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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19호
2011.11.11 (음 10.16)/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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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 한자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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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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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제8회 세계문학상 공모
고료 1억 제8회 세계문학상 공모
‘미실’ ‘아내가 결혼했다’ ‘스타일’ ‘내 심장을 쏴라’…. 한국 장편소설의 지형을 바꾸어 놓은 빛나는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의 이름입니다. 세계문학상은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 문학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응모작을 기다립니다. 도서출판 은행나무와 함께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적인 장편문학상의 위상을 보다 튼튼하게 가꾸겠습니다. 신인은 물론 기성작가들의 적극적인 응모를 고대합니다. 멈추지 않는 글쓰기 본능을 가진 당신, 세계문학상의 영광을 누리십시오.
▶부문:장편소설(200자 원고지 1200장 안팎 분량)
▶고료:당선작 1편 1억원(당선작 없는 가작일 경우 5000만원)
▶응모자격:신인과 기성 작가 제한 없음
▶작품내용:주제와 소재 제한 없음(단 발표되지 않은 순수 창작품에 한함), 줄거리 요약 첨부(200자 원고지 20장 안팎 분량)▶마감:2011년 12월 23일(마감일자 소인 유효)
▶제출처:(153-803)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 550-15 세계일보 문화부 세계문학상 담당자 앞
▶문의:(02)2000-1296, http://munhak.segye.com
▶발표:2012년 2월 1일자 세계일보 지면
※당선작 또는 가작의 출판저작권과 영상물 제작 등을 위한 2차 저작권은 5년 동안 세계일보에 귀속됩니다. 제출된 작품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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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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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 목록에는 반드시 고전이 들어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 필요한 양서를 구별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자기의 독자성을 확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현대에 출판된 책을 꼭 읽어야 함은 자기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세계를 알아야 할 중요성에서다. 독서란 사람이 밥을 먹고 운동을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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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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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밭’을 가꾸자
기대 밖의 성과가 나왔을 때, 우연히 찾아간 식당의 음식 맛이 훌륭하거나 값이 쌀 때, 아주 멋진 이성을 만났을 때, 예상했던 문제가 시험에 나왔을 때,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에 탔는데 빈자리가 있을 때, 선뜻 사기에는 부담스러웠던 물건을 이벤트에 당첨되어 공짜로 얻게 되었을 때, 어처구니없을 때… 그리고 이런 경우와 정반대 상황에서도 쓸 수 있는 표현이 있다. 그런 ‘도깨비방망이’ 같은 말이 진짜 있다면, “우와, 대박이다”? 그렇다. 이 모든 상황에서 아무 때나 쓰이는 말이 ‘대박’이란 녀석이다.
1990년대 중반에 ‘대박’을 처음 들었다.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아나운서의 말 속에서였다. 내 귀를 의심했을 만큼 낯설었던 ‘대박’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도박판이나 깡패들 사이에서 쓰던 말’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속설일 뿐이다. ‘대박’은 2002년 신어자료집을 통해 제도권에 입성했다. 시나브로 세력이 커진 ‘대박’은 드디어 <표준국어대사전>에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뜻으로 등재되었다. 청소년과 일부 계층을 넘어 언론에서도 예사로 쓰이는 표현이다. 하지만 언론인이 되고자 준비하는 이들에게 “‘대박이란 말을 쓰면 피를 토한다!’는 각오로 살아라” 당부한다. 공공언어로 쓰기 적합하지 않은 비속어여서가 아니다. 말맛 제대로 살리는 수많은 느낌, 거기서 비롯한 풍부한 표현을 죽이기 때문이다. 성공, 번창, 맛있음(없음), 만족, 실망, 의외, 놀람, 기쁨, 슬픔… 이렇듯 다양한 희로애락의 감정을 단 한마디 ‘대박’으로 뭉뚱그리지 말라며 단속하기 위해서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나의 언어의 한계는 나의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했다. 말과 글은 곧 그 사람의 품격을 거울처럼 담아내기에 낱말의 다양한 활용은 중요하다. 빈약한 어휘는 메마른 땅이고 풍부한 어휘는 기름진 땅이다. ‘말밭’이 비옥해야 거기서 움트고 자란 열매가 튼실하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사리
지난 주말에 외식을 했다. 우리 식구가 찾아간 곳은 김치찌개로 유명한 집. 뭘 먹을까 주저할 일이 없었다. 자리 잡자마자 김치찌개를 주문하니 아내가 혼잣소리처럼 한마디 한다. “또 값이 올랐네….” 김치찌개 1인분에 6500원. 살림하며 느끼는 체감물가는 엊그제 물가당국의 발표로 확인되었다. 김치찌개 값은 1년 전보다 7.3%가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갑절 가까이 오른 셈이다. 새로 붙인 가격표가 밉살스러워서일까, 무심히 보았던 차림표가 왠지 낯설게 다가왔다. 물가 상승 탓? 아니, ‘허리케인 박’ 때문이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그녀. 없는 돈에도 이것저것 주문했건만, 그녀는 먹지 않고 딴 곳만 바라본다. 그녀 시선 머무는 곳은 뮤직박스, 그 안의 ‘허리케인 박’이다. 디제이 디오시(DJ. DOC)가 노래한 안타까운 삼각관계는 ‘신당동 떡볶이 집’에서 얽힌다. ‘라면사리’와 ‘쫄면사리’는 물론이고 ‘만두사리’에 ‘계란사리’까지 있는 ‘신당동 떡볶이 집’. ‘허리케인 박’이 앞가르마 넘기는 집에 있는 엉뚱한 메뉴가 김치찌개 집 차림표에도 있었다 ─ ‘고기사리 4000원’. 그러고 보니 부대찌개 집에는 ‘베이컨사리’, 철판볶음밥 집에는 ‘치즈사리’, 닭갈비 집에는 ‘고구마사리’에 ‘닭사리’도 있었다. 사리는 ‘국수, 새끼, 실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뭉치’ 또는 ‘그 뭉치를 세는 단위’(<표준국어대사전>)이다. 식당에서 주문할 때 “냉면 하나 추가”하면 냉면 ‘한 그릇’을, “냉면 사리 추가”하면 ‘똬리 튼 냉면 한 뭉치’를 내온다. 하지만 떡볶이 집의 “만두사리”, 김치찌개 집의 “고기사리”는 ‘(만두나 고기) 추가’의 뜻으로 통한다. ‘(한 사람이 먹을 만큼의) 삶은 국숫발’을 뜻하는 사리가 어쩌다 사리(事理)에 어긋하게 되었을까. ‘사리’가 ‘추가’의 뜻이 된 건 원뜻 살피지 않는 말글살이 탓이다. ‘계란사리’ ‘고기사리’처럼 음식점 차림표에 제 뜻에 어울리지 않게 적힌 ‘사리’는 ‘추가’로 바로잡을 일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억지조어
"멋지君, 야한 girl, ○○ 속에 多있다" "○○주에 美치다" "水준이 다르다"-. 최근 지하철에서 본 광고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신세대의 감각에 호소하는 듯한 광고 문구다. 기발한 착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런 억지 조어는 우리말을 왜곡하는 행위로 역기능이 적지 않다.
한자는 뛰어난 조어력을 가지고 있다. 한자를 적당히 조합하면 그럭저럭 뜻이 통하는 새로운 말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즉 외환위기를 ''환란(換亂)''으로 간명하게 표기해 일반화한 것이 좋은 예다. 하지만 위에서와 같이 광고 문구나 신문 제목 등에서 가끔 보이는 억지 조어는 우리말 파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정리해고 男存女悲" "세 사람 同床三夢" "쇼핑몰愛 빠졌다" "떠도는 돈 경매路 몰린다" "그리움 속으路" "성과급 富럽다" "오늘은 美쳐라" "유비무韓, 우리는 방심 안 한다" "技막힌 佛운" "濠好 아줌마, 반가워요!" 등이 이런 억지 조어다. "We-心心Free" "酒Go 걸리Go 酒Go" "Young원한 오빠" 등처럼 요즘은 영어까지 동원된다.
이런 억지 조어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시선을 끌 수는 있지만, 결국은 우리말 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 등 한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터넷상의 언어 파괴와 더불어 우리말을 가벼이 여기게 하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번득이는 재치가 있다면 억지 조어보다 세련된 우리말 표현을 찾는 데 머리를 쓰는 게 낫겠다.
쌍둥밤 / 쌍동밤
조율이시. 차례에 쓰이는 과실을 상에 올릴 때 왼쪽부터 대추, 밤, 배, 감의 순으로 차린다는 뜻이다. 과실이 품은 씨의 수에 따라 감보다 배를 먼저 놓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율곡의 ''격몽요결''엔 율조시이로 돼 있는 등 지방이나 가정에 따라 그 순서는 조금씩 다르다.
제사상에 올릴 밤을 까다 보면 한 껍데기 속에 두 쪽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런 밤을 가리켜 흔히 '쌍둥밤'이라고 한다. 생김새가 똑같은 쌍둥이를 떠올려 "얘야, 예로부터 쌍둥밤은 사이좋게 나눠 먹는 거라고 했단다"처럼 쓰는 사람이 많지만 '쌍동밤'이라고 해야 맞다.
'쌍동(雙童)'과 '밤'이 합해진 말인 '쌍동밤'은 그러한 성질이 있거나 그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둥이'가 붙은 '쌍둥이'와는 그 구조가 다르다. '-둥이'가 붙어 이뤄진 말이 아니므로 '쌍둥'으로 적어선 안 된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밤/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오탁번의 '밤')와 같이 써야 한다. 쌍동아들.쌍동딸.쌍동중매.쌍동바람꽃도 마찬가지 형태다.
간혹 "독일산 밤은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속껍질이 과육 내부로 파고들어 간 쪽밤이 많아 한국에서처럼 삶아서 찻숟가락으로 파먹는 게 힘들다"처럼 쌍동밤을 '쪽밤'으로도 쓰지만 아직은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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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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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 윤진화
누군가의 말처럼 실패한 혁명의 맛에 동의한다 타오르는 청춘의 맛도 껴다오 우리의 체온을 넘을 때까지 우리는 혁명을 혁명으로 첨잔하며 동트는 골목길을 후비며 절망과 청춘을 토해내지 않았던가 거세된 욕망을 찾던 저, 개봐라 우리는 욕망에 욕망을 나누며 뜨거운 입김으로 서로를 핥지 않았던가 삶이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더라도 집으로 가는 길은 명징하게 찾을 수 있다 혁명과 소주는 고통스러운 희열을 주는, 잔인하게 천진한 동화와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오욕(汚辱)을 죄 없는 망명자처럼 물고 떠돈다 누군가의 말처럼 다시는 도전하지 말 것에 동의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망각할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소주의 불문율이란 투명하고 서사적인 체험기이므로 뒤란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 사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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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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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레옥잠 - 최지향
보라색 최고 극점
부드럽고 순결한 꽃
하루피다 사라지는
부레옥잠 꽃이여
자연이 있는 그대로
내려앉아 있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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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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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밭 - 이무일
쭉- 쭉- 그 좋게 쏟아지던 빗물 너무 너무 꼿꼿이 앉아 다 흘려 보내 놓고,
산은 왜 나무들처럼 하늘을 찌르는 저 큰 미루나무처럼 -쑥 -쑥 산은 왜 물을 빨아올리지 못하는가?
발 아래 강이 흘러도 발 아래 푸른 강이 흘러도,
지금 비탈밭은 목이 마르다.
강까지 뿌리 뻗을 재주가 없어 비탈밭 콩잎들처럼 나도 목이 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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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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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1 - 임어당
제1장 깨우침
2. 의사과학적 공식
이상과 같은 생활 철학을 낳은 중국인의 마음의 구성을 탐색하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생활 철학이란 위대한 현실주의, 충분하지 못한 이상주의, 강한 유우머 감각, 그리고 자연과 인생에 대한 고도의 시적 감수성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는 인류의 발전을 이루는 두 가지의 크나큰 힘이다. 인간성이라는 진흙은 이상주의라는 물로 부드럽게 반죽되어 어떤 모양으로든지 마음대로 모양이 바뀔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흙이 흙으로 굳어져 있는 까닭은 결국 그 흙 자체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정기로 증발하고 말지 않겠는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힘은 모든 인간적 활동, 다시 말해서 개인적 사회적 국민적 활동 속에서 서로 끌어당기며 진실의 발달은 이 두 가지 성분이 알맞게 고루 잘 섞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진흙은 이상적인 형태로 바꾸기가 자유롭고 세공하기 쉬운 상태에 놓여져 있다. 절반은 축축하게 젖었고 절반은 말라서 단단하지도 않고 다루기가 힘들지도 않으며 또한 녹아서 진탕이 되어 버리는 일도 없다. 가장 건전한 국민, 이를테면 영국인 같은 국민들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를 알맞은 비율로 가지고 있다. 그것을 흙으로 비유하면 진흙은 너무 단단해져서 조각가가 세공하기에 알맞은 정도를 지나쳤다고 하는 일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형태를 보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질척한 것도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세계의 나라들 가운데는 언제나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나라가 있는데 그것은 아직 알맞게 조화되어있지 않은 외국 사상이라는 액체가 진흙 속에 들어가 그 진흙 자체가 모양을 보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막연하여 비판력이 없는 이상주의는 언제나 웃음거리의 원인이 된다. 지나치게 그것이 많으면 인류에게 있어 위험한 경우가 있다. 공상적인 이상을 헛되이 쫓아다니다가 결국은 아무런 이로운 점도 없어졌다는 것이 그 결과이다. 어떤 사회나 민족 가운데 그러한 환상적 이상주의자가 너무 많으면 틀림없이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말 것이다. 인간 사회라는 것은 바라는 바가 너무도 많은 부부와도 같은 것이어서 일정한 장소에 살아도 곧 싫증이 나서 석 달에 한 번은 반드시 이사를 하지 않으면 못 배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사를 하는 것도 그 이유인즉 어떤 장소도 이상적이 못되고 자기가 살지 않는 곳은 다만 자기가 살지 않으니까 좋게 보인다는 매우 간단한 것이다. 그러나 퍽 다행스러운 것은 사람에게는 또 유우머를 이해하는 힘이 주어져 있으며 그것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꿈을 비판하고 그 꿈을 현실 세계와 접촉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이 꿈을 꾼다는 것은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꿈을 웃으며 바라볼 수 있다는 것도 또한 필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크나큰 능력이다. 더우기 중국인은 충분히 이 능력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인류의 진보와 기구와 그 역사적 변천을 나타내는 공식에 관해서 가끔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현실 - ㄲ = 동물 현실 + 꿈 = 심통(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이상주의) 현실 + 유우머 = 현실주의(보수주의라고도 한다) 꿈 - 유우머 = 광신 꿈 + 유우머 = 환상 현실 + 꿈 + 유우머 = 예지
그러므로 예지, 바꾸어 말하면 최고형의 사고 방식은 우리들의 꿈 또는 이상주의를 현실 그 자체에 뿌리박은 우수한 유우머 감각으로 부드럽게 하는 점이 있다. 이상은 의사과학적 공식의 수박 겉핥기의 모험적 시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지만, 우리들은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여러 국민의 성격을 해부해 보기로 하자. 내가 <의사과학적>이란 말을 쓴 것은 인간계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이나 인간의 여러 가지 개성과 관계 있는 것을 표현하려는 모든 죽은 공식이나 기계적인 공식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계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을 엄정한 공식에 뜯어 맞추려고 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벌써 유우머 감각을 잃고, 그렇기 때문에 또한 지혜가 결핍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내 말은 세상에서 이러한 일이 행해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은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의사과학적인 것이 오늘날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까닭은 여기에 있다. 심리학자는 사람의 IQ 또는 PQ(작업 지수의 따위)를 규정할 수 있으나 그것은 극히빈약한 세계다. 다시 말해서 전문가들이 모여들어서 자기의 전문과는 전혀 다른 인간학을 그 수중에 넣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은 그 어떤 의견을 밝히는 간편한 도해적 방법에 지나지 않는 것을 인정하고 상품의 광고 수단으로서 과학이라는 신성한 이름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한 아무 폐해도 없는 것이다. 아래에 드는 것은 몇몇 나라의 국민성을 표시하는 나의 공식인데 그것은 전혀 나 한 개인의 것으로, 입증이니 증명이니 하는 것은 전혀 할 수 없다. 많은 통계적 사실이나 계수에 의하여 자기의 의견을 실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 한 누구나 내 공식을 논의하고 변경하거나 또는 독자 스스로의 공식을 덧붙여도 괜찮다. 여기서 <R>은 현실(또는 현실주의)이라는 뜻, <D>는 꿈(또는 이상주의)이라는 뜻, <H>는 유우머 감각, 그리고 중요한 요소를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겠는데-<S>로서 감수성을 나타내는 약자로 해두겠다. 또한 4는 <비정상적으로 고도>라는 뜻, 3은 <고도>라는 뜻, 2는 <충분>, 1은 <적다>라는 표시이다. 이렇게 해서 몇몇 나라의 국민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아래와 같은 의사과학적 공식을 얻었다. 인간과 인간 사회는 그 구성을 달리함에 따라 각각 다른 행동을 한다. 그것은 마치 황산염과 황화물 또는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가 서로 다른 작용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가 언제나 흥미를 느끼는 것은 인간 사회나 국가가 같은 조건 아래에 있으면서 그 얼마나 다른 행동을 하는가를 관찰하는 일이다. 화학작 명칭처럼 <유모라이드>니<유모레이트>니 하는 말을 말을 발명할 수는 없으니까 다음과 같은 식으로 표시하기로 하자. 즉 <현실주의 3개, 꿈 2개, 유우머 감각 2개, 감수성 1개를 합치면 영국인이 된다>는 식으로. 이 식으로 나가면,
R3 D2 H2 S1-영국인 R2 D3 H3 S3-프랑스인 R3 D3 H2 S1-미국인 R3 D4 H1 S2-독인인 R2 D4 H1 S1-러시아인 R2 D3 H1 S1-일본인 R4 D1 H3 S3-중국인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인도인, 그 밖의 국민에 관해서는 나는 그다지 잘 알지 못하니까 그 국민적 성격의 공식을 시도할 수 조차도 없다. 또 앞에 든 공식은 보는 바와 같이 위태롭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언젠가는 내 머리 위에 비난의 폭풍우가 떨어질 것을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아마 이러한 공식은 권위가 있다고 하기보다는 남을 성나게 하기에 족한 정도일 것이다. 장차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또 새로운 인상이 생기게 되면 나 한 개인의 소용을 위하여 이러한 공식들을 점점 변경해 갈 것을 약속해 둔다. 우선 현재로서는 가치가 있다고 할 뿐이다. 말하자면 내 지식의 진보와 무지의 간격을 나타내는 기록인 것이다. 여기에서 다소의 관찰을 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우머 감각과 감수성에 있어서는 중국인은 프랑스인에 가장 가깝다고 나는 보고 있는데, 이것은 프랑스인의 책을 쓰는 방법이나 식사하는 것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또 프랑스인의 한층 더 변덕스러운 성격은 중국인 이상으로 풍부한 이상주의에서 온 것으로 그것은 추상적 관념을 좋아한다는 형체로 나타나 있다.(문학, 예술, 정치, 운동 따위에 있어서의 그들의 선언문을 상기해 봄이 좋다)
중국인의 현실주의는 R4니까 이것으로 보면 중국인은 가장 현실적인 국민이라는 셈이다. 인생의 규범이나 이상에 대한 중국인의 생각은 그 무엇인가에 방해되어 그다지 변화하지 않는다. D1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중국인의 유우머 감각과 감수성에 대해서 현실주의와 마찬가지로 많은 점수를 준 것은 아마도 내가 중국인과 너무 가까운 입장에 있어서 인상이 선명한 탓이리라. 중국인의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거의 증명할 필요조차도 없다. 중국의 산문이나 시, 그림의 모든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여 주고 있다. 일본인과 독일인은 비교적 유우머 감각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매우 비슷하다(두 나라 사람들의 전체적 인상이 그렇다) 그러나 어느 국민의 어느 특징에 대해서도 <제로>라는 점수를 준다는 것은 실제에 있어 불가능하다. 중국 국민의 이상주의에 대해서도 <제로>라는 점수를 줄 수는 없다. 결국은 모두가 다 정도 문제다. 어느 국민에 이러저러한 성질이 전혀 결여되어 있다고 단정하는 따위는 그 국민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일본인과 독일인에게 H0를 주지 않고 H1을 준 것인데 직관적으로 옳은 점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양 국민은 다른 국민보다 유우머 감각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정치적으로 고민하고 또 과거에 있어서도 그랬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프러시아의 추밀고문관은 얼마나 추밀고문관이라고 불리어지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 제복과 훈장을 그 얼마나 사랑했는가! <논리적 필연>(때로 <신성한> 필연이니<깨끗한> 필연이니 하고 불리는 수가 많다)만을 확신하게 되면, 즉 어떠한 종류의 목표의 주위를 밑돌지 않고 너무나 직선적으로 그 목표에 덤벼들려고 조급히 구는 경향에 빠지게 되면 사람은 때로 엉뚱한 곳까지 가 버리고 말게 되는 수가 많다. 논리적 필연성에 대한 신념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에 대한 신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믿고 그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려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인의 이상주의에 대해서 D3를 준 것은 그들의 이러한 성격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이상주의라고 해도 내용은 나라에 따라서 각각 다를 것이다. 저 유우머 감각이라는 것도 실제로는 매우 범위가 넓은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는 흥미 있는 상관 관계가 있어서 다같이 3이라는 좋은 점수를 주었다. 그리고 이 사실이야말로 미국인의 정력적 특성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미국인적인 이상주의란 무엇인가 하는 이 문제는 오히려 미국인으로 하여금 찾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미국인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무슨 일인가에 열중하고 있다. 이 이상주의의 대부분은 매우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미국인이 훌륭한 이상이나 언어에 감동되기 쉽다는 의미에서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그 중에는 지레 짐작에 지나지 않는 것도 있는 것이다. 미국인이 말하는 유우머라는 것은 대륙에서 말하는 의미의 유우머와는 뜻이 다르다. 그러나 나는 실제로 생각하는 것이지만 독자들이 잘 아는 바와 같은 예의 그 미국적 기질, 즉 익살을 좋아하는 기질이나 타고난 풍부한 상식, 그러한 것은 미국 국민의 가장 큰 자산이다. 장차 위기 변동이 닥쳐올 때 저 제임스 브라이스(1838 - 1922,영국의 사학가, 외교관, 옥스퍼드 대학교수, 하원의원을 거쳐 주미대사를 지냈음)가 말한 것처럼 풍부한 상식이 미극인에게는 긴요한 것이다. 이것이 있음으로써 미국인은 위기를 뚫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국인의 감수성에 대해서는 좋지 못한 점수를 준다. 왜냐하면 미국인은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해서 꽤 둔감한 것 같은 인상을 나에게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다툼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국 말꼬리를 잡아 말다툼을 하게 될 터이니까. 영국인은 전체적으로 보아서 가장 건전한 민족인 것 같다. 시험 삼아 영국인에게 내가 준 <R3 D2>와 프랑스인에게 준 <R2 D3>를 비교해 보라. 나는 단연 영국인 편을 든다. <R3 D2>는 안정감을 의미한다.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공식은 <R3 D2 H3 S2>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도를 지나친 이상주의나 감수성은 모두 좋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나는 영국인의 감수성에 대해서는 S1라는 점수를 주었는데 이것이 너무도 나쁜 점수라고 한다 해도 그 비난을 받을 사람은 영국인 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대체 영국인은 사물에 민감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를테면 기쁨, 행복, 노여움, 만족 같은 느낌을 영국인은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제 새삼스럽게 논의한다는 그것부터가 벌써 어리석은 일이다. 보라, 영국인은 언제 어떠한 경우라도 단연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이와 같은 공식이 작가와 시인에게도 매일반으로 적용된다고 생각하며 몇 사람의 저명한 인물형을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셰익스피어-R4 D4 H3 S4 하이네-R3 D3 H4 S3 쉘리-R1 D4 H1 S4 포우-R3 D4 H1 S4 이백-R1 D3 H2 S4 두보-R3 D3 H2 S4 소동파-R3 D2 H4 S3
이것은 붓이 가는 대로 쓴 것에 불과하다. 모든 시인에게는 분명히 고도의 감수성이 있다고 한다. 사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시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앨런 포우는 불가사의한 공상적인 상상력을 가진 건전한 천재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는 추리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중국의 민족성에 대한 나의 공식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된다.
R4 D1 H3 S3
이 공식에서 고도의 감수성를 나타내는 S3에 관해서 우선 생각해 보겠는데, 이것이 있음으로써 중국인은 상당히 예술가적인 태도로 인생을 친할 수 있고 지상의 생활은 아름다우며 따라서 인생을 깊이 사랑해야 한다는 확신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는 그 이상의 의의가 있다. 그것은 실제에 있어서 중국인은 예술가적 태도로 철학에까지 친근성이 있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또한 중국의 철학자의인생관은 그 본질에 있어 시인적인 인생관이어서, 중국에서는 철학은 시로 이어지는 것으로, 유럽에서와 같이 과학에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내가 말하려는 바를 음미해 준다면 인생의 애락과 그 색채의 변천에 대한 중국인의 고도의 감수성이 있음으로써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밝은 철학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뚜렷해질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버리는 봄의 애상을 가슴 깊이 느끼는 데서 오는 것으로, 인생에 대한 미묘하게도 다정한 감각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는 꽃을 애처롭게 생각하는 다정한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우선 애수와 패배의 감회가 있고, 그런 다음에 그 옛날의 노회 철학자의 각성과 홍소가 있는 것이다. 반면 중국인에게는 강한 현실주의를 나타내는 R4가 있다. 이 R4는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즉 덤불 속의 두 마리 새보다 손 안에 있는 한 마리의 새가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현실주의라는 것은, 인생은 덧없으면서도 아름답다는 에술가의 확신을 더욱 굳게 해주기도 하고 보충해 주기도 하는 것으로, 그들이 인생으로부터 완전히 도피해 버리려는 태도를 구해 주고 있다. 몽상가는 말한다. <인생은 한 마당의 꿈이다>라고. 그러면 현실주의자는 이에 대답한다.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이 꿈을 되도록 아름답게 살아 보자>고. 그러나 잠에서 깨어난 자의 현실주의는 시인의 현실주의이지, 사업가의 현실주의는 아니다.
노회 철학자의 홍소는 이미 머리를 처들고 턱을 내밀고 노래를 부르며 성공에의 길을 돌진하는 저 저돌적인 청년들의 홍소는 아니다. 그것은 보기 좋게 자란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인자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노인의 홍소다. 그러한 몽상가는 평화를 사랑한다. 아무도 꿈 때문에 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 몽상가들과 더불어 합리적이고도 보다 나은 생활을 하려고 한층 더 열성을 기울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생의 격한 긴장감은 누그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주의적 감각의 주요한 작용은 필요치 않은 것을 모두 생활 철학으로부터 몰아내 버리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공상의 날개를 타고 공상적인 아름다운 몽환 세계로 날아가는 것은 좋으나 지나치게 나가서 가공의 세계로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말하자면 인생의 목덜미를 잡아 누르는 그러한 작용이 현실주의인 것이다. 결국 인생의 예지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배제하는 데 있고, 여러 가지 철학 문제를 바로 다음과 같은 몇 개의 것으로 줄여 버리는 것이다. 즉 가정의 즐거운(남편과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게), 생활의 즐거움, 자연의 즐거움, 인류 문화에 접촉하는 즐거움으로 단순화 하는 것과 그밖의 모든 방면이 다른 과학적 훈련이나 무익한 지식 추구 따위를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중국의 철학자에게는 인생 문제란 아주 그 수가 적고, 단순한 것이되고 만다. 그것은 또 형이상학에는 참을 수 없게 되었다는 증거이며, 인생 그 자체의 실제적 의미를 조금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지식의 추구에 견디어 내지 못하게 된 증거이다. 그것은 또한 지식을 얻거나 물건을 얻는 데 있어서 모든 인간적 활동은 우선 인생 그 자체에 비추어 보고 그 필요성의 여부를 물어야 할 것이며, 생활의 목적에 효용이 있느냐 없느냐를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듭 말해두거니와 여기서 중대한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으로, 산다는 것의 목적은 그 어떤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니라 바로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중국인은 이와 같은 현실주의를 나면서부터 지니고 있어 논리나 이지 그 자체에 대해서 깊은 의혹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서 철학은 인생 그 자체에 직접 결부되는 긴밀한 감정의 문제가 되는 것이어서 어떠한 체계에 얽매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굳건한 현실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연한 동물적 감각이어서 이성 그 자체를 부수어 이해하기 힘들고, 완미한 철학 체계가 출현하지 못하게 하는 사려 분별이다. 중국에는 유교, 도교, 불교의 세 종교가 있어서 그 모두가 굉장히 큰 조직을 가지고는 있지만, 중국인 특유의 강인한 상식은 그 어느 종교도 미력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인생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평범한 문제로 이 세 종교를 끌어내려 버리고 말았다. 대체로 중국인은 지나치게 외곬으로 생각하려고 들지 않으며, 어느 단일적인 관념이나 신앙이나 또는 철학의 학파를 진심으로 믿으려고 하지 않는 인간이다. 공자의 어떤 친구 하나가 자기는 행동을 하기 전에 언제나 세 번 생각한다고 말했을 때 공자는 재치있게 대답했다. <두 번이면 족하다>고. 철학의 한 학파를 받드는 학도는 철학의 한 연구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인생의 학도다. 아니 어쩌면 그 스승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문화와 철학에서 결국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중국인은 유럽인보다도 자연과 어린아이에 가까운 방법으로 생활하고 있다. 거기에는 본능과 정서가 자유로이 해방되어 있고, 지적 생활에 대항하여 감각 생활이 고조되어 있다. 육체에의 집착과 자존 정신, 시원한 예지와 어리석을 정도의 쾌활함, 대단한 궤변력과 어린이와 같은 소박함, 이러한 것들이 기묘하게 서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중국 철학의 특질은 다음과 같은 세 점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첫째로 인생을 모두 예술로서 보는 천부의 재능, 둘째로 단순 철학에의 의식적 회귀, 세째로 중용적 생활의 이상, 이 마지막 산물은 좀 이상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농민이면서 방랑자인 시인에 대한 숭배를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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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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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2. 예언자 - 칼릴 지브란
시간에 대하여
그러자 다음엔 천문학자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시간에 대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잴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시간을 재려고 한다. 그대들의 행위를 시간과 계절에 맞추려 하고, 심지어는 그대들의 영혼의 길마저 인도하려 한다. 시간을 강물로 만들어, 그 둑에 앉아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내부의 영혼은 시간의 영원을 깨닫고 있다. 그리하여 어제는 단지 오늘의 추억이고, 내일은 오늘의 꿈이란 것을 안다. 그리하여 그대들 속에서 노래하고 명상하는 것은 아직도 허공에 뿌려지던 최초의 순간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대들 중에서 무한한 사랑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 이는 그 누구인가? 또 누가 아직 그 사랑을, 비록 무한함에도 존재의 핵심에 둘러싸여 사랑의 생각에서 생각으로 움직이지도 않으며, 사랑의 행위로부터 다른 사랑의 행위로 움직이지도 않는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가. 사랑이 그렇듯 시간도 무한하며,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 것. 그러나 그대들의 생각으로 계절에 맞추어 시간을 재야겠다면, 각 계절로 하여금 다른 모든 계절들을 둘러싸게 하라. 그리하여 오늘로 하여금 추억으로써 과거를, 동경으로써 미래를 포옹하게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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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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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심리 - 김성태
첫째 묶음 - 생활 속의 심리
능률적 기억법
복잡한 현대 문명은 우리에게 많은 지식의 기억을 요구한다. 그러나 시간과 능력에는 한정이 있으니 무한정하고 많은 지식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가장 필요한 것만을 골라서 쉽게 빨리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한정된 시간과 노력으로 어떻게 하면 필요한 지식을 능률적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말해 능률적인 기억법이라고 해도 무슨 비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능률적인 기억법은 곧 능률적인 학습법이다. 잘 학습한 것만이 오랜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이제 능률적인 학습법에 의거해 기억을 잘할 수 있는 몇 가지 요령을 적어 본다.
첫째, 왕성한 의욕을 가지고 배운 것은 잘 기억된다. 근본적으로 의욕이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강한 의욕에서 빠르고 완전하게 학습한 것은 잊혀지지 않고 오래 기억된다. 강한 의욕은 흥미를 북돋아 주고 또 흥미가 있을수록 학습에 더욱더 열중하게 되므로 빠르고 확실하게 머리 속에 새겨져 기억에 오래 남는다. 둘째, 뚜렷한 심상으로 형성된 바를 학습한 것은 잘 기억된다. 어떠한 내용이든 그것이 지니는 특징들을 잡아 그들을 간단한 도식으로 논리화, 시각화하여 머리에 아로새길 때 그 심상은 잊혀지지 않는다. 학습 대상이 논리적이고 의미가 있을 때, 또는 전체를 조직화하고 도식화할 때 학습이 잘 되기 때문이다. 시청각 교육에서 영화가 효과 있다는 것도 이것이 도식화, 시각화의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셋째, 이미 학습된 확고한 사실들과 연관지어 배우면 잘 기억된다. 어떠한 분야의 대가는 자기 분야의 저작을 간단히 통독하기만 해도 그것을 완전하게 파악하여 오래 기억하지만 낯선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불과 20분 동안에 200개의 숫자로 된 계열을 완전히 암송해 내는 특출한 사람의 비법의 예에서 보면, 몇 개의 숫자 음을 자기가 자란 고향의 정경으로 전환시켜서 외운다는 것이다. 잘 모르는 외국어의 경우에도 자기가 익숙한 광경으로 그 단어를 음역화 하여 쉽사리 암기하는 예도 있다. 넷째, 리듬을 붙여 학습하면 잘 기억된다. 노래의 가사가 쉽사리 암기되고, 입학 시험 준비에 바쁜 고등학생들이 많은 학과 내용을 거의 다 기억해 내는 것은 그들이 리듬이 붙을 정도로 반복해서 기억한 덕분이라고 본다. 다섯째, 같은 시간에 학습하더라도 연속적으로 한번 학습한 것보다 나누어 여러 번 학습한 것이 더 잘 기억된다. 이른바 집중 학습과 분산 학습의 효과적 차이를 말한다. 특히 내용이 어렵거나 각 부분이 알쏭달쏭한 것은 분산 학습이 효과가 있다. 전후해서 배운 것들이 서로 억제 작용하는 것을 없애기 위해 휴식은 유효 적절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학습 후의 휴식은 망각을 줄일 수 있다. 특히 학습 후 바로 수면을 취하면 배운 것의 망각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망각을 "배운 후 바로 다른 것을 배움으로써 소급적으로 방해받아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괴상한(?) 역설이 참된 뜻을 갖는다. 수영은 겨울에 학습되고, 스케이트는 여름에 습득된다. 여섯째, 되는 대로 배워 가는 것보다 자주 암송하며 배우는 것이 기억을 돕는다. 암송은 학습을 도울 뿐만 아니라 기억을 오래 유지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얼굴이나 이름을 익히는 데는 만날 때마다 이름을 외우는 것이 좋다고 한다. 만나서 인사할 때 그저 "안녕하십니까?"라고 하지 말고, "김00씨 안녕하십니까?"로 버릇들이면 이름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다고 한다. 번번이 이름을 붙여 가며 인사하는 것이 일종의 암송 역할을 한다. 일곱째, 내용이 긴 것일수록 먼저 전체를 개관하고 그 다음에 세부를 학습하는 것이 이해가 빠르고 기억도 잘된다. 전체 학습법과 부분 학습법으로 단계를 나누어 학습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이는 전체의 도식을 파악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세부를 배우는 것이 조직화, 도식화를 돕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독서법도 통독과 정독으로 단계화하는 것이라든지, 친절한 저자가 시작이나 끝부분에 개요를 붙여 주는 이유도 이해할 수 있다. 요컨대 기억술에도 왕도는 없다. 빨리 완전하게 학습할 때, 그 내용은 오래 기억된다.
"196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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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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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껍데기와 알맹이의 차이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한 현자가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도대체 그의 지식은 바닥이 날 것 같지 않을 만큼 방대했다. 그런데 그의 모든 지식은 신성한 그의 방에 보관되어 있는 두꺼운 한 권의 책에 출처를 두고 있었다. 그가 종종 그 책을 보곤 한다는 것을 제자들은 알고 있었다. 그 현자는 아무도 그 책을 펼쳐보지 못하게 했다. 그가 죽자, 그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주위의 사람들은 그 책을 차지하려고 조바심이 나서, 달려가 그 책을 열어보았다. 그들은 그 책의 단 한 페이지에만 글이 적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놀라고 당황하고 또한 크게 실망하였다. 그리고 그 문구의 의미를 해독하였을 때 그들은 격분하기까지 했다. 그 문구는, "껍데기와 알맹이의 차이를 깨달을 때, 깨달음을 얻으리라."였다.
- 너는 껍데기와 알맹이의 차이를 깨달을 때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껍데기란 너의 의식이며 알맹이는 너의 마음이다. 껍데기는 너의 존재이며 알맹이는 네가 축적해 온 지식들이다. 내용과 껍데기를 구별하게 될 때, 마음과 존재를 구별하게 될 때, 네가 껍데기라는 것을 기억할 때에만 너는 깨달을 것이며 변화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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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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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66. 만주족 지배의 전성기 - 강희, 옹정, 건륭(17세기 중엽~18세기 말)
청은 삼번의 난과 대만의 정씨 세력을 제압함으로써 마침내 중국을 완전히 그들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족들은 세게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며, 스스로 최고의 문화민족임을 자부했다. 그것은 중화의식으로 표현되었다. 문화수준이 낮은 소수의 이민족이 중국대륙을 통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러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고의 중국대륙 통치도 채 100여년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청은 250여년 동안 중국을 지배했다. 그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것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청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강희제(1662~1722), 옹정제(1723~1735), 건륭제(1736~1795) 시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삼번의 난'을 진압함으로써 중국을 최후로 통일한 시기는 성조 강희제 때다. 그는 대만의 정씨 정권을 굴복시켰으며 몽고를 공격하여 외몽고를 중국의 통치권 내에 포함시켰다. 강희제는 중국을 장악한 이후 한족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한족 지식인들을 청조의 통치체제에 참여시키고자 했다. 물론 많은 한족 지식인들은 이민족 지배하의 관리가 되기를 거부했다. 실제적으로 한족 지배층들의 참여 없이 넓은 중국대륙을 통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따라서 한족들을 관직에 등용함으로써 이민족 통치에 대한 한족의 반발을 무마하고 통치에도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고자 했던 것이다. 강희제는 명의 관리들을 대부분 그 자리에 머물게 했다. 최고위관직까지도 한족과 만주족을 같은 비율로 임명했다. 지방행정의 대부분은 한족들에게 위임하여 명대의 지방 지배층인 향신층의 지위를 계속 인정해주었다. 문자도 만주어와 한자를 같이 사용하게 했다. 그러나 황제에게 올리는 공식문서만은 만주어로 통일했다. 또한 강희제를 전국의 학자들을 모아 대대적인 편찬사업에 참여시켰다. 그래서 만들어진 책이 중국 최대의 자전이라고 할 수 있는 (강희자전)이다. 이 자전에는 약 5만여 자의 글자가 수록되어 있다. 그외에도 (대청회전) 등 엄청난 분량의 책들이 편찬되었다. 그 때 편집된 (고금도서집성)은 1만여 권일 정도로 엄청난 대작이었다. 강희제는 8세에 즉위하여 61년 동안 황제의 직위에 있었다. 그에게는 35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황태자로 지명되었으나 잘못된 행동을 많이 하여 황태자의 지위에서 밀려났다. 그후로 청조는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황제가 후계자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상자에 넣어 궁중에 보관하고 황제가 죽은 다음에 그 상자를 열어 후계자를 선포하게 했다. 이 방식은 이후 관습으로 굳어졌다. 옹정제는 황제의 후계자를 둘러싸고 파벌이 형성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후계자를 지명하는 대신 상자 안에 후계자 이름을 넣어두었다가 황제가 죽은 다음에 열게 하는 방식을 정착시킨 것이다. 옹정제는 새로운 통치기구로 군기처를 만들었으며, 지방관들에게 자세한 보고를 하게 하고 직접 그 보고서를 읽고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옹정제 때에는 한족에 대한 사상탄압 정책이 가혹하게 행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이 사상탄압을 '문자의 옥'이라고 한다. 즉, 글이 빌미가 되어 감옥에 가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한 것이다. 특히 만주족을 비방하고 한족의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사람은 어김없이 이 문자의 옥에 걸려들었다. 심지어는 실수로 잘못 쓴 글자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사상탄압은 만주족의 머리 모양인 변발을 강요한 것과 아울러 한족에 대한 강경책의 대표적인 예다. 예컨대 청은 한족 지식인들을 관직에 등용하거나 편찬사업에 동원하는 등으로 회유하기도 했지만, 변발을 강요한다거나 만주족을 비방하는 사상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등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정책으로 몽고에 비해 더 오래 중국을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옹정제의 뒤를 이은 건륭제 때에도 이런 청조의 정책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건륭제도 주변지역에 대한 정복활동을 계속했으며 편찬사업도 계속되었다. 이 시기의 편찬사업은 강희제 시기의 사업의 규모를 훨씬 능가했다. 이때 정리된 것이 (사고전서)다. 이것은 중국사상을 집대성한 것이다. 즉 경전, 역사서, 여러 학자들의 문집 등을 모은 것으로, 건륭제 때 10여년간에 걸쳐 정리되었는데 약 10여만 권이나 되었다. 이러한 대대적인 편찬사업은 청 황제들의 문화에 대한 애착의 결실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족 지식인들을 회유하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했다. 특히 전국의 서적을 모아 정리하는 것은 책들을 모두 검열하는 효과까지도 기대할수 있었다. 모은 책들을 모두 검토하여 청조의 입장에서 내용이 문제가 되는 책들은 전부 폐기처분했다. 무수히 많은 책들이 금서로 지정되었고 불에 타 사라졌다. 건륭제는 60년 만에 황제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태상황으로 물러났다. 이는 강희제의 61년을 넘기지 않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말까지 130여년간의 강희, 옹정, 건륭제 통치시기가 바로 청의 전성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미 건륭제 때부터 청조 내부에 서서히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태평성대를 지나면서 알게 모르게 관료들이 부패해가고 있었다. 건륭제 말기에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던 화신이라는 자는 건륭제가 죽은 후 처벌을 받아 처형되었는데, 그의 집에서 몰수된 재산은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가 권력을 이용해 모은 보물들은 황금 15만냥 등 무수히 많은 보석류 등이 수십 개의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청나라에서 20여년 동안 거두어 들이는 세금의 양과 맞먹을 정도여서 건륭제의 아들인 인종 가경제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화려하게 꽃피던 청의 내부는 이미 썩어들어가고 있었고, 19세기 초반에 들어오면 그 부패상이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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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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欲速不達(욕속부달) 欲(하고자 할 욕) 速(빠를 속) 不(아닐 불) 達(다다를 달)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는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거보( 父)라는 고을의 지방관이 되어 공자를 찾아와서 정치에 관하여 묻는 대목이 실려 있다. 공자는 자하의 물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을 빨리 하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돌보지 말아라. 빨리 하려고 들면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欲速則不達), 작은 이익을 돌보면 큰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欲速 이란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얼른 성과를 올리려는 성급한 마음을 말한 것이며, 欲速不達 이란 서두르면 도리어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말에는 급할수록 천천히 라는 표현이 있고, 영어에는 Haste makes waste. 나 More haste, less speed. 라는 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사람들의 조급한 심리를 경계한 표현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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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이글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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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2. 나폴레옹은 검은 고양이를 싫어했다.
예수의 생일이 12월 25일이었을까?
성스러운 날이며 축일인 오늘날의 크리스마스에는 몇 세기에 걸쳐 축적되어 온 여러 나라의 관습이 포함되어 있다. 칠면조 요리,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카드, 산타클로스, 교회의 종, 크리스마스 캐럴... 원래는 모두 다른 문화, 다른 사람들의 관습이었지만 이것이 한데 모여 크리스마스를 빛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12월 25일 이 날 그리스도가 태어났는지 어땠는지 아무도 모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12월 25일로 정하고 축하하게 된 것은 4세기 때이다. 당시 기독교에 적대하고 기독교의 존속을 위협하던 다른 종교의 제전을 어떻게든 없애려고 그리스도 교회가 지혜를 모아 짜낸 결과였다. 예수가 태어난 지 2세기 동안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을 아무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오히려 죽은 날이 중요하며 태어난 날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게다가 예수는 신성한 분이기에 보통 사람과 똑같은 의미에서의 탄생일을 운운하려 하지 않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마치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예수의 탄생일을 이것저것 캐내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초기 기독교는 여겼다. 그래도 심술궂은 몇몇 신학자들은 예수의 탄생일을 규명하려고 조사를 계속하였다. 그리고는 1월 1일, 1월 6일, 3월 25일, 5월 20일 중 하나라고 추정하였는데 특히 3월 25일과 5월 20일을 유력하게 생각했다.
누가 복음에 의하면 목자가 밤에 양을 지키고 있다가 구세주 탄생의 계시를 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목자가 밤에 양을 지킨다면 그것은 양이 어릴 때인 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이 어떻게 해서 12월이 되었는가? 교회가 강력하게 12월 25일을 예수의 탄생일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날이 기독교의 라이벌인 미트라교의 축일이기 때문이었다. 12월 25일은, 당시 로마인의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던 미트라교의 신자들이 태양의 신 미트라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날이었다. 미트라교는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어 기원전 1세기에 로마에 전해져 로마 최대의 종교로 성장하였고 274년에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국교로 정해졌다. 300년대 초에는 기독교를 적대시하는 미트라교의 세력이 갈수록 강해져 기독교의 존속이 위태로울 정도였다. 교회의 권력자들은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귀족이나 평민을 막론하고 로마인들이 축제를 좋아하는 것은 기원전 753년 전설상의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가 파라티노 언덕에 로마를 건국한 이래의 전통이다. 12월은 미트라 신의 탄생일을 기리는 축제 외에도 농경신 사투르누스에게 감사하는 축제도 열렸고, 축연과 퍼레이드가 계속되는 달이었다. 기독교 교회에도 반드시 12월의 행사가 필요했다. 이교도를 개종시키려면 개종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까지 벌였던 이교도 행사에 대신하는 것을 준비해야만 한다. 교회는 마침내 예수의 탄생일을 정식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예수의 탄생일은 미트라 교도에 대항하기 위해 12월 25일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의 탄생일은 진지하고 경건한 행사였다. 즉 예수에게 미사(mass)를 올리는 축제, Christ' Mass(크라이스트 마스=크리스마스)였다.
어느 신학자가 320년대에 크리스마스에 대해 쓴 기록을 보자. "우리는 이날을 성스러운 날로 축하한다. 이교도가 말하듯 이 태양이 탄생한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신 신이 탄생한 날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뭔가를 함께 축하함에 따라 생기는 심리적인 효과, 즉 계급을 초월한 일체감과 동료 의식, 결속의 강화를 사회학자가 지적한 것은 훨씬 뒤지만, 그것보다 훨씬 옛날부터 인간은 직관적으로 그 효과를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에서 크리스마스를 공식적으로 축하하게 된 것은, 337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례를 받고 기독교가 황제에 의해 정식으로 인정된 뒤였다. 354년 로마의 리베리우스 주교는 예수의 죽음뿐만 아니라 탄생을 성스러운 날로서 축하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12월 25일을 기독교 탄생일로 삼을 것을 새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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