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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740호
단기 4343. 4. 26 (음력 3. 13)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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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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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삶에서 고통을 덜어 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 때문에 살고 있단 말인가? - 조지 엘리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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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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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밸’과 ‘면비교육’
북녘의 ‘곧은밸’은 “너무 단순하고 고지식한 사람을 비겨 이르는 말”이다. 물론 이외에도 생리적으로는 창자의 한 가지인 ‘직장’을 가리키기도 하고, 또 음식을 먹고 바로 위생실(우리의 화장실)로 가는 사람을 농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널리 쓰이는 것으로서 첫째 뜻으로 사용된 예를 보면 “가만히 지내보면 성님네 저 애가 갈범이라면 우리 저놈은 너구리라니까. 창억이가 곧은밸이라면 우리 저 녀석은 남보다 내장이 열 발은 더 길구 슬슬 사려졌을 게요. 속에 무슨 생각을 품고 다니는지….”(<근거지의 봄>,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1년, 43쪽)와 같은 것이 있다.
‘면비교육’은 “교육사업의 비용을 부형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하는 교육”이다. 말하자면 ‘무상교육’의 뜻이다. 문예작품에는 “여기도 지난날에는 오가자만 못지않게, 아니 오가자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형세였다. 그런 것을 김성주 동무가 와서 불과 한 해 사이에 이처럼 혁명화된 농촌을 꾸려 놓고 면비교육까지 실시하고 있다. 이것을 옆에서 보고 체험도 적지 않게 한 우리들은 왜 이 모양인가.”(<대지는 푸르다>, 4·15 문학창작단, 문예출판사, 1987년, 127쪽)와 같은 예가 나온다. 이때 ‘면비-’는 중국어식 표현이다.
전수태/전 고려대 전문교수
쿠사리
인간의 언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요즘 가장 흔하게 통용되는 설에 따르면 지구상에 약 6000개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한다. 소쉬르 이후 이런 인간 언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많은 연구가 돼 있으나, 비속어나 욕설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다. 대개 글말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다 보니 문자 기록 대상인 고상한 말을 주로 다루게 되어, 문자로 기록되지 못했으면서 정서적으로 관심이 덜한 비속어와 욕설을 빠뜨린 탓이 가장 크다.
우리 외래어에도 비속어에 속하는 것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쿠사리’이다. 재미있게도 이는 비속어가 매우 적다는 일본말에서 왔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실은 ‘면박’, ‘꾸중’, ‘핀잔’을 뜻하는 일본말에는 ‘쿠사리’와 비슷한 것이 없다. 소리로 보아 ‘쿠사리’의 어원으로 생각되는 것은 ‘구사리’(くさり)인데, 이는 ‘썩다’라는 뜻의 동사 ‘구사루’(くさる)의 명사형이어서 ‘썩음, 썩은 것, 썩은 부분, 썩은 정도’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도 우리가 쓰는 ‘쿠사리’의 어원으로 삼기는 부족하다. 그보다 더 가능성이 있는 것은 ‘구사레’(くされ)인데, 이는 ‘구사리’의 뜻으로도 쓰이면서 욕설로서 명사 앞에 놓여 ‘더러운’, ‘썩어빠진’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くされ 人間’은 ‘더러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욕설을 듣게 되면 당연히 면박이 될 것이며, 이 ‘구사레’가 나중에 발음이 변하여 ‘쿠사리’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관
우연찮게
‘우연하다’는 어떤 일이 뜻하지 않게 저절로 이루어져 공교롭다는 뜻이다.‘우연히’는 ‘-하다’ 대신 접미사 ‘-히’가 붙어 부사가 됐다.‘우연히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우연찮게’는 ‘우연하지(치) 않다’의 준말이다. 우연하지 않은 것이니 필연인데 그대로 우연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가시버시
사전은 ‘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부부(夫婦)는 남편(夫)과 아내(婦)다.‘가시버시’에서는 ‘가시’가 아내이고 ‘버시’가 남편이다.
‘가시어미’‘가시아비’‘가시할미’에서 알 수 있다. 각각 ‘장모’‘장인’‘처할머니’다.‘버시’는 ‘가시밧’의 ‘밧’에서 왔다.‘밧’은 ‘밖’이고 ‘남편’이다.‘바시’를 거쳐 ‘버시’가 됐다.
한자의 두음, 활음조
'一笑一少'란 말이 있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진다'는 뜻이다. 웃음이 우리 건강에 매우 좋다는 것이니 팍팍한 세상 웃으며 살자는 얘기다. 이것과 정반대되는 문장이 바로 '一怒一老'다. '한 번 성내면 한 번 늙는다'는 말이다.
'一笑一少'는 '일소일소'로 읽고 그렇게 표기하면 된다. 그러나 '一怒一老'의 독음(讀音)을 적은 것을 보면 '일노일노' '일로일로' '일노일로' 등 제각각이다. 어떻게 쓰는 것이 바를까.
'怒'는 '성낼 노'다. 이 글자는 본래 음이 '노'이므로 '노'로 읽고 '노'로 적는다. 격노(激怒), 공노(共怒), 분노(憤怒), 진노(震怒) 등이 그런 예다. '老'는 '늙을 로'다. 노인(老人)의 '노'는 단어의 첫머리이기 때문에 두음법칙에 따라 '노'로 쓴다. 단어의 첫머리가 아닌 경우 본음대로 적으면 된다. 경로(敬老), 양로(養老), 조로(早老), 해로(偕老) 등이 그런 예다.
따라서 '一怒一老'는 '일노일로'로 적어야 맞다. 본래의 소리대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喜怒哀樂'은 왜 '희로애락'으로 읽고 쓰는가. 본음이 '희노'인데도 '희로'라고 하는 것은 활음조 현상 때문이다. 활음조란 듣기에 좋은 발음의 특질을 말한다. '대로(大怒)'도 이와 같은 경우다.
내 자신, 제 자신, 저 자신, 너 자신, 네 자신
결심한 일마다 작심삼일인 자신을 발견했을 때, 한 번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참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입에선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 하지만 '내 자신'은 맞는 표현이 아니다. '나 자신'이라 해야 한다.
'내'는 두 가지 형태로 쓰인다. 첫째,"내가 보낸 편지" "범인은 내가 아니다"처럼 '나'를 뜻하는 주어 뒤에 '~가'라는 조사가 붙을 때, 즉 '나'가 '~가' 앞에 쓰이는 경우다. 둘째, "내 것" "내 생각"에서처럼 '나'에 '의'를 뜻하는 'ㅣ'가 붙어 사용되는 경우다.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에서의 '내 자신'은 '내' 뒤에 주격 조사 '~가'가 붙지 않았으므로 둘째 경우일 텐데 그렇다 하더라도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다. "나의 자신이 원망스러워"와 같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강조하려면 '나 자신'이라고 써야 한다.
"제 자신이 몹시 부끄럽습니다"에서의 '제 자신', "네 자신을 알라"에서의 '네 자신' 역시 '저 자신' '너 자신'으로 써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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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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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앞 능소화 - 이현승
1 이를테면 제 집 앞 뜰에 능소화를 심은 사람의 마음이 그러했을 것이다. 여름날에, 우리는 후두둑 지는 소나기를 피해 어느 집 담장 아래서 다리 쉼을 하고, 모든 적막을 뚫고 한바탕의 소요가 휩쓸고 갈 때, 어사화 같은 능소화 꽃 휘몰아쳐지고 있을 때,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그 집의 좋은 향기에 가만히 코를 맡기고 잠시 즐겁다. 능소화 꽃 휘어진 줄기 흔들리면, 나는 알고 있다. 방금 내가 꿈처럼, 혹 무엇처럼 잠시 다녀온 듯도 한 세상을.
2 말걸어 오지 않는 세상을 향한 말걸기. 언뜻언뜻 바람을 틈타고 와 확, 뿜어져 나오는 향기란 아무것도 예비할 수 없었던 도난사고처럼 툭, 어깨 치며 떠난 자에게서 후발되는 것. 뒤숭숭한 꿈자리처럼 파편적으로만 나타나는 기억 속에서 징후로만 읽혀지는 것. 그러나, 감추어진 것을 향한 나의 짐작은 두렵다. 다 익었다는 것 속엔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다. 열매도 없는 화초의 지독한 향기. 급소를 중심으로 썩어가는 맹독성 혼기 지난 여인처럼 꽃은 향기 속에 부패의 경고를 담는다.
모든 향기의 끝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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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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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 - 이혜옥
물은 바람 자는 하늘 위로 흐르고 새들은 지껄이며 햇빛 틈을 가르는데 얽히고 설켜진 인연들 꿈 한 장에 걸려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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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평론 /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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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최재봉
문학으로 만나는 역사 - 도종환의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눈물이, 떠난다는 생각을 얼핏 떠올렸을 때/얼마나 눈물이 쏟아지던지/애착이나 억울함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부정하고 부정해도 끝내 부정할 수 없는/우리의 마음 하나 아주 여리고/아주 작던 그래서 많이도 고통스러웠던/지금까지 나를 끌고 온 그런 것 하나를/역시 버릴 수 없어서 아팠다.”
해직교사 시인 도종환(42)씨의 최근작 `겨울 금강'의 한 대목이다. 지난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쫓겨나 햇수로 9년째를 맞는 처연하면서도 굳건한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전교조 충북지부장인 그는 동료들과 함께 11일부터 다시한번 단식에 들어간다. 최근 확정된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이 교직원노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항의의 표시이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가/단식 농성장에서 병원으로 실려오는 차 안에서/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나이 사십에.//아름다운 세상 아, 형벌 같은 아름다운 세상” (도종환, `단식' 전문).
지난 92년의 복직투쟁 당시 그는 단식 나흘째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지쳐 있는 내게 다가와/몰래 하나씩 먹으라고/김선생이 손에 쥐어 준/빠알간 대추 한 줌”(`대추')을 요령껏 먹었더라면 병원 신세를 지도록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으로서의 양심과 자존심이 그런 요령을 허락하지 않았다.
“얼어붙은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얼음 속에 갇힌 빈 배 같은 그대를 남겨 두고/나는 아직 살아 있어서 굽이굽이 강길을 걷는다/그대와 함께 걷던 이 길이 언제 끝날 지/아직은 알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걸어/새벽의 바다에 이르렀음을 끝까지 믿기로 한다/내가 이 길에서 끝내 쓰러진 뒤에라도/얼음이 풀리면 그대 빈 배만으로도 내게 와 다오/햇살 같은 넋 하나 남겼다 그대 뱃전을 붙들고 가거나/언 눈물 몇 올 강가에 두었다 그대 물살과 함께 가리라” (`겨울강' 전문).
전교조가 무엇이관데 시인으로 하여금 이토록 비장한 노래를 부르게 하는가. 시인이 배를 곯다가 쓰러지면서까지 놓치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과 “새벽의 바다”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전교조는 멀리는 1960년 4·19가 열어젖힌 해방과 자유의 공간에 나타났다가 5·16으로 된서리를 맞은 4·19 교원노조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좀더 가까이는 70, 80년대의 전사회적 민주화 투쟁과 그 일부로서의 교육 민주화 투쟁의 소산이다. 전교조의 전신은 6월항쟁 직후인 87년 9월에 창립된 (민주교육추진)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였다. 전교협이 전교조로 변신하게 된 것은 협의체 성격의 임의단체인 전교협 보다는 노조로서 강력한 조직력을 갖는 전교조가 교육민주화투쟁에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임의단체 전교협을 주시해오던 당국은 전교조의 결성과 동시에 강경 탄압에 나섰고, 전교조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싸움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도종환씨의 시집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은 전교조 사태로 인해 해직의 아픔을 감수해야 했던 시인의 심정이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적 소묘와 함께 담겨 있다.
“나는 또 너희들 곁을 떠나는구나/기약할 수 없는 약속만을 남기고/강물이 가다가 만나고 헤어지는 산처럼/무더기 무더기 멈추어 선 너희들을 두고/나는 또 너희들 곁을 떠나는구나/(…)/우리 꼭 다시 만나자/이 짧은 세상에 영원히 같이 사는 사람은 없지만/너희들이 자라고 내가 늙어서라도 고맙게 자란 너희들의 손을 기쁨으로 잡으며/이 땅의 인간다운 삶을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하나 되어 꼭 다시 만나자”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전교조 결성 초기의 싸움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랑하는 선생님들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 머리가 굵은 고교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수만 명의 학생들이 교내 농성에서부터 항의 투신, 투석전 등의 방식으로 싸움에 나섰고, 광주와 부산, 인천 등지에서는 고교생대표자협의회라는 조직이 결성되기도 했다. 해마다 1백명 이상의 학생들이 성적제일주의 교육에 절망해 죽음을 택하는 상황에서 전교조의 교육이념과 소속 교사들의 실천이 어린 학생들에게도 커다란 호소력을 지녔다는 반증일 터였다. 초기 전교조의 싸움이 벌어진 89년 여름은 잇따른 방북사건으로 조성된 공안정국의 한파가 전체 사회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 무렵이었다. 야당은 물론 재야와 노동운동 진영조차도 숨을 죽이고 있던 공안한파 속에서 전교조는 반독재민주전선의 최전위에서 모범적으로 싸웠다. 전교조의 헌신적인 싸움에 고무된 민주진영은 `전교조 탄압저지와 참교육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참교육실현을 위한 학부모회' 등의 단체를 결성해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범국민대회를 열기도 했다. 청주 중앙중학교에 재직하고 있던 도종환씨는 전교조 결성 초기에 구속되었다.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에 실린 많은 시들은 유치장과 감방에서 지은 탓에 비장한 결의에 차 있는 경우가 많다.
“옳다고 믿어 이 길을 택했으므로/옳은 것을 바르게 행하지 않는 것도/죄악이라고 믿었으므로/우리는 새벽이 오는 쪽을 향해/담담히 웃으며 갈 수 있습니다./서슬 푸른 칼날에 수천의 목이 잘리고/이 나라 땅이 곳곳이 새남터가 된다 하여도/우리는 이 감옥에서 칼날에 꺾이지 않는/마지막 이름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쓰러져 있어도/빛나고 높은 그곳을 향해/우리는 이 길을 곧게 갑니다.” (`정선생님, 그리고 보고 싶은 여러 선생님께').
“어쩌다 늦은 오후 길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핑돕니다”라고, 시인은 시집 후기에 쓰고 있다. 그것이 89년 9월이었고, 그로부터 어느새 7년 남짓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 그가 담임을 맡았던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이제 대학 2학년의 청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남들 다 출근할 때 `나만 갈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착잡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에게도 출근할 곳이 생겼다.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의 `참교육 빌딩' 3층 전교조 충북지부 사무실이 그곳이다. 사무실에서는 이 교사 시인이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중앙중학교가 지척에 바라다 보인다. 더이상 학생들의 모습에 눈물바람을 하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조차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해직될 당시에 그 기간이 이토록 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마도 전교조를 탈퇴하고라도 현직에 남는 길을 택했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해직의 아픔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 발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걸려오는 전화로 석유난로가 안온하게 덥혀 놓은 사무실 안의 분위기는 새삼 분주하고도 긴박하게 바뀐다. 또 한번의 단식농성 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기 전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 속에 중앙중학교를 찾는다. 학생들은 모두 교실에서 수업 중이라 운동장은 텅 비어 있다. 당분간은 들어설 수 없는 그 운동장을 바라보며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했던 어릴 적 꿈을 가만히 되새겨 본다. 무엇이 그 꿈을 이처럼 유예시키고 있는가도 따져 보면서.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 주며/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어릴 때 내 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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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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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꿈꾸는 너희들이여 - 라즈니쉬 外
1. 배꼽 - 라즈니쉬
수행방법
어떤 사람이 한 선사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종교적 수행을 합니까?> 그가 대답했다. <나의 수행방식은 일상 생활을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저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잡니다> 질문한 사람이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군요> 선사가 말했다.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질문을 한 사람이 여전히 혼란스러워, 또 물었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선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먹을 때 다른 많은 것들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먹으면서 생각하고, 꿈꾸고, 상상하고, 회상합니다. 당신은 단순히 먹기만 하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먹을 때 단순히 먹기만 합니다. 거기에는 먹는 것만이 존재할 뿐, 다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순수합니다. 당신은 잘 때 수많은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자면서 꿈꾸고, 싸우고, 악몽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내가 잘 때는 단순히 자기만 할 뿐, 거기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잠이 존재할 때는 오직 잠만이 존재합니다. 나조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먹는 것이 존재할 때는 오직 먹는 것만이 존재합니다. 나조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걷는 것이 존재할 때는 오직 걷는 것만이 존재합니다. 나조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걷는 것이 있을 때 나는 그저 걷기만 합니다>
일상적이되, 일상생활 안에 깨달음을 끌어넣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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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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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제1장 문학 안팎의 내 삶
앗, 미안, 실수였어!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게 된 이후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사람은 반드시 실수를 한다'라는 것이다. 하긴 글을 쓰기 이전부터 일상적으로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이제 와서 새삼스레 그렇게 통감할 필요도 없지만, 글을 쓰기 전에는 대부분의 잘못은 "앗, 미안해, 실수였어" 하고 넘어갔다. 상대방도 "정말 어쩔 수 없군" 하는 정도로 넘어가 주었다. 그러나 글을 쓰면 실수란 것이 확실하게 흔적을 남기게 될 뿐 아니라 그것이 광범위하게 퍼지게 된다. 실수를 깨달았더라도 "앗, 미안해요. 실수였어요" 하고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과를 하며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암만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는 해도 이건 너무 골치 아프다. 그 대신에-라고 할 것도 없지만-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 아닌가 한다. 다른 사람이 실수했다고 해서 그걸 트집잡으며 "어이, 너 그때 그런 말을 했었지. 맞지, 그랬었잖아" 하며 빈정대는 일은 일단 없다. 덕분에 14년 동안 그런대로 평온한 결혼 생활을 해왔다. 문장상의 실수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번역이다. 여하튼 원본이 있으므로 나보다 어학력이 뛰어난 사람이 치밀하게 원본과 번역문을 맞춰 보면 자잘한 실수 같은 건 얼마든지 나오게 된다. 얼마 전 가쓰시카 구에 사는 모리시타 씨라는 사람이 엽서를 보냈는데, "당신의 번역 중에는 2주(a couple of weeks)가 '이틀'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2주'를 잘못 옮긴 게 아닙니까?"라고 지적해 주었다. 이것은 정말 누가 뭐라 해도 나의 잘못이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 후에도 부끄럽지만 'twenty one'을 '31'로 옮긴 적도 있고, 'bald'와 'bold'를 혼동해서 번역한 일도 있다. 어째서 그런 실수를 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학창 시절, 답안 용지에 "사소한 실수가 많으니까 다시 잘 보도록" 하고 몇 번이나 씌어져 있던 기억이 있는데, 그런 성향은 나이를 먹어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
다만-이런 말을 쓰면 변명을 늘어놓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지만-하나의 문장, 하나의 단어를 정확하게 옮기기 위해서 하루종일 끙끙대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조마조마한 부분을 어찌어찌 통과해서 비교적 평탄한 부분으로 들어갔을 때 후유 하고 한시름 놓다가 사소한 실수를 하게 되는게 대부분이다. 물론 나중에 원본과 번역문을 몇 번이고 다시 맞춰 보긴 하지만, '이런 데서 실수를 했을 리가 없어'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박혀 있어서 몇 번이나 체크를 해도 실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난처한 일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식은땀이 흐른다. 다른 사람에게 지적을 받을 것까지도 없이, 나 자신이 오역을 나중에 퍼뜩 깨닫는 경우가 있다. 밤중에 이부자리에 들어가 불을 끄고 멍청히 누워 있을 때에 "앗, 틀렸어. 그건 실수야!" 하고 벌떡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주의하지 않아 저지른 실수라기보다는 좀더 중대한 의미를 가진 잘못일 때가 많다. 따라서 전자보다 식은땀의 양도 훨씬 많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부주의해서 저지른 무수한 실수들을 잔뜩 모아 그것을 병리적으로 분석해 보면, 꽤 재미있는 연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문장뿐만 아니라 나는 일상 생활의 온갖 측면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실수를 저지르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소변을 봐야지' 하고 화장실에 갈 생각이었으나 잘못해서 욕실에 가서 샤워를 하고 그대로 방에 돌아와선, "앗, 이상한데 아직 소변이 마렵잖아. 몸 상태가 안 좋은 걸까?" 하고 의아해 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 거에 비하면 'twenty one'을 '31'로 번역하는 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전철 시간표나 전화 번호부를 만드는 편집자가 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번역만이 아니라 이렇게 내 글을 쓰고 있을 때도 때때로 심한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나는 데이터를 구사하여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타입의 글쟁이도 아니고, 모델 소설이나 논픽션도 쓰지 않아 그 일로 특별히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도 없으므로 대개의 실수나 사실 오인은 웃음으로 넘겨 버리고 만다. 며칠 전 아키시마 시의 오카무라 씨라는 사람으로부터, 하루키 씨의 소설 중에 '폴크스바겐의 라디에이터'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이상하지 않느냐는 투서가 모 잡지에 게재된 걸 알고 계십니까, 하는 편지를 받았다. 나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람들한테 물어 보니 분명히 폴크스바겐에는 라디에이터가 없는 듯하다. 영락없는 나의 실수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느냐 하면, 그러기는커녕 웃으며 넘겨 버린다. 왜냐하면 이것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세계에서는 화성인이 하늘을 날아다녀도, 코끼리를 축소하여 손바닥에 올려 놓아도, 폴크스바겐에 라디에이터가 붙어 있어도, 베토벤이 교향곡 11번을 작곡했다 해도, 그건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앗, 그렇구나. 이건 폴크스바겐에 라디에이터가 붙어 있는 세계의 얘기구나!'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어 주면 나는 굉장히 기쁠 것 같다. 그래도 역시 실수는 자랑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성실한 분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나올 영문판 <핀볼, 1973>에서는 그 부분을 제대로 고쳐 놓았으니까 그 쪽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보니 책 소개까지 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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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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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를 위하여 - 김규항·김정란·진중권·홍세화
김규항 에세이
딸 키우기
김단. 먹고자는 시간을 뺀 하루의 대부분을 그리기와 종이접기 따위로 보내는 내 딸이다. 김단이 태어나자 아내와 난 김단에게 결혼을 권유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갓난 아일 두고 좀 싱거운 짓이었고 얼마간 관념적이었지만 여자가 자존을 지키며 살기 힘든 세상에 또 하나의 여자를 내놓은 장본인들은 긴장했고 그렇게라도 미래를 대비하고 싶었다. 김단은 사랑니 빼러 치과에 가본 일 말곤 병원 근처에도 가본 일이 없는 아비와는 달리 세 살이 되기 전에 입원을 두 번씩이나 해서 애를 끓였다. 그후론 별 탈 없이 자랐고 언젠가 샤갈화집을 사준 이후 커서 '화가아저씨`가 되겠다고 말하는 김단은 다섯 살이다. 다섯 살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밖에서 놀다 들어온 김단이 내 방 문을 두드렸다.
"아빠. 삼식이(가명)가 내 고추 만졌어." 나는 놀랐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랬어, 언제?" "응, 어제."
김단은 어제 이상의 과거는 전부 어제라고 말하지만 눈치로 볼 땐 이삼일전 일이다.
"아빠한테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엄마한테 말하면 안 되는데…" "엄마한텐 말 안 할게. 약속. 그런데 아빠한테 말해야 아빠가 도와주지." 망설이던 김단은 말했다. "응, 삼식이가 내 고추 만지구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어." "아빠가 삼식이 혼내 줄게. 다시는 안 그럴 꺼야. 그런데 혹시 다른 오빠나 아저씨가 단이 몸 만지면 단이가 싫다고 말해야 해." "그래도 만지면 ?" "그땐 막 화내고 미운 말해도 돼. 그리고 아빠한테 꼭 말해야 돼. 그런 오빠나 아저씨들은 다 겁쟁이들이니까 아빠가 혼내줄수 있어. 약속할 수 있지?" "응."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까지 찍었지만 나는 엄마에게 비밀로 하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아내는 다음 날 삼식이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이 일을 일러주었고 삼식이 엄마는 아들에게 성교육을 시작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일거리('영화언어 발행인`이 라는 그럴싸한 직함과는 달리 최근 이삼 년 동안은 남의 책을 만들어 주거나 몇 푼의 원고료에 말도 안되는 소리를 끼적거리는 부업에 전념하는 편이다)를 주겠다는 후배와 마주 앉아 애를 쓰고 있는데 집에서 삐삐가 왔다. 바로 전화를 했더니 김단이 눈 밑이 퍼렇게 되어 들어 왔단다. 김단은 지 아비를 닮아 무척 고집이 센데 완력은 그 고집에 못 미치다 보니 남자아이들한테 얻어맞는 일이 잦았지만(예나 지금이나, 애나 어른이나 남자에게 항거한 여자에게 돌아오는 건 주먹뿐이다)그래도 눈탱이가 퍼렇게 멍이 든 건 처음이었다. 아내는 이 잘난 가장에게 지침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우선 김단이 제 딴엔 놀랐을 테니 잘 안정시키라고 아내에게 이른 다음, 놀라긴 매한가지로 보이는 아내에게 때린 놈 엄마한테 전화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삼가라고 말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내에게 아들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는 걸 보고도 그냥 지나가던 김단의 할머니 얘길 해주었다. 제법 가장 노릇을 해내고도 나는 담배연기를 뿜기 시작했다. 드디어 상황은 시작된 것이다. 이제 김단은 나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떨어져 지내게 될 것이고 지금까지 일어난 일보다 훨씬 심각한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도 점점 커질 것이다. 하지만 김단은 점점 더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을 얘기해주지 않게 될 것이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점점 작아질 것이다. 결국 김단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김단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강한 여자로 키워야 한다. 최악의 상황을 만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울면 안 된다. 남자 앞에서 우는 여자가 남자를 이길 방법은 없다. 어떤 경우에도 울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육체적인 힘도 중요하다. 태권도나 검도를 삼 년쯤 배우면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맞진 않을 것이다. 킥복싱도 좋은데… 온갖 생각을 하며 담배 연기를 뿜던 나는 재미있는 상상에 접어들어 빙그레 웃었다. 15년쯤 지나(그보다 훨씬 빠를 수도) 김단이 제 남자 친구와 처음으로 여행을 가는 날, 나에게 어떤 거짓말을 할까. 나는 과연 김단에게 속을 것인가, 아니면 속는 체 할 것인가. 아마 김단은 나를 속일 수 있을 것이다. 강한 여자는 남자를 속일 수 있다. (98년 8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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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양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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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 나면 죽고, 죽으면 태어난다 - 송지영 역
검술광 조왕 - 설검
옛날 조문왕*은 칼을 좋아했다. 검사들이 문전에 몰려 손님 노릇 하는 사람이 3천여 명에 달했는데, 낮이나 밤이나 왕 앞에서 싸워 사상자가 한 해 1백여 명에 이르렀는데도 왕은 이를 싫어하지 않았다. 3년을 이렇게 하여 나라가 기울자 제후들이 모사를 꾀했다. 태자 회가 이를 근심하여 신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왕의 뜻을 달래어 검사의 발길을 그치게 하는 사람에겐 천 금을 내리겠다." 신하들이 말했다. "장자라면 능히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에 태자가 사람을 보내 장자에게 천 금을 바쳤으나 장자는 이를 받지 않고 사자와 함께 와서 태자에게 물었다. "태자는 제게 무엇을 시키시려고 천 금을 보내셨습니까?" 태자가 말했다. "선생이 밝고 성스럽다는 말을 듣고 종자를 시켜 천 금을 받들어 폐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이 이를 받지 않으셨는데, 제가 어찌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장자가 말했다. "듣건대 태자께서는 저를 시켜 왕이 좋아하는 것을 끊게 하려고 하시는 모양입니다. 위로 대왕을 달래다가 그 뜻을 거스르거나 아래로 태자와 맞지 않게 된다면 신은 형벌을 받아 죽게 될 터인데, 어떻게 돈을 받겠습니까? 신이 위로는 대왕을 기쁘게 하고, 아래로는 태자와 맞으면 조나라에 무엇을 구한들 얻지 못하겠습니까?" 태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우리 왕이 만나시는 것은 검사뿐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칼을 잘 씁니다." 태자가 말했다. "우리 왕이 만나시는 검사들은 모두가 풀어헤친 머리에 일어선 구레나룻, 눌러쓴 관과 굵고 험한 관 끈, 거기에다 뒤가 짧은 옷을 입고 눈을 부릅뜬 채 고함치듯 말해야만 좋아하십니다. 선생이 선비의 옷을 입고 대하신다면 일은 반드시 크게 뒤틀릴 것입니다." 장자가 말했다. "검복을 준비하겠습니다.
* 조문왕 : 조나라 혜왕. 이름은 하이며, 무령왕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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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왕은 이상하리만큼 검술을 좋아했다. 항상 3천 명이 넘는 검객을 문하에 거느리고 있으면서, 밤낮 가리지 않고 검술 시합을 구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죽고 다치는 검객이 한 해에 1백 명이나 되어도 왕이 검술을 좋아하는 정도는 점점 심해만 갔다. 3년이 지나자 조나라의 형세는 눈에 띄게 약해져 이웃 제후들이 침략의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태자 회는 사태를 걱정한 나머지 신하들을 모아놓고 상의했다.
"왕의 기분을 상하지 않고도 왕이 검술에서 마음을 돌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상으로 천 금을 주겠다." "혹시 장자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신하들의 말에 따라 태자는 사신에게 천 금을 들려 장자를 맞으러 보냈다. 그런데 장자는 돈은 받지 않은 채 사신과 함께 태자를 찾아와 물었다.
"이런 큰 돈을 주시다니, 제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선생의 어진 재주를 전해듣고 꼭 힘을 빌리려 했는데, 예물을 받지 않으셨으니 굳이 간청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듣건대 저를 왕께 보내어 왕의 검술 취미를 버리도록 할 생각이시라는데, 만일 그렇다면 천 금은 필요없습니다. 만일 제가 잘못해서 왕의 비위를 거슬러 태자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면 저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죽을 사람에게 큰 돈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반대로 제가 만일 성공하게 된다면 저는 천 금뿐 아니라 바라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 아닙니까?" "과연 말씀대로군요. 부디 왕의 취미를 바꿔주십시오. 왕은 지금 검술에 정신이 빠져 다른 일은 다 잊고 계십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저도 검술을 약간은 알고 있으니까요."
태자는 기뻐하며 다시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선생은 학자 차림을 하고 계시는데, 왕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뒤가 짧은 옷을 입어 처음부터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며, 거친 말을 뇌까리는 살기 등등한 사람들입니다."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검객의 차림을 하겠습니다."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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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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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신발 신기기 - 오쇼 라즈니쉬
만족
어느 위대한 왕이 100세가 되었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잘살았고, 자신의 삶이 허용하는 모든 것을 즐겼다. 죽음의 신이 찾아와서 왕에게 말했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준비하라. 나는 너를 데리러 왔다."
왕은 죽음의 신을 보았다. 그는 위대한 전사였고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었지만 이번에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왕이 말했다.
"하지만 죽기에는 너무 일러요." 신이 말했다. "너무 이르다고! 너는 100년 동안이나 살았고 네 아이들조차 늙었다. 네 큰애가 80세나 됐다. 그런데도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왕에게는 100명의 아내와 100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가 죽음에게 애원하였다. "날 좀 봐주시오. 나는 당신이 반드시 누구인가를 데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만약 내가 내 아들 중에서 한 명을 설득시킨다면, 당신은 내 아들을 데려가고 대신 나를 100년 동안 더 살도록 봐주겠소?"
왕은 100명이나 되는 그의 아들들을 불러모으고 이야길 했다. 제일 큰아들은 침묵을 지켰다. 누구도 말하려 하지 않았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때 유일하게 가장 나이 어린 16세의 아들이 일어서서 말하는 것이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비정한 죽음의 신도 소년에게 미안함을 느껴 말했다. "너는 너무 순진하구나. 너는 99명의 형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네 형들은 위로는 80세이고, 그 밑으로는 76세, 70세, 60세인데 그들도 더 살기를 바라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아직 삶을 살아보지도 않았어. 나 역시 너를 데려간다는 것이 슬프구나. 다시 생각해 보거라." 소년이 말했다. "아니예요, 그냥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려니까 모든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그러니 슬프다거나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완전 무결한 각성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제 아버지가 100살을 사시고도 만족 못한다면 제가 굳이 더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 역시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99명의 형들도 저보다 오래 살고서도 아무것도 만족하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왜 시간을 낭비해야 합니까? 적어도 이런 일쯤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습니다. 노년에, 아버지로 하여금 100살을 더 즐기도록 합시다. 그렇지만 저는 여기서 끝장을 내고 싶습니다.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 상황을 보세요. 저는 이 한 가지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제가 만약 100년을 산다 하여도 결국은 만족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러니 제가 90년 후에 가든지 지금 가든지 다를 것이 없어요. 그냥 저를 데려가세요."
죽음의 신은 그 소년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 100년 후에 그가 다시 왕에게 찾아왔다. 그렇지만 왕은 아직도 삶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왕이 말했다.
"아휴, 100년이라는 세월이 왜 이리 빨리 지나간담! 내 아들들은 모두 죽었소. 그렇지만 나는 또 애를 낳았소. 이번에도 나는 내 아들들을 줄 수 있소. 죽음의 신이시여, 내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번번이 이와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었다. 천 년 동안이나 왕은 이렇게 목숨을 붙이고 살았고 그 동안에 죽음이 열 번이나 찾아왔다. 그리고 아홉 번이나 왕의 아들들을 데리고 갔고 그때마다 왕은 100년을 더 살았다. 열 번째 죽음이 찾아왔을 때에야 왕이 말했다.
"당신이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나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즐겁지는 않아도 당신을 따라가겠소.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계속해서 당신에게 호의를 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오. 또한 천 년이 나를 만족시켜 줄 수 없다면 만 년이라고 어찌 나를 만족시켜 주겠소."
이것은 작은 애착이다. 그대는 계속 살면서도 죽음이라는 관념이 떠오를 때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대가 아무 것에도 애착이 없다면 죽음은 바로 이 순간에도 편안하게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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