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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17호
2011.10.27 (음 10.1)/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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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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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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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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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얼른 보기에는 창조와는 비슷하지 않은 것같이 보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어떤 깊은 의미에서 비슷한 것이다. - H. V. 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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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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륙, 육
여느 직장인들처럼 아나운서도 출근을 한다. 새벽이나 심야에 방송하는 이들은 한밤중인 오전 세 시에 출근하기도 하고, 밤을 꼴딱 새우기도 한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방송은 하루도 쉬는 날이 없으니까. 출근길 교통편도 다른 회사원과 다르지 않아 승용차를 탈 때도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있다. ‘시간이 생명’인 방송인에게 운행시간에 맞춰 수도권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전철은 아주 쓸모 있는 교통수단이다.
이렇듯 유용한 전철에 쓴소리 할 게 생겼다. 5, 6, 7, 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 안내방송에 아쉬움이 있어서다. “5678 서울도시철도”-로고송이다. 경쾌한 음악에 실려 나오는 숫자 발음은 [오육칠팔]. 아라비아숫자 ‘6’은 ‘여섯 륙’. ‘6’은 낱말 첫머리에서는 두음법칙에 따라 ‘육’으로 쓰고 읽지만, 그렇지 않으면 ‘륙’이다. 그래서 ‘5·16’은 ‘오일륙[오:일륙]’이고 ‘6·25’는 ‘육이오[유기오]’가 된다. 마찬가지로 ‘5~6[오륙]세’, ‘6~7[육칠]명’이라 하고, 구구단을 욀 때도 ‘9×6=54[구륙오:십사]’, ‘6×9=54[육구오:십사]’라 하는 거다. ‘서울도시철도’ 각 역 플랫폼의 안내방송처럼 6(륙, 육)의 제 표기와 소릿값을 찾아주면 좋겠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대중교통망은 세계 어느 도시와 견주어 봐도 참으로 훌륭하다. ‘[오륙칠팔] 서울도시철도’- 객차 내 안내방송도 그에 걸맞게 제대로 하면 더 훌륭해질 것이다. 오늘도 달리는 ‘서울도시철도’에 주마가편(走馬加鞭)하는 마음으로 건네는 제안이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방금
지난 수요일 서울 일부 지역에 함박눈이 내렸다. 눈발 너머 서녘 하늘로 저무는 햇살이 눈부셨다. 춘래불사춘, 삼월 중순의 날씨가 하 수상한 시절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주 터져 나온 ‘상하이 스캔들’과 ‘일본 대지진’ 소식에 더 그랬다.
각 방송사는 일본 지진 소식을 ‘뉴스특보’로 다루고 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생방송으로 분주해진 일본 특파원, 시시각각 들어오는 나라 안팎의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보도국 기자들. 지난 주말 오후의 라디오 뉴스 담당이었던 나도 덩달아 정신이 없었다. 일본 지진 소식을 한창 전하고 있는데 스튜디오의 문이 빠끔히 열리며 뉴스 한 꼭지가 들어온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하며 전한 속보는 ‘일본 원전 폭발’ 기사였다. 라디오 뉴스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보니 “방금 전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원자로가 폭발했다고…”(ㅎ방송) 하며 소식을 전한다. 퇴근길 교통정보를 알려주는 리포터는 “잠시 전 도로 상황은…”(ㅁ방송)이라 하기도 했고.
‘방금’과 ‘방금 전’, ‘잠시 전’ - 어떤 표현이 바람직할까. 위의 경우엔 ‘조금 전’이나 ‘방금’으로 하는 게 좋겠다. ‘방금’의 주된 뜻이 ‘말하고 있는 시점보다 바로 조금 전’이니 ‘방금 전’이라고 하면 ‘역전앞’처럼 ‘전’(前)이 거듭되기 때문이다. 다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방금 전에 난 소리’와 같은 용례가 있으니 ‘방금 전’의 쓰임을 인정할 수는 있겠다. ‘잠시’는 ‘잠시 전’이 아닌 ‘잠시 후(뒤)’처럼 써야 앞뒤가 어울린다. ‘잠시’는 ‘짧은 시간’ 곧 ‘잠깐’과 한뜻이니 그렇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강냉이, 옥수수
어릴 적 시골에서는 설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뻥튀기 아저씨가 동네에 나타나곤 했다. 뻥튀기 기계를 돌리는 아저씨 옆에는 옥수수, 쌀, 마른 가래떡 등의 자루가 일렬로 늘어섰고 구경하는 아이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간간이 "뻥이요!" 하면서 이어지는 "뻥" 소리에 귀를 막고 즐거워하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옥수수.쌀 등으로 튀긴 것을 보통 '뻥튀기'나 '튀밥'이라 부르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강냉이'라 일컫기도 한다. 옥수수로 튀긴 것만을 '강냉이'라 부르기도 하고, '쌀 강냉이' '떡 강냉이'처럼 종류와 관계없이 뻥튀기한 것은 모두 '강냉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옥수수'나 '강냉이'는 같은 말이다.
임진왜란(1592)이 일어나자 조선은 명나라에 원군을 요청했고 이여송이 이끄는 명나라 군대가 평양에 도착해 진을 쳤다. 이때 들어온 명나라 군사 중에는 양쯔(揚子)강 이남에서 차출된 사람이 많았는데 이들이 군량으로 가져온 옥수수가 민간에 퍼지면서 우리나라에 전해졌다고 한다. '강냉이'는 이렇게 양쯔강 이남인 강남에서 들어온 것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옥수수'는 수수 알갱이와 비슷하지만 그 모양이 옥처럼 반들반들하고 윤기가 난다고 해 '옥 같은 수수'라는 의미에서 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690년에 발행된 '역해유해'에는 '옥슈슈'라는 표기가 나오는데 '슈슈'는 '수수'의 옛말이다. 따라서 같은 물건(식물)을 두고 '강냉이'는 그것이 들어온 지역에서, '옥수수'는 그 생김새에서 유래한 말이다. 둘 다 표준어다.
강냉이와 옥수수가 같은 말이므로 '옥수수 강냉이' '쌀 강냉이' '떡 강냉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옥수수 뻥튀기(튀밥)' '쌀 뻥튀기(튀밥)' '떡 뻥튀기(튀밥)'라고 해야 한다.
면면이, 면면히
요즘 사극 열풍이 불고 있다.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사극 일색일뿐더러 시청률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의 사극이 왕궁 내의 암투를 주로 그렸다면 요즘 사극은 고구려.발해 역사, 음식 문화, 기녀 문화 등 다양한 소재로 역사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 하나.
㉠면면이/㉡면면히 이어 내려온 우리의 역사와 전통이 정말 자랑스럽다.
어떤 것이 맞는 답일까.
'면면이'는 '저마다 따로따로' '여러 면에 있어서'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부사다. "사극에 출연 중인 신인 연기자 면면이 이채롭다"와 같이 쓰인다. '면면이'에서 '면면'은 한자로 '面面(얼굴 면)'이므로 '얼굴마다=저마다'라고 생각하면 기억하기 쉽다.
'면면히'는 '면면하다'에서 파생된 부사다. '면면하다'는 '끊이지 않고 죽 잇따라 있다'는 의미로 "우리 민족은 불굴의 의지로 역경을 딛고 자랑할 만한 문화를 면면히 이어 왔다"와 같이 쓴다. 그러므로 문제의 정답은 ㉡.
사극 열풍은 우리 사회의 끊이지 않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보여 준다. 역사의 면면에 대한 이런 뜨거운 관심이 대한민국을 면면히 이끌고 내려온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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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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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사과 - 최금진
밤에 장막을 열고 나는 교회로 숨어들었다 네가 나의 계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낫처럼 휘어진 초승달이 나를 겨누고 있었다 교회문을 열면 삐걱, 안에서 누군가 나를 맞아들이는 소리 이빨 빠진 종지기 노인이 외눈을 흘끔거리며 웃었다 장막 뒤에 기다리는 황소의 혓바닥 같은 어둠이 나를 핥아 놓으면 그제야 정신이 들어 나는 품 안에 숨겨온 청사과를 꺼내들었다 사과나무 한 그루가 들어 있는 청사과 사과나무 숲이 들어 있는 청사과 너는 나의 사과나무 숲 그러나 너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 나는 따끔거리는 성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파랗게 불꽃이 일면서 연소하는 초승달 나는 나무 십자가에 가만히 나를 매달아 보았다 가지고 온 청사과를 우걱우걱 씹어 먹으며 나는 울었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사랑이니라 별들이 머리 위에서 파리 떼처럼 날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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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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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어 - 최지향
맑았다 흐리었다 쏟아지다 멈추었다 이렇게 변덕스런 것을 날씨라 하는가 하루를 꿰차고 앉아 있으니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돌돌돌 흘러가는 개울물 얼어 붙어 얼음 위 올라서서 파알짝 뛰어 보면 땅 윈지 물 위에 있는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머리 위 까만 새가 마당에 놀러왔다. 목과 몸의 색깔들이 물감을 칠해 놓은 듯 그림이 있어 이쁜지 새가 이뻐서 그리는지 알 수 없어
뒹구는 우리 개 복순이 귀여워라 내 아이 눈빛 같아 고운 마음 터져 나온다 사랑은 배우는 것인지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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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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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3 - 권정생
달팽이 마을에 전쟁이 났다.
아기 잃은 어머니가 보퉁이 등에 지고 허둥지둥 간다. 아기 찾아간다.
목이 메어 소리도 안 나오고 기운이 다해 뛰지도 못하고 아기 찾아간다.
달팽이가 지나간 뒤에 눈물 자국이 길게 길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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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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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6장. 작지만 확고한 행복을 나는 원한다
작지만 확고한 행복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깨끗한 팬츠가 쌓여 있다는 건 인생에 있어서 '작지만 확고한 행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쩌면 나만의 특수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바지를 미국식으로 '팬츠'라고 부르게 되었기 때문에, 이따금 그 안에 받쳐 입는 종래의 팬츠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를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영어라면 '언더 팬츠'가 되겠지만, 그러한 명칭이 뚜렷이 정착되어 있지 않은 일본에서는 그 바깥 팬츠와 안 팬츠의 혼란 상황이 혼미의 도(道)를 더욱더 깊게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언더팬츠' 모으기를 (물론 남성용이지만) 꽤 좋아한다. 때때로 직접 백화점에 가서, '이것으로 할까, 저것으로 할까?' 하고 망설이면서 대여섯 개를 한꺼번에 사기도 한다. 덕택에 옷장 서랍에는 상당히 많은 팬츠가 쌓여 있다. 서랍 속에 반듯하게 개켜진 깨끗한 팬츠가 쌓여 있다는 건 인생에 있어서 '작지만 확고한 행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쩌면 나 혼자만의 특수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혼자 살고 있는 독신자를 빼놓고는, 자신의 팬츠를 자기 손으로 직접 고르는 남자는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그다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속옷인 러닝 셔츠도 상당히 좋아한다. 산뜻한 면 냄새가 나는 흰 러닝 셔츠를 머리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그 기분도 역시 '작지만 확고한 행복' 중 하나다. 하지만 이것은 팬츠의 경우와는 달리 언제나 같은 메이커의 같은 제품을 한꺼번에 사들이기 때문에 골라서 사는 즐거움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남성의 경우 속옷이라는 장르는 여기서 딱 끝나버린다. 여자의 속옷이 커버하고 있는 광대한 범위와 비교한다면, 마치 집 장사 주택의 앞들처럼 좁고 간결하다. 팬츠와 러닝 셔츠 뿐이니까 말이다. 이따금 속옷에 대한 생각을 하면, 내가 남자로 태어나기를 잘했구나 하고 안도하게 된다. 만일 내가 지금과 같은 성격인 채로 여자로 태어낫다면, 속옷을 수납하기 위한 한구 개의 서랍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워크맨을 위한 진혼곡 -하나의 기계가 겨우 4년 만에 이렇게까지 진보할 수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니, '감개 무량'까지는 아니더라도 감탄할 만한 일임은 분명한 듯 싶다
4년 간 혹사를 당해 온 워크맨이 최근에 그 성능이 나빠졌기 때문에 신형을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한마디로 4년 간이라고 해도, 내 경우에는 매일 아침 조깅을 할 때 서포터로 워크맨을 팔에다 묶고 달렸으니까,소모 정도가 보통 사람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다. 그래서 정확히 표현한다면, '워크맨'이라기 보다는 '런맨'이 되는 셈이긴 한데, 하여간 4년 동안 불평 없이 땀투성이가 되고, 비를 맞고, 뒤흔들리고, 어떤 때는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탈없이 잘도 버텨 주었다고 생각한다. 기계를 전문적으로 받아 주는 절이라도 있으면 워크맨 공양이라도 올려 주고 싶을 정도다. '무라카미 주행 음악 동자'라는 법명이라도 붙여서 말이다. 오디오 가게에서 사온 두 번째 신형 워크맨은 첫 번째 워크맨에 비하면 훨씬 작고, 무게도 절반에 가깝고 게다가 오토리버스 기능까지 되고, 충전도 할 수 있다. 가격도 지난번 워크맨보다 싸다. 하나의 기계가 겨우 4년 만에 이렇게까지 진보할 수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니, '감개 무량'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감탄할 만한 일임은 분명한 듯싶다. 적어도 인간의(가령 나의) 진보의 스피드와 비교하면, 기계의 진보의 스피드는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에 감탄함과 동시에, '워크맨'이 과연 이렇게까지 진보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야 물론 하나의 기계가 값싸고 작고 편리해지는 것 자체에는 전혀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은퇴한 워크맨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까, '진보 안하고 이대로였어요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니까, 이 세상의 진보의 95퍼센트까지는 불필요한 것처럼 생각된다.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긴 하다. 어쨌든 간에 소니 워크맨 WM 여, 평안히 잠들라.
긴자센에서의 원숭이의 저주 -나는 비교적 자꾸 그런 착각을 한다. 판단력에 결함이 있는 데다가, 상상력이 저 혼자서만 앞질러 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모녀라고 믿어 버리면, 사실 여하와는 관계 없이......
얼마 전에 지하철을 탔더니, 맞은편 좌석에 모녀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잇는 두 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은 백화점의 쇼핑 백을 무릎에 얹고 앉아 있었는데, 얼굴이 꼭 쌍둥이처럼 닮았었다. 무료하던 차에 나는 '모녀간이라서 그런지 정말로 꼭 닮았구나. 틀림없이 저 아가씨도 나이를 먹으면 저런 아주머니가 될 거야' 하고 감탄하면서 힐끔힐끔 두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전철이 아카사카이쓰케 역에 정차하자, 나이 많은 쪽의 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재빨리 내려 버렸다. 요컨대, 그 두 사람은 모녀간이 아니라 그냥 우연히 옆에 앉았던 생판 모르는 타인들이었던 것이다. 나는 비교적 자주 그런 착각을 한다. 판단력에 결함이 있는 데다가, 상상력이 저 혼자서만 앞질러 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모녀라도 믿어 버리면, 사실 여하와는 관계없이 그 믿음이 혼자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도 그 두 사람이 '사실'은 진짜 모녀가 아니었을까 하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어떠한 사정이 있어서, 그 두 사람은 자기네들이 진짜로는 모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예를 들어 그 젊은 딸은 갓난애 때-가령 도쿄 올림픽이 있던 해에-숲 속에서 원숭이에게 납치되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딸기를 따 가지고 돌아왔을 때 갓난애의 모습은 이미 거기에 없었고, 털실로 짠 조그만 모자와 원숭이의 털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22년이 흘렀다. 딸은 여덟 살 때까지 원숭이의 손에서 자랐는데, 그뒤로는 마을로 나와 촌장의 집에서 지내면서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다. 오늘은 긴자의 마쓰야 백화점에 스테인리스 후추 용기를 사러 온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지하철에서 옆에 나란히 앉아도 그녀가 자기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원숭이의 저주는 아직도 그녀들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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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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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2. 예언자 - 칼릴 지브란
우정에 대하여
그러자 이번에는 한 젊은이가 말했다. 우정에 대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의 친구란 그대들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존재이다. 사랑으로 씨를 뿌려 감사로써 수확하는 그대들의 들. 또한 그대들의 식탁이며 아늑한 집이다. 그대들은 굶주린 채 친구에게로 와서 안식을 구한다. 그대들의 친구가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그대들은 자기만의 생각으로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렇지라는 말을 억제하지도 말라. 그가 말없을 때라도 그대들의 가슴은 그의 가슴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라. 말없이, 우정 속에서는 모든 생각, 모든 욕망, 모든 기대가 갈채받지 않아도 기쁨으로 태어나고 나누어지는 것. 친구와 이별할 때에도 슬퍼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들이 친구에게서 가장 사랑하는 점은, 그가 없을 때 더욱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마치 산을 오르는 이에게 산은 벌판에서 더욱 선명하게 보이듯이. 그리고 우정에, 영혼의 심화 외에 결코 어떤 목적도 두지 말라. 왜냐하면 자기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 외에 또다른 무엇인가를 찾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므로. 단지 던져진 그물에 지나지 않을 뿐. 오직 무익한 것만이 걸려드는 그물. 그러므로 그대들의 친구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 그가 그대들 마음의 조수의 썰물 때를 안다면 밀물 때도 알게 하라. 단지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찾는 친구, 그런 친구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언제나 시간을 알리기 위하여 친구를 찾아라. 그대들의 요구를 만족시킴은 곧 그의 요구도 만족시키는 것, 결코 그대들의 공허를 채우는 것은 아니기에. 그리하여 부드러운 우정 속에 웃음이 깃들게 하고 기쁨을 나누라. 하찮은 이슬방울 속에서도 마음은 아침을 찾아내고 다시 불타 오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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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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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심리 - 김성태
첫째 묶음 - 생활 속의 심리
도벽의 요인
제 집이나 남의 집 물건을 훔쳐내는 버릇은 어린 아이들에게 흔히 있다. 부모들이 자기 자녀의 이런 버릇을 숨기고 표면화시키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드문 현상처럼 보일 뿐이다. 어떤 경우에는 훔치는 일이 어린이들에게 재미난 유희로 되어 오히려 이것을 못하는 아이가 못난 아이로 취급되기도 한다. 사실 어린 아이들의 훔치는 버릇은 천진스럽고 때묻지 않은 행동으로서 잘 지도만 하면 된다. 이것을 부모가 지나치게 근심하고 잔소리를 많이 해 과대시 하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어린이들은 아직 사회화되지 않았기에 이들은 사회 규범에 적응해 가도록 적당히 이끄는 것이 더 타당한 조치라 하겠다. 그러나 훔치는 것은 나쁘다는 지각을 가질 만한 나이의 아동들이 그대로 도벽을 지닌다면, 이는 문제거리가 아닐 수 없다. 먼저 도벽 때문에로 부모나 교사를 괴롭히는 사례를 들면서 그 원인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국민학교 5학년에 다니는 남자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형과 여동생의 중간에 끼어 자란다. 지능은 보통 이상이며 성격은 약간 변덕스럽고 감정이 불안정한 편이다. 얼굴이 기형으로 코가 좀 찌부러져 있다. 이 아동은 거짓말을 잘하고 집에서 돈을 훔쳐다 동무들에게 나누어주며 즐거워하는 것이 문제다. 본인은 부모가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부모나 형제가 모두 밉고, 혹시 먹을 것이 있으면 저 혼자 먹어 버리고 싶다고 한다. 이 아동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동인이 작용된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는 성격적으로 이상이 있는 것 같고, 둘째로는 부모로부터의 애정이 다른 형제들에 비해 부족해 대신 동무들의 사랑을 얻으려고 돈을 훔치는 것이라여기며, 셋째는 외모의 기형에서 오는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해 남들이 못하는(훔치는) 일을 해서 자기를 과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이런 사례도 있다. 중학교 2학년의 15세 여자 아이의 경우다. 6남매 중 넷째 아이로 지능은 보통 이하며, 성격은 분열적 경향이 있고, 신체 이상은 없으나 다만 영양 실조가 심한 편이다. 이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의 전차표를 훔치다가 발각되었다. 전에도 종종 돈을 훔쳐서 그 돈으로 운동화를 사 신고는 이 사실을 친구나 가족들에게 자랑삼아 말하곤 했다 한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생선 장수로 늦게까지 일하고 밤늦게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와 주정하며, 어머니는 신병으로 늘 짜증만 부린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원인을 다음 세 가지로 추측한다. 첫째는 가정 환경의 빈곤 때문에 그 반감으로 도벽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며, 둘째는 부모에 대한 불만과 꾸지람에서 생긴 죄의식에 대한 속죄의 방편으로 벌을 청해서 받으려고 일부러 훔친다는 것이다. 셋째는 돈을 훔쳐 꼭 운동화를 산다는 점으로 보아 운동화에 대한 어떤 특수 사건이 과거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도벽은 어떤 충분한 동인이 있어 나타나는 것이지, 선천적으로 타고나 그런 짓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제 도벽을 갖게 하는 전형적인 동인을 일반적으로 생각해 보자.
문화 사회에서는 남의 물건을 무단히 훔치면 처벌을 가해서 그런 짓을 못하게끔 어려서부터 훈련시킨다. 그러므로 남의 물건을 훔칠 때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받게 된다. 양심의 가책이란 죄악감을 느끼는 것이다. 처벌받을 것을 예기하는 불안 상태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불안 상태를 피하려는 것은 인간이 지니는 아주 강한 욕구이기 때문에 이 불안 상태를 피하기 위해서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죄악감을 피하는 이러한 욕구보다 더 강렬한 욕구가 있어 이것이 훔치는 일로 충족될 수있다면, 도벽은 습관적으로 형성될 수도 있다. 이처럼 죄악감을 피하려는 욕구보다 더 강렬한 욕구로서 도벽을 형성시켜 주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먼저 강렬한 생리적 욕구를 들 수 있다. 몹시 배고픈 아이는 벽장 속에 둔 과자를 어머니 몰래 훔쳐 먹지 않을 수 없다. 또 아편 중독 환자가 그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 아편을 구하려고 절도 행각을 일삼는 일 등도 이에 속한다. 단순한 소유욕이 훔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는 모든 계층의 어린이에게서 다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러 가지 놀잇감을 갖고자 하는 욕구는 어린이의 경우 본능적이라고 할만큼 보편적이며 강렬하다. 어린이들이 별로 가치는 없으나 신기해 보이는 것을 훔치는 경우는 대체로 이런 요인 때문이다. 5세 이하의 도벽은 이런 경우가 많다. 이같은 충동은 타인의 소유권을 존중하는 훈련이 미흡할 때 많다고 본다. 그러므로 가정 내에서 어린이들에게 각자의 소유권을 분명하게 해주고 남의 것을 침범하지 않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어린이가 간절히 갖고 싶어하는 것은 가능하면 사주고, 가져서는 될 것이라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 설득시켜야 한다. 그리고 용돈을 줄 때도 설득과 이해로 큰 불만이 없게 줌으로써 이러한 소유욕에서 오는 도벽을 예방하고 교정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칭찬 받으려는 욕구를 지닌다. 이러한 요구를 자기의 의복이나 소지품 그리고 가까이하는 인물 등 형식적인 면의 자기 과시로 충족하려 할 때 이를 "허영"이라고 말한다. 이 허영심 때문에도 도벽이 생길 수 있다. 또 이렇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남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기 위해 짐짓 훔치는 일을 감행하게 하고 이를 공개하게끔 하는 수도 있다. 그리고 동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선심을 쓰는 데 필요한- 돈이나 물건을 훔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선물 공세는 열등감이 강한 아동의 경우에 특히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신체적인 것 또는 의복, 소유물 등의 비정상성으로 인해 열등감을 지니는 어린이의 도벽은 그 열등감의 교정이나 보상으로 고쳐질 수 있다.
사람은 분할 때 분풀이하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안정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분풀이의 한 수단으로서 훔치는 짓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특정인으로부터 분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사람에게 꼭 보복해야 분이 풀릴텐데 자신의 능력으로나 여건상 정면으로 보복할 수는 없어 분한 마음을 억제하며 지연 공격으로 나간다. 즉 상황을 보아 기다리면서 공격 가능한 때 적절한 방법으로 분풀이한다. 다시 말해 복수다. 복수의 한 방법으로서 상대에게 물질적 손실을 가하기 위해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부모가 자녀를 무시하거나 차별 대우할 때, 또는 질책, 구타를 당할 경우 부모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인 공격으로 표시하진 못하고 부모를 괴롭히기 위해 부모의 물건을 훔쳐내는 수가 있다. 또한 훔치는 일 자체가 아슬아슬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감쪽같이 성공시켰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훔치는 일 자체에서 오는 이러한 쾌감을 맛보기 위해 도벽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불안과 긴장이 계속될 때 이렇게 아슬아슬할 일에 몰두하면 일시적으로나마 긴장에서 도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 훔치는 일이 일종의 강박증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다고 한다. 절도광의 경우가 여기에 속하는데, 이는 훔치는 물건이 가치로는 별게 아니라 하더라도 그 자체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려 하는 것이거나, 자기도 무슨 일을 한다는 식의 자기 충족감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도벽의 원인이 되는 특수한 예를 하나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사람은 얻으려는 것을 못 얻으면, 그것의 상징이 되고 대리가 될 수 있는 것을 통해 잠정적, 영구적 만족을 얻으려고 한다. 말하자면 대치니 심볼리즘이니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가까이 할 수 없을 때 대신 그의 소유물을 가까이 하여 충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 애인의 소유물을-훔쳐서라도-몸에 지니게 된다. 황진이의 신발을 훔친 일도 바로 이 심볼리즘의 한 예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도벽 역시 다른 부적응 행동이나 마찬가지로 그 근원은 정서적 불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도벽의 예방과 교정의 근본적인 방책은 바로 이같은 정서적 불안을 제거하는 데 있으리라 본다. 따라서 어린이에게 불필요한 불안 상태를 자주 경험시켜서는 안된다. 명석한 판단과 결단력을 길러 정서적 불안을 -해롭지 않은- 적절한 출구로 발산시키도록 해야 함은 물론, 자신을 여기고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196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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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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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거울 속의 개
언젠가 한 왕이 수백만 개의 거울이 달린 큰 궁전을 지었다. 모든 벽이 거울로 뒤덮여 있었다. 우연히 개 한 마리가 그 궁전에 들어왔다. 우연히 개 한 마리가 그 궁전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개는 거울에 비친 수백만 마리의 개들을 보았다. 그 개는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하고 바짝 긴장했음에 틀림없다. 그는 짖어대기 시작했고 그가 짖기 시작했을 때, 그 수백만 마리의 개들도 역시 짖기 시작했다. 아침에 그 개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 개는 혼자 거기에 있었고, 그곳에는 오직 거울들만이 있었다. 아무도 그와 싸우지 않았고, 사실 거기엔 싸움할 누구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거울 속에서 그 자신을 보았고, 두려워졌다. 그리고 그가 싸우기 시작했을 때, 거울 속의 반영체들도 역시 싸우기 시작했다.
그대는 그 개가 보낸 그날 밤의 지옥을 상상할 수 잇는가? 그대는 바로 지금 그 지옥에서 살고 있다. 거울들과 거울 속의 개들이 그대 주위에서 짖고 있다. 모든 거울 속에서, 모든 관계 속에서 그대는 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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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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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63. 대만, 최후의 항쟁거점이 되다 - 정성공의 대만 정복(1661년)
명은 중국본토에서는 소멸되었지만 이 명의 명맥을 잇겠다고하여 본토를 떠나 대만으로 들어간 사람이 있는데 그가 정성공이다. 그는 복건 출신으로 아버지 정지룡은 해적출신으로 명나라에 귀순했고, 어머니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정성공 역시 일본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중국으로 들어왔으며, 청나라 군대가 한해관을 넘어 북경으로 밀려들 때 난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명 황제 융무제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융무제는 정성공의 비범함을 알아버고 그에게 주씨 성을 내렸다고 한다. 청의 공격을 막고 명 황제를 지킨 것은 정성공의 아버지인 정지룡 등의 군사력이었다. 그러나 정지룡은 나중에 청나라에 투항해버리고 만다. 정성공은 아버지의 배신행위를 눈물로 만류했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받아주지 않았다. 정성공은 이에 그의 세력을 끌고 바다로 나와 해상에서 청나라에 대항했다. 그의 목표는 북경을 장악한 청왕조를 타도하고 한족 왕조를 다시 세우는 것이었다. 그 숙원을 달성하기 위한 발판으로 우선 남경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을 전개했다. 그가 군대를 일으켰을 때는 1658년으로 순치제의 통치시기였으며, 당시 정성공이 거느린 군대는 20만 정도였다. 군대를 몰아 해안 지역에서 몇번의 승리를 거두었는데, 계속되는 승리에 자만한 정성공 분대는 남경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맛보게 된다. 그는 그의 생일에 맞추어 남경을 함락시켜 남경에 십성하겠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청의 군대를 얕보고 덤비다가 청군에게 크게 패한 뒤 그는 그의 근거지인 아모이(하문)로 철수했다. 중국본토에서 유일하게 발붙일 수 있는 곳이 이곳이었다. 북경 회복이라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자신이 있는 해상전투의 근거지를 확보하려 했고, 그런 그의 생각에 떠로른 것이 대만이었다. 원래 대만은 남방계통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중국본토에서 대만을 정복했다는 기록은 수나라 때무터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륙의 중국인들이 대만에 본격적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명나라에 들어와서였다. 특히 해안지대인 복건, 광동성 사람들이 대만으로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이 지역에 조직적인 통치가 이루어지게 된 것은 중국인이 아니라 서양세력에 의해서였다. 1624년 네덜란드는 안평에 상륙했고, 그 당시 살고 있던 원주민인 '다이오완 족'의 이름을 따 다이완으로 부르게 되었다. 1624년 이래 정성공이 들어올 때까지 약 40여년 동안 네델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대만을 통치했다. 대만 정착 한족들은 이민족의 지배에 고통당하고 있었다. 이들은 네덜란드에 저항햇으나 그때마다 많은 피해를 당했을 뿐 네덜란드를 몰아낼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이민족에게 억압당하는 것보다는 정성공이 와서 통치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 정성공의 대만 정착을 바라고 있었다. 1661년 정성공은 마침내 대만의 네덜란드 군을 공격했다. 나쁜 기상조건을 역이용하여 전개한 기습작전에 네덜란드 군은 재대로 저항하지 못했으며, 대만에 상륙한 정성공 부대는 네덜란드 총독의 부대가 수비하고 있는 대만성을 공격하여 약 1년여 만에 네덜란드 군을 몰아냈다. 대만에 들어온 정성공은 농민들을 위한 정책을 펴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 비해 살기 좋은 섬으로 만들었다. 또한 토착 고산족의 생존권도 보호했다. 그러나 대만을 장악한 지 1년이 되지 못해 정성공은 39세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 그후 그의 아들인 정경이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아 20여년간 대만을 통치했으나, 1683년에는 청나라의 공격을 받아 정경의 아들인 정극상이 청에 투항하고 말았다. 정성공이 대만으로 들어올 때 청나라를 못마당하게 여기던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따라 들어왔고, 따라서 정씨 3대에 걸친 통치시기가 대만이 중국화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청은 정극상의 투항으로 대만을 차지함으로써 완전한 중국지배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19세기에 들어오면 이른바 대만사건이라는 국제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건은 대만의 산지 거주 토착 만족이 유구인 어부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유구는 일본의 영토였고 유구인이 살해되었다는 것은 일본인이 살해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본은 이 사건을 기화로 대만을 공격하여 산지족을 죽였으며 그 군사동원의 경비를 청나라에 요구했다. 그후 대만은 청나라가 약해지면서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어갔다. 1884년 인도차이나 반도를 놓고 청과 프랑스 사이에 싸움이 있었는데, 이때 프랑스 군대가 대만의 기륭을 공격하고 팽호도를 점령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1894년 조선을 사이에 두고 청일전쟁이 일어나 청나라가 패하게 되면서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어 요동과 함께 대만을 일본에 넘겨주었고, 그후 1945년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할 때까지 대만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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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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似而非(사이비)
似(같을 사) 而(말 이을 이) 非(아닐 비)
맹자(孟子) 진심장하(盡心章下)편에는 스승 맹자(孟子)와 제자인 만장(萬章)의 문답이 기록되어 있다. 만장이 온 고을이 다 그를 향원(鄕原)이라고 한다면 어디를 가나 향원일 터인데 공자께서 덕(德)을 해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라고 물었다. 이에 맹자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겉으로는 비슷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미워한다(惡似而非者). 강아지풀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곡식의 싹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망령됨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말 많은 것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믿음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보라색을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붉은 색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향원(세속에 따라 야합라는 위선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라고 하셨다 .
似而非란 사시이비(似是而非)에서 나온 말이며, 겉으로는 그럴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似而非는 큰 해악(害惡)이다. 하지만 似而非를 가려내지 못하는 것은 더 큰 해악이다. …………………………………………………………………………………………………………………………………
[원말] 사이비자(似而非者). [출전]《孟子》〈盡心篇〉,《論語》〈陽貨篇〉 ① 겉은 제법 비슷하나 속은 전혀 다름. ② 진짜같이 보이나 실은 가짜임.
전국 시대, 아성(亞聖)으로 불리던 맹자에게 어느 날 만장(萬章)이라는 제자가 물었다.
“한 마을 사람들이 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한다면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 훌륭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어찌하여 그들을 가리켜 ‘향원[鄕原:지방의 토호(土豪)]은 덕(德)을 해치는 도둑’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들을 비난하려 해도 들어서 비난할 것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구실이 없으나 세속에 아첨하고 더러운 세상에 합류한다. 또 집에 있으면 충심(忠心)과 신의가 있는 척하고, 나아가 행하면 청렴결백한 척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스스로도 옳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는 더불어 요순(堯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공자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느니라. ‘사이비한 것[似而非者]을 미워한다…‥말 잘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은 정의를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고, 정(鄭)나라 음악을 미워하는 것은 아악(雅樂)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향원을 미워하는 것은 그들이 덕을 혼란시킬까 두려워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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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이글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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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티를 입은 문화 - 문화의 171가지의 표정
2. 나폴레옹은 검은 고양이를 싫어했다.
금요일은 악마의 안식일
불길하다고 하는 미신 가운데서도 13이라는 숫자를 둘러싼 미신만큼 오늘날에도 갖가지 형태로 서구인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드물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는 13번지의 집이 없고, 이탈리아에도 복권에 13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선, 국제선 항공기에도 13번 좌석은 없다. 역시 미국의 고층 빌딩에도 맨션에도, 더 나아가 공동주택에도 아파트에도 모두 12층 다음은 14층으로 되어 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사람들이 아직도 이 13의 미신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었다. 새로 지은 어떤 고급 맨션이 현대풍으로 13층을 두었더니, 다른 층은 꽉찼는데도 13층만은 몇 집밖에 입주하지 않았다던 것이다. 그래서 13층이라는 표시를 12층-B라고 고치니까 즉각 입주자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13이라는 숫자를 두려워하는, 이 '13 공포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뿌리는 적어도 기원전의 북유럽 신화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언젠가 열두 명의 신들이 바르하라에 모여서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혼자서만 초대받지 못한 싸움의 신 로키가 난입해 와서 참석자가 열세 명이 되었다. 로키를 쫓아내려고 실랑이를 하던 중에 신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바르다가 살해당하고 만다. 이것이 기록에 남아 있는, 13을 불길하다고 하는 가장 오래된 전설이다. 이 설화는 13을 두려워하는 미신이 되어서 유럽을 거쳐 그리스도 기원의 막이 열릴 때쯤에는 지중해의 모든 나라에 완전히 정착되었던 것 같다. 여기에다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만찬, '최후의 만찬'의 고사가 이 13의 공포에 박차를 가했다고 민속학자는 말한다. 그리스도와 제자를 합쳐 열세 명이 식탁에 앉았는데, 이 만찬 뒤에 그리스도는 24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신화학자는 고대 북유럽의 전설에서 그리스도 만찬의 원형을 본다. 배반자인 유다에 해당하는 것이 싸움의 신 로키, 못 박혀 죽는 그리스도가 살해된 신 바르다이다. 어쨌든 기원 초기부터 열세 명의 손님이 같은 식탁에 앉는 것은 불길하다고 생각한 것은 확실하다.
어떤 미신이라도 일단 믿게 되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관계없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미신을 생각해내고 끄집어내는 경향이 우리들에게는 있다. 1798년에 발행한 영국의"젠틀맨 매거진"의 기사도 그랬다. 그날 현재의 보험통계표를 게재한 그 기사에서는 그 표의 평균을 내어 13명 중 한 명이 1년 안에 죽는 다고 발표함으로써 13의 미신을 크게 부추겼다. 그 자료가 좀더 오래 된 것이었거나 좀더 최근의 것이었다면 나온 숫자는 물론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그것이 13이었기 때문에 많은 영국인에게는 과학이 미신을 뒷받침해 준 것처럼 보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에서는 13이 행운의 숫자이기도 하다. 13은 국가 상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달러 짜리를 보자. 뒷면에 그려져 있는 미완성의 피라미드에 붙어 있는 돌계단은 13이다. 흰머리독수리가 한쪽 발로 움켜쥐고 있는 올리브 가지에도 13장의 잎과 13개의 열매가 달려 있으며, 다른 한쪽에 쥐고 있는 화살도 역시 13개이다. 이것은 물론 미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미합중국 건국 당시의 13개의 식민지를 기념한 것으로서 행운을 상징하는 것이다. 모든 날 가운데서도 13일의 금요일이 왜 가장 불길한가를 설명하려면, 성서에 나와 있는 커다란 재해가 모두 이 날에 일어났다고 하는 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설에 따르면 이브가 선악과로 아담을 유혹한 것도, 대홍수가 일어나서 노아가 방주로 탈출한 것도 이날이라고 한다. 또 바벨탑이 무너져서 언어가 뒤죽박죽 되어 버린 것도, 야훼의 신전이 파괴된 것도, 더 나아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은 것도 이날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미신의 기원도 실은 북유럽의 신화에 있다. 프라이데이라는 호칭의 기원이 되기도 한 북유럽의 사랑과 풍요의 여신 프릿가는 북유럽인이나 게르만인이 기독교로 개종한 순간 마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산꼭대기로 추방되었다. 화가 난 프릿가는 금요일마다 11명의 마녀를 모으고, 악마도 불러서-더해서 13명이 된다-모임을 갖고 다음주에는 어떤 재앙을 일으킬 것인지를 의논했다. 이 때문에 북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금요일을 마녀의 안식일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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