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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97호
2010.10.13 (음 9.6)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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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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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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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인식개선을 위한 창작동화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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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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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자기를 맏지 않고 타인의 믿음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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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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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과 드림
편지를 받는 상대를 높일 때 쓴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에는 ‘드림’이라고 하지 않는다. 높임의 정도가 다르다. ‘올림’은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상사와 부하 등 상하관계, 서열이 뚜렷할 때 사용한다. ‘드림’은 상하관계는 아닌 사이에서 사회적 관계를 위해 상대를 높여 줄 때 주로 쓴다. ‘드림’보다 ‘올림’이 더 공손해 보인다.
구명과 규명
‘어떠한 사실을 밝힌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자세히 살피면 구명(究明)은 사물의 본질이나 법칙, 원인 등을 깊이 연구해 밝힌다는 뜻이다. 학구적 행위를 말한다. ‘그는 그 원리 구명에 평생을 바쳤다.’ 규명(糾明)은 잘못한 행동을 올바르게 밝히거나, 어떤 사건이나 사태의 진상을 따져서 밝히는 일이다. ‘그들은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나발과 나팔
다음 중에서 틀린 표현을 찾아보자.
그는 "공연히 ①나발 불지 말고 잠자코 있어" 하고 위협했다. 이별의 괴로움을 잊으려고 병째 ②나팔을 불었다. 아이들이 ③손나팔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아기가 시끄럽게 계속 ④나발을 분다. 끝까지 시치미를 떼야지 괜히 ⑤나팔을 불었다가는 끝장이야.
정답은 ③번이다. '당치 않은 말을 함부로 하다' '술이나 음료를 병째로 마시다' '어린아이가 소리 내어 시끄럽게 울다' '어떤 사실을 자백하다'라는 의미를 속되게 나타낼 때 "나발을 불다"라는 관용구만 사용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때는 "나팔을 불다"로 바꿔 써도 무방하다. 그러나 '손나팔'은 '손나발' 과 넘나들어 쓸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손나팔을 북한어로만 처리하고 있다.
나발은 우리의 전통 관악기이고, 나팔은 서양 관악기다. 이 둘은 크게 보면 끝이 벌어진 모양새가 비슷하다. 표준국어사전은 손나발을 '손을 입에다 대고 마치 나팔을 부는 것처럼 소리를 내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손나팔'을 인정해도 좋지 않을까. 악기의 모양에서 나온 말이라면 두 단어의 뜻에 큰 차이가 없고 더구나 인터넷 등을 보면 손나팔의 세력이 더 큰 게 현실이다.
눈꼬리와 눈초리
은림의 눈꼬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 (공지영, ''고등어'') 주모가 살살 녹아내리는 웃음을 눈꼬리에 담으며 눙치고 들었다. (조정래, ''태백산맥'')
위 문장에서 '눈꼬리'라는 말의 쓰임에 주목해 보자. 대부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행 어문 규범을 따르려면 위 문장의 '눈꼬리'는 '눈초리'로 모두 바꿔 써야 한다. 표준어 규범이 '눈꼬리'를 '눈초리'의 잘못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은 일반 언중의 직관과 충돌한다. 곧 '눈꼬리'는 '가늘게 좁혀진 눈의 끝 부분'으로, '눈초리'는 '어떤 표정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시선'으로 인식하는 것이 한국어 화자의 직관이다. 그리하여 눈꼬리는 올라가거나 처지거나 찢어졌다고 말하고, 눈초리는 사납거나 매섭거나 날카롭다고 말한다.
이런 언어 현실을 도외시하고 '눈꼬리'를 비표준어로 정한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날 '눈초리'가 '눈꼬리'의 뜻으로 쓰였다 하더라도('눈초리'의 '초리'는 '꼬리'의 옛말이다), 오늘날 의미 분화를 일으켜 '눈초리'와 '눈꼬리'가 별개의 단어가 되었음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됐다. 이제라도 '눈꼬리'는 규범어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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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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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상품 - 최혜리
가슴에 넣을 수 있습니다 여자 로봇 하나 사시겠어요 옆구리에 포인트를 주었죠 특별세일 기간이예요 6개월 동안은 부드럽게 특수 칩을 삽입해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인사 잘해요 천사 표니까요 아, 글쎄 보증한다니까요 파티에도 가야 한다구요? 그럼 이브닝드레스를 드리지요 하이힐은 옵션이예요
너무 심심하다구요 그렇다면 다른 종류를 보여드리죠 이건 요리 잘 하는 여자예요 네 네, 잔소리도 잘 하죠 노래를 할 줄 아냐구요 울기도 하죠
대여는 안되냐구요 죄송합니다 잔소리는 싫다구요 그럼 잠들 수 있도록 장미꽃을 준비해주세요 와인도, 오늘 밤 옵션은 당신의 유전자를 바꿔드릴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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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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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 이영지 - 새벽기도. 1530 -
어머니 보고싶어
이밤은 깊은 샘이 울기에 나도 앉아 우물을 길어올리며 밤을 새워 봅니다
하늘꽃 실타래에 순이도 흠뻑젖고 돌이도 둥둥뜨는 아침의 바람들이 별꽃이 별마당으로 열두고랑 푸네요
어머니 길이에는 하늘꽃 해바라기 돌아온 발길위엔 푸른 들 열두고랑 별빛이 녹아들어가 별빛푸름 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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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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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둑 콩 심고 - 신현득
논둑 콩 심고 논둑에 서서 앞산에서 건너오는 뻐꾸기 소리 듣는다.
새소리 끝에인가 바람결엔가? 욱--- 욱--- 한 들판 파란 모가 뿌리내리는 소리.
욱--- 욱--- 한 들판 파란모가 키 크는 소리. 봇도랑 물소릴 흉내내면서 햇볕이 내려와 속삭이는 소리.
농부의 땀방울이 파란 포기로 한 해의 양식으로 자라는 들판.
논둑 콩 심고 건너보는 논배미에
욱--- 욱--- 모포기들이 힘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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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시조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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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時(사시) 봄 여름 가을 겨울
도연명 陶淵明 365 ~ 427
春水滿四澤 (춘수만사택) 봄 물은 연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峰 (하운다기봉) 여름 구름은 산봉우리들처럼 떠 있네.
秋月揚明輝 (추월양명휘)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비추고
冬嶺秀孤松 (동령수고송) 겨울 산마루엔 큰 소나무 한 그루 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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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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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4장 꿈이 서린 계절의 회상을 위하여 -《scrap(그리운 1980년대)》
'뉴요커'지의 소설 -뛰어난 단편은 쉽게 읽을 수 있고, 마음에 무엇인가를 남긴다
외국 잡지를 읽는데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광고만 읽는 사람도 있고, 서평만 읽는 사람도 있으며, 레이아웃만 보는 사람도 있다. 최신 정보 칼럼을 골라서 읽는 사람도 있고, 핀업(역주:벽에 붙이는 육감적인 미인의 사진)만 전문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한때 미국판《플레이보이》지의 <인생 상담>코너만 읽었다. 나라가 넓어서 그런지 참으로 여러 가지 고민이나 질문이 실려 있어서 재미가 있었다. 비슷한 고민이라도 동양인과는 약간 보는 관점이 달랐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잡지를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뛰어난 단편 소설과 만나는 일이다. 신간의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면 기쁘다. 뿐만 아니라 들어 본 적도 없는 작가의 소설을 읽어 보았는데, 정말로 재미있었던 경우도 있다. 분명히 미국에서도 최근의 소설 특히 단편은 흉작이어서, 예전처럼《에스콰이어》지나《플레이 보이》지의 새로운 호를 손에 넣을 때마다 가슴을 설레는 일은 완전히 없어졌지만, 그래도(이런 말을 하는 것은 좀 뭣하지만) 일본의 잠지를 읽을 때보다는 재미 있는 소설이 많이 걸려든다. 최근에는《뉴요커》지에 실린 레이먼드 카버의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와 도널드 바세르미의 <벼락>이란 두 작품을 권하고 싶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홀딱 반할 만한 좋은 단편이다. <벼락>은 《포크스》라고 하는 잡지(물론《피플》지의 패러디)를 위해서 '벼락을 맞고서도 살아 남은 사람'의 인터뷰를 모으는 자유기고가의 이야기로서, 특별한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착상과 문장만으로 독자들을 끌고 나간다. 최후의 마무리도 자못 바세르미답게 감칠맛이 있다. 이러한 작품은 단편집 속의 한 편으로 읽는 것보다는 잡지에서 독립된 작품으로 읽는 편이 더 좋은 것 같다. 나는 앨러리 퀸 식으로, '독자에 대한 도전'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처음부터 밑천을 모두 드러내 보이고 어디까지 독자를 끌고 갈 수 있는가 하는 테크닉을 보여 주는 쇼 케이스다.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는 그것과는 달리, 과장이 없는 담담한 문제의 소설이다. 그러나 카버의 문장은 한 순간이라도 멈춰 서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돌진해 나간다. 알코올 중독으로 요양소에 들어가 있는 주인공이 같은 이유로 요양소에 들어온 청년과 마음을 서로 주고받는다는 이야기지만, 어두운 소재치고는 비극저긍로 흐르지 않아서 좋다. 쉽게 읽을 수 있고, 더구나 읽고 난 뒤에 마음에 무엇인가가 남는다. 뛰어난 단편이란 그런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무리 버텨 보아도 노쇠는 자기 몫을 확실히 빼앗아 간다. 체념하고 자기 나이를 기분 좋게 받아들여야 편안히 늙어 갈 수 있다
최근에 '스니커 미들'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요컨대, '단괴세대(역주:1948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사람이 많아서 연령별 인구 구성상 두드러지게 팽배한 세대>'가 나이를 먹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숨막히게 답답한 세대인데(나도 그 일원이지만), 그들이 모두 중년이 되어 버렸으니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무겁다. 아랫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정말 큰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동정한다. 그런데, 사람은 모두 나이를 먹는다. 그런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정말로' 어떻게되는가 하는 것은 나이를 먹어 보기 전에는 좀처럼 알 수가 없다. 머리가 벗겨지는 것은 어떠한 느낌일까, 성욕은 어느 정도 남을까, 노안은 어느 정도나 불편할까, 그런 일들 말이다. 노쇠는 생리적인 현상인데, 동시에 '그런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라는 의식이 미묘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재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다. 20세의 건강한 청년이 '어차피 나이를 먹게 되면 배가 나오고 머리도 벗겨지고 간이 나빠져서 죽을 테니까'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할 수 있는 일도 할 수 없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에스콰이어》지 5월호는 '남성의 노화'라는 문제에 정면으로, 그리고 정정당당하게 도전하고 있다. 제목은 <한 사람의 남자가 어떻게 나이를 먹어 가는가?>이다. 이 제목부터가 생경하고, 읽어 보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남성 잡지에서 잘도 이런 우울한 특집을 낼 수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넘버》·《브루터스》·《플레이보이》같으면, 이런 특집은 낼 수 없을 것이다. 내용은 너무나도 자세하다. 상당히 본격적인 데이터와 일러스트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리얼하다. 가령 새벽에 서는 횟수 같은 것도 실려 있다. 한 달에 20세가 6회, 30세가 7회, 50세가 5회,70세가 2회 선다고 한다. 사정 횟수는 20세가 1년에 140회(그 가운데 마스터베이션이 49회)고, 30세가 121회(10회)고, 40세가 52회(2회)고, 70세가 22회(8회)라고 한다. 이것은 미국인의 통계니까, 다소 차이가 나더라도 별로 고민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비교적 편안히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에스콰이어》지는 체념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체념하고 자기 나이를 기분 좋게 받아들여 나간 것이다. 아무리 버텨 보아도, 노쇠는 자기 몫을 확실히 빼앗아 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어두운 사실이 싫은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높은 수입을 얻고, 매일 조깅을 하면 좋다고 한다. 한때의 위안 정도일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부부간의 불화
-꽤나 눈물나게 하는 대사다. 미국에서 '성공의 기준은 대충 연수입 100만 달러 이상이나까, 나 같은 사람은 아직도 멀었다
(롤링 스톤)지의 8월 5일 호를 읽다 보니 존 어빙의 대걸작이며 동시에 베스트 셀러인 (가프의 세계)의 영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주연은 로빈 윌리엄스고, 감독은 <슬리터하우스 5>를 찍은 최루성 영화의 대천재 조지 로이 힐로, 7월 23일 미국전역에서 일제히 개봉되었는데, 워너 브라더스 작품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봐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피플지 7월 12일호의 가십난(잡지 전부가 가십 난 같긴 하지만)을 일고 있었는데, 우연히 존 어빙의 별거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존의 갑작스런 성공은 우리의 결혼 생활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어요"하고 부인인 샤일러(39세)는 이야기하고 있다. 존은 40세이고, 결혼한 지 18년이 되었으며, 매우 사이가 좋은 부부로 알려져 있었다. 샤일러는 프로 사진 작가다. "별거하는 데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어요"하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지금 버문트 집에 틀어박혀 소슬을 집필하고 있다. '붕괴와 분열의 이야기'라고 한다(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자기 선전을 하는 사람은 그다지 좋은 소설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 그녀는 "존과 함께 살았다면 틀림없이 소설 같은 것을 쓸 생각은 못했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존 어빙 씨는 버몬트의 집에서 나와 햄프턴 해안의 집과 맨해튼의 아파트를 왔다갔다하고 있다. "그는 집필하고 있으니까, 행복하지 않겠어요?"하고 샤일러는 태연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존의 갑작스런 성공은 우리의 결혼 생활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했어요" 꽤나 눈물나게 하는 대사다. 미국에서 '성공'의 기준은 대충 연수입 100만 달러 이상이니까, 나 같은 사람은 아직도 멀었다. 같은 호에 실린 유명인 이혼담을 계속 보면, 카펜터즈의 카렌 카펜터(32세)가 남편인 톰 뷰리스(41세)와 헤어졌다고 한다. "그는 내가 계속 찾아 헤매던 타입의 남성이에요. 다정하고도 강하죠"라고 카렌은 결혼할 때(1980년) 얘기했었다. 기사의 제목은 <그들은 지금 막 시작했다>였다. 그리고 비치보이스의 핸섬 보이, 데니스 윌슨이 헤어진 아내로부터 월 1만 달러의 생활비를 요구받고 악전고투하고 있다. 그는 그전의 아내에게도 매달 2,600달러씩 계속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빚이 53만 달러나 된다. 저런저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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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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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마음의 허구
사람들은 지나칠 만큼 허구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대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보통때와 어떻게 달라 보이던가? 그들은 운다. 스크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면 금새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의 삶에서는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그렇게 많은 사랑으로 넘치지도 않는다. 그들은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악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사랑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스크린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단지 빛과 그림자, 그리고 단순한 유희와 환상만이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 관객들을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왜 그러는 것일까? 인간은 현실보다는 환영에 더욱 흥미가 있는 듯하다. 만약 당신이 환상 속에서 꿈꾸는 어떤 사람을 깨우려고 한다면 그는 당신에게 화를 낼 것이다. 그는 우리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본의 아니게 그를 괴롭혔기 때문에, 그는 보복할 것이다. 인간은 이러한 마음의 허구와 끊임없이 도피하려고 하는 문제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도 기피하게 된다.
순수한 사랑
당신이 누군가에게 작은 사랑을 보여 준 뒤에 커다란 만족의 물결이, 커다란 기쁨의 전율이 당신의 온몸에 퍼져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만족의 가장 고요한 순간은 조건없는 사랑의 순간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아차린 적이 있는가? 순수한 사랑은 조건에 의해 뒤섞이지 않아야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조건이 붙은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띄워 보낸 후의 만족감을 당신은 느껴본 적이 있는가? 부드럽고 온화한 미풍이 그것에 뒤따르지 않았는가? 당신이 지쳐서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따뜻한 손길로 도와줄 때, 병든 사람에게 한아름의 꽃을 선사할 때, 고요한 기쁨이 당신에게 한없이 물결쳐 올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바로 당신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혹은 그녀가 당신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때에는 그렇지 않다. 아니, 상대방이 당신에게 특별한 존재여서는 안된다. 사랑은 우리의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솟구쳐 나와야 한다. 식물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낯선 사람에 대한 사랑... 그대의 사랑은 항상 늘어가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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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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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9장. 다시 여는 내 인생
돈 쓰는 기술
돈 쓰는 기술을 터득하라. 그것은 돈 버는 기술에 버금가는 것이다. 많이 벌어 가치 없게 쓰는 것보다는 적당하게 벌어 가치 있게 쓰는 것이 더욱더 현명한 돈 쓰는 기술이다. 돈 쓰는 기술이 좋아야 한다. 삶의 질은 순전히 돈 쓰는 기술에 달렸다. 돈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삶의 질은 천지 차이가 난다. 수입이 많다고 해서 삶의 질이 향상되고 수입이 적다고 해서 삶의 질이 바닥을 기는 것은 아니다. 수입이 많아도 돈 쓰는 기술이 잘못되어 있으면 가난을 면치 못하고 수입이 적어도 돈 쓰는 기술이 현명하면 부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돈이 있을 때는 마구 써 버리고 돈이 없을 때는 쩔쩔 매는 그런 태도는 버려야 한다. 돈이 없을 때는 절약해서 생활고를 덜고, 돈이 많을 때는 저축해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벌어 온 돈을 잘 간수하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어서는 쪼들림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한다. 무조건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좋은 기술은 아니다. 돈이란 써야 할 때가 있고 아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많은 액수라도 아낌없이 써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적은 액수라도 쓰지 말아야 할 때가 있고, 밥을 굶고서라도 써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돈이 흘러 넘쳐도 쓰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현명한 돈 쓰는 기술이란 바로 그 때에 맞게 돈을 쓸 줄 아는 것이다.
행동
행동을 조심하라. 행동이 곧 얼굴이다. 어떠한 행동을 하든 간에 그것은 그대로 얼굴에 새겨져 만인에게 선전된다. 어떠한 행동을 하든 한 점 흐트러짐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행동은 곧바로 자신의 얼굴이 된다. 옳은 행동이든 그른 행동이든 자신이 한 행동은 그대로 얼굴에 새겨지면 앞으로의 인생에 많은 애로가 따른다. 단 한 번의 잘못된 행동이라도 일단 얼굴에 새겨지면 아주 오랫동안 지우지 못한 채 불명예스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사람의 인간성을 판담함에 있어 기준이 되는 것은 행동이다. 모르는 관계에서는 외모로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관계에서는 행동에 의해서 새겨진 얼굴을 보고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한다. 외모와는 상관없이 행동이 겸손하고 바르면 좋은 사람이란 평가를 내리지만, 행동이 거만하고 그르면 서슴없이 나쁜 사람이란 평가를 내린다. 행동이 예뻐야 사랑받는다. 행동이 예쁘면 얼굴도 예뻐 보이고,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총애를 받는다. 행동이 예쁘지 않으면 아무도 예쁘게 봐 주지 않는다. 외모가 출중해도 엉뚱하고 미운 행동만 골라서 하면 사람들은 꼴불견 취급을 해 버린다. 잘생긴 사람 모두가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도 아니고 못생긴 사람 모두가 모든 이들의 미움을 받는 것도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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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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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11. 황금을 사랑하면 별을 잊어 버린다. - 미다스 왕의 황금손
그리스 신화에 소아시아 프리기아 왕국의 왕으로 등장하는 미다스는 크레타의 미노스 왕과 비슷하게 반은 역사적인 인물로 추정된다. 프리기아 왕국이 있었던 상가리우스 지역의 바위로 된 기념비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또 고대 앗시리아에서는 미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헤로도토스가 <역사>에기록해 놓은 바에 따르면, 상당히 명민한 통치자였던 미다스는 외적의 침입을 받고 B.C 700년경에 자살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미노스와 마찬가지로 미다스도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왕조의 이름이었으리라 추측한다. 미다스에 관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전해 오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저 유명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다. 임금의 귀가 당나귀 귀임을 알게 된 이발사가 임금의 언론 탄압(?) 때문에 여위어 가다가 결국 빈 들판에 구덩이를 파고 그 국가 기밀을 털어놓고 말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알다시피 그 뒤로 구덩이에서 갈대가 자라나 바람만 불면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속삭여대는 바람에 그 국가기밀이 그만 국민적 상식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미다스가 당나귀 귀를 가지게 된 억울한 연유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사연인즉슨 이러하다. 프리기아 땅에 사는 하신 마르시아스는 사슴뿔로 만든 피리를 기가 막히게 잘 불었다. 그래서 마르시아스의 피리 솜씨 앞에서는 아폴론의 수금 솜씨가 무색하겠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 기어이 아폴론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았다. 명색이 음악의 신으로서 듣기에 그다지 기분 좋은 소문은 아니었다. 해서 아폴론은 마르시아스를 찾아가 솜씨를 겨뤄 보자도 했다(아폴론과 솜씨를 겨룬 상대는 전하는 이에 따라 다르다. 목신 판이라고도 하고 사티로스라고도 한다. 또 마르시아스이기는 하나 그는 하신이 아나리 보통 인간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의 껍질을 산 채로 벗기자는 끔찍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마르시아스가 겁없이 내기를 받아들인 것은 상대가 아폴론인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폴론은 그때 제우스에게 벌을 받아 인간 세상에서 잠시 양치기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양치기 차림으로 와서는 자신이 누구라는 내색도 않고 그런 제안을 했던 것이니 이를테면 비겁한 함정 수사 였다. 그런데 이 두 신의 솜씨가 겨루기에 심판으로 초대된 이가 바로 산신 토몰로스와 미다스였다. 경연이 끝난 뒤 토몰로스는 아폴론의 승리를 판정했으나 미다스는 눈치 없이 마르시아스의 손을 들고 말았다. 노한 아폴론은 하신 나부랭이의 피리 가락과 음악의 신이 타는 수금 가락도 제대로 가려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미다스의 귀 같잖은 귀 를 그만 볼썽 사나운 당나귀 귀로 만들어 버렸다. 미다스로선 고래 싸움에 애꿎게 등이 터진 셈이었다. 신의 권위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자신이 좋다고 느낀 쪽의 손을 들어준 대목을 놓고 볼 때 미다스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는 왕이었던 모양이다. 비록 이발사 때문에 망신을 좀 당하긴 했지만 소신껏 살자면 늘 그만한 수난쯤은 따르기 마련이다.
저주받은 황금의 손
그런데 미다스는 소신만 있었던 게 아니라 풍류도 제법 아는 멋쟁이었다. 어느날 프리기아의 농부들이 술에 취해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노인을 데려왔다. 다름 아닌 주신 디오니소스의 양아버지이자 스승인 실레노스였다. 실레노스는 반인 반수의 사티로스 종족이었으나 지혜롭기로 유명했다. 후세의 철학자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실레노스에 비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미다스는 인사 불성의 노인이 실레노스임을 알아보고 자그만치 열흘 동안이나 주연을 베풀며 잘 대접했다. 이 사실을 안 디오니소스는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미다스에게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줄 테니 무엇이든 말해 보라고 하였다. 고기 수천마리를 얻는 것보다 고기 잡는 법을 배우는 게 낫다는 이치를 꿰고 있던 터라 미다스는 자신의 손이 닿는 것이면 무엇이든 금으로 변하게 해 달라고 대답했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의 청이 마땅찮긴 했지만 약속한 대로 소원을 들어 주었다. '원하는 대로 되리라'는 디오니소스의 말을 듣고 미다스는 처음엔 반신반의하였다. 그래서 가까이에 있는 참나무 가지를 한번 꺾어 보았다. 가지는 곧 황금 가지로 변했다. 그러고도 믿기지 않아 미다스는 이것저것 보이는 대로 손을 대보았다. 조약돌도, 잔디도, 사과도, 무엇이든 손이 닿기만 하면 모조리 금으로 변했다. 그러나 미다스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무나 놀랍고도 기쁜 나머지 미다스는 큰 잔치를 열었다. 흡족한 마음으로 포도주를 한 잔 들이키려는데 이게 웬일인가! 잔도, 잔 속에 든 술도 금으로 변해 버렸다. 빵ㅇ르 한 조각 먹으려 해도, 고기를 한 점 집으려 해도 손을 대는 순간 그것은 모두 금으로 변해 버렸다. 사방엔 금이 흘러넘치는데 미다스는 굵어 죽을 판이었다. 미다스의 황금손은 이제 횡재가 아니라 횡액이요 저주였다. 미다스가 자신의 탐욕을 뉘우치며 탄식하고 있을 때 하나뿐인 딸이 아버지를 위로하러 내전으로 들어왔다. 슬픔에 겨운 나머지 미다스는 위로하는 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아뿔싸, 애지중지 길러온 귀여운 딸마저 황금상으로 변하고 말았다. 엄청난 재앙 앞에서 넋을 잃은 미다스는 염치불구하고 디오니소스를 찾아가 딸만은 살려달라고 빌었다. 디오니소스는 미다스가 스스로 어리석음을 깊이 깨달았음을 알고 자비로이 일러 주었다. "팍톨로스 강으로 가되, 강의 원천까지 거슬러 올라가 거기에 그대의 머리와 몸을 담그고 탐욕과 어리석음을 씻어라." 미다스는 디오니소스가 시키는 대로 팍톨로스 강물에 몸을 씻고 황금의 저주에서 풀려났다. 그런데 황금을 만드는 미다스의 능력이 강물로 옮아가 강바닥의 모래가 모두 금모래로 변했다고 한다.
황금의 강, 그리고 골드 러쉬
북미 대륙은 어느 모로 보나 미다스가 몸을 씻었다는 팍톨로스 강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 그러나 1848년 1월 24일 아침, 신화속의 팍톨로스 강이 북미 대륙의 남서부에 현현하였다. 그날 아침, 스코들랜드 출신의 목수 제임스 윌슨 마샬은 세라네바다 산맥 기슭 아메리카 강변에 자리잡은 제재소의 방수로를 점검하고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기 때문에 혹시 방수로에 이상이라도 있을까 염려해서였다. 방수로엔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고 물 밑바닥의 진흙 위엔 자갈과 암석 조각이 가라앉아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 보던 어느 순간, 마샬은 자갈과 암석 조각 사이에 희미한 광택을 내는 콩알만한 물체가 섞여 있는 걸 보았다. 그는 둑에 쭈그리고 앉아 그 물체를 들여다 보며, 그의 표현을 빌리면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그것을 몇 알 주워 들고 자신의 상관인 요한 요거스트 사타에게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방문을 꼭 잠근 채 설레는 가슴을 달래며 <아메리카 백과사전>에 씌어진 대로 약제용 저울을 이용해 몇 번이고 테스트를 반복했다. 그 결과 마샬이 들고 온 물체가 뛰어나게 순도 높은 금이라는 사실이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해졌다. 두 사람은 누구에게도 이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비밀은 누설되고 말았다. 소문은 캘리포니아(이 때의 캘리포니아는 지금의 네바다·아리조나·유타주까지를 포함한 광대한 지역이었다)의 카우보이들을 거쳐 바다 저쪽의 하와이, 남쪽으로는 멀리 페루와 칠레까지 퍼져 나갔다. 6개월 뒤에는 미 동부 지역의 주요 도시에까지 소문이 닿았다. 처음엔 연안 무역에 종사하고 있던 선원들과 멕시코와의 전쟁 때문에 인근 몬테레이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이 금을 찾아 몰려왔다. 주둔군 사령관은 워싱턴의 중앙 정부에 '소문은 과장이 아니다.'는 보고를 했고, 이어 조폐국 국장이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금광석 중에는 순도가 98.7%나 되는 것도 있다 고 공식 확인했다.
12월 들어서는 급기야 포크 당시 미 대통령이 수많은 소문 중에서 '터무늬없이 공상적인 것을 빼면 사실이라고 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발언함으로써 골드 러쉬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져갔다. 1849년에 접어들면서 유럽·중남미·중국 등지에서까지 금에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몰려왔다. 49년 한 해 동안만 해도 금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의 수는 무려 8만에 육박했다. 이들을 일러 '포티아 나이너즈'라고 한다. 포티 나이너즈의 쇄도로 말미암아 미국 서해안 지역의 몇몇 소도시들은 동부의 대도시 못지 않은 대도시로 발돋움했다. 그 대표적인 도시가 바로 샌프란시스코이다. 오늘날 샌프란시스코에 포티 나이너즈 라는 미식 축구 팀이 있는 것도 그런 역사적 배경에서이다. 캘리포니아는 1850년에 미국의 정식 주로 편입되었는데 이 또한 삽시간에 몰려든 포티 나이너즈 덕택이었다.
포티 나이너즈는 과연 금을 찾았나
포티 나이너즈가 캘리포니아로 들어온 경로는 대개 세 가지였다. 북동부의 항구 도시에서 출발하여 배로 남미의 남쪽 끝 호온 갑을 돌아 샌프란시스코까지 올라오는 방법, 역시 동부에서 배로 중미의 파나마까지 가서 육로로 지협을 건넌 다음 다시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방법, 그리고 육로로 대륙을 횡당하는 방법이 있었다. 제일 널리 이용된 세 번째 루트는 북미 대륙 중앙부를 걸어서 횡단하는 것으로서 출발지는 미주리 주의 세인트 조세프였다. 세인트 조세프는 오하이오 강, 미시시피 강, 미주리 강 들을 오가는 기선들이 죄다 모여드는 수상 교통의 중심지였다. 미주리 주까진 철도가 놓여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단 기차로 미주리 주까지 와서, 다시 기선을 타고 세인트 조세프에 당도했다. 골드러쉬가 시작되고 1년이 되었을 즈음, 이 마을을 거쳐 서부로 간 사람들은 무려 5만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세인트 조세프는 문명이 끝나는 장소 였다. 그들 앞에는 걸어서 갈 수밖에 없는 3,200km의 황야가 가로놓여 있었다. 포티 나이너즈가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장비는 대강 이런 것들이었다. 먼저 노새와 소, 소는 초원지애를 건널 때, 노새는 험한 산길을 지날 대 필요했다. 그리고 마차, 마차의 뒷 트렁크에는 반드시 엽총, 편자, 도끼, 그리고 마차가 고장났을 때 쓰는 수리 용구를 갖추어 실어야 했다. 그 외에도 휴대용 취사 도구, 칸델라, 장화, 방수모 등등 자질구레한 준비물이 수없이 많았다. 포티 나이너즈는 세인트 조세프에 닿기 전에 너나할것 없이 <캘리포니아 이주 입문서>라는 가이드 북을 사서 읽었다. 위에 열거한 준비물 목록까지 포험한 이러한 가이드 북은 십수개 국어로 간행되어 있었는데, 웃지 못할 일은 그 가운데서 가장 인기 있었던 책이 사실은 한 번도 자신의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세인트루이스의 신문기자가 엉터리로 꾸며 쓴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든 준비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곡괭이와 선광 냄비였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들은 노다지를 캐냈을까? 생각해 보라. 3,200km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8배에 이르는 거리이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서부는 완전히 미개척지였다. 대초원과 험한 산길, 수많은 강과 골짜기가 곳곳에서 이들을 가로막았다. 인디안들과의 충돌도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처 캘리포니아에 도착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었다. 병을 얻기도 했고, 계곡에서 추락하기도 했으며, 강을 건너다 물길에 쓸리기도 했다. 지금도 세라네바다 산맥의 기슭에 가면 수없이 널려 있는 포티 나이너즈의 무덤들을 볼수 있다. 그리고 무사히 도착한 포티 나이너즈 가운데서도 노다지의 꿈을 이룬 사람들, 즉 운도 따르고, 체력도 좋고, 선견지명도 있는 사람 은 별로 많지 않았다. 금이 나올 만한 주요한 광맥은 이미 캘리포니아의 농장주들이 잽싸게 차지해 버린 뒤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을 구경도 못했거나, 운좋게 금광을 발견했다손치더라도 농장주와 결탁한 브로커들에게 사기당하기 일쑤였다. 얼마간의 사금을 손에 넣어 집으로 돌아가는 배삯이나마 마련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나마도 없어 낯선 땅에 눌러 앉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노동자가 되기도 하고 술집을 차리기도 하고 뜨내기 장사치도 되었다. 요컨대 샌프란시스코의 하층민이 된 것이다.
포티 나이너즈의 불행한 결말을 이야기하는 이 자리에서 최초로 금을 발견한 마샬과 사타의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결말부터 밝히자면 두 사람 모두 빈곤에 시달리다 숨을 거두었다. 원래 사타는 캘리포니아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스위스 출신의 대지주였다. 자신도 자신 소유의 토지를 다 둘러보지 못했다고 할 정도였다. 그 위에 위스키 증류 공장, 모피 공장, 제재소까지 소유하고 있었으니 서부의 스위스 황제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그 토지는 캘리포니아가 아직 멕시코 영토였을 때 확보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타는 금을 발견하자마자 몬테레이 주둔 미군 사령관에게 자신의 소유권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멕시코 전쟁이 미군의 승리로 끝날 게 확실했으므로, 캘리포니아가 미국 영토로 넘어올 경우 혹시 기존의 소유권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하지만 사령관은 캘리포니아는 아직은 미군 점령 아래 있는 멕시코 영토일 뿐 이라며 그 요청을 거부했다. 그러나 사타의 요청이 있은지 열하루 뒤에 그 땅은 일정 부분 나누어 받은 마샹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토지를 강탈해 간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의 상류 계급 , 즉 골드 러쉬를 타고 도시의 지배 계급으로 위치를 굳힌 과거의 농장주들이었다. 마샬은 소송도 제기해 보았으나, 재판관과 배심원석은 모두 그들 상류 계급 이 차지하고 있었다. 최초의 발견자들이 이러 했을진대 머나먼 곳에서 흘러 들어온 포티 나이너즈야 오죽했으랴.
우리의 탐욕을 씻을 강물은 어디에
미다스왕이나 포티 나이너즈를 탐욕스럽다거나 허황되다고 쉽게 비판할 수는 없다. 황금, 곧 재물·부 물질에 대한 욕심은 어쩌면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 비바람을 가릴 집도 있어야 하며 추위를 막아낼 옷도 입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목적 의식적으로 개조하는 지혜로운 머리를 가진 까닭에 더 좋은 옷, 더 편리한 집, 더기름진 음식을 찾게 된다. 물질적인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인류의 문명을 여기까지 밀고 온 토대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쌓으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발전적인 동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지나쳐 물질을 숭배하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황금을 사랑하면 별이 있는 곳도 모르게 된다 는 격언이 있다. 물질에 대한 숭배는 곧 영혼을 가두는 감옥을 짓는 행위임을 알리는 경구는 그 밖에도 동서양의 고금을 통틀어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다. 인간이 물질을 다스리는 주인으로 똑바로 서 있을 때라야만 물질의 발전이 인류의 발전에 보탬이 된다. 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숭고한 가치들을 잊어 버리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그저 안락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간다면 황금은 곧 파멸의 길이다. 물질을 떠나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적인 존재 조건이라면 물질의 노예가 되는 건 그보다 더 우위에 있는 존재 조건이다. 돈 때문에 온갖 끔찍한 일이 다 벌어지는 오늘날의 배금주의·물질주의를 보면 일찍이 그 과오를 깨친 미다스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우리의 이 탐욕과 어리석음을 씻어낼 강물은 어디에 있을까
<고요한 돈강>의 작가 숄로호프의 작품 가운데 <한 인간의 생애>라는 중편이 있다.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 한 러시아 병사가 어느 날 독일군 장교들의 질탕한 파티장에 불려 나간다. 무언가 맡은 일에 트집을 잡혀 총살을 당할 판이었다. 그런데 마침 총을 겨누었던 장교의 권총 안에 총알이 들어 있지 않은 바람에 죽음을 모면했다. 장교는 운 좋은 놈 이라며 술을 한잔 준다. 물론 주인공을 장난감쯤으로 여겨 희롱하는 것이었다. 주인공이 술을 거부하자 장교가 어쭈, 이것 봐라 하는 눈으로 이유를 물었다. 물론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엉겁결에 나온 대답이 저는 안주 없이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였다. 취기가 오른 장교는 이 엉뚱한 대답을 귀엽게 여겨 주인공에게 식탁 위에 있던 소시지와 빵을 가득 안겨 주었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그는 이번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독일군 장교들이 배가 터져라 웃어대는 가운데 파티장을 나왔다. 그날 밤 수용소의 러시아 포로들은 모두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빵과 소시지를 한 조각씩 먹었다. 주인공은 포로의 수대로 빵과 소세지를 나누었던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인간의 얼굴인가. 배고픈 사람을 옆에 두고 혼자 먹지 않는 것, 이 소박한 예의야 말로 우리 모두가 그 속에 이 몸을 담구어야할 강물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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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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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평균
위대한 역사가이며 수학자 헤로도투스는 평균의 개념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었다. 그 당시 그것은 대단한 발견이었으며, 헤로도투스는 그것에 완전히 심취되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로 소풍을 떠났다가 건너야만 할 작은 강을 만나게 되었다. 아내는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러자 헤로도투스가 말했다.
"걱정 말고 기다리시오. 내가 강의 평균 깊이와 아이들의 평균 키를 잴 테니. 5분이면 충분하오."
줄자를 꺼낸 그는 아이들의 키의 평균치를 낸 다음 강으로 달려가 몇 군데의 지점을 돌면서 강의 깊이의 평균치를 계산했다. 그런 다음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소. 아이들의 평균 키가 강의 평균 깊이보다 크니 익사할 염려는 전혀 없소. 얘들아, 어서 강을 건너자!"
그러나 강의 어떤 지점은 얕은 반면에 어떤 지점은 매우 깊었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키가 컸지만 어떤 아이는 작았다. '평균치'라는 것은 실제 상황에선 맞지 않는 법이다. 오직 수학적인 계산으로서만 좋은 것이다. 헤로도투스의 아내는 여전히 걱정이 되어 그녀 자신은 강을 건너지 않고 기다렸다. 그런데 한 아이가 갑자기 물 속으로 잠겨들어 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앞서서 강을 건너고 있는 헤로도투스를 소리쳐 불렀다.
"저걸 좀 봐요! 애초부터 걱정이 되더니, 역시 당신의 수학이라는 것은 믿을 게 못 돼요!"
그러나 놀랍게도 헤로도투스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아이에게로 달려가지 않았으며 그의 아내가 뛰어들어 아이를 구해야만 했다. 헤로도투스는 자신이 계산을 했던 모래밭으로 달려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검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그의 계산은 틀린 곳이 없었다. 그러나 그대여, 존재계는 그대의 계산을 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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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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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45. 여진족의 화북 지배 - 북송의 멸망(1127년)
만주에는 퉁구스계의 여진족이 널리 분포되어 반농반목의 부족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찍이 발해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이 무렵에는 요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 중 이미 요의 지배하에 편입된 세력은 숙여진, 그렇지 않은 부족들은 생여진으로 불리었다. 생여진 중에 송화강 지류인 이르추흐 강 유역에 거처하던 완옌부가 추장 아골타를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 12세기 초 동아시아에 돌풍을 몰고왔다. 굳세고 용맹한 아골타는 요의 간섭에 공공연한 반기를 들고, 1115년에 독립적인 여진족 최초의 국가를 건설, 국호를 대금이라 칭했다. 금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여 요의 집압군은 송화강변에서 무참하게 대패했고, 금군은 요동 요서로 남하, 종횡무진으로 세력을 떨쳐나갔다. 금의 발전의 모태는 군사, 행정의 주축인 맹안, 모극의 제도에 있었는데, 여진족의 300호가 1모극으로, 다시 10모극이 1맹안으로 조직되었다. 1모극에서 100명의 군사가 뽑혀 1모극군이 되었고, 10모극군이 모여 1맹안군이 되었다. 이들은 군사, 행정이 일치된 맹안, 모극의 제도 속에서 유목민 특유의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위력을 발휘했다. 맹안은 1000을 위미하는 여진어의 '민간' 모극은 족장의 뜻인 '무게'의 음역이다. 한편, 이무렵의 중국은 왕안석의 개혁도 실패하고, 당쟁은 격화, 급격한 국력의 쇠퇴기를 맞고 있었다. 휘종은 회화 등 문화적 재능으로는 유명하지만 정치에는 뜻이 없어 그가 신종의 아들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틈에 채경 같은 처세술에 능한 관료가 환관 동관과 결탁, 온갖 부정 부패를 일삼고 있었다.
휘종은 도성 동북면에 인공산을 만들고 도시의 향락생활에 빠져 들어갔고, 채경과 동관은 이를 부추겨 전국의 기화요초와 괴석들을 수집하게 되니, 기석을 운반할 때, 민간집의 담장이 방해가 되면 담장을 허물고, 집이 방해가 되면 집까지 허물어버렸다고 한다. 1120년 송은 연운 16주를 회복할 심산으로 금과 연합, 요를 협공하기로 했는데, 방납의 난이 일어나 그 군대를 국내에 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활에 이르렀다. 방납은 강남의 분노한 백성들을 이끌고 한때 대운하의 종점인 항주를 점령하는 등 세력을 떨쳤다. 한편, 산동의 양산박에서는 송강 등이 출몰, 관군을 크게 괴롭혔는데, 이들이 바로 유명한 (수호지)에 등장하는 양산박의 108명의 호걸의 모델이다. 금군은 거의 독자적 힘으로 일거에 요의 본거지를 석권했다. 요의 마지막 황제 천조제는 서쪽으로 도망, 한때 서하에 몸은 의탁했지만 1125년 금나라에 체포, 요는 건국 이래 210여년 만에 멸망했다. 송은 국내정치의 불안도 있고 해서 금나라와의 약속을 밥먹듯이 어겼고, 양국의 관계는 불안정했다. 일단 회군했던 금군은 다시 남하, 이듬해에는 송의 수도 변경을 함락시키기에 이르렀다. 당시 금의 군대가 도성에 육박했다는 보고를 들은 휘종은 신하들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금나라가 설마 우리 도성을 공략해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이 말을 마치고 기절하고 말았다. 백성들은 채경 등의 처벌을 요구하면서 결사대를 결성, 목숨을 버려서라도 도성을 사수할 것을 결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흠종은 두려움에 떨며 마지못해 도성에 머무를 뿐이었다. 결국 송은 금나라가 요구하는 모든 굴욕적 조건들, 황금 5백만 냥, 백은 5천만 냥, 비단 1백만 필, 우마 1만 마리 등을 바치기로 하고, 흠종이 금나라 황제의 조카가 될 것 등을 모두 수락했으나, 이듬해에 금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 때는 1127냐년, 이 사건을 후대의 사가들은 당시의 연호를 따서 '정강의 변'이라고 부른다. 이로써 변경에 도읍했던 북송은 멸망했다. 휘종과 흠종, 3천 명의 종실들은 포로로 잡혀 옛땅으로 유배되었으며, 휘종과 흠종은 그곳에서 쓸쓸한 여생을 마쳤다. 때마침 금에 사신으로 가기 위해 수도를 떠나 있던 휘종의 아홉째 아들 강왕이 금의 추격을 피해 강남으로 이동, 임안(항주)을 수도로 삼고 송의 피난정권을 수립하니, 그가 고종. 이것이 남송의 시작이다. 이제 중국은 북중국을 완전히 빼앗기고, 회하를 경계로 금과 대치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양국 사이에는 수없이 전쟁이 되풀이되었다. 화북지방에도 여러 의병장들이 활약하고, 송은 주전파와 강화파가 서로 대립하게 되었는데, 1141년 강화파가 진회가 악비, 한세충등 명장들의 지휘권을 박탈한 후, 이듬해 다시 금과의 화의를 수립, 그 대립을 종결시켰다. 이때 송이 금에게 제출한 서약서에는 대대로 신하의 절개를 지킨다는 약조가 담겨져 있었으니, 이전까지의 중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민족의식이 고조되었던 중국인들에게 악비는 영원한 민족의 영웅으로 두터운 사랑을 받았으며, 그를 투옥, 끝내 옥사시켰던 진희는 대표적 매국노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대표적 의병장으로 금군에 타격을 주었던 악비는 중국인들의 중원 복귀의 꿈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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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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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찾습니다 - 家貧思良妻(가빈사양처) 家(집 가) 貧(가난할 빈) 思(생각할 사) 良(좋을 량) 妻(아내 처)
사기史記 위세가魏世家에는 위나라 문후文侯가 재상 임명을 위해 이극(李克)에게 자문을 요청하면서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위문후는 이극에게 말하길,
"선생께서 과인에게 말씀하시길 '집안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그리게 되고, 나라가 혼란하면 훌륭한 재상을 그리게 된다(家貧思良妻, 國亂思良相)'라고 하셨습니다. 제 동생인 성자(成子)와 적황(翟璜) 중, 어떤 이가 적합합니까?" 라고 하였다. 이에 이극은 문후에게 다음과 같은 다섯가지 사항을 진언한다.
"평소에 지낼 때는 그의 가까운 사람을 살피고, 부귀할 때에는 그와 왕래가 있는 사람을 살피고, 관직에 있을 때에는 그가 천거한 사람을 살피고, 곤궁할 때에는 그가 하지 않는 일을 살피고, 어려울 때에는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살피십시오."
위나라 재상이 된 사람은 바로 성자(成子)였다. 비록 문후의 동생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소득 중 10%만을 생활에 쓰고, 나머지 90%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였다. 어진 아내 로서의 역할을 하였고 어진 재상으로서도 적임자였던 것이다. 家貧思良妻나 國亂思良相 이라는 말은 모두 어려운 시기에는 유능하고 어진 인재가 필요하게 된다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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