다. 분명 그 안에는 신적인 것의 직접적인 표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완벽한 세계 형태가 있다. 즉 완벽한 유기체, 도덕적으로 이해된 국가, 성공한 예술품, 진정한 종교, 위대한 철학 등이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 광활한 사막의 조그만 오아시스일 뿐이다. 이 황폐한 사막은 실재의 현실 속에서 신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가 없다. 거기에는 자연에서와 같은 무의미하고 불완전한 것들이 있고, 또한 수많은 실패한 시도들이 있으며, 삶의 무절제한 낭비와 끝없는 반복이 있다. 거기에는 또한 인간 감각의 혼돈스러운 요소도 있다. 또한 거기에는 역사에서와 같이 도저히 신적인 정신의 완성된 자기 의식으로의 발걸음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의미한 사건들이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을 통해 세계는 신의 순수한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세계 속에는 반대되는 것들이 있다. 즉 반신적인 세력과 카오스의 세력이 있다. 헤겔이 거듭 시도한 것처럼 우리가 세계를 신성으로 파악하려고 고집한다면, 우리는 마침내 신이 세계가 되어 투쟁과 충돌이 일어나고, 가끔 승리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패배가 전개된다는 것까지를 인식해야 한다. 신은 드물게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데 성공할 뿐이며 그 나머지는 파멸뿐일 것이다.
헤겔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가 설정한 과제, 즉 본질적인 관심은 그대로 남아 있다. 즉 세계를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한 점을 발견해야 한다는 과제는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에 비추어 볼 때 헤겔은 모든 철학함의 모범이 된다. 그러나 신의 애매 모호한 점을 인식하며 파고들려는 그의 모든 다양한 시도가 실패했을 때, 철학자에게는 괴테가 인간의 최고의 과제라고 부른 체념만이 남게 된다. "탐구될 수 없는 그것을 조용히 흠숭할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