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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 제828호
2011.11.25 (음 11.1)/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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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 한자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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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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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 공모
서울디지털대학교는 21세기 한국문학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신인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제6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을 공모합니다. 한국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참신한 상상력을 기다리며,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공모부문 - 시 : 5편 이상 - 생활기록문(수필, 수기) : 2편 내외
● 당선 상금 및 특전 - 당선작 : 각 부문 삼백만원, 『시작』(시), 『한국산문』(생활기록문)에 작품 게재 등단시인 및 등단 수필가로 인정 - 가 작 : 각 부문 일백만원, 『시작』(시), 『한국산문』(생활기록문)에 작품 게재 등단시인 및 등단 수필가 인정 여부 작품 심사 후 결정
● 접수기간 : 2011년 12월 1일 ~ 2012년 1월 30일
● 보낼 곳 : writing@sdu.ac.kr
● 입상작 발표 : 2011년 2월 20일, 사이버문학상 홈페이지(www.sdu.ac.kr/cyberWriting)
● 유의사항 - 이미 발표된 작품이나 표절로 밝혀진 작품은 입상 결정 후에도 취소됩니다. - 원고 첫 장에 주소, 성명(필명일 때는 본명을 필히 기입), 연락처(전화번호) 등을 반드시 써야 합니다. - 원고는 한글 또는 워드로 작성하여 파일로 첨부하여야 합니다. -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 문의 : 홈페이지 참고 www.sdu.ac.kr/cyberWriting● 공모대상 : 문단에 등단하지 않은 전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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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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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 번 읽으면 그 구실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재독하고 애독하며, 다시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애착을 느끼는 데서 그지없는 가치를 발견할 것이다. ─ 러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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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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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듣기평가
이른 아침부터 학교 주변이 붐볐다. 부근 길목에는 차량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고, 들머리 양쪽에는 수험생을 응원하러 나온 이들의 격려 함성이 이어졌다. 그간 닦은 실력을 제대로 풀어내기 위한 바람과 흡족할 만한 결과에 대한 기대는 시험장 안의 것만은 아니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 지키며 무사히 시험 마치기를 기원한 이들이 교문 밖에 있었다. 수험생을 위한 기도회가 열린 법당과 예배당, 성당 등에서는 꾹꾹 눌러 담아 두었던 염원이 울음과 함께 터져 나오기도 했다. 엊그제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의 풍경이다.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첫 시간인 언어영역의 듣기평가는 가곡 ‘보리밭’이 흘러나오며 시작했다. 수험생들은 “문제를 이해하고 답하기에 어려움은 없었다”며 낭독자의 전달력을 높게 평가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공개한 언어영역 듣기평가 파일을 들어보았다. 표준발음법 제3장에 명시된 ‘음의 길이’, 곧 ‘모음의 장단’은 따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규범에 따라 모음의 길고 짧음을 낭독하면 스물 안팎의 나이가 대부분인 수험생들에게 오히려 자연스럽지 않게 들렸을지 모른다. 남녀 성우의 낭랑한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왔다. 문맥에 따른 끊어 읽기나 억양 따위는 적절했고 받침의 발음은 대부분 명료했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모음의 소릿값, 특히 양성모음 ‘ㅐ’와 음성모음 ‘ㅔ’의 구별이 그랬다.
‘경작해서[해-]’, ‘재배[재배]면적이’, ‘식품의 재료[재-]’(듣기평가 1번), ‘대[대]나무를’(듣기평가 2번), ‘기술에 대해[대해]’, ‘간략히 소개해[-개해]’, ‘얻기 위해[-해]’, ‘있기 때문에[때--]’(듣기평가 3번)의 성우 발음은 음성모음 ‘ㅔ’로 들렸다. [애]를 [에]로 발음해도 문제없는 내용이었기에 다행이다. ‘내(네)가 그랬다’와 ‘제(쟤[쟤])가 그랬습니다’의 발음이 어정쩡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갈수록 모호해지는 소릿값의 틀을 잡기 위해서 ‘받아쓰기’를 평가에 반영하는 것은 어떨까.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사회 지도층
엊그제 한 일간지에 ‘조건만남’을 다룬 기사가 제법 크게 실렸다. ‘채팅 사이트에 조건만남 클럽을 개설하고… 변태적인 집단 성매매를 알선한 카페 운영자와 성매수자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회원들 중엔 의사와 약사, 교수 등 사회 지도층 인사가 다수 포함됐으며….’ 이 기사를 훑어 내려가며 읽던 중 혀 끌끌 차게 한 대목을 만났다. 경찰 수사 개요에 등장한 이들의 ‘조건’을 시시콜콜하게 밝힌 내용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마뜩잖은 부분을 보면서 심훈의 소설 <상록수>가 겹쳐 떠올랐다. 일제 강점기 ‘민중 속으로’라는 브나로드 운동이 벌어질 때 나온 작품이 뜬금없이 생각난 건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지도층’의 뜻을 ‘어떤 목적이나 방향으로 남을 가르쳐 이끌 만한 위치에 있는 계층’이라고 풀어놓았다. 지식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치는, 이른바 계몽이 절실했던 ‘농촌계몽시대’에나 씀 직한 표현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지도층 인사’라는 표현을 안 쓰면 좋겠다. 나는 그들에게 지도받은 적 없고, 지도받을 생각도 없다.” 얼마 전 만난 한 출판인의 말이다. 그의 말에 공감하는 이 적지 않을 거다. 기사에 나온 의사, 약사, 교수 등은 ‘사회 지도층’이 아닌 ‘전문직(종사자)’이다. 경우에 따라 ‘유력인사’, ‘저명(유명)인사’, ‘권력층’, ‘고위층’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인기 가수, 인기 탤런트, 인기 아나운서 따위의 표현도 ‘지도층 인사’처럼 곱씹어볼 말이다. 인기는 객관적인 표현이 아닌 까닭이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 아무개의 교통사고 사건을 조사중인…’(ㅎ신문), ‘인기 가수 아무개가 타고 다녀 유명한…’(ㅁ일보), ‘인기 영화배우 겸 가수인 아무개…’(ㅅ일보)에서 ‘인기’라는 표현을 덜어내면 어떨까. 굳이 써야 한다면 ‘인기’ 대신에 ‘유명’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널리 알려져 있다고 모든 이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시말서, 회람
누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슬럼프를 겪게 마련이다. 직장인 80%가 석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369증후군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이때는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면서 시말서를 쓰는 최악의 경우도 생길 수 있으므로 긴장의 끈을 놓고 자신에게 약간의 여유를 주는 게 좋다고 한다. 슬럼프만큼이나 직장인들에게 달갑지 않은 손님인 시말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사건이 진행돼 온 과정을 자세히 적은 문서를 일컫는다.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으니 시말서 쓸 준비나 하게!" "이건 시말서 한 장으로 끝날 일이 아닌 것 같네"처럼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시말서는 어떤 일의 처음과 끝을 이르는 '시말(始末)'과 '서(書)'를 조합한 일본식 한자어(始末書.しまつしょ)로 '경위서(經緯書)'로 순화해 쓰는 게 좋다. 간혹 '시말서'를 심한 일을 해 쓰는 서류라고 어림잡아 '심할서'로 적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있는데 "경위서를 작성하다" "경위서를 내다"와 같이 사용하면 의미 전달도 쉽고 표기상의 혼란도 줄일 수 있다.
시말서와 더불어 직장 내에서 순화해야 할 말로는 '회람(回覽.かいらん)'이 있다. '글 따위를 여러 사람이 차례로 돌려 보는 것 또는 그러한 글'을 회람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일본어의 잔재로 '돌려 보기' 정도로 바꿔 쓰는 게 바람직하다.
꽃 피라
"봄이 속삭인다. 꽃 피라. 사랑하라. 희망하라. 삶을 두려워하지 말라." 광화문 앞에 우뚝 솟은 한 빌딩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글귀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새봄을 희망으로 부풀게 하고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는 메시지다. 이 멋진 글귀는 '어린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봄이 하는 말을~'로 시작하는 헤르만 헤세의 시 '봄이 하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빌딩에 적혀 있는 "~꽃 피라. 사랑하라. 희망하라~"를 보면서 무언가 어색함을 느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읽다 보면 '꽃 피라'가 어딘지 불편하다. 동사를 명령형으로 만들 때 끝 음절 모음이 'ㅏ, ㅗ'가 아닌 경우엔 '-어라'를 붙인다. '먹어라'를 '먹라'로 하면 몹시 어색하다. '꽃피라'도 '꽃피어라'로 해야 한다. '꽃피다'의 사동사인 '꽃피우다'를 명령형으로 하면 '꽃피워라'가, 두 단어로 된 '꽃(을) 피우다'를 명령형으로 하면 '꽃 피워라'가 된다. 따라서 '꽃 피라'는 '꽃피어라' '꽃피워라' '꽃 피워라' 세 가지 표기 중 하나여야 한다. 이 가운데 '꽃피어라'는 '꽃피다'는 동사의 속성상 명령형이 어색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꽃피워라' '꽃 피워라' 둘 중 하나가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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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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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내 - 문정희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 환한 웃음으로 피어난 꽃 같은 아내 꼭 껴안고 자고 나면 나의 씨를 제 몸속에 키워 자식을 낳아주는 아내 내가 돈을 벌어다 주면 밥을 지어주고 밖에서 일할 때나 술을 마실 때 내 방을 치워놓고 기다리는 아내 또 시를 쓸 때나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을 때면 살며시 차 한 잔을 끓여다 주는 아내 나 바람나지 말라고* 매일 나의 거울을 닦아주고 늘 서방님을 동경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내 소유의 식민지 명분은 우리 집안의 해 나를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만들어주고 내 성씨와 족보를 이어주는 아내 오래전 밀림 속에 살았다는 한 동물처럼 이제 멸종되어간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아직 절대 유용한 19세기의 발명품 같은 오오, 나에게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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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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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정 연가(花石亭 戀歌) - 김종원
평천장(平泉莊) 그 절경이 동방에 또 있다고
이 산 까치는 둥지 틀어 보여 주고
임진강 흐르는 물은 끊임없이 종알대네.
제 몸 아니 태우고 님의 마음 얻겠는가
기러기는 어디 가고 단풍만 얼굴 붉혀
구름도 머뭇거리며 흘끗흘끗 쳐다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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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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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길 - 김흥수
아지랑이 데리고 봄이 오는 길 흰옷 입은 사람들 몇 오랏줄에 묶여 가듯 성묘 가는 길 외줄기 들길을 따라 한나절 일렬로 발자국 남기는 아직은 눈길.
엊그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일곱 살 막내도 흑흑 콧물이 훌쩍거리고 어머니 앞장서고 딸이 그 다음 키 순으로 두 아들 아이고 아이고 가랑잎도 바스락바스락 구슬피 울고 구름 그림자도 아이고아이고 뒤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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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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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1 - 임어당
제3장 인간의 동물적 유전
5.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인간의 정신(지능)은 조물주가 창조한 것 중에서 아마도 가장 고상한 산물일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하는 말이다. 긴 수학의 방정식으로 우주의 곡면공간을 증명할 수 있는 알베르트 아인쉬타인과 같은 지능, 축음기와 활동 사진을 발명할 수 있었던 에디슨과 같은 지능, 접근해 오는 별과 멀어져 가는 별의 빛을 측정하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자원의 구조를 논하거나 하는 그밖의 물리학자들의 지능, 혹은 천연색 활동사진기를 발명한 사람의 지능, 이러한 사람들의 지능을 가리켜서 말할 때에는 특히 그런 느낌이 깊어진다. 목적도 없고, 변하기 쉽고, 무턱대고 찾는 호기심을 원숭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보면 인간은 자기가 태어난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고상하고 찬란한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정신은 고상하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애교가 있다. 만일 보통 사람의 정신이 고상한 것이었다면 인간은 죄도 약점도 실수도 없는 완전한 이성적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겠지만, 그러한 세계는 그 얼마나 하찮은 세계일 것이냐! 그렇게 되면 인간은 짐승처럼 매력이 없는 동물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죄 없는 성인에게는 도무지 흥미를 가질 수 없다. 나는 이러한 휴머니스트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불합리성도 있고 모순도 있고 어리석은 행위도 있고 야단법석도 있고 축제에는 들떠 돌아다니기도 하고 편견과 고집과 건망증이 있다. 인간의 재미있는 점은 바로 이 점에 있는 것이다. 만일 인간의 번뇌가 모두 일률적으로 완전하다면 새해마다 새로운 결심을 할 필요는 없다. 섣달 그믐날 밤에 그 해의 처음에 결심한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실행한 것이 3분의 1, 실행하지 못한 것이 3분의 1, 나머지 3분의 1은 무엇이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 인간 생활의 아름다운 점이 있는 것이다. 맨 마지막까지 틀림없이 실행할 계획이라면 벌써 재미가 없다.
전쟁에 나가는 장군이 싸우기 전부터 벌써 승리할 것을 똑똑히 알고 사상자의 정확한 수까지 예언할 수 있다면 전쟁에 대한 모든 흥미를 잃고 말 것이다. 전쟁을 하기는 커녕 전쟁이고 뭐고 모두 포기해 버릴지도 모른다. 만일 상대편의 머리가 좋든 나쁘든 무관심하든 간에 착오가 없는 머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아무도 장기를 둘 사람은 없으리라. 만일 소설 중의 각 인물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 확실한 결론을 예언할 수 있다면 모든 소설은 차마 읽을 흥미가 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이러한 것이다. 어느 변하기 쉬운,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도 없는 사람의 마음이 여기에 있다. 진전하는 환경의 미로를 더듬어 가면서 그 어느 순간에 어떤 변하기 쉽고, 또는 어떻게 될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결단을 내리는 것을 독자가 쫓아간다는 그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너그러워지지 못하는 가혹하고 엄격한 아버지에게는 인간적인 인상이 없어지고, 행실이 좋지 못한 남편이라도 언제까지나 좋지 못한 행실만 되풀이 한다면 독자들은 대번에 싫증을 느끼고 만다. 누가 부탁을 해도 어떤 미인을 위해 가극을 작곡할 수는 없다고 버티던 유명하고 교만하기 짝없던 작곡가라 할지라도 자기가 매우 싫어하는 경쟁 상대인 작곡가가 그 일을 맡으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즉시로 그 일에 착수하게 되는 법이다. 또 어떤 과학자는 신문에 그의 글을 싣기를 오늘날까지 줄곧 거절해 왔으나 경쟁 상대인 과학자의 발표 논문에서 글자 하나가 빠진 것을 발견하면 평소의 곧은 마음을 잊어버리고 속속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이 두 경우를 상상해 보라. 여기에서 우리는 정신이라는 묘한 인간성에 비로소 부딪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정신이라는 것에 매력이 있는 것은 거기에 불합리성이 있고 구제할 수 없는 편견과 변덕과 예측할 수 없는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진리를 모른다면 1세기에 걸친 인류 심리학의 연구도 결국 헛된 일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정신 가운데는 아직도 원숭이와 같은 목적도 없이 무턱대고 찾아 헤매는 지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인류 정신의 진화를 생각해 보자. 인간의 정신은 본디는 위험을 발견하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이 정신이 마침내는 논리학이나 정확한 수학적 방정식을 이해하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에 지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이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정신은 음식물의 냄새를 맡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음식물의 냄새를 맡은 뒤에 추상적인 수학 공식의 냄새도 맡을 수 있다면 더욱 다행한 일이다. 인간의 두뇌도 마찬가지이지만... 더듬이를 가진 낙지나 불가사리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더듬이는 진리를 찾아서 그것을 먹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아직도 진리를 <생각한다>기보다는 <느낀다>라는 말을 쓴다. 두뇌는 다른 감각 기관과 함께 여러 가지 더듬이를 구성한다. 그 더듬이가 어떻게 해서 진리를 느끼느냐 하는 문제는 눈의 망막 속에 있는 시자홍의 커다란 신비로 되어 있다. 두뇌가 그 공동적 감각 기관으로부터 떨어져서 이른바 추상적 사색에 빠질 때마다, 위리엄 제임스가 말한 이른바 지각적 현실로부터 떨어져서 개념적 현실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 활력과 인간미를 잃게 되어 그만 나쁘게 되고 만다. 우리는 모두 정신의 진짜 기능은 사고하는데 있다는 그릇된 생각 때문에 애를 쓰고 있다. <사고>라는 말의 개념 그 자체를 정정하지 않는 한 이러한 오해를 하다가는 철학은 반드시 중대한 잘못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이러한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서재를 나와서 시장의 군중을 바라보는 학자는 환멸을 느끼기 쉽다. 사고라는 것이 우리의 일상 행위에 그 무슨 중대한 관계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착각이다.
인간의 정신은 현재 보는 바와 같이 애교가 있고 불합리한대로의 모습이 훨씬 좋다. 인간이 모두 다 완전 무결한 이성적 동물이 되어 있는 세계란 보기도 싫다. 그렇다면 나는 과학적 진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니다. 다만 성인 군자적인 완전 무결을 믿지 않을 뿐이다. 나는 주지론에 반대하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만 인생과 사랑에 빠지고 있을 쁜이다. 어디까지나 지성을 믿지 않는 것이다. 독자여, 이러한 세계를 상상해 보라. 신문에는 살인 기사도 나지 않고, 모든 인간은 전지전능하며 불이라곤 난 적이 없고, 비행기 사고도 없고, 남편은 아내를 버린 일도 없고, 합창대의 처녀와 눈이 맞아 도망치는 목사도 없고,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리는 왕도 없으며, 결심을 바꾸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사람들은 모두 윤리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열 살 때 스스로 짜낸 계획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있는 그러한 세계. 이렇게 되면 이 즐거운 인간 세계와도 그만 작별이다! 인생의 모든 자극과 무상함은 그만 사라지고 말 것이다. 죄도 없어지고, 잘못도 없어지고, 인간적인 약점도 없어지고, 정열이 폭발하는 일도 없어지고, 번뇌도 발생하지 않고, 편견도 변칙도 없어지고, 가장 불행한 것은 놀라움까지도 없어진다. 그러므로 그 결과 문학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사오 만의 관중이 하나도 빠짐없이 어느 말이 이길 것인가를 알고 있는 경마와 같은 것이 되고 만다. 차례가 뒤바뀌는 것은 장애 경마에 없어서는 안될 정말 재미난 점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인간의 무상은 인생의 진짜 맛이다. 고집스럽고도 편견이 없는 존스턴 박사와 같은 존재를 상상해 보라. 우리가 모두 완전 무결한 이성적 동물이라면 완전한 예지로 성장해 가지 않고 그 대신 자동 인형으로 퇴화할 뿐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의 정신은 어떤 노동을 가스 미터와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기록할 구실을 할 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적이 아니다. 인간적이 아닌 것은 어느 것이나 다 나쁘다. 독자는 내가 필사적으로 인간의 약점을 변호하고 악덕을 미덕이라고 우겨대고 있다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가 않다. 완전히 이성적인 정신의 발달에서 오는 행위의 정확성에서 우리가 무언가 얻는 것이 있다면, 다른 한편 우리는 인생의 재미와 다채로움을 잃어야 한다. 세상의 남편이나 아내가 도덕적 본보기라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재미없는 일은 없다. 이러한 완전히 이성적인 사회가 언제까지나 완전히 존속하기에는 알맞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말 그대로지만 그런 식으로 존속해 본댔자 과연 얼마만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 단연 질서 정연한 사회를 맞이하라. 그러나 지나치게 질서정연하지는 말라!
복도에 역사상의 대인물의 상들을 쭉 세워 놓은 어느 기념관을 한 바퀴 돌며 그들이 살아 있던 때를 상기해 보라. 그러면 행위의 합리성이라는 것은 아마 그 위인들에게서는 그림자도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진 그 줄리어스 시이저... 한 여성 때문에 실로 대제국을 잊어버릴 만큼 꼴사납게 이성을 잃고 만 위대한 줄리어스 시어저(앤토니는 완전히 잊어 버렸다). 시나이 산에서 신과 함께 더불어 40일이나 걸리어 법률과 계명을 새겨 판 신성한 석판을 홧김에 깨뜨려 버린 그 모세... 이런 행위에 이르러서는 모세도 그 신을 저버리고 그가 없을 때 황금의 소를 예배하기에 이른 그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도 이성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다윗 왕... 그는 잔인해졌는가 하면 너그러워지고, 신앙심이 깊어졌는가 하면 또 그 신앙심이 없어지고, 신을 예배하고는 죄를 범했고 회개하는 시편을 쓰고는 또다시 신을 에배하였다. 지혜의 화신이라고 불리어지는 솔로몬 왕은, 그 아들에 대해서는 전혀 무력하였다... 공자는 방문객에 대해서 집에 없다고 하고는 방문객이 돌아가려고 아직 문전에 서 있을 때 집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2층에서 노래를 불렀다. ...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을 흘렸고, 십자가 위에 그의 의심을 남겨 놓은 예수. 아내에게 <둘째로 좋은 침대>를 남겨 주고 죽은 셰익스피어. ... 밀턴은 17세의 아내와 살 수 없게 되었으므로 이혼론을 썼다. 비난을 받자 이번에는 <아레오파기키카>를 발표하여 맹렬한 언론 자유의 옹호를 부르짖었다. ... 괴테는 19세의 아들을 옆에 세워 놓고 아내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조나단 스위프트와 스텔라, ... 입센과 아멜리 바르다하(그는 이성을 보존하였다... 본인을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보다도 정열이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이상의 위인들에게는 사랑스러운 인간성을 준 것은 그 이성이 아니라 이성의 결여가 아니었을까? 유족의 자녀들의 붓으로 엮어진 그 조상에 대한 중국인의 <물고자약전>이나 전기적 스케치 따위는 정말 차마 읽을 수 없을 만큼 흥미가 없고, 진실미가 없다. 모든 조상을 이상할 정도로 완전하고 도덕적인 인물로 보이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논한 나의 저서에 대한 중국 동포의 혹평은 내가 중국인을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 중국인의 힘과 더불어 그 약점을 드러냈다는 것이었다. 중국 동포(적어도 소관사)들은 만일 내가 중국을 유교의 성자들만이 살고 있는 천국처럼 그려내고 이성의 황금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면 좀더 효과 있는 중국 선전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참으로 관리들의 어리석음이란 한정도 없다. ... 그러나 전기에 담겨 있는 매력 그 자체, 혹 읽은 만한 가치 그 자체는 우리들 범인과 아주 비슷한 대인물의 인간적 측면을 묘사하는 데 있는 것이다. 전기에 묘사되는 온갖 무리한 행위의 단편은 우리들의 현실감을 수긍케 하기에 족한 빛이다. 리튼 스트래치 전이 성공한 것은 오직 이 때문이다.
말할 나위 없이 건전한 정신이 훌륭한 실례로 나타나는 예는 영국인의 경우다. 영국인의 윤리는 신통치 않지만 위험을 발견하여 몸을 지키기에는 가장 알맞은 더듬이를 머리 속에 갖고 있다. 영국인의 국가적 행위나 이성의 역사를 통해서 나는 윤리적인 것이라곤 거의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의 대학, 헌법, 영국 교회 따위는 모두가 다 주워 모은 목판공과 같은 것으로 역사적 성장의 과정 속에서 저절로 점점 커져 간 것이다. 대영제국의 힘 그 자체도 영국인의 작용이 결여되고 전혀 다른 사람의 견해를 이해하는 능력이 결핍되며 자기가 하는 방법만이 유일한 옳은 방법이고 자기가 먹는 음식만이 유일한 맛있는 음식이라고 확신하고 있는데 있는 것이다. 만일 영국 국민이 합리적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것을 배우고 강력한 자기 신뢰를 잃는다면 그 순간 대영제국은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심을 품게 되면 아무도 세계 정복을 바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영국인의 국왕에 대한 태도, 그 충성, 그 말할 수 없이 순진한 정애에 대해서 생각해 보더라도 그 내용은 절대로 공허하고 엉성한 것이다. 국왕이라 할지라도 국민에게 언론의 자유를 빼앗기고 그렇게 되게끔 적당히 행동하며 적당히 왕위를 내버리도록 대체적인 희망을 국민들로부터 받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 엘리자베드 시대의 영국이 대영제국을 수호하기 위해 해적이 필요해졌을 때 엘리자베드 여왕은 그 사태에 대처하기에 족한 해적을 만들 수 있었다. 더우기 해적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영국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적당한 적에 대하여 적당한 동맹국과 함께 적당한 쪽에 서서 적당한 때에 적당한 싸움을 해 왔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연극을 능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논리가 아니다. 그런 것을 논리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이야말로 더듬이의 덕택이다.
영국인은 얼굴이 불그스레하다. 그것은 필시 런던의 안개와 크리켓에서 오는 것일 게다. 매우 건강한 피부는 인간의 사려, 즉 일생을 통해서 자기가 걸어가야 할 길을 감지하는 과정에 있어서 반드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법이다. 그런데 영국인이 그 건강한 피부로 사물을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인은 그 현묘한 창자로 생각한다. 이것은 중국에서는 꽤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우리 중국인은 실제로 창자로 생각을 한다는 것을 몸소 체득하고 있다. 중국의 시인이나 철학자들은 <만복의 사상>, <만복의 학식>, 또는 <만복의 시문>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리어지고 있고, 또는 <만복의 애상>, <분노>, <회한>, <분만>, 혹은 <사모>를 가진 사람들이라고도 불리어지고 있다. 멀리 헤어져 있는 중국인 애인들이 서로 편지를 쓸 때 <수장이 미어져 백절이 된다>고 하고, 마지막 이별에는 <단장>이라는 말을 쓴다. 중국의 학자가 논문이나 연설을 위해 자기의 사상을 정리하여, 그것을 아직 지상에 발표하지 않을 때에는 <복안>이 되어 있다는 말을 쓴다. 그 사상을 모두 뱃속에서 정리하였다는 말이다. 정말 뱃속 재주를 부린 것이다. 이것은 물론 극히 엄격한 의미에서도 과학적이어서 그 사실 여부를 실증할 수도 있다. 현대 심리학자가 인간의 정서적 성질이나 조직을 한층 더 잘 알게 되면 특히 그렇다. 그러나 중국인은 과학적 증명은 소용이 없다. 중국인은 다만 배로 느끼는 것이다. 중국 음악의 멜로디가 정서적인 성질을 많이 띤 것은 가수의 횡격막 아래에서 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실은 음미하기만 하면 그 유현한 정취가 담긴 중국 음악을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지능이 자연계나 인간 관계 이외의 모든 문제를 다룰 때의 능력을 우리는 경시해서는 안된다. 과학의 정복에 관해서는 나는 낙관적이지만 인간적인 문제를 다루는 비판적 정신이 어디까지 전반적인 발전을 할 것인가, 혼은 인류는 과연 여러 가지 번뇌의 영역을 훨씬 초월하는 항심과 오성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의 여부에 관하여서는 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개개인으로서의 인류는 매우 고도의 발달을 하였을지도 모르지만 사회의 집단으로서는 여전히 아직도 원시적 욕정에 사로잡혀, 때때로 원시시대로의 후퇴와 야만적인 본능을 드러내고 있고, 또 간헐적인 광신과 집단적 히스테리의 파도에 휩쓸려 드는 때가 가끔 있다. 정신분석 학자는 정신병을 고치는 데 있어 환자에게 그 과거를 회상케 하고 그들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방법을 쓰는 수가 많다. 인류도 그 과거를 좀더 생각한다면 아마 좀더 자기의 모습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동물적 유전이 있다는 것, 또는 극히 동물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동물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다소는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의 우화나 수필, 즉 <이이솝 이야기>나 초오서의 <조류의 국회>나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아나톨 프랑스의 <펭귄 섬> 등을 읽으면 인간 자신의 모습을 똑똑히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동물적 유전이라는 것을 알면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기 쉽게 된다. 이들 동물의 우화는 이이솝의 시대에는 훌륭한 것이었지만 기원 4천 년 후에도 역시 그 가치를 잃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 사태를 고칠 수 있겠는가. 비판적 정신은 너무도 약하고 너무도 차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별로 신통하지 못하고 이성도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오직 여기에 이른바 중용적인 사려 분별이라는 것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따뜻한 정에 타고 정서도 풍부하며 직각적인 사고 방식이어서, 인간이 그 조상과 똑같은 형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발전시켜 줌으로써만 인간은 구원을 받게 된다. 나는 사상 교육보다는 오히려 감각과 정서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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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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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명상록
사색하는 생할인으로서, 영원히 낡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아우렐리우스의 고매한 양심의 목소리
제3장 운명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나날이 소멸되어서는 마침내 줄어들고 있다는 것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남보다 오래 살 경우에, 과연 사물을 파악하는 충분한 이해력도 그만큼 지속되고 신과 인간에 대한 관조의 힘도 지닐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노령으로 접어든다 해도 호흡, 소화능력, 상상력이나 식욕 같은 것들은 쇠퇴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거나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거나, 모든 현상을 명백히 가려내는 힘, 지금 이순간이 인생을 하직할 때냐 아니냐 하는 것을 판별하는 힘, 그 밖에 훈련된 이성이나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힘 등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둘러야 한다. 시시각각으로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통찰력이나 주의력이 먼저 소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자연에 따라 창조되어진 어떠한 사물도 우리에게 큰 즐거움과 매력을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빵을 구울 때 빵의 한부분이 부풀어서 군데군데 갈라지는 때가 있다. 이렇게 갈라진 부분은 빵굽는 사람의 의도와는 어긋나는 것이지만 일정한 모양을 갖추고 그 나름으로 하나의 아름다움을 지니게 되어, 이것이 오히려 식욕을 돋구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무화과 열매는 잘 익으면 갈라져서 벌어지고, 더 자란 올리브나무도 썩기 바로 직전에 그 열매는 각별한 아름다움을 띠게 된다. 고개 숙인 벼이삭, 사자의 주름잡힌 눈매, 멧돼지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거품, 그리고 그 밖의 여러가지 것들-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서 살펴본다면 아름답다고 일컬을 것까지는 없지만-은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사물에 부수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물을 돋보이게 하고 그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 그러므로 인간이 우주안에 창조된 사물에 대하여 예민한 감수성과 깊은 통찰력을 지닌다면, 이러한 사물들에 의한 즐거움을 못 누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호랑이나 사자의 으르렁대는 입을 볼 때에도 화가나 조각가가 그 실물을 모방하여 그려놓은 작품을 보듯 찬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늙은 노파나 남자에게서도 일종의 원숙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고, 어린아이들의 귀여운 매력도 순결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모든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직 자연과 그 작품에 진실로 애정을 갖는 사람에게만 기쁨을 주고 있다.
공익을 위한 일이 아닌 한, 공연히 남의 일에 관심을 가져서 남은 생애를 허비해선 안된다. 이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우리를 지배하는 힘인 이성을 혼란케 하는 온갖 일에 관심을 갖게 되면, 우리는 다른 일을 할 기회를 잃게 된다. 그러므로 사념의 방향이 부질없고 무익한 환상으로 흐르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리하여 갑자기 당신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러한 일들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일만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그대의 대답을 들으면, 그대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은 단순하고 선량하며 그대가 쾌락이나 감각적 행락에 무관심하고, 적대감이나 질투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당신이 마음 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나서라도 결코 낯을 붉힐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입증해야 한다.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이러한 사람들은 사제나 신의 종복과 같아서, 자기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신성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쾌락에 오염되지 아니하고 어떠한 고통으로도 해를 입지 않으며, 어떠한 모욕도 개의치 않고, 나쁜 일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가장 위대한 투쟁을 하고 있는 투사로서, 어떠한 정념에도 정복당하지 아니하고 마음 속 깊숙히 정의감으로 충만해 있고 온갖 심혈을 기울여서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 자기에게 맡겨지는 일을 모두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만을 염두에 둔다. 허다하게 많은 일 중에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을 숙고하여, 자기의 임무를 훌륭히 마칠 수 있도록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그 운명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이성적 피조물의 동포애를 잊지 않으며, 따라서 만인을 돌보는 일은 인간으로서 당연하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또 그가 따라야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여론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사람들의 의견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자연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 밤이나 낮에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떠한 사람들인가, 그리고 어떠한 사람들과 어울려 나쁜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눈여겨 잘 새겨두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아도 초라한 사람들이어서, 이들에 대한 칭찬이나 호의적인 평가는 그들에게 하등의 가치도 없다.
오락삼아 일을 하여서는 안된다. 일은 언제나 스스로 해야 하고, 공공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며,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당신의 감정 속에 가식적이고 지나친 세련미를 가미하지 말 것이며, 수다를 떨거나 쓸데 없는 일로 소란을 피워서도 안된다. 또한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신성을 인생의 수호신으로 삼아라. 그리하여 남자답게, 성숙한 나이가 되면 정치문제에 관여하고, 로마인으로서 또는 지배자로서 자기의 직분을 수행할 때자신의 생명을 던질 각오를 가진 사람답게 어떠한 맹세나 증인도 필요없을 만큼 담담하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항상 쾌활한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남의 도움이나 남이 주는 안식을 바라지 말라. 남에게 의지하여 서려고 해서도 안된다. 사나이답게 스스로의 힘으로 똑바로 서야 한다.
신용의 타락, 자존심의 실추, 증오, 의혹, 저주, 불성실 등 휘장이나 커튼으로 가려야 할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얻어지는 이득을 중요시하지 말아라. 무엇보다도 자기자신의 이성과 신령을 따르고 신령의 탁월함을 예찬하는 사람들치고 비극적 역할을 맡는 일은 없다. 그들은 불평하지 않으며, 고독하지도 않고, 많은 교제가 필요하지도 않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보다도 죽음을 추구하거나, 또 기피하는 일이 없이 초연하게 살아간다. 자기의 영혼을 육체 속에 간직하고 있는 기간이 길든지 짧든지간에 그러한 일에 무관심하다. 그들은 당장 이 세상을 떠나야 하더라도 품위와 절도를 지키며 예삿일을 치르는 것처럼 담담하게 떠날 것이다. 그들은 평생을 통해서 지적 동물임과 동시에 사회적 동물이 걸어가야 할 행로에서 이탈하여 그의 정신이 다른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오로지 깨끗한 생활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인간의 마음 속에는 부패나 부정, 그밖의 상처 같은 것은 전혀 발견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언제 죽음이 가까이 올지라도, 극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막이 내리기도 전에 무대를 떠나는 배우처럼 불완전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그의 마음속에는 노예근성이나 허세도 없고 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없는 반면 너무 멀리하는 마음도 없다. 그리고 비난 받을 만한 일이나 피신처를 찾을 일도 없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이 몇가지 진리만을 지키도록 하라. 인간은 누구나 찰나에 불과한 현재를 살고 있을 뿐이며, 그밖의 인생은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에 속하거나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불학실한 것임을 명심하라. 이처럼 인간의 삶의 시간은 찰나적이고 머무르는 지구는 좁다. 그리고 죽은 후의 명성도 잠시 동안만 이어질 뿐니고, 이러한 명성조차도 결국은 곧 사라질 것이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터에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자의 일을 알 리가 없는 것이다.
육체, 영혼, 이성-육체에는 갖가지 감각이, 영혼에는 욕구가, 이성에는 원칙이 잠재해 있다. 감각을 통하여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다. 감각을 통하여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다. 야수라든지 동성연애자라든지, 팔라리스, 또는 네로 같은 사람은 모두 충동의 지시에 순종한다. 신을 믿지 않고 조국을 등지며 문을 걸어잠그고 남몰래 불결한 짓을 하는 자들도 적당한 일을 하는 지침으로써 이성을 갖고 있다.
내가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이 만인에게 있다 할지라도 선인의 특별한 특성, 즉 어떠한 일이든 운명의 신이 그를 위해 짜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신성을 더럽히거나 무수한 상념으로 산란하게 만들지 않으며, 자기 마음 속의 신성을 신으로 여겨 이에 따르고 진리에 어긋나는 말이나 행동은 일체 하지 않음으로써 신성을 조용히 간직하는 특성만이 남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자기가 성실하고 겸손하며 선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해도 결코 화를 내지 않으며, 오히려 순결하고 고요하게 죽음에 대비하고 조금의 무리도 없이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면서 삶의 목표로부터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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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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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심리 - 김성태
둘째 묶음 - 자학과 사회 도피
4.19 의거에 관한 심리적 고찰
"한국의 대봉기는 결코 우연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이승만 정권이 극력 선전하듯이 4.19는 야당이나 공산주의자의 선동에 의해 일어나지도 않았다. 근세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정치, 그에 수반되는 탄압과 살육, 관리의 부패, 재계인들의 횡탈로 말미암은 국민 생활의 궁핍 등 누적된 학정에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여 봉기의 불꽃으로 화했다."
이는 어느 외국인 기자의 보도 중 한 구절이다. 1960년 4월 19일의 봉기는 확실히 우발사가 아니며, 그 책임은 말할 것도 없이 12년 간의 이승만 정권의 폭정에 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정권 담당자 그 사람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고, 또 그들만 제거한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현대적 의미의 혁명이란 사회 부조화의 산물인데, 이는 그 사회 안에 있는 대다수 인원들이 적절하게 안정된 적응을 하지 못하는 데에서 생기는 심리적 긴장이 원인이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혁명 중에 진행되는 집단적 노력이라 보아도 좋다. 1960년 4월 19일의 학생 봉기도 우리 사회의 부조화, 특히 학생층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긴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부조화란 대체 어떤 것일까. 우선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측면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심리적 스키마(도식)만을 생각하기로 한다. 4월 혁명을 일으키게 한 한국인의 심리적 요인에 관해서는 정양은이 가설적으로 제기한 이론이 흥미를 끈다. 그는 혁명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변화를 사회 구성 요인들의 역동적인 균형 유지 작용으로 보고, 사회 구성 요인의 하나인 심리적 요인을 문제 삼는다. 그는 봉건제도 사회에서의 심리적 특성을 상동적 행동과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심리적 특성을 '선택적 행동과 자유 선택'이라는 주제로 내세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봉건 사회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옮겨오는 중간에 일본의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식민지 민족으로서의 왜곡된 방어 행동이 발달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나라 기성층의 행동 특징을 방어 행동과의 동일시가 주조를 이루는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일제 36년 간의 식민 압정으로 욕구 불만이 만연되어 있으며, 이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방어적 행동이 습관화되어 다음과 같은 경향이 생겨났다고 본다. 첫째, 자신이 없어 현실 도피와 방관적 태도를 갖게 되고, 또 자신이 없으므로 불안이 심하다. 따라서 자기를 평가하는 데 예민하게 된다. 이리하여 관계 망상에 가까운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둘째, 자기 일신의 방어에 급급해 이기적이고 타산적이 되며 장기 계획이 없는 찰나주의에 빠진다. 셋째, 지나치게 합리화 기제가 발달되어 간교하고 무책임하므로 대결 정신이 없고 비굴하다. 정양은은 이러한 방어적 행동 경향과, 전세기적인 봉건적 특징인 '상동적 행동과 동일시'가 합쳐진 것이 오늘날 한국 기성층의 심리적 스키마의 특징이라 하여 아래와 같이 서술한다.
"사회적인 상하 관계와 봉건 시대의 주종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상전과의 동일시에서 오는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 복종 태도와 거기에서 파생된 관존 민비 사상이 뿌리 깊으며,부하 직원에 대해서는 존대와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늘 밑에서 자라 왔기 때문에 자기 방어에 능숙하여 현실에 소극적이고 도피적이며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이다. 또 상관에 대해 야유를 능사로 하고 당당히 자기를 주장하지 못한다. 대결 정신이 결여되어 악을 보고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못하며, 옳지 못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는 데 급급함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중추 세력은 이러한 봉건적인 동일시와 식민지 민족의 방어적 행동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또한 이들이 새로운 민주적 제도의 틀 속에서 구태의연한 과거식의 관념 체제로 움직여 온 것이 이 정권 12년이라고도 한다. 게다가 젊은 세대는 선진 국가들의 문화적 영향과 진보적 교육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이러한 과거식의 낡은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날 우리 민족의 심리적 스키마를 꾸며 온 것이 비단 이 봉건성과 식민지 민족 근성 뿐만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가 동서 냉전의 중간에 걸쳐 있다는 정치적인 불안정성을 무시할 수 없으며, 또한 해방 후부터 걸어온 역정을 논외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광복과 더불어 애국 망명 지사도 많이 환국해 왔지만 이에 못지 않게 간상배, 무뢰한들도 많이 들어왔고, 특히 북녘에서 수백만의 피난민이 넘어왔다. 이들의 생계가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개별적인 수단에 맡겨져 사람들이 악착스럽게 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6.25사변으로 불안한 피난 생활이 계속 되어 온 것, 공무원들에 대한 저임금 정책, 군의 팽창으로 군대식 사고 방식이 시민들이 생활 태도에까지 만연되었던 것 등등 사회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미봉적으로 굴러 왔다고 본다. 그리하여 사회의 개개인들은 이기적으로만 되어 가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각과 합리성이 결여되어 사회 분위기가 타인에 대한 봉사 정신은 커녕 불안정하고 계획성 없는 적당주의와, 제도와 현실이 분리된 양두구육(겉은 훌륭하게 내세우나 속은 변변치 않음)식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러한 풍조 속에서도 자기를 비판적으로 자각하며 내일에 희망을 걸고 합리적 방식으로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친 것이 그나마 지식인이요 학생층이었다. 여기에 어찌 지성 있는 학생들이 비정상적 사회에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욕구 불만은 심화되고, 그것이 심한 심리적 긴장을 조성해 마침내는 4.19의거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조성된 심리적 긴장을 행동으로써 해소하려던 학생들 자신은 사회 부조화의 어떤 면에 가장 불만을 가졌던가. 그들의 심리적 긴장을 행동으로 표출시킨 동인이라 생각되는 것을 살펴보겠다. 필자는 달케가 주로 인종 폭동에서 발견한 폭동의 사회적 동인을 설정하고, 이를 토대로 4.19 봉기에 참가한 서울 시내의 여러 대학 학생들에게 질문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이 정권의 불법 부정 정치에 불만 (72%) *경찰의 포악에 분격(65%) *폭력 지배의 사회에 분격(65%) *특권층의 농단에 불만(65%) *사회의 부패에 불만(64%) *민주 수호 단체의 투쟁에 호응하여(53%) *학생이 국가를 위해 궐기할 수 있다고 단정(48%) *신문의 선동에 흥분하여(45%) *여당계 보도의 왜곡성에 분격하여(44%) *학원의 부패에 분격하여(35%) *고대생을 깡패가 습격한 데 분격하여(35%) *동료 학생의 궐기를 좌시할 수 없어서(17%) *국내외 여론의 지지로 성공을 확신하고(14%) *교수의 호소에 감격하여(13%)
이러한 요인들 중 "민주 수호 단체의 투쟁에 호응하여", "신문의 선동에 흥분하여", "여당계 보도의 왜곡성에 분격하여", "고대생을 깡패가 습격 한데 분격하여", "동료 학생의 굴기를 좌시할 수 없어서" 등은 보조적 계기인데, 이 계기들은 이미 형성되어 있던 불만을 강화시키고 첨예화시켜 긴장을 터뜨릴 대상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요인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것들이 긴장을 폭발시킨 계기는 되었을지라도 긴장 조성의 근본 요인은 될 수 없으리라고 본다. 만일 이들 보조적 요인들을 너무 중요시한다면 학생 봉기 그 자체를 너무 우발적인 것으로 볼 우려가 있다. 그에 따라 혁명의 참된 뜻을 일실하는 과오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4.19 학생 봉기의 근본 요인은 이승만 정권 12년 간의 불법, 부정, 폭력정치, 특권층의 방자, 사회의 부패 등에 대한 분노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분노를 터뜨리게 한 보조 요인은 3.15 부정 선거, 이후의 여러 사건, 그리고 언론인의 선동과 터무니없는 여당계 보도의 왜곡성, 학생 동료들의 선동, 국내외 여론의 지지 등이었다고 본다. 이상의 14개 요인이 어떤 형태로 작용하여 학생들이 궐기하게 되었을까를 보기 위해 이들 상호간의 상관 계수를 클러스터(연관되는 것끼리 묶음으로 분류해 놓은 것)로 분석해 보니 두 가지 큰 조류로 나뉜다. 하나는 특권층에 의해 농단(독점)되어 부정, 부패, 폭력이 난무하는 이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궐기할 자는 학생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궐기만 하면 국내외 여론의 지지를 받아 반드시 이길 것이라 믿고 봉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고대생들이 깡패의 습격을 받아 같은 대학생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동료들이 궐기를 눈앞에 두고 자기만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대열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전자는 앞에서 말한 근본적 요인에 해당하고, 후자는 보조적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이 두 요인 모두 학생만이 국운을 바로잡을 수 있고 또 궐기할 사람은 학생밖에 없다는 자기 의식이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렇게 혁명의 요인들이 무르익은 정세 속에서 다른 계층은 제쳐놓고 학생들만 주동적 역할을 한 것은 무엇 때문이며, 이들 학생은 어떤 계층의 출신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자. 첫째, 그 당시 한국 사회가 아직도 반봉건적인 심리적 스키마에 사로잡혀 있었고 다만 도시 중심의 지식층만이 근대적 시민 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 그 지식층 내에서도 조직이 있는 것은 학생들뿐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학생 조직인 학도 호국단은 원래 관권에 의해 조직되었었는데, 이것은 학원 내에 반공 의식을 관철시키고 아울러 학생 운동을 통제하려고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승만 정권은 수년 동안 경찰, 군대, 노동단체에만 통제력을 강화했을 뿐 학도 호국단은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학생들은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을 펴 나가기 위해 기존의 학도 호국단 조직 체계를 이용하였다. 둘째, 신, 구 세대의 갈등을 무시할 수 없다. 기성층은 봉건적, 식민지적 근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독재 정치의 질곡에 코를 꾀여 끌려 다니는 군상들이었다. 여기에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반항적인 젊은이들이 기성 사회에 자기를 굽히고 그대로 적응할 리 만무하였다. 기성 세대는 또 그들대로 젊은 층들을 무능하며 윤리가 없고 건방지다고 멸시하며 백안시 하였다. 이러한 갈등 상황 속에서 젊은 층의 자기 주장이 봉기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하겠다. 이렇게 학생이 조직을 갖고 있었다는 점과, 신구 세대 갈등에 따르는 학생들의 반항 정신이 아마도 그들을 혁명의 주도 세력으로 나서게 한 바탕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면 봉기 학생들의 계급성은 어떠할까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혁명의 주동은 그 사회 체계에서 가장 출혈이 심한 하층 계급일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역사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미국의 사회 심리학자)은 "혁명은 완전히 짓밟힌 계층에 의해 일어나지는 않으며, 향상에 대한 신념과 혁명의 성공을 믿는 비교적 여유 있는 계층에 의해 일어난다."고 하였다. 4.19 전야의 사회 정세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가장 비참한 계층인 농민은 크게 숨 못 쉬는 상태였고, 다만 비교적 여유 있던 지식층(특히 학생들)만이 그래도 불평도 하고 의욕도 갖고 있었다. 봉기한 학생들 대부분이 중산계급 이하의 학생들이어서 앞으로 이들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경제적 지위와 적극성 정도의 상호 관계를 보면, 계급적 의식에 입각해 데모에 참가했다는 증거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계급적으로는 중류 이상이어도 정치적으로는 급진성을 지녔던 학생들이 주동했는지도 모른다. 이에 관해 전용신이 4.19 후에 아이젠크(영국의 심리학자)의 척도로 잰 수치들은 시사성을 보여준다. 그에 의하면 4.19 당시 학생들의 보수성, 급진성 평균치는 5.7이라 한다. 또 이 척도로써 나타난 영국인 전체의 보수성, 급진성 평균치는 7.5였다. 그런데 각 정파별 평균치는 보수 당원 5.3 노동 당원이 10.2 공산 당원 12.7이었다. 한국 대학생들의 급진성은 영국의 보수당 정도이니 정치 의식 면에서도 그다지 급진적인 것은 아니요, 아울러 여기에 서구적 의미의 계급성은 찾아볼 수 없다 하겠다. 따라서 4.19 의거는 각계 각층 출신의 학생들이 다 같이 일어선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일시적으로나 불규칙하게 모이는 집단 성원 각자가 일시적 동일시를 나타내고 어느 공동 대상에 주의를 집중시켜 반응하는 것을 "군중"이라고 브라운은 정의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4.19의 학생 시위 집단은 틀림없는 군중이요, 활동성에 비추어 볼 때 그 중에서도 특히 활동 군중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당시 그들의 활동으로는 물론 도피도 있고 약탈도 있었겠으나, 주된 것은 시위와 공격 행동이었으므로 이를 주로 시위와 공격 행동이 많았던 활동 군중이라 할 수 있다. 경찰과의 격투, 파괴, 방화, 약탈 등의 공격 행동이 있었으니 이를 공격적 활동 군중이라 하겠지만, 실은 이것도 데모를 저지하는 데서 부수적으로 생긴 반응이라 할 수 있으므로 근본적으로는 시위를 위한 군중이라 해도 좋다. 데모란 자기 주장의 표현일 뿐이지만, 이러한 표출도 억압받을 때에는 분노 정서를 유발하여 공격적 행동을 나타내는 수가 있다. 심리적 긴장이 심할 때는 그저 아무런 행동이라도 표출하면 그 긴장이 누그러지기 때문에 심리적 긴장을 유발시킨 조건을 제거하는 것과 관련 없는 표출도 할 수 있다. 어떤 불안을 지닌 사람이 술먹고 주정부리는 것, 불만 많은 청년들이 야유회나 운동회 끝에 떠들썩하게 소동 부려야 시원한 것은 이러한 표출의 행동이라 하겠다. 실로 4.19의 학생 데모는 이들 학생들이 심리적 긴장을 표출하는 일대 시위 행진으로서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주장을 내세운 시위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경찰의 진압으로 공격 행동이 나오게 되고 군중은 밀집되었기 때문에 더욱 정서적 흥분을 일으켜 불합리한 행동으로 긴장을 표출하는 표출적 활동 군중의 행동까지 나타났다. 스크럼 짜고 구호 외치며 여학생을 손가마 태우고 행진한다든가, 단발머리 여학생을 여럿이 추켜들고 만세 부르던 일 등은 가장 전형적인 표출적 군중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4.19의 학생 군중은 본질적으로 표출적 활동 군중이라 규정된다. 경찰이 이런 군중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자 새로운 욕구 불만이 생겨 이것이 분노로 발전되면서 공격적 행동으로 나타났다고 하겠다. 더 엄밀하게 말한다면 4.19의 군중은 공격적 표출 활동 군중임에 틀림없다. 만일 이날 경찰이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서울 시내를 뒤덮는 들썩 소동이 시가를 휩쓸었어도 그와 같은 공격적 행동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실례가 인천에서 있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이 전했듯이, 작년 4월 21일인가 22일 인천에서 학생들이 데모를 시작하는데 경찰이 방관할 뿐만 아니라 군중에게 냉수를 떠다 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의 시위는 거의 파괴는 물론 살상 없이 무사하게 끝났다고 한다.
이렇게 4.19의 군중이 평화적으로 시위 벌이고도 경찰에게 몽둥이와 총탄 세례를 받으면서 들썩 소동만을 부린 것을 보면, 이러하나 군중은 공격성이 적은 군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어린이들이 어른들에 의해 자유를 구속받을 때 분노를 터뜨리며 반응하지만, 이들은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어른을 두들겨 패거나 힘으로 물리치려는 공격 방식보다는 땅바닥에 누워 몸부림치고 떼써서 어른은 귀찮게 하는 정도의 행동을 한다. 그들은 합리적 자유를 영구적으로 쟁취하려 하지 않고, 어른에 대한 분노를 어느 정도나마 풀어 보자는 지극히 유치한 반응을 보인다. 4.19의 학생 군중이 근본적으로 표출적이었다는 점은 일종의 후진성이라 보이는 바다. 불의의 씨로 말미암아 생긴 분노를 공격 행동으로 표출하는 데 떼만 쓰고 만다며, 그 불의의 씨는 제거될 수 있다. 떼만 쓰고 정말로 공격할 것을 공격하지 않은 것이 4.19봉기의 모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196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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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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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암탉
제비들이 농가의 지붕 위에 한 줄로 앉아서 지저귀면서 여름과 남쪽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고 북풍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제비들은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다른 짐승들은 제비와 제비들이 날아간 남쪽에 대해 이야기했다. 암탉 한 마리가 말했다. "내년에는 나도 남쪽으로 갈 테야." 해가 바뀌어 제비들이 돌아왔고 봄과 여름이 흘러갔다. 이제 다시 제비들은 지붕 위에 앉았다. 양계장에서 닭들은 남쪽으로 가겠다던 암탉의 출발에 대해 논의했다. 이윽고 어느 날 이른 아침, 바람이 북쪽으로부터 불어오고 제비들은 갑자기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 그들의 날개로 바람을 안았다. 신비한 인간의 믿음보다도 더 오래되고 더 신비한 지식이 그들을 밀어냈고 그 힘으로 제비들은 높이 날아올라 도시의 어두운 먹구름을 뚫고 떠나버렸다. "저 바람은 얼마나 위대한가!" 암탉이 외쳤다. 암탉은 날개를 펼치고, 그 위대한 바람을 안으며 양계장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길 밖으로 푸덕거리며 계속 달렸다. 암탉은 어느 곳에서 주저앉았는데, 거기엔 정원이 있었다. 저녁이 되자 암탉은 헐떡거리며 돌아왔다. 돌아온 암탉은 남쪽으로 가는 빠른 길과 거대한 세상의 교통 따위들을 닭들에게 이야기했다. 감자가 자라는 땅과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보았고 그리고 길 끝에서는 정원을 발견했고 그곳에는 아름다운 장미들과 정원사도 있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감탄한 다른 닭들이 말했다.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묘사인가!" 겨울이 가고, 잔인한 달들이 지나서 다시 봄이 왔다. 제비들도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이제 다른 닭들은 남쪽에 바다가 있다는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우리의 암탉을 믿어야 해." 닭들은 제비들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암탉은 아는 자가 되었다.
- 지식은 한 마리의 암탉이다. 그것은 아주 멀리 갈 수가 없다. 암탉은 언젠가 어떤 것을 앎으로써, 약간 벗어나 알게 되긴 하지만 멀리 가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며, 그 앎은 방해물이 된다. 지식을 버려라. 그런다 해도 당신은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지식으로 당신 자신을 소유한다면 오히려 모두를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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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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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75. 중국혁명의 아버지 손문 - 중국동맹회 결성(1907년)
중국대륙의 공산당이나 대만의 국민당을 포함하여 모든 중국인들에게 국부로 받들여지는 사람이 손문이다. 그의 1866년 광동성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동성은 당시 서양세력들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1866년은 태평천국이 중국을 휩쓰다 막을 내린 2년 뒤다. 손문은 어렸을 때무터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10세 때 마을의 서당에서 공부했다. 12세 때는 형이 있는 하와이로 건너가 그곳에서 서양학문을 접하게 된다. 그의 형은 소작인이었는데 1871년에 하와이로 이민을 가 농장경영에 성공했다. 손문은 얼마 후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1886년부터 의학을 공부하고 1893년에 광주에서 의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의술을 베푸는 것보다는 중국의 현실개혁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894년 하와이로 건너가 중국혁명을 위한 흥중회를 결성하고 이듬해 홍콩에 흥중회 본부를 설치했다. 그를 비롯한 혁명가들의 목적은 만주족을 몰아내고 중국에 새로운 민주주의 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해 손문과 그의 동지들은 광주에서 무장봉기를 계획했으나, 지원되기로 되어 있던 무기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은데다가 사람들의 이동계획이 어긋나 봉기는 연기되었으며 몇 명의 동지들이 청조의 감시망에 걸려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손문도 신변의 위협을 느껴 일본으로 피신했다. 청은 그에게 많은 현상금을 걸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해외의 중국인(화교)들에게 혁명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여행 중 영국에 이르렀을 때 청조의 공사관 관리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구사일생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여행을 또한 손문으로 하여금 서양 자본주의의 눈부신 발전, 그리고 그 사회가 안고 있는 극심한 빈부의 격차를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 그의 새로운 중국사회 구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의 중심사상인 삼민주의는 이 여행에서 큰 틀이 잡혀졌다. 1895년의 혁명계획이 실패한 이후 1900년 홍콩에서 다시 혁명계획을 세워 광주와 혜주 등에서 동시에 봉기할 것을 결정했다. 영국에서 파견한 홍콩 총독, 일본에서 파견된 대만총독도 이 거사를 지원하기로 했으며 양관총독 이홍장도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홍장이 혁명세력과의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광동과 광서에서 계획된 봉기는 단행 되지 못했다. 그런데 이같은 사정을 연락받지 못한 혜주의 혁명세력은 계획대로 정사량의 지도 아래 봉기, 창나라 군대와 싸워 크게 이겼다. 그러나 예정되어 있던 광주지역에서의 봉기가 실패하면서 정사량의 혁명부대는 고립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1개월 정도 청의 군대와 싸우다 성과없이 해산하게 되었다. 몇 차례의 지역적인 봉기실패는 혁명세력들로 하여금 보다 조직적이고 통일적인 혁명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당시 중국 국내와 해외에는 무수히 많은 혁명조직들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단체로 호남성 출신 황흥과 송교인 등이 중심이 된 화흥회, 절강성 출신의 채원배, 장병린 등이 중심이 된 광복회 그리고 손문이 이끌었던 흥중회가 1907년 일본에서 모여 단일 혁명조직인 중국동맹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중국동맹회 회원은 중국 여러 성에서온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었으며 각 성의 조직활동 책임자기 정해졌다. 그들은 도쿄에 본부를 설치하고 기관지인 (민보)를 발행하면서 중국 내의 비밀결사조직과 연결, 무장봉기를 계획했다.
동맹회의 이념은 손문에 의해 제시된 삼민주의였다. 삼민이란 민족, 민권, 민생이다. '민족'은 민족주의적인 한족 국가를 세우는 것이고, 이는 제국주의 외국세력에 묶여 있는 청조를 타도함으러써 완성 된다. '민권'은 인민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될 것이다. '민생'은 인민들의 안정적인 생활을 갖추어줄 수 있는 경제정책인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정책을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소유권을 고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모든 개혁세력이 이 이념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세력들은 서로 생각이 다른 부분들이 많았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혁명파와 입헌파로 갈라진다. 먼저 민족주의의 문제다. 우선 정치체제적인 문제에서 입헌파는 청조 타도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만주족의 왕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입헌군주제 정부를 세울 것을 구상했다. 그에 비해 혁명파는 만주족의 청조가 한족을 억압하여 외국에 굴욕적이기 때문에 이를 타도하지 않고는 진정한 개혁을 이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음은 민권에 관한 문제인데, 예를 들어 입헌파인 양계초를 중국인민은 무지하여 공화제를 실행할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입헌군주제 아니면 서양식의 계몽군주제 비슷한 것을 선호했다. 그러나 혁명파는 당연히 중국인민들의 수준에서 공화제는 가능하며 혁명운동 자체가 인민들의 민주주의적인 의식을 깨우쳐나가는 과정이라고 주상했다. 세 번째로 민생주의의 있어서 입헌파는 토지국유 및 토지개혁에 절대반대의 입장이었다. 토지소유권은 신성 불가침이기 때문에 이것을 침해하는 것은 인민들로 하여금 부자가 될 꿈을 갖고 열심히일하려고 하는 생각을 감퇴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파는 토지가 소수에 의해 독점되는 것은 불합리하며 땅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농민들의 피땀을 빼앗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입헌파의 중심인물이 양계초 같은 지식인들이다. 그러나 입헌주의자들의 사상으로는 중국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 손문 등은 중국동맹회로 결집하여 혁명을 꿈꾸게 된 것이다. 혁명파는 1907년 이후에도 10여 회에 결치는 무장봉기를 시도했으나 모두 큰 성과 없이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혁명의 불길은 의외로 다른 곳에서부터 치솟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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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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望梅解渴(망매해갈) 望(바랄 망) 梅(매화나무 매) 解(풀 해) 渴(목마를 갈)
세설신어(世說新語) 가휼(假譎)편에는 조조(曹操)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위(魏)나라 문제(文帝)의 일화가 실려 있다. 동한(東漢) 말엽에, 조조는 군대를 통솔하여 장수(張繡)를 정벌하러 나섰다. 행군 도중 날씨가 너무 더워 병사들은 지치고 심한 갈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마실 물을 찾지 못해 진군을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조는 한참 생각하다가 묘책이 떠올랐는지 병사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조금나 더 가면 앞에 큰 매화나무 숲이 있다(前有大梅林). 열매도 많이 달려 있는데, 그 맛은 달고도 새콤하다. 이제 갈증을 풀 수 있을 것이다(可以解渴). 병사들은 매화가 있다는 말에 입안에 곧 침이 돌았다.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전진하였는데, 얼마가지 않아 물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다.
望梅解渴(매실을 생각하며 갈증을 풀다)은 望梅止渴(망매지갈) 梅林解渴(매림해갈) 이라고도 한다. 이는 공상으로 잠시 동안의 평안과 위안을 얻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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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이글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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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3. 끔찍하고 잔인했던 어린이들 이야기
강간당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샤를르 페로가 1697년에 낸 동화집의 첫번째에 나오는 이야기로서,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과 내용은 같지만 원판을 완전히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페로는 아름다운 공주에게 주어지는 정말 끔찍한 시련의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1636년 이탈리아의 장바티스타 바질레가 쓴 "5일 이야기"(펜타메로네)이다. 이 나폴리판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는 갓태어난 타리아 공주가 아마 가시의 독으로 목숨을 잃는다는 예언을 임금이 현자에게 듣는다. 임금의 명령으로 성에 있던 아마는 모두 없앴으나 소녀로 자란 공주는 우연히 아마를 잣는 물레를 찾아내고, 그로 인해 손끝에 아마 가시가 박혀서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다. 슬픔에 잠긴 임금은 타리아 공주의 시신을 벨벳 깔개 위에 누이고, 성문을 닫아건 채 영원히 숲을 뒤로한다. 여기서부터 현대판과 원판이 갈라지는 것이다. 숲속에서 사냥을 하고 있던 한 귀족이 황폐한 성과 정신을 잃은 공주를 발견한다. 그 귀족이 공주를 강간하고 떠나간 지 9개월 만에 타리아 공주는 잠이 든 채 남녀 쌍둥이를 출산한다. 태양과 달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아이들은 요정이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내아이가 타리아 공주의 손가락을 빨자 독가시가 떨어지면서 공주는 다시 살아난다. 다시 몇 달이 지난 뒤 잠자는 아름다운 공주의 육체를 탐했던 일을 생각해낸 귀족은 다시 성을 찾아왔으나 이번에는 잠들어 있지 않은 공주를 발견한다. 귀족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자기라는 것을 털어놓고 일주일 동안 실컷 즐긴 뒤 또다시 공주를 버리고 아내에게 돌아가 버린다. 물론 아내에게 이야기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원판은 여기서부터 지나치다고나 할까, 어쨌든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진전된다. 남편에게 숨겨 놓은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귀족의 아내는 쌍둥이 아이들을 붙잡아 와서 요리사에게 건네주며 목을 따고, 살은 맛있는 소스에 섞어서 삶으라고 명령한다. 남편이 음식을 절반쯤 먹었을 때 아내는 신바람이 나서 가르쳐준다. "당신은 지금 자기 자식을 먹고 있다구요!" 한동안 귀족은 그 사실을 믿고 있었지만, 마음씨 고운 요리사가 쌍둥이 아이들을 살려주고 염소 고기를 대신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아내는 타리아 공주를 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공주는 위기의 순간, 아이들의 아버지인 귀족에게 구원된다.
한편 페로의 동화집 가운데 가장 짧고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가 바로 "빨간모자"이다. 고증가들에 의하면 페로 이전에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없었다고 한다. 페로의 이야기에서는 할머니도, 빨간모자도 늑대에게 잡아먹혀 버린다. 늑대는 할머니를 잡아먹은 다음 빨간모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민속학자들이 말하는, 모든 어린이의 읽을거리 가운데 가장 멋지고 가장 유명한 문답 장면이다. 찰스 디킨스는, 빨간모자가 자신의 첫사랑이며 어린 마음에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안타깝게 그리워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중에 그는 '할머니를 잡아먹고도 배가 부르지 않은지 소름끼치는 농담을 하고 난 뒤 갑자기 나의 연인(빨간모자)을 잡아먹어 버리는 거짓말쟁이 늑대의 냉혹함과 배신'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쓰고 있다. 사실 많은 작가들이 페로의 음침한 결말에 반대하고 각자 자기 나름대로 결말을 생각했다. 잘 알려져 있는 1840년의 영국판에서는 늑대에게 잡아먹히게 된 빨간모자가 커다랗게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아버지와 몇 명의 나무꾼이 달려와서 늑대를 보고 당장 그 자리에서 때려죽여 버렸다.' 그 무렵, 프랑스의 어린이들은 또 다른 결말을 가져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늑대가 바로 빨간모자에게 덤벼들려고 했을 때, 커다란 말벌이 창문으로 날아들어와서 늑대의 콧등을 따끔하게 찌른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소리를 들은 지나가던 사냥꾼이 활을 쏘아서 '늑대의 귀를 꿰뚫고 순식간에 죽여버렸다'고. 아마도 이 이야기들 가운데에서 가장 피비린내가 나는 것은 19세기 말의 영국판일 것이다. 늑대는 할머니의 피를 병에 담아서, 아무 것도 모르는 빨간모자에게 마시게 하려고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개작판이든 빨간모자는 구해내지만 할머니를 구해내려고는 하지 않는다. 페로보다 120년 늦게 그림 형제가 또다시 새로운 개작판을 낸다. 이것이 할머니도 구해내는 유일한 작품이다. 할머니와 빨간모자를 잡아먹고 완전히 나른해진 늑대는 잠이 들고 만다. 늑대의 천둥처럼 코고는 소리를 들은 사냥꾼이 방안으로 들어오자 사태는 바뀐다. 사냥꾼은 즉시 가위로 늑대의 배를 가른다. 뛰어나온 빨간모자가 말한다. "늑대의 뱃속은 왜 그렇게 어두운지 몰라!" 그 다음에 지쳐서 비틀거리며 말도 하지 못하는 할머니가 나온다. 그리고 늑대는 쫓겨난다. 민속학자들은 페로가 능숙한 문체로 "빨간모자"를 문자로 기록하여 불후의 명작으로 남기기 전, 아마도 중세기부터 이 이야기는 구전 민화로 존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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