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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802호
2010.10.30 (음 9.23)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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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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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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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의 아름다움이란 그대의 지갑에서 황금을 끄집어내는 것보다는 그대의 서재에 책을 채우는 일이다. ─ 존 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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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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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 / 박빙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하는 것이 ‘정의’(定義)다. 사전은 정의 모음이라 하겠다. ‘살얼음’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얇게 살짝 언 얼음’으로 정의하고 ‘박빙’과 비슷한 말로 풀이하고 있다. 다시 ‘박빙’을 찾아보면 ‘살얼음’으로 풀이하고 있다. ‘살얼음’과 ‘박빙’은 지칭하는 대상은 같지만, 어떤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는 쓰임에 차이가 있다. ‘살얼음’은 위태위태한 상황, 매우 조심스러운 상황을 묘사할 때, ‘박빙’은 차이가 근소함을 나타낼 때 쓰인다.
“살얼음 위를 걷는 듯했던 그때.” 외환위기 상황을 묘사한 중앙 일간지 사설에서 잘라온 구절이다.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하다”고 하면 매우 위태위태하다는 뜻이다. 외환위기 당시 외환 보유고는 바닥이 났는데, 외채 지급 만기는 다가오는 상황에 처했다. 자칫하면 지급 유예(모라토리엄)나 채무 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신문은 이런 위기 상황을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하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를 “박빙 위를 걷는 듯하다”고 하면 의미 전달이 이상해진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다”고 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초접전을 펼치고 있다는 뜻이다. 선거 개표 실황을 중계할 때 이런 표현이 많이 쓰인다. 이때도 “살얼음 승부를 펼치고 있다”고 하면 역시 딱 들어맞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우재욱/시인
진안주
술에는 안주가 따른다. 술은 취하게 하지만 안주는 그것을 막는 구실을 한다. 안주의 본래 의미도 ‘술(酒)을 누르다(按)’이다. 안주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뉜다. 마른안주가 있고, 진안주가 있다. ‘마른안주’는 말 그대로 ‘물기 없는 안주’다. 좀 낯선 ‘진안주’는 ‘두부, 찌개 등 물기가 있거나 물을 넣어 만든 안주’다. ‘진’은 ‘질다’의 관형형.
저린다
"책상다리를 오래 하고 있었더니 다리가 저린다.” 이렇게 ‘저린다’고 하면 뭔가 어색하게 들린다. “그가 아픈다. 그래서 슬픈다.”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린다. ‘저리다, 아프다, 슬프다’는 형용사다. 형용사에는 ‘-ㄴ다’가 붙지 않는다. 형용사는 현재형이 기본형과 같다. 현재의 사실을 나타내는 ‘-ㄴ다’는 동사에 붙는다. ‘눈이 온다. 달린다.’
시덥지 않은 소리
어머니에게 자식은 나이에 상관없이 항상 아이 같은 존재인가 보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소리를 하든 언제나 노심초사, 자신이 겪어 온 험난한 세상을 자식이 과연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사사건건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쏟아내곤 하신다. 세월이 흘러 이제 반대로 자식이 부모를 걱정할 나이가 돼 "힘드시니까 김장 같은 건 손수 하지 마시고 사서 드세요"라고 권해도 '시덥지 않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며 정성 들여 담근 김치를 봉지 봉지 싸서 자식들마다 하나씩 부쳐 주신다.
'마음에 들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하다'라는 뜻을 나타낼 때 흔히 '시덥지 않다' '시덥지 못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시답지 않다' '시답지 못하다'로 쓰는 게 맞다. 원래 '시답다'는 '마음에 차거나 들어서 만족스럽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지 않다' '~지 못하다'와 같은 부정적 표현과 함께 쓰이며 "이 책의 내용이 매우 시답다" "시다운 생각"처럼 단독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살처분
2003년 아시아 지역에 확산됐던 조류인플루엔자(AI)가 또다시 전북 일부 지역을 강타해 가금류 사육 농가가 큰 고통을 겪었다. 더불어 AI 발생 지역의 닭.오리들은 '살처분'이란 비극을 맞았다. AI뿐 아니라 광우병.구제역 등 각종 질병에 감염된 가축을 처리할 때 '살처분(殺處分)'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농림부는 AI가 발생한 농가의 반경 3㎞ 내 가금류를 모두 살처분키로 결정했다"와 같이 전염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병에 걸린 가축들을 죽여서 묻거나 불에 태운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이 말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중국과 일본에서 쓰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다 보니 개념이 잘 와 닿지 않는다. '살'과 '처분'으로 구성된 단어이긴 하나 그 구조 역시 우리말 어법엔 잘 안 맞는다. 사전에도 없는 '살처분'이란 말보다는 '도살 매립' '도살 소각' 등으로 풀어 쓰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한편 관계 당국인 농림부에선 '도살'이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을 잡아 죽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살처분'이란 명칭을 '강제 폐기'로 변경하기로 하고 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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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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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手話(수화) - 최승권
몇 몇은 보이지 않았다 졸업식 송사의 마지막 구절이 키 작은 여학생들을 일제히 흐느끼게 할 때 서울 어느 목공소 조수로 취직했다는 광오와 상급학교에 진학을 못한 상동이의 얼굴은 금간 유리창 너머 갈매기 두 마리로 날아오르고 교정 구석 단풍나무 한 그루로 선 나는 노을이 지는 바다를 훔쳐보았다.
싸락눈 잘게 뿌리던 날 문뜰나루 건너온 그놈들이 조회시간에 불쑥 내민 김뭉치를 받았을 때 지방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서정적인 시골 중학교 선생님이 된 나는 그놈들의 부르트고 째진 손등과 교실바닥에 나뒹굴던 해우무침 조각을 보고 바다를 따라 흔들리는 유채꽃의 희망과 황토밭을 흐르는 고구마 줄기의 자유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일까.
해우 한 장보다도 얇은 졸업장을 추면서 바닷가 갯물냄새 투성이의 아이들과 마지막 뜨거운 악수라도 나누고 싶었지만 나는 빈 칠판에 갈매기 두 마리를 그리고 유리창 밑에 숨어 바다를 보며 울었다.
서울의 낯선 어둠을 깎는 대패질소리와 절망마다 강하게 내리박는 못질소리가 짧은 편지 가득 들려오는데 앨범에 묻어두었던 흑백의 그리움이 문뜰나루 갈매기 울음소리에 섞여 옹암리 앞 푸른 바다로 출렁이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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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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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 - 이인웅
전생에 무슨 죄로 밟혀만 사는 건가
기름진 땅 마다하고 길가에 뿌리내려
한 평생 꺽이는 아픔 길들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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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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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 김종상
마을 앞 무논에 얼음은 덮여도 미나리는 야들야들 겨울을 살고,
응달밭 이랑마다 서릿발이 할퀴어도 보리싹은 파릇파릇 겨울을 살고,
앙상한 나뭇가지 찬바람이 몰아쳐도 잎눈은 몽글몽글 겨울을 살고,
고드름이 매달린 초가 우리 집 새해 꿈도 또록또록 겨울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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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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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4장 꿈이 서린 계절의 회상을 위하여 -《scrap(그리운 1980년대)》
장편 끝내고 2주 동안 영화만 봤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슈왈츠네거의 전나체 장면이 나오는데 언제나처럼 국부가 조금 지워셔 있다. 그런 장면은 보고 싶기도 한 것 같고 보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장편 소설이 겨우 일단락 되었기 때문에 2주일 동안 영화만 봤다. 금년 봄에는 <듄> <2010년> <리틀 드리머 걸> <터미네이터> <네버 엔딩 스토리> 등 상당한 역작이 구색별로 갖춰져 있어서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다만 나는 <네버 엔딩 스토리>와 같은 부자지간이 즐길 수 있는 작품에는 역시 ,끝이 없는 이야기>처럼 제대로 된 일본어 제목을 붙여 주는 것이 친절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길다란 영어 제목은 어린애들이 기억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나는 <코난>의 팬이기도 해서,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주연하는 <터미네이터>를 상당히 좋아한다. <블레이드 러너>와 <에일리언>과 <크리스틴>을 함께 섞어 놓은 것 같은, 스릴 넘치는 이 영화는 미국에서 6주간 연속 관객 동원수 제1위를 기록하여,업계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 독일 사투리가 심한 거구의 사나이가 주연한 영화가 대히트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슈왈츠네거는 1947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고등 학교를 나온 다음, 미국으로 건너가 1975년까지 '미스터 유니버스'의 타이틀을 4회, '미스터 월드'를 1회, '미스터 올림피아'를 6회나 획득했다. 경이적인 기록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리고 보디 빌딩에 대한 세 권의 책을 써서 베스트 셀러로 만들었고, 현재는 부동산 업자로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부동산 회사 외에도 프로덕션 회사를 가지고 있으며 CBS와 ABC의 스포츠 해설도 맡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대부호인 셈이다.그래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취미라고 한다. 굉장한 사람이다. 롤링 스톤 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 영화가 성공하게 된 원인은 자신이 악역을 맡았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감독인 짐 카메론은 <코난>에서의 그의 주인공 상을 파괴하기 위해서 영화 속에서 슈왈츠네거에게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르게 하는데, 이 악의 분출이 영화의 중심이 되고 있어서, 보고 있으면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이 악에 비하면 착한 사람 쪽의 존재가 훨씬 희미하다. '스니크 프리뷰'의 경우에도 관객들 대부분은 악역인 슈왈츠네거 쪽에 감정이 이입되어서, "그래, 아놀드. 죽여 버려라!"하고 외댔다고 한다. 어쨌든 이상하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슈왈츠네거의 전나체 장면이 나오는데, 언제나처럼 국부가 조금씩 지워져 있다. 그런 장면은 보고 싶기도 한것 같고 보고 싶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에릭 시걸과 러브 스토리 -돈과 명예와 경의를 동시에 손에 넣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그 가운데에서 두 가지를 손에 넣었다면 이미 만만세가 아닐까?
러브 스토리의 작가인 에릭 시걸이 얼마 전에 더 클래스 라는 제목의 장편 소설을 출판했다. 시걸의 대부분의 책에 대한 서평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그다지 작가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좋은 평판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라고 그는 낙담한 모습으로 신문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고, 텔레비전의 프로듀서들이 그 영화와 판권을 둘러싸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비평에서 뜰겨 맞은 것에 대해서 "유감입니다(I'm sorry)"라고 말하고 있다. 동업자로서는 안됐다(I'm sorry)고는 생각하지만, 동시에 후회하지 않는 것(Never say I'm sorry)도 작가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아내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며 '만일이 세상에 정의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틀림없이 좋은 평을 받을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정의 같은 것은 없어. 만일 내가 운이 좋다면, 이 책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거야'라고 말했죠. 사실 그렇게되었으니, 나는 돈과 명예를 가지고 도망쳐 버리겠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해도 그가 원하고 있는 것은 돈도 인기도 아니다. 시걸이 원하고 있는 것은 경의(경의)다. "[나는 자신을 대작가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핀트에서 벗어난 비평은 듣기가거북합니다. 적어도 나는 유능한 작가이기는 하니까그것만큼은 제대로 인정해 주길 바라는 거예요"라고 그는 말한다. 요컨데, 그는 대학 교수로서 받고 있는 경의를 소설가라고 하는 분야에서도 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돈과 명예와 경의를 동시에 손에 넣는 것은-누가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것처럼-상당히 힘들다. 그 가운데에서 두 가지를 손에 넣엇다면, 그것으로 이미 만만세가 아니냐고 나 같은 사람은 생각하지만, 에릭 시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항상 존경받는 데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는, 경의를 표하지 않는 데 대헤서 신경질을 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것과는 별도로 러브 스토리가 출판되었을 때의 소동을 에릭 시걸은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투데이 쇼>의 인터뷰에 출연하자 바바라 월터스는 흥분한 것 같았어요. 그녀는 인터뷰는 하지 않고, 카메라를 향해서 이렇게 말했어요. '이 젊은이가 굉장한 소설을 썼습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사보세요'하고 말이죠. 그날 열두 시까지 러브 스토리는 미국 전역에서 한 권도 남김없이 다 팔려 버렸어요."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
서핑을 하는 데 따른 마음의 짐 -서핑을 순수한 의미에서의 정직함을 사람들에게 요구하며, 그것에 의해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응시하게 된다 "지금은 상당히 상황이 호전되었지만, 내가 대학월 나온 1960년대에는 서퍼 같은 친구들은 모두 무뢰한이라고 여겨졌었다"라고 얘기한 사람은, 하와이 대학에서 해양학을 연구하고 있는 리처드 그리그 박사다. 그리그 박사는 한때 와이미어 베이의 톱 서퍼였고, 마흔 여덟인 지금도 가장 우수한 서퍼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무렵은 정말 형편없었다. 어쨌든 내가 서핑을 하고 잇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나의 연구를 인정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남보다 두 배의 노력을 해서 무엇인가를 발견해도, 저 녀석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말만 들었다. 제대로 대접을 받게 될 때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공화당 의원인 프레드 헤밍스 쥬니어는 서핑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데 있어 상당한 핸디캡을 짊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서핑을 하는 국회 의원을 신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들도 자식에게 서핑을 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서퍼는 야구나 미식 축구와는 달라서 추천받아 대학에 입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포츠로서의 서핑은 1960년대에 비하면 지위가 굉장히 향상된 편이다. 1960년대에 비하면 서퍼도 드롭아웃(역주:사회체제로부터의 탈출, 타락)적인 색채는 희미해지고, 마약이나 여자에 얽혀 난장판을 벌이지도 않는다. 서핑도 겨우 '2급 시민적'이기는 하지만, 스포츠로서의 시민권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서핑의 뛰어난 점은 그것이 개인적인 스포츠라는 것이다. 서핑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정직함을 사람들에게 요구하며, 그것에 의해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응시하게 된다. 파도 앞에 나서면 인간은 갖가지 공포와 직면한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정신 치료라고 할 수 있다"하고 어느 서핑 잡지의 편집자가 말했다. 자기 정신적 치료라고 하는 게 약간의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금년 가을 태풍이 오기 전날의 고코누마 해안의 파도는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 재미있는 도쿄 디즈니랜드 -도쿄 디즈니랜드에 갈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가자. 그런 사람은 덕을 볼 것이다. 무지는 최고의 사치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 학교 학생 때, 텔레비전에서 매주 <디즈니랜드>라고 하는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방영했었는데, 나는 그걸 자주 보았다. 미국의 디즈니랜드가 1955년에 생겼으니가 그 얼마 뒤의 일로, 말하자면 동시대적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디즈니랜드의 존재를 우리 일본의 어린이들에게도 알려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알려 주었다고 해서 곧장 달려갈 수도 없었고, 그로부터 약 4반 세기의 세월이 흘러 나는 서른 넷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1983년 4월, 지바 현 우라야스의 매립지에 버젓이 도쿄 디즈니랜드가 완성된 것이다. 기쁘냐고 물어 보면, 일단은 기쁘다. 나는 지금 지바 현에 살고 있으니까, 근처에 유락 시설이 들어선 것은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적, 월트 디즈니적, 로봇 아톰적 휴머니즘을 새삼스럽게 지금 들고 나오다니, 이쪽으로서는 약간 난처하다. 그러나 역시 가보고 싶고, 가서 구경해 보고 싶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조금 복잡하다. 이것은 역시 재미있다! 그러나 3월 18일의 이 '도쿄 디즈니랜드 프리뷰'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이런 식으로 꽤 까다롭게 생각하고 있던 사람은 나정도였다. 함께 돌아다닌 안자이 미즈마루 씨라든가 마쓰야마 다케시 씨라든가, 넘버 편집주의 N씨 같은 사람은 모두 미국에서 이미 디즈니랜드에 가본 적이 있는 탓인지, 모든 면에서 정말로 익숙했다. 미즈마루 씨는 로스앤젤레스 쪽도 플로리다 쪽도 몇 번씩 구경을 갔었다고 한다. "정말로 재미가 있을까요?"하고 내가 의심스러운 듯이 입구에서 물어 보자, 미즈마루 씨는 "괜찮습니다, 재미있어요"하고 장담했다. 그런데 다섯 시간에 걸쳐서 실제로 돌아다녀 본 결론부터 말하면 역시 재미있었다. 아직 디즈니랜드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정말로 디즈니랜드라는 곳이 그렇게 재미있습니까?"하고 미심쩍어 하는 질문을 받게 되면, 나도 미즈마루 씨처럼 "괜찮습니다, 재미있어요"하고 대답하게 될 것 같다. 디즈니랜드 안에 어떤 장치가 있고, 어떤 것이 준비되어 있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여기서 구태여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한 것들은 다른 잡지나 텔레비전에서 충분히 소개할 것으로 믿으며, 게다가 나는 여러분들의 그와 같은 예비 지식 없이 어린이처럼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틀림없이 덕을 볼 것이다. 무지라는 것은 현대에 있어서 최고의 사치인 것이다.
감탄한 세 가지 포인트 아주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도쿄 디즈니랜드는 장점을 세 가지 갖고 있다. 우선 넓고 청결하며, 둘째로 순수하게 꾸며져 있고, 셋때로 지겨울 정도로 많은 구경거리가 있다. 이 세 가지는 지금까지 일본의 유원지에는 없었던 특징이다. 넓이는 참으로 대단해서 대충 한 번 둘러보는 데도 하루가 걸린다. 청결함에 대해서도 광적일 정도로 철저해서 디즈니랜드 구석구석에 청소부가 배치되어 있는데, 어떤 쓰레기라도 15분 이내에 회수되어 버린다. 내가 떨어뜨린 팝콘도 10초 내에 회수되어 버렸다. 아무튼 굉장하다. 그리고 구경거리가 많은 것에 대해서, 처음 오는 사람은 틀림없이 놀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일본 유원지의 놀이 기구의 감각으로 가면, 이제 이쯤에서 끝이겠지, 하는 대목에서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은 '제기랄, 벌써 끝이야?'하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미국의 레스토랑에서 먹는 바닐라 퍼지(역주:설탕 버터 초콜릿 등으로 만든 말랑말랑한 캔디)정도의 볼륨이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가 가장 감탄한 것은, 이래도 감탄하지 않을래? 자아, 어떠냐 하는 식의 속 들여다보이는 얄팍함이 없이, 참으로 순수하게 전체가 꾸며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천박하지 않고, 손님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요컨데, 그만큼 돈이 들어간 것이다. 요금도 입장료와 놀이 기구를 타는 비용 등을 포함해서 대개 한 사람당 4,000엔 정도가 든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비싸다고 하는사람도 있을 테고, 그 정도는 들 것이라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기분 좋게 화끈하게 노는 것이 이익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만큼 돈이드는, 천진난만한 낙천성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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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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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2. 예언자 - 칼릴 지브란
결혼에 대하여
알미트라는 또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며, 영원히 함께 하리라. 죽음의 날개가 그대드릥 생애를 흐트러 놓아 사라지게 할 때까지 함께 하리라. 아! 그대들은 함께 하리라.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도. 하지만 그대들의 공존에는 거리를 두라.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출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에 구속당하지는 말라. 차라리 출렁이는 바다를 그대들의 영혼의 기슭 사이에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서로 자기의 빵을 주되, 어느 한 편의 빵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각자 고독한 기타줄처럼.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각각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참나무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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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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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법정
아름다움 - 낯모르는 누이들에게
이 글을 읽어줄 네가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슬기롭고 아름다운 소녀이기를 바라면서 글을 쓴다. 슬기롭다는 것은, 그리고 아름답다는 것은 그 사실만 가지고도 커다란 보람이기 때문이다.
일전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종로에 있는 제과점에를 들른 일이 있다. 우리 이웃 자리에는 여학생이 대여섯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애들이 깔깔거리며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는 슬퍼지려고 했어. 그 까닭은, 고1이나 2쯤 되는 소녀들의 대화치고는 너무 거칠고 야한 때문이었다. 우리말고도 곁에는 다른 손님들이 꽤 있었는데 그애들은 전혀 이웃을 가리지 않고 마구 떠들어대더구나. 그리고 말씨들이 어찌도 거친지 그대로 듣고 있을 수 없었다. 말씨는 곧 사람의 인품을 드러내게 마련 아니니? 또한 그 말씨에 의해서 인품을 닦아갈 수도 있는 거야. 그러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주고받는 말은 우리들의 인격형성에 꽤 큰 몫을 차지하는 거다. 그런데 아름다운 소녀들의 입에서 거칠고 야비한 말이 거침없이 튀어나올 때 어떻게 되겠니? 꽃가지를 스쳐오는 바람결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말만 써도 다 못 하고 죽을 우리인데. 언젠가 버스 종점에서 여차장들끼리 주고받는 욕지거리로 시작되는 말을 듣고 나는 하도 불쾌해서 그 차에서 내리고 말았다. 고물차에서 풍기는 휘발유 냄새는 골치만 아프면 그만이지만, 욕지거리는 듣는 마음속까지 상하게 하니 말이다. 그것은 인간의 대화가 아니라 시궁창에서 썩고 있는 추악한 악취야. 그러한 분위기 속에 잠시라도 나를 빠지게 할 수가 없었어. 욕지거리가 인간의 대화로 통용되고 있는 요즘 세상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배우지 못했거나 생활환경이 무질서한 그런 애들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니. "아름답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큰 보람"이란 말을 앞에서 했다. 그럼 아름다움이란 뭘까. 밖에서 문지르고 발라 그럴 듯하게 치장해놓은 게 아름다움은 물론 아니다. 그건 눈속임이지. 그건 이내 지워지고 마니까. 아름다움이 영원한 기쁨이라면 그건 결코 일시적인 겉치레일 수 없어. 두고 볼수록 새롭게 피어나야 할 거야. 그러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하나의 발견일 수도 있어. 투명한 눈에만 비치기 때문에. 나는 미스 코리아라든지 미스 유니버스 따위를 아름다움으로 신용할 수 없어. 그들에게는 잡지의 표지나 사진관 앞에 걸린 그림처럼 혼이 없기 때문이야. 아름다움을 정치처럼 다수결로 결정한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아름다움을 드러내기보다는 모독하고 있는 거야. 아름다움이란 겉치레가 아니기 때문이지. 상품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아름다움이라면 거죽만을 보려는 맹점이 있어. 그래서 아름답게 보이려고 갖은 수고를 다한다더군. 값진 화장품을 써야 하고, 사람이 먹기도 어려운 우유에 목욕을 하는가 하면 무슨무슨 운동을 하고, 값비싼 옷을 해 입어야 하고......... 그들은 모르고 있어. 감추는 데서 오히려 나타난다는 예술의 비법을. 현대인들은 그저 나타내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감추는 일을 망각하고 있어. 겉치레에만 정신을 파느라고 속을 다스릴줄 모른단 말야. 이런 점은 우리 춘향이나 심청이한테 배워야 할 거다. 그런데 아름다움은 누구에게 보이기 전에 스스로 나타나는 법이거든. 꽃에서 향기가 저절로 번져 나오듯. 어떤 시인의 말인데, 꽃과 새와 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정결한 기쁨을 우리에게 베풀어준다는 거야. 그러나 그 꽃은 누굴 위해 핀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기쁨과 생명의 힘으로 피어난 것이래. 숲속의 새들도 자기의 자유스런 마음에서 지저귀고 밤하늘의 별들도 스스로 뿜어지는 자기 빛을 우리 마음에 던질 뿐이란 거야. 그들은 우리 인간을 위한 활동으로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안에 이미 잉태된 큰 힘의 뜻을 받들어 넘치는 기쁨 속에 피고 지저귀고 빛나는 것이래.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안에서 번져 나오는 거다. 맑고 투명한 얼이 안에서 밖으로 번져 나와야한단 말이다. 사람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어째서 그럴까. 서로 뒤바뀌지 않게 알아볼 수 있도록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렇게 빚어놓은 것일까? 아닐꺼야, 아니고말고. 그건 저마다 하는 짓이 달라서 그런 거지. 얼굴이란 말의 근원이 얼의 꼴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한 사람의 얼굴 모습은 곧 그 사람의 영혼의 모습일 거다. 아름다운 얼굴은 지금까지 아름다운 행위를 통해 아름답게 얼을 가꾸어와서 그럴거고, 추한 얼굴은 추한 행위만을 쌓아왔기 때문에 그럴 거야. 그렇다면 아름답고 추한 것은 나 아닌 누가 그렇게 만들어놓은 게 아니라, 내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그러한 꼴(탈)을 덮어썼다는 것이지. 어이, 욕지거리를 잘하는 미인을 상상할 수 있겠어? 그건 결코 미인이 아니야. 그리고 속이 빈 미인을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또한 슬기로움과 서로 이어져야 해. 슬기로움은 우연하게 얻어지는 게 아니거든. 순수한 집중을 통해 자기 안에 지닌 빛이 발하는 거지. 나는 네가 시험 점수나 가지고 발발 떠는 그런 소녀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물론 골빈당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네가 있음으로 해서 네 이웃이 환해지고 향기로워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소녀라는 말은 순결만이 아니라, 아름답고 슬기로운 본질을 가꾸는 인생의 앳된 시절을 뜻한다. 너의 하루하루가 너를 형성한다. 그리고 멀지 않아 한 가정을, 지붕 밑의 온도를 형성할 것이다. 또한 그 온도는 이웃으로 번져 한 사회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너의 "있음"은 절대적인 것이다. 없어도 그만인 그런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누이야, 이 살벌하고 어두운 세상이 너의 그 청청한 아름다움으로 인해서 살아갈 만한 세상이 되도록 부디 슬기로워 지거라. 네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라. 그것이 곧 너 자신일 거다.
(종현, 1971.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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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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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1장 로마의 탄생
제2대 왕 누마
알맞은 시기에 인재가 알맞은 자리에 등용되어 능력을 발휘하는 예는 융성기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로마 역사도 상당히 오랫동안 이런 예를 보여주지만, 누마의 즉위도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마는 로물루스의 초빙을 받고 로마로 이주한 동포들과는 달리,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 남은 사비니족이었다. 농사를 짓는 한편, 지식 탐구에도 힘쓰는 주경야독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높은 덕망과 깊은 교양은 로마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라틴파와 사비니파의 대립으로 경직 상태에 빠진 로마 원로원은 누마를 만장일치로 왕으로 추대했다. 사비니족의 땅까지 누마를 찾아간 장로들은 이 사실을 그에게 전하고, 왕위에 앉아 달라고 부탁했다. 누마는 처음 얼마 동안은 거절했다. 그는 이미 나이 마흔 살이 되어 있었다. 그 시기의 마흔 살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삼고초려의 요청을 받은 누마는 결국 장로들의 뜻을 받아들여 그들과 함께 로마로 갔다. 로마에 들어간 누마는 헐렁하고 긴 겉옷(토가) 끝으로 도끼자루에 한 묶음의 막대기를 묶은 왕의 권표를 받쳐들고 그 뒤를 따르지도 않았다. 민회의 찬성을 얻어 정식으로 왕위에 오른 누마는 신권정치를 할 생각은 없었다. 로마의 왕은 왕이 곧 신인 이집트의 파라오와는 다르다. 신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신관적 색채가 짙은 메소포타미아의 왕과도 다르다. 또한 부유하고 유력한 일족의 우두머리라는 느낌이 강한 그리스의 왕과도 달랐다. 로마의 왕은 신의 뜻을 나타내는 존재가 아니다. 공동체의 뜻을 구현하고, 그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존재다. 죽을 때까지 왕위에 앉기는 하지만, 왕위를 세습하지도 않는다. 또한 선거를 통해 뽑힌다. 로물루스한테도 아들이 있었지만, 그 아들이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당시 로마에서는 생각조차 못한 일이었다. 로마의 왕은 군주라기보다는 오히려 종신 대통령에 가까웠다.
역사가 이비우스는 (로마사)에서 누마의 업적을 소개할 때,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왕위에 오른 누마는 법과 픙습을 개선하여, 그때까지 폭력과 전쟁으로 기초를 쌓은 로마에 건전함을 주고자 했다." 여기서 법이란 법률 제정이라기보다는 질서 확립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우락부락한 성격이 강한 당시의 로마인에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치고, 자기 힘의 한계를 아는 동시에 그 한계를 뛰어넘는 전재에 대한 경외심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누마는 출입문의 수호신이며 전쟁의 신이기도 한 야누스에게 바치는 신전을 지었다. 야누스 신은 입구와 출구라는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반대방향을 향한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된다. 누마는 완성된 야누스 신전의 앞문과 뒷문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이 문은 전시에는 열리고 평화시에는 닫힌다고 말했다. 누마가 로마를 다스린 43년 동안, 이 문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덧붙여 말하면, 이 문은 누마가 죽은 뒤에는 줄곧 열린 채로 세월이 흘렀다. 기원전 240년에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뒤 잠시 닫혔지만 곧 다시 열렸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은 뒤에 시작된 내란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무찌른 기원전 31년에야 세 번째로 닫혔다고 한다. 누마는 이 시기를 로마에는 방어를 위한 전투말고는 어떤 싸움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으레 따라 다니는 것이었지만, 구태여 약탈을 하지 않아도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누마는 로마 시민들을 각종 직능별로 분류하고, 모든 시민이 독자적인 수호신을 갖는 단체에 소속되도록 했다. 목수조합, 철공조합, 염색공조합, 도공조합 등이 있었다. 직능별 단체를 결성한 것은 백성들에게 직업에 대한 긍지를 갖게 하려는 목적보다는 라틴족과 사비니족의 부족간 대립을 막으려는 목적이 더 강했다. 로마에는 이 두 부족 외에도 여러 민족이 유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트루리아인 공동체까지 결성되어 있었다. 건국 당시부터 로마는 다민족 국가였다. 이런 종류의 국가에서 일어나기 쉬운 마찰을 미리 막지 않고는 국가로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누마는 백성들의 일상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달력도 개혁했다. 로물루스 시절의 로마에서는 1년의 날수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누마는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1년을 12달로 정하고, 일년의 날수를 355일로 결정했다. 남는 날수는 20년마다 결산한다. 누마가 정한 이 달력은 율리시스 카이사르가 1년을 365일로 개정할 때까지 650년 동안 로마인의 일상을 관장하게 된다. 또한 1년 동안 각 달의 배치도 3월이 첫달이었던 것을 세번째 달로 바꾸고, 11월과 12월이었던 달을 앞으로 가져와서 각각 1월과 2월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각 달의 명칭까지는 바꾸지 않았다. 사람들이 익숙해진 것까지 바꿈으로써 생기는 혼란을 피하게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9월 이후의 명칭이 본래의 의미와 어긋나게 되었다. 다음의 표는 각 달의 명칭인데, 우리말과 라틴어와 영어 순서로 되어 있다. 라틴어에서 직접 파생되지 않은 영어를 든 이유는 그 영어 역시 로마 문명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누마는 1년 동안의 축제일과 휴일도 정비했다. 매달 아홉번째 날과 열다섯번째 날에는 장이 선다. 밭일에서 해방되어 저마다 수확물을 가지고 모이는 이 날이 로마인의 휴일이었다. 그밖에 저마다 수확물을 가지고 모이는 이 날이 로마인의 휴일이었다. 그밖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축제일이 있다. 축제일은 1년에 45일을 헤아렸다고 한다. 나라에서 공식으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이 축제일에는 모든 공무를 쉬었다.
제2대 왕 누마의 업적 가운데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종교에 관한 개혁일 것이다. 누마가 통치하기 전에도 로마인은 이미 많은 신을 섬기고 있었다. 누마는 그런 신들을 정리했다. 나중에는 그리스 신들과 혼동하게 되었지만, 신들의 왕인 유피테르 신(그리스에서는 제우스, 영어로는 주피터), 그의 아내인 유노 여신(그리스에서는 헤라, 영어로는 주노), 미와 사랑을 관장하는 베누스 여신(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 영어로는 비너스), 수렵의 여신 디아나(그리스에서는 아르테미스, 영어로는 다이애나), 그리고 학문과 예술의 신 아폴로와 지혜의 여신 아테네, 전쟁의 신 마르스도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로마에서도 중요한 신이었다. 그밖에 야누스 신을 비롯하여 예로부터 내려온 라틴족의 고유한 신들도 있다. 선왕 로물루스도 죽은 뒤에 신격화되어 신이 되었다. 누마는 이런 신들을 정리하여 계급을 부여했다. 하지만 어떤 신 하나를 정하여, 이것이야말로 로마의 신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신들을 공경하는 일의 중요함을 가르쳤다. 그리스와 로마로 대표되는 다신교와 유대교 및 기독교를 전형으로 하는 일신교의 차이는 다음 한 가지뿐이라고 생각한다. 다신교에서는 인간의 행위나 윤리도덕을 바로잡는 역할을 신에게 요구하지 않는 반면, 일신교에서는 그것이 바로 신의 전매특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다신교의 신들은 인간과 똑같은 결점을 지니고 있다. 윤리 도덕을 바로잡는 역할을 맡지 않기 때문에, 결점을 지니고 있어도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일신교의 신은 완전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버려두면 감당할 수 없게 바로잡는 것이 신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모세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은 열 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1.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 2.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3.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적질하지 말라. 9.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0.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
무엇에나 어디에나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네 왕이었던 사람까지 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로마인에게는 우선 첫 번째 계율부터 적합하지 않다. 또한 신망만이 아니라 선조의 조상을 새기는 것도 좋아한 로마인에게는 두 번째 계율도 인연이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 계율 역시 로마인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아뿔사!" 하고 말하는 대신, 유피테르 신이나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부르는 버릇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번째 계율은 안식일에 관한 것인데, 로마인의 휴일은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말고는 아무일도 하지 않는 날이 아니라, 평소에 늘 하는 일만 하지 않는 날이었다. 다섯 번째부터 열번까지의 계율은 로마인도 지키는 편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6개 항목은 윤리도덕에 속한다. 종교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짐승에 머무르느냐 아니면 인간답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시키지 않더라도 보통은 누구나 지키려고 애쓸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유대교에서 파생한 기독교에서는 모세의 십계명 가운데 첫 번째 계율만은 유대교에 충실하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신교지만, 그밖의 계율은 모두 다신교 방식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상을 새기고, 신이나 주님의 이름도 '함부로' 부른다. "아뿔사!"하고 말하는 대신, "오, 나의 하나님!"이나 "예수님!" 하고 외친다. 안식일에도 스포츠 같은 것을 하면서 즐긴다. 그렇게 때문에 세계 종교가 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섯 번째부터 열번째까지의 계율에 나타나 있는 입장, 즉 인간의 행위나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종교 분야에 속한다는 것은 기독교도 유대교와 전혀 다르지 않다. 타협의 명수였다는 것은 곧 인간 심리를 잘 통찰하는 명수였다는 뜻이지만, 그런 기독교도 어디까지나 일신교였다.
그런데 로마신은 신에게 자기네 윤리도덕을 바로잡는 역할을 요구하지 않은 대신 무엇을 요구했을까. 그것은 바로 수호신 역할이다. 수호를 요구한 것이다. 수도 로마를 지키는 것은 최고신 유피테르를 비롯한 신들이고, 싸움터에서는 군신 마르스나 야누스 신이 그들을 지켜주고, 농업은 케레스 여신이, 포도주 제조는 바쿠스 신이, 경제력 향상은 메르쿠리우스 신이, 병이 나면 아이스쿨라피우스 신이 지켜주고, 행복한 결혼과 여자를 지켜주는 것은 유노 여신이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지만, 로마인은 이런 수많은 신들이 자기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로마에는 추상적 사고를 장기로 삼는 그리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신들이 살게 된다. 이것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로마인의 성향이 낳은 결과이기도 했다. 또한 로마인은 타민족의 신들도 배척하지 않았다. 배척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신은 수호신이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구석구석까지 관심을 가지고 잘 보살펴 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고대 로마의 수호신은 아무 일도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까지 지켜주는 너그러운 신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옆에서 돕는 것이야말로 수호신이 마땅히 지녀야 할 모습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유쾌한 예가 바로 비리프라카 여신이다. 이 여신은 부부 싸움의 수호신으로 되어 있었다. 부부싸움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지만,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말다툼이 시작된다. 둘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장하는 목청도 점점 높아진다. 잠자코 있으면 진다고 생각하니까, 상대가 입을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떠들게 된다. 이렇게 되면 상대도 발끈해서 그만 저도 모르게 주먹이 나갈 뻔하지만, 꾹 참고 둘이서 비리프라카 여신을 모시는 사당에 간다. 거기서는 여신상이 있을 뿐, 신관도 없고 아무도 없다. 신전에서 사당에 이르기까지 신을 모시는 모든 성소에 신관을 배치하려면 로마 인구를 전부 다 동원해도 모자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여신의 사당에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었다. 신을 믿는 로마인은 감시자가 없어도 그 규칙을 지켰다. 비리프라카 여신 앞에서 지켜야 할 규칙은 한 번에 한 사람씩 차례로 여신에게 호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어느 한쪽이 여신에게 호소하는 동안 다른 한쪽은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잠자코 듣고 있노라면 상대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양쪽이 되풀이하는 동안 흥분했던 목청도 조금씩 가라앉고, 결국에는 둘이서 사이좋게 사당을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 신에게 수호를 요구하는 그리스-로마적인 사고방식은 생각해보면 인간성에 적합한 자연스러운 욕구다. 유대교보다는 유연성이 풍부한 기독교, 특히 카톨릭 교회가 이 점에 주목했다. 하지만 기독교는 일신교다. 그래서 수호신의 역할은 성자들이 대신 맡게 되었다. 이것도 쓰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어쨌든 오쟁이진 남편을 수호하는 성자까지 있었을 정도니까. 기독교에서는 '수호신'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수호성신'이라고 불렀다. 덧붙여 말하면, 근대국가 이탈리아에도 수호성신이 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바로 이탈리아의 수호성신이다. 하지만 절충에 뛰어난 기독교도 부부싸움을 담당하는 수호성신까지는 배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누마는 로마인을 지키는 신들에게 봉사하는 신관 조직을 정비했다. 신관계급의 우두머리는 최고신관(폰티펙스 막시무스)이 맡는다. 그 밑에 5명 내지 10명의 대신관이 있다. 그밖에 성화를 지키는 무녀(베스타)들이 있었다. 이들은 30년 동안 무녀로 근속하는데, 그 동안 처녀성을 지켜야 했다. 그밖에 새가 나는 모습이나 모이를 쪼아먹는 방법을 보고 공사의 길흉을 점치는 10명 정도의 사제가 있었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흉하다는 점괘가 나오면 군단이 철수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적인 로마인에게 그런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우선, 흉하다는 점괘가 나온 경우에도 그것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효력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제가 눈을 감으면 그만이다. 또한 길흉을 판단하는 것은 사제들의 임무였기 때문에, 그들이 점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길흉이 결정되는 실정이었다. 새가 군단 지휘관이 바라는 점괘를 내놓게 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요컨대 병사들이 길조라고 믿으면 그만이다. 윗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깨어 있었다. 하지만 로마의 종교를 생각할 때 특히 주목해야 할 특징은, 다른 민족과는 달리 로마에는 전임 신관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로마인은 세속의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신과 인간 사이에서 중개 역할만 하는 사람을 따로 두지 않았다. 로마의 대신관과 사제들은 신의 가르침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신을 대신하여 신의 존재를 지상에서 보여주는 사람도 아니다. 신관이나 사제가 되는 데에는 특별한 능력도 필요없고, 그 능력을 기르는 훈련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녀를 제외하면 보통 사람과 똑같은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최고신관부터 사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직자는 민회에서 선거로 결정되었다. 집정관을 비롯한 정부 관리와 아무 차이가 없다. 말하자면 국가 공무원이다. 신관에 대한 고마움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이점도 적지 않았다. 고정된 계급이 아니니까, 다른 계급이나 관직에 대한 질투심이 생기지 않는다. 자기가 속해 있는 계급을 보전하기 위해 종교를 지나치게 존중하는 일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이런 로마에서는 종교와 정치의 불화나 유착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정교 분리를 참으로 자연스럽게 정착시킨 것이야말로 누마가 이룩한 가장 중요한 업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력 기원이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바뀔 무렵에 살았던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니시오스는 '고대 로마사'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로마를 강대하게 한 요인은 종교에 관한 사고방식이었다." 로마인에게 종교는 지도원리가 아니라 버팀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종교를 믿음으로써 인간성까지 속박당하는 일도 없었다. 강력한 지도원리를 갖는 것에는 이점도 있지만, 자기와 종교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디오니시오스에 따르면, 광신적이 아니기 때문에 배타적이지도 않고 폐쇄적이지도 않은 로마인의 종교는 이교도나 이단이라는 개념과도 거리가 멀었다. 로마인은 전쟁을 하긴 했지만, 종교전쟁은 하지 않았다. 일신교와 다신교의 차이는 단순히 믿는 신의 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의 신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도 차이가 있다. 남의 신도 인정한다는 것은 곧 남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누마의 시대부터 2천 70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우리는 일신교적인 속박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의 윤리도덕이나 행위를 바로잡는 역할을 맡아주는 형태의 종교를 갖지 않을 경우, 짐승과 같은 상태에 바지고 싶지 않으면 개인이든 국가라는 공동체든 간에 자기정화 체제를 가져야 한다. 로마인에게 그것은 가부장의 권한이 매우 강한 가정이었고, 로마인이 창조한 이것이야말로 아무리 로마를 싫어하는 사람도 좋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법률이었다. 종교는 그것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 사이에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은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니,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사이이기 때문에 법이 필요하다. 로마인이 누구보다도 먼저,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하게 법의 필요성에 눈을 뜬것도 그들의 종교가 가진 성격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덧붙여 말하면, 로마인과 마찬가지로 윤리도덕을 바로잡는 역할을 신에게 요구하지 않은 그리스인은 그 역할을 철학에 요구했다. 철학은 그리스에서 태어났다. 특히 소크라테스 이후 그리스 철학의 흐름은 그리스인의 이런 사고 경향이 맺은 열매다. 인간의 행동 원칙을 바로잡는 역할을,
종교에 맡긴 유대인. 철학에 맡긴 그리스인. 법률에 맡긴 로마인.
이것만 보아도 이 세 민족의 특성이 떠오를 정도다. 그거야 어쨌든, 누마는 다양하고 근본적인 개혁을 어떻게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왕위에 올랐을 때의 누마는 로마 시민도 아니었다. 또한 로물루스 시대에 로마로 이주하여 라틴족과 로마의 기둥이 된 사비니족한테서 전폭적인 지원를 받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누마는 지지세력도 없고 혈연관계도 없는 한 이방인으로서 왕이 된 것이다. 비록 원로원의 요청에 따라 왕위에 올랐고 민회에서 정식으로 승인을 받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약했다. 원로원은 누마가 못마땅하면 로물루스처럼 암살할 수도 있었고, 민중의 지지도 변덕스럽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사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별로 많지 않으니까, 말로 설득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로물루스는 민중이 쉬운 군사적 성공이라는 힘을 갖고 있었지만, 누마에게는 이것마저도 없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선왕 로물루스의 호위대였던 300명의 병사를 해임했다. 그리고 왕을 상징하는 보라색 옷이 아니라 신관이 입는 하얀 토가를 걸치고, 혼자서 자주 숲속에 틀어박혔다. 누마가 숲속에서 님프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사람들은 누마가 님프를 통해 신들로부터 계시를 받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누마는 숲에서 나올 때마다 새로운 개혁안을 민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민회는 그 개혁안을 모두 승인했고, 원로원은 만장일치로 동의를 표했다. 권력이란 거칠고 우락부락한 형태로만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이 누마는 43년 동안 로마를 다스린 뒤, 님프들의 마중을 받으며 평온하게 저세상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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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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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편견
연인이 공원을 산책했다. 날씨는 젊음과 낭만을 담고 있는 듯, 젊은이들이 즐기기에 알맞게 화창했다. "저 벌새 좀 보세요. 저 새는 1분에 수천 번도 더 날개를 퍼득거려요." 여자가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 저 새들은 부리로 입을 맞추기도 하지." "우리도 그렇게 해요." 여자가 애원조로 말했다. 남자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에이... 나는 내 팔을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없어."
- 그대는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대는 오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대의 편견은 계속된다. 듣는 법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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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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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50. 희곡과 소설의 개화 - 원대 서민문화의 발달(13~14세기)
중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호적 등이 백화문학 운동을 벌이게 되면서, 원대의 문학이 새롭게 주목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귀족 문학이 운율이나 고도의 형식미를 추구하는 문어체였던 것에 반해, 원대를 대표하는 희곡이나 소설은 일상언어에 가까운 구어체, 즉 백화로 씌어진 자유로운 통속문학이다. 송대에 도시시민을 중심으로 싹트기 시작한 서민적 문화가 원대에 이르러 더욱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원대에는 전통직으로 정계진출을 의중에 두고 있던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그 길이 제도적으로 막혀 있었기에 그들의 재능과 분노가 이러한 새로운 문학형식을 통해 표출되엇다. 그들은 서회라는 일종의 작가 클럽을 구성, 창작활동을 펴기도 했다. 또 이러한 구어체 문학은 중국의 고전적 지식이나 교양에 익숙치 못하고 소박한 생활태도를 지녔던 원나라의 지배층의 정서에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원대에 더욱 진전된 도시의 발달, 인쇄술의 보급 등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촉진했다. 새로이 성장한 도시의 신지식층 중에서도 새로이 작가가 등장했고, 도시서민에게 확산된 새로운 문화는 향촌에도 널리 확산, 민간의 숨결을 담아내게 되었다. 이제 문학의 주인공은 고급 관료 학자나 과거의 뛰어난 영웅에 제한되지 않고, 이름없는 서민이나 군인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원대의 희곡을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형식으로 여겨, 흔히 원곡이라고 표현한다. 한부, 당시, 송사라고 하듯이. 원곡이란 잡극이라고 불리는 연극의 대사다. 잡극은 영국의 엘리자베스 시대처럼 무대장치나 소도구가 없는 무대에서 연기자들의 춤과 노래로 공연되었는데, 비파를 주악기로 하는 관현악도 등장하였다. 말하자면 연극과 오페라의 중간 정도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4막으로 구성되었고, 도시의 극장에서 널리 공연되었다. 잡극은 이미 송대에 유행하기 시작하였고, 원곡도 송대부터 내려오던 것이 정리된 형태가 많다. 흔히 작가의 출신지나 노래의 격조에 따라 남, 북곡으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1000여 편에 달하는 연극의 이름이 전해져내려온다. 명나라 때 장진숙이 명작만을 모아 (원곡선백인집)을 간행했는데, 북곡으로는 관한경의 (두아원), 마치원의 (한궁추), 왕실보의 (서상기)가, 남곡으로는 고칙성의 (비파기)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서상기)는 남녀간의 사랑의 정서를 표현, 봉건윤리에 대한 강한 반항을 나타내고 잇으며, (비파기)는 주인공 왕사가 본처를 버리고 권문세가에 재가, 부귀영화를 꾀하는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한편, 관한경은 많은 소재를 훌륭히 소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희곡 63편을 남겨 중국 연극사상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그는 희곡 (불복로)의 대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아무리 찌거나 삶아도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때리고 볶는다 해도 끄떡없는 생생한 완두콩이다"
(두아원)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일찍이 고아가 된 두아에게 슬픔은 끝없이 펼쳐진다. 그녀는 외동아들을 둔 채씨부인의 민며느리로 팔려가고, 19살에는 남편과 사별한다. 비통한 마음을 추스르고 시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살아보려는 그녀에게 이번에는 음흉한 장여아가 그의 아버지와 함께 들이닥쳐서 결혼을 강요한다. 두아가 이를 완강히 거절하자 장여아는 먼저 양고기 수프에 독약을 넣어 채씨부인을 독살하려다가 그의 아버지가 이를 잘못 마셔 즉사한다. 다시 결혼을 거절당한 장여아는 두아에게 살인죄의 누명을 씌워 관에 넘긴다. 이미 뇌물을 두둑히 받은 초주 태수는 갖은 구타와 물고문으로 허위자백만을 강요하더니, 끝까지 저항하던 두아에게 이번에는 그녀의 효심을 이용, 채씨부인을 고문하려 한다. 두아는 일단 물러났다가 다른 재판관의 무죄판결을 기대했으나, 역시 마찬가지. 두아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천지신명이시여, 그대는 어찌하여 세상의 옳고 그름을 그렇게도 분간할 줄 모른단 말씀이오. 땅이여, 너는 어째 그리 선악을 분간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러고도 땅이라 할 수 있는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두아의 울부짖음이다. 그녀의 마지막 유언처럼 그녀의 목이 잘리는 순간 하늘에서는 갑자기 먹구름이 일며 눈이 펄펄 날리고, 그녀의 피는 한 방울도 땅을 더럽히지 않고 깃대의 흰 천 위에 흩뿌려졌다. 초주에는 3년 동안 한발이 계속된다. 희곡이 주로 도시를 배경으로 성장했다면, 소설은 구래의 이야기가 직덥적 만담가들에 의해 정리, 일반 민중들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갔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삼국지연의), (수호지) 등의 틀이 이 시기에 마련되었다. (삼국지)는 진수의 역사서 (삼국지)를 낭만적 형태로 소설화한 것이고, (수호지)는 송 휘종 때의 민란세력인 양산박의 송강 등을 소재로 한 모험소설이다. (삼국지연의)는 나관중, (수호지)는 시내암이 지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모두 14세기에 활동한 인물들이니, 대체로 이 작품들이 원말 명초에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정리된 것으로 보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들 문학은 중국문화의 위대한 생명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것으로, 명청대의 지식인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으나, 이미 서민대중의 가슴속에 깊이 파고들어 수없이 개작, 보충되면서 중국문학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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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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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 뚜껑에서 밝혀지는 진실 - 蓋棺事定(개관사정) 蓋(덮을 개) 棺(널 관) 事(일 사) 定(정할 정)
두보(杜甫)가 사천성(四川省)의 한 산골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을 때이다. 마침 그곳에는 자신의 친구 아들인 소계(蘇係)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는 소계에게 한 편의 시를 써서 그를 격려하고자 하였다. 그의 군불견 간소계(君不見 簡蘇係) 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길 가에 버려진 못을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부러져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년되어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만들어지며 / 조그만 물웅덩이 속에도 큰 용이 숨어 있을 수 있네. / 장부는 관 뚜껑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결정되는 법이네(蓋棺事始定) / 그대는 다행히도 아직 늙지 않았거늘.....
이 시를 읽은 소계는 후에 그곳을 떠나 호남 땅에서 설객(說客)이 되었다고 한다. 蓋棺事定 이란 죽어서 관의 뚜껑을 덮은 후에라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 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죽은 이의 업적을 찬양하기도 하고, 생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80년 5월에 관 뚜껑이 덮혀졌던 많은 이들, 그들은 거의 20년만에야 자신들의 자리가 정해지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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