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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685호
단기 4343. 1. 11 (음력 11. 27)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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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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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나비문학상 공모전 예스24 문화웹진 ‘나비’ 주최, 단편소설 2백만원 등 상금
인터넷서점 예스24(www.yes24.com)의 지적,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담은 온라인 문화웹진 ‘나비(www.nabeeya.net)’에서는 오는 1월 20일까지 참신하고 재능 있는 신인작가를 발굴하고 우리 문학의 가능성을 넓히기 위한 제1회 ‘나비문학상’ 신인 작품 공모전을 개최한다.
모집 부문은 크게 <단편소설>과 <시> 2개 부문으로 나뉘며 원고 분량은 단편소설은 200자 원고지 80매(A4 9장 내외), 시는 제한이 없다. 응모방법은 <단편소설> 2편, <시> 부문은 7편 내외로 작성 후 우편으로 접수하면 된다. 단, 응모작품은 미발표된 작품에 한해서만 접수가 가능하다.
나비문학상에 당선될 시 단편소설, 시 부문 당선자에게 각 200만원, 1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며 ‘나비’ 필자 대우는 물론 다른 문예지에도 참여 기회가 제공된다. 또 당선작은 문화웹진 나비 <단편소설> 목차에도 실릴 예정이다. 당선작 발표는 2010년 3월 초 문화웹진 ‘나비’ 홈페이지(nabeeya.yes24.com)를 통해 공고된다.
예스24 김정희 커뮤니티팀장은 “국내 문학의 질적 성장과 함께 독자들과 문화적 소통을 할 수 있는 역량있는 신인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이번 나비 신인상을 기획하게 되었다”며 “향후에도 나비 문화웹진을 통해 온라인 속에서 고품격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컨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고 전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예스24 또는 문화웹진 ‘나비’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nabeeya.yes24.com/event/01015.aspx
* 문화웹진 ‘나비’란? 문화웹진 나비'(www.nabeeya.net)는 예스24의 문화사업 중 일환으로 네티즌들에게 양질의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고자 소설가 황석영, 문학평론가 도정일씨가 공동편집인을 맡고 출판사 문학동네, 생각의나무, 세계사, 위즈덤하우스, 자음과모음, 창비, 한겨레출판 등이 참여해 만들어졌다.
현재 최인석작가의 <그대를 잃은 날부터>, 김다은작가의 <모반의 연애편지- 문종 독살설의 비밀> 등의 소설, 시 연재를 포함해 문학, 음악, 영화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작품을 발표하는 ‘문학온라인 코너’와 독자참여 코너인 ‘나는 나비 2.0’, 시골의사 박경철, 장정일작가를 포함한 전문가들의 ‘다다다 칼럼’ 등이 운영되고 있다. 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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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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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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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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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하다와 식반찬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8월18일에 세상을 떠나셨다. 타계한 대통령을 특별히 생각하게 되는 것은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 대통령에게 건넨 인사말 두 마디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6월13일 제1차 정상회담이 오후 3시에 있었는데, 이때 김정일 위원장이 우리 대통령에게 한 첫인사는 “오늘 아침부터 너무 긴장하지 않습니까?”였다.
‘긴장하다’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100m 달리기 출발선에 선 학생의 심정으로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긴장하다’가 어떤 일을 위한 여건이나 환경이 어려울 때 쓰는 말이다. “전력 생산이 긴장하여 공장을 돌리기 어렵다”가 그 예이다. 그러니까 아침부터 일정이 너무 빠듯하여 힘들지 않으냐는 인사를 한 셈이다. 그 뒤 김 위원장은 “식반찬이 어땠느냐?”고 인사를 했는데, 이는 음식이 대체로 입에 맞았는지를 물은 것이다. 북한에서 정상회담을 위하여 특별히 준비한 음식은 ‘온반’과 ‘륙륙날개탕’이었다. ‘온반’은 ‘여러 가지를 곁들인 밥에 고기 국물을 부은 것’이었고, ‘륙륙날개탕’은 ‘메추리 고기로 만든 탕의 일종’으로 6월13일이 아닌 6월12일에 회담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전수태/고려대 전문교수
트랜스
근래에 나온 외국 영화 가운데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어떤 로봇 영화의 제목이 <트랜스포머>(transformer)였다. 이 말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물건의 본딧말이다.
지금 우리는 전국적으로 220볼트 전기를 쓰고 있다. 그 이전에는 110볼트였고, 당시에 쓰던 전기 제품이 아직 있는 경우는 변압기를 이용해서 전압을 낮추어 사용하기도 한다. 변압기는 전압을 높일 수도 있으며, ‘트랜스’라는 외래어로 부르기도 한다. 중년 이상의 어른 가운데에는 ‘도란스’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는 일본말 ‘도란스’(トランス)를 받아들였던 때문으로 보인다.
‘트랜스’는 원래 ‘일렉트릭 트랜스포머’(electric transformer)인데 영어에서도 ‘트랜스포머’로 줄여 쓴다. 이것이 일본말로 들어가서 뒤가 잘리는 흔한 현상대로 ‘도란스’로 줄어든 것을 우리가 받아들인 다음 일본말스러운 냄새를 뺀 것이 ‘트랜스’이다.
‘트랜스’가 들어 있으면서 최근에 많이 등장하는 말이 ‘트랜스지방’이다. 이는 액체 상태의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여 다른 가공식품을 만들 때 생긴다. 원래의 지방산이 글리세린과 결합하여 생기는 변형된 것이라 해서 그렇게 이른다고 한다. 기름에 튀기는 음식을 만들 때 주로 생기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여 여러 질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관
박빙, 살얼음
수은주가 다시 내려갔다. 한강도 40년 만에 가장 빨리 얼어붙었다. 얼음이 얼면 계절이 정말 겨울로 접어들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얇게 살짝 언 얼음'이란 뜻의 '살얼음'을 한자어로는 '박빙(薄氷)'이라고 한다. '박빙'과 '살얼음'은 일차적으로는 같은 뜻이다. 하지만 이차적으로 쓰일 경우 뜻이 조금 달라진다.
'올 시즌 양팀의 전적은 1승1무1패로 호각세여서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다.' 'A건설과 B건설이 공사 수주실적 1위 자리를 놓고 박빙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유독 특정 그룹 문제만 만나면 살얼음 밟듯 몸을 사린다.' '5공 당시 이른바 반체제 인사들은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걷듯 하면서 연행.연금.감시를 당했다.'
예문에서 보듯이 '박빙'은 주로 '박빙의' 꼴로 쓰이며, 그 뒤에 '승부, 선두, 경쟁' 등의 말이 온다. '살얼음' 뒤엔 '걷듯, 밟듯' 등의 말이 온다. 이에 따라 '박빙'은 '근소한 차이'나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태'를 비유적으로 말할 때 사용되며, '살얼음'은 '위험하거나 위태로운 상태'를 비유적으로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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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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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 정임옥
여름 한낮 남한산성 오른다 배꼽 위는 멀쩡한데 아래가 누렇게 죽은 소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가지 많아 근심 잘 날 없던 그 나무 뿌리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수혈 받은 자리엔 개미가 들락거려 반들반들 길까지 나 있다
독야청청해 온 수령 오백 년의 소나무 여력 다해 마지막 기상 세우고 있는 걸 그 아래 누워 낮잠을 청하다 보았다 끝끝내 곁에 붙어 피를 말리던 가지들 목숨이란 그런 것인가 떠나려면 주저앉고 있으라면 가버리는
정임옥 시집"꽃에 덴 자국"[문학사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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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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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向計 - 경규희
한발 허공 딛고 바람 불러 어울린다
한마당 치솟는 신명 그들 따라 돌아가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아 잃지 않는 방향감각.
한 하늘 이고 서면 손아귀에 드는 바람
머리채 휘어잡아 뱅글뱅글 지축 돌리면
하늘도 은빛 날개로 내려 퍼덕이는 東, 西, 南, 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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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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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2
4.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일에 대하여
왜 기다리는가?
아버지는 내가 현재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는 틀림없이 신의 뜻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난 이제 그 말씀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난 항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그런 종류의 아이였다.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해변 도시 라구나 비치에서 나는 성장했으며 파도타기와 운동을 즐겼다. 하지만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 대부분이 텔레비전과 해안가만 생각할 때 나는 보다 독립적인 인간이 될 생각과 나라 전역을 여행할 계획, 그리고 미래에 대한 설계를 시작했다. 나는 열 살부터 일을 했다. 열 다섯 살이 될 무렵엔 방과후에 두세 군데의 직장에서 일을 했다. 그래서 새 오토바이를 살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모았다. 난 오토바이 타는 법도 몰랐다. 현금 지불을 하고 오토바이를 산 뒤 1년 기간의 완벽한 보험에 가입하고 나서야 나는 주차장으로 가서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웠다. 8자 모양으로 15분을 달려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 난 그때 열 다섯살 반이었고, 운전 면허증을 막 딴 뒤였다. 그리고 내게는 새 오토바이가 있었다. 그것은 내 삶을 바꿔 놓았다. 나는 주말의 폭주 족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난 다만 오토바이 타는 것이 좋았다. 매일 시간이 날 때마다,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하루에 평균 150마일을 오토바이 위에서 보냈다. 구불거리는 산길에서 오토바이를 달리며 바라보는 일몰과 일출 광경은 특히 더 아름다웠다. 지금도 나는 눈을 감기만 하면 내 몸 아래서 진동하는 오토바이를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걷는 것보다 더 친밀한 느낌을 주었다. 오토바이를 달리고 있으면 얼굴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완벽한 휴식의 감정을 갖다 주었다. 바깥의 툭 트인 도로를 탐험하는 한편 나는 마음속으로는 내가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는가 생각했다.
2년 동안 다섯 대의 오토바이를 새로 구입하면서 나는 캘리포니아의 모든 도로를 달렸다. 난 매일 밤 오토바이 잡지를 읽었다. 하루는 잡지에 실린 bmw오토바이 광고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진흙 투성이의 오토바이 한 대가 군용 자루 가방 하나를 뒤에 싣고 (알래스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거대한 입간판 앞 진창길에 세워져 있었다. 1년 뒤 나는 훨씬 더 진흙투성이인 오토바이를 타고 똑같은 입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열 일곱 살에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서 진창길 투성이인 고속도로를 1천 5백 킬로미터나 달려 알래스카로 갔던 것이다. 7주에 걸쳐 2만 7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캠핑 모험을 떠나기에 앞서 내 친구들은 나더러 미쳤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나더러 기다리라고 말했다. 미쳤다구? 기다리라구? 무엇 때문에? 어린애였을 때부터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미 대륙을 횡단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어떤 강한 것이 내 안에서 만일 지금 이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앞으로도 결코 떠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이 아니면 언제 시간이 나겠는가? 조만간 난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그 다음엔 직장을 구할 것이고. 언젠가는 가정을 꾸려 나갈 것이다. 나는 그 여행 계획을 세운 이유가 단지 기분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마음속에서 그것이 나 나를 소년에서 한 남자로 탈바꿈시켜 줄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해 여름 내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은. 내 자신이 지금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모험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일자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직 17세였기 때문에 어머니에게서 이번 여행을 허락한다는 승낙서를 받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에 든 1천 4백 달러, 군용 자루 가방 두 개, 오토바이 뒷자리에 끈으로 동여맨 지도가 가득 든 신발 상자. 펜처럼 생긴 손전등. 그리고 충분한 열의-그런 것들을 갖고서 나는 알라스카와 동부 해안을 향해 출발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다듬어지지 않은 아름다움과 소박한 생활 방식을 즐겼으며, 모닥불을 지펴 밥을 해 먹으면서 내게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날마다 신께 감사드렸다. 때로 이삼 일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아무 말소리도 듣지 못한 적도 있었으며. 다만 끝없는 침묵 속에서 헬멧에 와서 부딪는 바람만을 느끼며 달린 적도 있었다. 이발도 하지 못했고, 야영장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으며, 몇 차례나 일정에도 없이 곰과 마주쳤다. 거대한 모험이었다! 그 이후 몇 차례 더 여행을 했지만 어떤 것도 그 여름의 여행에 비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내 인생 속에 특별한 자리로 남아 있다. 다시는 그때 그 여행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도로와 산맥, 삼림 지대와 빙하 녹은 물을 탐험하며 여행할 순 없으리라. 다시는 그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여행을 떠날 순 없으리라. 왜냐하면 스물 세살 때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라구나 비치 도로를 달리던 중 술에 만취한 마약 중개인의 차에 치여 허리 아래 부분을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고를 당할 무렵 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없이 건강한 청년이었다. 정식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나는 그때 일과를 마치고 내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 중이었다. 난 그 무렵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재정적으로도 안전했다. 내가 그 모든 걸 해낸 것이다. 그런데 불과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내 인생 전체가 뒤바뀌어 버렸다. 그후 나는 병원에서 8개월을 보냈으며 , 이혼을 했고, 전과 똑같은 식으로는 직장일 을 할 수 없음을 알았다. 만성적인 통증과 싸우며 휠체어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나는 내가 가졌던 미래에 대한 모든 꿈들이 내 손길이 가 닿지 않는 곳으로 멀어져가는 걸 보았다. 다행히도 주위 사람들의 도움과 지원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꿈을 갖게 했다. 내가 떠났던 그 모든 여행들, 내가 스치고 지나간 그 모든 길들을 회상할 때, 내 자신이 그런 여행을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오토바이를 탈 때마다 나는 항상 내 자신에게 말하곤 했었다. "지금 실천하라. 설령 네가 지금 공해로 가득한 도시의 네거리를 지나고 있을지라도 네 주위의 모든 풍경을 즐겨라. 왜냐하면 넌 똑같은 장소에 두번 다시 있을 수 없고, 똑같은 일을 두번 다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사고 이후, 아버지는 내가 하반신 불수가 된 데는 분명히 신의 뜻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난 그 말을 믿는다. 그 사고는 나를 더욱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사무직 경찰관으로 돌아갔고, 집을 샀으며 재혼을 했다. 또 내 자신의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전문적인 대중 연설가로 일하고 있다. 매순간 시련이 닥칠 때마다 나는 내가 해낸 그 모든 일들과 앞으로 내가 해내야만 할 모든 일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그렇다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 신은 분명히 어떤 이유를 갖고 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만드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하루하루의 모든 순간을 누리라고 내 자신에게 말한다. 당신이 만일 어떤 것을 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 그것을 하라. 왜 기다리는가! - 글렌 매킨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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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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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4장 지혜의 메아리
스승의 자리
자신보다 나은 제자를 배출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감히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자신보다 나은 제자를 만들어 놓지 못하면 결코 스승으로 존경받지 못한다. 명예나 권위를 얻기 위해서 스승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스승의 자리는 명예의 자리도 영광의 자리도 아니고, 권위의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그곳은 오직 희생의 자리다. 자기 희생을 통해서 자신이 가진 실력 이상의 제자를 배출해 내고, 자신의 영광을 제자를 통해서 실현시키며, 제자의 승리에서 최대의 보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 진정한 스승의 자리다.
희생의 각오 없이 스승의 자리에 오르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가진 실력을 100% 쏟아부어 빈 껍데기가 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감히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제자가 자신보다 잘되는 것을 시기의 눈으로 바라보고, 제자가 자신을 이켜내는 것을 하나의 경쟁 상대로 삼거나 적으로 간주해 버리는 스승은 이미 스승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스승은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해서는 안 된다.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면서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스승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최고의 자리는 항상 제자를 위해서 비워 두어야 한다. 제자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을 자신의 영광처럼 기뻐하고, 그러한 제자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스승으로서의 영광된 임무는 끝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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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동서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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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 200선 해제 2 - 반덕진
제2부. 고전 해제
제2장 동양문학
천변풍경 - 박태원(1909-1986)
1930년대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적인 소설로, 도시성이 명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조광>에 1937년 1월호부터 9월호까지 걸쳐 연재된 이 장편소설은 일제 때 서울 청계천변 한 동네에서 일어난 여러 일상적 사건들을 다룬 세태소설의 본보기다. 에피소드의 병치, 끊임없는 시점의 변화, 객관적 시점의 확보, 다양한 인간상 제시, 세련된 문체의 성취 등을 특징으로 한 이 소설에서 1930년대 서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월북 후 북한 역사소설 가운데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갑오농민전쟁 (전3권)을 쓴 작가 박태원. 그의 호는 구보.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 호세이 대학을 중퇴하고 집에서 밤늦도록 책을 읽는 등 불규칙한 생활을 해 건강과 시력이 나빠졌다. 한때 이광수를 사사했으나 그의 계몽주의는 따르지 않았다. 1930년 단편 '수염'을 발표하면서부터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1933년 이태준. 이효석. 이무영. 정지용 등과 <구인회>를 만들어 예술파적 소설을 지향하였다. <구인회> 출현시기는 카프계열의 경향파 문학이 일제의 탄압에 부딪친 때로서, 새로운 문단세력으로 박태원. 이태준. 이효석 등이 활약하게 되었다. 박태원은 특히 이태준과 친하게 지내면서, 일제 강점기 하에 작가자신이 속한 서울 서민층의 변모양상을 객관적인 서술로 묘사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 결과 시정적 소시민 사회의 현실을 저회하면서, 무기력한 패배자의 시선에 들어오는 풍경들을 그대로 그려나갔다. '천변풍경',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등이 그것이다. 이외의 단편들로 '딱한 사람들', '길은 어둡고', '전말', '진통', '방란장 주인', '성탄제' 등이 있으며 주제가 소시민적 우울을 다룬 점에서 대체로 비슷하다.
해방 직후에는 이태준과 함께 조선문학건설본부에 참여해 소설부 위원을 지냈다. 6. 25전쟁중 월북해 평양문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조운과 함께 조선창극집을 펴냈다. 1956년 한때 남로당 계열로 몰려 작품활동이 금지되었다가 1960년 작가로 복위, 1986면 고혈압으로 죽었다. 해방 전까지 개인의 문제, 지식층의 문제, 현재의 문제에 치중했으나, 해방 후에는 집단의 문제, 민중의 문제, 과거의 문제에 치중해 역사소설을 주로 썼다. 그의 대표작 천변풍경은 짧은 이야기 50절로 이루어진 장편으로, 철저한 3인칭 관찰자 시점을 따르고 있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나 뚜렷하게 내세우는 사상도 없이, 청계천변에 사는 서민층의 몰락과 가난을 시선에 잡히는 그대로 그려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미혼이며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소설가 구보씨가 서울거리를 배회하면서 느끼는 내면세계의 방황과 세태풍속을 잘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형식과 문장의 기교 등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광고 전단 등의 대담한 삽입, 쉼표의 사용에 의한 만연체 등의 시도, 중간제목의 강조, 한자의 남용 등 90년대 작가들도 감탄할 만한 독특한 문체를 낳았다.
주요 등장인물
재봉이 : 15~16세 가량인 이발소 사환. 이발소와 빨래터 골목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상세히 목격함. 민 주사 : 재력있는 50대의 사법서사. 안성집과 취옥이 사이를 오가며 주색잡기에 골몰함. 하나코 : 방년 스무 살의 카페 여급. 손주사, 은방 주인, 강서방 등의 표적이 되어 있는 미인. 이쁜이 : 천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했으나 친정으로 쫓겨나는, 점룡이가 짝사랑하는 인물. 금순이 : 순박한 시골색시로 가족들과 헤어져 기미코, 하나코와 함께 살아가는 인물. 만돌어멈 : 포악한 남편을 가진 행랑어멈. 창수 : 꾀 많은 한약국집 사환.
작품의 주요내용
민주사 한약국집 가족, 포목전 주인, 양약국 주인 최진국 등은 식민지 자본주의 속에 적응하면서 약간의 부를 축적한 인물들로, 이들은 식민지 사회가 아무런 변동 없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안정희구 세력들이다. 반면 재봉이, 창수, 금순이, 만돌이 가족, 이쁜이 가족, 점룡이 모자 등은 모두 시골에서 올라와 청계천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점룡이 어머니, 이쁜이 어머니, 귀돌어멈을 비롯한 동네 아낙네들은 빨래터에 모여 수다를 떤다. 이발소집 소년인 재봉이는 이런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민 주사는 이발소의 거울에 비친 쭈글쭈글 늙어가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짓지만, 그래도 돈이 최고라는 생각에 흐뭇해진다. 재봉이는 평화 카페로 눈길을 돌린다. 여급 하나코의 어머니가 눈에 뛴다. 재봉은 하나코의 어머니가 광교 쪽을 바라보며 난처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발길을 돌리는 것을 본다. 저쪽 한약국집에서는 젊은 내외가 함께 대문을 나선다. 이들은 다정한 부부로 외출을 하는 것이다. 창수는 한약국집의 사환인데, 출세하기 위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시골에서 올라왔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일에 얽매여 고생하는 것은 비단 창수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다. 파란 색칠을 한 중문을 사이에 두고 약국 안에서는 행랑에 든 지 사흘도 안되는 만돌어멈이 안방마님의 꾸지람을 듣고 있다. 만돌어멈은 불한당 같은 남편을 피해 서울로 도망질쳤으나, 우여곡절 끝에 다시 남편과 남의 드난살이를 하는 것이다.
한편 음력 3월 중순, 이쁜이네는 오늘 큰 경사가 있다. 점룡이 어머니는 마음이 애석하다. 아들 점룡이가 은근히 이쁜이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쁜이 어머니의 마음은 그렇게 한가로울 수가 없다. 영감이 세상을 뜬 지 이미 13년, 저만큼이나 키워서 오늘 마침내 시집을 보낸다. 결혼식은 간단히, 또한 별일없이 진행되었다. 이처럼 한쪽에서 경사가 있을 때, 신발집의 온 가족은 아직도 장가를 못 간 주인의 처남까지 몽땅 어디로 나들이라도 가는 것처럼, 스무 해를 살아온 이 동네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한번 기울어진 가운은 다시 어찌할 도리 없이 신발집이 몰락하자 청계천변 사람들의 마음은 어둡게 된다. 민 주사는 요사이 마음이 우울하다. 마작노름으로 족히 사오백원을 날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민은 그뿐이 아니다. 그는 경성부회의원 선거전에 출마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에, 다른 후보자들의 운동원들이 이 일을 폭로할까 봐 걱정이 태산 같다. 또한 안성집이 자기 눈을 피해 젊은 학생놈하고 좋아지내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발견하고는, 가슴이 내려앉을 지경이다. 민 주사는 입안에 가득 고인 쓰디쓴 침을 길바닥에 탁 내뱉고 천변길을 우울하게 걸어간다.
신수 좋은 포목점 주인은 남쪽 천변을 걸어간다. 그는 자기의 매부가 선거에 출마하기 때문에 밑천 들지 않는 인사 라도 열심히 하려고 정신이 없다. 민 주사의 선거사무소는 제법 활기에 넘쳐 있다. 돈을 많이 뿌린 까닭이다. 그럼에도 민 주사는 자기가 어째 꼭 헛수고만 하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갑자기 자기가 변변치 못한 인물로 생각되어져 부회의원 이란 것이 당치도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민 주사는 낮에는 선거 때문에 부산하고, 밤에는 학생놈과 붙어 지내는 안성집 처리문제에 마음이 괴로워, 잠깐 동안에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만돌어멈은 드난살이를 하던 한약국집에서도 쫓겨나, 어디론가 정처없이 사라져버린다. 동제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린 이쁜이는 남편의 바람기에 시달린다. 그리고 선거는 마침내 끝이 났는데, 민 주사는 선거에 패배해 병석에 누웠다. 젊은 학생놈과 안성집이 눈에 삼삼하다. 마음고생한 끝에 민 주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담판을 벌이려고 안성집을 찾아간다. 순진한 시골색시였던 금순이는 가족과 헤어져 기미코, 하나코의 방에서 함께 생활한다. 조석 준비와 세탁, 그리고 재봉질이 그녀의 중요한 직무다. 광교에서는 점룡이가 아이스케키를 팔고 있다. 우연히 금순이는 헤어졌던 동생 순동이를 만난다. 순동이는 한양 구락부라는 당구장에서 게임놀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순동이는 모범적인 소년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각처로 밥거리를 구하여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해본 터이라 성실하였고, 그래서 주인과 감독의 신임을 얻고 있다. 아버지 용서방은 새어머니의 행실이 정숙치 못해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그는 지금보다 불행한 적은 없었다며 입맛을 다신다. 계집 경영하기의 어려움은 용서방보다도 오히려 민 주사가 좀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한편 좋은 집안의 가문으로 시집간 카페 여급이었던 하나코는 시집살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집온 지 달반도 못되어 하나코는 극도로 마음과 몸을 상했다. 시어머니의 구박은 물론이고, 하인배들의 멸시, 그리고 믿었던 남편의 마음조차도 변해버렸다. 전처 소생의 아이들도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쁜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마침내 이쁜이는 서방에게 쫓겨 어머니에게로 돌아온다. 외로운 어머니는 이번에는 다시 이쁜이를 그 집에 보내려 하지 않고, 이튿날로 필원이를 시켜 딸의 세간을 모조리 찾아온다. 이발소의 귀여운 소년 재봉이는 젊은 이발사 김서방과 밤낮 다툼을 하면서도 좀처럼 이발소를 떠나지 않는다. 이제 얼마 안 가서 이발사 시험에 어렵잖게 합격하리라는 것이 이발소 주인의 말이다.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 천변풍경은 박태원의 대표적인 장편으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경성 도심에 대한 기록이라면 천변풍경은 도시의 주변부에 대한 관찰이다. 청계천변은 분명히 도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도심과는 다른 공간이다. 현란한 도시문화의 영향으로 천변에도 카페와 구락부 같은 유흥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아직 동네아낙들이 모여드는 빨래터가 있고 이웃집 속사정을 제 속처럼 아는 전통적 공동체가 살아 있다. 천변은 생활의 무대이며 도시문명에 속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발소와 빨래터
그런데 천변풍경에 나타나 있는 이 다양한 인물들의 갖가지 행색은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적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나는 천변에 자리잡고 있는 동네의 이발소이며, 다른 하나는 천변의 빨래터이다. 남정네들이 모여드는 이발소에서 그들의 삶의 모습이 투영되고, 빨래터에서 나오는 아낙네들의 입을 통해 온 장안의 화제가 소설 속으로 끼어든다. 이 같은 소설적인 기법은 개별화된 인물들이 보여주는 특이한 행동과 태도를 하나의 공간 속에 배치하는 데 기능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영화기법의 활용
천변풍경은 그러한 천변 사람들의 생활을 파노라마처럼 잡아낸다. 이 소설에 특별한 주인공은 없으며, 천변과 근처의 상점들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보여주듯이, 이 소설을 한 장면(그리고 특정한 인물)에서 다른 장면(다른 인물)으로 넘어간다. 이어지는 장면들 사이에는 주제나 사건의 영속성도 없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36년 당시, 이는 새로운 기법으로 받아들여져서 작가의 시각이 카메라의 눈처럼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부터 천변풍경 이 영화의 기법을 활용했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최재서의 평가를 빌면 박태원은 자기 사상에 의하여 어떤 가상적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인물을 조종하지 않고, 그 대신 인물이 움직이는 대로 그의 카메라를 회전 내지 우회 하였다는 것이다. 이 소설 전체가 그러한 특징을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 등장하는 인물 중 이 카메라의 눈을 체현하고 있는 인물은 재봉(이발소 소년)이다. 그의 즐거움은 천변을 오고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 관찰에는 어떠한 목적의식도 없다. 그저 그는 오가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그들이 어떤 태도로 어디를 향해가는지를 관찰할 뿐이다. 이런 재봉의 시각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있는 작가의 시각, 카메라의 눈과 같다. 그러나 장면의 무조건한 배열만으로는 소설의 완결성이 획득되기 어렵다. 작가는 여기서 시. 공간적 폐쇄성이라는 장치를 마련한다. 곧 사건들의 무한한 나열을 막기 위해 시간과 무대를 제한시키고 등장인물의 운명도 이 무대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조정하는 것이다.
시간적 폐쇄성
시간적 폐쇄성은 1년의 순환을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데서 생긴다. 이 소설은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만 하다 라는 말로 시작해, 이듬해 같은 시기를 알리는 입춘이 내일 모레라서 그렇게 생각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대낮의 햇살이 바로 따뜻한 것 같기도 하다 라는 말로 끝난다. 그런가 하면 공간적 배경은 천변에 제한되어 있다.
공간적 폐쇄성
주요 등장인물 역시 천변으로 모아짐으로써 공간적 폐쇄성을 강화시킨다. 소설의 말미에서 이쁜이는 천변의 친정으로 돌아오고, 금순이는 가족과 해후하여 천변에 자리잡는다. 이들의 운명은 천변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하나 소설 내의 카메라 눈 이라 할 수 있는 재봉이 소설의 첫부분에서 기대했던 일(포목점 주인의 중절모가 벗겨져 개천에 떨어지는 일)이 소설이 끝날 때 일어남으로써, 중심적인 인물이나사건이 없음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구성의 해이함은 견제되고 있다. 세태소설인 이 작품의 가치는 일찍이 최재서가 리얼리즘의 확대와 심화 에서 피력한 바 있고, 임화에 의해 세태소설 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는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사상이나 성격을 다루는 대신 외면풍경의 묘사에만 치달았음에 대한 비판이다. 외면묘사의 철저화는 내면의 심화와 평행선을 그으며 진행되는데, 이것이 변증법적 전개를 보이면서 새로운 단계를 이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한계를 가지며, 곧 이는 1930년대 소설의 한계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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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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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꽃이 피네 - 법정 스님(류시화 엮음)
6. 자기 안을 들여다보라
요즘 내가 사는 곳에는 돌배나무와 산자두가 활짝 문을 열어 환한 꽃을 피워내고 있다. 돌배나무는 가시가 돋쳐 볼품없고 쓸모없는 나무인 줄 알았더니 온몸에 하얀 꽃을 피우는 걸 보고 그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산자두 역시 해묵은 둥치로 한겨울의 폭설에 꺽이고 비바람에 찢겨져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었는데, 가지마다 향기로운 꽃을 달고 있는 걸 보고 나서야 가까이서 그 둥치를 쓰다듬고 자주 눈길을 보내게 됐다. -법정 스님 수상집<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중에서
법정 스님이 ‘맑고 향기롭게’모임을 시작하신 지도 몇 해가 흘렀다. 왜 그런 머리 무거운 일을 시작하셨냐는 질문에 그분은 ‘중이 밥값을 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말씀하신다. 그런데 주위에서 간혹 이런 얘기도 들리는 모양이다. ‘맑고 향기롭게’가 그 동안 어떤 표시나는 일을 했느냐고. 과연 기록으로 남을 만한 어떤 성과를 올렸느냐고. 그런 지적을 하는 이들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흔한 언론 매체나 현수막을 동원해서 큰 행사를 연 적이 없으니까. 사무실조차도 몇 해 동안 서울 비원 앞의 달랑 한 칸짜리 오피스텔로 만족하셨다. 책상 세 개와 나무의자 몇 개가 비품의 전부였다. 사무실 안에 스님 자신을 위해서 따로 방을 갖지도 않으셨다. 운영위원이나 실무자들이 어떤 큰 일을 계획하고 안건을 내놓을 때마다 스님은 그 대부분을 취소시켰다. 소란스럽고 떠들썩함은 오히려 인간의 존재가 가진 맑음과 향기를 사라지게 하기 대문이다. 처음에는 ‘맑고 향기롭게 운동’이라고 했지만 ‘운동’이라는 단어까지도 생색내는 일이라 해서 빼 버리셨다. 실무자들은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맑고 향기롭게’를 시작하셨으면서 막상 어떤 일이라도 벌일라치면 스님이 좀처럼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무실 직원들이 쓰기 위해 세피아 소형차를 사려고 했다가 크게 혼이 난 것은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그것보다 더 작은 차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을 벌이길 좋아하고 거창한 행사를 도모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 대신 그분은 작고 소중한 만남과 시간들을 계획하겼다. 몇 그루의 나무를 심거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조촐한 모임, 환경에 대한 자각을 위한 생태계 현장 답사 등이 소리없이 진행되었다. 어떤 외적인 행사나 슬로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님은 그분 자신의 존재로써, 그리고 한 달에 한 편 회보지에 싣는 글로써 삶의 진정한 맑음과 향기로움을 전하고자 하셨다.
선가에는 ‘한 송이 꽃이 피어나면 수천수만 송이의 꽃이 피어난다’는 말이 있다. 한 존재의 맑음과 향기로움이 갖는 울림은 우주 전체에 메아리가 된다고 그분은 믿으신다. 우리들 자신이 한 송이 꽃으로 매순간 새롭게 피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맑고 향기롭게’와 맺어져 산에도 가고 수선화, 원추리, 할미꽃, 두메부추 같은 꽃들도 심어 보고 오염된 강물도 찾아가서 거기에 비친 자신의 얼굴들을 들여다보았다. 카톨릭의 수녀들과 원불교의 정녀, 불교의 비구니, 이 세 곳의 수도자들이 모여 작은 합창회도 열었다. 그 울림은 작지만 멀리 오래도록 퍼져나갔다.
자기 안을 들여다보라
내가 불일암에서 17년이나 살다 보니 삶이 단조로워졌다. 새롭게 뭔가를 시작해 보고 싶어서 떠난 곳이 강원도 산골이다. 물론 아는 사람이 빈집을연결해 줘서 인연 닿는 대로 가서 살게 된 것이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문명의 이기가 들어오지 않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전기와 전화기 없어 처음엔 아주 답답하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니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바깥에 나오면 전등불이 너무 밝게 느껴지고 전화벨 소리가 신경에 거슬릴 정도가 되었다. 수행 생활하면서도 이름이 알려져 너무 번다하게 살다가 이제 자연에 묻혀 사니 내 안에 낀 때가 벗겨지는 것 같다. 또 자연으로부터 얻는 교훈과 배움이 많아서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지금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곳에 살고 있다. 물론 내가 사는 환경이 궁핍하고 원시 상태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은 못 되지만 우선 순수한 내가 존재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그냥 그곳에 잠시 있을 뿐이다. 나그네처럼 있는 것이다. 수행자에게 영원한 거처가 어디 있는가.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오래 전, 내가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 머물 때 아는 스님이 묵화 한점을 그려 준 적이 있었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 압정으로 벽에다가 붙여 놓고 보았다. 그런 그림은 격식없이 그린 것이기 때문에 족자같은 데 가둬 놓으면 그림이 죽는다. 그냥 그대로 꽂아 놓고 보아야 한다. 그림의 글이 고고봉정림 심심해저행, 때로는 높이높이 산 위로 솟아오르고 때로는 깊이깊이 바다 밑에 잠기라는 교훈이었다. 옛 선사의 게송이다. 세상 속에서 번잡하게 살다보면 너무 노출이 되기 쉽고 세상물이 든다. 그러므로 우리들 자신이 좀 묻혀서, 좀 덜 노출된 채 자기의 잠재력을 깊이깊이 바다 밑에 잠기려는 일과 상통한다. 신앙인과 수행자들은 시시각각 자기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 절에 가면 선방 앞 섬돌에 이런 표찰이 붙어 있다. 조고각하 비칠‘조’,돌아볼‘고’,다리‘각’,아래‘하’,이 말이 무슨 말인가.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살피라는 뜻이다. 자기가 서 있는 ,지금 자기의 현실을 살피라는 것이다. 섬돌 위에다가 그런 표찰을 붙여 놓은 것은 신발을 바르게 벗으라는 뜻도 되지만, 그건 지엽적인 뜻이다. 본질적인 뜻은 그런 교훈을 통해서 혀재 자기가 서 있는 자리,그 현실을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절에서든 교회에서든 보고 듣고 배운 것이 얼마나 많은가. 이 보고 듣고 배운 것만 갖고도 부처나 성인이 되고도 남는다. 보는 것, 배우는 것, 듣는 것, 그 자체만 갖고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의미가 없다. 그것이 일상 생활에 실행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종교는 이론이 아니다. 팔만대장경이라 해도 그것은 이론서에 불과하다. 가이드북일 뿐이다. 그것을 가지고 실제 여행을 떠나야 한다. 자기가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행위 없는 이론은 공허한 것이다. 나 자신도 이 얘기를 하면서 반성을 한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거길 뭐하러 가지?’ 지금도 강원도에는 눈이 온다. ‘눈 오는 날, 거길 뭐하러 가지?’ 물론 일요 법회가 있어서 가긴 하지만 나 스스로 자문을 했다.‘도대체 이렇게 내가 나가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가 뭣 때문에 대중 앞에 나가서 떠드는가?’ 그래서 나는 속으로 무척 자기 저항을 느낀다. 나는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괜히 남 앞에 가서 이래라 저래라 떠드는 게 마음에 저항이 된다는 말이다. 종교는 한 마디로 사랑의 실천이다. 이웃과 사아을 나누는 일이다. 보살행, 자비행은 깨달은 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하루하루 익혀 가는 정진이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쌓은 행의 축적이 마침내는 깨달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몰랐던 것을 아는 것, 이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본래 자기 마음 가운데 있는 꽃씨를 일상적인 행을 통해서 가꾸어 나가명 그것이 시절 인연을 만나 꽃 피고 열매 맺는 것, 이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본래 우리 마음 가운데 깨달음이 갖추어져 있다. 본래 밝은 마음이다. 헛눈 파느라고, 불필요한 데 신경쓰느라고 제 빛을 발하지 못할 뿐이다. 참선도 행이다.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경을 읽든 모두가 일종의 행이다. 닦는 행인 것이다. 행을 통해 본래 자기 마음의 빛이 드러난다. 행하면서 하루하루 살다 보니까 그 결과가 깨달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부처의 전생 얘기를 보면 주로 두 가지다. 보시와 인욕이다. 남에게 베풂, 어려움을 나눔, 눈도 뽑아 주고, 필요하다면 팔도 잘라 주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줘 버린다. 상징적인 얘기이지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푼다. 또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인욕, 곧 욕된 것을 참는다. 그 결과 부처는 금생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지 않는가. 행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내가 기독교 신자로서 불교 신자로서 과연 그 가르침대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지 아닌지 스스로 반문해야 한다. 신앙인들은 그런 물음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 그런 물음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감이 없다. 스스로 물어야 한다. 누가 나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내 행위에 대해서, 내 발끝을 돌아보듯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물음을 던져야 한다. 화엄경의 보살명난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듣는 것만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 수 없다. 행하는 것, 그것이 도를 구하는, 진리를 구하는 진실한 모습이다.’
듣는 것만으로 이룰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들었다. 이절 저 절을 다니면서, 또는 이 교회 저 성당을 기웃거리면서 많은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걸 갖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듣는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신문이나 잡지 보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문사수, 들을‘문’, 생각‘사’, 닦을 ‘수’. 들었으면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생가가하라는 것은 자기를 여과시키라는 뜻이다. 자신의 체로 걸러 받음이다. 그리고 나서 행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일상에 옮기라는 것이다. 같은 경전에 또 이런 비유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보고서 먹지 않고 굶주리는 사람이 있듯이 듣기만 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다. 온갖 약과 치료법을 잘 알고 있는 의사도 병에 걸려 낫지 못하듯이 듣기만 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다.’
보라. 의사도 병에 걸려 죽지 않는가.
‘가난한 사람이 밤낮없이 남의 돈을 세어도 자신은 한 푼도 차지 할 수 없듯이 듣기만 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이지만, 옛날 인도에서는 부자들이 아마 가난한 사람들을 시켜서 돈을 세게 한 모양이다. 돈을 세봤자 거기서 팁이나 일당이나 받았지, 실제적인 자기 것은 없다는 말이다. 듣는 것만으로는 부처의 가르침을 알 수 없다.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스스로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도를 구하는 진실한 모습이다. 사십이장경이란 경전이 있다, 인도로부터 최초에 중국에 들어왔다고 전해지는 경전 중 하나다. 이 사십이장경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다.
‘많이 듣는 것으로써 도를 사랑한다면 도는 끝내 얻기 어렵다. 뜻을 굳게 지켜 진리를 받들어 행함으로써 그 도는 크게 이루어진다.’
불교의 모든 경전에 보면 신수봉행이란 말이 있다, 믿고 받아서 받들어 행한다는 뜻이다. 모든 경전 끝에 가서, 신수봉행하라, 이런 부처님의 설법을 잘 듣고 일상생활에서 그대로 행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한다. 나 자신도 많이 반성하지만, 신앙인들은 많이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안이 시끄러워질 뿐이다. 자기 본심대로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다. 본심, 우리의 근본 바탕은 똑같다. 부처나 보살이나 내 자신이나 다 똑같다. 불성은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말고, 듣는 것에 너무 팔리지 말고, 자기 본성대로 살아야 한다. 본래 천진한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정진이다. 금강경에 보면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라는 구절이 있다. 진리도 버려야 할 것이데 하물며 진리 아닌 것이랴!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설령 부처의 말이라 해도 ,그런 그 사황에서 그렇게 얘기된 것이다. 오늘 내가 그 얘기를 들었다면 오늘 상황에 맞도록 그와 같이 살라는 것이다. 그 가르침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살아야 한다 .
작은 선이라도 좋으니 하루 한 가지씩 행해야 한다. 작고 미미한 것일지라도, 남이 알아 주지 않을지라도, 그것을 행해야 한다. 그것이 내 삶의 질서이다. 하루 한 가지씩 작은 선이라도 행해야 한다. 그 일상적인 행을 통해서 지기 자신을 거듭거듭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늘 넘어진다. 그것은 이웃을 향한 행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지,경전을 많이 봤다고 해서, 법문을 많이 들었다고 해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가면서 하룻동안에 한가지 착한 일을 듣거나 행할 수 있다면 그날 하루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산 것이다. 참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했든가, 하루 한가지라도 이웃에게 덕이 되는 행동을 했는가 안했는가에 의해서 그날 하루를 잘 살았는가 못 살았는가를 판가름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가 결정된다. 거듭 말하거니와 작은 선이라도 좋으니 하루에 한 가지씩 행해야 한다. 그 실행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거듭거듭 일으켜 세워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룻동안에 한 가지라도 착한 일을 듣거나 행할 수 있다면 그날 하루는 결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산 것이다. 이 말을 거듭 명심해야 한다.
만남은 시절 인연이 와야 이루어진다고 선가에서는 말한다. 그 이전에 만날 수 있는 씨앗이나 요인은 다 갖추어져 이었지만 시절이 맞지 않은 면 만나지 못한다. 만날 수 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가 시절 인연이 와서 비로소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만남이란 일종의 자기분신을 만나는 것이다. 종교적인 생각이나 빛깔을 넘어서 마음과 마음이 접촉될 때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열리면 사람과 세상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나는 가끔 카톨릭의 장익 주교님을 만난다. 그분을 만날 때 우리사이에는 자신이 무슨 승려라거나 상대방이 사제라거나 하는 의식이 전혀 없다. 그런 것 없이 마음을 터놓고 만나다 보니 전혀 벽도 없고또 종교간의 거리도 간단히 뛰어넘을 수 있다. 또 우리는 만나서 거의 종교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또 한사람의 사제로서, 서로가 인간적으로 만나며 그 만남 속에서 모든 것이 융화된다. 모든 종교에는 독단적인 요소가 있다.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요소가 끼어들면 인간 교류 자체가 불가능하다. 종교간에 벽이 허물어지려면 우선 대화가 있어야 하고, 대화를 가지려면 독단적인 울타리를 넘어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모든 종교가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윤리, 공동선 같은 것이 서로 통할 수 있다. 몇 해 전 로마에 갔을 때 장익 주교님이안내해 몇 군데 성지를 순례한 적이 있었다. 수비야코의 베네딕토 성인, 내가 좋아하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들의 유적지들을 돌아보는데 마치 인도 불교성지 순례할 때의 그런 성스러움, 옛 성인들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이 우러나왔다. 여러 가지로 많이 배우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였다.
이런 비유가 있다. 히말라야에 오르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다. 길은 달라도 다 정상으로 통하는 루트들이다. 그런데 자기가 오르는 루트만이 가장 옳다고 고집하게 되면 결국에는 히말라야에 못 오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종파적인 종교를 통해서 마침내 보편적인 종교의 세계에까지 나아가야 한다. 종파적인 종교라는 것은 나무로 치면 가지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만을 전부라고 고집하면 나무 전체를 알 수 없다. 마하트마 간디가 즐겨 쓰던 비유이다. 종파적인 벽이나 독단적인 요소만 극복할 수 있다면 모든 종교를 하나로 보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분쟁이 일고 있는 종교적인 갈등은 종파적인 벽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자기들이 믿는 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 믿고 다른 종교를 무시하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다. 진정으로 불교를 알려면 불교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불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진정한 불교를 알 수 없다. 부처에 얽매이면 참부처를 불 수 없고, 보살에 얽매이면 진짜 보살행을 할 수 없다. 참선하는 사람은 오로지 참선만이 전부이고 염불해서는 깨닫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또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만이 오로지 지름길이며 참선해서는 구제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가 하는 일에 확고한 신념을 갖는 건 좋다. 또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오직 전부라고 고집한다면 전체를 보지 못한다. 인도 고전인 리그 베다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진리는 하나인데 현자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
기독교적인 사랑과 불교적인 자비는 사실 똑같은 것이다. 사랑은 가볍고 자비는 무거운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문화적인 배경과 지역적인 특수성에서 다른 표현이 생겨난 것일 뿐이다. 그 말을 통해서 우리의 삶으로 바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 말 자체에서 집착하게 되면 듯은 놓치고 모순에 빠진다. 열반경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말을 따르지 말고 뜻을 따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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