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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26호
2011.11.21 (음 10.26)/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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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 한자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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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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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는 우리문단의 주역이 될 역량있는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2012년도 신춘「한라문예」작품을 공모합니다.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제정한 「한라문예」는 권위있는 신인등용문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습니다. 우리 문단을 짊어질 참신하고 역량있는 신인들의 많은 응모바랍니다.
[단편소설] 당선작 1편, 상패와 고료 5백만원 ※ 2백자원고지 1백장내외 [ 시 ] 당선작 1편, 상패와 고료 2백만원 ※ 3편이상 5편이내
마감 : 2011년 12월 15일(목) (마감일자 소인유효) 접수처 : (690-711) 제주시 서사로 154 한라일보사 문화체육부 (주소, 성명 ,연락처를 반드시 기재 바랍니다) 발표 : 2012년 1월 신년호 심사위원 : 입상자 발표와 함께 공표 응모요령 : 가. 모든 응모작품은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한 적이 없는 순수창작 작품이어야 합니다. 나. 같은 원고를 다른 문예공모와 중복투고할 경우 낙선으로 처리합니다. 다. 작품의 앞과 뒤에 주소, 성명(본명), 나이, 연락처를 써야 합니다. ※ 모든 응모작품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 각 부문 당선작은 1편으로 하며 경우에 따라서 당선작 고료의 반액을 지급하는 가작을 뽑습니다. ※ 기타 자세한 내용은 ☎064)750-2225, 750-2514로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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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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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누구나 이미 읽을 것으로 자부하려 들지만, 실은 누구나 읽고 싶지 않은 것이다. - 마크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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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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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원(F1)
전날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오후 들어 더 굵어진 영암 서킷. ‘세이프티카’(safety car)가 들락거리며 폭우 속에 치러진 레이스 내내 선두는 페텔이었다. 55바퀴를 도는 경주가 종반으로 들어선 45바퀴까지 그랬다. ‘폴 투 피니시’(Pole to Finish)로 마무리될 거라는 예상이 현실이 될 즈음 뜻밖의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쏜살같이 내달려 첫 코너로 진입하기 직전, 갑자기 속도가 떨어진 페텔의 경주차. ‘패덕’(paddock)의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외마디 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드라이빙 머신’(driving machine)이 토해내는 굉음에 묻힌 관중의 탄식은 이내 환호로 바뀌었다. 레드불의 5번 경주차 엔진에서 솟아오르는 연기와 불꽃을 뚫고 페라리의 알론소가 1위로 나서는 순간이었다. 페텔은 그렇게 탄식과 환호 속에 ‘리타이어’(retire)했다. ‘체커기’(checker flag)를 가장 먼저 받은 우승자는 알론소. 제 힘을 소진한 경주차를 ‘서킷’(circuit)에 남겨둔 채 ‘피트’(pit)로 돌아오는 페텔. 나이 스물셋의 페텔은 ‘미캐닉’(mechanic)을 비롯한 팀원과 포옹한 뒤 조용히 관중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이 ‘F1의 황태자’ 미하엘 슈마허가 남긴 말 “지는 것도 인생이다”를 떠올리게 했다. 지난해 첫 대회를 치른 지난해 F1 코리아 그랑프리 때의 일이다.
1950년 시작된 F1은 ‘세계 3대 스포츠’의 하나로 꼽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선 종목이다. 경기 용어가 어려운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원어를 번역한 ‘안전자동차’, ‘선두 출발 우승’, ‘예시장’(경마에서, 그날의 출전마를 관객에게 보이기 위하여 만든 장소), ‘달리는 기계’, ‘탈락’(포기), ‘(레이스가 종료되었다는 의미로 표시되는) 바둑판무늬 깃발’, ‘순환로’, ‘정비소’, ‘정비사’는 원뜻을 오롯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문화 차이에서 비롯한 생소한 표현을 쉽게 다듬는 일은 F1의 저변을 늘리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호프
1810년 10월 바이에른왕국의 루트비히 1세와 테레제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연 행사에서 비롯한 축제가 있다. 20세기에 접어들며 세계적인 민속 축제로 발전해 오늘에 이른 이 행사는 브라질의 리우카니발, 일본의 삿포로 눈 축제와 더불어 세계 3대 축제로 꼽히는 독일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이다. 이름을 보면 ‘10월 축제’지만 실제로는 9월 셋째 토요일부터 16일 동안 열린다. 해가 길고 따뜻한 때에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시작하는 날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보름 남짓에 600만명이 찾아들 만큼, 200년 동안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온 이 행사의 힘은 맥주에서 나온다. 뮌헨시장이 맥주통의 꼭지를 따는 의식으로 축제를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나라 맥줏집에서도 옥토버페스트에 즈음하여 갖가지 행사를 한다. 맥줏집은 ‘호프집’으로 통한다. ‘호프 한잔 하자’는 말은 곧 ‘맥주 한잔 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호프’는 맥주의 쌉쌀한 맛을 내는 재료에서 온 말이 아니다. 맥주나 약재의 원료로 쓰는 열매는 홉(hop)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호프’(Hof)를 독일어로 밝히면서 ‘한 잔씩 잔에 담아 파는 생맥주 또는 그 생맥주를 파는 맥줏집’이라고 설명한다. ‘호프=맥주’, 맞는 걸까. 텔레비전 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독일인 미르야는 “호프집에서 맥주를 파는 모습에 놀랐었다”며 호프는 독일어로 ‘농장’이라고 했다. 그렇다. ‘호프’는 맥주가 아니고 농장(또는 ‘(큰)마당’)이다. ‘호프집’은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뮌헨을 비롯한 독일 맥줏집이 광장처럼 넓기에 ‘독일인들이 호프(마당·광장)에서 맥주 마시는 것’을 보고 만든 말일 것이다. 외래어로 받아들일 때 원뜻이 변해 ‘한 잔씩 담아 파는 생맥주’로 자리잡았다 해도 어원과 풀이는 제대로 밝혀야 한다. 독일어로 ‘농장, (넓은)마당, 광장’을 ‘생맥주’로 둔갑시킨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가 그래서 아쉽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캥기다
세계적인 극작가이자 독설가였던 버나드 쇼는 재미난 일화를 많이 남겼다. 어느 날 그는 고관들에게 한 통의 전보를 보낸다. "모든 게 들통 났다. 튀어라." 전문을 본 이들은 그 길로 꽁무니를 뺐다. 당시 부패한 영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 주는 사건으로 뒤가 '캥기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이다.
마음속으로 겁이 나고 탈이 날까 불안한 것을 가리켜 '캥기다'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뒤돌아서면 왠지 찜찜하고 뒤가 캥기는 다른 정치인과 달리 그는 뒷맛이 개운한 과일 같은 사람이다" "캥기는 게 없다면 왜 거액을 조건으로 합의에 나섰겠느냐?"처럼 쓰고 있지만 '켕기는'이라고 해야 맞다. 'ㅔ'와 'ㅐ'는 다른 글자이지만 발음상 잘 구별하기가 어려워 '케케묵다'를 '캐캐묵다'로 적거나 '캐묻다'를 '케묻다'로 표기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처럼 '케'와 '캐'를 소리로는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켕기다'를 '캥기다'로 잘못 쓰는 사람이 많지만 '켕기다'가 표준어다.
"뒤가 켕기는 사람은 한밤 쥐가 우는 소리에도 기겁하지만 물욕(物慾)에 현혹되지 않는 사람은 태산이 무너지고 눈앞에서 고라니가 뛰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본업을 숨기고 가공의 직업을 내세운 후보야말로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음이 틀림없다" "속으로 켕기는 거라도 있어?"와 같이 써야 한다.
'켕기다'는 '단단하고 팽팽하게 되다' '마주 버티다' '맞당겨 팽팽하게 만들다'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철장신세
인터넷상의 댓글이 요즘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유명 연예인들의 계속된 자살의 원인 중 하나로 '악플'이라 불리는 비방 댓글이 지적되기도 했다. 올 7월부터는 인터넷 게시판 등에 남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함부로 올리다간 '철장'신세를 지게 된다고 한다. 위에서와 같이 흔히 '감옥'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철장'과 '철창'을 헷갈려 쓰곤 한다. 그러나 이럴 땐 "밤새 주정을 부리며 고함을 지르던 그는 철창신세를 지고 말았다"와 같이 '철창'이라 써야 맞다. '철창'은 원래 '쇠로 만든 창문'을 의미해 "지난밤 도둑이 들었던 김씨네는 창문을 모두 철창으로 바꾸었다"와 같이 쓰이지만, '감옥'을 비유하는 말로 더 자주 쓰인다.
"애견이 자꾸 철장을 물어뜯는다"에서처럼 '쇠'를 의미하는 '철'에 '작은 동물을 넣어 기르는 집'인 '장(欌)'을 붙여 '철장'이라 쓰곤 하나, 이는 표준어로 올라 있지 않은 조어다. 표준국어대사전엔 한자어의 조합에 따라 '철장'이란 동음이의어가 여럿 올라 있지만 '작은 동물을 넣어 기르는 쇠로 만든 집'이란 의미의 철장(鐵欌)은 없다.
참고로 '철창신세'는 '철창'과 '신세'가 각각의 독립된 단어이므로 띄어 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한 단어로 인정된 합성어이므로 '철창신세'와 같이 붙여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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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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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엽의 생존방식 - 박인숙
활엽을 꿈 꾼 시간만큼 목마름도 길어 긴 목마름의 절정에서 돋아난 가시들 침엽은 햇살도 조금 바람도 조금 마음을 말아 욕심을 줄인다
대리운전 하는 내 친구 금자 밤마다 도시의 휘청임을 갈무리 하는 사이 보도 블록 위에 포장마차로 뿌리 내린 민수씨 그들은 조금 웃고 조금 운다 바람 속에 붙박혀 시간을 견디는 일이 침엽의 유전자를 가진 자들의 몫이므로 뾰족이 가둔 눈물이 침엽의 키를 늘리고 세월을 새겨 가는 것 그들의 계절에는 극적인 퇴장 화려한 등장 따위는 없다 한가한 날 고작 흰 구름 몇 가닥 바늘 끝에 걸쳐 두거나 흐린 겨울 하늘이 너무 시릴 때 눈빛으로 피사체를 만들어 보거나
혹한의 계절에도 홀로 숲의 푸른 내력을 지키는 건 침엽이다 그들의 날카로운 생존방식이 숲을 깨우고 바람의 깃털을 고른다 햇살도 이 숲에선 금빛으로 따끔따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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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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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 이청화
쫓기는 몸이여, 우물 속으로 뻗어 내린 등나무 넝쿨에 겨우 대롱대롱 매달린 신세지만 입으로 흘러드는 다섯 방울 꿀은 달더란 말이지.
거기 왜 위에서 덮치려고 긴 코를 연신 늘어뜨린 코끼리도 사방의 우물벽 틈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네 마리 독사도, 밑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솟구치는 독룡도, 금방 다 잊어 버릴 정도로 다섯 방울의 꿀은 달더란 말이지.
달더란 말이지 머리를 쏘아대는 무수한 벌떼들도 매어 달린 등나무의 밑동을 번갈아 갉아먹는 흰쥐와 검은쥐도, 영 눈에 보이지 않게 다섯 방울 꿀은 달더란 말이지.
사형을 언도 받고 쫓기는 죄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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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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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기 - 하청호
풀을 벤다 머리채 잡듯 거머쥐고 낫질을 한다.
얘야, 아무리 잡풀이지만 그렇게 잡으면 못쓴다. 풀을 잡은 아버지 손을 가만히 보니 풀을 쓰다듬듯 감싸고 있다.
아버지 눈빛이 하늘색 풀꽃처럼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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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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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1 - 임어당
제3장 인간의 동물적 유전
2. 원숭이의 모양을 본따서
이렇게 되고 보면, 인간은 신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졌다는 성서적인 견해를 고집하는 것을 집어치우고 인간은 원숭이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진 사실을 알게 된다. 또 인간이 완전한 신의 모습에서 멀리 동떨어져 있는 것은 마치 개미와 인간과의 상이쯤의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인간은 매우 영리한 동물이다. 이것은 우리가 다시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 그 영리하다는 것을 지나치게 내세운다. 인간에게 정신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자라는 것이 나타나서 이러한 것을 인간에게 가르쳐 주었다. 적어도 명백한 사변능력이라는 점에 한하여 말한다면, 정신이라는 것은 결국 훨씬 늦게 발달한 것으로 넓은 의미의 정신 작용에 관한 섬유조직에 내포되어 있는 것 가운데에는 이른바 정신이라는 것 이외에 일련의 동물적 본능 또는 야만 본능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은 정신보다 훨씬 강력하며, 인간이 개인적으로 또 인간의 집단 생활 속에서 어째서 그릇된 행위를 하는가, 하는 설명을 여기서 얻을 수 있다. 인간이 매우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는 인간 정신이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이렇게 해서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선 그것은 비교적 현명한 정신이긴 하지만 또한 불완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개골 진화의 자취를 더듬어 보면 그것의 척추골을 확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기능은 척추의 기능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는 위험을 자각하고 외계의 환경에 대응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 있는 것으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고의 기능은 보통 극히 빈약하게 되어 있다. 벨포어 경은 <인간의 두뇌는 돼지의 코와 마찬가지로 먹을 것을 찾는 기관이다>라고 했는데, 경은 이 경구 한 마디로 후세에 전해져야 할 인물이다. 나는 이것을 진짜로 빈정된 말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도리어 인간을 널리 이해한 말이라고 보고 싶다. 우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발생론적 입장에서부터 배우기로 하자. 불완전함이라고 해야겠는가? 그러나 신이여,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신은 인간을 이렇게 밖엔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요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다... 태고의 우리 조상은 타잔처럼 헤엄을 치기도 하고, 기기도 하고, 원시림 사이를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뛰어 다니기도 하고, 또 거미원숭이처럼 한쪽 팔이나 다리로 나무에 매달려 있기도 했던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 하나하나의 진화 단계에 관해서 생각하면 오히려 놀랄 만큼 완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야만이기는 커녕 지나치게 진보한 결과 문명의 폐해를 다시 조정하지 않으면 안될 곤란한 과정에 당면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그 문명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자 생물을 창조해 낸 조물주까지도 어이없이 할 정도의 발전상을 보여준 것이다. 자연에 대한 적응이라는 말을 꺼낸다면 자연계의 모든 생물은 놀랄 만큼 완전한 것이다. 적응이 불완전한 것은 모두 자연계에서 절멸되고 만다. 그러나 이제 우리 인간은 이 이상 자연에 적응하라는 명령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즉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나면서부터의 본능 그 자체는 모두가 다 나무랄 것 없이 훌륭한 것이며 건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는 모든 본능을 야만이라고 부른다. 어떤 쥐도 도둑질을 한다. 그러나 도둑질을 한다고 해서 쥐가 도덕적이 되거나 부도덕적이 된다고는 할 수 없다. 개는 모두 짖는다. 고양이는 모두 밤에 집에 돌아오지 않으며 그 손에 닿는 것은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할퀸다. 사자는 먹을 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죽인다. 말은 모두 위협을 느끼면 뛰어서 달아난다. 거북은 모두 하루의 가장 좋은 시간을 잠으로 보내며, 곤충과 파충류, 조류, 짐승류는 모두 공공연히 생식 행위를 한다. 이제 이것을 문명의 용어를 빌어 나타내자면 쥐는 모두 도둑놈, 개는 모두 지나치게 떠들고, 고양이는 모두 작은 만족이라고까지 할 수 없다면 불량한 남편이다. 사자도 호랑이도 모두 살인자요, 말은 겁장이, 거북은 게으름뱅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곤충, 파충류, 조류, 짐승류 등이 자연적인 생식기능을 영위할 때에는 외설이라는 것이 된다. 이 얼마나 대대적인 가치가 있는 전환이냐! 이렇게 생각하니까 신이 무슨 까닭으로 인간을 이렇게까지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었을까 하고 생각할수록 놀라게 되는 것이다(너무나 이야기가 다르지 않은가!)
3. 생자 필멸의 변
인간은 반드시 멸하는 육체다... 이 사실의 결과로써 다음과 같은 중대한 일이 일어난다. 첫째로 위라는 것, 강건한 근육이라는 것, 호기적인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기초적인 것이어서 인류 문명의 성질에 심심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어서 아무도 생각해 본 사람은 없지만, 이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지 않으면 인간과 그 문명을 이해할 수 없다. 왕후거나 서민이거나를 막론하고 인간은 5척이나 또는 6척의 육체와 50년이나 또는 60년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 이 신이 부여한 사실에서 모든 민주주의, 모든 시가, 모든 철학은 생겨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대체로 이 정도가 아주 많았다.인간의 키는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다. 적어도 나는 5피이트 4인치로 극히 만족하고 있다. 50년이나 또는 60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는 무섭게 긴 시간인 것처럼 생각된다. 실제로 그것은 2대나 3대에 걸치는 문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니까 벌써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있었고, 머지않아 그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대신 우리들 자신이 할아버지가 된다. 그러나 또 다른 조그마한 아이들이 태어난다. 이러한 식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일은 완전한 것같이 생각된다. 중국의 옛 속담에 <만경의 땅이 있어도 다섯 자의 잠자리에서 잔다>라는 것이 있는데, 세상 모든 일의 철리는 이 속에 들어 있다. 국왕이라 할지라도 침대가 훨씬 길어서 7피이트 이상이나 필요하다고는 생각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밤에는 그 침대에 들어가 몸을 눕혀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왕에 못지 않은 훌륭한 신분이다. 또 제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성서에 이른바 70의 수명을 넘은 자는 많지 않다. 70을 넘으면 중국어의 <고희>라고 불리어질 나이이다. 그래서 중국의 옛말에 <인생 70에 고래회>란 말이 있다.
재산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인생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자기 몫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인생의 저당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것을 좀더 가볍게 생각할 수가 있다. 즉 우리는 이 지구상의 영원한 거주자가 아니라 잠시 동안의 지나가는 과객이다. 또 모두가 지구상의 손님으로서 수확 수취인도 되고 토지 소유자도 되고 소작인도 된다. 그러니까 임자라는 말은 좀 이상해진다. 임자라는 말은 좀 괘씸하다. 아무도 정말로 집을 소유하는 사람도 없고 밭을 소유하는 사람도 없다. 중국의 어느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황금을 이루는 산기슭의 미전이여! 새로 온 자 남이 간 곡식을 거둬들인다. 그러나 추수를 기뻐하지 말라, 새로 온 자여. 남이 또 기다린다. 그대의 뒤에서!
죽음의 평등을 즐기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러나 죽음이 없다면 나폴레옹에게는 센트헬레나도 아무 의미가 없는 하찮은 존재일 것이며, 지금쯤은 유럽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영웅과 정복자의 전기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비록 전기가 나왔다 하더라도 전기 작가는 주인공에 대해서 좀더 가혹하고 동정이 가지 않는 필치에 놀랄 것이다. 위인, 영웅을 너그러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죽어서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위대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어느 장례식에나 <인류 평등>이라는 네 글자를 쓴 기를 세우고 간다. 무상관은 모두 중국의 시의 배경이 되어 있다. 사구의 시도 대부분이 그렇다. 즉 인생의 실상을 사물에 비유하면 아름다운 해질녘에 일엽 편주에 노를 잡고 강을 내리는 그 배 안의 한 마당 꿈에 지나지 않는다. 꽃도 피었다가 지고, 달도 찼다가 기울며 인생도 또한 고고의 소리를 지르며 사람이 되어 태어나서 성숙해지면 다음에 오는 사람에게 자리를 미루어 주고는 죽어간다. 이처럼 똑같은 일을 거듭하면서 동식물계의 영원한 행진에 끼는 것이다.
속세의 공허함을 알게 될 때에는 인간은 그때 비로소 철학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장자는 일찌기 나비가 된 꿈을 꾼 일이 있었다는 말을 한 일 있다. 그가 꿈속에서는 날개를 펄럭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모든 것이 현실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꿈을 깨고 보니 여전히 자신은 장자이며 자기만이 진실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깊이 생각에 잠겼다. 나비가 된 꿈을 꾼 장자가 진짜 장자인지, 혹은 꿈 속에서 장자가 된 나비가 진짜 장자인지, 꿈이 나비인지 나비가 꿈인지,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인생은 본디 일장의 꿈, 인간은 영겁의 강을 흘러가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 그 어느 기슭에서 배에 몸을 싣고 하류에서 배 타기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서 어딘가에서 또 배를 내리는 나그네와도 같은 것이다. 인생은 남가의 꿈인가, 과객을 태운 뱃길인가? 그렇지 않으면 배우 자신이 자기가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도 거의 깨닫지 못하는 무대에 지나지 않는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이러한 감상이 없다면 인간의 시가의 절반은 그 마음을 잃게 되고 말 것이다. 중국의 선철인 유대성은 그의 벗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모든 것 중에서 우리가 가장 마음을 쓰는 것은 관리가 되려는 것이고, 가장 업신여기는 것은 배우가 되는 생각이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러한 생각이 모두 어리석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무대의 배우들이 저마다 현실의 인간이라고는 믿으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울고 서로 욕하고 농담을 던지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처럼 연출되는 옛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인물로 분장하는 배우 그 자신들이다. 그들에게도 모두 부모도 처자도 있으며 모두가 다 그 부모나 처자를 양육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욕도 하고, 농을 해서 그 먹을 것을 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그들 자신이 분장하려는 진짜 무대의 인물인 것이다. 배우들 중에는 관복을 입고, 관리의 모자를 쓰고, 자기의 연기로 자기들을 진짜 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런 만큼 이것이 연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인사를 하거나 절을 하거나 자리에 앉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주위를 둘러보거나 하는 동안, 아니 엄숙한 관리로 분장하여 그 앞에서 죄인들이 벌벌 떨고 있을 때에도, 노래를 부르거나 울거나 웃거나 욕을 하거나 농을 하거나 하여 부모와 처자를 부양해야 하는 하찮은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아아, 자기의 오장육부와 오관(즉 본능과 감정)이 모두 연극에 지배될 때까지 자기들은 실은 배우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어떤 연극, 어떤 배역, 어떤 대본, 어떤 대사의 어떤 액센트와 어떤 형에 온갖 정신을 쏟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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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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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명상록
사색하는 생할인으로서, 영원히 낡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아우렐리우스의 고매한 양심의 목소리
제1장 배움에 대하여
나는 어머니에게서 신을 경외함과 남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 그리고 사악한 행동을 삼가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한 생각조차도 멀리하는 절제와, 나아가서는 부자들의 일상적인 생할과는 전혀 다른 검소한 생활 태도를 배웠다. 나는 아폴로니우스에게서 요행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독립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이성 이외에는 어떠한 것에 단 한순간이라도 의지하지 말며, 설령 어떠한 극도의 고통을 당하거나 자식을 잃거나 오랜 병고에 시달린다 해도 흔들리지 말고 한결같이 태연한 태도로 대해야 함을 배웠다. 또한 나는 그를 통해서, 인간이 때에 따라서는 격렬함과 부드러움을 함께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자들에게는 성급함이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아낌없이 가르쳐야 함을 배웠다. 또한 철학 교육의 실제 경험이나 재능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 중에서 가장 보잘것 없는 재능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보게 된 것도 그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친구가 호의를 보일 때에는 비굴하지 않게, 그렇다고 그것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잘 받아들이는 방법도 그에게서 배웠다.
섹스투스에게서 친절한 마음과 어버이다운 인자한 사랑으로써 가정을 다스리는 가장의 본보기를 보았고,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생활의 참된 의미와, 친구의 관심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우정과, 무식한 사람들이나 무분별하게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참아주는 태도를 배웠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쉽게 사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어서 그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어떠한 아첨보다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그와 사귀는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또한 인생의 요령이 있으면서도 포괄적인 것이었다. 그는 분노나 그밖의 격정을 전혀 밖으로 나타내지 않으면서, 모든 감각을 초월한 평온한 마음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는 칭찬의 말을 할 때에도 결코 떠들썩하게 과시하지 않았으며, 성원한 학식을 몸에 지녔음에도 결코 허세를 부리지 않았다. 남을 헐뜯어서는 안되며, 남이 문법에 어긋난 말을 구사하거나 틀리게 발음하거나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더라도 그를 심하게 핀잔한다거나 꾸짖지 말고, 그 말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답변이나 확인 또는 암시로써 그 문제 자체를 함께 논의하며, 또는 적절한 암시로써 올바른 표현을 재치있게 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렉산더에게서 배웠다. 플라톤 학파 알렉산더에게서 바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거나, 또는 그런 말을 연설이나 서신에 자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여, 이를 끊임없이 사과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배웠다.
카룰루스에게서, 친구가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을 때에는 비록 그 비난이 터무니 없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그 친구의 우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한편 스승에 대해서는 도미티우스와 아테네도투스와의 사이가 그러했듯이 언제나 진심으로 칭송해야 할 것과, 자기 자녀에 대해 순수한 애정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나의 형님 세베루스에게서 나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사랑과 정의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 또한 나는 그에게서 철학에 대한 확고하고 일관된 마음가짐을 배웠다. 그리고 타인에게 기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고, 늘 희망을 품고 낙천적으로 살며, 친구의 사랑을 신뢰할 줄 알며, 나아가서는 타인을 비난하는 사람에 대하여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음으로써 사람드링 자기의 뜻이 어떤 것인지를 명백히 알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막시무스에게서 극기의 정신과, 확고부동한 목표를 가짐으로써 어떠한 일을 당하더라도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병이 들거나 어떤 불우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언제나 명랑한 마음을 잃지 않고, 상냥함이나 위엄이나 어떠한 도덕적 성격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면서 자신 앞에 닥친 일을 불평없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는 믿는 바에 따라 말하고, 옳다고 판단되는 것은 행동으로 옮겼고, 그가 하는 모든 일에서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며, 이러한 것을 어느 누구도 의심치 않고 믿었다. 그는 결코 당황하거나 경탄하거나 서두르거나 일을 지지부진하게 뒤로 미루거나 낙담하는 일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억지로 명랑하게 하지도 않았고 격정에 사로잡히거나 의심하는 일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남에게 관대하게 대했고 모든 거짓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외부로부터 주입된 것이 아니라 그의 타고난 강직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누구도 그에게서 업신여김을 받았다거나, 자신을 그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제때에 유머를 할 줄 아는 여유를 가진사람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온화함과, 신중한 생각 끝에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결단코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수행하는 단호한 인품을 배웠다. 그리고 세속적인 명예에 허영심을 갖지 말고 근면과 강인한 인내를 가져야 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포상은 공적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과, 긴장해야 할 때와 긴장을 풀 때를 판단하는 탁월한 기지를 배웠다. 그는 국사를 떠난 개인적인 사교도 중요시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식사를 하거나 외출할 때에도 함께 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친구들이 다른 용무 때문에 그를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변함없이 그들을 대했다. 또한 그는 국사를 심의할 때에도 그의 앞에 제세되는 문제를 놓고 철저히, 그리고 끈기 있게 검토했다. 그의 우정은 변덕스럽다서나 헤프게 애정을 베푸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친구를 귀하게 여기고 금방 싫증을 내는 일이 없고, 늘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쾌활했다. 그리고 그는 미래를 내다보고 사소한 일에도 미리 대비를 해 두었으므로 어떤 경우가 닥쳐 와도 감당해 냈다. 또한 그는 나라일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국가재정을 아꼈으며, 그로 인해서 야기되는 비난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신에 대해 미신적인 생각을 품지 않았고, 동료 시민 앞에서 비굴하게 굴어 인기를 구하거나 대중의 사랑을 받으려 하지 않았고, 모든 일을 절도 있고 건실하게 추구해 나갔다. 그의 운명이 물질적 풍요를 제공했지만 그것을 자만하거나 가책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것이 있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이용했고, 없을 때에는 그것을 갈구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궤변가라거나 경박한 사람이라거나 현학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아첨에 무관심하고 자기자신과 타인을 모두 지배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진정한 철학자들을 존경하고 사이비 철학자에 대하여 비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미혹되지도 않았다. 사교에 있어서는 늘 명랑하고 다정했으며 거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건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그것이 생에의 지나친 집착이나 외모를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늘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고 돌봤기 때문에, 좀처럼 치료를 받거나 약을 먹는 예가 없었다. 그는 변론이나 법률, 윤리 등의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시기심 없이 받아들이고 그들 개인의 재능에 알맞는 명성을 얻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국가의 제도나 법률에 따라 행동했는데, 이것을 국민이 알아줬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다. 그는 변화와 불안정을 싫어해서, 항상 같은 지위에서 언제나 변함없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두통이 심한 발작을 일으킬 경우에도 곧 새로운 원기를 회복하고 일상의 일들을 처리해 나갔다. 그는 비밀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설령 비밀이 있다 하더라도 극히 드물었으며, 그것도 거의가 국사에 관계되는 공적인 것뿐이었다. 그는 공식적인 행사나 공공건물의 건축, 구호금품의 분배 등의 행사에 매우 신중하고 절도를 보였다. 이 경우에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만 주력할 뿐, 그런 일을 통해 자신의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욕하는 일이 없었고, 건축물을 짓는 것을 즐기지 않았으며, 먹는 음식은 까다롭지 않았으며, 옷감이나 색깔이나 재단 등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고, 노예들의 미모에도 개의치 않았다. 그의 태도는 언제나 변함없었다. 그는 무례함이나 난폭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항상 여유를 보이면서 모든 일에 침착하고 요령있게,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분석하며 평가하는 것이 그의 습성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심약하기 때문에 절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향락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절제할 때는 절제하고 즐길 때는 즐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자신의 의지력을 삼가기도 하고 순수히 향락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은, 완전하고 불굴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임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훌륭한 할아버지, 훌륭한 부모, 훌륭한 여동생, 훌륭한 스승, 훌륭한 친구, 훌륭한 친척 등 훌륭한 벗들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 신들께 나는 감사한다. 그리고 내가 기회만 있었다면 과오를 저질러서 위의 분들의 노여움을 살 수 있었는데도, 신의 은혜로 누구와도 반목하지 않았다는 것에 신께 감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신들의 은총에 의하여 시험에 맞부닥친 일은 없었다. 또한 내가 할아버지의 소실 밑에서 오랫동안 양육되지 않도록 해 주신 것을, 또한 내 청춘의 꽃을 오래도록 간직하여 나의 순진성이 보존되고 성인으로 향한 완만한 발전에 만족햇었다는 것에 대하여도 신들께 감사한다. 그리고 모든 자존심을 없애 주신 황제이신 아버지 밑에서 자란 덕분으로 호위병이라든가 화려한 옷, 횃불, 동상 등 외형적인 화려함 없이 살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과 더불어 평민들과 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이로 인하여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해서도 신들께 감사한다. 또 착하고 바른 성품으로 나를 일께워 주고 존경과 애정으로 나를 즐겁게 해 준 형님을 내세 주신 신께 감사하고, 우둔하거나 불구 자식을 내게 주시지 않은 신들께 감사한다. 또한 내가 수사학, 시 및 그밖의 다른 학문에 조예가 깊지 않은 것을 신들께 감사한다. 만일 그것들에 대한 연구가 쉽다고 느꼈더라면 나의 시간은 온통 그런 것에 빼앗겼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스승들을, 서둘러서 그들이 원하고 그들의 능력에 맞는 지위에 앉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 젊기 때문에 얼마 후에는 내가 그렇게 해주리라고 믿고 있었다. 또한 내가 아폴로니우스, 루스티쿠스, 막시무스와 사귈 수 있게 해주신 신들께 감사한다. 그리고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 어떤 삶인가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되고 그것을 자주 실감하게 된 것을 신들께 감사한다. 사실 신들과 신들의 은총, 도움, 영감에 의지하고 있는 한, 내 비록 불완전하고 신들의 직접적인 계시를 깨닫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자연에 따르는 생할에 아무 것도 방해할 수 없고 나의 육체는 이미 이러한 생활을 오랫동안 감당하 오고 있는 것에 대하여 신들께 감사하고 있다. 또한 내가 베네딕타나 테오도투스와 같은 여자들에게 말려 들지 않고, 뜨거운 연정에 사로잡힌 적이 있지만 곧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일에 대하여 신들께 감사한다. 그리고 루스티쿠스와 자주 의견의 충돌이 있었지만 후회할 정도로 반목하지 않은 것을 신들께 감사한다.
나의 어머니는 젊어서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전 몇 해 동안을 나와 지낼 수 있었던 것을 나는 감사한다. 그리고 가난하고 고난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려 할 때, 언제나 그들을 도와줄 방법을 생각했고, 나 자신은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곤궁에 처한 적이 없었던 것을 신들께 감사한다. 그리고 온순하고 다정하며 꾸밈이 없는 아내를 가진 것을, 나의 자식들을 위해서 훌륭한 스승들이 있었던 것을 신들께 감사한다. 또 꿈을 통하여 각혈과 현기증에 대한 치료법을 배운 것을, 그리고 내가 철학에 관심이 있을 때 소피스트들에게 현혹되지 않은 것을 신들께 감사한다. 또 삼단논법을 분석하거나 천체 현상을 관측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아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해 준 것에 대하여 신들께 감사한다. 이러한 모든 일들은 신들과 운명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라누아 강 기슭에 자리잡은 구아디족의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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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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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심리 - 김성태
첫째 묶음 - 생활 속의 심리
유머의 의미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머가 없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흔히 듣는다. 유머란 결국 남을 웃기고 스스로도 웃어 보는 것이지만, 여기서 유머가 없다고 말할 때는 단순히 이러한 웃음이 없다거나 적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웃음이 우아하지 못하다든가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는, 재치 있으면서도 유순한 웃음이 부족하다는 뜻일 게다. 웃음이란 유쾌하고 흥미 있는 사태에서 나타나게 마련이다. 긴박한 사태나 문제 해결에 몰두해 있는 진지한 상황에서는 웃음이 있을 수 없다. 이제까지 예기하고 기대하던 것이 갑작스레 뒤집혀 긴장이 풀릴 때, 사뭇 우월했던 지위가 급격하게 하락되어 이 때문에 생긴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시킬 때, 당면한 사태가 조화스럽지 못하고 대조성이 심할 때, 웃음은 나타난다. 긴장에서 이완으로 급격하게 바뀔 때, 열등감에서 해방되어 잠시라도 사태를 객관시 하는 위치에 서게 될 때 역시 웃음은 터져 나온다. 이같은 웃음을 유의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재능(또는 태도나 작업 역량)이 유머다. 현실에 각박하게 쫓겨 도저히 웃을 수 없는 긴장 상태에서 웃고 웃기는 것이 유머다. 그러므로 각박한 현실을 부정 초월하게 하는 여유 있는 태도를 꾸며 주며 스스로도 그러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 때 유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웃음은 본질적으로 현실 부정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일시적으로나마 허무주의에 설 때 웃음이 쏟아진다고 한다. 이렇게 현실을 부정하는 입장 즉 비현실적 태도는 미숙한 사람들에게서 보이므로 웃음은 미숙한 어린 시절, 더 소급한다면 태내 생활의 최량 상태(가장 좋은 상태)로 퇴행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이것은 일시적으로나마 현실의 질곡에서 벗어나 안일한 어린 시절의 비현실적 상태로 돌아가 심각한 긴장을 피해 보는 것이다. 타인의 실패, 퇴락 등을 통해 자신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상승했을 때 우월감을 느끼면서 웃게 되는 말하자면 공격적인 유머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같은 공격적인 유머도 웃고 웃기는 데는 별로 차이가 없겠지만, 남의 불행을 보고 웃으니 뒷맛이 개운치 못하고 오히려 불쾌감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다치지 않는 구수하고도 재치 있는 웃음이 참된 유머라 할 수 있다.
웃음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웃어댈 수 있는, 말하자면 현실을 초월하는 태도에서도 나올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따지고 보면 비현실적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사태에 당면하여 생명을 걸고 열중하고 있거나 진지하게 대하고 있을 때는 아무래도 자기 중심적이 되게 마련이다. 이럴 때 여유 있게 넓은 안목으로 자기 중심적 성향에서 벗어나 자기를 객관화시켜 가며 현실에 부딪치는 여유를 갖게 된다면 모든 것에 객관적으로 적절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유머는 풍부한 교양과 세련된 인격에서만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아무리 심각하고 긴장된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스스로 웃을 수 있고 남에게도 웃음을 갖게 하는 여유 있는 태도와 습성에 더욱 젖어 들게 노력해보는 것도 실없는 웃음거리는 아닐 성싶다.
"197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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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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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가르침
한 탐구자가 수피 신비주의자인 알라루딘 루미에게 와서 물었다. "저를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스승님." 알라루딘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는 내 가르침을 받아들이겠는가?" 그는 말했다. "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배우러 왔습니다." 알라루딘이 말했다. "그건 중요하다. 그대가 내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가르칠 수 없다. 사실 가르침은 불가능하다. 단지 배움만이 가능하다. 만일 그대가 받아들인다면 그대의 배움은 꽃필 것이다."
- 스승은 당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스승은 당신이 배울 수 있는 됨됨이이다. 그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제자 스스로가 스승의 됨됨이를 배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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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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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73. 백일천하로 끝난 개혁파의 꿈 - 변법자강운동(1898년)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 등 세계의 대부분의 침략세력들이 중국에 들어와 이권을 나누어가 졌고, 중국은 외국의 반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외국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힘을 키우려 했던 양무운동도 청일전쟁의 패배로 성공하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중국의 이권은 계속 외국에게 넘어갔다. 중국 남부지방은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은 프랑스가 광산개발, 철도건설 등의 이권을 가져갔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후 청은 러시아에 접근, 삼국간섭을 끌어내 일본의 압력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러시아 역시 만주지역 철도건설 등의 이권을 챙겼으며, 아울러 여순과 대련을 강압적으로 조차했다. 독일은 산동을 중국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1898년경에 동북지역은 러시아, 양자강 유역은 영국, 강남의 광동, 광서, 운남은 프랑스, 복건은 일본, 산동은 독일이 각가 세력권으로 확보했다. 서태후와 이홍장 등이 중심이 되어 수행한 청일전쟁의 패배는 상대적으로 그 반대파라고 할 수 있는 광서제, 장지동 등 황제파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게 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홍장에 의해 주도되었던 양무운동의 한계도 역시 청일전쟁의 패배로 확연히 드러나게 되었다. 이제 지배층 내부에서는 좀더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한 움직임을 주도했던 대표적 인물이 강유위, 양계초 등이었다.
강유위는 공자의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여 자신의 개혁사상을 합리화시켰다. 즉 "옛것에 비추어 오늘의 제도를 고친다"는 말을 빌어온 것이다. 그는 또한 (대동서)라는 책 속에서 모든 인류가 평등한 조건으로 살 수 있는 이상사회를 구상하기도 했다. 그런 사회가 바로 대동사회라는 것이다. 1895년 북경에서 과거시험이 있었고 강유위는 이 시험에서 합격, 진사가 되어 관료의 길에 들어섰다. 관료의 길에 들어선 강유위는 본격적으로 그의 생각을 실천해나갔다. 강유의를 중심으로 하는 변법 개혁파들은 (만국공보)를 간행,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 입헌정치의 실시, 유럽의 학술과 교육의 도입 등을 주장했다. 그러나 북경에서의 변법파의 활동은 서태후가 중심이 된 수구파들의 반격에 의해 저지되었고, 강유위도 신변에 위협을 느껴 상해로 잠시 피했다. 상해에서 그는 황준헌, 장건 같은 당대의 개혁론자들과 어울려 중국의 개혁정책을 모색했다. 변법파의 개혁안은 북경보다는 일부 지방에서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그러나 각 지역의 실력자들은 그런 움직임을 저지했다.
변법파들의 개혁안이 정책적으로 시행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된 것은 독일이 교주만을 점령한 사건이 발생했던 1897년 말 이후였다. 강유위는 황제에게 다섯 번째 상서를 올려 법과 제도를 고쳐나가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시 한번 제시했다. 당시 황제인 광서제는 강유위 일파의 개혁안을 실천에 옮기고자 했다. 1898년 제도의 개혁 들을 주로 하는 개혁세력들과 함께 제도를 새롭게 한다는 의미 '변법'을 추진하겟다는 선언을 했다. 1898년의 이 개혁을 제도의 개혁을 통해서 나라를 강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변법자강운동'이라고 하기도 하며, 무술년에 있었다고 하여 '무술개혁'이라고 하기도 하낟. 그해 6월 강유위, 담사동, 황준헌, 양계초 등이 관서제의 부름을 받았다. 광서제는 이러한 개혁세력들에 의해 구상된 정책들을 정리하여 100여 항목이 넘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 몇 가지 중심적인 개혁내용은 과거제 개혁, 새로운 학교제도의 도입, 신문, 잡지 발행, 인재등용, 농공상업 진흥, 우편사업, 육해군의 근대화 등이다.
광서제는 변법파의 활동에 제약이 되는 고위관리들을 해임시켰다. 그들은 대부분 서태후에 충성하는 자들이었다. 9월에는 이홍장이 총리아문대신의 직위에서 해임되었다. 이러한 광서제의 과감한 조치는 서태후와 그의 일파를 몹시 불안하게 만들었다. 서태후는 자기의 영향력 아래 있는 군사 지휘관들에게 명령하여 군대를 이동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은 광서제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광서제는 마침내 당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사람 중의 하나인 원세개에게 기대고자 했다. 개혁파 담사동은 원세개에게 군대를 동원하여 서태후가 머물고 있는 이화원을 호위하여 서태후파의 활동은 제한시켜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러나 원세개는 약삭빠르고 야심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서태후측과도 긴밀하게 관게를 맺고 있었다. 개혁파들의 계획은 고스란히 서태후에게 보고되었다. 9월 21일 아침 일찍 서태후는 광세제의 침실로 찾아와 모든 왕실의 일과 국가의 정사를 자신이 담당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황제 광서제는 유폐되었고, 개혁파들은 숙청당했다. 강유위 등 몇 명은 보수파의 공격을 간신히 피해 일본으로 망명을 떠났으며 당사동 등은 붙잡혀 처형되었다. 이른바 무술정변이다. 무술개혁이 시작된 지 103일 만에 개혁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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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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兵不厭詐(병불염사) 兵(군사 병) 不(아닐 불) 厭(싫을 염) 詐(속일 사)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에는 진(晉)나라 문공(文公)이 초(楚)나라와 전쟁을 하고자 구범(舅犯)에게 견해를 묻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다.
"초나라는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이 일을 성취하려면 어찌해야 되겠는가?"라는 진 문공의 물음에 구범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제가 듣건대, 번다한 예의를 지키는 군자는 충성과 신의를 꺼리지 않지만, 전쟁에 임해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고 합니다(戰陣之間, 不厭詐僞). 그러니 적을 속이는 술책을 써야 할 것입니다."
진 문공은 구범의 계책에 따라, 초나라의 가장 약한 우익(右翼)을 선택하였다. 우세한 병력을 집중하여 신속하게 그곳을 공격함과 동시에 주력부대는 후퇴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초나라 군대의 좌익(左翼)을 유인해냈다. 진 문공은 곧 좌우에서 협공하여 초나라 군대를 쳐부술 수 있었다.
조조(曹操)도 삼국연의(三國演義) 23회에서 兵不厭詐 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兵不厭詐 는 군불염사(軍不厭詐) 라고도 하는데, 이는 전쟁에서는 모든 방법으로 적군을 속여야 함을 말한다. 대전(大戰)과 대선(大選)에는 兵不厭詐 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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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2. 나폴레옹은 검은 고양이를 싫어했다.
출생증명으로 쓰이던 달걀
부활절은 기독교의 부활을 경축하는 날로 기독교 신자에게는 성스러운 날이다. 그러나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부활절은 고대 색슨인의 여신 이스터(Eastre)의 제전이었다. 야단스러운 이교의 여신을 위한 제전이 어쩌다가 엄숙한 기독교의 축일이 되었을까? 이것도 또한 초기 기독교 교회가 이교의 축제를 기독교의 행사로 바꾼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세기 때 로마 제국의 북쪽에 있는 튜턴인(게르만인)이 살고 있는 지방에 포교를 하러 간 기독교의 전도사들은 그곳에 수많은 제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도사들은 이미 정착되어 있는 관습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서 그 제전을 원만하게 기독교의 의식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했다. 거기에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개종한 사람들이 인정받지 못한 종교인 기독교의 의식에 참가하는 것은 위험이 뒤따른다. 부활절을 기독교만으로 거행하면 당시의 권력자가 그것을 이용해서 기독교를 뿌리째 뽑아버리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랫동안 계속해온 이교의 제전을 빌려서 그 속에 뒤섞여서 거행하게 되면 개종자들도 살아남고 새로운 개종자를 늘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도사들은 기독교가 부활한 시기와 옛날부터 행해지고 있는 봄의 제전 이스터의 시기가 우연히 일치한다는 것에 착안했다. 이렇게 해서 부활절은 여신 이스터의 이름으로 행해져 많은 기독교도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그 후 몇십 년 동안 부활절은 금요일에 행해지거나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행해지는 등 일정하지 않았으나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한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이스터 법'이 정해져 부활절은 '춘분 이후의 최초의 만월 다음에 찾아오는 일요일'로 정해졌다. 따라서 부활절은 3월 22일보다 빨라지는 일도 없고 또 4월 25일보다 늦어지는 일도 없다. 또 이 회의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십자가를 기독교의 상징으로 정한다고 발표했다.
초콜릿이나 캔디로 만들어진 달걀을 부활절 선물로 교환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지만, 봄에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인 진짜 달걀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관습은 부활절이 시작되기 몇 세기 전부터 있었다. 먼 옛날부터 많은 문명권에서 달걀은 새로운 생명과 부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무덤 속에 달걀을 함께 매장하고, 그리스에서는 무덤 위에 장식했다고 한다. 로마에는 '모든 생명은 달걀로부터' 라고 하는 속담이 있었다. 또한 기독교가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을 도왔던 크레네 사람 시몬은 달걀 상인이었다고 전해진다(기독교가 처형된 후 시몬이 양계장에 돌아가 보니까 그곳에 있던 달걀이 전부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거짓인지 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리하여 기독교가 부활절을 거행하게 되었던 2세기에 부활의 상징으로서 달걀 이상으로 적절한 것은 없었다.
당시 부유한 사람들은 달걀에 금가루를 뿌리거나 금박으로 덮어서 부활절 선물로 삼았다. 서민들은 대개 달걀에 염색을 했다. 염색은 염료가 되는 꽃이나 잎을 넣은 냄비에 달걀을 함께 넣고 삶으면 된다. 초록색이나 시금치 잎이나 아네모네의 꽃잎, 노란색에는 민들레꽃이 가장 적합하고, 보라색에는 로그우드가, 빨간색에는 봉숭아가 쓰였다. 1880년대 초 독일에서는 부활절 달걀이 출생증명으로 쓰이던 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바늘같이 끝이 날카로운 것으로 껍질에 받는 사람의 이름이나 탄생일을 새긴 부활절 달걀은 법정에서도 출생일과 나이를 증명하는 증거로서 쓰였다. 가장 값비싼 부활절 달걀은 1880년대 러시아의 금 세공사 표트르 파베르제가 만든 것인데,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3세가 황후 마리아 페오도로브나에게 선물하기 위해 주문한 것이다. 1886년 파베르제가 최초로 만든 부활절 달걀은 길이 6센티미터로 겉모양은 아무런 특징이 없지만, 에나멜을 칠한 흰 껍질을 열면 안에는 황금 노른자위-눈을 루비로 만든 황금 병아리-가 들어 있고, 그 병아리가 부리를 위로 쳐들면 안에서 루비 장식이 달린 다이아몬드 왕관이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파베르제의 작품은 오늘날 모두 합쳐서 400만 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가 만든 53개의 부활절 달걀 가운데 43개는 박물관이나 개인이 현재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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