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명상록
사색하는 생할인으로서, 영원히 낡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아우렐리우스의 고매한 양심의 목소리
제5장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아침에 일어나는 게 짜증스러울 때는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난다고. 내가 인간다운 일을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고 태어나는 것이라면 불평, 불만을 터뜨려야 되겠는가? 아니면 나는 잠옷을 입고 이불 밑에 누워 뜨뜻하게 지내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단 말인가? 물론 이렇게 지내는 것이 보다 안락하기는 하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 일이나 노력을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쾌락이나 안락만을 누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그대는 작은 식물과 작은 새, 개미, 거미, 꿀벌 등이 우주 속에서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며 맡은 바 소임을 수행하기 위해서 분주히 일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그런데도 그대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려는가? 당신의 본성에 알맞은 일을 서둘지 않으려는가? 물론 휴식이 필요하다. 반드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휴식에도 자연이 규정한 한계가 있는 법이다. 자연은 먹고 마시는 데에도 한계를 정해 놓았다. 그런데도 그대는 이 한계를 넘어서서 그 이상의 것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먹고 마시는 일과는 달리, 그대의 행동에 있어서 그대는 그대의 일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하려고 한다, 결국 그대는 그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대의 본성과 그 의지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기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목욕도 식사도 하지 않고 지칠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일에 땀을 흘린다. 그런데 그대는 녹로공이 녹로 기술을, 무용가가 무용을, 수전노가 돈을, 허영심이 가득한 허세가가 하챦은 순간의 명예를 숭배하는 정도도 그대 자신의 본성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일에 열중할 때에는 침식을 잊고 기술을 완벽하게 향상시키려고 일에 몰두한다. 그대의 안목으로는 사회공익에 유용한 활동이 전심전력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가?
귀찮거나 부적당한 생각을 떨쳐버린 다음, 당장 평온을 누리는 일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모든 말과 행동은 그대에게 조화로운 것임을 생각하라. 남들의 비난이나 비판 때문에 주저하여 일을 뒤로 미루지 말고 어떤 말이나 행동이 옳고 선한 것이라고 생각되거는, 그 일이 가치없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특이한 지도 원리를 갖고 특이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한 비판의 말에 딴 데로 눈길을 돌리지 말고 그대 자신의 본성과 보편적인 자연의 길을 따라 똑바로 걸어가라. 결국은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나는 쓰러져서 영원히 잠들 때까지 자연의 길을 여행하겠다. 그리하여 내가 날마다 들이마신 공기 속에 마지막 숨결을 토해낼 것이며, 아버지가 씨를, 어머니가피를, 유모가 젖을 얻었던 대지에 깊이 묻히리라. 오랫동안 그곳에서 음식을 공급받고, 그 위를 짓밟고, 여러 목적을 위하여 남용하엿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용서해 준 대지 위의 일을 나를 영원히 잠들 때까지체험하련다.
그대는, 사람들이 그대의 뛰어난 재능을 칭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그대는, 나는 그런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또다른 여러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그대의 능력 안에 있는 모든 장점, 즉 성실, 근엄, 인내력, 쾌락에 대한 염오, 운명에 만족하고 허욕을 물리치는 마음, 자비심, 솔직, 검소한 생활, 대범하고 자유로운 정신 등을 보여주라. 그대는 지금 당장에 보여줄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이러한 장점들은 원래 무력하다든가 부적당하다고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자진해서 저급한 차원에 머물려고 하는가? 태어날 떄부터 결함이 있었다고 불평을 하고, 인색하게 굴고, 아첨을 떨고, 남들의 비위나 맞추고, 허세를 부리며 마음속으로는 불안에 떨면서 평생을 살려는가?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것으로부터 해방되었어야 했다. 그대가 그대의 우매한 이해력을 뉘우치기만 했더라도 자신을 개선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노력을 멀리하고 오히려 우매함을 즐기고 있다. 지금 내 영혼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모든 행동을 할 때마다 이런 관점에서 당신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하며, 이성이라고 불리는 나의 이 부분을 어떤 이렝 사용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지금 내 영혼은 어떤 빛깔이며 어떤 향기의 영혼인가? 어린아이의 영혼인가? 아니면 젊은이의 영혼, 연약한 여자, 폭군, 가축 혹은 야수의 영혼인가?
나는 형상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로 구성된 존재다. 이러한 구성분자는 비존재로부터 존재가 생겨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존재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부분은 변이 과정을 거쳐 우주의 어떤 부분으로 환원되고, 다시 우주의 다른 부분으로 변화하며, 이 운동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나는 존재하며, 나를 낳은 부모도 그러하다. 이 경우는 앞에 말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영원히 계속된다. 가령 우주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순환된다 할지라도 앞의 주장을 가로막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개인에게 속하지 않는 사물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말라. 이러한 것들은 인간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본성이 야속한 것도 아니며, 인간의 본성을 완성시키는 수단도 아니다. 따라서 인간의 목적이 그러한 사물 속에 있는 것도 아니며, 인간의 목적달성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 중 어느 것이 인간에게 속해 있다고 해서 이를 경멸하고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또한 이러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칭찬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도 아니다. 또한 그것들은 참된 선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것들의 진가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도 칭찬받을 자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나 비슷한 다른 것들을 제거해 버릴 수록, 또는 이것들 중의 어느 것이 없을 때 이 상실을 참고 견디어 내면 견디어 낼수록 그만큼 그 사람은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대의 정신은 그대의 사상과 보조를 같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은 사상에 의해서 염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사상으로 그대의 영혼을 염색하라. 예컨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에서는 올바른 생할이 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은 궁전에서 살지 않으면 안될 때에도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개개의 사물은 어떤 목적을 행하여 나아가고 그 목적은 개개의 사물이 지향하는 곳에 있으며, 그 목적이 있는 곳에 개개의 사물의 우월성과 선이 있다고 생각하라. 그런데 이성이 있는 인간의 지고의 선은 사회이다. 우리가 사회를 위하여 태어났다는 점은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약자는 강자를 위해 존재하고 강자는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은가? 생명이 있는 피조물은 생명이 없는 피조물보다 우월하고, 생명이 있는 것 중에서도 가장 우월한 것은 이성을 가진 인간이다. 사물 자체는 영혼과 접촉하지 못하는 법이다. 또한 사물 자체는 영혼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지 못하며, 영혼의 방향을 바꾸거나 영혼을 흔들어 움직이게 할 수도 없다. 그 나 영혼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자신의 방향을 바꾸고 움직이며, 자신이 인정하는 판단기준에 따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에게 합당하게 적응시킨다.
내가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또 그들과의 생활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사람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존재다. 그러나 누가 나의 영역에 속한 행동을 방해한다면, 그는 태양이나 바람이나 야수와 마찬가지로 나와 전혀 무관한 존재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나의 행동을 방해할 수는 있어도, 조건과 환경에 따라서 행동하고 변화하는 능력을 가진 나의 감수성과 나의 뜻을 가로막지는 못한다. 정신이란 모든 활동의 장애물을 피하며 오히려 그의 주된 목표를 증진시키도록 전용시킬 수 있어서, 그 활동의 장애요소는 오히려 행동의 촉진제가 되며 그 진행로를 막는 장벽도 전진에 도움이 된다.
지금 존재하는 것과 새로이 생겨나고 있는 것, 이 모두가 얼마나 빨리 우리를 스쳐 지나가고 가라져 가는지, 그 속도를 가끔 생각해 보라. 물질은 영원히 흐르는 강과 같고 그것의 활동은 영원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며, 그것의 원인 또한 영원히 변화를 거듭하는 것이어서, 단 한가지의 사물도 정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대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 과거와 미래라는 무한한 심연을 생각해 보라. 그 심연 속으로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물을 소유했다고 즐거워하고 그것을 잃었다고 괴로워하는 자,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인가? 그러한 사물들이 그대를 괴롭히는 시간은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의 실체를 생각해 보라. 당신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미소한가. 우주적 시간을 생각해 보고, 당신에게 할당된 시간이 얼마나 덧없는 촌음에 불과한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운명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당신은 그 속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일부분인가?
그대는 지금까지 신에게, 부모 형제에게, 자녀에게, 스승에게, 벗, 친척, 하인들에게 어떻게 다해 왔는가? 나는 결코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그들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는 말은 듣기에 부끄럼 없는 행동을 해 왔는가를 생각해 보고 반성하라. 그대의 생이 끝나가고 그대의 봉사도 막을 내렸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당신이 이제까지 본 아름다운 것들과, 당신이 체험한 쾌락과 고통을 상기해 보라. 남들이 영광스럽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얼마나 멸시해 왔고, 심술궂고 경박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친절을 베풀어 왔는가를 반성해 보라. 어찌하여 재주도 지식도 없는 영혼들이 슬기로운 영혼을 괴롭히는가? 어떤 영혼이 슬기로운가? 그것은 만유의 시작과 끝을 알고 있는 영혼, 모든 존재에 편재하고 영원히 정해진 주기에 따라 우주를 다스리는 법을 아는 영혼이다. 그대는 머지 않아서, 재나 앙상한 해골로 변하게 될 것이다. 이름만이 남을 것이다. 아니다, 그 이름조차 잊혀지고 말 것이다. 이름은 그저 공허한 소리일 뿐이요,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가 살아 있는 동안 매우 소중히 여기던 사물도 헛된 것이며, 더럽고 보잘것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우리들은 서로 장난하는 강아지나, 웃다가도 금새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애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성실과 겸손, 정의와 진리는 광활한 대지를 버리고 올림푸스 산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도대체 무것이 그대를 이 세상에 묶어두는가? 감각의 대상은 쉽게 변하고, 결코 지속되지 않으며, 감각기과은 더욱 애매한 것이어서 쉽게 착각을 일으키고, 가엾은 영혼조차도 피로부터 토해 낸 수증기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명성을 얻는다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소멸이든 다른 세계에로의 이주이든 간에, 그대는 어찌하여 그대의 종말을 태연자약하게 기다리지 못하는가? 그리고 그때가 올 때까지 어떻게 해야 만족할 수 있는가? 신을 섬기고 기도를 드리며, 이웃에게는 선행을 베풀고, 관용과 인내를 실행하는 것, 이 길 외에 또 다른 길이 있을까? 연약한 육체와 호흡의 한계를 넘어선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의 것이 아니며, 그대의 능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바른 길을 걷고 바르게 생각하며 바르게 행동한다면, 그대는 행복의 조용한 흐름 속에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외부의 것으로부터 파괴되지 않고 정의를 실현하는 데 온 정열을 쏟아, 모든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두 가지는 신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에 공통되는 것이며, 이성이 있는 모든 피조물의 영혼에 공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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