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편지】: 제748호
단기 4343 / 서기 2010. 5. 10 (음력 3. 27)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한자가 「 ? 」 로 표시되어 보이지 않는 경우 누리집에 오시면 어떤 한자인지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
문예소식 |
|
|
제12회 여수해양문학상 작품공모
바다 그리고 꽃과 빛 새 희망 큰 여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문예작품을 현상 공모 합니다 공모기간 : 2010. 4월 ~ 8월 31일 ※ 마감당일 소인분까지 유효. 응모자격 : 여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응모할 수 있음 주 제 가. 아름다운 여수의 이미지 홍보에 기여할 수 있는 내용 나. 여수의 호국문화와 관광 및 해양 도시로 여수의 미래가 제시된 내용 다. 해양 여수의 꿈과 새 희망 큰 여수를 구현할 수 있는 내용 공모 장르 및 분량 가. 시 : 5편이상 나. 소설 : 200자 원고지 100매 내외 응모요령 가. 응모원고 말미에 본명 및 주소, 전화번호를 반드시 기재함. 나. 응모작은 순수한 본인 창작품이어야 하며 응모봉투에『여수해양문학상 응모작품』이라고 명기함. 다. 당선작 저작권은 당선작 발표일로부터 5년간 여수시가 보유하고 그 이후는 작가에게 귀속됨. 심사 및 시상 내역 가. 심사위원은 한국문인협회 문인을 중심으로 위촉하고 당선작 발표시 발표함 나. 당선작은 개별통지하며, 제12회 여수해양문학상 수상작품집에 발표함 다. 시 부 문 : 대상 1명(300만원), 우수상 1명(100만원), 가작 1명(50만원) 소설부문 : 대상 1명(300만원), 우수상 1명(100만원), 가작 1명(50만원) 라. 시상일자 : 2010년 10월경 여수진남문예회관 원고접수처 550-200 전남 여수시 문수동 454-1번지(2층) 한국문인협회 여수지부 ☎ 016-651-4176 550-833 전남 여수시 돌산읍 강남로 56 여수시청 문화예술과 ☎ 061-690-2227 한국문인협회 여수지부
|
|
|
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
|
결백한 자와 미인은, 시간 이외에는 적이 없다.(예이츠)
|
|
|
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
|
라면
우리나라가 예전에 쌀이 모자랄 때 정부에서 혼식과 분식을 장려했던 적이 있다. 그때 처음 나와 퍼진 것으로 라면이 있고, 예나 지금이나 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군인들은 비닐봉지 안에 라면과 스프를 풀고 뜨거운 물을 부어 간단히 설익혀 먹는 간식으로 즐기기도 한다.
원래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무렵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라면은 일본의 국수요리로서, 돼지뼈, 닭고기, 채소, 멸치 따위를 우려낸 국물에 양념을 하고 중국식 면을 넣고 삶아 끓여 먹는다. 라면의 원조인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지역과 가게마다 색다른 라면을 만들어 팔고 있고, 역시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라면이 인기가 있어 결국 즉석라면이 만들어졌는데, 최초의 즉석라면은 1958년에 안도 모모후쿠라는 일본인이 발명한 ‘치킨라멘’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원래의 일본 국수요리보다 먼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라면이라 하면 국수요리가 아닌 공장에서 만든 즉석라면을 가리키게 되었다.
‘라면’이라는 말은 일본말 ‘라멘’(ラㅡメン)을 어원으로 삼고 있다. 일본말에서는 ‘라멘’이 ‘拉麵’이라는 한자를 어원으로 취하고 있는데, 이 한자를 읽은 소리가 ‘라멘’이다. 그리고 ‘차우면’(炒麵), ‘기스면’(鷄絲麵)과 같이 국수요리를 이르는 ‘麵’은 우리 한자음인 ‘면’으로 바꾸어 읽는 습관 때문에 ‘라면’이라 일컫고 있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관
안 빠뜨리는 하늘그물(천망회회 소이불루)
“하늘그물이 넓어서 성기어도 빠뜨리지 않는다”(천망회회 소이불루)고 함은 <노자>에 있는 구절이다.
“할 수 있는 일에 날래면 곧 망하며, 할 수 없는 일에 날래면 곧 산다. 이 둘은 어쩌면 이롭고 어쩌면 해롭나니, 하늘이 꺼리는 일, 누가 그 까닭을 알랴. 이를 가지고 성인들도 오히려 어려워한다. 하늘의 길은 다투지 않고도 잘 이기며, 말하지 않고도 잘 응하며, 부르지 않고도 스스로 오며, 느슨하면서도 잘 해낸다. ‘안 빠뜨리는 하늘그물’이다.”
노자는 “현상은 길의 한쪽을 나타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여긴 것이 ‘부드러움이 센 것을 이긴다’이다”라고 썼다.
여기에서 그는 현상으로서의 행위를 부정하여 무위(사람이 이루지 않은 자연 그대로)야말로 참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소극적인 유약(무르고 약함)이 적극적인 강강(굳세고 강함)을 이긴다는 논리가 이루어진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일반 통념의 역(거꿀)이야말로 참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노자의 말은 대강 다음과 같은 뜻이다.
“끝까지 통크게 해내려고 하면 몸을 망치게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면 몸을 보전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태도의 하나는 이롭고 하나는 해롭다. (중략) 느긋하게 늘어져 있는 것 같지만 충분히 계산되어 있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커서 눈이 성기어도 무엇 하나 놓치지 않는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정육점과 푸줏간
정육점(精肉店)과 푸줏간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따위를 파는 곳이다. 여기서 정육은 지방이나 뼈 따위를 발라낸 살코기를 말한다. 푸주는 한자어 ‘포주(廚)’에서 왔다.‘포()’는 소나 돼지 등을 잡는 곳,‘주(廚)’는 잡은 고기를 요리하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지금은 고기를 사기 위해 대부분 정육점을 가지만 예전엔 푸줏간을 찾았다.
~같이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같이’를 ‘쟁반’에 붙여 썼다.‘이/가’처럼 조사여서 앞말에 붙여 쓴 것이다.‘같이’는 ‘비슷하게’,‘∼처럼’의 뜻이다.‘처럼’과 바꾸어 쓸 수 있다.‘새벽같이, 매일같이’에서 ‘같이’는 ‘새벽과 매일’을 강조한다.
‘그와 같이 걸었다’에서는 ‘서로 함께’라는 의미의 부사로 쓰였다. 그래서 띄어 썼다.
아무럼 / 아무렴
축구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조차 열광하게 만드는 월드컵. 내로라하는 선수들의 활약상에 설레는 축구광뿐 아니라 경기보다는 잘생긴 선수들 보는 재미에 푹 빠진 이에게도 90분은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축구 보는 방법이야 아무럼 어떠랴? 축제는 즐기는 자의 몫이다.
있기 어려운 경우, 상태를 가정하거나 어떤 사실에 대한 확신을 반어적인 의문문으로 나타낼 때 흔히 '아무럼' 대신 '아무렴'을 써서 표현한다. "세계 축구계의 복병으로 떠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저조한 성적이 아무렴 '펠레의 저주' 때문이겠어요?" "붉은색 옷만 입으면 됐지 응원복의 모양이야 아무렴 어때요?"와 같이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이때는 '아무럼'이라고 써야 맞다. 아무러하다의 활용형인 '아무러하면'이 줄어 '아무러면'이 되고, 이 말이 또 줄어 '아무럼'이 된 것이다.
'아무렴'은 '아무려면'의 준말로 말할 나위 없이 그렇다는 뜻의 감탄사다. 상대방의 말에 강한 긍정을 표시하는 것으로 '아무럼'과는 구별해 사용해야 한다. "아무렴, 우리나라가 이기고말고, 네 말이 백번 옳아" "아무려면, 네 마지막 소망이라는 데 들어줘야지"처럼 쓰인다.
부락, 마을, 동네
지난해 일본 교토의 강제 징용 한인촌인 우토로 마을이 사회문제가 됐다. 우토로는 1941년 일본의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 징용된 한인과 그 후손 약 200명이 모여 사는 마을인데, 현 토지 소유권자와 전 소유권자 간의 법적 다툼으로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처지가 된 것이다.
일본인들은 이 마을을 '우토로 조선인 부락'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부락(部落)'은 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일컫는 말이다. 고려시대의 특수 행정지역으로 천민 거주지를 의미하는 '향, 소, 부곡'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런데도 "분청사기를 재현하려는 예술가들이 계룡산 자락에 부락을 이뤄 땀을 쏟고 있다"처럼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일제시대에 그들이 의도적으로 쓰기 시작한 이 단어를 우리말인 '마을'이나 '동네' 대신 사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어사전에도 '부락'을 '마을'로 순화해 쓰도록 해 놓았다. 지금은 사용 빈도가 줄어들고 있지만 '부락'의 본래 뜻이 좋지 않고 일본식 한자어인 만큼 바꿔 쓰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
|
|
문학나눔 → 우리나라 |
|
|
생각은 감자 비린내처럼 강하다 - 이선영
유감스럽게도 나는 단단한 호두껍데기가 못된다 비록 호되게 깨지는 순간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혼자 실없이 터져버리는 무른 연시다 껍질이 갈라지고 그 틈으로 비죽비죽 속살이 터져나온 형편없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라 나는 총알 같은 고추씨를 입안에 꾹 물고 있는 매운 고추가 되고 싶다 그런데 이 물러터진 감인 내가 붉고 딴딴한 단감으로 변하는 신통한 때가 있다 생각이 미혹의 꽃을 들고 나를 찾아오는 때다 생각은 감자 비린내처럼 강하다 생각은 나를 하나로 모은다 하나의 꼭지점으로 몰려드는 몇 개의 부챗살이나 바퀴살 볼록렌즈 안으로 달려들어 종이를 태우고야 마는 햇빛 줄기들처럼
내가 생각하는 동안은, 참으로 조심스런 손길이 아니라면, 내 팽팽히 당겨진 생각의 현을 함부로 튕기지 말아라 그대로 성난 화살이 되어 날아갈지 모르니 나는 시커멓게 솟아오르는 굴뚝연기가 되고 붉으락푸르락 낯빛을 바꾸며 타오르는 불꽃이 된다 나에게 잘못 손대면 이 뜨거움에 손이 데일 것이다 새파랗게 날선 생각이 섞여 들어온 피들을 속속들이 뒤져 뽑아낸다 그 많은 피들만으로도 생각은 한 볏단이다 잠조차 생각으로 잔뜩 불그레한 나를 곤히 재우지 못한다 생각하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 나보다 강하다 무섭다 겁 없이 앞서 나간다 나의 생각은
비릿한 감자 내음처럼 강하다 온통 네 생각뿐인 나의 생각
|
|
문학나눔 → 현대시조 |
|
|
저녁강물은(8) - 전성렬
어디 없을까 발목이 시리도록
저녁강 물소리 따라 수평 끝에 닿는 날
칠흑의 밤바다 이어도 가슴 나눌 풀잎 하나.
|
|
|
|
문학나눔 → 이글저글 |
|
|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이야기 - 김형균 엮음
1. 신비한 세계로의 여행
기적의 성자
1926년 11월 23일, 인도의 한 마을에서 샷차 나라야나라쥬라는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 그날 온마을엔 꽃향기가 진동했고, 아이의 요람 앞에는 흰 뱀이 나타났다. 인도 사람들은 흰뱀을 하느님의 사자라고 믿고 있었다. 샷차가 크면서부터 샷차의 부모들은 샷차가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른 것을 걱정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샷차야, 배고프지 않니? 어서 이 고기를 먹거라." 샤차의 어머니가 말했다. "싫어요. 어머니. 전 고기는 벅지 않겠어요."
샷차는 어머니에게 대답하고는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걸인 한 사람을 데려왔다. 어머니가 놀라 물었다.
"샷차야, 도대체 무슨일이냐?" "어머니 제가 먹을 고기를 이 사람에게 주십시오. 이 사람은 무척 배가 고플 겁니다."
그런 후로 샷차는 걸인이나 부랑아들을 매일 집에 데리고 와서 음식을 대접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아침 일찍 등교해서 기도를 올리고, 친구들이 잃어버린 물건을 신통하게 찾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샷차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다. 샷차가 13세 때의 어느날, 샷차는 하룻밤 동안 정신을 잃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야 겨우 깨어났다. 그날부터 샷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시를 암송하고, 배운 적이 없는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의 귀족언어)를 유창하게 했다. 또 샷차는 친구들을 모아 놓고 신의 말씀을 들려 주었다.
"어느 때나 신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셔." 샷차의 말을 듣고 한 소년이 물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행복해지지 않니?" 그러자 다른 한 소년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우리집은 늘 가난한 걸." 그 소년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이것 좀 봐. 난 이 옷을 갈아입은지 1년이 넘어. 새옷이 입고 싶은데 말야." 샷차는 그 말을 듣고 자기의 가방에 손을 집어 넣었다. 놀랍게도 가방에선 새옷 한 벌이 나왔다. 소년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소리를 질렀다. "자, 이건 신이 네게 주시는 선물이야. 신은 너처럼 착한 아이는 버리지 않으신단다."
그 소년이 옷을 건네받자 다른 아이들이 앞을 다투어 샷차의 가방을 빼앗아 열어보았다. 가방은 텅 비어 있었다. 한 소년이 울상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에이, 아무 것도 없잖아. 난 연필을 하나 갖고 싶었는데."
샷차는 그 말을 듣자마자 팔을 쭉 펴서 들어올렸다. 그랬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샷차의 손 안에 연필이 척 생겨났다.
"와! 와!" 소년들이 샷차를 빙 둘러싸고는 다같이 외쳤다. "샷차가 최고다! 샷차가 최고다!"
그후부터 샷차는 공중에 손을 들어올려 물건을 만들어내는 기적을 자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샷차의 부모는 그런 샷차를 보고 악마가 붙었다고 걱정하면서 샷차에게서 악마를 물리치겠다고 했다. 부모님은 샷차가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감시를 했다. 어느 날 샷차는 몰래 집을 빠져 나와 거리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신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안 샷차의 아버지는 화가 잔뜩 나서 샷차를 찾아왔다.
"대체 넌 누구냐?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네 정체를 밝히어라." 샷차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다. "저는 사이 바바입니다." 샷차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 중 한 노인이 놀라 물었다. "네가 사이 바바라고? 그 성자께선 돌아가신 지 벌써 오래 됐는데." 노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성인께서는 1918년 돌아가시면서 8년 뒤에 다시 태어나겠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샷차 네가 태어난 해가 1926년이니까...... 오, 맞구나! 그렇다. 그분께서도 공중에서 물건 만드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으니 네가 그럼......"
노인은 얼굴이 벌겋게 되었다. 노인은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샷차에게 정중히 절을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누군가가 샷차에게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는 걸 보여주시오." 그러자 샷차가 쟈스민 꽃을 들어 그것을 단상 위로 던졌다. 꽃은 놀랍게도 '사이 바바'라는 꽃문자를 만들었다. 그후부터 샷차는 사람들에게 사이 바바라고 불리웠으며, '성자'라고 숭배를 받기 시작했다. 샷차의 소문을 듣고 사이 바바의 신자들이 샷차를 찾아왔다. 샷차는 그 신자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아맞췄다. 또 사이 바바는 신비한 재를 만들어 병에 넣어 두기도 했다. 신자들은 이 재를 '성스러운 재' 라고 불렀는데 이 재를 병자들이 먹으면 모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또 사이 바바는 모래밭에서 달콤한 물을 가져오는 기적을 보엿다. 그것을 마신 사람들은 모든 괴로움을 잊었다. 또 그는 여러 가지 보석과 메달 등을 공중으로부터 꺼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메달의 앞면에는 샤니 사이 바바 상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세계의 창조를 의미하는 도안이 그려져 있었다.
사이 바바처럼 먼 곳에서 물건을 끌어올 수 있는 초능력자들이 더러 있다. 흔히 마포츠(물건 끌어오기)라 불이우는 이 현상을 행한 대표적인 사람으로 오스트리아의 베레라는 사람이 있다. 베레는 먼 바다로부터 물고기를 끌어오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사이 바바의 경우는 물건을 어디서 끌어오는지 알길이 없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사이 바바가 물건을 가져오는 공간은 '사이의 창고'라고 부른다. 사이 바바는 또, 깜짝 놀랄만한 예언을 했다.
"제가 할 일은 인류를 고통으로부너 구해내는 일입니다. 저는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21세기에 프레마 사이 바바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과연 그의 예언은 들어맞을 것인가? 아마도 그것은 21세기에 태어날 프레마 사이 바바를 다시 만나 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
|
|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
|
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강박관념
어떤 남자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 그 남자는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장이 자기에게 어떤 말을 하면 그 말이 별 것이 아닌데도 그는 곧 화가 나고 구두를 벗어 사장을 때려 넘어뜨리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자기 사장을 때릴 수 있겠는가? 가끔 자기 사장을 때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욕구가 일지 않는 고용인은 드물다. 어쨌든 그 남자는 사장을 때리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며 지냈다. 그런데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고,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사장을 때려 눕힐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 그래서 그는 구두를 집에 두고 회사에 다녔다. 그러나 구두를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사장을 볼 때마다 그의 손은 자기도 모르게 발로 내려갔다. 그러나 다행히도 구두를 집에 두고 왔다. 자기가 어느 날 흥분하여 구두를 벗어 사장에게 냅다 던질 것 같았기에 맨발로 있는 것이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그는 단지 구두를 집에 벗어두는 것만으로는 구두로부터 자유로와지지 않았다. 구두는 늘 그의 마음속에 자리했다. 펜을 들고 있을 때는 물론이고 쉬는 시간에도 종이에 구두를 그렸다. 그의 생각은 온통 구두로 꽉 찼고, 언젠가 자신이 사장을 공격하게 될까바 매우 두려웠다. 그는 가족들에게 아무래도 직장을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그의 심리상태는 자기 자신의 구두가 필요없을 정도까지 되었다. 사장을 때리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의 구두라도 집어들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제 그의 손은 동료들의 발을 향해 뻗치기까지 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의 가족들은 정신과 의사에게 벌써 진찰을 받아 보았어야 될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던 것이다.
의사는 그의 병세가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며,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그에게 사장의 사진을 집에 걸어놓고 매일 아침 구두로 다섯번씩 치도록 했다. 출근 전, 어떤 종교적인 의식을 행하듯 그 사진을 쳐야하고, 게다가 단 하루도 빠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아침 기도처럼 매일 해야 하며,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뒤에도 그 행위는 되풀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의사의 치료법을 다 듣고난 후, 이 무슨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하고 생각했다. 그는 의사의 착상에 놀랐으나 매우 만족스런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사진은 걸려졌고 그는 지시받은 의식을 시작했다. 첫날, 사진을 다섯번 구두로 후려친 후 회사에 출근한 그는 이상야릇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사장에 대하여 전처럼 화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2주일 내에 사장에 대하여 매우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게 되었다. 사장도 그의 변화를 알아챘다. 물론 무슨 일이 행해지고 있는지는 몰랐다. 사장은 그에게 최근에 매우 예의 바르고 친절해졌다고 말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제발 그것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다시 뒤죽박죽 혼란스러워지게 될 테니까요. 죄송합니다만 정말 말할 수 없습니다."
- 이 이야기 뒤에 숨어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사진을 걸어놓고 마음껏 때린다고 해서 실제로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렇다. 사진을 침으로써 사장을 구두로 떄리고 싶다는 가 남자의 강박관념이 간단히 해소되어 없어진 것이다. |
|
|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
|
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6장 내 마음의 향기
호감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사고 싶으면 그가 싫어하는 행동을 보이지 마라. 불쾌한 감정은 그가 좋아하는 행동을 보여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싫어하는 행동을 자꾸 보이기 때문에 생긴다.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사고 싶다면 그가 좋아하는 행동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기에 앞서 싫어하는 행동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불쾌한 감정이 쌓이는 것은 그가 좋아하는 행동을 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싫어하는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고, 싫어하는 행동을 자꾸 보여서 불쾌한 감정을 심어 놓으면 그의 관심권에서 점점 멀어지고 만다. 모든 사람은 특별히 해만 받지 않는다면 적대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비록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해 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실어하는 행동만 보이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자신이 꺼려하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견디지 못한다. 친절은 만 번을 받아도 그 고마움을 생각지 않으면서 불친절은 한 번을 받아도 그 허물을 생각하며 냉정히 얼굴색을 바꿔 버린다. 사람들의 관심은 옳은 행위보다는 그른 행위에 쏠린다. 그 동안 옳은 행위가 지속되어 왔더라도 그른 행위가 돌출되면 지금까지 가였었던 좋은 감정을 불쾌한 감정으로 바꾸고 만다. 바로 이 같은 심리 때문에 싫어하는 행동이 개입되면 호감을 얻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 동안 애써 호감을 얻어 놓았더라도 싫어하는 행동을 자꾸 보이게 되면 눈에가시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무소유
나그네 인생에 무슨 짐이 그리도 필요하느냐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당장 집 칸이라도 없으면 서럽고 주머니에서 동전 소리라도 나는 날이면 여기저기서 무시당해야 하나 어찌하는가. 인생 무상하다는 말도 맞고, 죽으면 10원짜리 하나 가져가지 못한다는 말도 의심없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데 없으면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고, 죽으면 숟가락 몽둥이 하나 가져가지 못하고 모두 놓아두고 가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들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물질의 세계에서 물질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곧바로 소외를 뜻한다. 남보다 하나라도 적게 가지면 기죽어 살아야 하는 현실은 냉엄하게 보통 사람들을 속박한다. 나체촌에서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정신나간 사람이 되듯이, 물질의 세계에서는 물질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 바보가 되기 때문에 물질을 가지려고 고역을 치르며 살아가는 것이다. 산사람처럼 배낭 하나가 삶의 전부이고, 스님네처럼 장삼 한자락이 소유의 전부인 삶을 보통 사람들은 살 수 없다. 스님네야 누더기 걸치고 있어도 역시 스님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누더기 걸치고 있으면 거지가 되고 만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의 무소유는 분수를 지키는 것이라 할 것이다. 분수에 맞게 가지고 분수에 맞게 놓아주어 부족함도 넘침도 없는 삶이 바로 보통 사람들의 무소유 삶이 아닐까? |
|
문학자료 → 수필 |
|
|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김규항·김정란·진중권·홍세화
김규항 에세이
칭찬의 가족사
전북 태인이 고향이지만 아버지가 군인(공군 하사관)이었던 탓에 셀 수 없이 이사를 다녀야 했다. 전라 경상 충청 경기 할 것 없이 남한에서 비행장 있다는 고장은 다 살아 봤고 그 고장에서도 이런저런 형편 때문에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했으니 기억하는 이사 횟수만 스무 번은 넘는다. 여섯 살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살았던 대구는 매미가 다닥다닥 붙은 사과나무의 환영과 가슴 아린 첫사랑(!)의 추억으로 남은 곳이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가족을 가리켜 말하곤 했다. "김상사 네는 전라도 사람 같지 않아." 그 희한한 칭찬은 어린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그런 '칭찬'의 반복은 나로 하여금 전라도 사람이 어떤 큰 죄를 가진 사람인 모양이다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아버지에게 그 일을 따져 묻는 게 예의가 아니고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알아챘음은 물론이다. 말하자면 나의 성장 과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게 뒤집힌 건, 스무 살 무렵이다.
머리는 텅 비고, 반항기만 가득했던 내게 반역으로 점철한 전라도의 근현대사가 갑자기 다가왔다. 머리통을 동학농민전쟁의 역사로 채워가며 나는 난생 처음 겪는 지적 체험에 감격했다. 내 어린 시절 눈에 담았던 그 산과 벌판, 그리고 내가 걷던 길들이 그대로 동학군의 땀과 피가 서린 곳이었다니, 와. 그 뒤로 나는 전라도 사람임을 자랑하게 되었다. 묻지 않아도 내가 전라도 사람임을 밝혔고, 특히 전라도 출신을 꺼릴 법한 상대나 자리라면 반드시 내 고향을 밝혀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려하곤 했던 것이다. '피해 지역'의 지역 감정도 좀더 엄격하게 조절되어야 한다는 깨우침을 얻은 건 최근이다. 시사잡지 기자인 B는 처음 만난 술자리에서 대뜸 내 글 칭찬을 했다. 문장을 인용까지 해가며 하는 소리라 빈말은 아니었지만, 사람들도 많고 해서 점잔빼고 앉았다가 대신 고향을 물었다. 말씨로 보아 전라도 사람이 분명했기에 그걸 확인해서 우호감을 나누려는 수작이었다. "몰라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B는 정색을 하며 대답을 거부했다. 한참 후 다른 곳으로 술자리를 옮긴 후에야 나는 아까의 일을 물었다. "짐작대로 나는 광주가 집이고 얼마 전엔 5.18 보상금도 받았다. 하지만 전라도 사람끼리 배타적으로 뭉치고 하는 건 딱 질색이다."
전라도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이 나라의 지역 문제는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앉은 듯 싶지만, 그럴수록 이 나라가 단일 민족인 건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고향 좀 다른 것 가지고도 이렇게 못 잡아먹어 난리인 사람들이 인종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몇 년 전 르완다에선 인종청소로 100만이 죽었고 오늘 유고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니할 말로 이 나라가 여러 인종이었다면 진작에 수백만은 죽어나가고도 남았을 테니 말이다. 전라도 문제는 빼고라도, 연변 동포에게, 굶주리는 북한 인민에게 한국인들이 보이는 야비함을 보라.
어릴 적 대구에서의 '희한한 칭찬'을 들려주었다. 매우 정열적이었던 증조할아버지는 만주를 거쳐 일본에 건너간 식솔들을 불러들였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살았다. 동네사람들(일본인들)은 아버지 가족을 가리켜 말하곤 했다. "김상 네는 조센징 같지 않아." 해방되던 해 아버지 가족은 연락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해가 바뀌도록 급우들(한국인들)로부터 매를 맞아야 했다. 급우들은 아버지를 가리켜 말하곤 했다. "죽어라, 쪽발이 새끼." (99년 4월) |
|
|
문학자료 → 동서양고전 |
|
|
동서고전 200선 해제 3 - 반덕진
음향과 분노 The Sound and the Fury - 포크너(W. Faulkner, 1897~1962)
이 작품은 20세기 초 미국 남부 귀족사회의 명문인 톰슨 가의 붕괴를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의 영향을 받은 포크너가 그 특유의 기법으로 그린 소설이다. 혈육지간의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네 사람의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법으로 구성된, 인간의 심층심리를 고도의 기법으로 파헤친 작품으로 난해하지만 읽어 낸 데 대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준다.
"잃어버린 세대"의 작가
헤밍웨이와 함께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포크너는 미국의 미시시피 주 뉴올버니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1902년 미시시피 주립대학이 있는 옥스퍼드 시로 이사하여 생애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의 집에는 디킨스 등을 비롯한 영국 고전이 상당히 소장되어 있었다. 그는 정상적인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는 대신 닥치는 대로 독서를 하여 상상력을 키워 나갔다. 당시 이웃집 소녀인 에스텔 올드햄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생각으로 할아버지의 은행에 근무했다. 그러나 에스텔은 후에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동양으로 떠났다. 한편 또 다른 이웃이었던 필립 스톤이 그 가족의 법률고문이 되면서 그의 독서에 조언을 해주었고, 옥스퍼드에 알려져 있지 않던 상징주의나 모더니즘 전통의 많은 책들, 예를 들면 보들레르, 베를렌, 말라르메 등의 작품을 소개해 주었다. 그는 또한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엘리어트 등의 글도 읽었다. 1918년 그 역시 헤밍웨이 등 <로스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처럼 1차대전에 참전하나 부상을 입고 중위로 명예 제대했다. 제대 후에는 미시시피 대학에 특별 학생으로 1년간 다녔고, 뉴욕의 서점에서 잠깐 근무한 적도 있으며,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와 목수일도 했다. 마침내는 대학교 우체국장도 하며 2년간 여러 가지 잡무에 종사했다. 그가 교내 우체국에서 사퇴하던 1924년에 그의 대표적 시집 <대리석의 목신>을 간행했다.
그는 1925년 유럽 여행중 뉴올리언스에서 6개월간 체류하면서 당시 명성을 날리던 셔우드 앤더슨과 친교하게 되었고, 그의 협조를 얻어 뉴욕에서 그의 처녀작 <병사의 보수>를 간행했다. 그의 문체는 세기말적 사조에서 큰 영향을 받고 있었는데, 그 당시 미국에선 이 사조가 아직도 무르익지 못한 시기였다. 제2의 작품은 <모기>인데, 말보다는 행동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 풍자소설이다. 1929년 포크너는 <사토리스>를 씀으로써 작가의 위치를 차지한다. 이 작품은 사토리스 가 혹은 포크너 가의 조상 때부터 자기세대에 이르기까지의 전설적 얘기이며, 스토리의 중심은 젊은 베이야드인데, 소위로 전쟁에 참여한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한 사람이다. 이 작품은 그후 그가 쓴 여러 작품의 원천이 된 책이다. 그해 6월 결혼에 실패한 후 중국에서 돌아와 있던 지난날의 연인인 에스텔 올드햄과 결혼하여 생활에서도 안정을 찾았다. 그의 대표작들은 대개 그 시기에 창작되었다. 10월에는 그의 대표작 <음향과 분노>가 간행되었고, 1930년에는 <성단>을 간행했는데 이 소설은 영화화되어 절찬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포크너는 본국에서보다 프랑스에서 더 호평을 받았다. 말로는 <성단>의 서문을 썼으며, 사르트르는 포크너에 관한 평론을 썼다. 1946년엔 포크너 연구가 시작되고 잡지마다 포크너에 관한 평론이 실리게 되었으며 1950년엔 노벨 문학상이 수여되었다. 그는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자멸의 위기에 처해 있는 세계에서 인간이 살아남으리라는 예언의 유명한 연설을 했다. 그는 퓰리처상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받았다. 그는 헤밍웨이보다 1년 뒤에 죽었고, 그의 죽음은 미국소설의 새로운 국면을 만든 한 세대가 사라졌음을 의미했다.
요크나파토파의 신화
포크너는 그의 작품의 난해성으로 인해 독자들에게 무책임한 선동가, 정신 착란자, 심지어 영어를 마스터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는 그의 작품이 무지와 악덕퇴폐에 대한 강한 흥미로 이루어져 있으며, 될 대로 되어 버린 남부사회에 대한 환멸절망을 반영한 정신착란자살살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계보를 이루고 있는 요크나파토파 신화에 관해서는 보충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요크나파토파 고을은 미시시피 주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가공적이며, 실제적인 지방이기도 하다. 그는 이 북부 미시시피의 지리와 주민과 연혁 등에 관한 상세한 묘사를 하고 있는 동시에, 또한 자기의 작품 속에서 가감변형하여 요크나파토파란 군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포크너가 불가사의한 남부의 실상을 묘사하려고 설정한 요크나파토파 지방을 이해하려면 <사토리스>에서 1951년에 발표한 <수녀를 위한 진혼가>에 이르기까지 9편의 장편과 단편 30여 편을 읽어야 그 일관된 주제, 그 유기적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요크나파토파 신화에 나타난 내용을 주제상으로 분류하여 다섯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 첫째는 남부의 전설적인 얘기, 즉 인디언의 생태와 남북전쟁의 이야기들이며 이것을 나타낸 작품은 <수녀를 위한 진혼가><모세여, 내려가 주십시오><불멸의 인간상><압살롬! 압살롬!> 등이다. 둘째는 남북전쟁 이후 구세대의 몰락과 사회변천을 묘사한 것으로 <음향과 분노>와 <사토리스> 등이 이에 속한다. 셋째는 백인의 빈한한 생태와 그들이 강인하고 무지하고 교활한 점을 묘사한 것으로 <내가 누워서 죽을 때><마을><8월의 햇빛> 등이 그것이며 넷째는 현 남부사회의 퇴폐상을 그린 것으로써 <성단>과 <8월의 햇빛>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부사회의 제반문제 근저에 흐르는 흑인문제를 다룬 것이다. 이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무덤으로의 침입자> <모세여. 내려가 주십시요><8월의 햇빛>등이 있다.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요크나파토파 군을 설정하여 작품을 써낸 그의 의도는 분명치 않지만, 그중 하나는 자기의 고향에 대해서 내린 예리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무지몽매한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학대와 비인간적인 노예 봉건제도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그 결과로서 나타난 남북전쟁, 이에 따르는 봉건제도의 파괴 등에서 우리는 포크너의 역사관 내지는 그의 남부(과거의)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그렇게 단순치 않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외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남부의 자기 고향에 무조건 애착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남부인의 긍지와 향수를 풍기는 대화는 그의 작중인물의 얘기 속에 흔히 볼 수 있다.
미국 남부 명문가의 몰락과정 묘사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하여 명문 컴프슨 가의 몰락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3부는 컴프슨 가의 3형제들의 독백을 통해 가족사가 전개되고, 마지막 부분은 작가 자신의 객관적 묘사로 마감하는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면서 많은 인물들을 통해 미국 남부의 풍속을 담아냈다.
제1부
1928년 4월 7일. 컴프슨 가의 셋째아들인 33세의 백치 벤지의 머리에 본능적으로 떠오른 컴프슨 가의 몰락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여기서 벤지의 의식은 갈팡질팡하여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 남부농원의 귀족인 컴프슨 가는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다. 비록 세 아들과 외동딸이 살고 있기는 하나, 집안은 몰락할 대로 몰락해 버린 뒤였다. 벤지는 어렸을 때부터 백치였는데, 흑인 하인인 러스트의 보호를 받으며 골프를구경하러 갔다가, 화원의 울타리에 있는 대못에 옷이 걸려 위험에 직면했을 때 러스트가 구출해준 옛날을 회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현실의 모습과 지나간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회상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그의 회상 속에서는 부유한 남부의 귀족인 컴프슨 가가 몰락해가는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제2부
1910년 6월 2일. 제1부보다 18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가서 벤지의 큰형 퀘틴의 움직임과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 주로 여동생 캐디에 관한 일들이 <의식의 흐름>의 서술법에 따라 묘사되고 있다. 특히 하버드 대학생인 장남 퀘틴이 강에 투신자살하기까지의 의식이 서술되고 있다. 자살하기 직전까지 퀘틴의 마음을 괴롭히던 것은 여동생 캐디였다. 그녀는 성도덕을 무시한 채, 15세가 되던 때부터 여러 남자를 거쳐 임신을 하게 되었고, 결혼식 한달전에 이미 사생아를 지닌 채, 이를 숨기고 돈 많은 은행가인 허버트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퀘틴은 어려서부터 누이동생을 매우 사랑했고, 이러한 동생의 행동을 미워하면서도 근친상간의 죄를 짓지나 않았는가 하는 마음의 가책까지 느끼고 있다. 그는 복수하려고 상대 남자를 불러냈으나 그 남자를 죽이지 못하고 결국은 자신이 강으로 뛰어든다.
제3부
1928년 4월 6일. 이 부분의 주인공은 제이슨으로 현재의 컴프슨 가는 퀘틴의 동생인 제이슨이 맡고 있었다. 그는 마을의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으로 병을 앓는 어머니와 동생 벤지, 캐디의 사생아인 퀘틴(자살한 퀘틴과 동명), 그리고 오래 전부터 컴프슨 가에서 일해오던 흑인 하인 딜시와 함께 살면서 갖은 생활고를 겪고 있다. 그런데 제이슨 4세는 그들 형제중에서 가장 이기적이다. 그는 자라면서 점점 퀘틴의 성격을 닮아가는 조카 퀘틴을 보며, 자신의 신상에 무슨 해가 미칠 것 같아 매우 불안하다. 제이슨은 사생아 퀘틴에게 무자비하며 캐디가 보내는 양육비까지 가로채 저축한다. 그러나 퀘틴은 그 돈을 훔쳐내어 곡마단 패와 달아난다. 제이슨은 뒤를 쫓아 갔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돌아오고 만다.
제4부
1928년 4월 8일. 제1부의 하루 후의 일이다. 이 부분은 등장인물을 통해서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눈으로 사건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그 집의 흑인 하녀 딜시를 중심으로 한 객관적인 묘사로 일관되는데, 이 흑인 할머니는 작가가 찬미하는 미덕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로서, 그녀의 인내와 애정은 자기 중심적인 컴프슨 가 사람들과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동정심이 강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건전한 윤리관을 가진 인물이다. 1928년 4월 28일 부활절 예배를 보는 것으로 이 작품은 마무리되고 있다.
복잡한 실험적 기법의 난해한 명작
작가는 이작품에서 처녀성을 잃고 집안의 체면을 위해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나 이혼당하고 거기다가 아이까지 빼앗기고 친정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외동딸 캐디의 생활방식을 축으로 남부 명가의 붕괴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의식의 흐름>과 <내적독백> 등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복잡한 실험적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서 포크너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옛 전통을 수호하려는 퀘틴과 컴프슨 부인, 산업주의에 편승하여 물질주의를 지향하는 제이슨, 애정의 손길이 결핍된 환경에서 자란 캐디 등 남부인들의 모습을 통해 남부의 산업화에 따르는 전통적 가치관의 붕괴와 새로운 절대적 가치관의 부재상태를 그리고 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지극히 난삽하고 어려운 작품이다. 포크너는 이 작품에서 제임스 조이스 류의 <의식의 흐름>기법과 프로이트 심리학 등을 원용하여 당시로서는 극히 독창적인 창작 기교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4개의 장이 시간적으로 서로 뒤엉켜 있고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이 인물들의 움직임과 함께 어지러울 정도로 교체되므로 같은 수법을 쓴 어느 소설보다도 동적이다. 뿐만 아니라 각 장의 주인공들은 백치, 자살 직전의 청년, 물욕적인 30대 남자 등 성격과 상황이 전혀 다르므로 각각 사용하고 있는 문체나 기교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각기 독특한 색조로 구분해서 묘사되고 있다. 앙드레 지드는 이 작품을 "20세기 초 미국 남부 귀족사회의 명문인 컴프슨 일가의 몰락과정 속에 혈육지간의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네 사람의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수법으로 구성된 인간의 심층심리를 고도의 기법으로 파헤친 난해한 명작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
|
|
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
|
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담배
어떤 어머니가 자기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는 말을 이웃 사람들로부터 듣고 싶지는 않구나. 솔직하게 언제든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면 엄마에게 말하렴."
그 아이가 말했다.
"걱정마세요, 엄마. 제가 담배를 끊은 지 벌써 일 년이나 됐는걸요. 그것 때문이라면 걱정하실 필요가 없어요."
- 어린이들까지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런데 어머니들은 그것이 그들로부터 자기들의 가슴을 떼어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모든 원시 사회에서는 일곱 살, 때로는 여덟 살, 아홉 살 먹은 아이들에게까지 계속 젖을 물린다. 그러면 거기에는 만족이 있으며 흡연은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원시 부족의 남자들은 여인의 가슴에 별로 흥미가 없다. 여인의 가슴에 덤벼드는 그런 문제는 없다. 아무도 가슴을 바라보지 않는다.
|
|
|
|
|
바탕화면 |
|
|
|
『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