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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89호
2010. 9. 3 (음7. 25)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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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 한자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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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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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콘텐츠진흥재단 제3회 드라마 극본 공모전
제11회 한밭시낭송 전국대회 개최요강
************************************************************************************ 청산문학 신인상 공모 대한민국 순수 문학지로 출범한 청산문학에서 찬란한 꿈을 펼칠 주역으로 당신을 모십니다. 참신한 작가의 길을 꿈꾸는 여러분들께 최고의 무대가 될 것입니다. 지금 청산문학 신인작가 공모전의 문을 두드리세요. ♣신인작가 원고 공모♣ 1. 모집 부문 및 분량 응모작은 미발표 창작품 이어야함 * 당선 후 표절, 위작, 기 당선작 등이 밝혀질 경우 당선을 취소함 가. 시, 시조 : 5편 나. 수필 : 원고지 15매 내 2편 다. 아동문학 : 동시- 5편 동화- 원고지 30매~ 40매 내. 라. 단편소설 : 원고 70매 내외 2 심사 방법 및 대우 가. 원고 마감 후 심사 발표. 나. 심사는 청산문학 심사위원회에서 엄정하게 심사함. 다. 당선 작가는 1회의 당선으로 기성 문인으로 대우받으며, 라. . 당선자는 청산문학에 우선으로 게재하고 창작활동을 적극 지원 함
3. 작품 응모 및 발표 가. 모집기간 : 2010.년 09월 30일까지 나. 응모원고 첫 부분에 [ ○○부분 신인작품] 임을 명기하고 본명, 주소, 생년월일, 전화번호, 간단한 약력 기재 [미기재시 접수불가] 다. 이메일 접수 : k1231713@naver.com 우편접수: (우) 449-820 경기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503-3 청산문학 라. 당선작발표 : 1차 합격자 개별통보 2차 최종 합격자 발표 개별및 청산문학 (홈페이지 및 카페) 에 발표 마. 응모 원고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3. 기타 가. 당선 작품의 판권은 1년 동안 청산문학에 귀속됩니다. 문의 010-3364-3565 청산문학 淸山 文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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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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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꺼요. 울어보라, 너 혼자 울겠지. 서글프고 늙은 이 세상은 환희는 빌려야하고 자신의 고통은 너무 많으니까 말이다. - E.W.윌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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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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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식/표지, 성력/생력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한자 시험에는 함정이 있는 문제가 많이 출제되었다. “다음 한자의 독음을 쓰시오”라는 문제에 敗北, 嫌惡, 遊說 등을 내놓았다. 두 가지 이상의 뜻과 음을 가진 한자 또는 본음과 속음이 다른 한자를 문제로 내놓아 헷갈리게 만든 것이다.
“일부는 항공기 표면에 멕시코 경찰 항공기와 같은 청색과 흰색 페인트칠을 하고, 멕시코 정부를 상징하는 표식까지 붙여 위장을 하기도 한다.” 마약조직과 관련한 중앙 일간지 기사의 한 구절이다.
기사 중의 ‘표식’은 한자로 쓰면 ‘標識’으로서 바른 독음은 ‘표지’이다. ‘識’은 ‘알다’는 뜻으로는 ‘식’으로 읽고, ‘적다, 표하다’는 뜻으로는 ‘지’로 읽는다. 그런데 ‘표지’를 ‘표식’으로 쓰거나 발음하는 사람이 많다. ‘표식’을 틀린 말로 계속 놔두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오늘날 이 말을 한자로 적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니 그냥 한글 낱말로 받아들여 ‘표지’와 ‘표식’을 모두 허용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문제가 없지는 않다. ‘표식’을 허용하면 ‘표지판’을 ‘표식판’으로 읽는 것도 허용해야 할 터인데, 좀 지나친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 좋겠다고 주장하기가 꺼려진다.
‘인력절감’이라는 뜻의 ‘省力’이라는 말은 일본에서 들여온 말이다. ‘省’이 ‘살피다’는 뜻이 아니고 ‘덜다’는 뜻이므로 ‘생력’으로 읽어야 한다. 사전에도 ‘생력’으로 실려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가장 많이 쓰는 기업이나 단체에서는 하나같이 ‘성력’으로 쓰고 있다. 번역 오류에 기인되었지만 되돌리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재욱/시인
다반사
항다반(恒茶飯)과 사(事)가 결합한 ‘항다반사’가 본말이다. 항다반은 ‘항상 있는 차와 밥’이라는 뜻이다. 차와 밥은 늘 마시고 먹는 것이다. 이것들이 있다고 이상하거나 신통하지 않다. 항다반은 항상 있어 이상하거나 신통할 것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 됐다. 항다반사 혹은 다반사는 흔히 있는 예사로운 일(事) ‘예삿일’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볼멘소리
불만스러운 일이 있거나 화가 나면 볼이 부루퉁하게 부풀어 오른다. 볼은 화난 기운으로 가득 차 막히게 된다. 이때 말을 하게 되면 퉁명스럽다. 볼이 막힌 상태에서 말을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볼멘소리’에 서운하거나 성이 나서 퉁명스럽게 하는 말소리라는 의미가 생겼다. ‘메다’에는 ‘구멍 등이 가득 차거나 막히다’는 뜻이 있다.
덤탱이, 덤테기, 담타기, 덤터기
올바른 표현을 골라 보세요.
①엉뚱한 사람에게 덤탱이를 씌우지 마라. ②엉뚱한 사람에게 덤테기를 씌우지 마라. ③엉뚱한 사람에게 덤터기를 씌우지 마라. ④엉뚱한 사람에게 담타기를 씌우지 마라.
"그는 친구의 빚보증을 잘못 섰다가 덤테기를 만나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에서와 같이 '남에게 넘겨씌우거나 남에게서 넘겨받은 허물이나 걱정거리'를 의미하는 말로 '덤테기'를 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혹은 "꾀부리다 오히려 덤탱이 썼어"와 같이 ''덤탱이''란 말도 자주 쓴다.
그러나 '덤테기' '덤탱이'는 모두 잘못 알고 쓰는 것이다. 올바른 표현은 '덤터기'다. '덤터기'는 "그 여자는 주인집의 보석을 훔쳤다는 덤터기를 쓰고 쫓겨났다"에서처럼 '억울한 누명이나 오명'을 뜻하는 말로도 쓸 수 있다. 그런데 위 문제의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③번 '덤터기'와 ④번의 '담타기'가 모두 바른 표현이다. '담타기'는 '덤터기'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작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공권력
"불법 점거 농성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됐다." "민주화 투쟁과 역사 발전에 헌신하다 분신.투신 등으로 세상을 떠났거나 공권력의 고문과 폭력으로 희생된 분들을 기린다." "미국 시청자 입장에서 시위대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을 공격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장면'으로 분류된다."
'공권력(公權力)'이란 낱말은 최근에 생긴 것이다. 주로 발음을 어떻게 하느냐로 관심의 대상이 됐다. 표준 발음은 [공꿘녁]으로 결론 났고, 주요 사전들이 모두 이 발음을 따르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낱말이 '공+권력'이 아니라 '공권+력'으로 구성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만일 '공+권력'이라면 [공꿜력]이 표준 발음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를 보면, '국가나 공공 단체가 우월한 의사의 주체로서 국민에게 명령하고 강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 돼 있다. 동아새국어사전도 '국가나 공공 단체가 국민에 대해 명령.강제하는 권력, 또는 그 권력을 행사하는 국가'로 설명한다. 두 사전의 뜻풀이를 요약하면 '국가나 공공 단체의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의(定義)는 표준 발음의 근거가 되는 '공권+력'(공권의 힘)이 아니라 '공+권력'(공적인 권력)을 따르고 있어 단어의 구성과 뜻풀이가 서로 어긋난다. '공권력'이 '공권+력'으로 구성됐다면 그 뜻풀이도 '공권의 힘'이라고 해야 서로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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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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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소한 이름을 부르고 싶다 - 박소원
그대도 공원을 돌며 몇 그루의 단풍나무와 만나보면 나무에게도 붉은 목젖을 보이면서까지 비명처럼 토해 내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마늘을 다질 때마다 매운 향이 두 눈을 콕콕 쏘아대던 그 발끈함과 어쩐지 조금은 닮아 있는 욕망들 아무리 여린 것들도 끝까지 가면 누구나 자기 안에 거역의 힘이 장전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저 나무들도 실은 혼자가 아니다 제 안에 수많은 타자를 담고서 그들과 치열한 교접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주먹을 불끈 쥐고 싸워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장렬히 자기를 주장하려 들 것인가 나날이 붉어지는 저 나무의 단풍잎들 내가 너무 가혹하니? 벌건 눈을 깜박이며 혼절하도록 제 안에 갇혀 서로가 서로를 운명처럼 밀어부치고 있는 것 만남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갇혀 있겠다는 선서인가 매일 이 아름다운 풍경은 코피를 쏟으며 내 사소한 이름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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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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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생각 - 김광수
시병(時病)을 고칠 비책(秘策)은 피시 있을 법 한데
효험이 신통하다는 약 소문만 무성하다.
지구는 중증(重症)을 앓아 갈수록 비틀거리고
구암(龜巖)이 쓰던 약통에 잊고 둔 고약 있다면
신 벗어 들고 달려가 송두리째 빌어 와서
곪아 곧 터질 것만 같은 세환부(世患部)에 붙이고 싶다.
(구암 = 허준의 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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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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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 이오덕
까만 옷을 입고 다녀도 깨끗한 풀만 먹는 염소야, 깨끗한 물만 먹는 염소야, 너는 그래서 겨우 손가락만한 뿔을 두 개 길렀느냐?
조심스레 깨끗한 땅만 밟고 다니며 언제나 서먹서먹 나를 대하는 염소야, 가랑잎이 바스락거려도 너는 놀라더구나. 강아지가 달려와도 너는 비켜서더구나. 너는 너무도 착해서 촌스런 수염을 달고 다니지?
매애! 저녁마다 다가오는 어둠이 싫어 언덕 위에서 울고 있는 염소야, 나도 울고 싶단다, 너를 따라 피 같은 노을을 바라보면서 저녁이 오면 어린애같이 울고 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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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시조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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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夜吟 달빛 맑은 밤에
소옹 邵雍 1011 ~ 1077
月到天心處 하늘 가운데 멈춘 달 風來水面時 물 위를 스치는 바람. 一般淸意味 이런 상쾌한 맛 料得少人知 아는 이 적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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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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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3장 문학은 무거워도 사는 건 가볍게
찰스턴의 유령
-기왕 나올 바에는 유령도 고풍 찬연하고 고요하며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완고하게 옛모습을 간직한 곳에 나타나고 싶을 텐데... ... 찰스턴에서 유령이 나오지 않는 오래된 집을 발견하기란 지극히 힘든 일이다, 라고 어떤 책에 씌어져 있었다. 뭐 다소 문장상의 과장은 있었다 해도, 확실히 해질 모렵에 찰스턴의 고요한 코블스톤 거리를 걷다 보면 정교하게 세공된 검은 철문 너머로, 혹은 어렴풋한 등불이 뿌옇게 비치는 현관 한 구석에서 뭔가 이상한 그림자를 본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한밤의 정원은 어쩐지 울적하고, 거대한 떡갈나무 가지에 몰(역주: 인도 모골 지방이 원산지인 돋을무늬의 모직물)처럼 축 늘어진 착생 식물이 강바람에 흔들거리며, 땅거미 속에 백일홍이 아련하게 떠 있다. 찰스턴이란 곳은 그런 도시다. 모든 것이 오래되고 고요하며, 그리고 우아하다. 기왕 나올 바에는 유령도 뉴욕 시티보다는 이런 도시에 출몰하는 쪽이 훨씬 기분이 좋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찰스턴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데, 고풍 찬연한 남부의 옛모습을 좀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완고하게 간직한 항구 도시다. 애슐리 강과 쿠퍼강이 합류하여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 하구에 꼭 맨해튼 섬과 비슷한 모양으로 위치하고 있는 천연의 항구로, 식민지 시대에는 '작은 런던'이라 불리며 번창했었고, 군사적 중요성에서 남북전쟁의 발화점이 되기도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팬들에게는 버틀러 선장이 봉쇄망을 뚫고 용감한 이름을 날렸던 도시라고 말하면 얘기가 통할지 모르겠다. 나는 딱히 레트 버틀러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앨라배마 주의 모빌 호텔에서 미국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찰스턴이라는 곳에 꼭 가보고 싶어져서 비행기를 타고 곧장 대서양 해안으로 날아갔다. 어째서 찰스턴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의 여행이라는 것은 대개 늘 그런 식이다. 지도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마음에 들 만한 곳이 있으면'음, 이거야!' 하고 결심하고는 그 곳으로 간다. 그런 기대에 제대로 부등되는 때도 있고, 전혀 영 아니다 싶을 때도 있다.
찰스턴은 기대에 부응했던 도시다. 그 사실은 애슐리 강의 다리 위에서 도시를 한눈에 둘러보았을 때부터 이미 알았다. 물가에 무성한 푸른 풀들은 마치 논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쓰다듬어 주기라도 하는 듯 부드럽게 몸을 흔들고 있고, 줄줄이 늘어선 요트의 돛대는 여기저기에서 펄럭펄럭 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 위를 갈매기나 황새(!)가 천천히 춤추듯 날고 있다. 시가지는 오랜 기품을 간직하고 있고, 고층빌딩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거리를 걸어가고 있으면 몇 사람이나 "하우 아 유 두잉 투데이?"하고 말을 걸어 온다. 찰스턴이라는 것은 아이 앰 저스트 파인. 생큐,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만약 당신이 유령이라해도 사우스 브롱스크보다는 역시 이런 곳에 나타나고 싶겠죠? 내가 묵은 여관에도 자주 유령이 출몰한다고 한다. 나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찰스턴의 유령》이라는 책에서 보고 알았다. 이책에 따르면 "유령은 밤이 되면 복도를 걷다가 2층에 있는 남쪽 침실로 들어가 그 곳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유령의 정체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타르반데라는 부인일 거라고 얘기되고 있다. 타르반데는 18세기 후반에 이 건물에서 여자 기숙학교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어째서 그녀가 20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굳이 한밤중에 복도를 걷고 있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불투명하다. 하기야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유령이 나오는 여관의 본관에 묵지는 못했다. 객실이 네 개밖에 없는 본관이 전부 찼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여관의 젊은 주인인 월터 버튼 씨는(소개가 늦어졌는데, 이 여관의 이름은'스워드 게이트 인'이다) 나를 별채에 묵게 해주었다. 별채는 이웃집 정원을 지나 안쪽에 있는데, 전용 풀이 딸려 있는 호화로운 큰 건물이었다. 월터쎄는 나를 안내하면서 "이웃집이지만 지나 다니는 걸 염려하시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다. "잠깐만요"하고 내가 끼여들었다. "웨스트 모어랜드라면 ......베트남 전쟁에서 총사령관을 지낸 웨스트 모어랜드 말입니까?" "맞아요"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장군의 집 정원에는 동남 아시아에서 가지고 돌아온 듯한 장식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타르반데 유령보다는 인도차이나 땅에서 쓰러져 간 몇십만, 몇백만의 사람들의 피가 훨씬 리얼했지만, 이 우아한 찰스턴에서 그런 말을 해봤자 풍류없단 소리나 들을 것이다. 게다가 여관의 젊은 주인은 무척 친절한 사람이었다. 이번 주말에 친구들과 대형 요트를 타고 가까운 섬에 가서 수영도 하고 바비큐 파티도 할 예정인데 같이 가지 않겠냐며 나를 초대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일정 관계로 그들과 동행할 순 없었지만, 딱히 섬까지 가지 않고 이 거리에서 느긋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마도 이 고장 사람들은-이 기품있는 조용하고 깔끔한 고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인도차이나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결국 그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밤 열 시 반에 달빛이 비치는 웨스트 모어랜드 장군 일가의 정원 끝의 풀에서 헤엄을 치면서 말이다.
찰스턴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엄청나게 많은 레스토랑이 있는 데다가 맛의 수준도 미국 치고는 월등히 높아서 실망시키는 일이 별로 없다. 나는 퀸 거리에 있는 '푸건즈 포치'라는 남부풍 시프드 레스토랑이 마음에 들어 그곳에서 몇 번이나 저녁밥을 먹었다. 황당무계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냉방이 잘 되지 않았다.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빙글빙글 돌아 가며 공기를 휘젓고, 그 아래에서 우리는 디프 프라이드 캣피시(메기 말이다)를 먹었다. 메기는 제법 맛있는 물고기다. 보리멸의 맛과도 비슷하지만, 보리멸보다는 약간 진한 느낌이 든다. 암게를 사용해서 만든 수프와 도넛 버터 파이는 이 가게의 자랑거리고 이 두 가지는 확실히 일품이다. 이 세 가지 외에 머시룸 서테와 슈림프 크레올과 샐러드와 커피가 딸려 나오면서 20불 남짓이니, 이 정도면 꽤 싼 거다. 이곳에서 '돌핀 사바나 풍(風)'이라는 요리도 먹었다. 가다랭이와 게르치를 뒤섞어 고급스럽게 만든 듯한 맛이 났다. 약간 오도독거려 꽤 맛이 괜찮았지만, 이것은 진짜 돌고래는 아니고 아마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만새기였을 것이다. 아무리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미국에서 돌고래를 먹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푸건즈 포치'의 넘쳐흐를 정도로 양이 많은 정식을 배에 꾹꾹 눌러 담고 나는 애슐리 강을 향해 처치 거리를 걸었다.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모양의 달이 은세공품처럼 부드러운 여름 밤 하늘에 파묻혀 있었다. 나는 강가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포도주의 취기를 씻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각별히 이렇다 할 만한 이유도 없이 백일홍 옆에 앉아 있다. 마치 예약 등록을 끝마친 말없는 유령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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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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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결정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결단을 결정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결정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근본적으로 결정의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점에서는 똑같다. 신세대는 후자, 즉 방임하는 쪽을 선택하였고 구세대는 전자를 선택하였다. 그러나 그대가 뗏목을 타고 물결 흐르는 대로 맡겨 둔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 자신의 결정에 따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그대를 돕고 길을 가르쳐 주더라도 결정은 반드시 그대가 하도록 하라. 왜냐하면 그대의 정신은 그대의 결정을 통해 밖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대가 결정을 하면 할수록 그대는 더욱 완전에 가깝게 된다. 물론 그대가 그대를 책임지면 질수록 더욱 위험해질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삶이란 원래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그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그대가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은 많지만, 사람은 실수를 통해 배우게 마련이다. 삶은 시행착오인 것이다. 그대가 결정해야만 한다. 결정은 숙명적이며 결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그대는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라. 그러면 그대는 무엇인가를 배울 것이며, 그대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대는 돌아올 수 있으며, 오히려 길을 잃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길을 잃어버린 것으로 그대는 수많은 것들에 통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오로지 실패할 용기가 있을 때에만 수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한가지만은 기억하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는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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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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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9장. 다시 여는 내 인생
적극적인 삶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라. 인간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열심히 사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추한 모습은 빈둥거리는 것이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보고 싶은 것을 찾아서 보고, 귀에 들리는 소리만 듣지 말고 듣고 싶은 것을 찾아서 듣고, 식탁 위에 올려지는 음식만 먹지 말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서 먹고, 주어지는 일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해야 한다. 우리 몸에 부여되어 있는 감각 기관들을 살아가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눈은 좀 더 아름다운 것을 보며 살아가는 데 이용하고, 귀는 좀 더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데 이용하며, 입은 좀더 맛깔스런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데 이용하고, 두뇌는 좀더 가치있고 유익한 생각을 엮어 내며 살아가는 데 활용해야 한다. 우리 몸에 부여된 이러한 기능들을 얼마나 충실히 살아가는 도구로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가치와 질은 차이가 난다. 눈은 칙칙한 천장만을 바라보는 데 머물러 있고, 귀는 음담 패설을 듣는 데만 흥미를 붙이고 있으며, 입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만 열중하고 있고, 두뇌는 온통 돈을 벌기 위한 궁리로만 가득 차 있으면 삶의 가치와 질은 바닥 수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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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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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3. 살아있는 지구의 이름, 가이아
지구는 살아 있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우주선 스푸트니크 호를 발사하고 나서 4년이 흐른 뒤인 1961년의 어느 봄날, 영국 윌트셔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제임스 러브록은 처음 받아 보는 연애편지처럼 기대와 희망으로 한껏 부풀려진 편지 한 장을 받았다. 것은 미국 항공 우주국로부터 온 것이었다. 편지는 달 탐색선에 실어보낼 실험기기를 개발하는 연구원으로 귀하를 초청한다 는 내용을 담고있었다. 러브록은 너무나 들뜨고 기쁜 나머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초청은 그동안 그가 은밀히 품고 있던 개인적 환상 을 합법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소 독특한 사람이었다. 생물학자이면서 의학박사이기도 했던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으로 마을에 살면서 다양한 실험기기들을 연구개발했다. 그는 어린 시절엔 그림 형제의 동화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즐겨 읽었으며 조금 더 켜서는 줄 베른과 웰즈의 공상 과학 소설에 깊이 빠졌는데, 그때문인지 과학자가 된 뒤에 때때로 공상 과학 소설의 현실로 바꾸는 것이 곧 과학자의 사명 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동료들은 그의 그런 말을 농담이려니 여겼지만 그는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제트추진 연구소에서 NASA는 연구원들과 함께 달 탐색용 실험장치를 개발하던 허브록은 이어서 그보다 훨씬 더 흥미를 끄는 연구에 동참하게 되었다. NASA는 화성에 탐색선을 보내 생물체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알아보려고 저명한 생물학자들을 동원하여 여러 가지 실험 방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러브록이 맡은 일은 생물학자들이 제안한 다양한 실험방법들을 현실화하는데 필요한 실험기기의 설계와 관련해 자문을 해 주는 것이었다.
평소에 지구 이외의 다른 행성에서 생물체를 찾으려면 과연 어떤 실험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개인적 환상을 키워왔던 러브록은 굉장한 열의를 가지고 그 일에 덤벼들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그 프로젝트의 주역인 생물학자들이 만든 실험장치로는 화성에 생물체들이 떼로 몰려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던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생물학자는 화성 생물체 탐사 장치라면서 한 변의 길이가 약 1센티미터쯤 되는 아름다운 상자모양의 기기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러브록이 그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물어 보자 생물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은 벼룩을 유인하는 상자입니다. 벼룩들은 이 상장 안에 놓인 미끼에 끌려 안으로 뛰어들어 오지만 결코 밖으로 다시 나가지는 못합니다." "화성에 벼룩이 살고 있을 거라고 확신을 하시는군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화성에는 태양계에서 가장 커다란 사막이 발달해 있습니다. 사막으로 가득찬 행성이라고나 할까요. 사막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낙타가 있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낙타처럼 벼룩을 많이 붙이고 다니는 동물은 달리 찾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장치를 쓰면 화성에서 생물체를 찾는 데 결코 실패할 리가 없지요."
하지만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그는 혼자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의문들 - 만약 화성에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이 어떻게 지구의 생물 스타일에 근거한 실험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대체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인식될 수 있을까? - 에 해답을 구해나가다가 행성에서 생물체를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의 수송 매개체로서 대기권을 이용하고, 대사 작용의 결과 생성된 노폐물의 처분장소로 해양을 이용한다. 이러한 생물체들의 작용으로 대기권의 화학적 조성이 달라지게 되며 따라서 생물체가 존재하는 행성의 대기는 생물이 살지 않는 행성의 대기와 뚜렷하게 구별될 수 있다 는 것이 그의 가설이었다. 이 가설은 다시 그를 더 큰 가설로 이끌었다. 그것은 우주에서 가장 거창한 생명체인 지구에 대한 것이었는데 이제까지는 없던 완전히 새로운 가설이었다. 그 가설의 핵심은 지구는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 라는 것이었다. 러브록은 지난 30억년 동안 지구 대기권의 원소 조성과 해양의 염분 농도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생물이 지구상에 출현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또한 탄소, 질소, 인, 황, 규소 등의 주요 원소들이 대륙과 해양을 순환하며, 놀랍게도 순환의 매개자가 전적으로 생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생물들은 기후를 조절하고 때로는 해안선을 변화시키고 대륙을 이동시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는 지구는 그 위의 생물체뿐만 아니라 대기, 해양, 심지어 토양과 암석까지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진정 살아 있는 한 행성 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지구는 이제껏 사람들이 써 온 단순한 생물체들의 서식처로서의 지구 와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러브록과 동년배이면서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소설가 윌리엄 골딩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이름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살아 있는 지구의 이름, 그것은 가이아였다. 러브록은 그리스어로 대지의 여신을 의미하는 이 말보다 더 적절한 용어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하며 흡족해했다.
만물의 터전, 넓디 넓은 가이아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여신으로서 게(Ge)라고도 불렸다. 지리학(geography), 지질학(geology) 같은 학문의 명칭 앞머리 글자 ge는 거기서 유래한 것이다. 모든 민족들에게는 고유한 세계 창조설이 있다. 더 범위를 좁혀서 보면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지어내고 전승해 온 이들의 독특한 심성이 드러나 있다. 그런데 세계 창조설이나 원시 종교에 거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지의 신은 대개 여성형이며 그 특성도 비슷하다. 뭇 생명을 낳고 그것을 생장, 번성케하며 자비롭고 너그럽다. 가이아 역시 그리스인들에게는 생명과 풍요의 근원으로서 거룩한 모성의 원형이였다. 헤시오도스는 그리스인들이 믿었던 세계의 시작 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으며 다음에 생긴 것은 변함없는 만물의 터전으로서 넓고 넓은 가이아니라."
카오스는 누가, 또는 무엇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거기 존재했으며 무한의 공간 속에 자리한 잡탕으로 뒤섞인, 형태 없는 부동의 덩어리였다. 그래도 그 안에는 만물의 씨앗이 잠재해 있었으니 카오스는 곧 에레보스(그윽한 어둠)와 뉘스(밤)를 낳았다. 이어서 에레보스와 뉘스가 교합하니 거기서 헤메라(낮)와 아이테르(푸른 하늘)가 태어났다. 한편 가이아는 그 넓디 넓은 몸을 뒤척여 우라노스(하늘)와 폰토스(바다)를 낳았고 연후에 다시 우라노스와 교합하여 아들 여섯과 딸 여섯을 낳았다. 그 12남매가 바로 원시적인 자연력의 상징이면서 올림포스 신족의 앞 세대인 티탄 신족들이었다. 오케아노스(대양), 휘페리온(높은 곳을 달리는 자), 크로노스(시간), 레아(동물의 여주인), 므네모쉬네(기억), 테미스(이치)가 모두 티탄의 일원이었다. 티탄 열두 남매에 이어 가이아는 우라노스와의 사이에 퀴클롭스(외눈박이 거인) 3형제와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를 낳았다. 퀴클롭스는 이마에 커다란 눈을 하나씩 달고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3형제의 이름은 각각 브론테스(천둥), 스테로페스(번개), 아르게스(벼락)이었다. 팔이 백 개나 달린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의 이름은 각각 코토스(돌진하는 자), 브리아레오스(강한 자), 귀에스(수족이 있는 자)였다. 그런데 이들은 모양새로 사납거니와 이름 그대로 언동도 얌전치 못했다. 그런 연유로 아비되는 우라노스는 자기가 낳은 자식이면서도 이들을 몹시 미워하였고 끝내는 가이아의 뱃속, 즉 타르타롯(무한지옥)에 가두어 한낮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였다. 우라노스의 모진 행동과 갇힌 아들들의 행패 때문에 몸과 마음이 고통스럽기 그지없던 가이아는 마침내 우라노스에게 복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이아는 티탄 12남매를 불러모은 뒤 물었다.
"누가 나서서 이 어미의 괴로움을 덜어주겠느냐?"
아무도 섣불리 나서지 않는 중에 막내인 크로노스가 나섰다. 크로노스는 어머니가 준 작은 낫을 들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우라노스가 오길 기다렸다. 밤이 깊어 이윽고 우라노스가 내려와 온 몸으로 가이아의 몸을 덮으려는 찰나, 크로노스는 낫으로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버렸다. 가이아의 몸 위로 우라노스의 피가 쏟아졌고 그 피의 정기로 가이아는 다시 복수의 세 여신과 기간테스를 낳았다. 아비 우라노스를 거세한 크로노스는 티탄 형제
- 이하 게시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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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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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침묵
다섯 살 난 어린 소년이 그의 선생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너의 여동생은 이제 말하기를 배웠느냐?" 그 소년이 말했다. "예. 말하기는 배웠는데 이제 우리는 그 아이에게 조용히 하도록 가르치고 있어요."
- 이것은 불행이다. 그대는 말을 가르쳐야만 한다. 그것은 삶의 일부이니까. 그러나 그후에 그대는 침묵하는 법, 말이 없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서두르지 말라
한 정신과 의사가 바에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슬픔에 얼룩져 있었으며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때 그의 동료 의사가 바 안으로 들어왔다. "이봐, 죤! 오늘 밤 자네는 평소의 자네답지 않아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내게 말해 봐." "별로 할 말이 없네." 죤이 대답했다. "내가 수년 동안 치료해온 그 부자 환자 말이야. 사실 그는 처음부터 내게 많은 일거리를 안겨 주었지 않나?" "그렇지. 30년 동안 자신이 고등학생이라고 믿어 온 그 환자 말이지." 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 주에 그가 마침내 졸업했다네."
- 서두르면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서두르지 않을 때 비로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만일 그대가 어느 곳에도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대가 단순히 가만히 앉아 있다 하더라도 그대는 목적이 도달한다. 그것은 여행해야 할 거리의 문제도, 목적지 문제도 아니다. 목적지가 멀리 떨어져 있다면 자연히 그대는 더욱 빨리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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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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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37. 채소를 사 먹는 농민 - 산업의 대약진(10세기 전후)
현행 중학교 1학년 사회 교과서를 보면, 현대 중국의 농업은 화북지방은 밀, 조, 수수 등의 밭농사 지대, 화중, 화남지역은 벼, 보리가 주로 생산되는 세계적 벼농사 지대로, 특히 화남지방에서는 벼의 2기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업생산기술의 전반적 진전에 따른 이러한 농업생산의 지역적 분화가 이미 10세기를 전후한 시기, 즉 당말 오대 송초에 이루어져 중국사회 전반의 대변혁을 초래했다. 진종(997년 즉위)때의 중신이었던 장영이란 이가 처음 진사에 급제, 산간 도지인 숭양현 지사로 발령되었다. 어느 날, 그는 고을 안의 시장에서 채소를 사들고 돌아오는 농민을 발견하고 개탄해 마지않았다. '농사꾼이 시장에서 채소를 사다 먹다니 고약한 일이로다. 필시 게으름뱅이 농사꾼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해본 결과, 고을 근교 일대에는 그같은 채소를 재배하는 농민이 없었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체계적인 농서로서 현종 최고의 노서인 '제민요술'에 의하면, 6세기경의 화북에서는 주곡은 아직 조였으며 조와 밀의 재배는 별개의 농지에서 1년 1모작의 형태로 재배되었다. 그러나 당대 이후 밀의 분식이 널리 성행, 대규모 제분업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이 무렵이 되면 밀이 주곡으로서의 위치를 확립, 같은 농지에서의 밀과 조의 2년 3작의 농법이 출현했으며, 이후 화북의 농업의 기본적인 형태로 정착했다. 화중, 화남지역의 벼농사는 더욱 획기적인 발전, 1세기 만에 생산량이 배가되고,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를 수반했다. 나라 경제와 국가재정의 중심은 이제 명백히 강남지대로 이행, '소호사 풍년이 들면, 천하가 족하다.'라고 하는 속담이 생겼다. 대체로 남조기까지 강남의 벼농사는 파종 전에 잡초를 모두 태워 버리고 볍씨를 직접 뿌리는, 그리고 1년 휴한을 수반하는 농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이 무렵에는 모내기법, 인분, 퇴비, 참께 찌꺼기 등을 자연 비료로 사용하는 시비법, 저습지대의 기름진 진흙을 농토에 넣는 객토법 등의 기술이 크게 확대되고, 용골차로 불리는 관개용 수차를 비롯한 각종 새로운 농구가 출현, 생산기술의 비약전인 발전을 보였다. 이에 따라 벼와 보리의 1년 2모작이 널리 시행되었고, 화남에서는 벼의 1년 2기작이 시작되었다. 벼의 품종도 다양화되고, 특히 베트남 남부에서 유래, 그 지명을 딴 점성도가 도입, 점차 도시 하층민의 식량으로 널리 거래되기 시작했다. 또한 우전, 위전, 호전 등으로 불리는 농경지가 크게 확대, 벼의 생산량이 급증했다. 가령, 남경 부근 하천의 주요 범람원에 대규모 제방이 설치되니 제방 안쪽으로 너른 농토가 생겨났다. 소주에 인접한 태호로부터 양자강 하류의 저습지대에는 크리크를 통해 배수하고, 파낸 흙으로 제안을 쌓아 수전을 보호했다. 또 호수나 소택의 일부를 제안으로 에워싸 수전화하기도 했다.
농업생산의 비약적 발달과 지역적 분화는 점차 자급자족적 단계에서 상품생산의 경향을 띠기 시작했고, 쌀과 보리까지 광범한 물자유통 과정에 편입되면서 상업의 발달이 촉진되었다. 대중적인 수요의 증가에 따라 각종 수공업이 농업에서 분리, 지역 특화 산업으로 발전했으며, 여기에 해상무역이 크게 발달, 차, 비단, 도자기로 대표되는 중국 산물의 생산 또한 크게 고무되었다. 차는 본래 인도의 야생식물이었으나, 중국에 전래되어 처음에는 약용으로 쓰이다가, 삼국의 오나라에서 기호식품으로 사용하기 시작, 점차 일반화했다. 당 중기에 이르면 '다경'이라는 책자가 발간 될 정도로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으며, 송대에는 대중적 음료로서의 지위를 확립, 차의 재배는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잡았으며, 중국의 대표적인 산물이 되었다. 차의 맛에 한번 길들여진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했다. 거란 등 북방 유목민족들도 차를 몹시 즐기게 되어차를 수입하고 말을 수출했다. 복건, 강서, 사천 지방에는 차의 재배를 전업으로 하는 농가가 속출했다. 견직물은 여전히 중국의 대표적인 대외 수출품으로서, 또한 중요한 내수용품으로서 생산량이 급증했다. 비단은 중국귀족들의 수요를 충당하는 화북지방의 최고품으로부터, 신흥 도시민, 중소지주, 중소상인을 겨냥한 강남의 하급품 등으로 분업, 대량생산되기 시작했다. 12세기경에는 면화도 재배, 중국의 직불자원을 추가시켰다. 특히 도자기업이 송대에 커다란 발전을 보여, 가히 황금시대를 창출했다. 북송기에는 정요, 여요, 관요, 가요, 균요 등 화북의 이른바 5대 도요지가 이름을 날렸고, 남송기가 되면 강남의 경덕진과 용천 등이 요업의 중심지로 각광, 중국 도자사상 최고수준의 청자와 백자를 생산했다. 대중적 수요에 상응한 일용품의 대량행산도 시작되었다. 또한 오늘날 하북성 제일의 요업지로 각광받는 자주요의 도자기는 석탄을 동력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석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었고, 당말부터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송의 수도 변경에는 어느 집이고 석탄을 사용하지 않는 집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한 산업 전반의 놀라운 발전을 동력으로 송대의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산업의 발달이 반드시 일반민의 생활향상으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생산의 증진 속에 농민간의 계층 분화가 더욱 촉진, 송대의 일반적인 지주-전호제가 확립되었다. 신흥 지주층이 대규모 수리 관개공사를 주도한다든가, 소 등의 가축, 혹은 용골차 등의 새로운 농구를 독점하면서 새로이 성장, 위진 이래의 문벌귀족에 대신하는 송대의 새로운 지배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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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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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는 짠물에서 못 산다 - 정중지와(井中之蛙) 井(우물 정) 中(가운데 중) 之(갈 지) 蛙(개구리 와)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황하의 신(神) 하백(河伯)은 가을 홍수로 황하의 물이 불어나자 기뻐하며 천하의 훌륭함이 모두 자기에게 모여있다고 생각하였다. 물을 따라 동해의 북쪽 바다에 이르자 하백은 바다의 위세에 눌려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북해의 신(神)인 약(若) 은, 우물 속의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말해도 소용없는 것은 그가 좁은 곳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오(井蛙不可以語於虛也, 拘於虛也). 지금 당신은 대해를 보고 비로소 자신의 꼴불견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대도의 이치를 말할 수 있을 것이오. 라고 하였다. 井中之蛙 란 우물 안의 개구리, 즉 생각이나 식견이 좁은 사람이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井蛙不知大海 라거나 井底蛙 라는 표현도 모두 같은 의미이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Globalization 인지 세계화 인지를 외치며 우물 안의 개구리 소탕을 선도했던 사람을 요즘 들어선 보기 어렵다. 뜬금없이 우물 밖으로 나가라 하니, 영어 과외가 급증하지 않고 국제 공항이 붐비지 않고서야,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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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지와(井中之蛙) / 우물 안 개구리, 즉 견문이 좁아서 넓은 세상의 사정을 모름의 비유. 《出典》'莊子' 秋水篇 / '後漢書' 馬援傳
황하의 신(神)인 하백(河伯)이 흐름을 따라 처음으로 바다에 나와, 북해(北海)까지 가서 동해(東海)를 바라보면서, 그 끝이 없는 넓음에 놀라서 북해의 신(神)인 약(若)에게 말했다. 그러자 북해의 신(神)인 약(若)이 이렇게 말했다.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며,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여름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식견(識見)이 좁은 사람에게는 도(道)를 말해도 알지 못하거니와, 그것은 그들이 상식의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자기의 추(醜)함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더불어 큰 진리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北海若曰 井?不可以語海者 拘於處也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曲土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敎也 今爾出於崖擊 觀於大海 乃知爾醜 爾將可與語大理矣.
이것은《莊子》'秋水篇'에 실려 있는 첫머리의 에피소드로, 하백(河伯)과 북해의 신(神)인 약(若)과의 문답은 계속된다. 이 문답을 통하여 莊子는 道의 높고 큼과 대소귀천(大小貴賤)은 정하여진 것이 아니니, 대소귀천(大小貴賤)의 구별을 잊고서 道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井中之蛙 不知大海'는 '우물 가운데 있는 개구리는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한다'라는 뜻으로 중국에서는 '井蛙'라고 말하며 또 '井底蛙'라고 말하기도 한다.
【원 말】정중와 부지대해(井中之蛙 不知大海) 【준 말】정와(井蛙) 【동의어】정와(井蛙), 정중와(井中蛙), 정저와(井底蛙), 감정지와(堪井之蛙) 【유사어】촉견폐일(蜀犬吠日), 월견폐설(越犬吠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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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지와(井中之蛙) 井:우물 정. 中:가운데 중. 之:갈 지(…의). 蛙:개구리 와.
[원말] 정중와 부지대해(井中蛙不知大海). [준말] 정와(井蛙). [동의어] 정와(井蛙), 정중와(井中蛙), 정저와(井底蛙), 감정지와(坎井之蛙). [유사어] 촉견폐일(蜀犬吠日), 월견폐설(越犬吠雪). [참조] 망양지탄(望洋之嘆), 득롱망촉(得?望蜀). [출전]《後漢書》〈馬援專〉,《莊子》〈秋水篇〉
우물 안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음의 비유.
① 왕망(王莽)이 전한(前漢)을 멸하고 세운 신(新)나라 말경, 마원(馬援)이란 인재가 있었다. 그는 관리가 된 세 형과는 달리 고향에서 조상의 묘를 지키다가 농서[?西:감숙성(甘肅省)]에 웅거하는 외효(??)의 부하가 되었다. 그 무렵, 공손술(公孫述)은 촉(蜀) 땅에 성(成)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僭稱)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외효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원을 보냈다. 마원은 고향 친구인 공순술이 반가이 맞아 주리라 믿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공손술은 계단 아래 무장한 군사들을 도열시켜 놓고 위압적인 자세로 마원을 맞았다. 그리고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옛 우정을 생각해서 자네를 장군에 임명할까 하는데, 어떤가?” 마원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천하의 자웅(雌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손술은 예를 다하여 천하의 인재를 맞으려 하지 않고 허세만 부리고 있구나. 이런 자가 어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마원은 서둘러 돌아와서 외효에게 고했다. “공손술은 좁은 촉 땅에서 으스대는 재주밖에 없는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였습니다.” 그래서 외효는 공손술과 손잡을 생각을 버리고 훗날 후한(後漢)의 시조가 된 광무제(光武帝:25~27)와 수호(修好)하게 되었다.
② ‘정중지와’란 말은《장자(莊子)》〈추수편(秋水篇)〉에도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북해(北海)의 해신(海神)인 약(若)이 황하(黃河)의 하신(河神)인 하백(河伯)에게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구애하기 때문이다. 여름 벌레가 얼음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여름 한 철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일밖에 모르는 사람과 도(道)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것은 자기가 배운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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