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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27호
2011.11.24 (음 10.29)/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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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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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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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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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는 슬프다. 아아, 나는 만 권의 책을 읽지 못한다. - 말라르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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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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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센트포인트
서울시장 선거가 마무리되었다.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186만7880표를, 무소속 박원순 후보는 215만8476표를 얻었다. 두 후보의 득표 차이는 29만596표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두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각각 46.21퍼센트와 53.40퍼센트로 지상파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 박원순 후보는 서울시장이 되었다. 새삼 개표 결과를 정리하며 뒷북을 치는 까닭은 퍼센트, 퍼센트포인트 차이를 짚어보기 위해서이다.
퍼센트는 ‘백분율을 나타내는 단위로 기호는 %’이고 퍼센트포인트는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가 이전 수치에 비해 증가하거나 감소한 양’(표준국어대사전)이다. 임금 인상률이 10%에서 15%로 늘었다면, 퍼센트포인트로는 (불과) 5퍼센트포인트가 늘어난 것이지만 퍼센트로는 (무려) 50퍼센트나 증가한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두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53.40%에서 46.21%를 뺀 7.19%포인트이고 박원순 후보는 나경원 후보보다 15.56% 표를 더 얻었다. 이렇듯 여론조사와 물가 상승률 따위의 통계 수치를 다룰 때 헷갈리면 안 되는 게 퍼센트와 퍼센트포인트이다. 셈법에 따라 ‘체감 효과’가 달라지기도 하고.
퍼센트와 같은 뜻으로 쓰는 ‘프로’는 어찌 다루어야 할까. 이 말은 네덜란드어 ‘프로센트’(Procent)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표현이다. 일본이 개항 초기에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주요 창구는 네덜란드였고 이 나라의 한자 음역어인 화란(和蘭)에서 들어온 학문인 난학(蘭學)은 곧 서양학문을 뜻했다. 이 땅에 ‘프로’를 넘겨준 일본은 요즘 ‘프로’보다 ‘퍼센트’(パ─セント)를 많이 쓴다.
백분율과 한뜻인 퍼센티지는 외래어로 인정하지만 같은 뜻으로 쓰고 있는 ‘프로티지(프로테이지)’는 바르지 않은 표현이다. 마일리지(mileage)처럼 무엇의 ‘양’을 나타내는 영어 접미사 ‘-age’를 네덜란드어가 어원인 ‘프로’에 붙여 만든 얼치기 말이기 때문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처리뱅이
신문과 방송을 읽고 듣고 보는 매체 수용자는 여럿으로 나뉜다. 인쇄 매체를 읽는 사람은 독자, 돈 내고 사서 읽으면 구독자, 특정 매체를 즐겨 읽으면 애독자가 된다. 텔레비전을 보는 이는 시청자, 라디오는 청취자 그리고 즐겨 듣는 이는 애청자이다. 독자와 시청자는 지면과 전파로 전달되는 정보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보·문의를 통해 콘텐츠 생산에 참여하기도 한다. 방송사 아나운서 부서에는 프로그램 관련 일거리뿐 아니라 우리말과 글에 관한 문의도 들어온다. 아나운서들이 국립국어원의 ‘가나다 전화’(1599-9979), 전국 곳곳에 설치된 ‘국어상담소’ 상담원과 비슷한 노릇을 한다고 보면 된다. 오늘 말글살이 얘깃거리는 <우리말 나들이> 애청자라고 밝힌 초등학교 교사의 전화 한 통에서 비롯했다.
“‘철이뱅이’라는 방언이 있는데 뜻이 무엇이냐?” 사전을 찾아도 나오지 않으니 문의했을 터, 인터넷에서도 쓸 만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처리뱅이’를 검색하니 답이 나왔다. 잠자리의 경북 방언이다. 흔히 ‘가을의 전령’으로 알려진 잠자리의 방언을 찾아보았다. 이웃 동네여도 이름이 다를 만큼 잠자리의 방언은 참으로 많았다. 나마리, 밤부리, 밥주리, 붓쟁이, 잰자리, 철랭이, 오다리, 자마리, 찰랑개비, 청뱅이, 촐뱅이, 철구, 부잰째리, 곰부리, 잼자리…. 지금껏 ‘잠자리’ 하나만을 잠자리로 알고 지낸 서울내기인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진화사회학자인 대니얼 네틀과 언어학자인 수잰 로메인은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에서 ‘언어의 사멸은 생태계 붕괴의 한 부분’이라며 ‘고유문화를 담는 그릇인 언어의 보존’을 역설했다. 지역 정서와 문화가 담겨 있는 방언은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표준어를 앞세워 지역어가 숨쉴 공간을 빼앗는 일은 피해야 한다. 최근 한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원로 아나운서가 후배 아나운서들에게 “우리말을 아끼고 보존한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라”며 ‘청뱅이’(잠자리)를 보기로 든 까닭도 방언이 소중한 언어유산임을 알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전화 받다 / 전화받다
"부장님, 사장님 전화입니다. 전화받으세요." "부장님 차에 휴대전화를 떨어뜨리셨더군요. 제가 가져왔습니다. 여기 전화 받으세요."
위와 같은 경우 '전화받다/전화 받다' 형태의 띄어쓰기는 어느 것이 맞을까? 정답부터 말하면 둘 다 맞다. '전화'의 의미에 따라 띄어쓰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화'라는 단어에는 '전화기를 이용해 말을 주고받음'과 '전화기'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그 뒤에 '받다'가 올 때, '통화하다'는 뜻일 때는 붙여 쓰지만 '전화기를 건네받다'는 뜻일 때는 띄어 쓴다. '전화'가 전화기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추상적인 의미일 때 뒤에 오는 '-받다(-드리다)'는 접미사다. 전화기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킬 경우에는 '받다(드리다)'가 동사다.
'전화받다, 전화드리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올라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추상적인 개념의 단어 다음에 나오는 '-받다, -드리다'는 접미사이기 때문에 앞의 단어에 붙여 써야 한다.
'사랑하다, 가결되다, 이해시키다, 이용당하다'에서 '-하다, -되다, -시키다, -당하다' 등도 접미사이므로 명사 따위에 바로 이어서 나올 때는 반드시 붙여 쓴다. 다만 '사랑을 하다'같이 중간에 조사가 들어가거나 '행복한 사랑 하세요'처럼 앞에 수식하는 말이 있을 경우에는 '하다'가 동사이므로 띄어 써야 한다. 그러나 '받다, 드리다'는 중간에 조사가 나오지 않아도 동사가 될 때가 있으므로 띄어쓰기를 할 때 주의해야 한다.
자기 개발 / 자기 계발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개인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 외국어 학원과 서점에 북적대는 '샐러던트'('샐러리맨'과 '스튜던트'의 합성어)들은 이러한 사회 풍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학벌과 연공서열보다는 실력 위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계발을 게을리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처럼 어떤 능력이나 가치를 발견해 신장시킨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계발'이란 말을 쓰곤 한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개발'이란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많은 사람이 둘을 구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계발(啓發)은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 줌'이라는 의미로 '상상력 계발'이나 '외국어 능력 계발'처럼 인간의 지적 능력을 나타내는 말과 어울린다. 이에 비해 개발(開發)은 재능이나 능력뿐 아니라 기술.경제.제품.토지.인력 등 물질적인 것과 조화를 이룬다.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 하더라도 '능력 등을 발달하게 하는 일'에는 '개발'을, '능력 등을 일깨워 주는 일'에는 '계발'을 써야 한다. 가장 흔히 범하는 오류는 물질적인 대상에 '계발'을 쓰는 것이다. '제품 계발' '토지 계발' '신도시 계발' 등은 물질적인 면이므로 모두 '개발'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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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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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대도 아니 달고 - 백무산
1 생전에 뵙지 못한 권정생 선생께서 가신 안동병원을 찾았지만 나는 곧 빈소를 잘못 찾아왔음을 알았습니다 고인은 아직 집에 계신 듯, 문상객들의 눈치놀음이 데면데면한 것이 민망하여 술자리를 물리고 집으로 조문을 갔습니다 마을 이름 하나만 믿고 마을에 와서도 집을 묻지 않았습니다 집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을 지나 집의 언저리까지 끌고 온 내 짐작은 지붕이 보일 무렵 그만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당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나도 모르게 가슴이 사정없이 뛰었습니다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생전에 일면식도 없던 선생의 집에 와서 민망하리만큼 눈물 적셨습니다 헛간채보다 못한 적빈의 살림살이가 눈물겨워서가 아니었습니다
2 얼치기 반풍수가 보기에도 이곳은 집이 앉을 땅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흉사에나 쓸 물건이나 상여를 넣어둘 곳집이 있거나 역병 든 사람 죽음길 보내는 초막이 있거나 흉한 곳에 흉한 것을 두어 흉을 좀 눌러보자고 복 바랄 일 애당초 가망없고 처절함만이라도 면해보고자 빌고 또 빌어보던 골매기 성황당이나 있어야 할 터였습니다
게다가 마냥 열린 북쪽에서 닥치는 칼바람이 수시로 집을 헐뜯고 뒷산 빌뱅이 언덕이 의붓자식처럼 내다버린 곁줄기 하나가 집터에 이르기 전에 이미 숨이 끊어져 사룡(死龍)이 되어 있었고 뒤에서 무력하게 흘러온 개울물은 집을 외면하고 저 가기 좋은 길로만 바삐 가고 있었습니다 땅속은 골수가 빠진 뼈처럼 부스러져 있었고 습한 기운은 집의 아랫도리를 뱀처럼 휘감고 있었습니다
3 아, 이곳에 누워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아프셨을까 뼈마디 마디 저미는 숱한 밤을 어찌 지새우셨을까 음산한 죽음의 그림자가 아랫마을을 범하기 전에 그 길목을 지키며 얼마나 많은 밤을 살을 파고드는 두려움과 싸우신 것일까
굳이 흉한 곳에 몸을 두어 대속하신 것일까
삶을 대속물로 드린 것일까
죄의 대속물 같은 고통의 대속물 같은 대속으로 흘리신 피 같은
그것이 선생의 글이었을까
세상의 흉한 터가 문학의 본적지일까
4 나의 두 눈은 불에 데인 듯 뜨거워져 선생의 집을 더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크게 잘못 읽었을까 두려웠습니다 마당 앞에 놓인 범상치 않은 바위에 비친 맑은 기운 하나도 놓치고 있었습니다
나는 집을 나와 밭을 가로질러 멀리 나아갔습니다 마을이 한눈에 보일 때까지 개울을 따라 한참 나아가 뒤돌아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본 선생의 집은 강아지 꼬리 형국으로 흘러내려온 산줄기 아래에 똥무더기 하나로 놓여 있었습니다 그 똥무더기가 선생님의 집이었습니다
5 그러자 내가 무엇을 못다 읽었는가를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그 철부지 마음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나는 어릴 적 놀던 대로 다리를 벌리고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러자, 아, 그곳에 선생이 계셨습니다 그건 집이 아니라 작은 쪽배였습니다 낮달 같은 쪽배를 타고 구름 물결에 둥실 뜬 선생이 계셨습니다
그 쪽배는 세상을 떠메고 있었습니다 여위고 창백한 뼈 마디마디 다 드러낸 낮달 같은 쪽배에 눈물겨운 세상을 다 떠메고 있었습니다
그만 놓아드려야겠습니다 질긴 업장의 밧줄 하나 풀어드려야겠습니다 집을 허물어 배를 띄워야겠습니다 쌀밥 고봉밥 같은 어매 사는 나라로 목화솜같이 따듯한 여인 하나 사는 나라로 그만 훨훨 놓아드려야겠습니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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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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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연가 - 김종원
가을은 연애쟁이 여기 저기 내건 연서
이 나무엔 노란 편지 저 나무엔 갈색 편지
산정엔 빨간 가슴도 부끄럼 없이 펼치네.
뒷동산 밤송이가 알밤을 내던지면
앞산 감나무들 귀밑까지 낯을 붉혀
늦가을 산골 아가씨 노을 끝을 서성이네.
가을은 성적표 훈장처럼 내걸어
고구마 알몸으로 밭고랑을 나뒹굴면
고마워 들판 가득히 물결치는 벼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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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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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 소야 - 김흥수
소 장수가 몇 번 왔다 가고 도살장에서도 몇 번 왔다 갔지만 널 정말 팔 순 없단다, 소야.
널 사다 놓고 아버지가 덜컥 병이 나서 꼴 베다 멕이느라고 엄마랑 나랑 얼마나 고생했니, 글쎄.
일백이십만 원 주고 산 너를 구십만 원에 가져가겠다니 가격이 안 맞아서라도 어디 팔 수 있겠니, 글쎄.
쯧쯧...... 아무리 짐승이라도 속은 멀쩡한 것. 울지는 말아라. 아버지도 죽으면 죽었지 차마 너를 팔 순 없단다, 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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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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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1 - 임어당
제3장 인간의 동물적 유전
4. 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인간에게는 위라고 하는 밑바닥이 없는 굴이 있다. 이것은 인간이 동물이기 때문에 생기는 가장 중요한 사실의 하나이다. 그것은 인류의 모든 문명을 다채롭게 하고 있다. 중국의 쾌락주의자 이입 옹은 생활의 잔반을 논한 저서의 식물편 서문 가운데서 인간에게 이 밑바닥 없는 굴이 있다는 것에 불평을 늘어 놓고 있다.
인체의 모든 기관, 즉 귀, 눈, 코, 혀, 손, 발, 동체 등은 모두 필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 필요도 없는데 조물주에게서 받은 기관이 둘 있다. 입과 위가 그것이다. 이것이 있는 탓으로 인류는 오랫동안 고생을 하고 괴로움을 받아 온 것이다. 이 입이 있고 위가 있는 탓으로 먹고 살아간다는 문제가 복잡하고 번거로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생활에 교활한 거짓말과 정직하지 못한 것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생기게 되자 여기에 형법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국왕은 어진 정사를 베풀어 서민을 보호할 수 없게 되고, 부모들은 마음대로 어버이로서의 사랑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친절한 조물주까지도 자기 뜻에 어긋난 행동을 해야만 하게 된다. 이런 일들은 모두 창조할 때에 조물주가 인체의 설계에 조금 앞을 내대보는 선견의 명이 부족한 데서 온 결과이다. 즉 인간에게 입과위가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식물은 입과 위가 없어도 생활할 수 있고, 바위와 흙은 아무 영양도 섭취하지 않고도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 어째서 인간은 입과 위라는 두 개의 쓸데없는 기관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면 어째서 어류나 패류가 물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귀뚜라미나 매미가 이슬에서 영양분을 섭취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만들어 주지 않았던가. 이러한 것들은 그 모두가 이슬이나 물로 성장하고 정력을 얻고 헤엄도 치고 날고 뛰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가. 만약 그렇게 만들어졌다면 살아가느라고 이렇게 쩔쩔 맬 필요도 없을 것이며 또 인간의 슬픔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이 두 가지 기관을 준 데다가 여러 가지 식욕과 욕망도 준 것이다. 그 덕택으로 굴은 밑바닥이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찰 줄을 모르는 골짜기나 아니면 바다처럼 되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불충분하면서도 이 두 기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기관은 모든 힘을 다 기울여 일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몇 번이고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조물주를 비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조물주도 이 잘못을 반드시 후회 했을 것임은 나도 알고 있지만, 이제 와서는 이미 저질러 놓은 일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쯤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설계나 견본이 벌써 다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것들을 모두 생각해 보면 법률이나 제도를 제정할 때 매우 신중한 태도로 임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는가!
채워 줘야 될 이 밑없는 독이 이미 존재해 있는 이상 어떻게도 할 도리가 없다. 위가 있다고 하는 사실은 아무리 과소 평가를 해도 인류사의 코오스를 다채롭게 하고 있다. 공자는 인간성을 너그러운 태도로 해석하여 이 대욕망을 둘이라고 했다. 영양과 생식, 좀더 쉬운 말로 하면 먹을 것과 성이다. 성에서 용케 빠져나온 사람은 많지만 어떠한 성자라도 먹고 마시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아직껏 없었다. 금욕 생활을 닦은 고행자는 있지만 어떠한 정신적인 인간이라도 네댓 시간 이상이나 먹을 것을 잊어 버릴 수는 없다. 몇 시간마다 꼬박꼬박 머리에 떠오르는 불변 부동의 반복 행위는 <언제 먹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것은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일어난다. 어떤 때에는 네 번 다섯 번이나 일어난다. 국제 회의에서 제아무리 중요하고도 긴급한 정치 정세를 논의하고 있을 때에도 오찬을 위해서는 회의를 쉬지 않으면 안된다. 국회는 식사 시간에 지장이 없도록 회의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오륙 시간 이상이나 계속되기도 하고 점심 시간과 서로 겹치게 되는 대관식은 공중에게 불편을 주게 된다 하여 대번에 비난을 사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위를 갖고 있으므로 할아버지에 대하여 정식으로 경의를 표하려고 한다면 고작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안은 그를 위해 한자리를 베풀어 생신의 축연을 열어 드리는 일이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식사를 하는 자리에 모이는 벗들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고급 연와탕(금사연의 둥우리로 만든 중국 고급 요리의 이름)이나 맛좋은 죽면은 열중된 토론을 식히고, 과격한 의견의 대립을 누그려 주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제아무리 사이가 좋은 친구라 할지라도 배가 고플 때 두 사람을 함께 있게 해 보라. 반드시 싸우고 헤어지고 말 것이 뻔하다. 맛좋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 효과는 몇 시간 뿐이 아니라, 몇 주일 또는 몇 달씩 계속된다. 삼사 개월 전에 굉장한 식사 대접을 해준 그 어느 사람의 저서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평을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좀 망설이게 된다. 인간성에 깊은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 사이에서 모든 싸움이나 말다툼이 재판소에서가 아니라 식탁 위에서 해결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국인은 말다툼이 일어난 이상 식탁 위에서 그것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같은 수단으로 말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예방까지도 한다. 이것이 중국인의 생활법이다. 중국에서는 때때로 음식을 차리거나 잔치를 벌여 모든 사람들의 환심을 산다. 사실 이 식사라는 것은 정계에서 성공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안전한 안내자이다. 누군가가 통계를 내보는 사람이 있다면, 친구에게 한턱 내는 식사의 수와 관계에서 출세하는 율이나 속도 사이에 절대적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먹고 마시는 문제가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근본적인 것이 있다. 즉 혁명, 평화, 전쟁, 애국심, 국제적 이해,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부터 인간의 사회 생활의 모든 조직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루소, 볼테르, 디드로였던가. 천만에, 오직 먹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제도를 실험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또다시 말하면 오직 먹을 것이다. 전쟁에 관해서 말하자면 나폴레옹은 <군대는 그 위로 싸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에는 그의 예지의 본질적인 깊이 깃들어 있다. 횡경막 아래에 평화가 없을 때 <평화, 평화> 하고 외쳐 본댔자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이 말은 개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경우에도 해당된다. 백성이 굶주렸을 때 많은 제국이 허물어지고, 어떠한 강력 정권도 공포 정치도 모두 쓰러지고 말았다. 굶주리게 되면 백성은 일하기를 거부하고, 상원의원은 토론하기를 거부하고, 대통령까지도 국가를 통치하기를 거부한다. 가정에서 맛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겠다는 기대 없이, 온 세상의 어느 가장이 무엇 때문에 온 종일 땀을 흘리며 사무소에서 일을 하겠는가. 그래서 <마음으로 통하는 가장 좋은 길은 위다>라는 옛 속담이 생긴 것이다. 식욕이 만족하면 정신은 훨씬 온건해지고 마음이 편해지고 색욕도 생기고 안식도 생긴다. 새로 지은 양복이며 구두, 새로 그린 눈썹이나 의자의 새 커버 등을 남편이 봐 주지 않고 모른 체한다고 어느 아내나 곧잘 불평하지만, 맛좋은 비프스틱이나 맛좋은 오므라이스를 남편이 모른 체한다고 불평을 말하는 아내는 없을 것이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어렸을 때의 먹던 맛좋은 음식에 대한 기호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내가 어디선지 한 말이지만, 엉클 샘(미국의 별칭)에 대한 충성은 도너츠, 햄, 스위트 포테이토에 대한 충성이고, 조국에 대한 독일 사람의 충성은 달걀 과자와 크리스마스의 빵과자에 대한 충성이다.
산해 진미라면 중국인은 그만 정신을 잃을 정도로 열중하고 만다. 중국인은 위와 창자가 맛있는 것으로 꽉차게 되면 인생은 참 좋은 것이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이런 위에서 정신적인 행복이 넘치고 빛나는 것이다. 중국인은 본능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본능은 중국인에게 말하기를 <위만 편안하면 세상 만사는 모두 편안하다> 본능에 가장 가까운 생활과 그것을 좀더 당당하게 인정할 만한 철학을 중국인을 위해 내가 주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어디에선가 내가 말한 바와 같이 중국인적인 행복관은 <따뜻하게 입고, 배불리 먹고, 편히 자며, 아름답다>에 있다.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잠자리에 들 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중국의 그 어느 한 시인이 <배불리 먹은 위야말로 위대한 것, 그밖의 것은 있으나마나>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철학을 가진 중국인은 음식을 먹는 데 있어 점잔을 빼는 일이 없고 또 입맛을 쩍쩍 다시기를 삼가지 않는다. 중국인은 맛좋은 고기국을 한 입 마시면 정말 맛있다는 듯이 입맛을 다신다. 물론 서양식 식탁의 예법으로 따져 보면 정말로 버릇없는 짓일 것이다. 그러나 탈은 이 서양식 식탁의 예법이라고 하는 놈인데, 소리를 내지 않고 수우프를 마시거나, 즐거운 표정이라곤 전혀 나타내지 않은 채 조용히 식사를 해야 한다고 하는 예법이야말로 요리법의 진보를 막아 버린 참된 이유가 아니겠는가. 나는 사실 그렇게 생각한다. 어째서 서양 사람들은 식탁에 마주 앉으면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처량한 얼굴을 하고 점잔을 빼며 거만을 떠는 것일까? 통통한 닭 다리를 손에 들고 그것을 맛있게 뜯어 먹는다는 그 기막힌 맛을 대부분의 미국인은 모른다. 뱃속에서는 아주 비참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말은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나이프와 포오크로 점잖게 고기를 써는 흉내를 내고 있다. 닭고기 맛이 정말 좋다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죄악이다. 이른바 식탁의 예법 때문에 아이들이 입맛을 다시는 것을 그 어머니로부터 못하게 꾸중을 들었다면 벌써 이 아이는 여기서 인생의 슬픔의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 된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기쁨을 표현하지 않으면 기쁨을 느끼는 작용까지도 나중에는 멎어 버리고 그 다음에는 소화불량, 우울증, 그 밖에 성인의 생활에 특히 많은 모든 정신상의 질환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인간의 심리인 것이다. 모름지기 프랑스 사람을 모방해서, 급사가 맛있는 송아지 고기 카틀렛을 가지고 왔을 때에는 우선 <아!> 하고 감탄한 다음, 처음 한 입을 먹고 나서는 <음음...> 하고 동물과 똑같은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이 좋다. 식사를 즐기는 데 무엇이 부끄러울 것인가! 정상적이며 건강한 식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무엇이 부끄럽단 말이냐. 그런데 중국인은 그렇지 않다. 식탁의 예법은 나쁘지만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기뻐하는 것이다.
인간 생활의 참된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그 수가 극히 적은 것이지만 음식은 그 중의 하나라는 것이 된다. 이 굶주림의 본능은 성이라는 다른 본능보다도 금지나 사회적 법규에 억눌리는 일이 비교적 적다. 또 일반적으로 말하면 음식물에 관하여서는 도덕 문제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성에 관한 경우와는 달라서 음식물에 관해서는 점잔을 뺄 필요는 훨씬 적다. 철학자도 시인도 상인도 예술가도 모두 같은 식탁을 둘러싸고 앉아서 당당히 모든 사람이 보는 데서 아무 부끄러워 할 것도 없이 영양 기능을 다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물론 어떤 야만족은 식사에 관하여 수치감이 대단히 발달해 있어서 혼자가 아니면 식사를 안한다고 하는 것도 알려져 있다. 성의 본능은 나중에 고찰할 작정이지만, 적어도 여기서 말하는 한 가지 본능, 즉 식욕은 구속되는 수가 적은 만큼 여러 가지 형태의 도착이나 정신 착란이나 범죄 행위가 일어나는 수도 적다. 다같이 본능이라고 하지만 식욕과 성욕을 비교해 보면 그 사회적 함축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굶주림의 본능이라는 것이 내가 이제까지 말해 온 바와 조금도 다름이 없으며, 인간의 심리 생활을 혼란케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는 은혜 그 자체인 본능이란 즉 이 식욕의 본능이다. 왜냐하면 누구나가 다 허심탄회하게 다룰 수 있는 유일 무이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 본능에는 억제라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신경통이니 정신병이니 도착이니 하는 것이 이에 관련되어 발생하지 않는다. 찻잔이 입술에서 미끄러지는 수가 가끔 있지만 일단 음식물이 입 속으로 들어가면 옆으로 새어나오는 일은 비교적 적다. 모든 사람들이 음식물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선뜻 인정하는 바이지만 성의 본능이 되고 보면 그렇지 못하다. 또 이 굶주림의 본능은 충족이 되어도 성가신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라도 소화불량에 빠지는 사람이 생기거나, 위궤양이나 간경화증이 나타나거나, 자기 스스로의 이빨로 무덤을 파는 류의 사람이 다소 생기거나 할 정도이다. 요즘의 중국의 고관대작에는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러나 별로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똑같은 이유로 음식물 때문에 일어나는 사회적 범죄는 성의 경우보다 훨씬 적다. 형법에는 간통, 이혼, 폭행에 관해서 굉장히 많은 조문이 있지만 음식의 불법, 부도덕, 부정이라는 죄는 형법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최악의 경우라도 남자들이 냉장고 속에 든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막으려고 냉장고에 못질을 했다고 해서 교수형에 처한다는 일도 없을 것이다. 또 이러한 사건이 늘 발생하게 되면 재판관도 충분히 동정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먹어야 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민중에게는 동정이 가지만 수도원의 수녀에게는 동정이 가지 않는다. 성의 문제에 관해서는 세상 사람들은 무서울 만큼 무지하지만, 음식물의 문제가 되고 보면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므로 나의 이같은 생각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은 아니다. 만주인의 가정에서는 딸이 결혼하기 전에 요리법과 아울러 성애의 기교를 딸애에게 가르치는 것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어느 정도이겠는가. 음식물의 문제는 지식의 햇빛을 받고 있지만, 성은 아직도 옛날 이야기와 신화와 미신 속에 싸여 있다. 음식물의 문제에 관해서는 햇빛이 빛나고 있으나, 성의 문제에 관해서는 햇빛이 희미하게 비칠 분이다. 한편으로 사람에게 모래 주머니, 모이 주머니, 반추동물의 제4위니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만일 이러한 기관이 갖추어져 있다면 인간 사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제와는 다른 것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현재와는 전혀 다른 인종이 나타나 있을 것이다. 위관이니 모래 주머니니 하는 것을 갖추고 있다면 인류는 닭이나 아기양처럼 극히 평화롭고 만족스럽고 순한 성질을 띠고 있을 것이다. 부리가 생겨서 심미감이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설치류 동물과 같은 이가 자라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씨와 열매만으로 족하게 되어 푸른 산허리에서 풀을 뜯어 먹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은 얼마든지 풍요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찾아서 싸우거나 싸움에 진 자를 물어 뜯을 필요는 없게 되므로, 인류는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은 무서운 호전적인 동물로는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식물과 기질 사이에는 자연 관계에 있어 상상 이상의 밀접한 관게가 있다. 초식 동물은 모두가 천성이 평화롭다... 양, 말, 소, 코끼리, 참새 등등. 그러나 육식 동물은 모두가 전투자들이다. 늑대, 사자, 호랑이, 독수리 등등이 그러하다. 인간이 만일 초식 동물이었다면 그 성질은 분명히 더 온순하였으리라. 자연은 싸움의 필요가 없는 곳에 호전적인 기질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수탉은 지금도 싸우지만 그것은 먹을 것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암탉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다. 물론 인간 사회의 남성간에도 여전히 다소 이러한 종류의 투쟁이 행해지고는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늘날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수출용 통조림을 둘러싼 투쟁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나는 원숭이가 원숭이를 잡아 먹는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사람들이 서로 잡아 먹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인류학은 모든 증거를 들어 사람을 먹는 풍습이 상당히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는 것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우리들 육식류의 조상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직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서로 잡아 먹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이상하게 들릴 까닭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국제적으로 식인종에 관해서 특히 써야 할 점은 사람을 죽인다는 것의 선악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피할 수 없는 악이라는 것을 시인하면서도 죽어 넘어진 적의 맛좋은 허리 고기, 갈비살, 간장 등을 먹고 그 살육에서 그 어떤 성과를 얻으려고 한다. 식인종과 문명인의 차이는 식인종이 적을 죽여서 먹는 데 비해, 문명은 적을 죽여서 묻고, 그 유해 위에 십자가를 안치하고,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를 올리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이렇듯 인간의 자존심과 성급함에 하나 더 어리석음이 가해진 것이다.
인간이 완성되어 가는 도중에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즉 이 말은 현재로서는 인간은 용서할 수 있는 불완전한 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모래 주머니적인 기질을 발휘하게 되기까지는 참된 의미에서 문명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현재의 인류에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의 두 가지를 보고 있다. 다정한 기질을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초식 동물적인 인간은 자기 자신이 할 일을 생각하면서 일생을 보내지만, 육식 동물적인 인간은 남의 생활에 간섭함으로써 자기의 생계를 세운다. 나는 10년 전에 한 4개월 동안 정치의 맛을 본 다음 마침내 그것과 관계를 끊게 되었는데, 그것도 내 성질이 육식 동물적이 아니라는 것을 재빨리 발견했기 때문이다. 물론 맛좋은 비프스틱만은 좋아하지만. 세상 사람의 절반은 자기의 일을 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남에게 자기의 일을 시키기 위해서거나 또는 다른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거나 그 둘 중의 한 가지 때문에 살고 있다. 육식 동물적 인간의 특징은 권투, 통나무 굴리기, 줄다리기와 같은 일에 절대적인 기쁨을 느끼고 있는 데 있다. 그 외에 또 사람을 배반하거나, 되속이거나, 앞지르거나 하는 일, 이러한 일은 모두 진정한 재미와 실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헛된 수작이라는 것을 고백해 둔다. 그러나 이 모두가 본능의 문제다. 어떻게도 할 수 없다. 권투가적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그 본능을 향략하고 만끽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동시에 참된 창조적 재능, 즉 자기 자신의 일을 하고, 자기 자신의 문제를 아는 재능은 보통 발달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얼마나 많은 유유하고도 고요한 호학지사, 또는 초식 동물적 교수들이 경쟁 마당에서 승리를 얻으려는 욕망과 능력이 결핍되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사람들을 참으로 찬미한다. 세계의 모든 창조적 예술가들은 남의 일에 마음을 쓰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일에 마음을 쓰는 편이 훨씬 훌륭한 태도이며, 그것이 초식 동물에 속하는 일이라는 의견을 세워볼 수는 없는 것일까. 인류의 참된 진보는 육식 동물적인 인간에 대해서 초식 동물적인 Home sapiens(인류)를 늘리는데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육식 동물이 지배할 것이 틀림없다. 튼튼한 근육을 믿는 세계에서는 그렇게 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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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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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명상록
사색하는 생할인으로서, 영원히 낡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아우렐리우스의 고매한 양심의 목소리
제2장. 인생에 대하여
아침에 자리에서 눈을 뜨면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오늘도 나는 호기심에 가득찬 사람이나 배은망덕한 사람, 오만불손한 사람, 협잡꾼이나 시기심이 많은 사람, 이기주의자 등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이러한 사람들은 선과 악을 분별할 줄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의 본질이 고귀하다는 것, 악의 본질이 천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악을 행하는 자들의 본성은 나와 같은 근원에 속해 있을 뿐 아니라, 같은 이성과 신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들로부터 어떤 해도 입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은 누구도 나로 하여금 추악한 것을 추종하게 할 수 없고, 또한 나의 이웃에게 화를 낸다거나 미워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마치 두 개의 손이나 발처럼, 또는 아래위의 눈꺼풀이나 윗니 아랫니처럼 서로 협력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위반하는 일이다. 그리고 남을 괴롭히거나 질시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바로 상대방을 배반하는 행위인 것이다.
나는 단지 한 덩이의 살점과 호흡, 그리고 나를 지배하는 이성에 불과하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책을 버린다거나 그대 자신을 혼란하게 만들지 말라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대 자신은 지금 죽음의 문전에 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육체를 생각지 말라. 그것은 피와 뼈에 지나지 않고, 신경과 혈관과 동맥으로 짜여진 그물 같은 세포조직에 불과하다. 그리고 한 가닥의 공기일 뿐이며, 더우기 항상 일정하지도 않다. 매순간 토해내고 들이마시는 것이다. 자신을 지배하는 이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라. 그대는 이제 늙었다. 그대는 더이상 자신을 노예로 만들지 말라. 더이상 비사회적 일에 꼭두각시처럼 이용당하지 말고, 현재 그대의 운명에 불만을 품지 말고, 미래에 대해 비탄하지 말라. 그대에게 닥쳐오는 외적인 세상사들이 그대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가? 그렇다면 새롭고 선한 일을 배울 조용한 시간을 스스로 마련하고, 공연히 우왕좌왕 헤매지 말라. 그러나 완전히 다른 길로 끌려가서는 안된다. 많은 일들을 하느라고 인생에 지치고, 아직도 모든 행동이나 모든 사고에 목적이 없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오가고 있는지를 몰라서 불행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자기의 정신활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자는 반드시 불행해질 것이다. 만물을 피상적으로 관찰하고 어떤 시인의 말처럼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사물을 검사하거나 남의 마음속이나 들여다보려고 하며, 자신의 내부에 있는 이성을 섬기고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이성을 섬기고 존중한다는 것은, 정욕과 목적없는 방황과 신과 인간이 행하는 일에 대해 불만을 품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께서 하는 일은 그 탁월성과 위대함 때문에 우리의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며, 인간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 형제애나 동포심이라는 이유에서 우리의 호의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이 때로는 선과 악의 비관에 대한 인간의 무지라는 이유에서 일종의 동정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결함은 선악을 가려내는 능력을 빼앗는 경우보다 도리어 더욱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은 다음과 같은 경우 스스로를 괴롭힌다. 첫째, 영혼 자체가 일종의 종기일 때, 말하자면 우주의 부스럼이 되는 경우이다. 즉 만물의 속성은 자연의 어느 한 부분에 속해져 있기 때문에 어떠한 사건에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곧 자연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을 배격하고, 화난 사람의 영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악의적인 의도를 품고 그에게 반목하는 경우이다. 셋째로, 쾌락이나 고통으로 인하여 절제심을 잃는 경우이며, 넷째는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 진지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영혼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어떤 목적을 두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떤 일인가에 대해 아무런 분별도 없이 행하는 경우이다. 그것은, 이성을 가진 동물의 목적은 가장 존종하여야 할 고도와 정체의 이성과 원리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그가 점유하는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물질은 유동하는 것이며, 감각은 희미하게 둔해지고 육체는 부패할 것이며, 영혼은 산란한 회오리바람과 같다. 운명은 헤아릴 길 없이 암담하고, 명성은 불확실하다. 그리하여 이것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육체에 속하는 것은 흐르는 물과 같고 영혼에 속하는 것은 꿈이요, 연기이며, 인생은 전쟁터이며 나그네의 일시적 행로이며, 후세에 남는 명성은 망각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을 이끌어준단 말인가? 그것은 오직 하나, 바로 철학이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 신을 모독하거나 해치지 않고 모든 쾌락과 고통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하며, 목적 없이는 어느 일에도 손대지 않으며, 위선과 허위를 멀리하고 남이 행동하기를 기대하거나 행동하지 않기를 기대하지 않으며, 모든 운명이나 사건을 나 자신이 나온 그 근원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받아들이고, 최종적으로 죽음은 모든 생물을 만들어내는 원소의 그 구성분자로 환원되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릴 때 비로소 철학이 가능한 것이다. 개개의 사물이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 원소 자체에서 조금도 해악한 것이 아니라면, 과연 인간이 모든 원소의 변화와 분해를 두려워한 까닭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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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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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심리 - 김성태
첫째 묶음 - 생활 속의 심리
복종과 반항
어떤 조직이나 집단을 통솔하는 입장에서 볼 때, 구성원들의 지도자에게 이해심을 가지고 협조해 주는 것을 무엇보다도 바람직하게 생각하며,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반항하는 것을 가장 곤란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구성원들을 어떻게든지 복종시켜 반항시켜 반항하지 못하게 하는, 독재적 지배도 목적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흔히들 쓴다. 그러나 이같은 통솔 형식으로 곧 큰 효과를 거둘 것 같지만, 그 구성원들도 인간이라 복종하게만 한다고 해서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복종하는 것 같아도 마음 속으로는 불만을 그대로 참고 있을 뿐, 실은-적극적으로 반항하지는 않더라도-수시로 반항하고픈 감정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명령받는 것과 지시 받는 것만 하는 체하고 그 이상의 협조는 짐짓 하지 않는다. 일부러 잘못된 명령을 그대로 준수해서 일을 그르친다. 이는 복종이라기보다 오히려 소극적인 반항이라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통솔 형식을 지배적으로 독재적인 것과, 협조적이고 통정적인 것으로 나눈다. 그리고 지도자와 구성원 사이의 상호 이해와 협조에 의해 가능한 통정적 지도를 바람직한 것으로 권장한다. 이제 단체 안에서 통솔자와 구성원들이 나타내는 복종과 반항에 관한 심리학적 기초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따지고 보면 이들의 행동들은 모두 안전 욕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은 무엇보다 먹고 자고 위험을 피해 생명을 유지하는 생존 욕구에 의해 행동한다. 그런데 이러한 생존 욕구의 충족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고, 이들 생존 욕구가 계속적으로 충족 될 수 있는 안전성, 질서 또는 마음의 평온 등을 유지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이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집단에건 소속되려고 하며, 어떤 집단이나 개인과 애정적 관계를 가지려고 한다. 또한 자기를 내세워 스스로의 특유성을 세상에 인식시켜 자기를 아무나 넘보지 못하게 한다. 요컨대 어떤 집단 속에서 그 집단과의 확고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안전감을 얻을 수도 있고, 그 집단 속의 어느 개인과의 애정 관계를 굳게 해서 안전감을 얻을 수도 있고, 혹은 그 집단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뚜렷하게 함으로써 보다 자유롭게 자기를 주장하면서 안정되게 살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통솔자가 자기 주장적인 지배욕, 권력욕을 추구하는 것-통솔 받는-구성원들이 복종하여 안전감을 가지려고 하는 것, 반대로 이들이 복종하지 않고 반항해 자기를 내세우는 것 모두 이 안전 욕구로 이해할 수 있다.
프롬(미국의 정신분석 학자)은 "인간은 안전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복종하기도 하고 이들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방식은 사랑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연에서 벗어나 이성과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 자연으로부터의 분리에서 오는 - 외로움과 불안, 무지, 무력감 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될 때 다른 사람들과의 결함을 추구하게 된다. 이 결합의 양식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어떤 개인이나 집단, 제도 또는 신에게 스스로 종속됨으로써 세계와 하나가 되려는 것이 있다. 자기보다 더 큰 것의 부분이 되어 개별적 존재의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둘째, 남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권력을 쥠으로써 타인을 자기 자신의 일부가 되게 하고, 남을 자기 안에 종속시켜 자신이 개별적 존재에서 초월하려는 것이 있다. 즉 힘이나 권력으로 세계와 자기를 결합시키려는 방식이다. 이제 말한 종속과 지배는 모두 공생적 결합 방식인데, 여기서는 원래의 참된 자기 모습이나 자유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는 내적 힘도 없고 자신감도 지니지 못하고 사는 방식이다. 그러나 세 번째의 결합 방식은 본래 자기의 완전한 모습과 개별성을 그대로 지니면서 자기와 세계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스스로의 자유와 독립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자유와 독립도 유지하면서 각자의 발전을 도모하게 하는 방식이다. 프롬은 이런 결합 형식이 바로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이상적인 결합 방식인 사랑이 지니는 특질로서 프롬은 네 가지를 강조한다. 즉 사랑하는 상대를 돌보아 주는 노고 상대에게 느끼는 책임감과 존경심, 상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그것들이다. 노고란 상대의 발전과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수고를 집중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노고는 분리할 수 없는 관계라고 본다. 책임감은 외부에서 부과된 의무와는 달리 상대의 문제가 바로 자기의 문제라고 느끼는 일이다. 이같은 책임을 느끼게 때문에 노고를 아끼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노고와 책임감만 있는 사람은 맹목적인 사랑밖에 안 되며, 지배욕, 소유욕의 종노릇 밖에 못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개별성, 특유성을 파악하여 있는 그대로의 그를 인정하는 지식과 존경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참된 사랑은 상대를 위해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러한 대인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통솔자나 구성원(피통솔자) 모두가 이같은 사랑의 결합 양식을 추구할 때, 여기에 이상적인 지도와 협력이라는 건전한 관계가 성립되리라 본다. 단순히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통솔자나 집단에 종속되어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한 집단이나 통솔자를 아끼고 존중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고를 다하는 그러한 복종이라면, 이것이야말로 이상적인 복종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비해 상대방이나 구성원들이 기대하는 것과 반대되는 일을 한다거나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지시를 거역하는 것은 거부증이나 반항이라고 본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거부증이든 반항이든 이는 자기 주장적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자아 방어의 기제로도 볼 수 있으며, 참된 자기의 주체성 또는 올바른 자기 발전을 위한 정당한 반항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그릇된 지도자나 침략자가 협조를 강요할 때 과감하게 반항하는 모습은 아직도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다. 위에 말한 정의감에서 우러나온 반항도 있지만, 덮어놓고 반대하는 습관성 반항도 없지 않아 있다. 다 큰 사람을 어린애 취급하듯 멸시한다거나 너무 세심하게 하나하나 간섭하며 잔소리를 퍼부으면 욕구 불만이 생겨 이것의 해소를 위해 짐짓 반항하는 경향이 습관적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반항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는 기대되는 것을 일부러 안하는 소극적인 반항과, 기대하는 것의 정반대 되는 것을 일부러 하는 적극적 반항을 말한다. 또 이 반항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일반화될 수도 있다. 어머니에게 불만이 있어 반항이 되풀이되던 것이 어머니와 같은 여인들에게 일반화되어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꼭 반항한다든가, 부모에 대한 반항심이 심해서 웃사람의 일이라면 덮어놓고 반항하게 되는 수가 있다.
종업원이 심하게 반항할 때, 경영자는 너무 권위 의식을 내세워 처벌하는 것보다 차분하게 옳고 그름을 따져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 사람의 반항 경향이 입사 전부터 지니고 있던 습관적 특징인지, 아니면 입사 후에 회사 분위기에서 조성된 것인지, 혹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처음 생긴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너무 지나치게 독단적인 통솔 방식이나 자기의 얼굴 표정과 말투 등이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고 불만을 조성해서 이같은 반항을 초래하지 않았을까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명심해야 할 것은 너무나 상투적인 복종보다는 복종할 때 복종하고 부당한 명령에는 정정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말하자면 자각적인 태도를 더욱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196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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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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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도(道)
노자의 한 제자가 말했다. "스승님, 저는 도달했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만일 그대가 도달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확실히 그대가 도달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제자는 몇 달을 기다리다가 어느 날 말했다. "스승님이 옳았습니다. 이제 그것은 도달했습니다." 노자는 무한한 자비로 제자를 바라보았다. 노자는 사랑으로 제자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노자가 말했다. "그건 옳다. 이젠 무엇이 일어났는지 말해 보아라." 그는 말했다. "스승님께서 만일 그대가 도달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때 저는 지나쳐 있었습니다. 스승님의 그 말씀은 저를 감화시켰습니다. 어떻게 '나'를 도달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는 장벽이며 그러므로 나는 길을 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을 때 왔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다른 제자들에게 그 일어난 상태를 말해 주어라." 그는 말했다. "나는 즐겁지도 않았고 불쾌하지도 않았다. 나는 불신자도 아니었으며 성인도 아니었다. 나는 이것도 아니었고 저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것이 도달했을 때 특별한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나는 바로 수동성이었다. 무한한 수동성이었다. 곧 하나의 문, 열린 문이었다. 나는 그것을 갈구하지도 않았다. 유의하라. 나는 그것을 부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부름조차도 나에 의할 것이기에. 나는 부르지도 않았고 실제로 그것에 대해서 완전히 잊었었다. 나는 그저 앉아 있었다. 나는 탐구하지 않았으며 찾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나는 거기에 없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것이 나에게 넘쳐흘렀다."
- 도는 이렇게 일어난다. 만일 당신이 더욱더 묵종한다면 도는 여기에서 일어날 수 있다. 도는 여성의 길이다. 모든 다른 종교들은 침략적이며 남성적이다. 하지만 도는 여성적이다. 기억하라. 진리는 여성적인 자각의 상태에 있을 때에만 온다. 당신은 진리를 정복할 수 없다. 진리를 정복하려는 생각조차도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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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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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74. 서양귀신들을 몰아내고 청조를 지키자 - 의화단 운동(1899~1900년)
아편전쟁 이후 청은 계속 외국의 강압에 의해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으며 중국의 이권은 잇따라 강대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청조에 의한 개혁정책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어려운 백성들의 생활은 개선될 가능성을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가뭄과 기근 또는 황하의 범람과 같은 자연재해가 이어졌다. 서양세력의 침략행위는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특히 서양세력의 침략과 함께 들어온 크리스트교는 침략자의 종교로 인식되어 상당수의 중국인들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선교사의 살해를 이유로 프랑스 군대가 영국군대와 함께 중국을 공격했던 제2차 아편전쟁은 크리스트교에 대한 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크리스트교의 활동은 곧 침략자들의 활동과 관련되는 것으로 보여 백성들의 반감을 사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반감은 조직적인 반대운동으로 이어졌다. 이것을 '구교운동'이라고 한다. 이 운동은 유교질서의 유지를 원하는 보수적인 관료와 지방의 실력자인 향신층들이 주도했다. 그리고 그 비밀결사조직도 주도세력 중 하나였다. 중국에서의 종교적인 비밀결사조직의 뿌리는 매우 깊은데, 미신적인 종교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이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드러나게 된 것은 청일전쟁 이후 독일, 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조차지를 획득하고 일본이 만주에서 군사활동을 전개하려던 1890년대 말이었다. 이들은 지주들이나 외국세력에 굴복하는 태도를 보이는 관리들을 공격했으며, 서양 선교사나 중국인 크리스트 교도를 죽이거나 외국공관을 습격했다.
1898년 사천성 동부지역에서 6천여 명의 무리를 끌고 교회와 교민들의 토지 및 재산을 몰수하는 등의 활동을 했던 여동신이라는한 구교운동 지도자는 다음과 같이 그들의 뜻을 밝히고 있다. "양인들이 통상무역과 야소의 전교를 이용하여 우리 농민들의 생계와 의식수단을 빼앗았으며, 아편으로 우리 땅을 더럽혔으려...,조정을 모욕하고 우리 도시를 빼앗고...상해, 대만을 빼앗았다... 이제 우리들은 의롭게 일어서서 국가의 수치를 씻고자 한다" 이러한 구교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의화단운동으로, 당시에는 권비의 난이라고 했다. 이는 그들이 권법을 익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권법을 수련했으며, 무술이 깊어지면 총알을 피할 수도 있고 하늘을 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이 무리들 안에는 여자들도 있었으며, 그들은 부채를 흔들며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식으로 무협지나 영화에 표현되기도 한다. 그들은 예수에 대항하여 옥황상제에서부터 손오공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전통신앙에서 여러 숭배대상을 찾아냈다. 의화단 세력은 1895년경부터 산동성 서남부를 중심으로 산동, 강소, 하남, 안휘성 등을 무대로 활동했다. 1897년 의화단 세력은 중심부를 산동성 서북 및 하북성 남부로 옮기고 세력도 보강하여 농촌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으며 조직을 강화했다. 주로 여기에 가담한 백성들은 가난한 농민, 일자리가 없이 떠도는 사람들, 수공업자, 항구 등에서 일하는 운수 노동자 등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하나의 조직체계 안에서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각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여러 세력들이 있었다.
청조의 관리들 내부에서는 이러한 의화단이 활동에 대해 일치된 의견을 가지지 못했다. 보수적이고 외국을 배척하는 입장에 있는 강경파들은 의화단을 지지하는 쪽이었고, 서양세력과 연결을 가지면서 그들의 힘을 빌어 개혁을 하고자 했던 양무파들은 의화단의 활동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했다. 청조의 군사 실력자인 원세개는 의화단을 공격했고, 독일인 장교에 의해 훈련된 정예부대가 의화단 공격에 앞장섰다. 1900년 5월 의화단 세력은 천진과 북경에 들어가 모든 외국세력에게 물러날 것을 요구하면서 외국공사관이 모여 있는 지역을 호위했다. 그 당시의 의화단 세력은 약 20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등의 서양세력들은 청조에 2개월 이내에 의화단을 진압할 것을 요구하고 청조가 진압하지 못한다면 서양 연합군을 결성하여 이를 진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조에서는 의화단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으나 번번이 의화단에 패했다. 특히 당시 청조의 실권자인 서태후는 의화단의 진압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서양 서러 나라들은 서태후가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야 하며 그녀에 의해서 폐위되었던 광서제가 복위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전했다. 이에 서태후는 강력히 반발, 의화난을 북경에 불러들여 활동하게 하는 한편, 열강에 선전포고를 했다. 북경에 들어온 의화난의 거리를 떼지어 다니면서 서양과 관계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파괴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들은 공동으로 청나라에 군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고 여기에 일본, 이탈리아, 독일 등이 가담한 8개국 연합군이 6월 17일 천진에 공격해 들어왔다. 뒤를 이어 그들이 북경을 공격해들어오자 당황한 서태후는 재빨리 외국 공사관에 "의화단은 발란세력이고 이를 진압한다는 것이 청의 입장이다. 그런데 처리를 잘못하여 외국공사와 선교사, 크리스트 교 신도들을 보호하지 못했으므로 책임지고 스스로 힘으로 의화단을 진압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그러나 서양 연합세력은 8월 북경을 점령하고 북경은 제국주의 군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파괴, 약탈당했다. 서태후는 광서제를 데리고 서안으로 피난갔다.
1901년 9월 청은 제국주의 침략세력과 '북경 의정서'를 맺었다. 이 조약은 외세에 반대하는 관리들의 처형, 외세배척운동에 대한 철저한 탄압, 중국 포대의 철거, 북경의 공사관이나 교통의 요지에 외국군사 주둔 허용, 배상금의 지불 등의 내용이었다. 북경 의정서에 이르러 청은 더 이상 자력으로 중국을 통치할 수 있는 위치에 머무르지 못하게 되었고, 중국은 어느 한 나라의 확실한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으나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국권이 박탈된 반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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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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掩耳盜鈴(엄이도령) 掩(가릴 엄) 耳(귀 이) 盜(훔칠 도) 鈴(방울 령)
여씨춘추(呂氏春秋) 자지(自知)편에는 귀를 막고 종을 훔치던 한 사나이의 비유가 실려 있다. 춘추시대 말엽, 진(晉)나라에서는 권력을 둘러싼 귀족들의 격렬한 싸움이 전개 되었다. 마침내 대표적인 신흥 세력이었던 조간자(趙簡子)가 구세력의 핵심인 범길사(范吉射)의 가족을 멸하였는데, 그의 가족중 살아 남은 자들은 모두 진나라를 탈출하였다. 어느 날, 한 사나이가 이미 몰락해 버린 범길사의 집에 들어와서는 대문에 걸려 있는 큰 종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 종을 훔쳐가려고 생각했으나 혼자 옮기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종을 조각내어 가져가려고 망치로 종을 내리친 순간, 꽝 하는 큰 소리가 났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얼른 자기의 귀를 틀어 막았다. 그는 자기의 귀를 막으면 자기에게도 안들리고 다른 사람들도 듣지 못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掩耳盜鈴(귀 막고 방울 도둑질 하기) 은 掩耳偸鈴(엄이투령) 掩耳盜鐘(엄이도종) 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양심을 속임 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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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이글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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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3. 끔찍하고 잔인했던 어린이들 이야기
동화의 테마는 본래 끔찍하고 잔인하다
오늘날 강간이나 유아 학대나 유기는 신문이나 영화의 소재이지만, 우리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동화들 대부분의 중요한 테마이기도 했다. 본래 동화의 테마는 그런 것이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원판에서 공주가 키스를 받고 눈을 뜨지만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진짜 시련이 시작되고 있다. 공주는 강간을 당하고 유기 되며 공주가 낳은 사생아들은 끔찍하게도 인육이 되어 희생당할 상황까지 간다. 또 "빨간모자"에서는 늑대가 할머니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나서는 소화를 할 틈도 없이 빨간모자에게 덤벼들어서 손발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당시 삽화가들은 잔일한 살인 장면이 두 번씩 나오면 아이들이 도저히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면서 이 이야기에 삽화 그리는 일을 거절했다. 그리하여 한 삽화가가 좀더 밝은 이야기로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사냥꾼을 등장시켜 마지막에 늑대를 죽이고 어떻게 해서 빨간모자만은 살려낸다.
20세기 많은 비평가들은 어린이들에게 읽어서 들려주고 어린이들의 입에서 되풀이되는 수많은 동화나 동요의 테마는 부도덕의 전형이라고 주장한다. 광기나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것, 사람이나 동물의 손발을 자르는 것, 절도, 허풍, 그리고 노골적인 인종 차별, 이것들에 얇은 베일을 씌운 것이 그 테마라고 한다. 이야기의 구성 요소에 앞에서 말한 것들 모두 또는 그 이상이 포함된다. 특히 원판이 그렇다. 어째서 불후의 명작을 쓴 작가들은 이렇게 부도덕하고 잔혹하기 짝이 없는 테마를 받아들인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어린이는 신체가 작은 어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좁은 집에서 많은 가족들이 함께 빽빽이 들어차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른과 함께 밤 늦게까지 깨어 있었다. 그러면서 음탕한 말을 듣고 배워 입에 담았다. 어른들의 성행위도 아이들에게 노출되어 있었다. 술주정뱅이를 눈으로 보며 일찍부터 술을 마시는 것도 배웠다. 거리의 광장에서 행해지는 공개 채찍형이나 교수형, 내장 빼내기, 효수대에는 많은 구경꾼이 모여들고, 폭력이나 잔학 행위나 죽음은 어린이들에게 별로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생활은 냉엄하고 힘들었다. 동화는 행복으로 가득 찬 꿈 같은 이야기에 이 냉엄한 현실을 혼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의 이야기를 어린이들에게 들려준다는 것이 당시에는 아주 당연한 일이어서 특별히 나쁘게 여기지는 않았던 것 같다.
현재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동화 몇 가지를 불후의 명작으로 남게 만든 것은 다른 어떤 작가보다 특히 샤를르 페로의 공적이다. 물론 그 동화들을 그가 모두 창작했던 것은 아니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많은 동화가 구전되어 오다가 그 가운데 몇 가지는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신데렐라" "빨간모자" 세 편이 페로의 동화집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다. 17세기의 프랑스인인 페로는 학교에서는 반항적인 낙제생이었고 몇 개의 직업에 실패한 뒤,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낭독이 유일했을 때 동화에 눈을 돌린 사람이다. 페로는 1628년 유명한 작가이자 고등법원 직원이기도 한 아버지 밑에서 다섯째 아들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파리에서 태어난 샤를르 페로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읽는 법을 배웠다. 날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에는 그날 배운 내용 전부를 아버지에게 라틴어로 들려줘야만 했다. 10대 무렵의 페로는 학교 교육에 반항해서 독학을 했다. 그는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이것 저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공부했다. 그 결과 넓고 얕은 교양은 몸에 익혔으나 무슨 일을 하건 그것만으로는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1651년에 변호사 자격을 따려고 마음먹은 그는 시험관을 매수해서 면허증을 돈으로 샀다. 하지만 변호 사업에도 금세 싫증을 느낀 페로는 결혼해서 네 명의 자녀를 낳고 자식 수와 같은 숫자만큼 여러 공직을 전전했다. 공직에도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들려준 옛날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샤를르 페로는 드디어 천직을 찾아낸 것이다.
1697년 그는 역사에 남을 동화집을 파리에서 출판했다. "지나간 옛날의 이야기"라는 제목이 붙고,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여덟 편의 이야기는 모두 훌륭했으며 그 가운데 일곱 편이 전 세계에 알려져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 여덟 편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 "빨간모자" "푸른 수염" "장화를 신은 고양이" "다이아몬드와 두꺼비" "신데렐라" "난쟁이"이다. 그리고 여덟 편 가운데 가장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가, 못생긴 왕자와 아름답지만 어리석은 공주의 사랑을 그린 "곱슬머리 리케"이다. 페로는 단순히 구전이나 기록으로 남아 널리 알려져 있던 이야기를 그대로 문자로 옮긴 것은 아니다. 현대의 비평가들이 약간은 시기하는 마음으로 "페로는 이 세상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여자 가정 교사, 그리고 친구와 친척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채집한 것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이야기의 매력이 소박한 점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페로의 재능이었다. 그는 이미 있어온 민담을 마법으로 염색하여 의도적으로 순진한 내용으로 만들고, 마치 어린이의 방에서 들은 이야기를 어린이가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가락으로 완성한 것이다. 페로나 그 밖의 작가들이 채집한 동화의 본래 이야기를 모르는 현대 독자들이 충격을 받으리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이 기회에 우리들이 어릴 때부터 들어왔고 또 우리 자녀들에게 계속 이야기해 나갈 동화의 원판과 초기의 개작을 여기에 소개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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