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명상록
사색하는 생할인으로서, 영원히 낡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아우렐리우스의 고매한 양심의 목소리
제6장 대자연의 이법에 대하여
우주의 실체는 온순하고 유연하다. 그리고 우주를 지배하는 이성은 악을 저지를 요인을 갖고 있지 않다. 이성은 악을 행하지 않고, 아무 것에도 해를 입히지 않는다. 만물은 이 이성을 따라 만들어지고 완성된다. 그대가 그대의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면 춥든 덥든, 졸립든 충분히 잠을 잤든, 남들에게 모욕을 당하든 칭찬을 듣든, 죽음에 직면해 있든 다른 일을 하고 있든 개의치 말라. 우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행위에 있어서도 눈앞에 닥친 일을 잘 처리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그 사물의 고유한 특질과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최선의 복수는 악행을 저지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성은 스스로 각성하고, 방향을 정하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신을 형성할 뿐 아니라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눈앞에 나타내는 것이다. 우주는 혼돈, 만물의 교착산란, 이산이거나 아니면 통일, 질서, 섭리의 통합체이다. 만일 우주가 전자에 속한다면, 만물의 우연한 결합과 무질서 속에 생존하고 싶어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 외에 무엇을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무엇을 하든, 나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가 흩어져 버린다면 나는 무엇때문에 마음의 불안을 느끼겠는가? 그러나 만일 후자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나는 우주의 지배적인 권능을 경배하고 확고히 서서 그 권능을 신봉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주위환경 때문에 마음이 흐트러질 때에는 지체 없이 자기자신으로 되돌아와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 옴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좌우하는 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은 서둘러서 존재하려 하고 어떤 것은 서둘러서 사멸하려 한다. 어떤 것은 마가 존재를 향해 생성되는 과정에 있으면서, 그 일부는 이미 사멸하고 있다. 시간의 끊임없는 흐름이 영원한 시간을 항상 새롭게 하는 것처럼, 운동과 변화는 세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한다. 그렇다면 멈출 수 없는 이 흐름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중요시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날아가는 제비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이미 제비는 시계 밖으로 사라져버린 경우와 같다. 인생이란 피의 증발, 공기의 흡입과 같은 것이다. 공기를 들이 마시고 다시 내뱉는 것, 즉 죽음은 우리들이 순간마다 겪는 일이다. 일생동안 호흡능력 전체를 생각해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대가 어제나 엊그제 태어날 때 받은 호흡능력 전체를 그대는 본래의 대기의 원소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식물이나 가축이나 야수와 같이 호흡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 없는 일이다. 또한 사물의 현상을 통해 받는 인상도, 꼭두각시들을 실로 조종하듯 욕망에 이끌려 행동하는 것도,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가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들은 음식물 중 먹을 수 없는 부분을 떼어서 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 일?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칭찬은 혀 끝에서 나오는 것이다. 명예라고 불리는 이러한 무가치한 환상을 제거해 버리고 나면, 가치있는 것으로 무엇이 남겠는가? 내 생각으로는 그대의 고유의 본질에 따라서 행동하고 자제하는 것이다. 모든 일과 기술도 이러한 본질에 따르고 있다. 모든 기술은 어떤 목적에 알맞는 기능을 갖도록 물건을 만드는 데에 그 목표가 있는 것이다.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포도재배자나, 말이나 개의 조련사도 이러한 목적을 추구한다. 그러나 젊은이에 대한 교육과 훈련의 목적은 다르다. 바로 여기에 교육과 훈련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좋은 것이라면 그대는 이것 이외의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대는 뜻밖의 많은 것을 소중히 여기려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대는 자신의 주인도 될 수 없고, 남들로부터 자립할 수 없으며 격정에서 벗어날 수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는 그러한 것을 그대에게서 빼앗아갈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와 의심을 품을 것이며, 그 사람에 대하여 음모를 꾸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원하는 사람은 마음 속의 갈등을 초래하게 되어 불안 상태에 놓이게 된다. 게다가 신을 자주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그대 자신의 정신을 존중하고 존경한다면 마음의 평화를 얻어 스스로 만족하게 되고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신과의 화해를 이룰 것이다. 신들이 부여하고 명령한 모든 것을 찬양할 것이다.
인간은 얼마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가? 그들은 자신들과 현재 함께 살고 있는 같은 시대의 사람들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며, 보지도 못했고 아직 본 적도 없는 후세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을 소중하다고 생각며 칭찬받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선인들이 그대를 칭찬하지 않는다 해서 불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성취하기 어려운 일이라 해서, 그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맞는 일이라면 그대 자신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라. 운동경기 중에 상대방이 그대를 손톱으로 할퀴거나 그대와 머리를 부딪쳐서 상처를 입었다고 하자. 이런 경우에 분개하거나 모욕을 느껴서는 안된다. 경기할 때 우리는 상대방을 경계하지만, 이것은 원수로서가 아니고 의심해서도 아니다. 다만 그의 공격을 조용히 피할 뿐이다. 인생의 다른 분야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처신하는 것이 좋다. 운동경기장에서 상대방과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라.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다만 피하는 것 뿐이며, 의심이나 악의를 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가 나의 생각이나 행동이 옳지 못하나는 것을 일깨워 준다면, 나는 기꺼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겠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진리이며, 그것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오류와 무지에 굳어 있는 사람은 해를 입을 것이다. 이성이 없는 동물, 일반적으로 이성이 없는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서, 넓은 도량과 관용으로 대하라. 왜냐하면 그대에게는 이성이 있는 반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이 있는 인간에 대해서는 은애로써 대하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 있어서나 신에게 기도로써 도움을 구하고, 기도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라. 세 시간 정도면 충분할 테니까. 똑같은 순간에 우리 모두의 육체와 영혼 양면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러면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하나이면서 전체적인 것 속에 모든 것이 동시에 숨쉬며 존재한다고 해도 그대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란 감각에서 비롯된 인상의 정지, 욕망을 일으키던 충동의 정지, 정신활동과 육체에 대한 봉사의 정지다. 이 세상에서 그대의 육체가 굴복하지 않았는데 영혼이 먼제 굴복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수치다. 맑고 건전한 정신으로 돌아가서 진정한 당신 자신을 찾아라. 잠에서 깨어나라. 그리고는 그대를 괴롭히던 것들은 꿈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깨달아라. 그리고 그대 주위에 있는 것들을 둘러보라. 꿈속의 일과 어떻게 다른가를. 손이나 발로 하는 노동은, 발이 해야 할 일을 발이 하고 손이 해야 할 일을 손이 하는 한, 자연에 위배되는 일이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의 본분을 다하는 한,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것도, 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우주 속에서 아시아나 유럽은 우주의 작은 모퉁이에 불과하다. 모든 바다는 우주 속의 물방울이며, 아토스 산은 우주의 작은 흙덩이이며, 현재란 영원 속에서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보잘 것 없고 가변적이며, 소멸한다. 만물은 보편적으로 지배력으로부터 직접 생기거나 변화를 통해서 나타난다. 따라서 쩍 벌린 사자의 입도, 유독한 것도, 가시나 진흙처럼 해로운 것도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의 모조품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도 그대가 경배하는 절대적인 것과 이질적인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만물의 근원에 관한 올바른 사유를 형성하라.
이 순간 속에 존재하는 사물을 본 사람은 태고적부터 존재해 왔던 모든 것과 영원히 존재하게 될 모든 것을 본 것이다. 만물은 같은 핏줄이며, 같은 얼굴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의 관련성과 그 상호관계를 자주 생각하라. 어떤 의미에서 만물은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얽혀 있으며, 이런 점에서 만물은 상호 애호 속에서 깊은 유대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의 활발한 운동과 상호협조, 실체의 통일성때문에 사물은 질서정연하게 순리에 따라 나타난다. 그대의 운명이 그대의 몫으로 부여한 일에는 적응하라. 그리고 그대와 같은 운명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사랑하라. 진실하고 성실하게. 그대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 하고 분별할 때, 그대에게 해로운 것이 나타나고 이로운 것이 사라지면 그대는 반드시 신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증오할 것이다. 그러한 신이나 사람들의 불행이나 실패의 원인이거나 그 원인일지라고 모른다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분별함으로써 많은 부정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선아그이 개념을 엄격히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만 국한시킨다면 신들을 탓하거나 인간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일의 목적을 의식하면서 일하고, 어떤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지 조차도 모르면서 일하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잠자는 사람조차도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의 실현자요 협력자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은 잠잘 때에도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협력하고 있다. 세상 일을 비난하고 반대하는 자, 심지어 방해하는 자까지도 훌륭히 협력을 하고 있다. 우주는 이러한 사람들까지도 협력자로서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대가 어떤 종류의 일꾼인가를 알아야 한다. 만물을 다스리는 자는 분명히 그대를 협력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 유일한 목적에 이바지하는 일꾼의 한 사람으로서 받으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리시푸스가 말한 바와 같이, 극 중의 야비하고 우스꽝스러운 역할은 맡지 말라. 태양이 비의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많은 별들은 또 어떠한가? 별들은 각기 다르면서도, 한가지 목적을 위하여 협력하고 있지 않은가?
그대가 쾌활해지고 싶거든, 그대의 친구들의 장점을 생각하라. 예컨대 어떤 친구들의 적극성, 겸손, 관용, 그밖의 다른 친구들의 장점들을.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의 장점이 풍부하게 나타날 떄만큼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사는 사람들을 지켜보아야 한다. 명예를 탐내는 자는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자는 자신의 감각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성을 가진 자는 자신의 행위를 가장 선한 것이 이용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깊게 경청하는 습관을 길러라. 가능한 한 말하는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같이하라. 만일 선원들이 타수를 믿지 않고 환자가 의사를 믿지 앟는다면,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 타수가 어떻게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으며, 의사는 어떻게 한자의 병을 고치겠는가?
그대가 그대의 본성의 이법에 따라 사는 것을 방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연의 이법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그대에게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남에게 아첨하려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은 무슨 목적으로, 무슨 까닭에 아첨을 하는가? 시간이 얼마나 빨리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가를, 얼마나 많은 것들을이미 거두어 들였는가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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