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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22호
2011.11.15 (음 10.20)/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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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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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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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2012 신춘문예
경인일보사가 한국문단을 이끌어 나갈 신인 작가 발굴을 위해 '2012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합니다.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지난 1987년 시작된 이래 창의적이고 재기발랄한 신인 작가 발굴에 앞장서고 있으며, 경기·인천 지역 일간지 중 유일하게 개최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공정하고 권위있는 심사를 통해 신인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은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이번 2012년도 작품 공모를 통해 우리 문학계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문학도를 발굴할 예정입니다. 역량있는 문학도들의 많은 관심과 응모를 바랍니다.
■ 응모마감 : 2011년 12월 3일(당일 소인 유효) ■ 응모부문 : 단편소설(200자 원고지 80~100매), 시(3편 이상) ■ 시상 및 상금 : 단편소설은 상패 및 원고료 500만원, 시는 상패 및 원고료 300만원(단, 당선자 없는 가작의 경우는 원고료의 반액을 수여) ■ 당선작 및 심사위원 발표 : 2012년 1월 3일자 경인일보 ■ 응모 및 문의 : (우)443-848 수원시 영통구 매탄동 1276 레몬스포렉스 2층 경인일보 문화체육부 신춘문예 담당자 (031)231-5385, 5348
※원고 겉면에 이름(필명인 경우 본명도 함께 기재),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반드시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접수한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타사 신춘문예에 중복투고한 원고나 기성작가의 응모, 표절작품의 경우에는 당선이 취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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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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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에 기술(요령)이 있는 것처럼 쓰는 데에도 기술이 있으며, 독서에도 기술이 있다. - 디즈레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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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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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올림픽
얼마 전 가까운 벗이 부친상을 당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찾아간 영안실에는 가녀린 현악기의 선율이 흘렀다.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손녀딸이 연주한 바이올린 소리였다. 연주곡은 비발디의 <사계> 중 ‘봄’. 장례식과 비발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잠깐 들었다가 이내 감동으로 바뀌었다. 한여름 유명을 달리한 어르신 영전에 올린 ‘봄’으로 장례식에는 싱그러운 봄날의 감동이 함께하는 듯했으니까. 꿉꿉한 장마철에 시원한 겨울의 감동이 번져오기도 했다. 강원도 평창이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와 강원도민만의 감동은 아니었다. 각 계절의 정경을 잘 묘사한 비발디의 표제음악 <사계>는 네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의 소제목은 춘계·하계·추계·동계가 아니다. 춘계방학·하계방학·동계방학이란 표현도 봄방학·여름방학·겨울방학에 밀려 오래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발음이 비슷한 춘계와 추계는 뜻 전달이 잘못될 수도 있다. 한자어 춘계·하계·추계·동계보다 토박이말 봄·여름·가을·겨울을 언중이 널리 받아들여 썼기 때문일 거다.
“평창은 겨울올림픽 개최를 위해 필요한 13개 경기장 중 스키점프대 등 7개를 완공했다”(<한겨레>)처럼 겨울올림픽이라 표현하는 언론 매체가 늘고 있다. 올림픽 유치를 전후해 동계올림픽에서 겨울올림픽으로 용어를 바꾼 곳도 여럿이다. 하지만 뉴스검색으로 확인한 ‘겨울올림픽’의 빈도수는 아직은 ‘동계올림픽’의 10분의 1 정도에 그친다. “2018년 겨울올림픽의 유치에 성공한 평창동계올림픽유치단이 오늘 오후 2시 전세기 편으로 귀국했습니다”(ㄷ방송)에서 보듯 공식 명칭이 그래서 아쉽다. 대회 유치의 감동을 안겨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는 이제 대회를 꾸려갈 올림픽조직위원회에 바통을 넘긴다. “조직위원회 이름에 동계를 넣을지 겨울을 넣을지 아직 논의한 바 없다”는 유치위원회 관계자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자(字)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는 소식이 들린다. 멀지 않은 앞날에는 은이 금보다 더 귀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붙이와 은붙이, 금은보화의 가치가 높은 까닭은 사려는 이가 팔려는 이보다 많아서이다. 희귀한 것은 ‘부르는 게 값’인 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 그래서인지 일상에는 쓸모없는 보물을 탐하다가 신세 망치는 이가 나오기도 한다. 얼마 전 서해 앞바다에 ‘해삼을 따러 갔다가’ 보물급 문화재를 도굴한 잠수부 등이 그렇다.
이들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알려진 보물은 ‘승자총통’. 오랜 세월 바닷속에 묻혀 있던 조선시대 화포 도굴 소식을 여러 방송은 이렇게 전했다. “이들이 도굴한 유물 중에는 임진왜란 때 사용됐던 승자총통[승자총통]도 포함돼 있었습니다”(ㅅ방송), “조선시대의 화약 무기 승자총통[-자--] 같은 보물급 문화재도 포함돼 있었습니다”(ㅇ케이블), “조선 전기 1583년에 제작된 길이 56㎝ 휴대용 화기, 승자총통[-자--]입니다”(ㅎ방송). 앵커와 취재기자만 [승자총통]이라 한 게 아니다. 방송 인터뷰에 나온 문화재 전문가도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승자총통[-자--]과 관련한 최초의 기사를…”이라 했으니까. “경찰이 압수한 것보다 4년 먼저 만들어진 승자총통[-짜--]입니다”(ㅁ방송)처럼 된소리로 발음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 총통의 이름은 ‘[승자]’일까 ‘[승짜]’일까.
조선시대 총통의 이름에는 그 크기 순서에 따라서 천(天)·지(地)·현(玄)·황(黃) 등을 붙였다. ‘하늘 천(天)이 새겨진 총통’은 ‘천자총통’(天字銃筒)이고 발음은 [천짜총통]이다. 한자 자(字)는 낱말 첫머리가 아니면 된소리가 된다. 그래서 ‘지자총통’[-짜--], ‘현자총통’[-짜--], ‘황자총통’[-짜--] 그리고 승자총통(勝字銃筒)[-짜--]이다. [승자]는 ‘이긴 사람’(勝者). 나 어릴 적 담임교사는 [고문자](高文子) 선생님이고, 갑골문자 따위의 옛글자는 [고문짜](古文字)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빼았기다 / 빼앗기다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은 아이들에게도 대목이다. 고대하던 세뱃돈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얼마를 모을 수 있을지 가늠해 보기도 하고, 받은 돈을 어떻게 하면 부모에게 빼앗기지 않을지 궁리하기도 한다. '세뱃돈 많이 받기'와 '세뱃돈 빼앗기지 않기'가 아이들의 인터넷 검색어 순위 상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재미있는 글이 올라 있다. "세뱃돈을 엄마에게 빼았겼어요. 엄마가 미성년자라고 하면서 돈을 달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빼았겼어요. 그럼 전 미성년자라 돈을 갖고 있으면 안 되고 돌려받을 수도 없는 건가요?" 얼마나 억울했으면 이런 하소연을 남겼나 싶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처럼 '빼앗기다'는 내용을 언급할 때 '안 빼았기기' '빼았기지 않기' 등과 같이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각각 '안 빼앗기기' '빼앗기지 않기'로 적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당신의 꿈을 빼았기지 말라" "중국에 역사를 빼았겨서는 안 된다" 등처럼 어른들도 잘못 표기하는 예가 흔하다.
'빼앗다'는 '빼앗아, 빼앗으니, 빼앗는'으로 활용된다. 준말인 '뺏다' 형태로도 사용되며, 이때는 '뺏어, 뺏으니, 뺏는'으로 활용된다. 어느 경우든 '뺐-'이나 '빼았-' 형태는 나올 수 없다. '빼앗아'는 준말로 활용하면 '뺏어'가 된다(빼앗아=뺏어). 아이에게서 세뱃돈을 뺏었다는 불평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곳에 쓰게 하거나 통장을 만들어 주는 등 요령이 필요하다.
초생달 / 초승달, 으슥하다 / 이슥하다, 비로소 / 비로서
"초생달이 지고 밤이 으슥해진 뒤에야 그는 비로서 길을 나섰다."
이 문장에서 잘못 사용된 단어들을 찾아보자.
우선 '초생달'은 '초승달'로 쓰는 게 맞다. '초승달'은 초승(음력으로 그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간)에 뜨는 달로 초저녁에 서쪽 하늘에서 볼 수 있다. '초승'이란 말이 '初生'이란 한자에서 나왔으니 사실 '초생달'이라고 쓸 근거는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현재는 '초승달'만 인정되고 있다. 북한어에서는 '초생달'을 사용한다. 초승달은 각월(却月).세월(細月).신월(新月).초월(初月).현월(弦月)이라고도 한다.
초승달은 초저녁에만 뜨므로 달이 지고 나면 밤이 차츰 깊어진다. 밤이 꽤 깊어진 것을 나타낼 때 "몇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고기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밤이 으슥할 무렵 드디어 낚싯대 끝이 휙 구부러지며 큼직한 놈이 한 마리 걸려들었다"에서처럼 '으슥하다'를 쓰는 걸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때는 '밤이 이슥할 무렵'처럼 '이슥하다'를 쓰는 게 바르다. '으슥하다'는 '무서움을 느낄 만큼 깊숙하고 후미지다' 라는 뜻으로 '집으로 돌아가려면 으슥한 골목길을 지나가야만 했다"처럼 사용된다.
끝 부분의 '비로서'도 자주 틀리는 단어인데 '비로소'로 쓰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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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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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눈 - 김재훈
가장 위험한 상처는 적막 속에서 태어난다
총성이 울리고 공중의 새가 통째로 떨어지는 밤에는 어떤 짐승이든 전속력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아름다운 옛 애인들은 항상 전속력으로 떠났고 아름답다는 말 속에는 숨 가뿐 동물들이 살고 있다
숨: 한 아름다움이 다른 아름다움 속으로 파고드는 것 (당신은, 당신이 잠결에 스스로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모습 본 적 있는지) 혹은 갑자기 열리는 하나의 상처, 구름들
구름이 하나 흘러가고 나는 구름에 취해
감정, 그리고 감정의 정치를 감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입술을 물게 하는 어떤 감정은, 生을 통째로 삼키거나 차라리 던져버리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뭉쳐진 눈(雪)과 흙 속의 감자와 우리의 뿔을 동일한 각오로 단단하게 만들지
무엇이든 상하게 하고 싶은 날이 있다
몸통보다 커다란 뿔을 세우고 돌진하는 짐승들 마치 그 뿔이 부러지길 바라는 듯이
하지만 누구도 다치지 않길 바라면서 그런 걸 정말 각오라 말해도 좋을까
간신히 희미해지는 구름의 전속력 겨우 그만한 각오를 품고 내가 나를 뭉쳐 공중으로 던져버릴 수 있다면
해 저무는 늦은 오후의 주택가에 아무도 모르게 검은 눈이 날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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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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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슬 - 이청화
조주의 입에서 나온 흰구슬 아직 나귀 한 마리 간 적 없는 붉은 황톳길 또르르 굴러간다.
그것을 본 한 객승이 흰구슬 가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으나 나는 모른다고 답한 조주
여기가 조주도 객승도 모르는 붉은 황톳길 오직 흰구슬 하나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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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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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새 - 이준관
강에는 물새가 사네.
쫄 쪼르르 쫄 쪼르르
물빛 부리로 물소리를 내며 물새가 사네.
강물은 흘러가 버리지만 물새는 물가에 집을 짓고 나룻배 뱃사공처럼 날마다
찍 찌르르 찍 찌르르
노를 저으며 강가에서 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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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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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1 - 임어당
제2장 인간관의 양상
2. 이 지상의 것
결국 이러한 결과가 되고 만다. 산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이 지상에서의 삶이다. 천국에서 산다고 하는 문제는 일체 집어치우기로 한다. 영에 날개를 달아서 신 앞으로 날려 보내어 지상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자. 한정되어 있는 목숨이 아니냐? 언젠가는 죽고 말 인생이다. 주어진 수명은 길다고 해도 겨우 70년, 영이 너무나도 불순한 생각을 일으켜 영생을 바란다면 이 70년은 너무나도 덧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영이 자신을 안다면 이것으로 족하다. 70년이나 살면 웬만한 것은 다 알 수 있고 웬만한 즐거움은 다 맛볼 수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바라보고 인간의 슬기를 몸에 저축하려면 아버지, 아들, 손자의 3대란 세월로도 충분하다. 이 3대에 걸친 세상의 추이를 통해서 이 세상의 풍습과 도덕 정치의 변천을 친히 목격할 수 있었던 현자라면 인생의 막이 내렸을 때 마음속으로부터 만족감을 느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 참 재미난 구경거리였다>는 한마디를 남기고 영원히 가버려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지상의 것이다. 지상에서 태어나 지상에서 자란다. 말하자면 70년의 과객으로서 이 아름다운 지상에 태어난 것은 조금도 불행이랄 것이 없다. 비록 그것이 컴컴한 토굴이라 할지라도 가장 아름다운 토굴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토굴도 아니고 한 세기의 대부분인 육칠 십년을 이 아름다운 지상에서 살 수 있으면서도 즐겁게 살아나갈 수 없다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이야기이다. 때로는 야심이 지나치게 많아서 겸손하고 관대한 지구를 얕보는 수도 있겠지만, 정신의 조화를 언제까지나 보존하고 싶다면 이 육체의 정신이 임시 머물고 있는 이 지상에 대해 <어머니인 대지>라는 생각과 참된 애정과 집착감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지상의 생명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널리 바라보는 동물적 회의론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또 자기를 흙과 똑같은 것으로 느끼고 겨울에는 봄의 태양을 고대하는 흙처럼 끈질긴 참을성을 다분히 가지고 있는 저 숲의 시인 도로우와 같은 순박함을 잃어서는 안된다. 도로우는 제아무리 풀이 죽었을 때에도 <영혼을 찾아서 헤매는> 것은 자기가 할 일이 아니라 자기를 찾는 일이 영혼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그의 행복은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산다람쥐의 행복과 비슷한 것이었다. 결국 하늘은 실재가 아니지만 지구는 실재다. 실재인 지구와 실재가 아닌 하늘 사이에 우리들이 태어났다고 하는 사실은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적어도 훌륭한 실천 철학이라면 인간에게는 육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요즈음 인간은 동물이라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해야 할 때가 바야흐로 온 것이다. 이미 진화론의 기본적 진리가 수립되고, 생물학 특히 생물 화학이 굉장히 진보되고 있는 오늘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들의 스승이나 철학자들이 지성이라는 것에 학자다운 직업적인 긍지를 가지고 있는 이른바 인텔리 계급에 속해 있었다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었다. 구둣방 주인이 가죽을 자랑하듯이 정신, 정신 하는 사람들은 정신을 자랑한다. 정신이라고만 해서는 아직 유현하고도 추상적인 느낌이 부족하다 하여 그들은 <본체>니, <영혼>이니, <관념>이니 하는 말을 써서 우리들을 놀라게 할 생각으로 대문자로 쓰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이 <현학>이라고 하는 기계로 증류되어 일종의 정기로 변하였고, 이 정기는 또다시 일종의 진수로 압축되었다. 알코올 음료를 만드는데도 조금이라도 맛이 있는 것으로 만들려면 맹물을 섞어서 하나의 <형체>를 갖게 해야 한다는 것을 깜박 잊어버리고 있다. 그리고 이 불쌍한 우리들 속인들은 압축된 정신의 진수를 마실 수 있다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듯 영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즉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 본능과 싸우게 한 것이었다. 따라서 내가 주로 비난하는 것은 그 때문에 완전히 원숙한 인간성의 이해가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생물학,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감각, 정서, 특히 본능은 이 인생에 있어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충분히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이 생기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와 영으로 되어 있는 것이므로 그 정신과 육체가 조화되고 양자가 일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철학자의 임무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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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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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2. 예언자 - 칼릴 지브란
쾌락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일 년에 한 번씩 그 도시를 방문하는 한 사람이 나와서 말했다. 저희에게 쾌락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말했다.
쾌락이란 자유의 노래. 그러나 그것은 자유가 아닌 것. 쾌락이란 그대들의 욕망의 꽃이 피는 것. 그러나 그것은 열매가 아닌 것. 쾌락은 정상을 향해 소리치는 심연. 그러나 그것은 심연도, 정상도 아닌 것. 그것은 날개 달린 새가 새장 안에 갇혀 있는 것. 그러나 사방이 둘러싸인 공간은 아닌 것. 그렇다. 사실 쾌락이란 자유의 노래.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로 하여금 가슴 가득히 노래하게 하고 싶다. 그러나 그대들이 노래하느라 기운이 빠지게 하지는 않겠다.
젊은이들 가운데 어떤 이는 쾌락이 전부인 양, 쾌락만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심판받고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결코 그들을 심판하거나 질책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들이 쾌락을 찾게될 땐, 결코 쾌락만을 찾게 되지는 않을 것이므로. 쾌락의 자매는 일곱, 그중 가장 어린 형제도 쾌락보다 아름다운 것. 그대들은 하찮은 뿌리를 캐다가 땅 속에서 보물을 찾은 이의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했는가? 또한 노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처럼, 후회로써 쾌락을 추구한다. 그러나 후회란 마음의 벌이 아니라,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을날의 수확같이 감사한 마음으로 쾌락을 추억해야 하리라. 그러나 후회가 그들을 위로한다면 그로부터 위로를 받아라. 또한 그대들 가운데서 쾌락을 찾게에 젊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회상할 만큼 늙지도 안은 이들도 있다. 그들은 쾌락을 찾는 것도, 회상하는 것도 두려워서 일체의 쾌락을 피한다.
혹 영혼을 돌보지 않게 되거나 죄를 짓지 않도록. 하지만 이런 도피 속에서도 쾌락은 있는 법. 비록 떨리는 손으로 뿌리를 캘지라도 역시 보물은 찾게 마련. 그러니 영혼을 어기려는 자가 누구인지 내게 말해 주오. 나이팅게일이 밤의 고요를 거역하는가, 개똥벌레가 감히 별을 거역하는가. 또 그대들의 불꽃이나 연기가 바람을 괴롭힐 것인가? 생각해 보라. 그대들의 영혼이 막대기 따위로 휘저을 수 있는 고요한 연못인가를. 그대들은 때로 스스로 쾌락을 거부하면서도 그대들 존재 내부의 깊은 곳에 욕망을 감춰 둔다. 누가 아는가. 오늘은 없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실은 내일을 기다리고 있음을? 그대들의 육체조차 제가 물려받은 바와 당연한 요구를 알고 있으니, 결코 속지는 않으리라. 그러므로 그대들의 육체는 그대들 영혼의 하프. 그로부터 달콤한 음악을 울리게 하든, 혼란한 음악을 울리게 하든, 그것은 그대들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이제 그대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묻는구나. <쾌락 안에서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선이 아닌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그대들의 숲, 그대들의 정원으로 가 보라. 그러면 그대들은 알게 되리라. 꽃에서 꿀을 모으는 것이 벌의 쾌락인 것을. 또한 벌에게 꿀을 바치는 것이 꽃의 쾌락인 것도. 벌에겐 꽃이 생명의 샘이기에. 그리고 꽃에게 벌은 사랑의 사자이므로. 그리하여 벌과 꽃, 그들에겐 쾌락의 줌과 받음이 필요이며 황홀한 기쁨인 것을. 올펄레스의 시민들이여, 바라건대 부디 꽃과 벌처럼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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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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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심리 - 김성태
첫째 묶음 - 생활 속의 심리
사랑의 메카니즘
사랑이란 접근하려는 경향성이다. 부산에 있는 님을 사랑해 마지 않는다면 당장이라도 부산으로 가 님과 함께 있으려 할 것이요, 부산으로부터 님을 데려다 같이 있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할 것이다. 같은 도시에 있으며 더욱 가깝게 이웃하여 매일같이 만났으면 하고, 또 같이 이웃해 살면 더욱더 가깝게 한 집에서 살았으면 할 것이며, 게다가 한 집에 사는 것도 부족해 한 방에서 살을 맞대고 지내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란 끊임없이 접근하려는 경향성이다. 사랑을 접근 경향성이라 했지만, 사람은 아무 것에나 접근 경향성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접근해서 자기가 쾌 정서(쾌감)를 얻을 수 있는 대상에게만 접근하려고 한다. 안정감, 조화감, 쾌감, 긴장 해소 등을 느끼게 하는 것에만 접근한다. 갓난 아이는 어머니 손에 있음으로써 모든 긴장이 사라지고 즐거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계속 달라붙는다. 독립된 생활을 하는 어른일지라도 자녀와 같이 사는 데에서 아기자기한 재미뿐 아니라 든든한 마음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니 부모들은 저절로 자녀들을 사랑해 마지않게 된다. 양로원에서 외롭게 여생을 보내는 할아버지가 화초를 매만지고 바라봄으로써 쓸쓸함을 잊고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면, 그 할아버지는 화초를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란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에 의한-관능적-쾌감을 얻는 것만으로 사랑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사랑하는 아들을 만리 타향에 보내 놓고도 그 아들과 항상 같이 있는 기분으로 마음 든든하게 즐거워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순간적이긴 하나 현실의 격심한 고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영구적인 안락을 보장한다는 믿음 때문에 고행 수업에 생명을 바치는 승려들이 있다. 이처럼 인간은 상징적 접근을 통해 상징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랑을 가진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랑이란 인간이 연출하는 행동의 일종이며, 모든 행동이 동기를 갖는다면 사랑도 어떤 동기에서 유발되어 그 동기의 충족으로 종결짓는 행동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행동의 동기는 무엇일까. 무릇 인간은 생물체이기 때문에 생물학적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자연 환경 속에서 각자가 이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 노릇이 아니다. 인간은 이 바람(시련) 많은 자연 속에서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보장하기 위해 집단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 집단 생활은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문화적 생활로 발전되었다. 이렇듯 기본적 욕구를 적절하게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이건만, 이 사회 생활이라는 게 복잡하고 까다롭기 짝이 없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며 욕구 충족은커녕 파멸의 구렁이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사회 속에서도 역시 기본적 욕구 충족을 위협하는 불안과 공포는 그대로 존속한다. 여기서 사회는 그 안에 제2차적 욕구를 형성시켜, 이 2차적 욕구를 충족시키면 기본적 욕구가 더욱 쉽게 충족되게끔 유도한다. 이들 2차적 욕구를 "사회적 욕구"니 "인격적 욕구"니 하고 부른다. 이러한 사회적 욕구들 중 불안한 사회 속에서 안정감을 얻으려는 욕구가 어려서부터 생겨난다. 이 욕구로 말미암아 어려서는 어머니에게 매달려 사랑 받게 되며, 커서는 모진 세상을 같이 헤쳐 나갈 적절한 동반자를 구하게 되고, 늙어서는 이 욕구 충족을 자녀들로부터 구하면서 산다. 또 동무와는 우애를 돈독히 하고 동호 집단을 꾸려 친목을 도모하게 된다. 실로 사랑이란 이처럼 안정감과 이에 수반되는 쾌감, 환희, 상쾌감 따위를 얻기 위해 상대편에게 적용하는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부모를 사랑하고 아들딸을 사랑하고 동무를 사랑하며 제자를 사랑하고 부하를 사랑하는 것, 그 어느 하나 안정감과 이에 수반되는 쾌감을 얻으려는 욕구의 발로가 아닌 것은 없다. 안정감을 얻으려는 이러한 욕구 즉 사랑 받겠다는 욕구는 생물적인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부차적으로 생긴 것이긴 하지만 기본적 욕구의 그 어느 것보다도 강하게 나타나는 수가 있다. 거리의 부랑아를 모아다 고아원에 수용하면 이들이 야밤 도주하여 다시금 거리의 거지 집단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허다하다. 고아원에서는 의식주의 모든 점에서 거지 생활보다 못할 것이 없고 활동의 자유가 그다지 구속되는 것도 아니건만 그들은 싫다고 빠져나간다. 비참하기 짝이 없는 거지 생활일지라도 외적인 위협에서 이들을 보호(?)해 주는 왕초와의 의리가 있다. 다시 말해 왕초와의 사랑이 있다. 이 안정감을 얻기 위해 그들은 비참한 거지 생활도 오히려 달게 받아들인다.
이성에 대한 사랑에게는 그 강도가 더욱 강렬하다. 여기에는 단순히 안정감을 얻으려는 욕구, 사랑을 얻으려는 욕구뿐만 아니라 기본적 욕구인 성욕이 겹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욕이 생물적인 기본적 욕구라고 해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욕구라는 의미는 아니다. 성욕을 충족시키지 못해 저절로 생명을 잃게 된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욕이 다른 욕구에 비해 강렬한 것은 아마도 사회가 성적 욕구 충족에 많은 억압과 제한을 가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성적 욕구는 그동안 억눌려 있던 상태에서 일단 출구가 마련되기만 하며, 그 어느 욕구보다도 강렬하게 된다. 이 강렬한 욕구는 그것이 조성하는 긴장감을 해소하며, 아울러 안정 욕구 충족의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맹위를 떨친다. 더욱이 사회적 제한의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욕구 충족을 달성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므로 이성애는 심적 갈등의 해결이라는 양상을 갖게 되어 불안, 초조, 긴장, 고민 등을 맛보고서야 충족감이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연애를 괴로운 열병에 비유하기도 한다.
누군가 "사랑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라고 했다. 지당한 말이다. 사람은 사랑하는 이로부터 생명의 양식을 빼앗는다. 생명의 양식을 빼앗는다고 해서 물이나 밥 또는 돈 따위를 탈취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 충족을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정신적이고 고상하며 인간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양식을 말한다. 이를테면 안정감, 사랑, 희열,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사랑하는 사람은 애인을 바라보기만 해도 즐겁고 푸근하고 든든하다. 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행복을 구가하고 사는 맛을 알게 된다. 사람은 사랑함으로써 이같은 생명의 양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낌없이 사랑한다. 우리는 부모님에게서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을 얻게 된다. 안정감이라 할까, 훈훈함이라고 할까, 아니 든든함이라 할까. 아내를 사랑하고 애인을 사랑함에도 마찬가지다. 담담함이라고 해도 좋고, 뛰노는 청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며, 흔한 말로 행복이라 한들 어떠랴. 이렇게 볼 때 사랑하면서 빼앗는 것은 참으로 생명의 영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의 인간다움을 길러 주는 참된 양식이다.
사랑은 "어떤 욕구로 인해 유발되는 것이며, 충족을 줄 것이 기대되는 대상에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며,"자기 굴복의 느낌"이라고 한 사람이 있다. 사랑은 확실히 의식적으로 자기 희생적이며, 자기 극복을 느끼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강렬한 사랑일수록 이러한 자기 희생감은 커지게 마련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일는지도 모른다. 남을 사랑하는 자기 희생으로 이기적인 사람을 가장하여 위안을 삼는 것은 문화적인 자기 미화 작용이라고 본다. 사랑의 이기적 요소와 애타적 요소를 말하며 사랑을 거론하는 데는 목사님들이 능숙하다. 그들은 사랑에 두 가지가 있노라고 외친다. 세속적 사랑 즉 인간애가 그 하나요, 신적 차원의 사랑 즉 신에 대한 사랑이 또 하나라고 한다. 그들은 전자를 이기적이라고 하며, 후자를 자기 희생적, 비이기적이라고 한다. 인간은 피조물이고 제한된 존재이므로 부족한 것이나 요구되는 것을 항시 구하는 존재로서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기적으로 쾌락을 얻으려는 행동으로 나타날 때, 이는 악이요 이른바 세속적 사랑이다. 그러나 구하는 것이 최적의 생명의 양식인 신의 사랑을 구하는 것일 때, 이것이 선이요 이른바 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한다. 이 말에 의하며 신에 대한 사랑은 신의 사랑을 예측하며 기대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은총(신의 사랑)이 충만하게 강림하는데 목적을 둔다. 이러하나 신의 은총을 받기 위해 신이 정해 놓았다는 법이나 의식을 열심히 이해하게 되고, 이는 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된다. 이렇게 보면 신에 대한 사랑 역시 이기적 요소가 거의 전부이다. 물론 신으로부터 빼앗아 오는 사랑의 댓가가 정신적으로 고귀한 것임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생명에 귀중한 거름이 되고 양식이 되는 것을 얻기 위해 신을 사랑하는 인간의 이기적 현명성을 말한다.
고귀한 생명의 양식을 받기 위해 사랑하려면 스스로도 그와 같은 양식을 상대에게 제공해 주어야 한다. 말하자면 서로 주고 받음이다. 어린 아이는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미소짓고 손벌리며 품에 파고든다. 얼굴을 비벼 대고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사랑의 표시를 한다. 이러한 행동 속에서 귀여운 표정, 보드라운 감촉, 움터오르는 새싹의 희망, 그리고 괴로운 현실에서 구출해 주는 소망을 얻게 되니 어머니로서 어찌 젖을 주지 않고 포옹하지 않겠는가. 아이는 아이대로 모든 허물을 덮어 주고 돌보아 주는 부모에게 어찌 가까이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사랑을 주고 받는 것으로 볼 때 사랑을 수단으로 해서 자기의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점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 사랑으로 상호 유대는 굳어진다. 원래 이기적이며 고독한 존재인 인간은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해 주고 받는 사랑을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융합한다. 아마도 서로의-생명의-양식을 얻기 위한 끊임없는 접근으로 보람된 삶을 이어가는 것이 참된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196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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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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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무거운 짐
중국에 포대화상이라는 선승이 있었다. 그는 항상 큰 포대자루를 짊어지고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포대화상이라 불렀다. 그런데 그는 그 포대 속에다 장난감, 과자, 엿 등을 가득히 넣고는 마을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 사람이 포대화상에게 물었다.
"스님! 우리는 스님이 매우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신 훌륭한 스님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장난스러운 행동은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노는 데만 허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스님께서 선에 통달하셨다면 저희들에게 선의 진수를 보여 주십시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포대화상은 자신의 포대를 땅바닥에다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다! 이것이 선의 진수이다!"
그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자, 포대화상은 이렇게 들려 주었다.
"이것이 내가 보여 주고자 하는 전부이다. 내가 짐을 내려놓았듯이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그러자 그들이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자 그는 아무말없이 포대를 후다닥 걸머지고는 발길을 내디디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그 다음 일이다. 그러나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짐이 나의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짐들은 단지 어린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 자신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들은 벗어 던져라. 홀가분한 상태에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그땐 이 세상 전부를 짊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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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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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69. 끌어내려진 애로 호의 영국국기 - 제2차 아편전쟁(1856~1860)
아편전쟁의 패배로 맺은 남경조약은 오랫동안 지켜오던 중화의식이 무너짐을 의미했다. 그렇다고 중국이 한순간에 호락호락 서양 세력들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주지는 않았다. 5항구를 열어 무역을 허용한다는 약속을 했지만 그 실행을 미루고 있었고, 아직은 내륙지역까지 외국인들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영국 상인들은 항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제한된 무역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영국산업을 이끌어왔던 면제품 산업이 생산과잉이 되면서 하루빨리 넓은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중국은 그들에게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떡이었다. 서양 자본주의 국가들은 다른 분쟁을 만들어서라도 중국을 굴복시켜 내륙 깊숙이 진출려고 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그 선두에 서 있었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는 외국 자본주의의 침략에 대항 저항이 커지고, 영국에 대항하는 민중운동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광동의 영국상관이 공격받았으며, 광동성의 관리가 영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성내의 중국인 지역으로 영국인들의 출입을 허용했을 때 격렬한 저항이 있어 결국 그결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도 있었다.
아편전쟁 이후 얼마 동안은 영국도 러시아와 크림전쟁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무력압력의 시기를 늦추고 있었다. 그런데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애로 호사건'이라고 하는 것이다. 애로 호는 홍콩에 선적을 둔 중국인 소유의 배로서 선장이 영국인이었다. 이 배가 광동성에 정박하고 있을 때 중국관리가 배에 올라 영국국기를 끌어내리고 해적혐의로 중국 선원 12명을 체포했다. 사건이 일어나자 광동의 영국영사 파크스는 양광총독에 항의하고 사건의 마무리를 위한 교섭을 시도했으나 결렬되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영국은 군대를 동원하여 광주를 공격하고 청의 관청에 쳐들어갔다. 물론 이 모든 사건의 바탕에는 영국의 자본주의가 중국에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영국 내에서는 "법률적으로 보나 도덕적인 면에서 보나 정당하지 않는 싸움이다"라는 반대 여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더 많은 군대를 파견하여 중국을 완전히 굴복시키고자 했다. 중국인민들의 반영감정은 더욱 높아져갔고 두 나라는 극한적인 대립상태가 되었다. 영국해병이 목 잘리는 사건이 있었고 영국은 이를 이유로 영국인이 죽은 지역의 마을을 불살라버렸다. 또한 영국은 홍콩의 중국인 빵집의 빵에서 비소가 나온 것을 중국인의 음모라고 하여 홍콩에 사는 중국인 약7만여 명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명령을 내렸다.
영국은 중국과의 싸움에 프랑스를 끌어들이려 했다. 프랑스 역시 아시아에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참에 때마침 중국에 선포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중국에 파견되어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 한 명이 중국관리에게 살해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857년 6천여 명의 영, 프 영합군은 광동을 점령하고 청에게 교섭에 응할 것을 요구했으나 청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영, 프 연합군의 공격은 계속되어 북경 가까운 천진을 위협하게 되자 청은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서양 강대국들과의 교섭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맺어진 조약이 천진(텐진)조약과 북경(배이징)조약이다. 북경조약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서양의 외교사절이 북경에 상주할 수 있게 할 것 * 남경조약 때 5개항 외 10여 개 항구를 추가 개항할 것 * 외국인의 중국 내륙지역 여행권리를 인정할 것 * 크리스트 교의 선교의 자유를 인정할 것 * 홍콩 옆에 있는 구룡반도를 영국에게 할양할 것
중국은 북경조약으로 인해 항구뿐만 아니라 내륙지방에도 외국인들의 활동을 허용하게 되었으며, 서양 자본주의가 내륙 깊숙이 침투하여 중국민중들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 조약은 또한 선교사 살해를 이유로 전쟁에 가담했던 프랑스는 크리스트 교 종교활동의 자유를 승인케 함으로써 강희제 이후 활동을 할 수 없었던 크리스트 교에 대한 제한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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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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駑馬十駕(노마십가) 駑(둔할 노) 馬(말 마) 十(열 십) 駕(멍에 가)
순자(荀子) 수신편(修身篇)에는 무릇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고 하지만, 둔한 말일지라도 열흘 동안 달려 간다면 이를 따를 수 있다(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則亦及之矣). 라는 말이 있다. 또한 반 걸음이라도 쉬지 않으면 절룩거리며 가는 자라도 천리를 갈 수 있고, 흙을 쌓는데도 멈추지 않고 쌓아나가면 언덕이나 산을 이룰 것이다. 라는 말도 있다.
駑馬 란 걸음이 느린 말을 가리키며, 재능이 없고 무능한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말이 수레를 끌고 다니는 하루 동안의 노정(路程)을 一駕 라 하니, 十駕 란 곧 열흘간의 노정을 말한다. 駑馬十駕 란 둔한 말이 열흘 동안 수레를 끌고 다니다 라는 뜻이다. 이는 곧 재주 없는 사람이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사람에 미칠 수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영어의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라는 표현과 비슷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 학습자의 능력에 따른 수준별 지도가 강조되고 있다고 한다. 일부 과목에서 다소 부진한 학생일지라도 駑馬十駕 하듯 노력한다면 상당히 향상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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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이글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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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2. 나폴레옹은 검은 고양이를 싫어했다.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누르지 않는다
인쇄된 크리스마스 카드가 맨 처음 등장한 것은, 1843년 런던에서의 일이었다. 그 이전에는 손으로 직접 만든 카드를 사람들이 처음에는 직접 건네주다가 나중에는 우편으로 서로 교환했다. 1822년에는 이미 크리스마스 카드가 미국 체신부의 골칫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해 워싱턴의 우체국장은 열여섯 명의 우체부를 더 고용하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카드를 배달할 수 없다고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크리스마스 카드의 우송을 제한해 달라고 의회에 탄원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우리로서도 대책이 없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져, 값싸고 멋진 카드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사람은 갈수록 늘어나 우체국의 부담은 점점 더 커졌다. 인쇄 크리스마스 카드 제1호는 당시 런던의 인기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존 칼코트 호스레이가 그린 것이다. 부유한 영국인 실업가 헨리 콜 경이 '친구와 사업상 아는 사람에게 자신 있게 보낼 수 있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가 직접 만든 것이다. 호스레이의 카드는 세 번 접게 되어 있는데 양 날개에는 각각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 주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가운뎃장에는 훌륭한 음식과 굴로 가득한 크리스마스 파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가운뎃장에 그려진 그림은 그 무렵 일어난 금주 운동에 대한 호스레이의 통렬한 비판이기도 했다. 이 최초의 크리스마스 카드에 쓰인 문구는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뉴 이어 투 유'로, 당시의 '메리'는 '메리 잉글랜드'라고 할 때와 똑같이 축복 받았다는 뜻의 종교적인 말이었다. 헨리 콜을 위해서 1,000장이 인쇄되었던 이 최초의 카드 중 열두 장이 오늘날까지도 개인 소장으로써 남아 있다.
인쇄한 크리스마스 카드는 곧 영국에서 크게 유행하였고 곧 독일에도 퍼졌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에 나타나는 것은 뜻밖에도 30년 뒤의 일이다. 1875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인쇄한 것은 독일에서 이주해 온 보스턴의 인쇄업자 루이스 프랑이었다(프랑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카드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프랑의 카드는 품질도 좋았지만 비싸지도 않았다. 게다가 도안이 예수를 안은 마리아라든가 크리스마스 트리, 또는 산타클로스 같은 크리스마스에 낯익은 것이 아니라, 장미와 데이지, 치자나무, 제라늄, 사과 등의 꽃들을 조합한 정교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인쇄 크리스마스 카드는 인기를 끌었지만 프랑의 카드는 아니었다. 미국에서 잘 팔린 것은 독일에서 건너온 값싼 수입품이었다. 1890년에 프랑은 크리스마스 카드의 제작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에서 만든 카드의 유행은 그 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카드 산업이 탄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만 일 년에 20억 통을 넘는 크리스마스 카드가 교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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