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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92호
2010.9.27 (음 8.20)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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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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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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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세상 사람에게 가장 적게 오르는 자가 가장 행복하다. -T. 제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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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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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러와 서툴어
‘서툴러’는 표준어고 ‘서툴어’는 비표준어다. ‘서툴어’는 ‘서투르다’의 준말 ‘서툴다’에 ‘-어’를 연결했다. 이처럼 준말 ‘서툴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를 연결한 형태는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는다. ‘서툴고/서투니/서툴지’ 등은 표준어다. ‘서툴러’는 본말 ‘서투르다’에 ‘-어’가 붙었다. ‘머무르다’의 준말 ‘머물다’에 ‘-어’가 붙은 ‘머물어’도 비표준어다.
빈소와 분향소
빈소(殯所)는 상여가 나갈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방이다. 이곳에서 관을 병풍으로 가리고 조문객들을 맞는다. 분향소(焚香所)는 빈소 이외의 장소에 향을 피우고 고인의 명복을 빌 수 있도록 마련한 곳이다. 빈소는 관이 있는 곳이므로 한 곳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향소는 관이 없는 곳에도 둘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곳일 수 있다.
국민들
양 떼들과 국민들의 공통점은 무얼까. 둘 다 무리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일까. 재미있는 생각을 여러 모로 해 볼 수 있겠지만, '양 떼들'과 '국민들'은 모두 중복된 복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들'은 '연필들'처럼 셀 수 있는 명사 뒤에 붙어서 복수의 의미를 나타내는 접미사로 쓰이거나, '배.감.사과 들'처럼 두 개 이상의 사물을 나열해 가리키는 의존 명사로 쓰인다. 접미사로 쓸 때는 앞말에 붙여 쓰고 의존 명사로 쓸 때는 띄어 써야 한다. 그런데 '양 떼들'에서의 '떼'에는 이미 '목적이나 행동을 같이하는 무리'라는 복수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들'을 덧붙이게 되면 불필요하게 의미가 중복된 겹말이 돼 버린다. 따라서 '양 떼'라고 쓰는 게 좋다.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이나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 개개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집합명사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국민들'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 '국민들'이 꼭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외환 위기 때는 온 국민이 나라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처럼 쓰는 게 더 바람직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오이소배기
다음 중 맞는 말을 고르시오.
㉠오이소배기 ㉡오이소바기 ㉢오이소박이 ㉣오이소백이
계절은 늦가을을 지나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었다. 이맘때가 김장철이다. 5℃ 전후의 온도에서 김치를 익히고 저장해야 맛이 좋다고 한다. 김치에는 배추김치.무김치.열무김치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이김치도 그중 하나다. 오이김치는 대개 오이를 잘라 십자 모양으로 칼집을 내고 물기를 뺀 뒤 부추.마늘.생강.고춧가루 등을 버무린 양념을 집어넣어 만든다.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맛과 신선한 감촉은 다른 김치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오이김치를 '오이소배기'라 부르기 쉽지만 ㉢'오이소박이'가 맞는 말이다. '-박이'는 무엇이 박혀 있는 사람이나 짐승 또는 물건이란 뜻을 더하는 말로, '점박이' '차돌박이' 등처럼 쓰인다. '오이소박이'도 '오이+소+박이'의 구조로, 오이에 소(만두.송편 등에 넣는 고명)를 넣었다는 점에서 '-박이'가 붙는다. '-배기'는 '그 나이를 먹은 아이'의 뜻을 더하는 말로, '두 살배기' '다섯 살배기' 등처럼 쓰인다. '-배기'는 그것이 들어 있거나 차 있음(나이배기.알배기), 또는 그런 물건(공짜배기.진짜배기)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박이'와 '-배기'가 헷갈릴 때는 '오이소박이'처럼 무언가 '박다'는 뜻이 들어 있으면 '-박이'를, 그렇지 않으면 '-배기'를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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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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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전투 - 신미균
AD2007년 10월 2일 동틀 무렵 싱크대 앞, 그가 날린 화살 한 발이 내 왼쪽 어깨를 스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준비해 온 듯 중무장을 하고 소파를 돌아 식탁을 넘어 개수대 앞에 도착하였다. 나는, 느닷없이 당한 일이라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뒷 베란다로 후퇴하며 평소에 감춰두었던 불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불화살이 그의 발등에 떨어지자 그는 길길이 뛰면서 닥치는 대로 물건을 던지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애완견과 앵무새 한 마리 디지털 텔레비전과 리모콘이 망가졌지만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휴대 전화가 울리자 그는 그것을 받는 척 하면서 약간의 만회할 시간을 벌었다. 그러다 내가 방심한 사이 빨대 속에 독가시를 숨겨 불어 버렸다.
분석 결과 전쟁의 원인은 커피에 설탕을 두 조각 넣은 것 때문이었다. 이것으로 인해 양쪽 모두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복구 하는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이웃들은 이들이 전쟁을 했는지 조차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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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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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살 - 이영지 - 새벽기도 '1487 -
경상도 두메산골 소나무 잎사귀는 가슴빛 소나무로 열두해 넘기고도 맨살을 촘촘히 엮어 나에게로 주길래, 한 잎을 넣어두고 바람의 한 잎으로 하늘을 떠 받들자 꽃보다 아름다운 풀잎이 나에게서도 돋아났다 너도 볼래 어서와 홍보석 열두 개의 뿌리로 내려앉아 일제히 빛이 되어 잎들이 다시나서 하나로 붙자마자 또 잎 하늘 한장 맨살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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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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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과 순이 - 이오덕
분이는 따리아가 제일 곱다고 한다. 경식이는 칸나가 제일이라고 한다. 복수는 백일홍이 아름답단다. 그러나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순아, 넌 무슨 꽃이 더 예쁘니? 채송화가 제일 예쁘지? 그래도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소아마비로 다리는 저는 순이.
순이는 목발로 발 밑을 가리켰다. 꽃밭을 빙 둘러 새끼줄에 매여 있는 말뚝. 그 말뚝이 살아나 잎을 피우고 있었다. 거꾸로 박혀 생매장당한 포플러 막대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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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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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4장 꿈이 서린 계절의 회상을 위하여 -《scrap(그리운 1980년대)》
문학과 취미와 삶의 주변, 그리고 이성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 어린 탐구. 아주 짤막짤막한 글 속에 그의 큰 문학의 편린이 스며 있어 즐겁다. 그렇게, 지난날은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나날이었다.
독신 남성이란 핸섬하고 어딘지 쓸쓸해 보이고 스릴 있어 보이는 남성이 바로 독신 남성. 여성 잡지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하고 소리치고 싶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그런 류의 잡지에는 손을 대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밖에 아무것도 읽을 것이 없을 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에지를 들춰 보게 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식으로,《하퍼스 바자》지 12월호를 거의 다 읽어 버렸다. 읽었다고는 해도, 이런 잡지는 실질적으로는 읽을 거리가 별로 없다. <겨울에 살을 뺀다>라든가, <스키장에서의 화장법>이라든가, <은색 옷을 입는 법>이라든가, 그러한 기사를 읽어 보았자, 나에게는 전혀 무익하니까 말이다. 내가 그 가운데서 유일하게 시선을 멈추고 읽은 것은, <지금 가장 맛있어 보이는 미국의 독신 남성 열 명>이라는 특집 기사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열 명의 명단은 잡지사가 선정한 것이 아니라, 산드라 반하트 라고 하는 여배우(킹 오브 코미디)가 독단적으로 편견에 치우쳐 선정한 것으로, 사진 밑에 그녀의 코멘트가 일일이 덧붙여져 있다. 그 열명을 일단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로버트 라우셴버그 (2) 톰 크루즈 (3) 버트 레이놀스 (4) 리처드 체임벌린 (5) 데이비드 보위 (6) 존 트라볼타 (7) 톰 셀렉 (8) 워렌 비티 (9) 에디 머피 (10) 리처드 기어 (순서는 관계없음)
나는 아무래도 세상사에 어두워 자세히 설명할 수 없는 게 미안하지만, (1)은 화가고, (7)은 탤런트인 것 같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대충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는 사교계라는 것이 없으니까 그다지 실감이 나지를 않지만, 미국 같은 곳에서는 '독식 남성'이라고 하는 말은 어느 정도 특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까 애스컷 타이(역주:폭이 넓은 스카프 풍의 넥타이)를 매고, 애스톤 마틴 같은 차를 몰고 칵테일 파티에 나타나는 플레이보이라는 이미지다. 핸섬하고, 어딘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고, 스릴 있어 보이고...... 이러한 독식 남성이 한 사람쯤 있으면, 파티도 몰라보게 활기를 띠게 되는 법이다. 그러한 사람이 '맛있어 보이는 독신 남성'인 것이다. 그냥 단순히 결혼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 점은 부디 오해가 없기를.
올림픽과는 그다지 관계없는 올림픽 일기 -올림픽은 20년쯤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헬싱키나 멜버른 올림픽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7월 20일 (월) 여름의 아침식사로는 누가 뭐래도 샐러드가 최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미역과 토마토와 양상추를 마구 섞은 뒤, 거기에 특제 생강 드레싱을 쳐서 맛있게 먹는다. 더운 여름엔 샐러드 말고는 아침에 먹고 싶은 것이 없다. 일본에서는 여름에 미역이 금메달이다. 은메달은 찬 모밀국수, 동메달은 빙수다. 외국에서 여름 내내 머물다 보면 가장 곤란한 것이 미역이 없다는 점이다. 어째서 서양 사람들은 미역을 먹지 않는 걸까? 언젠가 시애틀에서 페리 보트를 탔을 때, 바다 밑바닥에서 거대한 미역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너무나 먹고 싶어서 군침을 흘린 적이 있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어제부터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나의 개인적인 감상을 말한다면, 올림픽이라는 것은 20년쯤 세월이 지나야 아무래도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최근 들어 개최된 올림픽은 왠지 좋아지지 않는다. 지금 같아서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로마 올림픽도 괜찮을 것 같다. 헬싱키나 멜버른 올림픽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네댓 명이 모여 술을 마시면서 헬싱키 올림픽의 기록 영화를 보거나 한다면, 굉장히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이유로 이번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낄 수가 없다. 신주쿠로 나가서 《아사히 신문》의 센다 씨를 만나, 원고를 건네 주었다. 센다 씨는 어저께 올림픽의 개회식을 보았다고 한다. "개회식은 일단 많이들 보는 모양입니다. 그 뒤의 게임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지만, 그것만은 보게 됩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걱정이 되어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서 개회식을 보았냐고 물어 보았더니, "뭐, 그거 못 봤나? 재밌다니까, 개회식은. 여러 나라가 잔뜩 나온다구"하고 대답했다. 과연 그렇다.
7월 31일 (화) 오늘은 대학때 친구인 마치코의 권유로 나와 집사람과 세 명이서 뉴오타니 호텔의 풀에 갔었다. 그 호텔의 풀에서는 덱 체어(역주: 접는 의자)를 1000엔에 빌려 주었다. 마치코 씨가 요전에 갔던 모 호텔의 풀에서는 텍 체어를 무료로 빌려 주고, 로커 사용료는 1000엔을 받았다고 한다. 덧붙여 말한다면, 뉴오타니의 로커는 무료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시스템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것은 아사부 프린스 호텔의 풀로, 지금은 이미 없어졌지만, 정말로 느낌이 좋은 곳이었다. 우리 집에는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이 절정에 다다르면 아사부 프린스 호텔에 체류하면서 노상 풀에서 수영을 했다. 아사부 프린스 호텔의 풀에서는 분명히 로커도 뎃 체어도 무료로 사용했던 것 같다. 방문을 열면 바로 그 곳이 뜰이고, 뚤을 가로질러 가면 풀이 있었다. 작은 풀이지만, 빅적 사람이 없고 수심도 깊어서 수영하기가 쉬웠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가족 동반으로 오는 외국인이 많았다.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풀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아사부 프린스 안에 있던 튀김집은 맛이 있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아사부 프린스 호텔이 없어진 까닭에 그 튀금을 먹지 못하게 되어서 굉장히 아쉽다고 했다. 사람은 정말 가지각색이다. 이 세상에서 모든 튀김집이 소멸해 버리는 것과 모든 풀이 소멸해 버리는 것 중 어느쪽이 더 아쉬울까를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튀김도 먹고 싶고, 풀에서 수영도 하고 싶다.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오늘은 신문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올림픽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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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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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목마름
사람은 거울을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거울을 보면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영상을 더듬는다. 어떤 동물도 자신의 모습을 그리지는 못한다. 오직 사람만이 자신을 영상 속에서 더듬어 보는 일을 되풀이 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 의식이다. 이 자기 의식 속에서 에고가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제의 자신보다는 반사된 영상에 더 큰 흥미를 갖는다. 당신의 마음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실제의 어떤 사건보다도 한편의 드라마에 더 큰 감동을 느끼며, 실제의 여자보다는 사진이 당신의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와같이 사람은 진실보다는 허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실제보다는 영상에 더 흥미를 느낀다. 그러나 매일같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자신을 알면 거짓은 사라진다. 허구 속에서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허구보다는 진실에 더 흥미를 가져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더욱더 자신과 멀어지게 될 것이다.
영상, 허구, 꿈, 이미지 등의 거짓에 흥미를 두는 것이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 수 없게 만드는 근본원인이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관심을 쏟기보다는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 역시 마음의 거울이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은 채, 남들이 자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해서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리하여 자신의 겉모습을 꾸미는 데만 열을 올린다. 당신이 쌓은 도덕과 선행의 탑은 남의 눈에 아름답고 선하고 정직하고 종교적인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당신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손실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종교적인 사람으로 보아 준다고 하여 당신이 종교적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제아무리 당신을 행복한 사람으로 보아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당신이 행복해질 수는 없다. 가식을 버리고, 남을 의식하지 말라.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것보다는 실제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여라.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보다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라. 생각은 결코 당신의 목마름을 풀어주지 못한다. 생각은 결코 당신의 배고픔을 해소시켜 주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산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것은 별 문제가 안된다. 당신은 결코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배고픔 속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진짜 음식인데, 그림의 떡이 어떻게 당신의 배고픔을 해소시켜 줄 수 있겠는가? 목마른 당신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물인데, 물에 대한 사진이나 화학방정식이 어떻게 당신의 목마름을 풀어줄 수 있겠는가?
삶과 죽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침대는 죽음의 자리이다. 왜냐하면 탄생이 있은 후에, 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 행렬에서 조금 뒤쪽에 서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오늘 죽고, 어떤 사람은 내일, 또 어떤 사람은 모레 죽는다.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인가? 조금 더 먼저 죽고 조금 더 나중에 죽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시간의 차이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간은 단지 삶이라는 환영을 만들어 낼 뿐이다. 죽음으로 끝나는 삶은 참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하나의 꿈이다. 그대들은 이것을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한다. 진리를 구하는 것은 죽음을 모르는 참된 삶을 찾는 것이다. 삶은 그것이 영원한 때라야 참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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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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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9장. 다시 여는 내 인생
다수의 의견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지 마라. 군중 심리에 휘말린 의견이나 동정심에 이끌린 의견은 한 사람의 의견보다 못할 때가 있다. 다수의 의견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소수의 의견은 모두 그르다는 모순에 빠져서는 안 된다.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동정심에 이끌려 판단이 혼미해진 의견이나 군중심리에 휘말려 이성이 결여된 의견은 그 수효가 얼마든지 간에 한 사람의 이성적인 의견보다도 못하고, 더욱이 다수가 야합하면 독재가 되고 만다. 다수결의 원리를 만능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수적인 우위로만 결정하는 다수결의 원리는 수가 부족하면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도 배제되고 마는 모순이 내포되어 있다. 더욱이 민주주의가 곧 다수결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민주주의는 자율과 타협이다. 자율에 의해 개개인의 삶을 영위해 나가되 그것이 서로 충돌될 경우 대화와 타협으로 선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핵이다. 다수결은 최후의 수단으로써만 동원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에 의해 해결 방법을 모색해 보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될 경우에만 동원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의 여지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다수결로 밀어붙이는 것은 무력 시위와 다를 것이 없고, 그렇게 되면 그것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저항을 받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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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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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6. 마음은 힘이 세다 - 피그말리온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
미국의 교육학자인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1968년, 교육학 관련 학자들뿐만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연구 결과의 요지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교사가 어떤 학생에게 저 아이는 장차 성적이 크게 오를 것 이라는 기대를 하면 그런 기대를 받은 학생을 실제로 성적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 국민학교를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하였다. 실험 대상이 된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하류 계층에 속했으며 학생 수는 650명이었다.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전학년에 걸쳐 능력별 반편성이 되어 있었는데 읽기 성적을 우수반, 보통반, 열등반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열등반에 속한 학생들은 대부분 가정 형평이 아주 어려웠고 주로 멕시코계였다. 두 사람은 먼저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실시하였다. 그러면서 고사와 학생들에게 지능검사의 목적을 성적이나 지능이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라고 밝혔다. 물론 이것은 교사와 학생들을 속이기 위해 계획된 거짓말이었다. 지능검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가 반에서 약 20퍼센트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냈다. 그리고는 이들의 명단을 교사들에게 돌리면서, 이번에 실시한 지능검사 결과, 성적이나 지능이 크게 향상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학생들 이라고 알려주었다. 이것도 역시 실험을 제대로 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꾸민 거짓말이다. 무작위로 뽑았으니 만큼 지능검사 결과와 명단에 오른 학생들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었다. 그러나 교사들은 연구자들의 말을 그대로 다 믿었다. 교사들로 하여금 명단에 오른 학생들에게 성적이 크게 오를 것 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연구의 전제이자 핵심이었던 것이다.
8개월 뒤에 학생들은 앞서의 것과 똑같은 지능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일반 학생들과 점수는 앞서의 검사 결과에 비해 8.4점이 오른 반면 20퍼센트의 학생들, 즉 실험 집단의 점수는 12.2점이나 높아졌던 것이다. 일반 학생들의 평균점보다 3.8점이나 놓은 수치였다. 특히 학년별로는 1학년과 2학년에서 일반 학생과 실험 집단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났으며 저소득 계층에 속하는 멕시코계 학생들의 점수가 두드러지게 향상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했다. 로젠탈과 제이콥슨은 이러한 연구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학생에 대한 교사의 기대감은 실제로 성적 향상을 가져오는데, 이러한 기대 효과는 저학년 그리고 하류 계층 학생들에게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리의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여러 선생님들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모든 선생님들 앞에서 한결같지 않다는 느낌을 한 번쯤은 가지게 된다. 어떤 선생님 앞에서는 공연히 주눅이 들거나 위축되고 어떤 선생님 앞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행동거지가 단정해진다. 꼭 선생님뿐 아니라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친구에게는 굉장히 너그럽다가도 어떤 친구에게는 사납게 군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행동이 그리 되는 듯하다. 저 선생님은 나를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는 느낌이 들면 이상하게도 그 선생님 앞에서는 늘 단정치 못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말이다. 좀처럼 그런 일이 없다가 어쩌다 단추가 떨어진 옷을 입고 오면 꼭 그 선생님에게 지적을 당하게 되는, 그런 식이다. 반대로 저 친구는 나를 참 의젓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로 그 친구 앞에서만큼은 더할 수 없이 의젓해진다.
그런 경험 법칙을 되살려 보면 교사의 기대가 학생들의 성적을 실제로 향상시키게 되는 심리적 과정을 어렵잖게 이해할수 있다. 연구자의 의도를 모른 체 학생의 지능과 잠재 능력을 신뢰하게 된 교사는 그 학생에게 평소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쏟게 될 것이다. 교사의 기대감과 신뢰는 눈빛과 말씨, 행동에 그대로 드러나고 학생은 그것을 느낀다. 설혹 그 학생이 당장 좋은 결과를 나타내지 못하더라도 교사는 그 학생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실망치 않고 계속 격려하고 애정을 기울일 것이다. 그 학생에게 기대감을 가지기 전이라면 넌 어쩔 수 없구나 하고 포기할 일도 잠재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학생들에게 얼마나 큼 위안이 되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런 기대와 격려를 받는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 학생은 선생님의 신뢰와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저학년과 멕시코계 학생들에게 그러한 기대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저학년은 아직 자신의 학습 능력에 대한 판단(이를 학문적 자아 개념 이라 한다.)이 영글어 있지 않다. 나는 어쩔 수 없어 라는 생각이 아직 굳어지기 전이라 교사의 기대감에 따라 나는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을 하기가 훨씬 수월한 조건 아래 있는 것이다. 또 계층적으로 가장 극빈한 층에 속하는 멕시코계 학생들은 아마도 교사의 기대와 신뢰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스로에 대해 체념하거나 부정적인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뜻하지 않게 선생님의 신뢰와 애정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라. 없는 힘도 쑥쑥 생겨나지 않겠는가.
로젠탈과 제이콥슨의 연구는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 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검증한 것이었다. 자기충족적 예언 이론이란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주위의 예언이 행위자에게 영향을 주어 결국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는 이론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피그말리온 효과 라고도 한다.
피그말리온의 사랑과 아프로디테의 은총
피그말리온은 키프로스 섬에 사는 솜씨가 빼어난 조각가였다. 키도 작고 별로 잘생기지도 못한 피그말리온은 어쩐 일인지 여자는 멀리할수록 좋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보기엔 여자란 결점이 너무 많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리라 결심했다. 어느 날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여자의 입상을 조각했다. 어찌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조각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여자가 너무 얌전해서 그런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상아 처녀는 살아있는 인간 그대로였으며, 감히 어떤 여자도 가까이 와 견주어 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왔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이 완벽한 작품을 날마다 흡족한 눈으로 감상했다. 그러다 그만 상아 처녀를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제 손으로 만든 조각임에도 그걸 깜빡 잊고 살아있는 여인에게 하듯 하루에도 몇 번씩 상아 처녀를 손끝으로 쓰다듬곤 했다. 해변에서 예쁜 조개껍질이나 조약돌이라도 주울라치면 얼른 상아 처녀에게 갖다 바쳤고 산에 들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도 한아름씩 꺾어다 처녀의 팔에 안겨 주었다. 앙증맞은 귀와 긴 목에다가는 빛나는 진주 귀걸이와 목걸이를 걸어두었다. 얼굴에 어울리는 예쁜 옷도 해 입혔고 급기야는 긴 의자에 폭신폭신한 요를 깔고 그 위에 상아 처녀를 눕혔다. 물론 머리맡에 부드러운 깃털로 만든 베개를 고여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집을 들고 날 때마다 허리를 굽혀 상아 처녀에게 입맞춤을 하곤 했다. 그런데 키프로스 섬에는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이름 그대로 바다의 흰 거품(아프로스)에서 태어난 여신이었다. 흰 거품이 오랜 세월 바다를 떠돌다 이윽고 여신을 빚어 조개껍질에 싣고 지중해의 한 섬에 내려다 놓으니 그 섬이 바로 키프로스였다. 아프로디테가 대지 위에 첫발을 디딘 곳이 바로 키프로스였던 것이다. 그 뒤로 키프로스 사람들은 아프로디테의 신전을 세우고 해마다 큰 축제를 벌였다.
피그말리온이 상아 처녀와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섬의 제일 큰 명절인 아프로디테 축제일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신전에 갖가지 제물을 갖다 바쳤고 신전에 피운 양 냄새가 온 섬에 진동했다. 피그말리온도 신전으로 가 제물을 바치고 여신을 경배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빌었다.
여신이시여, 바라건대 저에게 아내를 주소서......
그는 저 상아 처녀를 아내로 주소서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너무도 수줍어서 그렇게는 못하고 대신에 저 상아 처녀 같은 여성을 아내로 주소서 라고 조그맣게 덧붙었다. 기도를 마친 피그말리온은 집으로 돌아와 늘 하듯이 긴 의자 위로 몸을 구부리고 상아 처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처녀의 입술에 온기가 감도는 게 아닌가. 놀란 피그말리온은 처녀의 몸을 쓰다듬어 보았다. 처녀의 몸은 따뜻하고 말랑말랑했다. 그래도 믿기지 않아 피그말리온은 다시 한 번 처녀의 입술을 만져 보았다. 그러자 처녀가 두 눈을 뜨고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피그말리온을 바라 보는 게 아닌가. 신전에 흠향하러 와 있던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의 순정을 어여삐 여겨 소원을 들어준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된 상아 처녀에게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으며 둘 사이엔 아들 파포스가 태어났다. 아프로디테에게 봉헌된 키프로스의 파포스라는 도시는 바로 이 아들의 이름을 딴 것이다.
사랑과 믿음의 힘
영국의 극작가이자 사회비평가인 죠지 버나드 쇼는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원용하여 5막짜리 희곡<피그말리온>을 남겼다. 주인공인 H. 히긴스는 음성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검증할 학문적 실험의 일환으로 가난한 소녀 일라이자를 자기 집으로 데려온다. 일라이자는 런던의 거리에서 꽃을 팔아 살아가는 하류 계층의 소녀였다. 히긴스는 일라이자의 엉망진창인 발음과 사투리, 빈민층 언어를 교정해서 귀부인으로 변신시키고 애초의 목표대로 사교계의 꽃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상아 처녀를 인간으로 변화시킨 피그말리온처럼. 그러나 그는 학문적 실험의 성공에 만족할 뿐 일라이자를 이성으로 대해 주지 안는다. 이에 실망하고 모욕감을 느낀 일라이자는 그의 곁을 떠나 버린다. 이들은 신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행복한 결말을 맺지는 못했다. 결말을 이렇게 처리한 것이야말로 날카로운 기지와 독설로 유명한 버나드 쇼다운 점이라는 평도 있다. 그런데 이 희곡은 정작 연극보다는 영화로 더 유명해졌다. 1964년 미국에서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로 제작되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청순한 얼굴을 가진 배우 오드리 헵번이 일라이자 역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에서는 끝 부분이 신화의 결말처럼 해피엔딩으로 개작되었다. 히긴스가 일라이자를 가르치는 도중에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희곡의 결말이 버나드 쇼다웠다면 해피에딩으로의 개작은 가장 헐리우드다운 것으라고 할 수 있다. 스타와 섹스, 그리고 해피엔딩이야 말로 헐리우드 영화를 떠받쳐 온 세 개의 기둥이라고 일컬어지니까.
피그말리온 효과는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의 힘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지성이면 감첨이라는 우리네 속담이 가리키는 바도 그것이다.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믿음은 그 사람 속에 잠들어 있는 것들을 깨우고 흔들어 마침내는 활짝 꽃피게 한다. 요컨대 상아를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흔히들 그것을 일컬어 사랑의 기적 이라고 한다. 친구나 부모, 선생님, 때로는 연인-최악의 순간에도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 주는 피그말리온이 있기에 수많은 기적이 일어난다. 빈곤과 범죄의 수렁에서 헤어나 새 사람이 되고, 불처의 병을 이겨내며, 온갖 시련을 헤쳐내고,, 인간 승리를 이룩한다. 셜리반니더라도 힘들고 외로울 때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날이 삶이 얼마나 따뜻해지겠는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소리를 내지도 않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더듬어 볼 수도 없는 것이지만 내가 저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랑과 믿음은 반드시 전달되고, 그것이 간절하고 지극한 것이라면 그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정신, 의지, 마음, 영혼은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힘을 이야기하다 보니 얼른 떠오르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이른바 플라시보효과 에 대한 이야기다. 플라시보란 가짜약을 말한다. 위장병 환자에게 새로 개발된 특별한 위장약이라고 속이고 영양제를 복용하게 하였더니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현저하게 병세가 호전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플라시보 효과 라는 것인데 여러 가지 실험에서 이런 효과가 검증되었기 때문에 의약계에서는 치료를 목적으로 일부러 가짜약을 주기도 한다. 실질적인 약리작용은 없지만 환자의 정신을 안정시켜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새삼 마음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네가 바라는 것을 남에게
나 자신을 지극하게 사랑하고 믿어 주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우리의 이런 마음을 알고 일찍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바라는 것을 남에게 해 주어라. 네가 대접받고 싶으면 남을 대접해 주어라.
그렇다. 남을 사랑하고 믿어 주는 일, 지극하고 간절하기까지야 않더라도 그저 남들만큼 사랑하고 믿어 주는 일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가. 작고 하찮은 것, 못나고 힘없는 것,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돌보고 감싸오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낮고 외로운 자리에 내려 서고, 나아가서 그것들 속의 하나가 되는 길이 참 시인의 길이하고 믿고 살아온 인자한 눈빛의 노시인도 그 어려움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조그만 시련에도 견디지 못하고 내 안의 사랑이 흔들려 괴로울 때 한 번씩 읽어보자.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힘을 주리라.
동해바다 -후포에서
신경림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후포는 울진 아래 있는 작은 어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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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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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위선
숫처녀들만을 중심으로 한 사교 클럽이 결성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 젊은 여인이 아기를 안고 나타났다.
"안 돼요, 부인." 회장이 부인을 만류했다. "부인은 우리 클럽에 참여할 수 없다는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죠?" "이 클럽이 조직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만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도 어리석은 처녀의 일원으로서 이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 이것은 허튼 소리이다. 그리고 합리화는 이것에 대한 철학적 용어이다. 허튼 소리는 일상적인 인간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손이 흙투성이인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허튼 소리라는 말은 일하고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 말 역시 흙투성이이다.
특등 열차
할리우드의 한 사기꾼은 옥스포드 액센트를 흉내내어 말하고 가짜 귀족 행세를 하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쁜 행위는 부도 수표의 남발이었다. 결국 막다른 골목에 이른 그는 자살을 하기로 결심하고 산타페의 철길로 갔다. 철길 옆에서 그는 조용히 수입 담배를 몇 대 피웠다. 그 동안 무거운 화물 열차가 서너 대 지나갔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부랑자가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이왕 죽을려면 빨리 죽을 것이지 뭐하고 있소." 사기꾼이 소리쳤다. "난 저질이 아니야. 나 정도 되는 사람은 당연히 특등 열차를 기다리는 거야."
- 에고이스트는 자살을 할 때도 특등 열차를 기다린다. 그는 "난 저질이 아니야. 나만한 사람은 당연히 특등 열차를 기다리는 거야." 라고 말한다. 그는 자살을 하더라도 화물차 밑에 깔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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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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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40. 유목민족의 각성 - 최초의 정복왕조 요(916~1125년)
중국문명이 탄생한 이래, 중국민족과 북방 유목민족과의 대립은 역사상 중요한 주제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중국의 우위는 확고한 것이었다. 그런데 당말 오대의 변혁기에 이들이 뚜렷하게 각성, 독자적 국가체제를 갖추고 중국을 정복해들어가니, 송대의 중국은 동아시아에서의 정치적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거란족의 요, 여진족의 금, 몽고족의 원으로 이어지는 유목민 정복왕조의 행렬은 중국의 일부, 절반, 끝내는 중국 전역을 송두리째 지배하게 되었다. 천하의 중심으로 자처하던 중국인의 자처하던 중국인의 자존심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며, 잇따른 전쟁 속에서 각국의 민족주의는 크게 고양되었다. 유목민족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내륙부, 건조한 기후대를 따라 목축, 수렵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광대한 초원의 바람소리를 귓가에 들으며 천막 속에서 살았고, 목초지를 따라 계절에 따른 이동 생활을 했다. 이들의 재산이라면 수백, 수천의 양떼와 말에 불과했다. 말은 여름철에 수많은 양떼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했으며, 겨울에는 부족원들의 사냥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먹고 사는 것은 가능하지만 재산은 늘릴 수 없는' 이들의 유목 생활은 언제나 소박했다. 가난은 주변 농경민족으로부터 생활필수품을 약탈하게 했으나, 성원간의 평등한 관계를 유지시켜줌으로써 그들의 부족 내부는 견고하게 단결되어 있었다.
중국 최초의 정복왕조가 되었던 거란족의 건국설화를 살펴보자. (그 옛날, 흰 말을 탄 신인이 토하(랴오허 강) 상류로부터 내려고, 검은 소달구지를 탄 선녀가 황허(시라무렌 강)의 상류로부터 내려왔다. 마침내 두 남녀는 두강의 합류점인 목엽산 기슭에서 만나 부부가 되었고, 아들 여덟을 두었는데, 이들이 각각 거란 8부의 조상이 되었다.) 거란족은 만주 시라무렌 연안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몽고계의 종족으로 8개의 대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유목민족인 그들에게 말이나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을 터이고, 아마도 수말과 암소를 토템으로 하는 씨족의 족외혼으로 결합하여 국가를 건설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과의 접촉기에 강성했던 두 성씨, 즉 야율 성과 심밀 성은 각기 말과 소를 상징하는 씨족명의 한자 표기어다. 916년 부족연합의 대칸이었던 야율 성의 아보기가 세습적인 지위를 확보, 전제국가 체제를 갖추고 '대거란국'을 건설했다. 아보기는 926년 만주에 200년간 군림했던 해동성국 발해를 멸망시키고, 몽고지역을 제패했으며, 그를 이은 태종은 석경당의 후진을 후원, 이른바 연운 16주를 얻고, 937년 국호를 '대요'라 했다. 거란족, 즉 '키타이'의 위력은 주변에 진동하여 러시아 말의 키타이는 중국의 호칭이 되었다. 연운 16주는 만리장성 남쪽, 즉 북경과 대동을 중심으로 한 화북의 일부 지역으로 이 중원의 땅이 이민족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은 중국인들로서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통일을 완성한 송태종은 이 실지의 회복을 위해 여러 차례 북벌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거란족은 농경민으로부터 단순히 물자를 약탈하는 차원에서 이미 벗어나 있었다. 약탈보다는 농업이나 수공업 기술자의 획득에 치중, 국력을 다져가고 있었다. 장성 이북의 유목지대에도 많은 도서적 집락이 만들어졌고, 그 가구 수는 연운지방의 호수에 필절하는 것이었다.
거란의 국력은 6대 성종 대에 이르러 최고수준에 달했다. 성종은 송의 영토를 향해 남하를 거듭, 송의 조정에 위기감을 조성했다. 송의 조정에서는 천도론까지 대두했으나, 재상 구준이 끝까지 싸울것을 주장, 진종의 친정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황하를 사이에 두고 요군과 대치하게 된 진종은 전쟁터가 가까워질수록 두려움에 떨며 일말의 전의도 없이 화의만을 모색할 뿐이었다. 한편, 보병 위주의 송군은 초원의 야전에서는 기마병인 요군을 당해내지 못했으나, 성을 거점으로 싸울 때는 완강한 저항력을 보였다. 때마침 송과의 교전에서 명장을 잃을 요군은 사기의 하락을 우려 화의에 응하게 되니, 이것이 이른바 '전연의 맹', 1004년의 일이었다. 이 조약에서 송은 형의 나라라는 명분은 얻었으나, 요에게 연운 16주의 지배를 인정하고, 매년 비단 20만 필, 은 10만 냥을 바치기로 했다. 이것은 빈번한 전쟁보다는 나은 차선의 선택이었다고 했으나, 다른 유목민족들과의 관계에서 하나의 선례가 됨으로써, 송의 국력은 크게 피폐하게 했다. 진종은 자신의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 하늘이 내린 글을 위조하여 봉선례의 의식을 성대하게 거행했으나, 비용만 더욱 소비되었을 뿐, 송의 실추된 권위는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요나라는 장성 이날의 화북 농경지대에는 한인 관료에 의한 중국식 행정을 유지시킴으로써 장성 이북의 유목지대와는 다른 이원적 지배체제를 취했다. 이른바 북면관, 남면관이 그것이다. 또한 불교를 도입, 중국인과 거란인의 일체화를 도모했다. 대장경의 간행 등 발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불궁사 석가탑은 중국 내에 현존하는 최고의 목탑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요나라의 중심은 명백히 장성 이북의 유목지대였으며, 그곳에서 거란족 독자의 체제를 구축, 중국에 대한 이민족 의식을 뚜렷이 하고 있었다. 그들의 민족의식은 위구르 문자를 계승하여 만들어진 거란 문자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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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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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뒤엔 호랑이가 있었다 - 호가호위(狐假虎威) 狐(여우 호) 假(빌릴 가) 虎(범 호) 威(위엄 위)
전국책戰國策 <초책楚策>에는 기원전 4세기 초, 중국의 전국시대 초나라의 선왕(宣王)이 위(魏)나라 출신의 신하인 강을(江乙)에게 북방 강대국들이 초나라 재상(宰相)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 하는 이유를 묻는 대목이 실려 있다. 강을은 여우와 호랑이의 고사 를 인용하여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즉, 짐승들이 두려워 한 것은 여우가 아니라 그의 뒤에 있던 호랑이였다는 것이다. 이는 북방의 여러 나라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 재상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선왕의 강병(强兵)임을 비유한 것이었다. 이렇듯 狐假虎威 란 아무 실력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의 권세나 배경을 빌어 위세 부리는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狐假虎威 를 일러 영어로는 an ass in the lion's skin(사자의 탈을 쓴 나귀) 이라고 하였던가. 하지만 죽은 사자의 탈을 쓴 나귀보다는 살아있는 호랑이를 꼬여 뭇 짐승들을 속인 여우쪽이 훨씬 교활하고 가증스럽다. 여우 같은 사람과 여우의 잔꾀에 속아 넘어간 눈먼 호랑이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는 전에 없이 뒤숭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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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호위(狐假虎威) [준말] 가호위(假虎威). [동의어] 가호위호(假虎威狐). [출전] ≪戰國策≫ 〈楚策〉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림에 비유.전국시대인 기원전 4세기 초엽, 초(楚) 나라 선왕(宣王)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선왕은 위(魏:梁) 나라에서 사신이 왔다가 그의 신하가 된 강을(江乙)에게 물었다.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 제국이 우리 재상 소해휼(昭奚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그렇지 않사옵니다. 북방 제국이 어찌 일개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 따위를 두려워하겠나이까. 전하, 혹 ‘호가호위’란 말을 알고 계시옵니까?” “모르오.” “하오면 들어 보시오소서. 어느 날 호랑이한테 잡아먹히게 된 여우가 이렇게 말했나이다. ‘네가 나를 잡아먹으면 너는 나를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로 정하신 천제(天帝)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되어 천벌을 받게 된다. 만약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당장 내 뒤를 따라와 보라구. 나를 보고 달아나지 않는 짐승은 단 한 마리도 없을 테니까.’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를 따라가 보았더니 과연 여우의 말대로 만나는 짐승마다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짐승들을 달아나게 한 것은 여우 뒤에 있는 호랑이였는데도 호랑이 자신은 그걸 전혀 깨닫지 못했다고 하옵니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이옵니다. 지금 북방 제국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소해휼이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초나라의 군세(軍勢), 즉 전하의 강병(强兵)이옵니다.”
이처럼 강을이 소해휼을 폄(貶)하는 이유는 아부로 선왕의 영신(?臣: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이 된 강을에게 있어 왕족이자 명재상인 소해휼은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虎求百獸而食之 得狐 狐曰 子無敢食我也 天帝使我長百獸 今子食我 是逆天帝命也 子以我爲 不信 吾爲子先行 子隨我後觀 百獸之見我而敢不走乎 虎以爲然 故遂與之行 獸見之皆走 虎不 知獸畏己而走也 以爲畏狐也 今王之地方五千里 帶甲百萬 而專屬之昭奚恤 故北方之畏奚恤也 其實畏王之甲兵也 猶百獸之畏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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