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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54호
단기 4343 / 서기 2010. 5. 28 (음력 4. 15)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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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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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과 어린이문학의 흐름을 이끌어온 창비에서 진정한 청소년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제정된 공모입니다.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쓴 미발표 장편 소설을 대상으로 하며, 신인과 기성 작가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대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원과 함께 유럽 문화예술 탐방 기회를 제공하며, 수상작은 창비에서 출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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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공모
모집부문 |
청소년을 대상독자로 한 미발표 장편소설 |
분량 |
200자 원고지 700매 내외 |
응모자격 |
신인 및 기성작가 제한 없음 |
시상내역 |
원고료 2,000만원과 유럽 문화예술 탐방 기회 제공 |
마감 |
2010년 9월 30일(마감일 소인 유효) |
보낼곳 |
413-756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513-11 창비 어린이청소년출판부 |
발표 |
2010년 11월 15일 본사 홈페이지(입상자에게는 개별 통지) |
기타 |
1. 수상작은 단행본으로 출간합니다. 2. 출간후 고료를 웃도는 인세(정가의 10%)가 발생할 경우 초과분의 인세를 지급합니다. 3. 유럽 문화예술 탐방은 국제도서전 참관 등으로 이루어집니다. 4. 응모시 겉봉에 ‘청소년문학상 응모작’이라고 밝히고, 원고에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꼭 써주십시오. 5. 응모한 원고는 반환하지 않으며, 우편접수만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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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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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는 간혹 누더기 가면을 덮어쓰고 있다.(스타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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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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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거운 생각!
‘궁거운 생각’은 무슨 생각일까? 미루어 짐작한 것처럼 ‘궁금한 생각’이다. ‘궁겁다’는 표준어 ‘궁금하다’에 대응하는 말로, 남녘과 북녘뿐만 아니라 재중동포 사회에서도 두루 쓰인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궁금하다’의 잘못으로 풀이되어 있으며, 북녘의 <조선말대사전>에는 버젓이 문화어로 올라 있다. ‘궁겁다’는 ‘궁금하다’에서 ‘ㅎ’이 탈락한 ‘궁금어다’의 활용형 ‘궁금어서~궁그어서’를 언중들이 마치 ‘고맙다’의 활용형 ‘고마워서~고마어서’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원래의 형태를 ‘궁겁다’로 인식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조모는 손부가 숙성해 가는 꼴을 볼수록 은근히 그들의 사이가 궁거웠다.”(<봄> 이기영) “궁겁기는 어째 궁겁다구 이럼둥?”(<조각달 둥근달> 리태수, 재중동포 작가) “창해가 궁거운 소리로 물었다.”(<여름바다> 신종봉, 북녘 작가) ‘궁겁다’는 지역에 따라 ‘궁급다’로 사용되기도 한다. “니가 가고 하도 오래 핀지(편지)가 없으이 애비는 하리하리(하루하루)가 궁급다.”(<경북 동남부 방언사전> 정석호)
‘궁금하다’의 또다른 고장말로는 ‘궁기허다’와 ‘궁구허다’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쓰이는 말이다. “어찌 궁기허든지 즈그 엄니헌테 가서 물어봤어.”(<전남방언사전>) “궁구허닝께 구다봤을(들여다봤을) 거 아닌갭여.”(<겨레말>)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대틀’과 ‘손세’
우리는 이따금 우리의 민속 씨름이나 일본의 전통 씨름인 스모 경기를 즐기게 된다. 여기에 참가하는 운동선수들은 모두 몸집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경우에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북녘말에 ‘대틀’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몸집이 큰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백두장사급 씨름 선수나 일본 스모 선수의 몸집에 꼭 어울리는 말이다. “《꼭 내가 그려준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중열에게 호송길로 가는 길을 그려준 지질탐사단 단장은 한꺼번에 국수를 세 그릇이나 먹는 대틀의 사나이였다. 구리로 부은 듯 얼굴이며 목이며 손잔등까지 거무스름한 그는 청년 시절부터 오늘까지 25년간이나 이 일대에서….”(<먼 길>, 정창윤, 문예출판사, 1983년, 321쪽)와 같은 용례가 보인다.
우리는 의사를 전달하는 데서 음성으로 전하는 말 못지않게 눈짓이나 손짓으로도 마음을 전한다. 이때 손짓에 대하여 북녘에서는 ‘손세’라는 말을 흔히 쓴다.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 박종학은 손이 떨려나는 것을 감추기 위하여 손세까지 써 가며 류창하게 인사말을 엮어나갔다. 리철범과 최성택은 대뜸 동지라고 부르며 나서는 이 뻔뻔스러운 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고난의 행군>,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76년, 53쪽)와 같이 쓰인다.
전수태/전 고려대 전문교수
총각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자를 가리키는 총각(總角). 총각은 본래 ‘머리를 땋아 묶는 일’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총(總)이 ‘묶다’, 각(角)이 ‘뿔, 두발’이라는 뜻이다.‘머리를 땋아서 묶고 있는 남자’라는 의미로 변했고,‘결혼 전의 성인 남자’라는 뜻을 갖게 됐다.‘총각무’도 무청을 땋아서 뿔처럼 묶을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숟가락
‘숟가락’의 ‘숟’은 ‘밥 한 술’,‘두 술’ 할 때의 ‘술’이다. 이 ‘술’이 ‘가락’과 합쳐지면서 ‘ㄹ’이 ‘ㄷ’으로 변했다.‘술+가락’이 ‘숟가락’이 된 것이다. 이렇게 ‘ㄹ’이 ‘ㄷ’으로 바뀌어 굳어진 단어는 ‘이튿날(이틀+날)’,‘사흗날(사흘+날)’,‘삼짇날(삼질+날)’,‘반짇고리(바느질+고리)’,‘섣달(설+달)’ 등이 있다.
~에게, ~와
복통에 시달리던 할머니 한 분이 병원을 찾았다. 배에 회충이 있는 모양이라며 다짜고짜 간호사에게 약을 달란다. 조용히 미소 짓던 간호사가 "할머니, 먼저 ''의사 선생님에게'' 상의하세요. 처방전을 받으신 뒤 약은 약국에서 사셔야 해요" 하고 진료 절차를 자세히 안내한다.
이번에는 무심코 사용하는''~에게''와 ''~과/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에게''는 "수희가 미경에게 소곤거렸다" "선생님에게 일이 생겼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처럼 어떤 행동이 미치는 대상을 나타내거나, 범위를 제한하거나, 앞에 붙는 말이 어떤 행동을 일으키는 대상임을 나타낸다. 또한 행위가 상호 작용이라기보다는 일방으로 이뤄지는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와''는 행위를 더불어 하는 대상임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한국의 한.일 월드컵 16강 진출의 기쁨을 회사 동료와 함께 나눴다" "노처녀 인숙은 애완견 해피와 원룸에 산다" 등이 그 예다.
"의사 선생님에게 상의하세요"의 경우 ''상의''가 ''어떤 일을 서로 의논한다''는 것이므로 상호 작용이다. 따라서 ''의사 선생님에게''보다는 ''의사 선생님과''로 쓰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이다.
궂은날, 궂은 날
요즘같이 찌뿌드드한 날이 계속되면 기온과 습도 변화로 신경이 자극을 받아 통증이 더 잘 느껴진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비 오려나 보다. 빨래 걷어라"와 같은 예언(?)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이런 장마철에 어울리는 단어는 ''궂은 날''일까, 아니면 ''궂은날''일까.
우리말엔 띄어쓰기 하나로도 뜻이 변하는 단어가 많다. ''궂은 날''과 ''궂은날''도 그런 예 중 하나다. ''궂은 날''과 같이 ''궂은''과 ''날''을 띄어 쓰면 말 그대로 비나 눈이 내려 날씨가 나쁜 날이란 의미가 된다. 따라서 장마철에 어울리는 말은 ''궂은날''이 아닌 ''궂은 날''이 맞다.
''궂은''과 ''날''을 붙여 ''궂은날''로 쓰면, 재난이나 부정이 있다고 믿어 꺼리게 되는 날이란 전혀 다른 뜻이 된다. "궂은날을 피해 이사 날짜를 잡았다" "그달 20일은 궂은날이니 혼인날로는 적당하지 않다"와 같이 쓰이며, 다른 말로는 ''질일(疾日)''이라고도 한다.
온몸이 쑤시는 ''궂은 날''엔 에어컨의 찬바람을 직접 맞지 말고, 되도록 습기가 차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 가만히 있기보다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게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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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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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마다 하루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 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할 때면 큰 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이 막다른 골목이다 옐로우 하우스 33호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집 앞인데 거기보다도 우리집이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들이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에 진열된 여자들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 배달을 나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 타는 아가씨는 명순氏 紅燈 유리房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은 마네킹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소풍 갈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에다 쌍꺼풀 수술 자국이 터진 만두 같은 명순氏가 지저귀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할 때 우린 食堂에 딸린 房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경쾌하게 말 못 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강원연탄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 지 몇 년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이라 부르고 용돈 탈 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가계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 일부러 날 보고는 뒤돌아서서 내게 들리는 목소리로, 일부러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 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공장에서 날아오는 연탄 가루 때문에 우리집 빨래가 햇빛 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말려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든 다 하고 싸울 일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 절정은 아니고 없는 敵을 만들어 槍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자를 만나고 귀가하는 날이면 그 길이 여동생들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을 바래다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올려야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쯤 식구들 가슴 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밤새도록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어발기며 쥐를 잡을 때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 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 근친상간 한번 없는 安東金哥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제각기 직장으로 公園으로 술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 知人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 담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양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그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서 묻혀 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고까지만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며 화물 트럭과 맞부딪치면 여자처럼 드러눕는 기관차를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너머엔 사랑하는 西海가 있고 더 멀리 가면 中國이 있고 더더 멀리 가면 印度와 유럽과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 가면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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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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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슬픔 - 최희선
간다는 것은 늘 온다는 희망을 준다.
기다림의 긴 날들은 돋은 풀잎처럼 새롭게
봄에서 겨울까지는 황홀한 꿈을 팔았다.
어느 날 샛길에 핀 민들레를 보았다.
찬란한 날이 빛바래 홀씨로 흩날리는 날까지
희망을 쓴 뿌리에 감춘 민들레의 이야기를.
누구도 달래줄 이 없는 눈물을 혼자 닦으며
자유가 두려운 지금 구속될 날을 기대함은
나에겐 무지개 꿈 엮어 쌀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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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동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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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 - 윤석중
타버린 집터에 판장으로 만든 집이 한 채 있었다. 추운 겨울 이른 새벽 찬 방에서 자고 난 아기가 나와 거적문 앞에 앉아 있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기를 보고 지나가는 영감님이 물어 보았다. "아가, 아빠 기다리니?" 아기는 고개를 옆으로 살래살래.
입술이 새파란 아기를 보고 지나가는 마나님이 물어 보았다. "아가, 엄마 기다리니?" 아기는 고개를 옆으로 살래살래.
아침 해가 불끈 솟자 아기는 손뼉 치며 좋아하였다. "야아, 인제 떳다아!"
따뜻한 해가 아침마다 떠서는 꽁꽁 언 아기 몸을 녹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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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이글저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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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이야기 - 김형균 엮음
2. 불가사의의 진실을 찾아서
지구의 종말은 올 것인가
미셀 노스트라다무스는 1503년에 프랑스 생레미에서 태어났다. 그대 점성술사인 노스트라다무스의 외할아버지는 이런 얘언을 했다. "이 아이는 분명히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자라면서 무엇보다도 책 읽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이 세상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너무나 많구나." 그렇게 생각한 노스트라다무스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무조건 책을 찾아서 읽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부모님께 계속 질문을 해서 반드시 알아내고야 말았다. 그래서 부모님은 노스트라다무스를 귀찮게 여길 때도 있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영리하긴 하지만 좀 엉뚱한 데가 있어." 노스트라다무스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별자리책과 점성술책도 열심히 읽었다. 그래서 동네 아주머니들이나 친구들을 불러다가 별점을 쳐주기도 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청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그를 불러놓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애야, 나는 네가 똑똑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 독똑한 머리를 네 자신을 위해서만 쓰면 안된다. 반드시 남을 위해 쓰도록 하여라." "알겠습니다. 저는 아버님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유렵에서 제일 유명한 몽페리의 의과대학에 시험을 치러 갔다. 그 당시의 시험은 교수들이 여럿 앉아 있는 교실에 학생 한 사람씩만 들어가 교수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교실로 들어가자마자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힙포크라테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의 몸속에는 심장과 폐가......" "잠깐!" 교수들이 놀라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우리는 아직 네게 문제를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지?" 노스트라다무스는 몇 달 전부터 자신에게 힙포크라테스의 내장론에 대해 설명하라는 문제가 주어질 것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교수들이 질문하기도 전에 무심코 답을 말해버린 것이다. 난처해진 노스트라다무스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교수들은 비명을 질렀고 심지어는 교실에서 당장 나가라고까지 했다. 그때 한 젊은 교수가 일어서서 말했다. "이 학생은 예지능력이 있을 뿐입니다. 이 학생은 우리 학교에 꼭 들어와야 합니다." 젊은 교수의 설득력 있는 말에 흥분했던 교수들은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의 입학 문제를 놓고 회의를 시작했다. 두어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결정이 내려졌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몽페리의 의과대학에 다니게 된 것이다.
대학에 다니면서 노스트라다무스는 공부에만 열중했다 그래서 교수들과 부모님은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마을의 아가씨들 대부분은 그런 노스트라다무스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노스트라다무스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몇몇 아가씨들이 그를 몰래 쳐다보며 가슴을 태우곤 했다. "저것 봐! 그사람이야." 한 아가씨가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 다른 아가씨가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릴 거들떠보지도 않을 걸." 한 아가씨가 심통스럽게 말했다. 그런 아가씨들을 좋아하는 마을 청년들은 노스트라다무스를 질투했다. "저 녀석은 너무 똑똑해. 사람이라면 저럴 수 없어. 저 녀석은 악마일지도 몰라." 그러나 무슨일에도 마음 흔들리는 법 없이 노스트라다무스는 무사히 공부를 마쳤다. 그래서 몇 년 후에는 의사 면허를 받게 되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남프랑스를 여행할 때였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숲속에서 한 아름다운 소녀를 보게 되었다. 소녀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면 흰 나비를 쫓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소녀가 노스트라다무스를 쳐다보았다. 소녀의 얼굴은 흰나비처럼 깨끗했다. "당신은 누구시죠?"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이름은 아드리에뜨지요?" 노슨트라다무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소녀의 손목을 꼭 잡았다. 소녀는 깜짝 놀라 얼굴이 불그레해졌다. 그런 소녀 앞에 노스트라다무스는 무릎을 끓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당신을 하루도 빠짐 없이 만났습니다." 소녀가 눈을 깜박거리면서 말했다. "그건 바로 제 환상 속에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오래 전부터 사랑해 왔습니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이 아니면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녀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아직 너무 어려요. 저기 보이는 것이 바로 저희집 이랍니다. 저와 함께 가셔서 제 부모님들을 만나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소녀와 함께 소녀의 집으로 갔다. 소녀의 부모님들은 노스트라다무스의 명석함과 믿음직스러운 태도에 반해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했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고 꿈같이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몸이 약한 아내를 늘 아껴 주었다. 아드레에뜨라는 두아이를 낳았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집에서는 행복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드리에뜨와 두 아이들이 페스트에 걸리고 말았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페스트라는 가장 무서운 병 중의 하나였다. 의학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페스트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었다. 그래서 의사들도 페스트라면 도망가기에 바빴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아내와 두 아이들은 결국 죽고 말았다. 큰 절망감에 빠진 노스트라다무스는 사흘 밤 낮을 몰도 먹지 않고 죽은 듯이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가 일어난 노스트라다무스는 큰 결심을 하였다. '나는 이 마을을 떠나리라. 평생을 외롭게 떠돌면서 살리라.그리고 페스트를 물리칠 방법을 꼭 연구해 내리라!' 노스트라다무스는 그 결심을 실천했다. 그때부터 노스트라다무스는 긴 방랑의 길을 떠났다. 노스트라다무스에게 예언능력이 생기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고 한다.
어느 날, 노스트라다무스는 이탈이아의 작은 마을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저쪽에서 지저분한 옷을 입은 비쩍마른 수도사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그 수도사를 보자마자 정신없이 달려가 수도사에게 큰 절을 했다. 주위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하고 몰려들었다. 수도사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물었다. "왜 이러십니까? 저는 보잘 것 없는 수도사입니다." 그러자 노스트라다무스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당신은 머지않아 교황이 되실 분입니다." 수도사는 그 말을 듣자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사람들이 노스트라다무스를 둘러싼 채로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말도 안되는 소리야, 저런 거지가 무슨." "젊은 사람이 머리가 돌았나봐. 쯧쯧." 그러나 그 후 그 수도사는 정말로 시쿠스투스 5세로서 로마교황이 되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마침내 페스트 예방법을 알아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예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녔다. "페스트의 병원균은 쥐가 퍼뜨리고 다닙니다. 쥐를 모조리 잡아서 불태우십시오. 쓰레기가 쌓인길, 낡은 교회, 하수구를 깨끗이 청소해야 합니다. 그곳을 소독할때는 독한 포도주를 쓰십시오." 노스트라다무스는 계속 이 마을 저마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살롱이라는 마을에 페스트가 번지기 시작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온 힘을 다해 페스트에 걸린 환자들을 보살펴 주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그렇게 노력한 결과. 살롱 마을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죽지 않고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노스트라다무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새로 지은 집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가 자기들 마을에서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살롱 마을에서 당분간 살기로 작정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때때로 사람들의 미래를 예언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예언은 곧잘 맞아떨어져서 마을 사람들은 그의 예언이라면 무조건 믿기 시작했다.
그가 예언자라는 소문은 점점 퍼졌다. 그 소문을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러자 앙리 2세는 노스트라다무스를 당장 불러들였다.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 에게 물었다. "그대는 인간의 운명을 점칠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이에 노스트라다무스는 조용히 대답했다. "폐하는 날카로운 무기에 찔려서 놀아가실 것입니다." 그 말에 앙이 2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더듭거리면서 말했다. "그게 대체 언제쯤이냐? 그것을 피할 수는 없겠느냐?" "안됐습니다만 폐하, 그것은 절대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폐하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운명은 앞으로 10년 안에 올 것입니다." 예언을 끝가지 들은 앙리 2세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그러더니 앙리 2세는 노스트라무스에게 자기의 명령이 내리기 전까지는 이 궁에서 떠날 수 없다고 했다. 노스트라다무스와 함께만 지낸다면 혹시 그 운명이 안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노스트라다무스는 궁에서 살게 되었다. 앙리 2세의 부인인 카테린 왕비는 점성술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왕비는 항상 여러 마술사들과 점성술사를 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제일 믿었다. 그러는 동안 5년이 지났다. 시간이 흘렀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앙리 2세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차츰 우습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앙리 2세는 노스트라다무스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곧장 살롱 마을로 돌아갔다. 그러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맞아떨어지고야 말았다. 그날은 앙리 2세의 누이동생 마르그리뜨 공주의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이 끝난 다음 무술 시합이 벌어졌다. 술에 취한 앙리 2세가 한 젊은 병사에게 창시합을 하자고 했다. 한참 시합을 하던 중에 앙리 2세의 투구가 갑자기 벗겨저 한쪽눈이 창에 찔렸다. 그 상처는 날이 갈수록 깊어져서 마침내 10일이 지난후 앙이 2세는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능력을 더더욱 믿게 되었다. 한편 살롱 마을에 돌아온 노스트라다무스는 다시 의사로 일하면서 예언서를 쓰기 시작했다. 4년에 걸쳐 완성된 예언서 '여러 세기'는 '국왕 앙리 2세 에게 바침'이라는 서문과 함께 출판되었다. 원시적인 목판인쇄 기술로 인쇄된 '여러 세기'는 모두 12권이다. 그리고 각 권에는 1,200편의 4행시가 실려 있다.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는 것은 두 권으로 한 권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또 한 권은 영국 왕립도서관에 남아 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이 책에 일부러 연대와 날짜를 마구 뒤섞어 놓았고, 수수께끼 같은 단어를 썼다. 또 고대 프랑스어, 라틴어, 그 밖의 여러 외국어를 써서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여러 세기'의 맨 뒤에 이렇게 써놓았다.
"나의 예언은 '산만한 문체'로 씌어 있고, 장소, 시간만을 한정하고 있따. 후세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내가 예언한 대로 일이 일어났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예언은 여러 학장들에 의해 여러 방향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책이 전 세계의 미래를 쓴 무서운 예언서라는데는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또한 여러 학자들이 연구분석한 예언 중에 적중한 것은 수도 없이 많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 런던의 큰 화재, 영국의 대제국화, 미국 정부의 탄생,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 그리고 에스파니아 프랑코 장군, 나폴레옹, 예방 접종법을 개척한 루이 파스퇴르 등의 출현을 정확히 예언했다. 그런가 하면 항공기, 폭격기, 로켓의 사용을 예언하기도 했는데, 오늘날의 전투기 조종사의 모습을 예언한 것은 재미나면서도 섬뜩할 만큼 정확하다. 그는 산소마스크와 렘멧, 그리고 방풍안경을 쓴 조종사를 '반은 사람같고 반은 돼지 같다'고 묘사한 것이다. 그가 한 예언 가운데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바로 지구 종말에 대한 예언이다. 그에 대한 4행시를 살펴보자.
1997년 7월 공포의 대왕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앙골모와(주1) 대왕을 소생시키기 위해 그동안 마르스(주2)는 행복의 이름으로 지배하리라. (주1) 앙골모와: 이것이 무슨 뜻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부학자들은 몽고의 징기스칸과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2) 마르스: 화성을 뜻하며, 전쟁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이 4행시를 나름대로 해석한 어떤 학자의 말에 의하면 1999년 핵 미사일에 의한 제 3차대전이 일어나 지구는 종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아시아에 있는 어떤 나라가 3차대전에서 지구를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말 3차대전에서 지구를 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정말 으스스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또 노스트라다무스는 '여러 세기'에서 자기의 죽음을 날짜까지 예언하고 있다. 거기엔 '1556년 7월 2일 이후에는 나를 볼수 없을 것이다'라고 씌어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노스트라다무스는 정확히 자기가 예언한 그날에 죽었다. 그후 살롱 마을의 묘지에 묻혔다. 살롱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의 묘지를 꾸준히 찾아갔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바싹 마른 담쟁이 덩굴만 무성하다. 그곳 노스트라다무스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노스트라다무스, 먼 별에서 온 사자, 바른 글로 거짓없이 미래를 알린 자, 그대들 인간의 미쳐버린 운명을 지켜보며 여기에 고이 잠들다. 그의 위대한 예언이 끝날 때까지.' 그의 예언은 과연 맞을 것인가? 1999년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맞든 맞지 않든, 우리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노스트라다무스는, 우리에게 그 교훈을 주기 위해 무서운 예언을 남긴 것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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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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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실패한 인생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과의사가 있었다. 그가 나이가 들어 은퇴하게 되자,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그의 제자들이 그의 은퇴를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들이 한창 기념파티를 하고 있는데, 웬지 외과의사가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한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무슨 일이십니까?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 선생님은 성공적인 인생을 사셨습니다. 아무도 선생님과 비교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선생님은 행복할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계십니다. 자, 선생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 세상 곳곳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슬퍼 하십니까?"
그는 말했다.
"나는 결코 의사이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어렸을 때 나는 무용수가 되고 싶었다네. 이제 내 인생은 다 가버렸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데에 내 삶을 소모해 버렸어. 나는 분명히 성공했지만 만족할 수가 없네. 그건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그건 배고프지도 않은데 누군가가 자네에게 먹기를 강요한 것과 다름없네. 자네가 물을 마시기 원하는데 누군가가 자네에게 우유를 강요한다면, 확실히 물보다는 우유가 낫지만, 자네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물을 마시길 원했기 때문에 우유에 만족하지 못할 것일세."
이제 그의 모든 성공은 잘못된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침묵
다섯 살 난 어린 소년이 그의 선생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너의 여동생은 이제 말하기를 배웠느냐?"
그 소년이 말했다.
"네, 말하기를 배웠는데 이제 우리는 그 아이에게 조용히 하도록 가르치고 있어요."
- 이것은 불행이다. 그대는 말을 가르쳐야만 한다. 그것은 삶의 일부이니까. 그러나 그후에 그대는 침묵하는 법, 말이 없는 법을 배워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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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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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7장 나 그리고 인생
육체적 행위
현실이 슬프고 고통스럽더라도 인생에 한숨 묻어 두지 마라. 미래에 가서는 어쩔지언정 일단은 희망을 묻어 두고 살아야 기쁨도 행복도 내 편이 되어 준다. 한숨을 내쉬지 말아야 한다. 한숨을 내쉬는 사이에 의욕도 희망도 복도 모두 달아나 버린다. 마치 타이어의 바람이 빠지는 것과 같이 한숨은 사람의 기를 빼앗아 가서 희망도 죽여 놓고 의욕도 죽여 놓는다. 인상을 찡등그리지 말아야 한다. 인상이 찡등그려지면 인생도 찡등그려진다. 찡등그려진 얼굴에는 온갖 불행과 슬픔이 다 달라붙어 그렇잖아도 슬픈 인생 더 슬프게 한다. 육체적인 행위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무심코 하는 육체적 행위가 정신력을 죽이고,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한숨이 기를 빼앗아 간다. 육체적인 행위는 곧바로 사고와 정신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주먹을 불끈 쥐면 용기가 솟아나고, 이를 악물면 분발심이 솟고, 눈을 부릅뜨면 오기가 생긴다. 몸을 축 늘어뜨리면 의욕이 달아나고, 눈을 희멀거니 뜨고 있으면 희망이 달아난다. 정신력이 나약해지면 나약해질수록 더욱더 몸가짐을 굳건히 해야 한다. 눈은 초점을 잃지 말아야 하고, 귀는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하며, 얼굴은 미소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정신은 의욕을 잃지 말아야 하고, 몸뚱이는 절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정신력이 나약한 데다가 처량하게 한숨도 덧붙이고 찡등그려진 얼굴도 덧붙인다면 인생은 거기서 끝이다.
적
가까운 인연과 결별하지 마라. 가장 친했던 사랍과 결별하면 가장 무서운 적이 되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면 가장 증오하는 사이가 된다. 한때 나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더 자가 적이 되는 경우는 없다. 반드시 적은 한때 나와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자 중에서 나온다.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는 나의 친구도 적도 아니지만, 나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자는 나와 사이가 좋을 때는 친구가 되지만 나와 결별하여 대립하였을 때는 나의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는 잠재적인 적이 된다. 적을 만들고 싶지 않으면 인연을 맺을 때는 신중히 해야 하고, 일단 인연을 맺었으면 경솔하게 결별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인연과 더 친해지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현상 유지는 시켜 놓아야 적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주 친하게 지냈던 자나 가까이에 두고 부렸던 자와는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결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자와 결별하면 나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치명적인 적이 된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보다는 지금 맺고 있는 인연과 더욱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적을 만들지 않는 또 하나의 비결이다. 새로운 인연이 생겨나면 생겨날수록 과거의 인연에 대해서는 소홀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과거의 인연으로부터는 자연히 원망이나 원한을 사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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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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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김규항·김정란·진중권·홍세화
김규항 에세이
쪽의 거처
이른바 근대 정신의 핵심은 '개인' (나의 주인은 왕이나 신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이고 오늘날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의 헌법에 적혀 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그런 근대 정신을 보장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난 50여년 동안 반공주의 외의 모든 사회적 의견을 빨갱이로 몰아온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건재하고, 이니 3년 전 예술 작품에 대한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얻고도 여전히 예술작품에 대한 온갖 검열이 횡행하는 이 나라를 근대적인 국가라 생각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국민의 정부가 만든 '민주적 검열기구'인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3개월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영화다. 알다시피 등급보류란 지정한 기간 동안 영화를 알아서 가위질 해오게 하는 손 안대고 코푸는 검열장치다. 등급보류는 1∼3개월로 나눠지는데 기간을 나누는 이유는 자를 게 많을수록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예술적 배려' 때문이다(공륜이 공진협을 거쳐 등급위로 바뀐 과정이나 등급보류가 뭔지 조차 모르는 독자는 이쯤 해서 읽기를 중단하고 조종국 기자의 지사적 저널리즘을 되훑어보시길).
어느 시대든 검열자들이 내세우는 두 가지 핑계는 사회 안전과 도덕이다. 우리의 경우 사회 안전은 주로 반공으로 표현되어 왔지만 이젠 그 반공이 얼마나 맹랑한 반공이었는가가 대체로 밝혀진 편이라 새삼 말하기가 욕스럽다. 도덕은 주로 청소년문제로 표현되고 있다. 나는 청소년들에게 추하고 부도덕한 현실을 보이는 일이 그들의 정서 함양에 해가 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이 나라의 성인들은 그들에게 곱고 바른 것을 많이 보여줄 의무가 있다. 문제는 청소년에게 해를 주는 현실이 '예술작품 속의 현실' 인가 '실제 현실' 인가 하는 점이다. 청소년들이 24시간 숨쉬는 실제 현실엔 어떤 도덕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판에, '청소년을 위해' 소설 한 편, 영화 한 편 속의 도덕을 따지는 일이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것은 단지 어젯밤 술집에서 남의 딸을 희롱한 이 나라의 성인 남자가 오늘밤 제 딸이 같은 일을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눈물겨운 부성애에 봉사하는 일일 뿐이다.
나는 아직 <거짓말>을 보지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장정일의 소설을 좋아한 일이 없고(신문을 통해선 그가 존중할 만한 작가임을 확인했지만) <우묵배미의 사랑> 이후 장선우엔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다(특히 그가<거짓말>과 검열문제를 두고 자꾸 색즉시공이니 공즉시색이니 하면서 도사연 하는 일은 마땅치 않다. 그가 선방이 아니라 세상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보길 바라며 그 영화가 이미 사회적 의제가 되어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소한의 계몽적 태도를 보이는 게 예의가 아닐까). 그러나 장정일과 장선우와 그들의 예술작품에 대한 내 입장과 장정일과 장선우와 그들의 예술작품에 가해진 검열에 대한 내 입장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다. 모든 검열의 목적은 한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세력이 그 기득권을 영속화하기 위해 그 사회의 정신세계를 묶어두려는데 있다. 해서 검열은 언제나 한 사회의 정신적 생산물 가운데 가장 앞선, 가장 돌출된 부분만을 대상으로 한다. 뒤집어 말하면 한 사회에서 검열자의 먹이가 되는 정신적 생산물은 (그것이 설사 쓸모 없는 쓰레기처럼 보인다 해도) 그 사회의 정신세계의 확장을 위해 제 몸 태우는 숭고함을 갖는 것이다. 나는 장정일(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지만)과 장선우(그의 태도가 마땅치 않지만)가 가진 예술가로서의 용기를 존경하며 그들의 예술작품<거짓말>(아직 보지 않았지만)을 진심으로 지지한다. 나는 <거짓말>을 시사회장이 아닌 내가 사는 곳 근처의 극장에서 내 돈 내고 볼 수 있기를 원한다.
추신 : <거짓말>은 '세계적'인 베니스영화제에 가 있고 이 글이 독자에게 읽힐 무렵엔 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이 나라의 사대주의 수준으로 볼 때, 이 영화가 상을 받는다면 검열자들은 두 번 쪽팔리게 됐다. '세계적'인 예술작품을 등급보류한 일로 한 번, '세계적'인 예술작품의 등급보류를 더 이상 고집하지 못할 일로 한 번 말이다. 하긴 상을 받든 못 받든 그 빌어먹을 검열에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한 우리도 '세계적'으로 쪽팔리긴 매한가지다. 아, 우리 쪽의 거처는. (99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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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양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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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 -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시인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며 그가 다니던 신학교를 뛰쳐나온 천부적 시인 헤르만 헤세는 정신적 방황과 혼미를 거듭하면서도 주옥같이 아름다운 시와 글을 썼다. 이 작품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수채화처럼 펼친 자전적 소설로, 소년 시절의 즐거움과 슬픔, 희망과 절망을 그의 고향 슈바벤을 배경으로 절실하게 묘사했으며, 엄격한 교육제도 아래서 희생되는 학생들의 창조적 개성을 폭로했다.
동양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작가
<데미안>의 작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헤르만 헤세는 동양인의 심성에 더 어울리는 작가다. 그의 부친은 선교사였고, 모친은 동양학자의 딸로서 인도에서 출생한 경건한 여인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동서양의 정신을 꾸준히 탐색하여 훗날 괴테와 도스토예프스키처럼 노자, 공자, 역선 등을 섭취하여 소위 <세계신앙>이라는 자신의 <도>에 도달했다. 라틴 어 학교를 마친 헤세는 14세에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관비생으로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선천적인 시인의 기질로 판에 박힌 듯한 기숙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이탈했다가, 결국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하게 된다. <시인이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느껴 신학교를 도망쳐나오긴 했으나 시인이 되는 길은 요원했으며 혼미와 우울증으로 자살을 기도하는 등 생사의 기로에서 그는 몇년간 신음했다. 그는 한동안 기계공이나 서점의 점원 노릇을 하며 그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보내게 된다. 그런 중에도 서점의 점원으로 있으면서 괴테나 실러의 문학작품을 탐독할 수 있었던 것은 퍽 다행이었다. 가장 파란이 많았던 이 시절의 자전적 기록이 <수레바퀴 아래서>다.
1904년에 애절하고 체념에 찬 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써서 문단의 호평을 받자 본격적인 작가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그해에 그는 9년 연상인 피아니스트 마리아와 결혼했고, 1906년 발표한 <수레바퀴 아래서>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즈음 그는 스위스오스트리아이탈리아 등을 여행했고, 1911년에는 인도를 여행하여 동양에 관한 관심이 깊어졌다. 1차대전중에는 중립국 스위스에 살면서 군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배격하고 독일의 전쟁포로들과 수용자들을 위한 잡지를 편집하기도 했다. 항상 자기를 <고독자>로 자칭한 헤세는 1919년에 독일을 떠나 스위스의 남단 아름다운 호수 몬타뇨라에 정착하여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은 채 혼자 사색과 창작에 몰두했다. 인간의 위기에 대한 심오한 감성을 지닌 작가로서, 심리학자 융이나 그의 제자들과도 교유했는데 이 영향이 <데미안>에 나타난다. 이 소설은 고뇌하는 청년의 자아인식 과정을 고찰한 작품으로, 당시 곤경에 빠진 독일국민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가정적으로는 불행하여 1919년에 마리아와 이혼하고 1931년에 재혼했다.
1차대전중에는 순수한 휴머니즘 입장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수호하려는 반전논문을 발표하여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의 후기 문학활동은 인간본성의 이중성 탐구에 집중되었다. 1930년에 발표된 <지와 사랑>에서는 기존 종교에 만족하는 지적인 금욕주의자와 자기 자신의 구원 형태를 추구하는 예술적 관능주의자를 대비시켰다. 1946년에 20세기 문명 비판서인 미래소설 <유리알 유희>를 발표하여 동년에 <한 비극적인 시대에 인간성의 깃발을 높이 내세운 시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62년 85세를 일기로 뇌출혈로 운명했다.
내면의 길 추구한 작품세계
이제는 역사 속에서 서서히 멀어져가고 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당시 유럽인들에게 자신들이 이룩한 문명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했다. 애국과 정의라는 미명하에 엄청난 살육이 저질러지는 모습을 보고 양심적인 지식인들을 깊은 고뇌에 사로잡혔다. 헤세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유럽의 불행을 지나친 물질주의 추구로 인한 인간의 자기상실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역설했다. 전쟁이 끝나자 헤세는 이 세계와 인간 모두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기 위해 반성해야 하며,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데미안>을 비롯하여 <싯다르타><황야의 이리>등은 인간의 구도적인 모습을 담았고, <유리알 유희> 등은 일종의 문명비판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는 현대 독일의 양심을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작품에는 줄곧 인간존재의 근원에 도사리고 있는 2원성의 대결, 서유럽 문화의 몰락과 동양적인 신비에의 동경, 영혼의 자유와 인간성의 고귀함 등이 나타나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인간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는 양면성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다 같이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통일과 조화로 이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연에 사랑과 지극히 서정적이며 전원적인 시풍으로부터 출발한 그의 문학은 인간의 본질을 추구하여 <내면으로의 길>을 걷고 있는 구도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의 삶의 내실이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한다. 그것은 제한된 시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도정이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헤세는 내면으로 가는 길을 발견하고, 뜨겁게 침잠하며 지혜의 핵심을 예감한 사람이었고, 자기 영혼과의 대화를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후기에는 동양사상에 심취했는데, 이는 가정환경과도 무관하지 않으나 인간의 삶을 자신의 내면의 성찰로 본 그의 인생의 목표 때문이리라.
<데미안>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불안하고 혼란한 청춘기의 고뇌와 방황을 그린 작가 자신의 젊은 날의 초상화다. "자신은 자신으로부터 우러나온 삶을 살고자 한 것뿐인데 그것이 왜 이다지도 어렸웠던 것일까"라는 주인공의 절규는 패전으로 실의에 빠진 독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영혼을 상실한 구시대가 무너지면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는 이 소설의 테마는 작가 자신과 유럽 문명이 거듭나기 위한 진통의 기록이다. 제2차대전 당시 독일 전몰학도의 배낭 속에서 흔히 발견되었던 책이 이 소설이었다고 한다.
<싯다르타>
<데미안>에서 이런 진통을 겪은 헤세가 찾은 세계가 바로 자아의 발견과 인간의 구원이라는 근본문제를 다룬 것이 이 작품이다. 가정적으로 인도와 인연이 있었던 작가는 동양사상과 불교사상에 나름대로의 이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석가모니라는 한 인간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고난에 찬 역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유리알 유희>
<유리알 유희>란 모든 문화의 내용으로서 행해지는 유희이다. 일종의 정신문화사적 미래소설로 20세기 전쟁의 와중에서 정신적 권위를 되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난다. 교양인들에 의해 종교적인 이상향이 건설되고 여기서 인류문화가 총집대성되어 영재교육을 실시한다. 얼핏 이 작품은 시공을 초월한 가공의 이야기 같지만, 20세기 문화에 대한 비판과 헤세가 도달한 최고의 지성이 담겨 있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
이 작품은 학교와 사회의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하다 결국에는 서서히 죽어가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학교제도의 불합리성을 질타하는 작가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 책에서 나타난 당시의 경직화된 학교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교육의 현실에 하나의 좋은 시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00년경, 남부독일의 작은 동네 중개업자인 요제프에게는 재능있는 아들 한스가 있다. 이런 시골에 재능있는 아들이 태어나면 으레 그 장래는 정해져 있다. 매년 시행되는 주의 시험에 합격하여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가 되든가, 아니면 국비로 교사가 되는 길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소년다운 놀이를 즐길 여유가 없었고 오로지 공부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소년 한스도 예외가 아니어서 숨돌릴 틈도 없이 공부에만 쫓기고 있었다. 이 머리 좋은 소년을 엘리트 코스로 보내는 것이 그의 부모는 물론, 목사님과 학교 선생님들의 희망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관문인 주 시험에 그는 2등으로 합격한다. 드디어 마울브론의 신학교에 진학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에 대한 대가로 여름방학 첫날 그는 낚시대를 메고 강으로 가서 수영도 하고 낮잠도 잘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한스는 소년시절로 돌아가 즐겁게 놀았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이틀을 가지 못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따기 위해 방학동안에도 밤늦게까지 히브리 어나 그리스 어를 공부하여야만 했다. 기숙사 제도로 운영되는 신학교 생활은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시인 기질이 있는 주인공 한스는 권위를 싫어하는 천재적인 소년 헤르만 하이르너와 친밀한 우정을 나눈다. 하이르너는 비정스러운 교육의 수레바퀴에 힘껏 반항했지만 한스는 자기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하이르너를 배반하고 만다. 얼마 뒤 하이르너는 신학교의 속박에 대한 반항심에서 탈출해버리고 만다. 친구의 탈출을 본 한스의 영혼은 고뇌로 가득 차게 된다. 주의력은 흩어져 산만해지고 신경쇠약의 증세를 일으켜 거의 폐인이 된다. '갸름한 소년의 얼굴에 떠오른 멋적은 미소의 그늘 속에 메말라가는 한 영혼이 고뇌하고 무서움에 떨며 절망적으로 주위를 살피는 모습'을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고 심지어 신학교 선생님들조차 무관심하다. 결국 의사와 교장의 편지를 간직하고 실망에 빠진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너무 큰 상처를 받은 두뇌는 집에 갔어도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 빈둥빈둥 지낸다. 과실주를 담그는 가을 날, 그는 처음으로 엠마라는 연상의 여인에게서 매력을 느끼게 되고 몇 차례 짜릿한 키스의 경험을 한다. 그러나 엠마는 갑자기 한스의 곁을 떠난다. 엠마에게는 진실한 사랑이 아닌 장난기 어린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실의에 빠진 한스는 부친의 권고에 따라 기계공이 되기 위해, 대장간 견습공이 된다. 지금까지의 괴로움도 희망도 버리고 그는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채 일터에 나갔다. 그는 노동의 기쁨과 괴로움을 그제서야 터득했다. 어느 일요일 날 한스는 학교동창이며 이제는 어였한 기계공이 된 아우구스트와 함께 들놀이를 갔다. 한스는 처음으로 맛보는 맥주에 취해 곤드레만드레가 되었다. 그 놀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스는 죽음의 그림자에 이끌려 나골트 강에 몸을 던진다. 장례식 날 옆집 구둣방 주인은 선생들을 가리키며 "저기 가는 놈들도 한스를 이런 지경으로 만드는 데 조력한 거야"라고 말한다.
비인간적인 교육제도에 경종
이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의 학창시절의 경험을 집요하게 되새기면서 편협한 학교제도야말로 재능 있는 젊은이를 좌절케하는 장본인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력을 억압하고 위축시킴으로써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되며, 자아의 붕괴를 가져오는 그런 명령과 규범, 의무와 학습내용에 질식해버리고 만다. 학생들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나 교사들에 의해 강요된 교육이라면 결국 바퀴 밑에 깔린 것처럼 그들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테마인 이 소설은 출간 즉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그때까지 가정과 학교에 팽배해온 현대의 교육관과 교육제도에 경종을 울려주었다. 대학입시만을 강요하고 학생들의 창조적 능력개발을 소홀히 하는 현대의 비인간적 교육행태 때문에 이 작품은 여전히 교육서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그의 작품은 그 자신이 걸어갔던 삶의 과정의 반영이다. 그 과정이란 어린이의 순수함과 평화로움에서 성년의 방황과 절망에 이르는 길고 긴 도정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은 헤세만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가 걸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순탄하지만은 않은 인생 길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차츰 좌절을 경험하게 되며, 이 세계의 윤리와 가치에 회의를 지닌 채 미망의 길로 빠져든다. 헤세의 경건하고도 매우 비판적인 정신은 소위 20세기의 잡문문화시대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전 우주와 자아가 합일되는 것을 느끼며, 밝고 어두운 세계 등 부조리한 인생의 수많은 대립을 모두 긍정하는 전일적 인생론을 설교한 헤세는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많은 구원의 책을 선사하여 큰 기쁨과 위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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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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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분별심
두 승려가 자기 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설 무렵 두 승려는 어느 냇물에 이르렀다. 그때 한 처녀가 냇가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을 보자 나이 많은 승려는 얼른 눈을 감아 버렸다. 계율을 잘 지키기로 이름난 그는 자신이 색정에 휘말리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이러한 난관을 모면하기 위해 선배 수도승은 눈을 감고 먼저 개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율을 잘 모르는 신출내기 젊은 수도승은 그 처녀에게 물었다.
"왜 여기 서 있지요? 금방 어두워질 텐데. 더욱이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란 말이오."
처녀가 대답했다.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무서워서 그러니 좀 도와주세요."
마침 장마 끝이라 물이 많이 불어 있었던 것이다. 그 젊은 승려는 이렇게 말했다.
"물이 깊으니 제 등에 업히시오."
먼저 개울을 건넌 나이 많은 승려는 뒤를 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수행승이 여자를 등에 업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매우 당황하였다. 그의 마음을 재빨리 돌아갔다. '이것은 죄다.' 사실 그는 죄의식을 느꼈다. 자신이 선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는 젊은 수도승을 말렸어야만 했다. 이것은 명백한 죄이며 그 자신은 이것을 큰스님에게 고해야 한다. 개울을 다 건넌 젊은 수도승은 그 처녀를 내려놓고는 선배 수도승과 함께 절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절까지는 아직 3,4리가 남아 있었지만 선배 수도승은 화가 나서 아무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그들은 계속 말없이 걷다가 마침내 절 입구에 이르렀다. 그때야 선배 수도승이 입을 열었다.
"자네 오늘 큰 잘못을 저질렀네. 그것은 금지된 짓이야." 젊은 중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는지요? 저는 계속 침묵을 지켰습니다. 저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걸요." 선배 중이 말했다. "개울에서 여기까지 함께 걸어오는 동안을 말하는 것이 아닐세. 자네가 개울에서 업어준 그 처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일세." 그러자 젊은 중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처녀를 내려놓았는데 스님은 아직도 그 처녀를 업고 계시는군요."
- 참다운 신비주의자는 어떤 분별심도 품을 수 없다. 에고는 벽이다. 마음이 없으면 나눔도 없다. 모든 존재는 비이원적이다. 거기에는 어떤 분별도 없다. 그것은 전체이며 하나다. 그것은 조화이며 거기에는 어떤 경계도 없다.
지혜로운 사람
델피 신탁은 소크라테스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그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 기뻐하십시오. 신탁에 의하면 소크라테스,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랍니다." 소크라테스는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돌아가서 다시 물어 보라. 분명히 착오가 있을 것이다. 내가 어찌 지혜로운 사람이란 말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인데 어찌 내가 지혜로운 사람이란 말인가? 실수를 한 것이니 다시 가서 신탁을 청해 보라." 그들은 다시 델피 신전으로 가 물었다. "소크라테스 본인이 그 사실을 인정치 않고 있으니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그는 자신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합니다. 그는 진정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이고 자신에게는 오직 그 사실만이 분명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탁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점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선언한 이유다. 진정으로 현명한 자만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자신이 알고 있음을 주장한다. 주장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감출 수 있다.. 그대 자신이 바보라는 느낌이 들거든 기뻐하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본 사람만이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은 있지만 이제 그 어리석음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어리석음을 지켜볼 수 있다면 그대는 그것에 더 이상 빠지지 않는다. 깨어 있도록 하라. 그러면 누구나 자신이 바보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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