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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88호
2010. 9. 1 (음7. 23)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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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 한자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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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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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문학상 공모
2010 작가세계 신인상 작품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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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송문학상공모
마해송문학상(주)문학과지성사는 우리 창작 동화의 첫 길을 연 고 마해송 선생(1905~1966)의 업적을 기리고 국내 아동문학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마해송문학상’을 제정하였습니다. 이 상이 역량 있는 동화 작가들을 발굴하고 격려하여 우리 아동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
◆ 모집 부문: 장편 동화 및 단편집(미발표 창작물) ◆ 원고 분량: 단행본 1권 분량의 완성된 원고(같은 원고를 타사 공모에 중복 투고하였을 경우 심사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 응모 자격: 기성 및 신인 작가 ◆ 시상 내용: 당선작 1편. 상패 및 상금 1천만원 (상금은 선인세로 지급하며, 당선작은 당선 발표 연도에 출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 응모 마감 및 발표: - 응모 마감: 매해 9월 30일(9월 30일 우체국 소인분까지 유효) - 수상자 발표: 그해 12월, (주)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 및 다음해『문학과사회』봄호 ◆ 응모 방법: 원고는 우편으로만 받으며 겉봉에 ‘마해송문학상 응모작’임을 명기(이름,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기입해 주세요. 응모작은 반환하지 않습니다.) ◆ 보낼곳: [121-840]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95-2 (주)문학과지성사 마해송문학상 담당자 앞
마해송문학상을 만들며...
1905년 1월 8일 개성에서 출생해서 1966년 11월 6일 타계한 마해송 선생은 한국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입니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던 중학생 마해송은 당시 들불처럼 번지던 저항성 동맹 휴학에 참여하다 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 예술과에서 공부했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문학 동인 활동을 활발히 하고 예배당 연극의 각본을 쓰기도 했던 했던 그는 일본에서도 희곡과 동극을 발표합니다. 마해송은 1923년, 18세의 나이에 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발표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창작 동화로 평가받고 있는 유명한 이 동화는 환상적인 배경과 캐릭터를 가진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에 자유와 평등의 새로운 기운을 진작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신문화 이후 몇 안 되게 손꼽히는 간결하고 힘있는 문장’은 동화를 다른 어떤 문학에도 뒤지지 않고 격조 있는 장르로 끌어올렸습니다. 그 후 『토끼와 원숭이』같은 작품에서는 일제하에서 독립심을 고취시켰다는 의심을 받고 작품 연재 중단의 곤경을 치르기도 했고, 해방 후 분단된 조국의 혼란을 틈타 강대국에게 빌붙어 살려고 하는 무리를 경계하고 질타하는 뜻으로 『떡배 단배』라는 동화를 발표하여 민족의 정체성을 어린이들에게 고취시키려고도 했습니다. 그 후 『모래알 고금』 『물고기 세상』 등 폭넓고 다양한 세계관과 창작 기법을 보여 주는 수많은 동화를 탄생시켜 한국의 아동문학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마해송문학상을 만들며 우리는 제이. 제삼의 마해송이 탄생하기를 바랍니다. 아직은 어린 한국의 어린이문학이 그토록 아름답고 힘찬 작품들을 통해 건강하게 자라나고 힘차게 도약하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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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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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운명에 굴복하는 얼빠진 자들에게 슬픔이 있으리." -하피츠,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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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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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투리
콩과 식물은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생기는 꼬투리 안에서 열매가 자란다. 꼬투리는 콩과 식물의 열매를 싸고 있는 껍질을 가리킨다. 껍질이라는 구체적 의미에서 확대돼 비유적으로도 많이 쓰인다. ‘꼬투리를 캐다’에서 꼬투리는 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다. 남을 해코지하거나 헐뜯을 만한 거리의 뜻도 있다. ‘그는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는다.’
체제와 체계
‘체계를 세운다’고 하지 ‘체제를 세운다’고는 하지 않는다. ‘체제’가 뜻하는 것은 어떤 원리나 이론, 양식이다. ‘자본주의 체제, 냉전 체제, 지도 체제.
’ 체계는 이러한 원리나 이론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나 틀을 뜻한다. ‘지휘 체계’, ‘교통신호 체계’ ‘이론 체계’처럼 쓰인다. ‘체제’는 기본적인 원리나 사상, ‘체계’는 방법이나 조직 전체를 의미한다.
어르다, 으르다
아이들에게 병원만큼 두려운 곳도 없다. 그 공포감을 아이는 울음으로 표출하는데 이때 어르거나 야단쳐 억지로 울음을 그치게 하는 건 좋지 않다고 한다. 병원에 대한 공포감이 지속되고 병이 낫는 속도도 더디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를 달래거나 기쁘게 하는 것 또는 어떤 일을 하도록 사람을 구슬리는 것을 '어르다'라고 하는데 이를 '으르다'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안아 젖병을 물리거나 으르기, 목욕을 시켜 주거나 재우기 등은 아빠와 아기 사이에 강한 유대감을 형성시켜 준다"처럼 쓰게 되면 전혀 엉뚱한 의미가 돼 버린다. '으르다'는 상대편이 겁을 먹도록 무서운 말이나 행동으로 위협한다는 뜻으로 달래거나 구슬리는 '어르다'와 구별해 사용해야 한다. 이들 동사를 잘못 활용해 "아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얼르기도 하고 매를 들기도 한다" "북한을 을르고 달래 온 미국의 정책 골격이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처럼 쓰는 경우도 많지만 '어르기도' '으르고'가 바른 표현이다. 어간의 끝 음절 '르'가 어미 '-아' '-어' 앞에서만 'ㄹㄹ'로 바뀌는 르불규칙용언이므로 '어르니, 어르고, 얼러' '으르니, 으르고, 을러' 등으로 활용된다.
빈대떡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중략…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대중가요 '빈대떡 신사'의 노랫말이다. 막걸리와 함께 서민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알려진 빈대떡은 전(煎)의 하나로 녹두를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긴 후 맷돌에 갈아 나물, 쇠고기나 돼지고기 따위를 넣고 번철에 부쳐 만드는 음식이다. '녹두부침개, 녹두전, 녹두전병, 녹두지짐' 등 그 이름도 다양하다. 국어사전에서도 이 이름 모두를 표준어로 처리하고 있다. 빈대떡은 '빙쟈[餠 食+者]'에서 온 말로 해방 후 '빈자떡(貧者-)'이 일반화돼 쓰였으나, 이후 음식점 등에서 '빈자떡' '빈대떡(貧待-)'이 같이 쓰이다 한글로 '빈대떡'만이 표준어가 됐다. 빈대떡의 다른 이름 중 '녹두부침개, 녹두전, 녹두전병' 등은 '부침개, 전, 전병' 등이 표준말이므로 표기법상 별로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사전에 '지짐'을 '저냐, 빈대떡, 튀김'의 방언으로 해 놓고 '녹두지짐'을 표준어로 올려놓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기름에 지진 음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표준말이 '지짐이'이니 '녹두지짐이'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또 '부침개=부침' '전병=부꾸미'로 처리하고 있으면서 '녹두부침, 녹두부꾸미'는 표제어로 올리지 않은 이유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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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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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 - 김정미
임진강 앞에 돛대 모로 묶여 섰다 겨울에는 운행을 쉽니다! 휴식은 얼마나 넉넉한 시간인가 펄럭이던 돛마저 박쥐날개처럼 얼어버렸다 새 발자국이 몇 걸음을 떼어 중심으로 사라졌다 하얀 눈 위에 점자로 찍어놓은 길 누구를 데려가려고 저 이정표는 흔들리는 물 위에 징검돌을 놓았을까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라고 호기심 많은 바람만이 조서를 흘려쓴다 건너지 못할 강을 왜 밟고 말았는가 빠지지도 못할 강을 왜...... 집요한 물음이 머리를 적신다 그만 보내라고 그만 잊으라고 쩡쩡 얼어터진 심장을 부여안으며 안으로 안으로만 울고 있다 울고 또 울고 또 우는 강,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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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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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리 - 김광수
어린 저의 손을 잡고 고개마루 넘으시며
예사 듣고 잊지 마라 이르시던 사람의 길
따르려 안간힘 써도 숲이 너무 짙사옵니다.
항심을 버리지 말고 스스로를 다스려라
새삼 그 말씀의 참뜻 여물 씹듯 되새기는
오늘은 아버님 생각 너무나 겹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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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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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을까 - 이종택
누가 그랬을까?
돌멩이에 맞아 집에 온 아기 참새 날갯죽지가 파르르 떤다.
한밤내 앓는 소리 가느단 울음.
"얘야 울지 마라. 아파도 참아 봐라."
엄마 참새 두 눈에도 눈물 한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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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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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3장 문학은 무거워도 사는 건 가볍게
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친다
지금은 새벽 한 시 반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바깥은 어둡다. 그것도 어정쩡하게 어두운 도시의 밤이 아니라, 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손가락이 검게 물들어 버릴 것만 같은 진짜 어둠이 깔린 밤이다. 우리 집 뒤쪽은 바로 산이라서 밤의 어둠이 정말로 깊고 조용하다. 달이나 별이 총총한 밤에는 주변의 나무들이 어슴푸레하게 떠오르는데, 오늘 밤에는 그들도 어둠 속에 푹 묻혀 버리고 말았다. 두 마리의 고양이도 완전히 잠들었다. 곤하게 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나는 항상 마음이 놓인다. 적어도 고양이가 안심하고 잘 수 있는 동안은 특별히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내가 어딜 좀 갔기 때문에 집 안에서 나 혼자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책상 앞에 앉아서 이 원고를 쓰고 있다. 새벽 한 시 반에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원고를 쓰고 있다니, 참 오래간만이다. 적어도 요 1년 동안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내가 어째서 이런 시간에 깨어 있는가 하면, 너무 빨리 잠자리에 들어서 밤 열두 시 반(즉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에 퍼뜩 눈이 떠졌기 때문이다. 역시 오후 일곱시 사십 분에 잠자리에 든 것은 너무 일렀다. 그러고 보니 왠지 시차 병에 걸린 듯한 느낌이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일이 있어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다. 이렇게 한밤중에-고양이도 잠들어 버린 한밤중에-외톨이가 되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도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다.
부엌에 가서 보조레의 코르크 마개를 따고, 잔과 함께 가져 와 책상 위에 놓는다. 그리고 벌써 반년이나 듣지 못했던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얹고, 바늘을 그 위에 올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요즘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를 그다지 듣지 않게 된 건 밤늦게까지 깨어 있던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기야 오후 두 시 반에 케이크를 먹으면서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다. 오래된 레코드라서 빠지직빠지직 잡음이 들어가 있다. 아니, 잡음이 들어가 있다기보다는 잡음투성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레코드를 대학생 때 샀으니까, 7~8년은 족히 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최초로 산 빌리 홀리데이의 레코드다. 지금도 나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버브(폴리돌)의 <빌리 홀리데이의 혼>이라는 편집 레코드로, A면은 1946년에 있었던 JATP의 라이브, B면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앤솔러지(야마토 아키라 씨의 추천곡)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지금 듣고있는 것은 A면인데, 우선 <보디 앤드 소울>과 <스트레인지 프루트>라는 압도적인 중량급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노래로 시작하여, <트래블링 라이트>,<히즈 퍼니 댓 웨이>로 약간 밝아지고, 이어서 <더 맨 아이 러브>,<더 베이비 에인트 아이 굿 투 유>로 느릿느릿 나가다가, <올 오브 미>로 거침없이 치닫고, 그 유명한 <빌리즈 블루스>로 단숨에 마무리되는 구성이다. <보디 앤드 소울>로 시작되는 구성이 약간 불만스럽지만(맨 첫 곳으로 듣기에는 너무 압도적이다), 이 레코드의 연주에는 지긋이 귀를 기울이면 빌리 홀리데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굉장한 사람이었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된다.
빌리 홀리데이는 한때 지나치게 신격화되었던 적이 있어서, 나같은 사람은 약간 짜증이 나 멀리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좋을 그런 주변적인 일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허심 탄회하게 음악 그 자체에 귀를 기울여 보면 역시 진지하게 노래를 듣게 만드는 멋진 가수임을 알 수 있다. 옛날에도 멋지다고 생각했었지만 나이를 먹어 새삼스레 다시 들어보니 그 훌륭함이 훨씬 분명하게 이해되었다. 그녀의 노래에는 몸 속 깊은 곳에서 자연히 배어 나오는 원액같은 것-그것은 우리의 존재 이유에 깊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이 들어 있어서 그것이 청중들을 압도하고, 감싸 안고,도취시키고, 완전히 뻗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음악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갑자기 나 자신이 어디인지 잘 알 수 없는 곳에 파묻혀 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 때때로 이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결국, 노래는 그저 노래일 뿐이다. 골똘히 생각하다 해서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만약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와 흔하디흔한 다른 재즈 가수의 노래가 결정적으로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 시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중층성일 것이다. 요컨대 그녀의 노래에 포함된 어떤 요소는 듣는 쪽이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할 수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랍 속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미개봉된 편지처럼, 예정된 그날이 와야지 겉으로 드러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해독할 수 있는 날이 되면 그냥 자연히 해독되는 것이다. 그런 음악이 있다는 것은 역시 멋진 일이다. 젊은 시절에 숨이 막힐 듯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어도 무엇 하나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던 부분이, 지금 이렇게 포도주 잔을 기울이면서 멍하니 듣고 있을 뿐인데도 실타래가 풀리듯이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가 된다. 그러고 보니 나이를 먹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버브 판 빌리 홀리데이도 좋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녀의 베스트 레코드는 미국 컬럼비아에서 나온 <더 골든 이어즈 VOL.1>이라는 세 장짜리 앨범이다. 이 석 장의 레코드는 진짜 많이 들었다. 그 정도로 듣고 또 들었던 재즈 보컬의 레코드는 또 없을 것이다. 버브나 컬럼비아나 데카의 빌리 홀리데이가 각각 나름대로 훌륭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초일류급 스윙 밴드를 배경으로 불러 젖히던 1930년대, 1940년대의 이 컬럼비아 판 빌리 홀리데이는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산뜻하고, 그리고 완벽하다. 아슬아슬하고, 꼼짝도 할 수가 없고,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며, 그리고 참을 수 없이 슬프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무방비 상태며, 그러면서도 손을 대기가 어렵다. 특히 레스터 영이 함께 한 트랙은-<웬 유 아 스마일링 아이 캔트 겟 스타티드>-주옥같이 아름답다. 만약 앞으로 빌리 홀리데이를 들어 보고 싶은 젊은이가 있다면 나는 역시 이 레코드부터 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유명한 <스트레인지 프루트>를 불렀을 무렵의 빌리 홀리데이는-이상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가장 먼저 듣기에는 좀 너무 위태로운 것같이 내게는 느껴진다. 그에 비하면 버브 판은 한밤중에 혼자서 듣기에는 너무 슬프다. 이따금 밤에 재즈를 들을 수 있는 바에 가면 버브 시절의 빌리 홀리데이 노래가 흘러 나올 때가 있다. 그녀의 그런 노래-가령 <올 오아 낫싱 앳 올>-를 들으면서 위스키를 마시다 보면, 왠지 나 혼자만이 중력이 다른 해저나 그 어딘가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척 깊은 곳이어서 위로는 올라갈 수 없고, 제대로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겹다. 그래서 그저 위스키 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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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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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사랑
며칠 전에 한 남자가 내게 와서, 아무도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며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그가 사랑하고 있는데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증인으로 몇 사람만 데려오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알아보려 했던 것이다. 그들 역시 자기들은 모두를 사랑하고 있는데 아무도 자기들의 사랑을 받아들여 답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결국 그는 증인으로 단 한사람도 데려오지 못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모두를 사랑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 사랑에 응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것은 신의 근본법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삶의 궁극적인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사랑을 한다면 사랑은 그대에게 응답하여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만약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사랑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라.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그대는 무엇인가 다른 짓을 하였을 것이다.
그대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면서도 그대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그들을 증오하며, 그 외에 그들을 귀찮게 하는 온갖 짓들을 다 한다. 그들 역시 그대에게 화를 내거나 그대를 증오하게 되면 그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런 일들을 나는 결코 선택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대가 그것들을 선택한 것이다. 그대는 무엇인가 다른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대의 선택이 틀린 것이다. 원인을 주시하라. 원인을 바꿔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은 참으로 어리석다. 지혜로운 마음은 이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어떤 결과를 원하지 않을 때에는, 지혜로운 마음은 원인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 그 원인을 떨쳐 버린다. 그러면 아무 문제도 없게 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무엇이든 모두 그대의 무의식 속에서 저질러진 것이다. 그 씨앗을 뿌린 사람은 그대인 것이다. 이제 그대가 그것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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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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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9장. 다시 여는 내 인생
의식 깨우기
잠들어 있는 의식을 깨워라.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한 번도 자신을 위해 눈을 뜨지 못하다가 임종을 눈앞에 두고서야 눈을 뜬다는 것이다. 의식을 깨워야 한다. 한순간을 살다 죽더라도 의식을 깨워서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삶은 생명이 주어짐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의식을 깨움으로써 시작된다. 잠들어 있는 의식을 깨움으로써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은 다시 삶으로 이어져 가치 있고도 인간다운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삶의 길을 찾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의식을 깨우는 일이다. 의식을 깨우는 순간부터 가치 있고 인간다운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자신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허황된 것인가를 정확히 구분할 줄 아는 혜안이 몸에 붙는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가치 있는 행동만을 가려 함으로써 헛된 삶을 살아가지 않게 된다. 의식을 깨우지 않으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없다. 의식이 깨어나지 않으면 자신조차도 볼 수 없는 눈뜬 장님이 되어, 자신에게 무엇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삶을 바람따라 뒹구는 낙엽처럼 될 대로 살아 버린다. 인간다운 삶을 내팽개친 채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하고, 타인들보다 앞서기 위해서 가치 없는 땀을 흘리며 고되게 살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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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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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2. 판도라에게 찬사를
악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독일의 극작가 프란크 베테킨트의 희곡 가운데 <판도라의 상자>라는 작품이 있다. 이 3막짜리 비극의 주인공은 루르라는 여자인데 그녀는 남편을 두고도 연인과 밀애를 즐기는가 하면 동성애도 마다지 않는 육욕의 화신이다. 남편과 애인의 아들과 결혼한다. 남편과 애인이 죽은 뒤 그녀는 급기야 새로 얻은 남편을 살해하고 죽은 애인의 아들과 결혼한다. 한 마디로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악을 한 몸에 구현하고 있는 여자이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을 불행의 늪에 빠뜨리는 존재로 여성를 묘사해 놓은 작품들은 이외에도 무궁무진하게 열거할 수 있다. 유태교의 경전 <탈무드>는 "여자의 충고에 따르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고 충고하고 있고, 그리스의 극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여자는 항상 남자의 앞을 가로막고 불행한 쪽으로 인도한다." 는 금언을 남겼다. 여자가 없었더라면 남자는 시처럼 살아갈 것이라고 한탄한 이도 있고, 여자를 지옥으로 가는 문이라고 정의한 사람도 있다. 또 사서삼경의 하나인 <시경>에는 "난리는 하늘에서 내리지 않고 부인네로 인하여 생겨나느니라. 아무리 가르쳐도 효험없는 것, 그건 바로 부인네와 내시이니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처럼 여성을 타락과 불행의 근원으로 보는 습성에는 동서양의 차이도 없다. 그래서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처럼 "여자는 팬티와 바지를 구별할 정도의 머리만 있으면 된다." 는 극언을 하는 사람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심심찮게 나오는 것이다. 인류의 타락과 불행의 책임을 송두리째 여자에게 전가하는, 이런 가당찮은 모함을 즐기는 사람들-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남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흔히 갖다대는 것이 바로 판도라의 이야기이다. 앞서 예로 든 베테킨트의 작품 제목이 <판도라의 상자>인 까닭도 거기에 있다.
판도라의 원죄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여성이다. 판도라가 후세의 모든 여성에게 원죄를 짐지우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불을 훔쳐 인류에게 선사한 프로메테우스를 벌한 제우스는 이번에는 인간을 벌하기로 마음먹었다. 제우스가 보기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무리 불을 훔쳐다 주었기로소니 한 번 사양도 하지 않고 환호작약, 받아들인 인간도 괘씸죄의 공범이었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해파이스토스를 시켜 진흙을 이겨 여신의 형상대로 만들고 거기다 인간의 목소리와 힘을 불어넣게 하였다. 여신의 모습의 모습을 본뜬 데다가 명장 해파이스토스의, 문자 그대로 귀신 같은 솜씨가 발휘된지라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는 이 여자에게 은으로 만든 옷을 입히고 허리엔 금띠를, 머리엔 눈부신 면사포를 드리워 주었다. 사랑과 미의여신 아프로디테는 꿀물 같은 교태와 애잔한 그리움, 남자의 속을 태우는 가련한 한숨을 주었다. 헤르메스는 상업, 외교, 도둑질의 신답게 꾀와 염치없는 마음씨, 필요하면 거짓말도 마다지 않는 간사함을 주었으며 음악의 신 아폴론은 고운 노래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재능을 주었다. 물론 모두 제우스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제우스는 이 여성에게 판도라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으니 모든 선물을 다 받은 여자 라는 뜻이었다. 그런 다음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예쁜 상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 상자는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인즉,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절대로 열어서는 안된다."
짐짓 다짐을 받은 뒤 제우스는 판도라를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데려다 주었다. 일찍이 프로메테우스가 코카서스 산으로 끌려가기 전 제우스라는 작자와 그가 주는 선물에 조심해라. 필경 음모가 숨어있으리라 고 일러놓았건만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의 아름다운 자태에 빠져 앞뒤를 재지 못하고 덥석 그 아름다운 선물을 받고 말았다. 그리하여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의 아내가 되어 지상에서 살게 되었다. 먹지 말라는 건 더 먹고 싶고 보아선 안 된다는 물건은 더 보고 싶은 법이다.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거듭거듭 다짐을 받은 것도 그 점을 익히 잘 알고 있었기때문이었다. 상자를 볼 때마다 불같이 일어나는 호기심을 애써 누르던 판도라는 어느 날 궁금증을 삭히지 못하고 기어이 상자의 뚜껑을 열고 말았다. 판도라가 뚜껑을 여는 순간, 그때까지는 없었던 온갖 재앙과 질병이 쏟아져 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육체적인 것으로는 신경통, 통풍, 역병 같은 것들, 정신적인 것으로는 질투, 원한, 복수심, 분노 같은 것들이었다.
이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도 있다. 판도라가 애초에 상자를 들고 내려온 게 아니라 문제의 상자는 에피메테우스의 것이었다는 설이다. 인간에게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을 맡았던 에피메테우스가 당시로선 필요가 없었던 몹쓸 것들만 따로 상자 안에 모아 두었는데 판도라가 그걸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자의 소유자가 누구인가는 본질과 별로 상관이 없다. 제우스가 악의를 품고 판도라를 보냈고, 판도라가 문제의 상자를 열었다는 사건의 핵심 줄거리에는 변함이 없다. 이로써 판도라는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던 인류에게 대재앙을 내리게 되었으며, 그 뒤로 인류의 절반인 여성은 판도라의 원죄로 말미암아 남성들로부터 갖가지 조롱과 경멸, 비난 때로는 저주까지 받으며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차별을 받아온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하늘을 이고 살면서 불행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미룬다는 건 어째 좀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최소한의 공명정대함이라고 갖춘 남성이라면 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한번 의심해 보았을 것이다. 판도라는 인간을 벌하려는 제우스의 각본 때문에 자기도 알지 못하고 사이에 악역을 맡게 된 희생자가 아닌가말이다.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역사학, 인류학, 고고학, 신화학, 여성학이 그간 밝혀놓은 바에 따르면 판도라의 이야기 뒤에는 오히려 신화를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왜곡,조작한 남성들, 또는 가부장제 사회의 횡포가 아로새겨겨 있다. 잘못된 것은 죄다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식의 역사 왜곡이 시작된 것은 원시공동체 시대의 모계 사회가 무너지면서부터였다. 수렵과 채취에 의존하고 일반적으로 군혼과 난혼이 이루이지던 원시공동체 시대엔 지금과는 반대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높았다. 하루 종일 들판을 헤매며 짐승을 쫓아다니고도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었던 남성들에 비해 열매나 곡식의 채취를 담당한 여성들이 가져오는 게 늘 더 많았다. 그때만 해도 사냥 도구란 게 기껏 돌멩이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군혼이나 난혼 아래에선 아버지가 누구인지 가려내기가 어려워서 자연히 어머니를 중심으로 혈족이 꾸려졌다. 혈족의 중심이며 경제적으로도 더 가치있는 활동을 담담한 여성의 지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사태는 완전히 역전되고 말았다. 힘이 센 남성이 경제 생활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고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사유재산이 생겨났다. 재산을 상속하기 위해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부계 혈족이 확립되었으며, 점차 일부다처제가 자리잡았다. 여성은 남성에게 완전히 예속되었으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사회,경제,문화 전반을 장악했다.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이런 전환을 여성학에서는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라고 표현한다. 그리스 신화는 바로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 이후에, 즉 가부장제가 확립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유럽의 역사로 범위를 좁혀서 보면 남신 중심인 그리스신화의 배경이 더욱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드러난다. 발굴한 유적과 유물을 근거로 고고학에서 밝혀낸 바에 따르면, 가부장적인 종교가 등장하기 5000년 전쯤의 고대 유럽엔 모계 중심의 평화로운 농경 문화, 또는 해양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 문화를 이뤄낸 초기 정착민들은 위대한 여신을 숭배했다. 위대한 여신은 아스타르테, 너트, 이스스, 니나 등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왔는데, 그것이 상징하는 바는 바로 원초적 생명력 이었다. 우리가 흔히 만물의 근원으로 칭송하는 어머니 대지 와 통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기워전 4500년쯤, 북쪽과 동쪽에서 인도,유럽어 족이 침입해와 정착민들을 정복하기 시작했다. 침입자들은 기마민족 또는 유목민족으로서 부계 중심의 호전적인 종족이었다. 인도,유럽어족들이 정착민들을 정복해 감에따라 여신 숭배의 사상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침략자들은 그들의 가부장 문화와 호전적인 종교를 정착민들에게 강요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위대한 여신은 침략자가 숭배하는 남신의 비굴한 배우자로 격하당하고, 원래 여신의 속성이었던 덕목들을 남신들에게 빼앗겨 버렸다. 그 결과 그리스 신화에서 보이듯이 남신이 여신이나 인간 여성을 강간하는 이야기, 위대한 여신의 상징이었던 뱀이 영웅들에게 살해당하는 이야기가 신화에 등장하게 되었다. 여성이 남성에게 패배함에 따라 여신도 남신에게 정복당한 것이다. <신이 여자였을 때>라는 책을 쓴 메를린 스톤은 이 위대한 여신의 몰락이 인도, 유럽어족의 침입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보았다. 판도라가 죄를 뒤집어쓰게 된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거꾸로 읽는 판도라 이야기
더욱 확실하게 판도라를 복권시킨 것은 심리학이다. 심층심리학에서는 판도라의 상자를 인간의 내면 으로 해석한다. 즉 인간의 내면에는 판도라의 상자에 들었던 몹쓸 것들처럼 어두운 부분이 있다. 시기, 질투, 증오, 원망, 분노, 복수심, 공격성 - 우리가 늘 벗어나고 싶어하는 그 어두운 심연 말이다. 따라서 상자를 연 판도라의 해위는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어둠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걸 상징하는 원형이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자각하지 않고는 그것을 다스릴 수도 없다. 판도라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밝은 면만이 아니라 어두운 면까지도 두려움 없이 통찰하게 함으로써 이성의 힘으로 그것을 통제하는 길을 열러 준 은인인 셈이다.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므로. 미국의 저명한 비교 신화 학자 조셉 캠벨은 판도라 이야기와 아주 흡사한 구조를 가진 성서의 실락원 이야기를 독특한 관점으로 분석하였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를 두루 섭렵한 캠벨의 연구에 따르면 뱀을 원래 위대한 여신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이었다. 어떤 신화에서는 뱀이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동그라미 꼬리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로 삶의 이미지 이다. 한 세대가 이울면 다음 세대가 태어난다. 끊임없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영원한 의식, 뱀이 상징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성서에서 뱀이 사악한 유혹자로 등장하는 것은 히브리 민족이 남신 지향적인 종족이었기 때문이다. 즉 가나안 백성들은 원래 여신을 숭배했는데 히브리 민족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면서 여신을 거부하고 격하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그와 마찬가지 이유에서 여성인 이브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는 악역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부장적 꺼풀을 벗기고 나면 실락원의 참다운 의미가 드러난다. 여성은 삶을 상징한다. 남성은 여성을 통해서만 삶의 장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삶은 고통과 모순으로 가득한 지상이라는 사실, 이 엄연한 존재 조건을 자각케 한 것이 바로 이브이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아담과 이브는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신과 인간을 분별하게 되었으며, 바로 그것을 인식했다는 죄로 신화적인 꿈의 세계, 낙원으로부터 쫓겨난 것이다. 신이 아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자각과 내쫓김 이야말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내쫓김 당한 게 아니라 인간의 삶의 조건을 통찰하고 그것을 기꺼이 수락 한 것이다. 조셉 캠벨은 실락원의 인간적 의의를 이렇게 표현했다.
선악을 아는 것이 왜 아담과 이브에게 금지되어야 했던가요? 그것을 모르고 있었더라면 인류는 삶의 조건에 동참하지 못한 채로 아직도 에덴 동산에서 멍청한 아이처럼 살고 있을 테지요. 결국 여자가 이 세상의 삶을 일군 것입니다. 이브는 이 속세의 어머니입니다. 꿈같은 낙원 에덴 동산은 시간도 없고, 탄생도 없고 죽음도 없는 곳입니다.
캠벨의 이 찬사는 마땅히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 통찰의 눈을 갖다댄 판도라에게 돌아가야 한다.
희망이 인류를 구원하리라
수천 년 동안 부당한 모함을 받아온 판도라를 복권시키고 찬양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남아 있다. 다시 신화 속으로 돌아가면, 상자 속에서 온갖 재앙이 빠져나가는 걸 본 판도라는 놀라서 후다닥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하여 상자 속엔 오직 하나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남았다. 그것은 에르피스, 즉 희망이었다. 그 덕분에 인간은 어떤 횡액을 당해도 희망만은 버리지 않고 사는 경건한 자세를 갖출 수있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그 어떤 고난과 불행, 시련도 우리 존재의 뿌리를 흔들 수 없다. 희망은 상자를 빠져나간 그 모든 악에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엔 얼마나 많은 사악한 것들이 숨어 있는가. 그러나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들을 이길 수 있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리라. 이것이 판도라가 인류에게 준 위대한 메시지이다. 희망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무언가 간절한 염원을 품는 것이리라. 희망을 부질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과 나날>이라는 책을 통해 판도라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 준 헤시오도스(기원전 7세기에 살았던 그리스 작가)도 희망 앞에다 헛된 이라는 형용사를 붙여 놓았다. 언제나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고 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괴로운 고통과 불행, 시련을 겪은 나머지 불완전한 인간과 그 인간이 만들어가는 이 모순 투성이 세상엔 희망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신의 말을 전하고 싶다.
"희망이란 원래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고 또 없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은 것이다. 땅위에 원래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걸어가면 그것이 길이 된다."
많은 사람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아름다운 세상 을 염원하면 그 세상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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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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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주위를 돌아라
한 번은 내가 어떤 집에서 지냈는데, 주인인 내 친구가 나를 그의 아내와 아이에게 소개하면서 말했다. "이 아이가 문제입니다. 한 순간도 가만히 앉아 있질 않고 언제나 뭔가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나는 말했다. "그대라면, 그리고 그대의 아내라면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아내가 말했다. "우리는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군요. 당신 말이 옳아요. 내 남편도 일요일이면 쓸데없이 자동차에 매달리거든요. 문제없이 잘 달리는데도 뭔가 고치려고 하지요. 그러다 결국 도로 차고에 집어넣지요. 남편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고, 나도 앉아 있을 수 없어요. 우린 우리의 아이와 다를 바가 없어요. 우리가 미처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어요. 당신이 우리를 일깨워 주었어요. 우리에겐 아이더러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말할 권리가 없어요." 내가 말했다. "먼저 아이에게 집 주위를 일곱 바퀴만 뛰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조용히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가서 집 주위를 일곱 바퀴 뛰어라." 아이가 물었다. "왜요?" "그냥 일곱 바퀴만 돌아라. 네가 얼마나 잘 뛰는지 보여 주렴." 그래서 아이는 집 주위를 일곱 바퀴나 뛰었고, 그리고 나서는 정원에 아주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아이의 부모에게 말했다. "당신들도 똑같이 하면 됩니다. 앉아 있고 싶어질 때까지 집주위를 도는 거지요."
- 먼저 뛰고, 소리지르고, 그대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쓰레기들을 집어던져라. 휴식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은 먼저 그들의 광기, 억압된 모든 것들을 바깥으로 내던지게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 스스로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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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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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36. 소금 장수 황소 - 황소의 난(875~884년)
881년 1월 8일 이른 아침, 대당의 수도 장안에서는 잠시나마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장안성의 서문으로는 황제 희종의 피난행렬이 허둥지둥 줄행랑을 치고 있었고, 동문으로는 반란군의 수령 황소가 금으로 장식한 수레를 타고 위풍도 당당하게 입성하고 있었다. 성문을 지키던 친위부대조차 이미 전의를 상실했고, 장안의 백성들은 조수처럼 길 양쪽에 밀려들어 환호성을 지르며 황소의 군대를 환영하고 있었다. 환영나온 백성들을 향해 황소의 부장 상양이 큰 소리로 외쳤다. "황왕이 군사를 일으킨 것은 오로지 백성들을 위한 것. 당왕조와는 다르다. 백성들을 절대 학대하는 일이 없을 것이니, 안심하고 각자의 생업에 힘쓰라!" 반란군은 엄정한 군기를 지켜 민폐를 끼치지 않았으며, 장병들은 가난한 백성들을 보면 의복과 금품을 나누어주었다. 이들도 가난한 농민 출신으로 황소군의 주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날 백성들의 눈에 비친 반란군의 모습은 해방군의 그것이었으며, 백성들은 그들이 자신들을 당왕조의 가혹한 지배로부터 탈출시켜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황소는 스스로 황제가 되어 백성들 위에 군림했고, 창졸간에 장안을 빼앗긴 귀족들도 다시 세력을 정비, 장안을 탈환하게 되니, 이들은 다시 백성들에게 반군에 협조했다는 죄목을 씌어 살인, 방화, 약탈 등의 보복을 자행했다. 반동군에 되밀린 황소군은 후퇴하면서 금은보화를 길바닥에 뿌리는 작전을 폈다. 관군은 다투어 이를 줍기에 정신이 없었고, 황소는 이 틈을 타서 군대를 가까스로 이동시켰다. 반란군은 다시 최초의 봉기 때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해서 관군의 토벌을 어렵게 했다.
이들의 엄청난 조직력과 금력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소금이었다. 19세기 중국을 방문한 서양 사람은 중국의 소금 값이 엄청나게 비싼 것에 놀랐다. 중국에서는 소금 산지가 일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독점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부가 보장된다. 일찍이 이를 기반으로 국가가 일어나기도 했고, 소금을 쟁탈하기 위해 전쟁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특히 한 무제 이후 정부에서는 이를 전매함으로써 부족한 재정을 메우고 있었다. 당나라도 안사의 난 이후 소금 전매에 의존, 극심한 재정난을 타개하고자 했다. 실로 소금 전매수입은 총재정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전매 이전에는 한 말에 10전 하던 소금값이 110전으로 오르더니, 급기야 300전에 달했다. 소금이 인간 생존의 필수품인 이상, 그 가장 커다란 피해자는 물론 농민들이었다. 안사의 난 이후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당의 궁중에서는 다시 독버섯처럼 환관들의 세력이 자라나 허약한 황실을 쥐고 흔들어대니, 황제는 이들에 의해 세워지고 폐해졌다. 그 속에서 농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져, 당말에 이르면 거의 목불인견의 참상을 보였다. 살 길이 막혀버린 농민들은 포악한 관리들을 습격하여 울분을 표시하거나, 부유층의 물산이 집산하는 농촌의 초시를 약탈하는 등 산발적인 저항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를 전국적 대봉기로 이끌어내는 데 소금밀매 조직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소금값이 급등하게 되면 자연히 암거래가 생겨나고, 점차 그들의 비밀결사가 결성된다. 정부는 비밀경찰을 동원, 이들을 추적하고, 추적망에 걸린 자들에게는 사형 등 중형으로 가혹하게 처리한다. 이렇게 되면, 소금 밀매조직들은 보다 적극적인 자위책을 찾아 무장봉기의 길에 나서게 된다. 875년 봉기의 선두에 나선 황소와 왕선지는 하남성 접경에 가까운 산동성, 교통이 편리한 황하 연변에서 사염 밀매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여러 차례 과거시험에 낙방한 후 봉기를 결심하게 되었다. 즉각적으로 실업자 농민 수만 명이 가세하고, 북방의 돌궐, 위구르 출신 전문 병사들이 가담했다. 광범한 농민병사의 지지 속에 이민족 군인의 전투력, 비밀결사의 조직력과 자금력이 결합했으니 반란군의 기세는 참으로 대단했다. 이들은 전국적 조직을 이용, 일정 거점을 두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작전을 폈고, 때로는 동시에 여러 주를 공격하는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황소군에게 치명적이었던 것은 주온의 배신이었다. 그는 사태를 저울질하다가 당왕조 쪽으로 자리를 바꿔섰는데, 이러한 지도층의 한계는 주온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황소도, 왕선지도 그랬다. 이들은 자신에게 고위관직이 확실하게 보장만 된다면 언제든지 농민들을 저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황소는 자신의 부장이었던 주온과 터키계 사타족의 수장 이극용 군대와 맞서 싸웠으나, 마침내 호랑곡 전투에서 참패, 자결로써 일생을 마쳤다. 그때가 884년. 황소의 난으로 불리며 10년간 전국을 들끓게 했던 농민 대봉기는 비틀대는 당왕조에 마지막 일격을 가하면서 또다시 이렇게 좌절되었다. 당왕조는 주온의 공을 인정, 요직을 주고 전충이라는 이름을 새로 내렸는데, 그가 장차 290년간의 당왕조를 멸망시킬 인물이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주전충은 907년 당의 마지막 황제 애제로부터 선양의 형식으로 즉위, 후량을 세움으로써 5대 10국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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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사성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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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에 번쩍, 서에 캄캄 - 신출귀몰(神出鬼沒) 神(귀신 신) 出(날 출) 鬼(귀신 귀) 沒(없어질 몰)
회남자淮南子 <병략훈兵略訓>에는 교묘한 자의 움직임은 신이 나타나고 귀신이 걸어가는 듯하며(神出而鬼行), 별이 빛나고 하늘이 운행하는 것 같아, 진퇴 굴신의 조짐도 나타나지 않고 한계도 없어, 난조(鸞鳥:전설 속의 새이름)가 일어나듯, 기린이 떨치고 일나는 듯, 봉황새가 날 듯, 용이 오르듯, 추풍과 같이 출발하여 놀란 용과 같이 빠르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으로 하여금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하도록 철저한 보안 유지나 위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神出鬼沒 이란 바로 神出而鬼行 이라는 구절에서 연유된 말이다. 아무도 모르게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뜻이며, 행동이 신속하고 그 변화가 심하여 헤아릴 수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옛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神出鬼沒 했던 홍길동의 출생지를 놓고 요즈음 관련 지방 자치단체들의 논쟁이 매우 진지하다.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일 것이라는 사실도 흥미롭거니와, 귀신 같은 양반을 서로 모시겠다고 열을 올리는 후손들의 길동 할아버지 에 대한 존경심은 시대적 해결사의 출현 을 고대하는 우리들의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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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출귀몰(神出鬼沒) - 자유 자재로 출몰하여 그 변화를 헤아릴 수 없음. 《出典》'淮南子' 兵略訓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엮은《淮南子》'兵略訓'은 도가사상(道家思想)을 기본 이론으로 한 전략론(戰略論)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군의 계략과 진(陣)치는 일과 군대의 세력과 병기가 겉으로 보아서 적군이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라면, 용병에 교묘한 것이 못된다고 말하고 있다.『교묘한 자의 행동은 신(神)이 나타나고 귀신이 돌아 다니는 것처럼 별과 같이 빛나고 하늘과 같이 운행하는 것이다. 그 나아가고 물러남과 굽히고 펴는 것은 아무런 전조(前兆)도 없고, 형태도 나타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신출귀행(神出鬼行)>이란 '신(神)이 나타나고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귀신과 같이 나오고 들어감이 자유자재여서 예측할 수 없는 것을 말하거니와, 같은 말이 병서(兵書)인《삼략(三略)》에도 실려 있다. 이 병서는 황석공(黃石公)이 이상(溝上)에서 유방(劉邦)의 공신인 장량에게 준 것으로, 淸나라의 적호(翟灝)가 지은《통속편(通俗篇)》'귀신지부'의 <神出鬼沒>에서 나온 것으로, 이《삼략(三略)》의 <신출귀행(神出鬼行)>의 말을 들고 있다. <神出鬼沒>이 직접 나온 것은《당희장어(唐絲場語)》에 나오는 '두 머리 세 얼굴의 귀신이 나타나고 없어진다.(兩頭三面 神出鬼沒)'의 구절이지만, 이것은《淮南子》나《삼략(三略)》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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