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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23호
2011.11.16 (음 10.21)/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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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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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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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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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읽을 때면, 나는 3천년도 더 사는 것같이 생각된다. ─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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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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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價)
한자 ‘글자 자’(字)가 첫소리가 아닐 때는 된소리가 된다. ‘승자총통(勝字--)[승짜--]’ 관련 방송 뉴스에 바르지 않은 발음이 나왔기에 지난번 이 자리에서 살펴본 발음법이다. 내 은사는 고문자(高文子)[--자] 선생님, 옛글자는 고문자(古文字)[--짜] 등을 보기로 들기도 했다.
근데 두 가지 예외를 제대로 짚지 않고 넘어갔다. 하나는 수 관형사 뒤에서는 예사소리가 된다는 것. 글자 수를 한 자, 두 자, 스무 자, 서른 자…처럼 헤아릴 때는 [한자], [두자], [스무자], [서른자]이다. 자연현상으로부터 인륜 도덕에 이르는 지식 용어를 사언(四言) 고시(古詩) 250구 모두 1000자로 수록한 한문 학습 입문서 <천자문>(千字文)은 그래서 [-짜-]가 아니라 [-자-]이다. 예외의 다른 하나는 글자를 뜻하는 문자(文字)와 같은 표기인데 ‘예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한자로 된 숙어나 성구(成句) 또는 문장’의 뜻일 때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공자 앞에서 문자(文字) 쓴다’ 같은 속담이나 ‘선인의 문자향(文字香)을 좇는 삶’의 경우 [문자(향)]로 발음하는 게 맞다.
표기는 같지만 뜻에 따라 예사소리와 된소리가 되는 경우가 또 있다. 대표적인 게 ‘고가’이다. 높이 가로질러 세워 만드는 길 ‘고가(高架)도로’는 [고가--], 오래된 집은 고가(古家)[고가], 비싼 값은 고가(高價)[고까]이다. [고까도로]라 소리 내면 건설비 많이 들여 닦은 길이란 뜻이 된다. ‘미국발 악재’로 폭락한 주식 값은 주가(株價)[-까], 장 설 때 시작한 값은 시가(始價)[-까], 폐장할 때 값은 종가(終價)[-까]이다. 돈·가치를 떠올리면 빠지지 않는 표현이 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이다. 사자성어로 동가홍상(同價紅裳), 발음은 [-까--]. 이처럼 ‘값 가’(價)는 ‘자’(字)처럼 첫소리가 아닐 때 [-까]로 소리 난다.
‘가’와 ‘자’라고 쓰고 소리 환경에 따라 [까], [짜]로 읽는 게 우리 발음법의 세계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육상대회 / 강재형
지난 주말 대구에 다녀왔다. 기차역을 나와 탄 택시에서 들은 첫마디는 ‘육상대회 취재 왔느냐’였다. ‘야구장 갑니다’ 한마디를 꺼내기가 머쓱할 만큼 ‘프로야구 홈팀이 선두를 달리고 있는’ 대구의 관심은 이번 주말로 개막이 성큼 다가온 육상대회에 쏠려 있었다. 시내 곳곳에 형형색색 내걸린 대회 펼침막과 깃발을 보며 만국기 펄럭이던 학교 운동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른바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는 육상은 우리에게 꽤나 친숙한 경기이기도 했다. 육상 종목은 크게 셋으로 나눈다. 달리기인 트랙경기와 뜀뛰고 던지는 필드경기, 경기장 밖에서 치르는 도로경기이다. 달리기의 백미는 ‘인간탄환’을 가리는 100m 종목이라 하지만 우리 운동회 때는 사정이 다르다. 청군과 백군의 최종점수가 가려지는 종목인 계주가 하이라이트. 이어달리기, 릴레이 경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둥근 막대기가 있다. 이 명칭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바톤>바통>배턴’ 순으로 쓰임이 잦다. ‘바톤’은 바른 외래어표기가 아니다. 언론 매체에 자주 오르는 프랑스어 ‘바통’과 대회 조직위원회 누리집에 표기된 영어 발음 ‘배턴’(baton)은 둘 다 맞다. 계주봉(繼走棒)을 살려 쓰는 것도 괜찮겠다. 트랙경기의 투척 종목인 투창(投槍), 투포환, 투원반, 투해머 등은 창던지기처럼 ‘-던지기’로 다듬어 쓴 지 꽤 되었다. 도약 종목의 하나인 ‘멀리뛰기’도 일본어 ‘하바토비’(幅跳)를 옮긴 ‘넓이뛰기’를 물리치고 제자리를 잡았다.(북한에서는 ‘너비뛰기’라고 한다.) 하지만 ‘장대넓이뛰기: 장대를 가지고 달리다가 장대에 몸을 의지하여 뛰는 넓이뛰기’(<표준국어대사전>)로 여전히 남아 있는 ‘넓이뛰기’는 손질이 필요한 대목이다. ‘세계 3대 스포츠 행사’인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우리나라에서 치른다고 하니 불현듯 학창시절 체력장 풍경이 어제 일인 듯 떠오른다. 왕복달리기, 오래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그리고 투척 종목은 ‘수류탄던지기’였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계피떡
우리의 명절 음식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떡이다. 설에는 가래떡을 썰어 떡국을 만들어 먹고, 정월 대보름엔 약식을 먹는다. 한가위엔 송편을 빼놓을 수 없으며, 동짓날엔 찹쌀 경단을 팥죽에 넣어 끓여 먹는다.그럼 여기서 문제 하나. 흰떡.쑥떡.송기떡을 얇게 밀어 콩가루나 팥으로 소를 넣고 오목한 그릇 같은 것으로 반달 모양으로 찍어 만든 떡을 무엇이라 부를까.
㉠계피떡 ㉡개피떡
'계피떡'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나 '개피떡'이 맞는 말이다. 매큼한 향이 퍼지는 계수나무 껍질인 '계피'를 떠올리며 '계피떡'이라 부르기 십상이지만 '개피떡'이 표준어다. 개피떡은 오목한 그릇 같은 것으로 반달 모양으로 찍어 만든 뒤 서로 붙지 않게 하기 위해 참기름을 바른다. '바람떡'이라고 하면 "아하!"하고 무릎을 탁 칠 만큼 강원도 방언인 '바람떡'으로 더 많이 불린다.
'개피떡'이라 부르게 된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어린 시절 먹고 난 뒤 얼굴을 찌푸린 기억이 한 번쯤 있을 법한 '계피사탕'의 '계피'와는 다르다. 계피의 향과 맛을 이용해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천에 폈다
봄은 마음에서 먼저 시작된다. 개나리가 담장을 기웃거리고 진달래가 산허리를 수줍게 감싸기 전에 마음은 황망히 음습한 겨울을 밀어내고 봄맞이 채비를 서두른다. 그러나 올해는 봄꽃이 한발 앞서 계절을 알려 왔다. 남부 지방은 물론 설악산에도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었다는 소식이다. '지천'은 '매우 흔하다'는 뜻으로 "마을 뒷산에는 갖가지 들꽃과 봄나물이 지천이다" "예년보다 한 달가량 일찍 설악산 국립공원에 현호색.노루귀 등이 지천으로 피어 등산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와 같이 쓰인다. 주로 서술격조사 '-이다'나 부사격조사 '-(으)로'를 붙여 '지천이다' '지천으로'의 꼴로 사용하는데 이를 '지천에'로 잘못 표현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봄이면 진달래와 아카시아 꽃이 지천에 피어 마을은 온통 달콤한 꽃향기로 가득 찼다" "옛사람들은 봄이 되면 지천에 깔린 나물을 뜯어 반찬을 해 먹었다" "길가의 화단 등 지천에 널린 게 꽃이건만 꽃을 찾아 나선 상춘객들로 고속도로는 연일 붐빈다"처럼 쓰고 있지만 '지천으로'로 고쳐야 한다. '지천'의 한자어를 '땅과 하늘(地天)'로 생각해 '곳곳에'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나 '지천(至賤)'은 사물이 여기저기 아주 흔하게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으로'를 붙여 쓰는 게 자연스럽다. "지리산 자락에 지천으로 핀 산수유 꽃이 화사한 봄 빛깔을 뽐내기 시작했다"와 같이 표현하거나 아예 쉬운 말로 풀어 쓰는 게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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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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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미용실 - 정채원
20년 전 다니던 꽃 미용실 내가 지금 딸만 할 때 다니던 꽃 미용실 나중엔 엄마꽃과 딸꽃이 함께 다니던 꽃 미용실, 생머리로 놔두어도 마냥 꽃이던 꽃시절, 꽃을 괜시리 들들 볶던 꽃 미용실 실컷 졸다 깬 다섯 살 꽃이 숏컷 된 거울 속 자기 머리를 보곤 으앙 울음을 터뜨리던 꽃 미용실, 울음 그치지 않는 꽃을 달래다 나도 함께 울 뻔하던 꽃 미용실
결혼 며칠 앞둔 딸아이 언젠가 제 딸과 함께 괜시리 머리 볶으러 미용실 찾을 때, 그땐 나도 20년 전 져 버린 꽃 미용실처럼 더 이상 아무도 찾지 못할 숨은 꽃이 될까
숨은 꽃 굳이 찾지 않아도 그냥 그대로 마냥 꽃일 딸과 딸의 딸 세상 아무리 섣불리 딸 수 없는 꽃과 꽃의 꽃 그래서 세상은 꽃이 지지 않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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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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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겠구나 - 이청화
마조의 편치 못한 몸을 본 원주의 눈이 큰 것이냐. 자신의 편치 못한 몸에서 日面佛 月面佛까지를 본 마조의 눈이 작은 것이냐. 살아서 건널 수 없는 흉년 좋겠구나 만석의 곡식을 배에 실은 그 애비의 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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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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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나무들 - 이준관
무더운 여름철이 우리에겐 가장 바쁜 철이다. 우리는 햇빛을 많이 쌓아 두어야 한다.
빗물을 가득 채워 두어야 한다. 푸른 바람을 빨래처럼 줄줄이 걸어 두어야 한다.
우리를 키우는 흙은 땅에만 있는 게 아니다. 햇빛에도 있다. 하늘에도 있다. 바람에도 있다.
뿌리를 뻗자, 뿌리를 뻗자. 햇빛을 향해 하늘을 향해 바람을 향해,
햇빛이 불덩어리 되어 묻혀 있는 곳까지 뭉게구름에 가려 있는 하늘의 가장 높은 봉우리까지 바람을 만드는 바람의 커다란 풀무가 있는 곳까지,
뿌리를 뻗자, 뿌리를 뻗자.
우리의 온몸은 뿌리로 되어 있다. 뿌리로 뭉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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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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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1 - 임어당
제2장 인간관의 양상
3. 생리학적 인간관
인간의 육체적 기능이나 정신적 과정을 좀더 깊이 알게 되면, 우리들 자신에 대해서 좀더 올바르고 좀더 넓은 견해가 생기게 되고, 나의 이른바 동물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사람들이 엣날부터 품어온 좋지 못한 느낌도 얼마간은 적어질 것이다. <지는 유이다>라는 엣 속담은 우리들의 육체적, 정신적 과정에도 들어맞는 말이다. 육체적 기능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되면 육체를 그다지 경멸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이해하기 때문이며,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소화 작용은 고상한가 천한가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하기만 하면 소화 작용이라는 것이 어쩐지 까닭도 모르게 극도로 고상한 것으로 생각된다. 발한작용이나 불용문의 배설 작용으로부터 췌액, 담즙, 내분비선의 작용 그리고 이것들보다 섬세한 감정 작용이나 사색적 작용에 이르기까지 인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모든 작용은 이해만 하면 고상하게 보인다. 그러면 이 이상 더 콩팥을 경멸하지 않게 되고 오직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쓰게 된다. 충치를 보고는 이제는 육체가 썩어가는 증거라고 생각하거나 영의 안녕을 소중히 여기라는 알림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없어지고, 다만 치과의사에게 가서 그 진찰을 받고 설명을 들어 알맞은 치료를 받는다는 것뿐이 된다. 아뭏든 치과의사의 치료실을 나온 사람은 이제 다시는 자기의 이를 경멸하지 않게 된다. 도리어 한층 더 이를 존경한다. 이제까지보다도 큰 기쁨을 가지고 사과며 닭의 뼈를 뜯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악마의 것이다, 하고 점잔을 빼는 형이상학자는 말하고, 신 플라톤 학파인 철학자는 하나하나의 이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철학자가 치통으로 고생을 하거나 낙천적인 시인이 소화불량에 걸려 고생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항상 짓궂은 기쁨을 느낀다. 어째서 치통 같은 것에는 아랑곳 하지 말고 자랑스러운 철학적 논고를 계속해 나가지 못하는가. 어째서 여러분이 나나 이웃집 여자처럼 빰을 손으로 누르고 있는가. 그리고 또 어째서 낙천주의는 소화가 잘 안되는 시인에 대해서 그렇게도 무력하단 말인가. 시인이라면 왜 좀더 시를 읊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니 뭐라고 했는가. 창자가 제대로 활동하여 인체에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는데 창자의 고마움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정신만을 노래하디니 무슨 배은망덕이란 말인가.
인체의 작용에 관한 경이감과 신비감을 깊게 해서 인체를 한층 더 존경할 것을 인간에게 가르친 것은(만약 무엇인가를 가르쳤다고 하면) 과학이다. 우선 첫째로 동물 발생학에 의해서 인간이 어떻게 발생하였는가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동물계통수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사실은 훌륭한 감격이어야 한다. 정신, 정신 하며 함부로 정신에 취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만족시키기에 족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오늘날 이 지구상에서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게 되기 위해서 공룡은 이미 수백만 년 전 옛날에 살다가 죽었다는 말을 나는 아예 믿지 않는다. 인간이 걸을 수 있게 되기 위해서라고 하는 그런 불손한 말을 쓰지 않더라도, 생물학은 조금도 인류의 위엄을 손상시키고 있지 않으며 또 인류는 지구상의 생물 가운데서도 가장 훌륭한 동물일 것이라는 점에 관해 조금도 의혹을 던져 주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은 인류의 위엄을 주장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충분히 만족감을 줄 것이다. 둘째로 우리들은 인체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대해 일찌기 맛보지 못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인체의 내부 기관의 활동과 그 기관 사이의 놀랄 만한 상호작용을 알게 되면 우리들은 아무래도 다음과 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이러한 상호작용이 행해지는 것은 참으로 극도로 어려운 자연작용이지만, 더우기 그 작용이 수행되어 가는 과정은 극도로 단순하고 궁극적으로 신비로운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과학도 이 신비에 부딪히고 보면 인체 내부의 화학적 과정을 분명히 하여 그것을 단순한 원리로 설명할 수도 없으니까 도리어 점점 더 설명하기 곤란한 것이 되고 만다. 이 내부 기관의 화학적 과정은 생리학에 관한 지식이 없는 범인이 보통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인체 밖의 우주의 대비밀도 인체 안의 비밀과 똑같은 것이다. 생리학자가 인체 생리의 생물리학적, 생물화학적 과정을 분석하고 연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놀라움은 점점 더 늘어간다. 너무나 큰 놀라움을 느끼는 결과 폭넓은 정신을 가지고 있는 생물학자까지도 때로는 생명 신비설에 항복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다. 알렉시스 캐럴 박사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그의 저서 <인간 불가지론>에서 언급한 박사의 의견에 대한 찬부는 어떻든 간에, 인체 내부 기능에 관한 여러 사실은 일찌기 설명된 일도 없었고 또 앞으로도 설명할 수도 없다고 하는 소론에는 찬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물질 그 자체 속에 내재하는 지성의 감각을 탐구하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인체의 모든 기관은 기관의 분비액과 신경 계통으로 해서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인체의 각 요소는 자기를 다른 요소에 적응시키며 후자는 또 자기를 다른 요소에 적응시킨다. 기계론자나 생명론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각 조직 속에 우리들의 지력과 같은 성질의 지력이 있다고 하면 생리적인 모든 작용은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로 연합하는 모양이다. 유기체 속에 궁극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각 부분은 전체에 대한 현재 또는 미래의 필요성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모양으로 그것에 따라서 행동한다. 인체 조직에 있어서의 시간과 공간의 의의는 인간 정신에 있어서의 경우와 같은 것이 아니다. 인체는 가까운 것도 지각하고 먼 것도 자각한다. 또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도 자각한다(인간 불가지론 p197) 일례를 들면, 창자를 다쳤을 때 우리들이 전연 치료에 힘을 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저절로 그 창자가 낫는다고 하는 것은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다친 장관은 우선 움직이지 않게 된다. 일시적으로 마비되는 것이지만 이렇게 해서 분변이 뱃속으로 흘러 나가는 것을 막는 막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다른 장관 또는 장망막의 표면이 상처로 접근하여 이미 알려진 복막의 고유성에 의하여 상처에 밀착한다. 그러면 네댓 시간 내에 상처 어귀는 막힌다. 비록 외과 의사의 바늘이 상처의 어귀를 꿰매 놓았다 하더라도, 상처가 낫는 것은 복막 표면의 자연적 유착의 결과이다(인간 불가지론 p200)
육체 그 자체가 이와같은 지력을 나타내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육체를 경멸하는 것인가. 결국 우리들에게는 이런 육체가 부여되어 있는 것이며, 이 육체는 손수 영양을 보급하고 손수 조정하고 손수 수리하고 손수 기동하고 손수 재생산하는 기계다. 출생할 때 한 번 장치해 놓으면 훌륭한 추가 달린 큰 구식 괘종시계처럼 조금 밖에 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1세기의 4분의 3이나 간다. 그것은 무선 시각과 무선 청각을 갖춘 기계이며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전신 전화의 조직보다도 더 복잡한 신경과 임파조직을 가지고 있는 기계다. 인체에는 아주 복잡한 신경 조직에 의하여 여러 가지 보고를 정리하는 조직이 있다. 그 일하는 품이 매우 능률적이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서류는 다락방에 보존해 두고 다른 서류는 좀더 가까운 책상에 보존해 두지만, 다락방에 보존해 둔 서류로 30년 동안이나 거의 쓸데가 없어서 그냥 두었던 것도 막상 필요할 때에는 번갯불과 같은 속도와 능률로 찾아낸다. 인체는 또 제동이 완전한, 절대 소리가 안 나는 자동차처럼 운전할 수가 있다. 만일 그 자동차가 사고를 일으켜 유리나 핸들이 파손되면 자동차는 자동적으로 분비 작용을 일으켜 유리의 대용품을 만든다. 또는 타륜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거나 또는 적어도 타륜축의 불룩한 끝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운전이 가능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서 인체에 대해 말하면 우리들은 한쪽 콩팥을 떼어 내더라도 남은 콩팥이 비대해져서 오줌의 정상량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기능이 증대해 가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체는 또한 화씨 1도의 10분의 1정도의 오차밖에 없도록 정상 체온을 유지하고 음식물을 생리 조직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자기에게 필요한 화학 약품을 만들어 낸다.
무엇보다도 영묘한 것은 인체가 생명의 율동감과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우기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의 감각뿐만 아니라 수십년의 감각도 가지고 있다. 즉 유년기, 발정기, 성년기를 조정하며, 성장을 이 이상 중지해야 할 때에는 성장을 중지시키고, 아무도 생각이 미치지 못할 때에 사랑니를 나게 한다. 우리들의 의식적인 지혜는 사랑니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또 인체는 독소에 대한 특수한 해독소를 만들어 내는데 대체로 그것은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인체가 이러한 모든 작용을 영위할 때에는 절대로 소리를 내는 일이 없고 공장에 으례 따르는 소음도 없다. 그러나 덕택에 예의 지나치게 점잔을 빼는 형이상학자는 소음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랑인 자기의 <정신>과 <진수>에 관해서 마음껏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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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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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2. 예언자 - 칼릴 지브란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시인이 나와 말했다. 아름다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어디에서 아름다움을 찾는가. 또한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 아름다움 그자체가 그대들의 길이 되고 안내자가 되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것인가. 아름다움이 그대들의 말을 엮지않는다면. 고통스럽고 상처받은 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친절하고 자비로운 것이다. 마치 자신만이 지닌 큰 축복이 약간은 부끄러운 젊은 어머니처럼. 아름다움은 우리들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또 정열적인 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힘차고 무서운 것. 마치 폭풍우처럼 아름다움은 우리 발 밑의 대지를 뒤흔들고 머리 위의 하늘을 흔든다> 피곤하고 일에 지친 자는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부드러운 속삭임. 아름다움은 우리들의 영혼 속에서만 말한다. 마치 그림자가 두려워 떠는 가느다란 빛처럼, 아름다움의 목소리는 우리들의 침묵에 따르며> 또한 불안한 자는 말한다. <우리는 산속에서 아름다움이 절규하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말굽소리, 날개치는 소리, 사자의 포효도 함께 들었다> 밤이 되면 도시의 순찰대는 말한다. <아름다움은 새벽빛과 더불어 동녘에서 떠오르리라> 그리고 낮이 되면 노동자들과 나그네들은 말한다. <우린 아름다움이 해질녘의 창으로부터 대지에 비스듬히 기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겨울에 눈 속에 갇힌 이는 말한다. <봄이 오면 아름다움은 언덕 위로 뛰어오른다> 또 여름날 뙤약볕 아래서 추수를 하는 이는 말한다. <우린 아름다움이 낙엽과 함께 춤추며 뒹구는 걸 보았다. 그 머리카락 사이로 눈발이 휘날리는 것도>
이 모든 것들은 그대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것. 그러나 실은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욕망에 대해 말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욕망이 아니라 다만 환희. 그것은 갈증으로 타는 입술도 아니고 구걸하기 위해 내민 빈손도 아니다. 오히려 불타는 가슴이며 매혹된 영혼이다. 그것은 그대들이 보았던 영상도 아니고, 그대들이 들었던 음악도 아니다. 눈을 감아도 생생하게 보이는 영상이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음악이다. 그것은 나무껍질 속을 흐르는 수액도 아니고 날카로운 발톱에 매달린 날개도 아니다. 늘 꽃이 만발한 정원이며, 언제나 날아다니는 천사의 무리. 올펄레스 사람들이여, 아름다움이란 거룩한 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베일을 걷어버린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삶인 동시에 베일. 아름다움은 홀로 거울 속을 응시하고 있는 영원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영원인 동시에 거울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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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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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심리 - 김성태
첫째 묶음 - 생활 속의 심리
고독
한자로 '고'는 어버이 없는 어린이를 뜻하고,'독'은 자식 없는 늙은이를 뜻한다. 이 두 글자를 연결하여 '고독'이라 할 때 한자의 뜻으로는 외롭고 쓸쓸하고 의탁할 데가 없는 상태나 그러한 인물을 지칭한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는 고독이란 한자 뜻 그래도 의탁할 데가 없고 외롭고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하는 말 같지는 않다. 오히려 조용하게 혼자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아서 짐짓 이러한 상태를 택하는 것, 말하자면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형성하는 외롭고 고요한 독립 상태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불행하게도 자신이 의지할 곳 없는 무능력자가 되었다면, 스스로 그 외롭고 불안정한 심정을 좋아라 하고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더군다나 그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친척이나 친구를 찾아 가까이 지내려 애쓸 것이며, 이성에게 의지하려는 노력도 많이 할 것이다. 게다가 이 경우 심한 불안정감 때문에 애정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 정상인보다 훨씬 심하게 대인 접촉을 갈구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일부러 그런 상태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 등의 경우 스스로 그 고독감에 묻혀 끊임없는 갈구의 상태에 젖어 있고자 하며, 그밖에 많은 사람들이 고독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이 고독이라는 상태가 인간의 행동 양식 중에서 어떠한 성격을 지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어떤 목표를 세우고 백방으로 노력하다 결국 실패할 때, 정서적 긴장이 심해져 어쩔 줄 모르고 불안해 하거나 괴로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를 좌절감이니 욕구불만 상태니 하고 말한다. 이 상태는 긴장과 불안으로 괴로움을 주기 때문에 그대로 가만히 견뎌 나갈 수 없다. 이 욕구불만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의 행동 기제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첫째, 좌절된 목표 달성을 기어코 성취시키기 위해 현실 상황을 재검토하고 다시금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는 방향이 나타난다. 둘째, 본래의 목표는 단념하고 다른 목표를 설정하여 성취시킴으로써 자아의 열등화를 막고 무언가 모르게 끓어오르는 직성을 풀어 보려고 하는 이른바 방어기제가 나타난다. 방어기제로는 대리 충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제가 생각된다. 셋째, 불안스럽고 괴로운 불만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패할 상황으로부터 후퇴하거나 아예 그런 상황으로는 들어가지도 않으려는 이른바 도피기제가 나타난다. 대인 관계 속에서의 실패가 두려워 꽁무니 빼거나 사람과 만나기를 꺼리는 은둔 경향, 실패 경험을 갖지 않으려고 그러한 상황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려 하거나 수줍음을 드러내는 거부 경향 등이 이에 속한다. 아울러 외로이 혼자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있는 것, 즉 고독을 즐기는 경향도 생각할 수 있다.
욕구 불만에 대응하는 이러한 여러 가지 행동 양식 중 도피 행동, 특히 자기 세계에 도피해 고독을 즐기는 경향은 어떤 경우에 많이 나타나는 것일까. 도피 행동을 많이 한다거나, 고독을 즐겨 늘 혼자 있고 혼자 생각하며 혼자 행동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것도 일종의 습관화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우선 이런 습관화의 전형적인 요인을 생각해 보자. 첫째, 오랫동안 병으로 누어만 지냈다든가, 신체가 허약해 사람들 틈에 한몫 끼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며 자랐다든가, 부모가 지나치게 엄격하여 늘 질책, 위협, 체벌을 받으며 전전긍긍하는 생활 속에서 자라났다면, 대인 접촉이 두렵고 힘들어 자연히 도피적인 -또는 고독을 즐기는- 경향이 형성되게 마련이다. 둘째, 목표가 너무 허황하게 설정되었거나 당면하는 일이 늘 분에 넘치게 어려운 것들이어서 실패만 거듭되는 경우인데, 이때는 대부분 사실 이상으로 스스로 열등하게 여긴다. 도피 기제는 이때 열등감을 피하는 방법으로 가장 쉽게 적용될 수 있는데, 그것이 성공되는 경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일어나 대인 접촉에서 후퇴해 고독에 잠기기 일쑤다. 셋째, 생활 방식이나 정치 체제가 이러한 도피 경향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재정치, 공포정치 체제하에서 국민은 개방적인 언동이나 솔직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대인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도피해 고독을 즐기는 것이 무난한 생활 방식이 된다. 이러한 도피 기제는 손쉽게 취할 수 있을 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크게 폐를 끼칠 염려도 없다. 사람을 대할 때 수줍어하고 은둔적이 되므로 상대에게 안도감을 줄 수도 있으니 오히려 이런 태도를 선호하게 된다. 따라서 이같은 습성은 더욱더 조장하게 마련이다.
이제까지 도피 기제가 습성화되고 성격화되는 몇 가지 요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지만, 아울러 이들이 현실로부터 도피해서 외롭고 쓸쓸하게 가만히만 있지 않는다. 대인 접촉이나 관심을 끊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혼자 질문하고 혼자 대답하는 사색을 하거나, 가공적으로 활동을 전개시켜 만족하고 슬퍼하며 즐기기도 한다. 그러므로 도피하여 홀로 있다고 해도 단조로움과 권태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 아니라 표상의 세계에서나마 목표를 달성하고 정서적 충족을 얻을 수 있으니 즐겁기 한량없다. 이런 점이 짐짓 고독에 잠기려는 경향의 적극적인 요인이 된다. 고독을 즐기는 사람은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만을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 활동에서도 현실과 관계를 끊으려고 한다. 이런 경우 인정이나 감정적인 흥분은 물론 가벼운 기분일지라도 타인과 나누질 못한다. 냉담하고 초월적인 태도로 제 일이든 남의 일이든 외면하며 모든 일을 무감동적으로 대한다. 고독한 사람은 쌀쌀하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도피 속에서의 공상에도 여러 가지 있다. 우발적이며 그때 그때마다 내용이 다르고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관성 있고 짜임새 있는-망상증 환자들이 하는-체계적 공상도 있다. 현실 세계와는 완전히 관계를 끊고 자기 세계에서 공상 활동만으로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자폐증 환자도 있다. 공상을 스스로 창조해 가며 즐기는 수도 있지만, 이미 타인이 꾸며 놓은 공상적인 이야기를 좇아가며 즐기는 수도 있다. 소설, 연극, 영화, 만화 또는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의 드라마 등을 보면서 주인공과 자기를 동일시 하고 즐긴다. 말하자면 남의 공상을 빌려 즐긴다고 해서 "빌려 온 공상"이라고 한다. 또한 공상 활동의 소재를 빌려주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도피문학이라는 것까지 생겨나 이러한 공상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고독을 즐기는 것을 도피 기제로 보고 비교적 불건전한 측면을 다루어 보았다. 그러나 고독이 비록 도피 기제라 하더라도 그것이 적절히 구사되면, 그것이 건전하며 적극적인 효용을 나타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제 고독의 적극적인 효용의 측면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대인 관계 활동이나 현실에 관심 두지 않고 홀로 있게 될 때는 흔히 혼자서 조용히 즐기는 활동을 하게 된다. 주로 독서나 조용히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제작 활동에 몰두한다. 이와 같은 활동은 창조적인 공헌뿐만 아니라 지식의 확대와 사색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가져올 수도 있으며, 다분히 지적 발달에 공헌하기도 한다. 고독해 하는 어린이에게서 지적 발달이 잘 이루어진다는 연구도 있으니 말이다. 고독은 지성화의 경향을 드러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앞서 지적했듯이 고독은 일면 욕구 불만으로 도피 기제를 나타내면서 정서적으로도 무감동하게 되고 초월적 입장에 서서 냉담해지게 한다. 이같이 정서적 관여를 단절하는 대신 지적 입장에 더욱 확고하게 서서 대응하려고 애쓴다. 즉 지성화 과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 슬픔을 참으려고 감정적으로는 둔감하게 -지적 관점에서- 이 사태를 맞이하려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는 참된 인생을 살고 가셨다."라든가 "하나님의 자애로운 손길의 안내를 받고 고통 없이 돌아가셨다"라고 하며 슬픔을 감소시키려 한다. 말하자면 지적 과정을 강조해 정서 활동을 둔화시킨다. 이같은 지성화는 고독을 즐기는 과정에서 강조되어 나타나 자기 객관화나 객관적 인식을 돕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지성화에는 냉소적인 태도가 뒤따르기도 한다. 냉소주의란 자기를 객관화시켜 웃어대는 경향을 말한다. 자기의 이상이나 현상화에 자아를 덜 관여시키고 남의 일 보듯 스스로들 비웃고 관망하는 태도이다. 이렇듯 자기를 객관화시키고 웃어대는 것에서 올바른 자기 평가를 얻게 되는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경우 도덕 관념이나 양심까지도 상대적으로 보게 되어 죄악감 같은 것을 덜 심각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고독은 또 지나친 전진에 대한 피이드백 역할을 하기도 한다. 너무 목표만 바라보고 매진하다가 실패했을 때 외로이 자기의 관계를 가다듬고 새로운 출발의 터전을 닦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또 일에 열중하다 잘 안되어 짜증과 피로를 느끼게 될 때 잠시 물러나 고독에 잠겨 반성과 전망, 새로운 출발의 계획에 잠기는 시간이 꼭 있어야만 하는 지도 모른다. 고독 속에 파묻혀 공상 -또는 그 와 비슷한- 활동으로 즐거움을 삼지 않고, 자아 반성에 잠긴다면, 이 고독은 인간의 내면적 성숙에 꼭 있어야 할 시간이라 하겠다. 이 경우 고독은 맹목적인 매진에 제동을 거는 좋은 작용을 한다.
친구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가져다주며 밤낮으로 어울려 놀던 어린 시절을 지나 청년기의 초가 되면 그렇게도 절친하게 놀던 친구들로부터 떨어져 외로이 혼자 생각하고 활동하는 시기가 온다. 어느 시기보다도 이 청년기의 초가 가장 외로운 시기라고도 한다. 또 이 시기는 자아가 확립되는 시기이다. 어려서는 관심도 없던 자신의 신체 모습을 타인과 비교해 보기도 하고, 자기의 능력, 입장 또는 앞으로의 사명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스스로의 본바탕이랄까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생각한다. 이를테면 자아 확립에 애쓰는 시기인데, 이는 이 시기의 고독한 심적 경향과 관련을 갖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고독하게 곰곰이 자기에 관해서 생각해 봄으로써 자아라는 것이 형성된다고 하겠다.
옛부터 참된 지도자라든가 완숙한 인격의 소유자들은 고독한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들이 속인의 아첨에 염증 나서 그와 같은 고독을 가졌다기보다는, 높은 식견과 뚜렷한 사명 의식을 가지고 살자니 자연히 현실을 초월하여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독 속에 그대로 빠져 버려서는 안 되겠지만, 고독 속에서 잠시 휴식을 즐기고 또 그 안에서 자기를 가다듬고 현실에 대한 설계를 한다는 면에서 볼 때 참된 인생에는 고독이 뒤따르게 마련이 아닐까 싶다.
"196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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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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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억지
어느 날 뮬라 나스루딘이 레스토랑에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자비로운 마음씨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자비심에 대해 말로만 떠들 뿐이지 실제로 자비로운 행동을 한 적이 없다네. 하다못해 우리를 초대해 차 한 잔 대접한 적도 전혀 없으니 말이야." 뮬라가 소리쳤다. "좋소. 모두들 우리 집으로 갑시다! 여러분들 모두, 이 레스토랑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초대하겠소. 모두 우리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읍시다!" 그들은 이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뮬라 나스루딘이 매우 인색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비로움을 자랑하다가 그만 꼼짝없이 걸려들고 만 것이었다. 집 근처에 이르자 나스루딘은 갑자기 아내를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불필요하게 문제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어떻게 아내를 설득할 것인가? 아침에 채소를 사러 집을 나선 그가 저녁때까지 나타나지 않다가 갑자기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나면 아내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남편과 아내의 견해 차이를 잘 이해할 것이오. 잠깐만 이곳에서 기다려 주시오. 먼저 내가 집안으로 들어가 친구 몇 명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전하겠소." 그래서 집안으로 들어간 그는 문을 닫고서 자신이 실수로 많은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설명했다. "이제 당신이 나를 도와 줘." 아내가 말했다. "날더러 어쩌란 말예요? 집안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은 하루 종일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채소도 안 사가지고 돌아왔잖아요." 뮬라 나스루딘이 말했다.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당신이 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왜 그곳에 모여 있느냐고 물으란 말야. 그들은 틀림없이 내가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노라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당신이 그것을 한마디로 부정하라구. '뮬라 나스루딘은 아침에 나가서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란 말야. '그는 집에 없으니 어서 돌아가시오.'라고 말하면 돼." 아내는 당황했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으며, 뮬라 나스루딘은 이층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남편은 지금 외출중이에요. 당신들은 왜 여기에 있죠?" 그들이 말했다. "무슨 소리요? 그는 우리와 함께 와서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소. 우리 모두가 증인이오. 그가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소. 당신은 모르는 모양인데, 그는 분명히 집안으로 들어갔소." 뮬라의 아내가 말했다. "남편은 분명히 집안에 없어요." 그들은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 그가 우릴 이곳으로 데려왔고, 먼저 집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더러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소. 아무래도 들어가서 찾아봐야겠소. 분명히 그가 집안에서 당신을 찾고 있을 거요." 뮬라의 아내는 그들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썼다. 그들은 말했다. "우린 당신 남편의 친구들이오. 우리가 안에 들어가서 찾아보겠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뮬라가 이층의 창문에서 소리쳤다. "왜들 억지를 부리는 거야? 내 아내가 남편이 안에 없다고 하면 없는 거야! 자네들은 가련한 여자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남편이 설령 자네들과 함께 왔을지라도 다시 뒷문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는 거 아냐?"
- 자신이 의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면, 그렇게 부정하는 그 삶은 누구인가? 부정하든 부정하지 않든 그의 부정 자체가 곧 의식을 소유하고 있음의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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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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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70. 지상에 세우려 한 농민들의 천국 - 태평천국 운동(1850~1864년)
태평천국을 이끌었던 홍수전은 영국에 의한 아편무역의 한창이던 19세기 초 1814년 광동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안은 다른 지역에서 그곳으로 이사해와 농사를 짓는 중농이었다. 홍수전은 총명하여 그의 집에서는 다른 형제들에게는 농사일을 돕게 하면서도 그에게는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신분상승의 거의 유일한 통로라고 할 수 있는 과거시험에 여러 차례 낙방하고 실망과 좌절감, 그리고 주변의 기대를 저버린 데 대한 죄책감들로 괴로워하면서 방황하게 된다. 1837년 또다시 과거시험에 떨어진 후 그는 높은 열레 휩싸이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음과 삶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그는 이 열병의 고통을 겪으면서 신기한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어떤 노인으로부터 "악마와 요괴들을 무찌르고 세상을 악으로부터 구해내라"는 사명을 받은 것이다. 그 꿈의 내용이 그가 꿈을 꾸기 몇 년 전에 서양 선교사로부터 우연히 받았던 (권세양언)이라는 크리스트 교 포교를 위한 책의 내용과 일치함을 알고 그 꿈속의 노인을 상제, 즉 여호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신이 계시한 지상천국을 만들기 위한 종교단체를 만들었는데 이 단체의 이름이 '배상제회'다. 처음에는 간청의 눈을 피해 포교활동에 나서 1년 만에 그의 뜻을 따르는 무리 2천여 명을 모았다. 그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지주들의 착취에 시달리는 가난한 농민들, 숯을 굽거나 광산에서 일하거나 하여 생계를 이어가는 억눌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홍수전의 주변에 모여든 것은 그가 내세운 평등이념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게 홍수전이 제시하는 평등사회는 천국으로 비쳤을 것이다. 홍수전을 중심으로 한 배상제회는 사람들을 모아 교단의 세력을 확대하는 한편, 그들을 하나로 할 수 있는 교리를 정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다.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오직 여호화만을 섬기며 남녀와 신분의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든다는 것을 선전했다. 1850년 배상제회에 동조하는 무리들을 모두 모았을 때 1만여 명이 모였다. 그들은 자기의 전재산을 내놓고 모두 공평하게 분배하는 등 모임 내에서부터 평등을 실현했다. 또한 가족을 풀어 헤치고 남녀를 따로 나누어 군대를 편성했으며, 청나라의 지배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만주족이 강요했던 변발을 버리고 머리를 길렀다. 그래서 그들은 자발적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 이듬해(1851) 이 모임의 지도자들은 광서의 금전이라는 곳에서 태평천국이라는 이름의 나라를 선포했다.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사회는 나라이름에 보이듯이 평등한 지상낙원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어 태평천국군은 청나라 군대와 싸우면서 북쪽으로 거슬러올라가기 시작했다. 홍수전을 천왕으로 하고 그 주변에 양수청이 동왕, 조소귀는 서왕, 풍운산이 남왕, 위차휘가 서왕, 석달개가 익왕으로 가각 군대를 이끌었다. 그들은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면서 그들이 정복한 지역에서 적과 내통한 자나 약탈, 폭행을 일삼는 자들을 처벌하고 태평천국에 협력하는 자들을 받아들이는 등으로 그 세력을 크게 확대했다. 53년초 호남성의 중심지인 무창을 함락했을 때 태평천국군은 50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53년 3월, 마침내 양자강 유역의 남경을 정복하여 남경을 천경, 특 태평천국의 수도로 삼았다. 그들이 봉기한 지 2년여 만이었다. 세력을 확대하고 국가조직을 갖추어나가면서 사회제도 역시 정비되어갔다. 태평천국 내의 백성은 모두 평등한 형제 자매였으며, 전족을 없애고 여자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았다. 또한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천조전무제도가 만들어졌으며, 사유재산은 인정하지 않았다. 즉 "밭이 있으면 함께 경작하고 음식이 있으면 함께 나눠먹고 돈이 있으면 함께 쓰며 모든 사람이 균등하게 혜택받을 수 있는" 평등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또한 멸만흥한의 깃발을 내걸고 만주족의 중국지배에 반대하여 청나라를 몰아내고자 했다. 태평천국의 이러한 정책을 억눌렸던 농민들에게는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었지만, 기득권 계층, 즉 재산을 많이 가진 지주, 청나라 지배 아래서 관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아가려는 위험한 존재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청나라에게도 매우 위협적인 세력이었다.
청나라는 태평천국군의 제압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중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외국세력도 태평천국군의 세력확대를 원치 않았다. 중국 내의 움직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영국은 1853년 영국공사가 태평천국의 수도인 남경을 방문하여 청나라와 영국이 맺은 남경조약을 태평천국 지도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태평천국의 지도자들은 아편무역 이외의 자유로운 통상은 인정하지만 외국이 태평천국의 통치권에 간섭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말했다. 결국 외국세력은 태평천국의 확대가 그들이 중국에 침투하는 데에 별로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각 지방의 유력자들을 '향신'이라고 불렀는데, 이들도 태평천국군을 막기 위해 군대를 길러 대항했는데, 그중에 가장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던 사람은 호남의 중국번이었다. 청나라의 군대보다는 이들이 개인적으로 거느리고 있던 군대가 태평천국의 세력확대를 막는 데 더 큰 역할을 했다. 태평천국군은 향신층의 반격으로 주춤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내분에 있었다. 1856년 태평천국군은 엄청난 내분에 휘말려 지도자인 양수청이 위창휘에게 살해된 데 이어 위창휘 역시 내분의 와중에서 살해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태평천국의 평등사회 이념은 빛이 바래가기 시작했다. 군기는 문란해지고, 태평천국의 관리들은 토착 실력자들과 야합, 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으며, 엄격한 규율과 금욕주의, 사유재산 금지의 원칙도 허물어져갔다.
마침내 64년 7월 중국번이 거느리는 상군이 남경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하여 남경을 함락시켰다. 홍수전은 약을 먹고 자살했다고 하기도 하고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하기도 한다. 나머지 지도자는 중국번에게 잡히기나 죽거나 하여 14년 동안 중국의 중요지역을 대부분 장악했던 태평천국은 끝을 맺었다. 태평천국을 무너뜨리는 데는 중국번의 상군뿐만 아니라 그의 부하였던 이홍장이 이끈 회군, 그리고 영국인 장교에 의해 훈련된 중국인 부대인 상승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양세력의 처지에서는 태평천국이 처음에는 크리스트 교 국가를 선언했기 때문에 서양이 중국에 침략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는 예측 아래 지켜보는 태도를 취했지만, 이들이 곧 한족의 민족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내자 태평천국을 공격하는 데 가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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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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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虎謀皮(여호모피) 與(더불 여) 虎(범 호) 謀(꾀할 모) 皮(가죽 피)
태평어람(太平御覽) 권208에는 마치 이솝 우화(寓話)와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주(周)나라 때, 어떤 사나이가 천금(千金)의 가치가 있는 따뜻한 가죽 이불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여우 가죽으로 이불을 만들면 가볍고 따뜻하다는 말을 듣고, 곧장 들판으로 나가 여우들과 이 가죽 문제를 상의하였다(與狐謀其皮). 자신들의 가죽을 빌려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여우들은 깜짝 놀라서 모두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 버렸다. 얼마 후, 그는 맛좋은 제물(祭物)을 만들어 귀신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는 곧 양들을 찾아가 이 문제를 상의하며, 그들에게 고기를 요구하였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양들은 모두 숲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與狐謀皮 라는 말은 후에 與虎謀皮 로 바뀌었으며, 與虎謀皮 는 호랑이에게 가죽을 요구하다 라는 뜻이다. 여우나 호랑이에게 가죽을 벗어 내라하고, 양에게 고기를 썰어 내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與虎謀皮 란 근본적으로 이룰 수 없는 일 을 비유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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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2. 나폴레옹은 검은 고양이를 싫어했다.
성문란을 막기 위해 생긴 날?
연인들의 축제일 발렌타인. 그러나 이것은 사실 카톨릭 교회가 당시 성대하게 이교의 제전을 말살하려는 의도로 만든 것이다. 기원전 4세기부터 로마에는 해마다 루페르크스라고 하는 신의 제전이 있었는데, 그 제전에서 젊은 남자들은 연인이 될 사람을 찾기 위해 제비를 뽑는 관습이 있었다. 십대의 처녀들이 자신의 이름을 써서 상자 속에 넣으면 그것을 남자들이 뽑는다. 이 제비뽑기로 생긴 커플은 다음해 제비뽑기를 할 때까지 연인(종종 성적인 의미에서도)이 된다. 초기 교회의 신부들은 800년 동안이나 계속된 이 음란한 행사를 그만두게 하려고 루페르크스를 대신할 연인들의 수호성인을 찾고 있었다. 그리하여 2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가 연인들을 위해서 순교한 발렌타인이라는 신부를 생각해냈다. 발렌타인이 순교한 것은 270년, 폭군 황제 크로디아스 2세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었다. 본시 국민의 원성 따위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던 황제 크로디아스는 결혼한 병사는 가족에게 신경을 써서 사기가 떨어진다고 하는 이유로 병사들에게 결혼 금지령을 내렸다. 그런데도 인테라무나에서 신부로 있던 발렌타인은 결혼을 간절히 원하는 젊은 연인들을 몰래 자신의 성당으로 불러서 결혼식을 올려 주었다. 크로디아스 황제는 이 '연인들의 친구'의 존재를 알게 되자 화를 내고 체포해서 연행해 오라고 명했다. 궁정으로 끌려온 젊은 신부는 품위와 신념으로 가닥 차 있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 황제는 로마교로 개종을 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발렌타인은 그 제의를 거부하면서 거꾸로 황제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했다. 270년 2월 24일, 마침내 발렌타인은 몽둥이와 돌로 얻어맞고 참수를 당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옥사에서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간수의 눈먼 딸 아스테리우스와 사랑에 빠져, 그 깊은 사랑의 힘으로 기적을 일으켜서 처녀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한다. 발렌타인이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의 끝을 장식한 '당신의 발렌타인으로부터'라는 문구는 발렌타인이 죽고 나서 한참 뒤에 '당신의 연인으로부터'라는 의미의 발렌타인 데이의 상투적인 문구가 되었다. 교회 쪽에서 보면 인기 있는 루페르크스를 대신할 성자로서 발렌타인은 정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기원전 496년, 마침내 엄격한 교황 게라시우스는 2월 15일에 루페르크스 제전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이 도박을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교황은 제비뽑기 행사만은 남겨 놓았다. 다만 상자 안에는 연인이 될 처녀의 이름이 아니라 기독교의 여러 성인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남자든 여자든 제비를 뽑은 사람은 일 년 동안 제비뽑기로 나온 성인의 덕행을 본받아서 실천하며 지내라는 것이었다. 이전의 제비뽑기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다. 아가씨의 이름을 기대하고 제비를 뽑은 로마의 젊은이들은 그곳에 성자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정말로 크게 낙담했을 것이다. 이 새로운 행사를 주관하는 것이 연인들의 수호성인 발렌타인이었다. 이윽고 로마인들은 본의는 아니었지만 이교도의 제전 루페르크스제를 단념하고, 교회의 성스러운 날로 대신하게 된 것이다.
본래 2월 15일인 루페르크스 제전은 로마의 젊은이에게 파트너가 될 젊은 여성을 찾거나 유혹할 수 있는 둘도 없는 좋은 기호였다. 그 루페르크스 제전의 제비뽑기가 사라지고 아무도 그것을 부활시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그런 일은 커다란 죄에 해당하니까)로마의 젊은이들은 전날인 2월 14일, 좋아하는 처녀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쓴 카드를 건네주고 유혹할 것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약삭빠르게 그 카드에 성 발렌타인의 이름을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기독교가 널리 퍼져 나가면서 발렌타인 카드도 보급되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된 발렌타인 카드는 1415년, 런던 탑에 유폐되어 있던 오를레앙 공 샤를이 아내에게 보낸 것으로서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6세기에 제네바의 신부 성 프랑수아 드 사르는 발렌타인 카드를 보내는 관습을 폐지하고 '성인의 이름이 새겨진 제비뽑기'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독교도가 길을 잃고 있어 길 안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제비뽑기는 교황 게라시우스의 제비뽑기보다도 훨씬 평판이 나빴고 오래 가지 못했다. 발렌타인 카드는 없어지기는커녕 점점 더 성행하였고 디자인도 화려해져 갔다. 그 무렵 발렌타인 카드의 그림으로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사랑의 묘약에 적신 화살을 활 시위에 건 발가벗은 큐피드의 그림이었다. 로마 신화에서 큐피드는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아들로 이 사랑의 축일을 상징하는 데는 딱 들어맞았다.
17세기가 되자 손으로 만든 카드는 점점 더 커지고 복잡해졌고, 한편 기성품 카드는 작으면서 값이 비쌌다. 1797년에는 영국의 어떤 출판사가 스스로 멋진 문구를 생각해낼 수 없는 청년들을 위해서 낭만적인 애정 표현을 소개한 "젊은이를 위한 발렌타인 카드 쓰는 법"이라는 책을 냈다. 인쇄업자 중 몇몇 사람들은 이미 그림과 글귀가 들어간 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19세기에 들어서 우편요금이 내리게 되자 손으로 건네주는 것 대신에 카드를 우송하는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이 유행했다. 그런데 우편으로 보내면 익명으로도 카드를 보낼 수가 있었기 때문에 점잔을 빼는 빅토리아 시대였는데도 아슬아슬한 문구가 쓰여진 익명의 발렌타인 카드가 크게 유행했다. 카드에 쓰인 외설스러운 말은 점점 더 정도를 넘어서서 끝내는 몇몇 나라에서 발렌타인 카드의 교환을 금지할 정도였다. 19세기 말경, 시카고 우체국은 취급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하면서 약 2만 통의 카드 우송을 거부했다. 미국에서 최초로 발렌타인 카드를 인쇄한 것은 인쇄업자이자 화가였던 에스터 하우랜드였다. 손으로 그린 카드가 35달러에 팔리던 1870년대 무렵에 아름다운 레이스 무늬가 인쇄된 하우랜드의 카드는 겨우 5~10달러만 주면 살 수 있었다. 그 뒤부터 발렌타인 카드 사업은 더욱 번창하여 오늘날 미국인이 보내는 발렌타인 데이 카드는 크리스마스 카드 다음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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