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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87호
2010. 8. 29 (음7. 20) / 발송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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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server@paran.com) |
※ 한자가 물음표(?)로 보이는 경우 누리집에 오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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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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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단 하나의 근심도 없이 삶을 향기롭게 유유자적 낭비하고 돌아간다면 신은 크게 기뻐하며 우리를 위해 잔치를 벌일 것이다." - 곽세라(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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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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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感(유감)
우리 말살이에서 한자가 많이 사라졌다. 부모, 학교, 비행기, 도로 등의 낱말은 한자라는 옷을 벗어버리고 순우리말이나 다름없이 쓰이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한자말이 이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자어를 한글로 적으면 조금 헷갈리는 말들이 있다. 이런 문제는 한자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핑곗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말들도 한글로 자꾸 쓰면 익숙해질 것이다. 아니면 다른 말로 바꿔 써도 좋을 것이다.
“호남·충청 총리론 有感” 중앙 일간지 칼럼 제목이다.
한글로 ‘유감’이라고 써놓으면 두 가지 말이 떠오른다. ‘有感’과 ‘遺憾’이다. 칼럼에서는 혼동을 막기 위해 한자로 ‘有感’이라고 확실히 해둔 것 같다. 그런데 확실히 해둔다는 게 거꾸로 되고 말았다. 사전은 ‘有感’은 ‘느끼는 바가 있음’으로, ‘遺憾’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으로 풀이하고 있다. 칼럼은 ‘호남·충청 총리론’에 대해 부정적으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遺憾’으로 써야 옳다. 有感은 감정중립적인 말이다. 좋은 감정이든 아니든 단순히 ‘느끼는 바가 있음’이다. 그러나 遺憾은 언짢거나 마뜩잖은 느낌이다. 마뜩잖은 느낌을 감추고 중립적으로 표현하려고 의도적으로 ‘有感’을 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제 이런 말은 한글로 쓰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 遺憾은 ‘마뜩잖아’ 또는 ‘언짢아’로 써도 괜찮을 성싶다. 한자가 주는 적합성이라는 것도 사실은 주관적 편견일 경우가 많다.
우재욱/시인
댕기풀이
예전엔 남자가 성년이 됐을 때 어른이 된다는 의미로 땋은 머리끝의 댕기를 풀고 갓을 쓰는 의식을 치렀다. 이때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친구들에게 대접하던 풍속이 있었다. 이를 댕기풀이라 했다. 혼인을 해도 마찬가지로 댕기를 풀게 된다. ‘어제 저녁에 친구가 댕기풀이를 했다.’ 댕기풀이는 결혼 후에 친구들에게 한턱내는 일을 뜻하게 됐다.
왔다리 갔다리
일어났다 앉았다 어쩔 줄 모른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연결어미 ‘-다’는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이 번갈아 일어남을 나타낸다. ‘-다가’의 준말이다. 이외에 ‘왔다리 갔다리’의 ‘-다리’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다리’는 ‘왔다리 갔다리’에서만 보인다. ‘-다리’는 우리말이 아니다. 상태나 동작이 되풀이된다는 뜻의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낙엽
어느덧 늦가을로 접어들었다. 나뭇잎은 시들어 하나 둘 떨어지고 쌓인 낙엽은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날로 차가워지는 가을바람에 낙엽이 이리저리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 우리네 삶도 저러한가 싶어 어딘지 쓸쓸하게 다가온다. 낙엽은 그 자체가 지닌 쓸쓸함으로 인해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돼 왔고, 이맘때면 일반인들의 글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는 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소리 없이 낙엽이 떨어지던 그날 밤' 하는 식으로 '낙엽이 떨어지다'는 형태의 표현을 종종 볼 수 있다.
낙엽(落葉)은 한자어로, 나뭇잎이 떨어짐 또는 떨어진 나뭇잎을 뜻한다. 단어 자체에 '떨어지다(落)'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낙엽이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중복되는 겹말이다. '낙엽'이란 단어를 피하고 '잎이 떨어진다'고 하면 좋지만 맛이 덜하다는 단점이 있다. '낙엽'의 순화용어로 '진 잎'이 사전에 올라 있지만 거의 쓰이는 일이 없는 것도 무언가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추풍낙엽(秋風落葉)'에서 보듯 '낙엽'이란 단어가 이미 굳건히 자리를 잡았다.
'낙엽이 떨어지다'보다는 '낙엽이 지다'는 표현이 좋다. '떨어지다'나 '지다'나 의미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지만 '낙(落)'과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떨어지다'보다 그냥 '지다'가 낫기 때문이다. '낙엽이 지다' 또는 '잎이 떨어지다'는 형태로 표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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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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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필화(革筆畵)를 보며 - 이민아
맞춤주문한 전각(篆刻)을 품고 도장집을 나서는 길, 인사동 돌확 옆 낡은 좌판 위로 어스름한 새벽을 펼쳐놓은 노인을 향해, 다채로운 구두코가 나이테처럼 둘러서서 푸른 중절모를 쓴 혁화쟁이의 거친 손이 그려내는 혁필화를 본다 어느새 기념족자 신청 순서에 놓인 아버지 이름 석자, 닳고 닳아 유통기한을 넘긴 듯한 넓죽한 가죽 붓에 곤궁한 물감을 묻혀 그려내는 획을 낮은 포복으로 따라가다 보면, 순식간에, 생면부지의 한 사내가 길어올린 필생의 알리바이를 어떻게 알아챘는지, 쉼 없는 영사기처럼 거침없이 풀어내는 혁화쟁이의 은밀한 내간체가 설화처럼 피어나고, 환하게 어룽거리는 혁필화 한 장으로 남은 아버지, 두 손 가득 펄럭이는데 네모난 비단천 속, 피뢰침같은 철심이 박힌 지문의 파원(波圓) 위로 바스락, 굴참나무 거친 수피가 뗏목처럼 흐르다 멎고 저만큼 달아난 행서체 굴곡 따라 범람하는 푸른 바다, 서늘한 그늘 겹겹 장마 속에 깃들어 계신 아버지 용오름을 하며 빈한의 그림자를 도려내던 모진 칼바람을 듣는다 정자체로 양각한 옥돌전각을 아버지의 혁화와 번갈아 보며, 온전히 다 타버린 참숯처럼 더 이상 사그라들 것도 없던 옥탑방 가득 고인 내 아버지 시린 청년을 읽는다 장난감 블럭을 쌓아 안으로만 숨어들던 내 나이 미운 일곱 살 문득 주머니 속 깊이 넣어둔 전각 틀이 비좁다, 여기 가난의 골목 끝에 펼쳐진 혁필 한 장은 비로소 마주 앉은 탁란(托卵)의 깊은 둥지, 수척한 아버지 긴꼬리태양새 되어 끝없는 비단길 위로 날아가는 에움길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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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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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水 斷想 - 김광수
잔설 덮인 산비알에 뛰노는 아기 노루들
그 숨소리 같은 푸나무들 물 잣는 소리
바위도 침묵을 털고 움질움질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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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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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어머니 - 이종택
우리 엄만 사과 장수
기차 타고 다니며 사과 팔아요.
우리 형제 먹여 살리려고 우리 엄만 바빠요.
지금 곤히 주무시는데 구슬땀 흘리며 헛소릴 해요.
"능금 사소." 하시며 잠꼬대해요.
이따금 꿈속에서 들리는 기적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시기도 해요.
아아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 ------
얼마나 있으면 내가 아주 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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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시조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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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中問答 왜 산에 사느냐 묻길래 이백 李白 701 ~ 762
問余何事棲碧山 왜 산에 사느냐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閒 웃기만 하고 아무 대답 아니했지.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잎 아득히 물에 떠 가는 곳
別有天地非人間 여기는 별천지라 인간 세상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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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삶속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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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해설. 박덕규 - 미지의, 미완의 사랑학
사랑하니까 시를 쓴다. 다른 사람 글 얘기 하지 말고, 내가 내 얘기를 직접, 재미있게 하자, 하고서 소설가가 되어 놓고는, 막상 내 첫사랑 얘길 하려고 하니까 또 내 얘기를 꺼내기 싫어지는 거 있지요. 사랑에 얽힌 오래 전의 내 시를 얘기하는 것도 별로 신나는 일이 아니고요. 그렇다고 제 첫사랑에 무슨 비밀스런 것이 남달리 있는 편도 아니거든요. 언제 사랑의 첫 느낌을 가졌는지 분명치 않다는 점도 남다른 게 아니지요. 그때 그게 사랑의 느낌이었는지 아닌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잘 알 수 없는, 그런 느낌도 무수히 많잖아요? 반면에, 사랑의 감정으로 충만했을 때는 시심도 그만큼 충만했지요. 그럴 땐 정말 시를 쓰고 싶어 미칠 것 같았지요. 그 시를 어서 빨리 '사랑하는 그대'에게 보내고 싶어서 또한 미칠 것 같았던 느낌도 다른 이들의 추억과 꼭 같지요. 이렇게요.
내가 그대에게 하는 잦은 말들이 그대 영혼을 조금이라도 흔들지 못한다면 시는 있어서 무엇하리.
윤성근 "첫사랑의 시"에서
사랑의 마음만큼이나 풍성한 시의 마음이었지요. 그대를 향한 그 많은 시들은 지금 조금 남고 다 어디로 갔을까요? 그 사랑을 잃고 울던 시절에도 시심은 또 달리 충만했지요. 실연의 아픔을 시 쓰는 일로 달랜다고나 할까요? 시고 뭐고 다 버리고 싶은 심정인데도 시를 쓰고 있었지 않았겠어요.
날이 새면 기억하는 자의 가슴만 혹독한 멍이 들거늘
박주택 "포구에서"에서
혹독한 멍으로 남은 사랑을 다시 혹독한 상심 속에서 노래하고 있었지요. 이렇듯, 사랑의 느낌과 시를 쓰는 일은 특히 '첫사랑의 시절'에는 참으로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니겠어요? 그 점에서 보면, 그 누구나 시인이었거나 지금 시인이거나 장차 시인일 게 분명하죠. 바로 이 책을 읽는 당신들 모두가 말이지요.
그대가 누군지 몰라도 사랑의 시를 쓴다. 그런데 말이지요. 제 시와 더불어 한번 하고 넘어갈 사랑 얘기가 있기는 있어요. 사랑의 마음이 시를 낳는다고 했는데, 그게 꼭 사랑하는 대상이 있어야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그 누구든, 또는 그 누구도 아니든, 막 보고 싳어 미칠 것 같은 그런 느낌 속에서, 자신이 본 적도 없고 그려 본 적도 없는 대상을 향해 사랑의 마음을 춤고 시를 쓰는 때가 있어요. 미지의 존재를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라고 볼 수 있겠지요. 제가 이미 십수 년 전에 낸 시집 '아름다운 사냥'을 이리저리 뒤적이다가 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가 눈에 띄더라구요. 제목이 '하현달'이라는 건데요, 실은 이리저리 뒤적일 것도 없이 그 시집 첫머리를 장식하는 시지요. 그 시집에 실린 시들 중에는 가장 어린 나이에 쓴 시이기도 하지요. 제가 그 시를 여기 다 적어 놓을 테니까 기왕이면, 옆에 앉은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작은 소리를 내면서 낭송을 해보시겠어요?
너는 참 이상한 꽃이야. 잠결에 어린 누이가 뜰에 내린 어둠을 쓸고 있다. 발목에 이는 덜 깬 바람이 흐느적거리며 다시 어둠의 일부가 된다. 치마폭에 갇혀서 나의 누이는 밤마다 꽃밭을 가꾸자고 한다. 물안개를 뿜으면 꽃들은 조개처럼 입을 오므린다. 뜰에 가득히 꽃잠을 자다가 나비잠을 자다가 간밤엔 초경으로 가슴 팔딱이던, 오오라네가 지상에 처음인 그 입술 작은 꽃이로구나.
제가 20세를 전후한 시절에는 김춘수 선생의 무의미시 전후를 넘나들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살던 도시의 문화적 환경이 그랬지요. 시적 대상을 이미지화 하는 가운데 관념의 문제에 제법 시달리는 듯한 그런 면이 그 지역 선배시인들에게서도 많이 발견되지요. '하현달'에서, 꽃과 누이와 달이 어우러지고 있는 밤이란 실재하는 밤 풍경이랄 수가 없겠지요. 이미지로 존재하는 밤이라고나 할까요. 그 밤을 위해, 잠을 '덜 깬 바람'이 '어둠의 일부'가 된다는 식의 표현이 얹어져 있어요. 바람이 어둠의 일부가 된다? 그건 이미지이면서 관념이지요. 그 관념은 무의미시론 이후의 김춘수 시인이 그토록 배제하려고 하던 것이지만요. 그땐 그런 거 저런 거 다 몰랐어요. 그때 제가 또 몰랐던 게 있지요. 이 시에서 초경을 맞는 누이란 실재하는 누이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상 속의 소녀라고도 저는 별로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것 같아요. 그러나 사실로는 그렇지 않았을 거예요. 제 무의식을 제가 알 수도 없고 그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이 시를 소리내어서 읽다 보면, 비록 이 시가 이미지로서의 풍경화로 제시되어 있다 하더라도, 뭔가 이 세상의 사물과 새로이 만나고 있는 한 소녀의 실재적 이미지가 드러난다는 거지요. 그 누이는 누구인가? 제게는 누이가 없어요. 저는 저 삭막한 남자 6형제만의 집안의 막내 아니겠어요. 그런 제가, 없는 누이를 설정해 보았다는 것, 잠결에 부시시 일어나 뜨락을 거니는 누이를 상상해 보았다는 것, 그 누이가 하얀 달빛 아래서 꽃과 입맞춤을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은 여자에 대한 막연하지만 지극한 그리움의 소산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꽃잠, 나비잠이란 시어에서 묻어나는 귀엽고 순결한 이미지가 '흐느적거린다', '조개처럼 입을 오므린다', '초경으로 가슴 팔딱이던', '입술 작은 꽃' 등이 풍겨주는 관능적인 이미지와 만나게 된 게 다 필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때 누이란 내게 미지의 존재, 미지의 사랑이었던 거지요. 제 시 중에 '첫사랑의 시'라고 할 만한 시가 없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라고 했지요? 저는, 사랑의 첫 느낌은 어쩌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대상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픈 마음에서 먼저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우리 시에 무수히 등장하는 누이니, 여인이니, 순이니 하는 이름들이란 실제로는 미지의 연인일 수 있다는 얘기지요. 윤동주 시인의 시에 나오는 '순이'도, 고은 시인의 초기 시에 등장하는 누이도, 더 나아가,
누이야 아는가 가을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옴을
의, 송수권 시인의 절창 '산문에 기대어'에서의 누이도.
누이야, 이봄엔 네게 피리를 주마. 옥처럼 깨끗하고 슬픈 하나의 피리를. 불어도 울지 않고 울어도 닿지 않는 저 하늘의 아지랑이 같은.
의, 박정만 시인의 아름다운 서정시 '누이에게 주는 선물'에서듸 누이도, 실제적 형상으로서의 누이나 애인이라기보다,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여성지향적 원망이 낳은 상징적 형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더욱 성큼 나아가면, 김소월 시인의 '님'이나 한용운 시인의 '님'이나 그 무수한 서정시들의 '님'들이 또한, 말로 설명 안 될 미지의 대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우리들의 미지의 사랑이 무한한 시들을 낳게 했다는 얘기지요. 미지의 존재를 향한 사랑의 노래가 우리 서정시의 뚜렷한 한 전통이라는 얘기도 가능하겠지요.
사랑을 잃고도 시를 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를 설레게 하고 그리하여 시심을 일으켜 무수한 시를 낳게 했던 여성적 대상이 실재적 형상으로 구체화 되는 때의 시에 대해서도 떠올려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예정된 순서니까요. 상상적 존재로서의 연인이 구체적 존재로서 형상화되는 때의 그 느낌, 그 느낌을 노래한 시가 우리에게 또한 참으로 많지요. 바로 이렇게 표현되는 느낌 말이지요.
사랑했던 첫마음 빼앗길까봐 해가 떠도 눈 한번 뜰 수가 없네 사랑했던 첫마음 빼앗길까봐 해가 져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네
정호승, '첫마음'전문
이 '첫마음'의 느낌 속에서 영원히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암울한 식민지 시절, 순결한 영혼으로 자기 삶을 성찰하고 반성하기를 잊지 않았던 윤동주 시인마저도, 동경에서 만난 한 여자 유학생에게 연정을 품고 사랑을 발견한 그 기쁨의 순간을,
삼동을 참아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윤동주, '봄'에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을 정도니까(작가 송우혜 선생이 도서출판 세계사에서 개정판으로 낸 '윤동주 평전'을 참조하세요),그 기쁨, 그때의 시심이란 얼마나 가슴 설레는 것인지 미루어 짐작 하고도 남음이 있을 테지요. 빼앗길 것 같아 해가 떠도 눈뜰 수 없고 해가 져도 집으로 못돌아가게 되는 그 첫마음이란 그러나 얼마나 오래 간직될까요? 아니, 그 마음이야 오래 간직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어요? 그러니 사랑은 짧고 이별은 긴 것, 기쁨은 잠깐이요 아픔은 오래 지속되는 것, 그리하여 사랑의 기쁨보다는 사랑의 슬픔을 노래하는 시가 더욱 우리 가슴을 치는 법이지요. 사랑은 없고 사랑의 느낌만 남은, 그런데도 그 사랑을 떠날 수 없는 시. 가령, 이런 시, 여러 번 읽으면 절로 암송할 수 있게 되는 한 편의 시 말이지요.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 전문
'빈집'이라는 제목의, 기형도 시인의 이 연시가 꼭이 '첫사랑의 시' 라고만 명명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촛불 켜둔 책상 앞에 앉아 흰 종이 위에 사랑의 말들을 적으면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눈물 흘리며 밤을 지새던 그 젊은 날의 일들이 고스란히 떠오르는걸 보면 이 시가 그런 시절의 실연을 노래한 시일 수밖에 없음을 쉽게 예단할 수 있지요. 시인의 사후에 곧바로 발표된 유고시라 해서 이 시를 두고 시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시라고 추리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게 보는 것도 좀 그렇죠? 이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노래한 연시 아니겠어요? 문제는 많은 연시 중에서 이 시가 상당히 돋보인다는 점이지요. 더욱이나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실연의 사연을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 감상적인 어휘들, 즉 촛불, 안개, 눈물, 열망 등의 말들로 드러내고 있는 이 시가 왜 뜻 깊게 다가올까요? 그 열쇠는 첫연 '쓰네'와 마지막 행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가 가지고 있지요. 그 두 표현이, 오랜 감상의 시간을 겉에서 감싸안고 있는 형태죠. 그건, 사랑의 열병을 한판 진하게 앓고 나서 그때를 돌아보는 지금 시간을 표나게 드러내고 있다는 뜻이지요. 사랑한 시간을 문제삼은 게 아니라 사랑을 잃고 그것에 대해 쓰는 지점, 즉 자기를 성찰하는 자세를 문제삼고 있다는 얘기지요. 마치 저 유명한 연시,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에서
에서의 그 '자세'와도 같지요.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고 했지만, 실은 사랑했던 그 열병의 시간으로부터의 벗어남을 의미하는 거지요. 아직은 다 벗어나지 못했으니 '장님처럼'더듬거리며 '문을'잠그긴 하지만, 그 시간을 애써 과거로 밀어내고 객관화하려는 자아가 고개를 들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쓰네'가 바로 그 자아의 자세이지요. 그리하여 이 시는 일종의 '통과의례'를 설명하는 시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인간이 한층 더 높은 단계로 성숙되는 과정에서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 막 이해하려 하고 있는 한 청춘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테지요? 그런 과정 그런 모습을 사건화한 소설을 일컬어 '성장소설'이라 이름하는데, 그렇다면 이 시는 '성장시'쯤으로 명명될 수 있지 싶어요. 어쨌든 좋아요. 우리에게는 이렇듯 무수한 사랑의 시가 있고, 저에게도 있었지요. 그 사랑들은 흘러가고 그 시들도 흘러가고, 그리고도 많은 시가 남아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군요. 그 시들은 말하고 있어요.
내 사랑하는 것들은 말이 없고 내 사랑하는 여자도 말이 없고 나는 너무 많은 사랑을 하다가 쓰러져 겨울 사내로 말이 없고
박노해, '사랑의 침묵'에서
'미완의 사랑'을 노래하고는 있지만, 사랑하다 지쳐 더 말도 못할 그런 사랑 얘기를 하고 있지만, 실은 침묵 그 자체로 '사랑의 완성'임이 증명되는, '미완의 사랑'이되 '완전한 사랑학'일 수 있는 그런 시들이 또한 우리 시의 뚜렷한 전통이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이지요.
- 박덕규 : 1958년에 태어나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시운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고,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어 평론가로 등단했으며, 1994년 '상상'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아름다운 사냥', 소설집으로 '날아라 거북이', '함께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 장편소설로 '시인들이 살았던 집' 등이 있다. 현재 협성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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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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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성
성이 사랑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진리다. 또한 성은 사랑에 이르는 여로의 시작이며, 사랑의 기원은 성이다. 그러나 옛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을 인간의 적으로 적대시해 왔다. 모든 문화와 종교, 성직자들은 성을 맹렬히 공격해 왔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성의 강은 억눌린 채로 끊임없이 흘러왔던 것이다. 범인을 쫓는 고함소리는 언제나 한결 같았다. 성은 죄악이다. 성은 비종교적이다. 성에는 독이 있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삶을 여행하면서 사랑의 바다에 이르는 것이 궁극적으로 성 자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랑은 성에너지가 변형된 것이다. 성이라는 씨앗으로부터 사랑의 꽃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럼 여기서 잠깐 석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석탄이 변형된 것이 바로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당신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석탄 덩어리 속에 있는 성분은 다이아몬드 속에 있는 것과 같다. 본질적으로 그 둘은 다를게 없다. 수 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석탄이 다이아몬드로 변화된 것뿐이다. 그러나 석탄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석탄이 집안에서 땔감으로 보관될 때 다이아몬드는 누구에게나 잘 보이도록 목이나 가슴에 걸쳐진다. 만일 당신이 검은 매연 밖에는 주는 것이 없다는 이유로 석탄을 반대한다면, 바로 거기에서 석탄이 다이아몬드로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성은 끝나 버린다. 우리는 석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발전할 수 있는 어떠한 가능성도 끊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이다.
성 에너지는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인류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해 왔고, 지금 역시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관념의 산물이다. 이제 새로이 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여, 성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가져야 할 때이다. 사랑에 도달하는 가르침이어야 하는 성이 사랑의 최고 목적지를 향해 가야 하는데 곁길로 빠져 엉뚱한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제 성을 바른 길로 이끌어 성의 본래의 목적인 사랑하는 법을 바르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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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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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9장. 다시 여는 내 인생
강자
약자 위에서 군림하기보다 강자 밑에서 기는 쪽을 택하라. 그것이 강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약자를 이기는 것으로 만족하면 자신도 모르게 약자가 되고 만다. 강자가 되고 싶으면 강자와 겨루어야 한다. 강자와 겨뤄서 이기지 않고서는 강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 강자와 경쟁할 때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다. 비록 이기지 못하더라도 강자와 경쟁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능력은 향상된다. 강자와 보이지 않는 암투를 벌이는 사이 능력은 향상되어 가고, 결국에 가서는 강자까지도 자신의 밑으로 끌어내릴 수 있게 된다. 약자에게 이겼다고 해서 자만해서는 안 된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만용을 부리는 사이 자신도 보기 좋게 약자가 되고 만다. 약자와 겨루기를 즐기면 능력이 향상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고 만다. 당장은 승리에 기쁨에 젖을지 몰라도 자신의 능력은 현 수준에서 머물거나, 아니면 더 줄어들어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아서는 자신에게 손해가 되고 만다. 큰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작은 승리에 도취되지 말아야 한다. 쉽게 쟁취한 작은 승리가 정신력을 무력화시키고 만용을 부추겨 큰 승리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큰승리를 위해서는 작은 승리쯤은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큰 승리를 위해서는 패배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큰 승리로 가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데는 작은 승리보다 쓰디쓴 패배가 낫다.
그른행동
그른 행동은 한 번으로 그쳐라. 그래야 어리석은 자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을 수 있다. 어리석음의 딱지는 그른 행동을 자꾸만 되풀이할 때 붙여진다. 옳은 행동은 한 번으로 그치지 말아야 하고 그른 행동은 한 번으로 그쳐야 한다. 옳은 행동은 되풀이할수록 인격에 도움이 되고, 그른 행동은 되풀이하지 않을수록 인격에 도움이 된다. 타인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은 대개 이와는 반대로 행동한다. 옳은 행동은 한 번으로 그치면서 그른 행동은 밥 먹듯 되풀이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손가락질 받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실수로든 고의로든 그른 행동을 했다면 지체없이 고쳐야 한다. 그른 행동을 했다는 사실보다도 그것을 바로잡지 않고 되풀이하는 것이 더 큰 잘못이다. 누구나 한 번의 잘못은 너그러이 용서가 된다. 어쩌다 한 번 저지른 잘못은 병가상사라 덮어서 허물삼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두 번 이상 되풀이 될 때는 다르다. 그 때부터는 심각하게 문제시하여 허물삼기 시작한다. 똑같은 잘못으로 자꾸만 이미지를 그르쳐서는 안된다. 똑같은 일로 두 번 세 번 욕을 먹는 사람은 구제 불능한 사람이다. 큰 잘못을 저질렀느냐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잘못된 행동 뒤에 그와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느냐 되풀이하지 않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사소한 잘못이라도 자꾸 되풀이되면 여지없이 어리석은 자라는 딱지가 붙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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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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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 유시주
1. 인간을 믿어도 될 것인가 (프로메테우스의 대답)
전봉준, 김남주, 프로메테우스
한 시대의 불행한 아들로 태어나 고독과 공포에 결코 굴하지 않았던 사람 암울한 시대 한가운데 말뚝처럼 횃불처럼 우뚝 서서 한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한 몸으로 껴안고 피투성이로 싸웠던 사람 뒤따라오는 세대를 위하여 승리없는 투쟁 어떤 불행 어떤 고통도 결코 두려워 하지 않았던 사람 누구보다도 자기 시대를 가장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자기 시대를 가장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싸우고 한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
녹두장군 전봉군을 추모하는 김남주 시인의 시, <황토현에 바치는 노래>의 한 연이다. 김남주는 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가 그랬고 그의 삶이 그랬다. 그는 1946년 전남 해남의 어느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들이 커서 제발 덕분 면서기로 출세 하기를 바랬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그는 전남대 재학시절부터 일찌감치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과의 싸움에 들어섰다. 검정고시를 거쳐 들어간 대학에서 그는 3선 개헌 반대 운동과 교련 반대 운동을 이끌었으며 급기야 73년에는 유신에 반대하는 지하신문을 제작하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물론 학교에서는 제적되었다. 그 뒤로도 굽힘없이 반유신 지하활동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79년 구속될 당시 그는 서른네 살이었는데 감옥문을 나선 것은 그로부터 9년 3개월 뒤인 마흔세 살 때였다. 들어갈 때는 까맸던 그의 머리가 나올 땐 하얗게 세어 있었다. 종이도 연필도 허락되지 않는 옥중에서 그는 못토막을 갈고 갈아 우유곽 속의 은박지 위에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불타는 투혼의 시편들을 써냇다. 그 시들은 80년대의 빛나는 저항 정신을 더할 수 없이 치열하게, 아름답게 그려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지상을 떠났다. 1994년 2월 13일, 그는 마흔여덟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꽃다운 젊음의 1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석방된 지 5년만이었다. 그를 쓰러뜨린 것은 그가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군사 독재 정권도, 10년간의 엄혹한 감옥살이도 아닌 암세포였다. 그가 죽은 뒤 어느 평론가는 그를 기리는 글에서 앞서 인용한, 그의 시 한 대목을 인용한 뒤, 우리는 그를 김남주라 부른다 고 썼다. 전봉준을 기린 그의 시가 그 자신에게 바쳐진 것이다. 그가 남긴 뜨겁고도 맑은 시들 가운데 <나 자신을 노래한다>는 시가 있다. 감옥 생활 초기에, 남민전 사건을 과격파들의 경박하고 무책임한 모험쯤으로 비판하는 식자들을 향해 시인 특유의 직설적인 어법으로 써내려간 이 시는, 이런 대전제 아래 시작된다.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류에게 선사했던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의 자랑이라면 부자들로부터 재산을 훔쳐 민중에게 선사했던 나 또한 민중의 자랑이다.>
이어지는 1연에서 식자들의 비판을 열거한 뒤, 2연에서 그는 묻는다.
나는 묻고 싣다 그들에게/굴욕처럼 흐르는 침묵의 거리에서/앉지도 일어서지도 못하고/엉거주춤 똥누는 폼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그들은 척척박사이기에 무엇보다도 먼저 묻겠다./불를 달라 프로메테우스가/제우스에게 무릎끓고 구걸했던가/바스티유 감옥은 어떻게 열렸으며/센트 피터폴 요새는 누구에의해 접수되었는가/......./그리고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은 고통으로 끝났던가/프로메테우스, 인간을 만들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과 영웅 가운데 후세 사람들에게 가장 칭송받는 이는 아마도 프로메테우스일 것이다. 바이런이 <프로메테우스>라는 시에세 묘사했듯 그는
인간의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신들이 능멸해도 좋을 것으로는 여기지 못하게 했던/불멸의 눈을 가진 이 였다.
그는 그리스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가치-인간과 자유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부당한 고통을 견디는 고결한 정신, 억압에 항거하는 투쟁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기존의 제도와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불온한 사람들에게는 늘 그의 이름이 따라붙었다. 청년 마르크스가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러대던 <라인신문>이 프러시아 정부에 의해 폐간되자, 다른 일간지에서 일제히 그 사건을 만평으로 다루었는데, 마르크스가 사슬에 칭칭 묶여있는 모습을 그린 그 만평의 제목은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 였다. 프로메테우스는 티탄 신족이었다. 티탄 신족은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권좌를 차지하기 전에 세상을 다스리던 신들이었다.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 어머니인 레아를 포함해 티탄 신족은 모두 열두 명이었다. 남신이 여섯, 여신이 여섯이었는데 프로메테우스는 남신 가운데 하나인 이아페토스의 아들이었다. 이아페토스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다. 맏이는 아틀라스였고, 그 밑으로 프로메테우스(미리 내다보는 자)와 에피메테우스(나중에 깨닫는 자)가 있었다. 아틀라스는 감히 대적할 신이 없을 만큼 힘이 장사였고, 프로메테우스는 지혜롭고 신중했다. 막내인 에피메테우스는 이름 그대로 일을 저질러 놓고서야 허겁지겁 수습을 하는, 좀 철딱서니가 없는 신이었다. 티탄 신족과 일전을 치르고 최고 지배자의 자리에 오른 제우스는 어느 날, 지상에 살고 있던 프로메테우스를 불러 이렇게 명했다.
아래로는 뭇 짐승들을 다스리고 위로는 우리 신들을 섬길 인간을 만들도록하여라.
제우스가 하필 프로메테우스에게 그 중차대한 일을 맡긴 데는 까닭이 없지 않았다. 티탄과 올림포스 신족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프로메테우스는 동생과 더불어 티탄 족으로서는 유일하게 제우스 편을 들었다. 이름 그대로 앞날을 훤히 내다볼 수 있었던지라 대세를 따른 것이었다. 비록 자신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 덕분에, 다른 티탄과 함께 무한 지옥 타르타로스에 유폐된 아버지 이야페토스, 어깨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야 되는 형벌을 받은 형 아틀라스와 달리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올림포스 신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그런 공로도 있었으려니와 프로메테우스는 뛰어난 예지력과 지혜, 신중한 처신으로 제우스라고 쉽사리 대할 수 없는 그만의 위엄을 갖춘 신이었다. 제우스의 명을 받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온 프로메테우스는 우선 질좋은 진흙을 구했다. 그리고 거기다 물을 붓고 이겨서 신들의 형상과 비슷하게 인간을 빚었다. 그것을 이레 동안 볕에 말린 뒤 생명을 불러넣으려는 찰나, 지나가던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나비 한 마리를 나려 보냈다. 나비가 인간의 콧구멍으로 들어가니 비로소 인간에게 마음이 깃들이게 되었다.(그리스어 프시케 PSYCHE는 나비라는 뜻과 마음, 영혼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태어나게 되었는데 이윽고 그들은 몇 배로 불어나 땅을 가득 채웠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우선 직립할 능력을 주었다. 덕택에, 다른 동물들은 모두 고개를 숙여 땅을 내려다 보는데 인간만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을 뿐, 그들은 처음에는 다른 동물과 다를바 없는 가엾은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몸을 가리는 따뜻한 털가죽도 없엇고, 사자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었으며, 거북이처럼 단단한 등껍질도,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발톱도 없었다. 일이 그렇게 된 데에는 에피메테우스의 책임이 컸다. 그는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능력, 이를테면 용기, 힘, 속도 같은 것을 부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동생이 그 일을 해내면 프로메테우스는 그 결과를 점검, 감독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량없는 에피메테우스가 신바람이 나서 닥치는 대로 선물을 나누어 주는 바람에 막상 인간의 차례가 되자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었다. 당황한 에피메테우스는 헐레벌떡 형을 찾아와 하소연을 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징징 짜는 동생을 달래놓고는 속이 빈 회향나무 막대기 하나를 품속에 숨겨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제우스의 전용 무기인 벼락에서 불씨를 옮겨붙여, 들고 갔던 막대기 속에 숨겨가지고 돌아왔다. 프로메테우스는 이튿날, 인간을 불러모아 불씨를 건네주고, 나무와 나무를 비벼서 불을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이 선물 덕분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었고, 사냥용 무기와 농사짓는 연모를 만들 수 있었으며 아무리 추워도 거처를 덥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나아가서는 갖가지 기술을 개발하고 화폐까지 만들어 쓰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위에 집을 짓는 법, 날씨를 미리 아는 법, 셈하고 글쓰는 법, 짐승을 길들이는 법, 배를 만들어 바다를 향해하는 기술까지 가르쳐 주었다.
사랑의 형벌
이 사실을 안 제우스는 노발대발했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씨를 훔친 곳은 제우스의 벼락이 아니라 제우스의 조강지처 헤라의 신전 부엌이었다는 설도 있고 또 태양신 헬리오스가 모는 태양 마차였다는 설도 있으나 어디였건 간에 도둑질이기는 매한가지였다. 신들의 전유물인 불을 훔친 죄도 죄려니와, 우쭐대기 좋아해서 그렇잖아도 하마나 신들에게 대들지 않을까 앞날이 걱정스러운 인간에게 그걸 주었으니 뒷감당은 누가 한단 말인가, 게다가 한번쯤 프로메테우스를 손봐야겠다. 마음먹은 구원도 있었던 참이었다. 인간들이 소를 한 마리 잡아 제우스에게 바칠 때의 일이었다. 맛있는 고기와 기름은 죄다 제우스에게 바치고 먹을 수도 없는 뼈와 가죽만 인간의 몫으로 남기는 걸 보고 프로메테우스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고기는 보잘 것 없는 가죽으로 싸고 뼈는 먹음직스런 기름덩어리로 감싼 뒤 제우스에게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제우스는 물론 가죽보다 기름을 택했고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을 속여넘긴 걸 알고는 심히 언짢았다. 인간을 만들라 명했던 뜻은 신을 공손히 받들 존재가 필요해서였건만 그 뜻을 묵살하고 오히려 사사건건 인간편을 드니 여간 위험스럽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감히 불까지 갖다주다니! 제우스는 당장 자신의 아들이면서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를 불러 청동쇠사슬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는 크라토스(권력)와 비아(폭력)를 시켜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에다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묶어버렸다. 그것으로도 분이 안 풀린 제우스는 독수리로 하여금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파먹게 했다. 독수리가 간을 다 파먹으면 그때마다 간은 새로이 돋아났다. 프로메테우스의 죄,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
인간을 창조하고,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을 이롭게 하였다는 것만으로도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숭앙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가르친 진실로 위대한 교훈은 따로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프로메테우스는 언제라도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신상에 관련된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 제우스는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죽이고 올림포스의 왕좌에 올랐는데 일찍이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이아는 크로노스의 어머니였으니 제우스에겐 할머니다)로부터 너 또한 자식에게 죽임을 당하리라 는 예언을 들었다. 제우스로선 자신에게 반기를 들 그 자식이 어떤 어미의 몸에서 태어날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이름난 호색한인 제우스에게는 처첩이 수도 없이 많았던 것이다. 문제아를 낳을 어미가 누구인지만 알 수 있다면 미리 조처를 취할 수 있으련만,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자가 바로 함부로 다루기 어려운 프로메테우스였다. 제우스는 감언이설 잘 늘어놓기로 유명한 전령신 헤르메스를 보내 프로메테우스를 회유했다. 그 비밀만 귀띔해 주면 당장 풀어줄 뿐만 아니라 두둑한 상까지 얹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일신의 안락을 위해 대의를 저버리는 그런 행위를 경멸했다.
어리석은 이여, 말 한 마디면 당장 이 고통에서 벗어날 텐데 어찌 이리 고집을 피우나? 헤르메스의 말에 프로메테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헤르메스여, 이 정도 고생이면 말 한 마디를 아끼는데 그대는 어찌 그리도 비굴한가?
마침내 헤라클레스가 와 사슬을 끊어주기까지, 무려 3천년 동안을 프로메테우스는 코카서스 산정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였다고 한다. 참혹한 고통 앞에서도 무릎끓지 않았던 이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인간이 그에게서 받은 가장 위대한 선물이었다.
인간을 믿어도 될 것인가
김남주 시인이 <나 자신을 노래한다>는 시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 정신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죽은 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한 시대의 죽음으로 받아들였다. 10년을 감옥 안과 밖으로 갈라져 지내다 어렵게 결혼한 지 5년만에, 남편을 영영 떠나보내야 했던 그의 아내는 그의 시가 이제 쓸모없는 세상이 돼 버려서 그는 떠났다 고 썼으며 한 문학평론가는 세상이 돌이킬 수 없이 천해지고 시의 길에 그늘이 짙어지자 그는 굴욕 대신 차라리 육신을 벗고 말았다고 했다. 시인 자신도 췌장암 선고를 받기 직전에 발표한 시 <근황>에서 이제 나는 아무짝에도 쓰잘 데 없는 사람 이라고 자책했다. 김남주 시인의 시대, 그와 함께 사라져 버린 시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저 고난의 7,80년대, 고난과 함께 의로운 투쟁이 있었던 시대, 가혹한 탄압이 있어 그만큼 뜨거웠던 시대-인간의 힘으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던 저 간절한 신념의 시대를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에 뒤이은 새로운 시대는 시인의 표현대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적지근 한 시대요 맑지도 탁하지도 않은 흐리멍텅 한 시대였다. 첨예했던 민주.반민주의 대립이 흐트러지면서 사람들은 적당히 자조하고 그럭저럭 체념했다. 가혹한 억압이 없는 대신 순결한 이상을 향한 투쟁도 사라졌다. 김남주를 비롯해 그간 민주화 운동에 헌신해 온 근본주의자들-인간의 손으로 이룩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의 자유와 평등을 지향 한다는 의미에서 그들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에게는 이 모든 상황-근본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마치 모든 것이 달라진 듯 흘러가는-이 당황스럽고 쓸쓸하고 낙망스러웠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역사의 진보를 향한 모든 의식적 노력의 근저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깔려있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을 던졌다. 인간을 믿어도 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고, 어떤 사람들은 도망가고, 어떤 사람들은 침묵하고, 어떤 사람들은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사실 이 물음은 수천년 인간의 역사에서 수없이 되풀이던 질문이다. 철학과 사상의 역사는, 역사의 구비마다 특히 시련과 혼돈과 정체의 시기마다 사람들이 이 근본적 질문 앞에서 회의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전쟁과 대량살륙, 인간에 의한 인간의 억압, 부자유와 불평등-인간의 손으로 저질러진 참담한 죄악 앞에서 사람들은 늘 반문했다. 인간은 과연 제 손으로 사랑이니 평화니 우애니 평등이니 정의니 하는 걸 실현할 수 있는 존재인가. 꼭 격변의 시기가 아니더라도, 꼭 시대를 선도한 위인이 아니더라도 인간과 역사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으리라.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다 간 김남주 시인이라면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 이제 그는 여기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다. 하지만 그의 유고 시집<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을 읽어 보니 어쩌면 나는 그 대답을 알 것도 같다.
시도 사람의 일/신이 아닌 신이 아닌 것도 아닌/일하고 노래하고 싸우고 그러나 끝내 죽고 마는/보통 사람의 일인 것이다/한술의 밥 때문에 할퀴고 물어뜯고 살해까지 하는 한 가닥 빛을 위해 세계를 거는/단순하고 당돌한 사람들의 일인 것이다/집을, 보습 대일 한 뙈기 땅을, 빛을 갖고 싶어하는/제새끼도 남의 새끼마냥 키우고 싶어하는/소박한 일인 것이다 -<시를 대하고>중에서
그의 말대로, 사랑도, 평화도, 우애도, 평등도, 정의도-그 모든 아름답고 진실되고 선한 것들도 모두 우리 보통 사람들의 일이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애타게 바라지만 그것에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은 우리 속에 사랑과 더불어 증오가 평화와 더불어 쟁투가, 우애와 더불어 질투가, 평등과 더불어 이기가, 정의와 더불어 불의가 들어앉아 있는 까닭이다. 김남주와는 다른 창법으로 노래했지만 곧고 맑기로는 그와 마찬가지였던 윤동주도 인간의 그 숙명을 이렇게 처연히 적어두었다.
간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 습한 강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독수리야! 와서 뜯어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진다.
프로메테우스 불쌍한 프로메테우스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침전하는 프로메테우스
안락의 유혹에 시달림당한 사람이 어디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시인뿐이랴. 불의에 앞장서 항거했던 의인들뿐이랴. 우리들 보통 사람도 매일매일 그 유혹에 시달린다. 커닝을 해서라도 시험을 잘 보고 싶은 유혹, 남을 속여서라도 돈을 벌고 싶은 유혹, 말만 앞세워 명예를 얻고 싶은 유혹, 하다못해 남을 헐뜯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유혹까지, 내딛는 걸음 걸음마다 불의의 참정이 도사리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처럼 우리들도 날마다 싸움의 와중에서 살아간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사이에서, 진실된 것과 거짓된 것 사이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 사이에서 벌어지는 그 싸움이야말로 인간을 인갑답게 하는 거룩한 전장이다. 그렇기에 인간을 믿는다함은 인간이 전적으로 아름답고 진실되고 선한 존재라는 걸 믿는 게 아니라 아름답고 진실되고 선한 존재가 되기 위해 추하고 거짓되고 악한 자신과 싸울 줄 아는 존재라는 걸 믿는 것인지 모른다. 인간을 믿어도 될 것인가. 코카서스 산정에 매달린 프로메테우스는 우리들, 지상의 프로메테우스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모릅니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삶으로 대답할 일이지요. 빛을 바라는 자, 거기다 세계를 걸고 스스로 빛이 되지요.
힘겨운 삶의 한복판, 거기 불멸의 빛이 있다고, 그러니 부디 쉬이 낙망하지 말라고 격려철머 위안처럼, 그는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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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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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신사
언젠가 나는 한 훌륭한 신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지역에는 악명 높은 신사 강도들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새디는 남편인 히미를 흔들어 깨웠다.
"히미, 집안에 강도가 든 것 같아요." 히미는 졸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 바보처럼. 잠이나 자요." 바로 그 순간 벽장 안에서 한 사내가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아니오, 여기 이렇게 와 있소. 자, 이제 숙녀 분에게 사과를 하시오."
- 신사는 신사이다. 비록 강도가 되기는 했지만... 습관은 참으로 뿌리 깊은 것이다. 그 습관은 무의식 속에서도 계속된다.
낙서
한 영국인 교수는 어느 날 동료 교수가 화장실 벽에 낙서하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세상에, 난 자네가 화장실 벽에 낙서나 하는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네." "오해하지 말게." 동료 교수가 말했다. "난 단지 문법을 고치고 있는 것뿐일세."
- 문법을 고치는 오랜 습관. 그는 화장실 벽의 낙서에서 어떤 문법적 오류를 발견했던 것이다.
구두쇠
소문난 구두쇠 한 사람이 있었다. 코니 아일랜드 해수욕장 한 곳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다. 한 사내가 자기가 방금 구출해낸 구두쇠의 상속녀에게 인공 호흡을 시키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부모들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딸이 의식을 회복하는 것을 보고 몹시 기뻐했다. 그때, 그 딸의 아버지가 말했다. "여보, 저 청년에게 1달러를 주구료. 우리 아이의 생명을 구했으니까 말이오." "아빠, 난 반쯤 죽을 뻔했었단 말이에요." 상속녀가 항의조로 말했다. "그래? 여보, 그렇다면 그에게 50센트만 줘요."
- 오래된 습관과 싸우지 말라. 싸움은 분열을 낳고, 그대는 그대 스스로와 싸우게 될 것이다. 다만 이해하도록 하라. 그리고 보다 주의 깊게 지켜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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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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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안정애, 양정현
35. 9세기 중국의 생활상, 신라방, 견당사 - 일본 승려 엔닌의 일기(838~847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현장의 (대당서역기), 엔닌의 (입당구법 순례행기)를 세계 3대 동방 여행기로 꼽는다. (대당서역기)는 7세기 인도, 그리고 (입당구법 순례행기)와 (동방견문록)은 9세기와 13세기의 중국의 역사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다. 이들은 당시의 생생한 인간의 숨결을 그대로 간직,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연대기적 역사 서술과는 전혀 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동방견문록)은 서양세계에 중국을 처음으로 소개한 서적으로 유럽 사회에 커다란 충격과 파문을 던졌다. 그러나 너무나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온 상인 마르코 폴로의 눈을 통애 소개된 중국의 문물은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불교를 '우상숭배' 정도로 가볍게 치부해버리기도 했고, 게다가 그의 기록은 그가 여행을 마친 지 수년이 경과한 다음,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한 채 씌어진 것이다. 이에 비해 일본 승려 엔닌의 순례기는 놀랄 만큼 상세하고 그려낸 듯 정확하다. 그는 불교와 한자문화를 공유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일원으로서 중국을 따뜻한 시각으로 깊이 있게 이해했으며, 예리한 관찰력으로 중국의 관료나 민중생활의 실상을 일기형식으로 그때그때 기록함으로써 여행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엔닌은 일본 동부의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15살 때 연력사에서 일본 천태종의 개조인 사이초의 제자로 불교계에 입문한 그는 마침내 불교계의 최고의 지위에 올라 일본 불교계에 새로운 족적을 남겼다. 명족들이 지배하는 당시 사회에서 그가 이러한 성공을 일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9년 반 동안의 위험에 가득 찬 중국 순례가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가 새로이 가져온 밀교의 화려한 의식과 예술품, 풍부한 상징들이 일본의 궁정인들을 매혹시켰다. 838년 그는 견당사의 일원으로는 좀 많은 46세의 나이로 중국 순례의 길에 나섰다. 견당사는 조공의 형식으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외교 사절단으로 일본이 중국의 고고의 문물을 직수입하는 주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많은 지식인들이 승선하고 있었다. 종래에 일본은 우리 나라를 통해 간접적으로 대륙의 문물을 섭취했으나, 7세기 초 쇼토쿠 태자가 통일국가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점차 대규모적인 사절단을 중국에 파견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중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강조하면서 다른 나라처럼 중국의 신하가 되는 형식을 밟는 책봉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엔닌의 일기는 중국황제의 알현에서 대사 등 일본의 사절들이 받았던 중국의 관위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견당사의 파견은 일본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국가적 대사였으나, 당시의 항해기술로는 조난의 위험이 매우 컸기 때문에 일본 천황은 '견당사를 보내는 연회'를 직접 베풀고 대사와 부사에게 '권위의 칼'을 수여하는 의식을 통해 선상에서의 지휘권을 넘겨주었다. 젊은 대사에게 정2품으로의 파격적인 승진이 이루어지는 등 위험한 사명을 띠고 떠나는 일행에게는 높은 관직과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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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택의 이야기 한자 外
무자식이 상팔자 - 난신적자(亂臣賊子) 亂(어지럽힐 란) 臣(신하 신) 賊(해칠 적) 子(아들 자)
孟子 <등문공 文公>하편에는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가 제기한 논쟁에 관한 맹자의 답변이 실려 있다. 맹자는 자신이 논쟁을 피하지 않는 이유를 인의(仁義)의 실천을 위한 것으로 설명하였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들은 두려워 하였다(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 라는 구절이 나온다. 후한서 <동탁전董卓傳>에도 너희들은 반역하여 천자를 핍박하니, 역적들중에도 이제껏 너희같은 자들은 없었다(亂臣賊子未有如汝者) 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亂臣賊子 란 임금을 죽이는 신하와 어버이를 죽이는 아들 또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나 역적 등의 뜻이다. 옛날 영국에서는 국사범들을 런던탑(the Tower of Londen)에 감금하였는데, 이 탑의 Thames강 쪽의 문을 the Traitor's Gate 라 하였다. 이는 곧 亂臣賊子之門 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많은 亂臣賊子들이 탄생과 함께 이슬로 사라져 갔지만, 여전히 기억속에 살아있는 난신(亂臣)의 탄생은 불과 18년전인 1979년 10월 26월 에 있었다. 하지만 한 시기에 亂臣 과 賊子 의 출현을 모두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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