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376호 - 2024.10.16. 수요일(음력 : 9.14.)
angelo@nownforever.co.kr / 風文 윤영환
|
|
글나눔 → 참좋은한줄
|
|
|
무식이 환경을 크게 오염시킨다.
|
|
글나눔 → 말글
|
|
|
된소리 바르게 내기 (2)
이번에는 된소리로 발음할 것을 예사소리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를 살펴보기로 한다.
‘가랑비, 바람비, 보슬비, 이슬비’처럼 비가 내리는 양상과 관련된 말에서는 ‘비’가 [비]로 소리 난다. 하지만 ‘봄비, 가을비, 밤비’처럼 비가 내리는 때와 관련된 말에서는 ‘비’가 된소리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장마 때에 오는 비’를 가리키는 말도 [장마삐]이다. 이렇게 된소리로 바뀌면 사이시옷을 받쳐 적어야 하므로 ‘장맛비’로 적는 것이다.(장맛비가 밤새도록 내렸고, 유리창 대신 막아 놓은 비닐 들창이 끊임없이 펄럭거렸다. ‘황석영: 몰개월의 새’)
‘숨 쉬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고통을 견디려고 애쓰는 힘’을 가리켜 ‘간힘’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명사 ‘안’이 붙어서 된 말이 ‘안간힘’이다. 이때는 소리가 [안깐힘]으로 바뀐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표기도 ‘안깐힘’이다.(그는 안깐힘을 다해 가물거리는 의식을 가다듬었다. ‘북한 소설: 해바라기’)
‘-적(的)’은 ‘ㄹ’ 받침 뒤에서는 [쩍]으로 소리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술적[기술쩍], 돌발적[돌발쩍], 동물적[동ː물쩍], 물질적[물찔쩍], 법률적[범뉼쩍], 우월적[우월쩍].
마지막으로, 아래에 보인 예들은 표기는 같으나 뜻에 따라 예사소리와 된소리를 구분해야 하는 경우이다.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이 엉뚱하게 전달되는 수도 있으니 더욱 주의해야 한다.
고가(高架)[고가]/고가(高價)[고까], 발병(發病)[발병]/발병(-病)[발뼝], 비법(非法)[비ː법]/비법(秘法)[비ː뻡], 상복(喪服)[상복]/상복(賞福)[상뽁], 송장(주검)[송ː장]/송장(送狀)[송ː짱], 잠자리(곤충)[잠자리]/잠자리(장소)[잠짜리], 정적(靜寂)[정적]/정적(靜的)[정쩍]
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뜬돈과 뜬벌이
‘뜨다’가 포함된 표현에는 불안이 깔려 있다. 나는 스타가 되는 것을 뜻하는 ‘뜨다’라는 표현에서 추락의 공포를 먼저 느낀다. 그러니 그 태생부터 종잡을 수 없는 ‘돈’과 ‘뜨다’가 결합한 표현에서 새로운 불안을 읽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뜬돈’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쩌다가 우연히 생긴 돈”이라 풀이했다. 이처럼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손에 쥔 것은 횡재이지만 그건 불안의 시작일 수 있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돈과 이에 대한 불안의 양상이 다양한 만큼 ‘뜬돈’은 사전의 풀이를 넘어선 의미로 다양한 맥락에서 쓰인다.
“갈 곳 잃어 헤매는 ‘뜬돈’, 또 사상 최대”라는 신문의 표제에서 ‘뜬돈’은 투기성 자금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농업분야 국고보조금은 ‘공돈’ ‘뜬돈’으로 인식됐는지 침 바르고 덤벼든 사람들이 줄줄이 걸려들고 있다고 한다”라는 기사문에서 ‘뜬돈’은 ‘공돈’이나 ‘눈먼 돈’과 같은 말로 쓰이고 있다.
‘뜬돈’이 아무리 불안을 상징한다고 해도 그런 불안은 근본을 성찰할 때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 ‘뜬돈’은 당장의 행운일 테니까. 그런 점에서 ‘뜨다’에 깔린 불안은 생업과 연관된 ‘벌이’와의 결합에서나 실감할 수 있다.
‘뜬벌이’는 “고정된 일자리가 아닌 어쩌다 생긴 일자리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돈 따위를 버는 일”이다. 돈 생기는 일이되, 돈이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뚝 떨어져야 돈을 만져볼 수 있는 것이다. 일자리가 ‘뜬돈’ 생기듯 나타나는 상황에서, 하루 벌어 사는 사람은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하나? ‘뜬벌이’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뜬돈’을 향한 열망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는 더 불안해진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
시나눔 → 우리시
|
|
|
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달밤 - 김수영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밤거리를 방황할 필요가 없고
착잡한 머리에 책을 집어들 필요가 없고
마지막으로 몽상을 거듭하기도 피곤해진 밤에는
시골에 사는 나는-
달밝은 밤을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 꿈을 다시 꿀 필요가 없게 되었나보다
나는 커단 서른아홉살의 중턱에 서서
서슴지않고 꿈을 버린다
피로를 알게 되는 것은 과연 슬픈 일이다
밤이여 밤이여 피로한 밤이여
<1959. 5. 22>
~~~~~~~~~~~~~~~~~~~~~~~~~~~~~~~~~~~~~~~~~~~~~~~~~
민들레 영토 - 이해인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태양에 쫓기어
활활 타다남은 저녁 노을에
저렇게 긴 강이 흐른다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싶은 얼굴이여.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봄꽃들의 축제 - 이해인
1
누워서도 하늘과 숲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의 작은 수방을 사랑한다. 새들의 노랫소리와 나무들의 기침소리가 거침없이 들어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새벽. 나의 가슴엔 풀물이 든다. 송진내음 가득한 솔숲으로 뻗어 가는 나의 일상. 너무 고요하고 평화스러워 늘상 송구한 마음으로 시작되는 나의 첫기도.
2
사방엔 온통 봄꽃들의 축제인데 내 마음엔 왜 이리 봄이 더딘가. 마음의 메마름은 슬픔이다. 작은 일에 기뻐하고 감동할 수 없는 무딤과 무관심은 수도생활에도 지장을 준다. 비온 뒤의 정원은 더욱 아름답다. 수선화, 모란, 자목련, 은방울꽃, 조팝나무꽃, 영산홍, 산딸나무꽃, 사과꽃들이 향기를 토해내는 안 정원에 오랜만에 가보았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다양한 모습의 꽃을 피우고 나서 조용히 떠나가는 그 모습 또한 얼마나 의연한가. `수녀원에 생각보다 꽃이 많네요!` 하고 손님들이 감탄을 할 때마다 나는 기쁘다. 오늘 아침 성당에서 만난 부활초 옆의 패랭이 꽃이 하도 반가워서 가슴이 뛰었다. 내가 열다섯 살의 생일을 맞던 6월에 나의 우상이었던 여고생 세레나 언니가 가파른 언덕길 위의 우리집까지 찾아와 한다발 안겨 주던 추억의 패랭이 꽃. 이제는 패랭이꽃처럼 어여쁜 그 언니의 막내딸 아린이가 먼 나라에서 내게 편지를 보내 오고 있으니 나도 그애에게 톱니 모양의 앙증스런 꽃잎을 닮은 고운 추억을 심어 주어야겠다.
3
바깥에 머물던 세월보다 수도원 안에 머문 세월이 더 많아서일까. 잠시 수도원을 떠나 있어도 내 귀엔 문득 귀에 익은 종소리가 들리고, 수녀들이 함께 외우는 기도소리가 들리고, 풀밭에서 함께 웃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디엘 가나 계속 되는 이 환청을 나는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4
서원반지를 20년이나 끼고 있던 손가락이 어느 날부터 조금씩 부풀더니 매우 아프기 시작했다. 반지를 빼고 나서도 오래 아프고 말을 안 듣는다. 늘 끼고 있으면서도 잊고 살았던 내 동그란 반지처럼 너무 가깝기에 잊고 산 듯한 나의 하느님. 약속의 하느님을 오늘은 죄송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그리워했다. 나는 그분 앞에 늘 염치없는 사람이다.
5
섣부른 충고, 경솔한 판단, 자기 자랑, 가벼운 지껄임 - 하루의 모든 말들이 내가 주어 온 침묵의 돌들 앞에서 부끄러워진다. 며칠 전 안동에 갔다가 700년 되었다는 용계 은행나무 아래서 기념으로 몇개 주어 온 침묵의 돌들이 밤마다 깊고 고요한 눈길로 나를 길들인다. 침묵으로 노래하라. 침묵으로 기도하라. 침묵으로 사랑하라고.
|
|
시나눔 → 동시
|
|
|
가을 해 - 한인현
배추밭을 다 못 맨
마나님은
한 발 남은 해님을
바라보고서
"아이 참 가을 해는
짧기도 하이."
온종일 새를 몰던
영감님은
한 뼘 남은 해님을
바라보고서
"아이 참 가을 해는
길기도 하이."
------------------------------------------------------------
가을 하늘 - 정용원
여름내 바람이 쓱쓱 쓸고요
여름내 소나기 시원스레 닦아 놓아
파랗게파랗게 눈부시는 가을 하늘
아기고추잠자리 떼 운동회 잔치 하네
여름내 나무들이 빗질하고요
여름내 바닷물로 시원스레 세수하여
파랗게파랗게 누부시는 가을 하늘
제비 떼 강남까지 달리기 경주하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부르고요
겨우내 봄 여름내 두 손 모아 기도해서
파랗게파랗게 누부시는 가을 하늘
남북의 비행기들이 누물 싣고 오고 가네
|
|
시나눔 → 외국시
|
|
|
아프리카 - 디오프(Diop)
아프리카, 나의 아프리카!
대대로 물려받은 대초원에서 당당하던 무사들의 아프리카
나의 할머니가 머나먼 강둑에 앉아 노래한 아프리카,
나는 그대를 결코 알지 못하지만
내 얼굴은 그대로 피로 가득하다.
들판을 적시는 그대의 아름다운 검은 피,
그대가 흘린 땀의 피,
노동의 땀,
노예 생활의 노동,
그대 아이들의 노예 생활
아프리카, 말해 보라, 아프리카
이것이 당신인가, 휘어진 이 등이
찌는 듯한 길바닥에서 채찍마다 예예 굽실대는
붉은 상처들로 떨고 있는 얼룩무늬의 이 등이 ?
그대 묵직한 목소리가 대답한다.
- 성급한 아들아, 이 젊고 튼튼한 나무
창백하게 시든 꽃들 가운데
눈부신 외로움으로 서 있는
바로 이 나무,
이것이 아프리카다. 새싹을 내미는
끈기 있게 고집스럽게 다시 일어서는
그리고 그 열매에 자유의 쓰라린 맛이
서서히 배어드는 이 나무가.
|
|
글나눔 → 추천글
|
|
|
이외수의 감성사전
삼라만상이 비치는 종이거울
겨울
깊은 안식의 시간 속으로 눈이 내린다. 강물은 얼어붙고 태양은 식어있다. 나무들이 앙상한 뼈를 드러낸 채 회색하늘을 묵시하고 있다. 시린 바람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히고 차디찬 겨울비가 독약처럼 배어들어도 나무는 당분간 잎을 피우지 않는다. 만물들이 마음을 비우고 동안거에 들어가 있다. 모든 아픔이 모여 비로써 꽃이 되고 열매가 됨을 아는 날까지 세월은 흐르지 않는다. 겨울도 끝나지 않는다.
방랑
아무런 행선지도 없이 떠도는 일이다. 떠돌면서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는 일이다. 외로운 목숨 하나 데리고 낯선 마을 낯선 들판을 홀로 헤매다 미움을 버리고 증오를 버리는 일이다. 오직 사랑과 그리움만을 간직하는 일이다.
망각
세월의 무덤 깊이 과거에 대한 기억의 시체들을 완벽하게 암장시켜 버리고 마침내 일체의 번뇌와 무관해져 버리는 상태.
바람
휴지조각들이 을씨년스럽게 날아오르는 겨울의 공터에서, 개나리가 오스스 꽃잎을 떨고 있는 봄날의 담벼락 밑에서, 바다가 허옇게 거품을 뿜으며 기절하는 여름의 해변에서, 낙엽들이 새 떼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는 가을의 숲 속에서 장님도 바람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귀머거리도 바람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바람은 살갗만을 적셔주는 대지의 입김이 아니라 온 가슴을 적셔주는 신의 입김이기 때문이다.
엽서
조그만 마음의 창틀
연
겨울이 오면 유년의 꿈결 속을 떠도는 바람의 혼백이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마른 쑥대풀은 소매 끝을 잡고 흐느끼는데 아이들은 언덕배기에 올라 연을 날린다. 공허한 세월 속으로 소멸의 강이 흐른다. 시어들이 죽고 바람이 분다. 낭만이 죽고 바람이 분다. 사랑이 죽고 바람이 분다. 하늘이 흔들린다. 그리움이 흔들린다. 그리움은 소망의 연이 되어 하늘 끝으로 떠오른다. 하늘 끝으로 떠올라 인연의 줄을 끊고 영원한 설레임의 노래가 된다.
아침
자명종이 수험생의 고막 속에다 비명 같은 경보 신호를 발사하고 직장인들이 아내의 발길질에 걷어채이며 소스라치게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면 하루의 전쟁이 시작된다. 인간들은 대개 현실에 소속되어 있고 시간의 위수령을 이탈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행복이라는 이름의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날마다 단독으로 적진에 뛰어든다. 인간들은 스스로를 병사이면서 병기라고 생각한다. 병사가 꼬질대에 기름칠을 해서 총구를 쑤시듯이 칫솔에 치약을 발라 이빨을 닦고 총열에 탄알을 장진 하듯이 식도에 밥덩어리를 밀어 넣는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고지는 금력과 권력을 무기로 앞세운 자들에게는 멀게 느껴지는 장소에 있다. 대개의 인간들이 아침마다 결의에 찬 표정으로 집은 나선다. 집을 나서면 대문 바깥이 모두 적진이다. 이 세상 생명체가 모두 적군이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이름의 고지가 바로 자기 마음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들은 단지 아침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신에게 경배한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찬란하지는 않은 것이다.
평화
전쟁 발발의 합리적 근거
|
|
독서실 → 수필
|
|
|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2-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취미로 듣는 음악
가끔씩 무슨 앙케이트 같은 데서 취미는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고 난처해 하는 일이 있다. 제대로 대답하자면 독서와 음악이 되겠지만, 요즘 같은 세월에 책도 읽지 않고 음악도 듣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니까, 엄밀하게 말해 이걸 취미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한 기분이 든다. 귀찮으니까 그런 때에는 대게 겸손하게 - 그렇지도 않은가 - '무취미'라고 대답한다. 하긴 소설을 쓰게 되고부터는 독서가 일의 일환이 돼 버린 셈이니까, 현실적으로는 이미 그걸 가지고 취미라고 할 수 없다. 음악만이 간신히 취미의 영역 안에 머물러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음악만큼은 어떻게든 취미인 채로 남겨 두고 일에는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글 쓰기를 업으로 하면서 어떤 특정한 분야를 피해 가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내가 자라난 가정에는 나 이외에 음악을 자진하여 듣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따라서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어느 누구의 지도나 어드바이스도 받을 수가 없었다. 요즘과는 달리 상세한 가이드 북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튼 용돈을 모아 마구잡이로 레코드를 사들여선, 수긍이 갈 때까지 무턱대고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무렵에 산 레코드를 지금 뒤적거려 보면 '꽤나 두서없이 모아 들였군'하고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걸 알 턱이 없으니, 바겐세일 때만 되면 레코드를 사기 위해 헤매 다니고 그러고는 레코드판이 닳아 빠지도록 들어댔던 것이다. 젊은 시절에 들은 연주는 평생토록 귀에 새겨져 있는 법이고, 더군다나 몇 장 되지 않는 레코드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 들으니까, 그 무렵에 산 레코드는 지금의 내게는 일종의 표준 연주로 되어 버렸다. 예를 들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은 글렌 굴드(자신의 독특한 해석과 기법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던 전설적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의 연주로 내내 들었기 때문에, '3번'하면 굴드의 연주가 머리 속으로 파뜩 떠오르고, '4번'하면 박 하우스의 연주가 떠오른다. 훨씬 나중에 박 하우스(1884 -1969년 독일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3번과 굴드가 연주하는 4번을 사기는 했는데, 그걸 듣고 있으며 - 연주는 물론 나무랄 데가 없지만 -아무래도 안정감 없이 느껴진다. 귀가 '3번은 도전적으로, 4번은 정통적으로'라는 연주 기준을 머리 속에다 철썩 같이 박아 놓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의 현악 사중주 곡 중 15번과 17번만 해도 그렇다. 그 경우에는 15번은 줄리어드 현악 사중주단이고, 17번은 비엔나 콘체르토 하우스 현악 사중주단으로 라는 경이적인 커플링이다. 들어 보시면 알겠지만, 이 두 개의 연주 단체는 서로 극단적일 만큼 정반대 쪽에 자리하고 있다. 줄리어드는 엄격하고 딱딱하며, 후자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런 연유로 나는 '15번은 엄격하고 딱딱한 곡이며, 17번은 부드럽고 따뜻한 곡이다. 모차르트란 사람은 과연 다면성을 지닌 천재 작곡가다 하고 오래도록 믿고 있었을 정도였다. 스무 살이 넘어 다른 레코드로 15번을 들어 보고서는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도 15번이 듣고 싶은 걸 하고 생각할 때면 나도 모르게 손이 줄리어드의 레코드(물론 새로 산 것)쪽으로 가고 만다. 기묘한 일이다. 이런 예를 일일이 들자면 끝이 없다. 한마디로 바겐용 레코드를 계통없이 마구 사 들인 결과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계통없이 들쭉날쭉 했던 점이 음악을 듣는 재미를 오히려 두드러지게 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취향이 편협하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던 것은, 어드바이스를 해 주는 사람이 없었던 덕분이다.
나는 무슨 일이든 대개 이런 식으로 우회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꾸물꾸물 추진해 나가는 성격이라, 무엇인가 도달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실패도 많이 한다. 그러나 한 번 그게 몸에 배고 나면, 어지간해서는 흔들림이 없다. 이런 얘기는 딱히 자랑삼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성격은 자칫하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기 쉽고, 자기 자신 그 스타일을 교정하려고 해도 마음 먹은 대로 수월스레 바꿔지지 않는 것이다. 타인이 무언가를 권유하면 대부분은 듣고 흘려 버리고, 타인에게 무언가를 진지하게 권유하는 일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살아 왔으니까 새삼스레 어쩌고 저쩌고 할 것도 없다. 그건 그렇다치고, 보통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란 스무살을 경계로 점점 둔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이해력이나 해석 능력은 훈련하기에 따라 높아질 수도 있지만, 십 대에 느끼던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감동은 두 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유행가도 듣기에 시끄러워지고, 옛날 노래가 좋았는데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내 주변에 있는, 왕년에는 록 매니어였던 청년들도 점차 '요즘의 록 같은 그런 빈약한 건 들을 기분이 안 나'라고 얘기하게 됐다. 그 기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런 푸념 따위만 늘어놓아 봤자 별소용이 없으니까, 나는 비교적 솔직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전미 히트 차트 같은 것에도 귀를 기울이며, 귀가 노화되는 것을 방지하려고 힘쓰고 있다. <컬쳐클럽>이라든가 <듀란 듀란>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웸>의 저 은근함은 비교적 마음에 들어하는 오늘, 요즘입니다.
|
|
독서실 → 사회/문화/심리
|
|
|
마카아벨리 평전 - 로베르토 리돌피
마카아벨리 평전 - 제22장 (육십 평생에) 2/2
이번에 그는 좀더 천천히 길을 갔고, 위원회 쪽에는 (적군으로 인한 장애물들) 때문에 늦었다고 변명하였다. 그는 7일에야 파르마에 닿았는데, 그곳에서는 8인집행위원회가 그의 파견을 결정하기 며칠 전 이미 코르토나 추기경으로부터 소식을 듣고 있었던 귀차르디니가 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전령을 보내 빨리 오라고 재촉하기까지 하였다. 총감독관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도시의 소망들을 그로부터 듣자는 것도, 또는 동맹으로부터 얻을 만한 어떤 원조의 가능성을 그에게 알리자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원했던 바는 공화국 사절의 힘을 빌려 ((우르비노) 공작과 (살루초) 후작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를 설득함으로써) 그들로부터 더 많은 원조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바로 그날로 마키아벨리를 공작에게 데리고 갔고, 그는 최선을 다해 (강력하고도 신속한 도움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어떤 결정을 내림에 있어 사태를 관망하는 성품인 공작은, 살루초로 하여금 전위 부대를 거느리고 토스카나로 들어가게 하고 반면 자신은 주력을 유지하며 적의 배후에 남겠다고 우겼다. 하지만 그들은 다음날 다시 만나 (모든 것을 문서로 작성하는 데) 합의하였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사항을 같은 날 8인집행위원회에 알렸다. 문서로 작성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즉 만일 적군이 폰티레몰리를 경유하여 토스카나 쪽으로 온다면, 프랑스 군, 베네치아 군, 교황 군 전체가 적을 앞지를 것이지만, 만일 그들이 볼로냐로 향한다면, 토스카나에는 살루초 후작만 입성하고 공작은 뒤처지리라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이러한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으며, 뒤에는 후미에 붙어서 역시 전혀 움직이려 들지를 않았다. 2월 11일, 마키아벨리는 8인집행위원회에다 새로이 편지를 써서 적군의 동향이 오리무중임을 전한 후 이렇게 말을 맺었다. (저는 아직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물길이 어느 쪽을 향하는가를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이 정부의 예상대로 방향을 잡는다면, 저는 그에 대한 처방의 종류와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삼사 일 더 머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거의 석 달을 지체하였다. 이는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 물길이 에밀리아의 평원 지대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14일자로 8인집행위원회에다가 편지를 썼던 파르마에서부터 적군과 대치하면서 교황 군을 따라오다가, 스칸이아노와 사수올로를 거쳐 볼로냐에 도착하였다. 그때가 27일이었는데, 그는 그로부터 한 달 이상을 그곳에 머물렀다. 한편, 란치 군과 에스파냐 군은 처음에는 식량과 돈이 떨어져서, 뒤에는 나쁜 날씨 때문에 지체되어 지금은 온통 물과 눈으로 질퍽거리는 대평원에서 꼼짝않고 있었다. 우르비노 공은 그처럼 곤경에 빠져 있는 적군을 쉽사리 제압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싸우려들지 않았으므로, 마키아벨리나 귀차르디니나 편지에서 보고할 거리라고는 적군이 기아와 악천후로 곤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볼로냐에서는 눈이 (도시 어디에서나 키 높이만큼이나 많이)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곳의 교황 사절은 교황의 사촌인 인노첸초 치보 추기경이었는데, 그는 매우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고 문인들과도 활발히 교유하는 편이었다. 이것을 보면, 그에게는 리구리아 사교 쪽보다는 대 로렌초의 피가 더 많이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 추기경은 곧 마키아벨리에게 마음이 끌렸고, 그란 인물은 자신에게 닥쳤던 그 유명한 곤경들보다 이같이 따뜻한 호의에 훨씬 더 힘을 얻는 성품이었다. 오 가엾은 마키아벨리여! 우리는 그가 지금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는 그 스스로를 알지만, 자신이 오랫동안 사람과 운명에 의해 망각되어 왔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짓밟히고 잊혀져 오는 가운데, 그는 자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평범성을 잣대로 스스로의 비범성을 재곤 했다. 그는 스스로가 더 위대한 일에 소용이 닿은다고 느꼈지만, 동시에 영원히 하찮은 일에만 갇혀 있는 자신이 모습을 보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보여준 자신의 저작들조차도 그로 하여금 인간에 대해 당연히 가져야 할 존경심을 빼앗아가 버린 잔인함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그는 한때 인간에 대한 큰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다. 이렇게 내내 그 자신을 갉아먹는 그러한 고질병을 앓고 있던 차에, 추기경이 보여준 각별한 마음 씀씀이는 마치 환자가 물불 가리지 않고 손에 넣으려 하는 특효약과 같은 것이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풍성한 볼로냐에서 이 치료약과 추기경의 아낀 없는 성찬 덕분에 그의 기력은 되살아나고 있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그가 볼로냐에서 쓴 편지들에는 이처럼 짧지만 그래도 좋았던 시절의 냄새가 묻어나고 있다. 우선 그것에는 생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이전의 날카로운 판단력과 번뜩이는 문체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과 하늘의 도움에 기대고자 하는 바람도 더 크다. (만일 페라라 공이 머릿속에 약간의 생각이라도 가지고 있고 게다가 이 같은 날씨가 이틀만 더 지속되어 준다면, 그는 앉아 잠깐 눈을 붙이는 사이에 이 전쟁을 끝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날씨는 여전했으나, 그 자신 이탈리아 사람임에도 언제나 황제편에 붙어 이탈리아를 제물로 삼았던 공작의 머릿속에는 아직 아무 생각도 없었다. 더 나쁜 것은 교황조차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니 오히려 바로 그 시간에 그는 평소의 바보 같은 짓을 또다시 저지르기까지 하였다. 그는 적과 새 협정을 맺음으로써 여러 가지로 자신의 행동을 제약하고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이다. 반면 혼란에 빠져 있었던 제국 군은 프룬츠베르크가 죽은 후 부르봉의 지휘 아래 다시금 움직임을 재개하고 있었다.
3월 그믐날, 교회 군이 볼로냐를 나와 적군의 앞을 막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사이, 마키아벨리는 미리 숙영지를 마련해 놓으려고 이몰라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8인집행위원회 앞으로 슨 편지에서, 정부는 군대를 멈추는 대가로 엄청난 액수의 돈을 요구하는 부르봉의 협박에 켤코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하였다. (당신들과 그들 사이에 여전히 알프스가 가로지르고 있고 당신들의 군대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데도 삼 일 내에 십만 피오리노를 내놓고 이어 열흘 안에 십오만 피오리노를 더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그런 유의 적과 무슨 희망으로 협상을 논한다는 것입니까? 알프스에서 내려오게 되면, 그들을 첫 번째로 당신들의 재산 모두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은 단지 당신들을 약탈하고자 하는 일념뿐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물론 그렇지 않으면 좋으련만!)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악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만 그것을 풀어버리는 것 외엔 아무런 치유책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만 한다면, 그들이 당신들의 성벽 아래에까지 왔을 대가 아니라 바로 지금 알프스에서 행동에 옮기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탈리아를 구원한다든지, 혹은 어떤 망상적인 정치적 계획을 꾸미는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야흐로 잔혹한 에스파냐 군과 야만적인 란치 군의 위협에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는 자신의 조국 피렌체를 위해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치솟아 올라오는 더욱 살가운 애정이었다. 저 산들 너머엔 보호해야 할 성벽들이 있고, 그 성벽 안에는 자신의 가족과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장남인 베르나르도가 있었고, 아직은 어려서 그를 실망시키지 않고 여전히 어떤 환상을 품게 만드는 더 어리고 귀여운 이이들이 있었다. 귀도, 피에로, 바치나, 그리고 아직 갓난아기인 토토.
니콜로는 베르나르도를 성벽관리위원회에서 일하게 했지만, 그가 자신의 족적을 뒤쫓아오리라는 지대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재능도 공부도 일천한 데다 공부에 대한 열의도 없었기 때문이다. 베르나르도는 이제 나이가 찼기 때문에, 적어도 시골집 정도는 돌보면서 아버지가 멀리 출타중이거나 장작 패는 일 아닌 다른 문제를 생각해야 될 때면 그 일에 신경 쓰지 않도록 해주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아들에게 두 번 편지를 보냈으나 전혀 답이 없었다. 그는 또 차남인 로도비코의 거친 성격 때문에 그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다. 로도비코의 이러한 성격은 심지어 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드러나고 있으며, 일찍이 8인감찰위원회의 눈에까지 띄었을 정도였다. 지금 그는 두 번째로 레반테 지방으로 가 장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직은 소년 티를 못 벗은 귀도와 피에로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가 제일 좋아한 아이는 귀도였을 텐데, 그는 조용하고 학구적인 성품이었지만 몸이 허약한 편이었다. 여러 자식들 가운데서도 오직 그만이 언젠가는 아버지가 어던 사람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아이였던 듯하다. 그래서 아버지의 늙고 쓸쓸한 가슴도 그 생각 덕분에 한층 따뜻해졌으리라.
알프스와 성벽에 관한 편지를 정무궁에 보낸 후인 4월 초이튿날, 그가 애정 어린 편지 한 통을 쓴 것도 다름아닌 어린 귀도에게였다. (신께서 너와 나에게 긴 목숨을 허용하신다면, 네가 스스로의 몫을 할 준비가 되었을 때 난 너를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을.) 그 어른 어린이는 아들에게 새로 사귄 치보 추기경과의 친분이 (너무 두터워 내 자신도 놀랄 지경)리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추기경이 최근 그에게 베풀어준 명예를 덕분에, 그는 자신이 총애하는 아들에게 진지하고도 애정 어린 충고를 해줄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다. (네가 더 이상 몸 아픈 탓을 안해도 된다면, 문학과 음악을 배우는 수고를 아끼지 말거라. 나의 이 보잘것없는 능력으로도 이렇게 맣은 명예를 누리는 모습을 너는 보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내 아들아, 네가 날 기쁘게 하고 너 자신도 이득과 명예를 누릴 양이면, 부디 잘 처신하고 열심히 배우거라. 우선 네가 네 스스로를 도와야 남도 너를 돕는 법이란다.)
그러나 진지한 훈계 뒤에 공상 같은 이야기가 따르는 것도 역시 이 귀여운 아들과 함께 할 때이다. 그 내용은 어린 아들이 제일 좋아하던 작은 노새의 괴상한 행동에 관한 것이다. (작은 노새 이 녀석은 미친 놈처럼 보이지만 다른 광인들과는 달리 다루어야만 된단다. 왜냐하면 다른 광인들은 묶여 있지만, 난 네가 그 녀석을 풀어주었으면 하기 때문이야. 노새를 반젤로에게 데리고 가. 그리고 그 녀석을 몬테풀리아노로 끌고 가서 마구며 재갈이며 다 풀어버리고 어디든지 그 녀석이 먹을 것을 얻고 그 미친 짓에서 벗어날 만한 곳으로 가도록 놔두라고 그에게 말하렴. 시골은 널따랗고, 이 짐승은 조그마니까 말이야...) 여기서 이 자상한 아버지는 몬테풀리아노의 널따란 숲속을 힝힝대며 이리저리 돌아 다니는 이 조그만 노새를 그려 보임으로서, 어린 아들로 하여금 공상의 나래를 펼치도록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또한 독자들은 니콜로가 어린 아들에게도 역시 다른 사람들이 흉내내지 못할 만큼의 이야기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갑자기 그의 생각은 다시금 현재의 위험에 미치고, 불현 듯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치솟아오른다. (마리에타 부인께 안부 전해 주렴. 그리고 내가 그 동안 내내,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이곳을 떠나고 싶어한다고 말해 다오. 내가 이때처럼 피렌체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는 말도 함께. 하지만 당분간은 여기 머물러 있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구나. 이곳에 어떤 위험이 닥치기 전에 돌아갈 것이라는 식으로 무엇이든 네 엄마가 듣고 기운이 날 만한 말만 하거라. 바치나, 피에로, 그리고 걔가 그곳에 있다면 토토에게도 뽀뽀해 주어라. 토토의 눈은 좀 괜찮아졌는지 어쩐지를 들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즐겁게 지내되 시간은 최대한 아끼거라...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사악함으로 악명 높고 냉소적이며 신을 부정하는 자로 알려진 그 사람은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어떤 위험)이 닥치기 전에 집에 돌아가 있겠다는 그의 약속은 빈말이 아니었다. 또 한 명의 위대한 피렌체인인 총감독관은 이미 오래 전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그와 상의하였고 또 그렇게 하기로 최근의 경계 근무중에 결정한 바 있었다. 즉 (작은 돈을 들이고 방어할 수 있을 때) 로마냐 지역을 방어하고, 그 이후로는 (최대한으로 이탈리아 군과 돈을 모아서 (...) 어떻게든 피렌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베토리에게 보낸 4월 5일자 편지에서 마키아벨리가 썼듯이, 이를 위해서는 적군보다 먼저 트스카나로 진입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반면 그 느려빠진 공작은 자신의 바람대로 후미에 처질 수가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교황의 우유부단함을 극복하는 일이었다. 이는 적군의 결단력이나 베네치아의 보잘것없고 의심스러운 기백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었다. 클레멘테는 전쟁을 계속할 돈도 없이, 그리고 마법사 시몬의 처방전은 훨씬 뒤에 아무런 이득도 없이 다만 비난만 받게 될 운명을 위해 간직한 채 여전히 쓰지 않으려 하면서(여기서 마법사 시몬이란 성경의 (Simon Magus)를 말한다. 그는 기원후 1세기경에 살았던 사마리아 출신 마법사로, 돈으로 성령을 주는 힘을 사려고 한 일로 비난받았던 인물이다. 성직 매매(죄)를 뜻하는 (시모니 simony)라는 용어가 나온 것도 바로 이러한 일화에서이다(사도행전 8장 9-20절). 따라서 본문 중의 (마법사 시몬의 처방전)을 쓴다는 말은 곧 뇌물을 써서 상황을 유리하게 이끌려 한다는 의미가 된다-옮긴이), 매일같이 휴전에 대한 유치한 희망만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그가 최근에 겪었던 일들도 그에게는 전혀 교훈을 주지 못했다. 황제의 이름을 들먹이며 휴전을 주선해 왔던 에스파냐인 부왕은 황제군의 지휘관인 부르봉에게 진군을 멈추라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교황은 그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부르봉은 마치 아무것도 들은 바 없는 것처럼 진군을 게속했다. 부왕은 그에게 사절을 보냈고, 이어 그 스스로가 그를 만나 길을 멈추게 하려고 했다. 클레멘테는 기대감 속에서 안도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부르봉은 여전히 다가왔고, 교황이 그들을 패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음을 안 동맹국들은 더욱더 그로부터 멀어져 갔다.
귀차르디니는 만약 제국 군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모든 것이 공포로 변할 분이라며 그러한 조약 뒤에 숨어 있는 위험드레 대해 로마로 피렌체로 편지를 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키아벨리 역시 같은 내용을 8인집행위원회는 물론, 피렌체 정부 내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던 베토리에게 써 보냈지만 허사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바로 앞서 몇 마디 인용했던 4월 5일자 편지는 포를리에서 씌어진 것인데, 그는 귀차르디니 및 그들의통제 아래 남은 소수의 교황 군과 함께 그곳에 가 있었다. 그들은 뒤에 남겨놓고 온 도시들을 수비하기 위해 행군 도중 여기저기에 일단의 군병을 배치해 두었다. 그는 8인집행위원회 앞으로 가는 4월 11일자 편지에서 (우리는 (...) 파르마에서부터 군사들을 떼어내기 시작하여, 여기 포를리에 오는 동안 조금씩조금씩 인원을 줄여나갔습니다)라고 썼고,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었다. (상황은 전쟁을 재개하든지 아니면 평화 조약을 맺든지 양단간에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와 있습니다.)
평화.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이번처럼 로마에서 체결하고 롬바르디아에서는 지키지 않는 그런 의심스럽고 기만적인) 조약이 아니라 확고한 평화였다(이틀 뒤, 그는 또 하나의 말벗인 베토리와의 대화중에 그렇게 말했다), 피렌체에서는 조약이 이제 거의 성사되었다는 편지들을 게속 보내왔다. 왜냐하면, 만일 어차피 전쟁이 있어야 한다면, 부르봉에게 조약의 대가로서 내주어야 할 첫 분할금 육만 두카토를 병사들의 급료로 쓰는 편이 더 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만약 계략에 빠져 조약을 맺음으로써, 그 대가로나 전쟁을 위해서나 양자 모두에 돈이 들어가게 되어 그 어느 쪽에도 돈을 쓰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면, 이는 결국 우리만 손해를 보고 적은 이롭게 하는 결과에 이를 것이네. 적군은 오직 전쟁만을 생각하며 그쪽으로 진군하고 있을 뿐이고, 우리를 전쟁과 조약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속셈이라네.)
바로 그 무렵,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는 같은 내용을, 때로는 거의 같은 말을 하면서 로마와 피렌체에 편지를 써 보내고 있었다. 수 개월에 걸쳐 함께 한 야영 생활과 그로부터 만들어진 공통된 생각들이 위대한 이 두 명의 정치가들 사이의 간격을 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귀족과 평시민, 실천가와 이론가, 산문과 시 사이의 모든 차이점이 사라져버렸다. 귀차르디니는 마키아벨리를 더 높이 보게 되었고, 마키아벨리는 귀차르디니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16일, 협상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스파냐의 부왕은 부르봉의 군대를 정지시키고 조약을 준수하게 만들고자 피렌체로 왔다. 그러나 부르봉은 이에 개의치 않고 갈레아타 로를 따라 행군을 계속하였다.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는 8인집행위원회에다 이렇게 썼다. (결코 이보다 더 혼란스럽고 위험한 사태는 이제까지 없었습니다. (...)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저에게 가장 위험천마한 점으로 보이는 것은 토스카나에 적은 있을 망정 정작 군대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쪽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오지 않는 상황에서, 저는 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제 휘하의 군대 모두를 피렌체 족으로 보내기로 결정하엿습니다...)
그것은 마키아벨 리가 원하던 결정이었고, 그렇게 하는 데는 아마도 그의 조언이 작용했을 것이다. 같은 날 귀차르디니와 같은 어조로 베토리에게 쓴 편지에서, 감정이 북받친 그 위대한 인물을 갑자기 이렇게 말문을 터뜨린다. (나는 메쎄르 프라네스코 귀차르디니를 사랑하네. 그리고 나의 조국을 내 영혼보다도 더 사랑하네. 내 육십 평생의 경험을 두고 자네에게 감히 말하네만,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은 일찍이 없었다네. 평화는 필요하지만 전쟁을 그만둘 수는 없고, 게다가 우리의 군주는 평화나 전쟁 어느 쪽을 위해서든 필요한 일을 하기가 힘든 분이 아닌가.) 그 군주란 물론 가엾은 클레멘테였다. 그는 평소의 우유부단함 속에서 스스로 군주가 될 것인지 교황이 될 것인지를 아직 결정치 못하고 있었다.
(육십 평생)이라니! 그는 아직 그만큼 나이를 먹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나이를 더한 것은 단지 자신의 말에 귄위를 세우기 위해서, 또는 그냥 별 뜻 없이 숫자를 부풀리려는 데 그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짊어져 온 수많은 세월과, 자신이 감내해온 모든 노고와, 자신이 겪어온 모든 좌절감과 그리고 위대한 인물이며 위대한 시인들을 말없는 가운데 좌절케 하는 모든 사소한 불행들까지, 문든 그 모든 것의 무게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리라.
|
|
독서실 → 명상/지혜/처세
|
|
|
|
천년의 지혜가 담긴 109가지 이야기 - 김방이
6. 지혜의 샘
군자의 도리
궁하다고 실망하지 말고 통한다고 자만하지 말라. 그런데 공자는 ‘군자는 어려움을 꿋꿋이 지켜 이겨내지만 소인은 어려움에 처하면 마구 나쁜 짓’을 한다고 하였다. 그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인간의 도에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기 수양을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가난 때문에 배운 게 없기 때문에 ‘막가파’가 되고 ‘지존파’가 되고 살인자가 되었다고 변명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그러한 최악의 상태이기 때문에 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궁함을 이겨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
궁하면 통한다. (When things are at the worst they begin to mend.)
영광과 굴욕의 차이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의 혼란기를 틈타 쿠테타를 일으켜 1804년에 프랑스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무리한 전쟁 수행으로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고 1812년에는 러시아를 침공하였으나, 혹독한 추위로 40만의 대군을 잃어버리는 참패를 당한 후,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 1813년 엘바섬에 귀양을 갔다. 우리는 아주 높은 자리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이 당당하고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태로 급전직하여 ‘꽁지 빠진 새’같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채근담에서는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교만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한 자리는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는 부드럽고, 너그럽게 대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나무 인형과 흙 인형
흙으로 만든 인형과 나무로 만든 인형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무 인형이 말했다. “비가 오면 자네는 낭패겠구먼.” 이 말을 듣고 흙으로 만든 인형이 말했다. “나는 원래 흙으로 만든 인형이니 무너지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비가 많이 오면 자네는 어디까지 떠내려 갈 지 알 수 없구먼.” 영광의 자리란 이들 인형의 운명과 같다. 비가 오면 흔적도 없이 없어지는 흙 인형이거나, 세상 어느 곳까지 정처없이 떠내려가는 나무 인형과 같다. 황제에서 하루 아침에 몰락하여 섬으로 유배되는 나폴레옹처럼, 대장에서 이등병으로 급전직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영광의 자리에 낮고 튼튼한 돌담을 쌓아라. 그러면 무너져 내릴 염려가 없다.
영광과 굴욕의 자리는 백지 한 장 차이다.
(From the sublime to the ridiculous is only a step.)
현명한 사람
가섭과 베드로
석가모니의 수제자 가섭은 눈치 빠르기가 ‘도갓집 강아지’같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석가가 설법 도중에 연못속의 연꽃을 가르키자 그것만으로도 석가의 뜻을 알아듣는 이심전심 제일인자였다. 석가의 수제자가 가섭이라면 예수의 수제자는 베드로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베드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입니다”라고 크고 또렷또렷한 소리로 정담을 말하여, 예수로부터 “너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라고 크게 칭찬을 받았고,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너의 반석 위에내 교회을 세우겠다“고 하여 후계자로 지명받는 영광까지 받았다. 그렇게 예수로부터 칭찬을 받은 그였지만, 실제로는 석가모니의 수제자인 가섭과 달리 무식하고 시쳇말로 ‘감’을 잘 잡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꾸중 듣는 베드로
예수가 예수살렙으로 올라가 유태인 대제사장, 장로 그리고 율법학자들에 의해‘사형을 당했다가 3일만에다시 살아날 것이다’는 ‘기독교의 핵심 사항’을 비장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밝히자 베드로는 “주님, 주님이 그런 고통을 받는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아첨성’ 발언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예수로부터 “이 사탄같은 놈아! 썩 물러가거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놈이로구나. 네가 하느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 일만 생각하고 있구나“라고‘악마 같은 놈’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예수의 기도
베드로는 예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모신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이 세상에 온 뜻마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아둔한 사람이었다. 예수가 죽기 얼마 전 그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인류의 죄를 대신 없애주기 위하여 죽을 준비의 기도를 하러 겟세마네에 갔다. 예수는 몹시 괴로워하면서 그들에게 “지금 내가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피땀을 흘리면서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이 고난의 잔(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솔직히 말씀드려서 이렇게 젊은 나이로 세상의 재미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억울하고 겁이 납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예수가 피땀어린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베드로를 포함한 세 제자는 세상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깊은 잠에 덜어져 코를 골고 있었다. 예수는 베드로를 깨워 “너희가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정신차려 기도하라.”고 주의를 준 후에 다시 기도하러 갔다.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떠나갈 수 없다면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를 드린 후에 다시 와보니 베드로를 포함한 제자들은 이번에도 모두 잠에 곯아 떨어져 코를 골고 있었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너희가 아직도 자고 있느냐? 내가 죄인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일어나거라. 가자. 나를 팔아 넘길 사람이 가까이 왔다.”라며 인류를 위한 ‘죽음의 순간’이 왔다고 말했으나, 잠결의 베드로는 이 말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잠만 ‘퍼잘’ 정도로 아둔한 사람이었다.
배신
베드로는 예수가 죽음을 예상하고 예수의 제자 중 하나가 그를 배신할 것이다고 말을 하자 그는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린다고 해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맹세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탄로날 거짓말까지 스스럼 없이 말했던 사람이다. 그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 하지 않겠습니다.”고 또 큰소리로 장담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가 붙잡히던 날 밤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 성경에 한 청년이 베홑이불만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 잡히자 몸에 두른 옷을 팽개치고 알몸으로 달아났다고 하였는데 이 청년이 아마 베드로였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 날 밤 예수와 같이 붙잡혀 갈 것이 두려워, 늦은 저녁부터 닭이 울기 직전까지의 그 짧은 시간에 세 번씩이나 철저하게 “나는 예수라는 작자를 모릅니다. 만약 내가 그를 안다면 하늘로부터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라고 예수를 안다는 사실을 부인하였다.
|
|
글나눔 → 읽어둘문학
|
|
|
|
맥베스( Macbeth:1605-1606) 2/2
-제4막-
맥베스는 마녀들을 찾아가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맥베스는 마녀에게 물었다.
"어두운 밤에 은밀히 다니며 흉악한 일을 꾀하는 마녀들아! 그들이 무슨 짓들을 하고있느냐? 나에게 말을 해다오"
"맥베스! 맥베스! 맥더프를 경계하라 파이프의 영주를 경계하라..."
마녀는 맥베스가 가장 무서워하고 있는 것을 알려 주었다. 맥베스는 맥더프를 죽일 결심을 하였다. 마녀들은 말했다.
"잔인하게 대담하게 결단성 있게 하라 인간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라 여자가 낳은 자는 맥베스를 해치지 못하리라"
"버남 숲이 단시네인의 높은 언덕까지 공격해 오지 않는 한 맥베스는 정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마녀들은 그림자처럼 여덟 사람의 왕이 나타나고 최후의 왕은 손에 거울을 들고 있으며 뱅크오의 망령이 그 뒤에 따르는 환상을 보여 주었다. 뱅크오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이 자기의 자손이라고 말했다
"아! 그것이 사실이냐?"
맥베스가 미친 듯이 소리치자 모든 장면이 사라지고 레녹스가 들어왔다. 레녹스의 보고에 의하면 맥더프가 잉글랜드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나의 계획이 잘 실행되도록 곧 움직이게 하자. 맥더프의 성을 습격하자. 파이프를 탈취하여 그 자와 핏줄을 나눈 불운한 놈들은 모두 다 칼날에 죽으리라.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
한편 맥더프 부인은 위험이 임박해 오는 줄도 모르고 집안에 있다가 자객들에게 아들과 같이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잉글랜드로 망명한 맥더프는 왕자 맬컴을 만나 맥베스를 없애고 다시 나라를 찾을 것을 협의했다. 그 때에 역시 잉글랜드로 망명했던 스코틀랜드 귀족인 로스가 등장했다. 맥더프가 자기 가족의 안부를 묻자 로스는 말했다.
"당신의 성은 불의의 습격을 당하고 부인과 자식들은 무참히 살해되었습니다. 부인 자녀 시종 눈에 보이는 대로 모조리..."
이 말을 들은 맥더프는 모자로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복수의 결심을 더욱 굳혔다
-제5막-
단시네인 성안의 별실에서 맥베스 부인의 시녀와 시의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맥베스 부인이 몽유병이 걸렸다는 것이다
"시의님께도, 누구에게도 말씀드릴 수 없었습니다. 직접 보지 않고는 제 말씀을 믿지 않으실 테니까요"
시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맥베스 부인이 촛불을 들고 나타났다.
"저것을 보십시오. 지금 나오십니다. 저 모양입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깊은 잠에 빠져 계십니다. 주의하여 보세요. 여기 숨으세요"
"지금 무엇을 하시는 것입니까? 보시오. 손을 비비고 계십니다"
"늘 저렇게 손을 씻는 시늉을 하고 계십니다"
시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맥베스 부인은 손을 씻는 시늉을 하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망할 피야 없어져라 아니 폐하 무엇을 하십니까? 군인이 겁을 내세요? 누가 안다고 두려워하십니까? 우리의 권력을 재판할 자가 어디에 있어요? 하지만 그 노인이 그렇게도 피가 많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온몸에 왕후의 권위를 다 가진다 하여도, 가슴에 저런 고통은 지니고 싶지 않습니다"
시녀가 시의에게 말하자 시의는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입밖에 낼 수 없다며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얼마 후 잉글랜드 군은 맬컴과 그의 숙부 시이워드 그리고 충성스러운 맥더프의 지휘로 피비린내 나는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맥베스는 시시각각으로 일어나는 반란에 격분하여 단시네인 성의 방위에 전념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왕의 칭호가 난쟁이 도둑놈이 거인의 옷을 훔쳐 입은 것같이 몸에 맞지 않는다고 수군대고 있었다. 맥베스는 성 안에 홀로 앉아서 "여자가 낳은 자는 너를 해칠 수 없다"라는 마녀들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때에 종복이 뛰어들어와서 일만 명의 군대가 공격해 오고 있다는 보고를 했다. 맥베스는 소리를 질렀다
"나는 뼈에서 살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싸우겠다. 나의 갑옷을 가져 오너라 기병을 더 보내서 국경을 순찰하게 하라. 공포심을 퍼뜨리는 자는 사형에 처하라"
맥베스는 정신이 이상해져 갔고 맥베스 부인의 병세도 더욱 악화되어 갔다. 맬컴이인솔한 군대는 버남 숲 부근의 마을에 도착하였다.
"여러분 우리가 집에서 편안히 쉴 수 있는 날이 가까이 온 것 같소"
맬컴은 많은 동지와 군인들에게 외쳤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습니다"
"맥베스의 부하들은 다들 기회가 있으면 그를 배반하고 이쪽으로 합세하려고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이며 잃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확실한 결과는 공격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을 위하여 진군합시다"
그들은 성난 파도처럼 단시네인 성을 향하여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병사들은 나뭇가지를 꺾어서 위장을 했다. 한편 단시네인 성 안에서 방위를 하고 있던 맥베스는 부하들에게 장담했다.
"우리의 성은 견고하다. 포위가 무엇이냐. 놈들이 머물게 내버려 두어라. 기아와 열병으로 그 놈들은 한 놈도 남지 않을 것이다"
"폐하 왕후 폐하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여자들의 울음 소리가 들릴 때 종복이 들어와 보고를 하였다.
"언젠가는 죽어야 할 몸이었다. 한 번은 들어야 할 소식이었다"
이 때에 사자가 들어와서 맥베스에게 보고를 하였다.
"제가 언덕 위에서 파수를 보고 있다가 문득 버남 쪽을 바라보는데 그 숲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만약에 그 말이 거짓이라면 네 놈을 나무에 산 채로 매달아 굶어 죽게 할 것이다. 그 마녀들은 버남 숲이 단시네인까지 오지 않는 한 두려울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 숲이 단시네인으로 오고 있다. 달아날 수도 없고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 경종을 울려라 바람아 불어라 파멸아 오너라! 갑옷이라도 몸에 걸치고 죽겠다"
맥베스는 절망적으로 외쳤다. 맥더프는 혼자 맥베스가 있는 곳으로 뛰어들어왔다. 그리고 맥베스에게 소리쳤다
"돌아서라. 지옥의 사냥개야 돌아서라"
"너만은 피하려고 했다. 돌아가라. 나의 영혼은 네 집안의 피만으로도 너무 짐이 무겁다"
"너 같은 놈과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칼이 나의 말을 대신하리라"
"너와는 싸우지 않겠다"
"그러면 항복을 해라 비겁한 놈 너의 초상을 막대기 끝에 걸어 놓고 그 아래에 '찬탈자를 보라'라고 써 붙일 것이다"
"항복은 안 한다. 최후까지 싸우겠다. 자 덤벼라. 여자가 낳은 자에게는 굴복하지않을 것이다"
"너의 그 미신은 단념해라 나는 달이 차기 전에 어머니의 배를 가르고 나왔다"
칼과 칼은 불꽃이 튀었다. 마침내 맥베스는 맥더프의 칼에 쓰러졌다. 싸움은 맬컴의 승리로 끝났으며 백성들은 스코틀랜드 국왕 만세를 외쳤다. 왕위에 오른 맬컴은 축하를 받으며 백성들을 위해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
|
첫쪽 → 배경화면
|
|
|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