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칭찬하는 사람, 헐뜯는 사람 -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2. 남을 이끌고자 하는 사람들(2/4)
동의를 이끌어내는 사람
책임 있는 위치나 지배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대립과 분쟁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삽시간에 모든 사람들과 충돌하고 다른 사람들끼리 싸움을 하게 자극하며, 말다툼과 의견 충돌을 일으킨다. 그런 사람들이 합의를 통해 어떤 문제를 결정해야만 하는 회합이나 평의회의 의장이라면, 조만간 그 회의는 숨막히는 분위기에 빠져든다. 어떤 사람이 어떤 제안을 하면 곧 다른 사람들이 그에 반대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모두 다 말다툼에 휩싸인다. 나는 이런 종류의 대학 학과 회의를 기억하고 있다. 몇날 며칠 동안 꼬박 회의가 열렸고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나왔다. 이와 달리 싸움을 진정시키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 누구와도 충돌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도 서로 싸우지 못하게 만든다. 그들의 지휘하에 있으면 회합이나 평의회는 오랫동안 토론을 한 뒤 대개 인간적인 결정을 내린다. 무엇 때문에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그렇게 파국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것일까? 왜 문제들을 연구하지 않았을까? 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까? 왜 열심히 몰두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아니다. 그들의 실수는 정반대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모든 문제에 책임을 지며, 모든 문제에 명확한 입장을 취하며, 항상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고, 그 의견을 두드러지게 만들기 위해 싸운다. 이런 식으로 결국은 질질 끄는 논쟁과 속에 맺힌 원한 때문에 처음에는 이 사람, 다음에는 또 저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만다. 진짜 싸움이 벌어진다든가 하면 그들은 말리거나 타협에 나서지는 않고 곧장 한쪽 편을 들어서 싸움에 부채질을 한다. 그들에게 훌륭한 의지가 부족한 것도, 지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특별히 공격적이거나 충동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확인시키고, 매순간 어느 관계에서든 자신들이 그 자리에 있고 존중받으며 유용하고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할 필요성을 지나치게 느낀다. 그들은 자신이 그 자리에 없고, 힘을 잃고, 사라져버리는 것을 겁낸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 없이 무슨 일을 해내고 의견 일치를 보고 자신들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어떤 결정에 도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화와 효능을 창출해 내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어떤 단체, 어떤 팀이 도달해야 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경우, 결국은 그 구성원들이 모두 힘을 합해야 그 목표에 도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개개인은 그저 자기가 존중받기를 원하고 자기가 한 역할을 강조하려고만 할 뿐이다. 그들은 기여도를 평가받기만을 바란다. 지도자는 이런 자연스러운 성향을 이용해야 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것을 모두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진지하게 그 말들을 경청하도록 모두에게 부탁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말을 하고 모든 사람이 그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하다보면 좋지 않은 생각들은 스스로 사라져 버리고 뛰어난 생각들이 나타나게 된다. 지도자가 제안을 하는 대신 힘을 합한 개개인들에게서 제안이 나오도록 하는게 훨씬 좋다. 그러다가 좋은 해결 방안이 어렴풋이 나타날 때 그것을 다시 논의에 올려 평가하고 전체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지도자가 할 일이다. 반대 의견이 너무 강하거나 오류가 발견될 경우, 결정을 연기하도록 제안한다. 독재적이지 않은 모든 조직에서 지도자는 근본적으로 목적과 명확성이 파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고도 강력하게 보장해 주어야 한다. 만일 지도자가 사적인 이해를 초월해 있기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고 경쟁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행동하면 조직은 중심을 잃고 붕괴하고 만다.
칭찬을 하지 않는 사람
우리는 모두 남에게 계속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인정과 칭찬은 음식과 물처럼 필수적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들, 혹은 그런 일을 하도록 규정된 기관을 통해 그것을 받아야 한다.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는 엄마에게<잘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지만, 엄마의 칭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선생님의 평가를 받을 필요도 있다. 어떤 일을 달성했을 때 우리는 항상 많은 심사 위원들의 평가를 기다린다. 그런데 그 심사 위원들은 갖가지로 종류가 다르고 서로 틀린 평가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 전력을 다해 일한 끝에 어려운 임무를 달성하고 성공하고 모두에게 박수를 받아도,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일부러 칭찬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우리를 손에 넣기 위해, 또는 분노를 터뜨리거나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유명한 심판 한 사람이 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 그는 모든 이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 자기 아들에게는 공손한 인사 한번 받아볼 수 없었다. 이 아들은 아버지에게 여봐란 듯이 무례하게 굴었는데 아버지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또 전세계에 공장을 세운 뛰어난 사업가가 생각난다. 그는 사업상의 동료들, 예술가, 정치가, 지식인들을 접대하기 위해 멋진 별장을 지었다. 하지만 접대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별장에서 파티를 벌였더니 그의 아내가 자기 남편은 항상 출장만 다닌다고 불평하는 등 계속 남편을 비난하면서 손님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인정을 해주고 칭찬을 해주는 권력은 근본적으로는 부정하는 권력, 고통스럽게 만드는 권력과 같다. 변덕을 부리는 이들도 그 점을 알고 있다. 재롱과 애교를 기대하는 부모 앞에서 아이는 발을 구르며 울고 뭔가 해달라고 떼를 쓰며 버티고 서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기가 불쾌감과 분노를 유발시키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게 바로 아이가 노리는 것이다. 부모의 저녁 식사를 확실히 망쳐놓고 누나의 생일 파티를 엉망으로 만드는 장난꾸러기를 본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런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 청소년들, 성인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칭찬하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한마디 말도 건네주지 않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복수심을 사는가. 쓸데없이 다른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탈리아 학교에는 1년 동안 좀더 나아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어린이에게 <잘한다> 하고 단 한번도 말하지 않는, 입 밖으로 그런 말을 내지 않는 선생님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이런 행동이 엄격하고 신뢰할 만한 태도라고 믿지만, 사실은 오로지 연약한 아이를 향해 자신의 분노를 토해 낼 뿐이다.
항상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지도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잘 되어가는 일이 단 한가지도 없고, 모든 게 아주 불확실한 상태에 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이 힘세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뛰어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악용되는 힘과 규율 없는 권력과 시기심에 충동질당한 자유의지에 취해 있다. 이런 유형의 심술이 넘쳐난 나머지 행동하는 사람들을 가로막았던 불운한 시대들도 있었다. 그런 시대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일 때문이 아니라 시기심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 쓸데없는 전투 때문에 좌절하고 지쳐 그 자리에 멈춰서야 했다.
아첨하는 사람
권력자들, 정치가들, 사업가들, 대학의 실력자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간판들 밑에서 평범한 인물들, 심지어 아주 보잘것 없는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그런 이들을 믿고 중대한 임무를 맡기고, 외부에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비춰지게 내버려두고, 자신들을 대표하게 내버려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권력자의 개인적인 수행원으로 성공하는지 그 방법을 대학에서 잘 관찰해 볼 수 있다. 학문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공손하고 아부 잘하고 눈치 빠르게 복종하고 항상 <예>라고 대답하는 조교가 그 예이다. 교수는 항상 곁에 있어주는 조교에게 익숙해지고 아주 불쾌한 임무를 맡기는 일에도 익숙해져 그 조교 없이는 생활할 수 없게 된다. 그는 나중에 훨씬 유능한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 그 조교에게 강의를 줌으로써 보상을 하게 된다. 정치가 주위에는 항상 청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로인이 없는 변호사들, 일이 없는 건축가들, 배고픈 지신인 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끈덕지고 고집스럽게 정치인의 주변에 머문다. 어느 날 정치인은 곤경에 처해, 딱 한번 도움을 청하게 되어 주변에 머물던 사람들 중의 누군가를 찾게 된다. 그럴 경우 그들이 왜 도와 주지 않겠는가! 도움을 부탁받은 사람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불속에라도 뛰어들 태세이다. 그렇게 관계가 시작된다. 정치가는 그를 존경하지 않지만 그를 이용한다. 그를 높이 평가하지 않지만 결국은 차츰차츰 그에게 길들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게 의존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데, 그가 너무 많은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또다른 경우도 있다. 권력자들 중에는 너무 똑똑하거나 자주적인 사람을 자기 밑에 불러들이기를 겁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권위적이어서 남에게 반박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과대 망상증 환자여서 끊임없이 칭찬과 찬사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신중해서, 아주 뛰어난 사람들을 가까이했다간 결국 그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자신을 좌지우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자기 권력을 1밀리그램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단순히 게으름 때문인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문제를 토론하고 재토론하기를 꺼린다. 이런 식으로 궁정이 형성되었다. 궁정은 국왕의 집이다. 그곳에는 국왕의 가족, 아주 은밀하게 국왕을 돕는 사람, 하인과 광대들, 그리고 아첨꾼들이 살았다. 오늘날에도 권력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비록 작게라도, 궁정이 형성된다. 그 궁정에서 당신은 권력자의 친척과 소소의 친지들, 그리고 불행하게도 언제나 일정한 수의 아첨꾼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이들이 가장 해로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각을 할 줄 아는데도 생각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위치와 조용한 명예직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권력자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보아도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을 삼가고 언제나<예>라고만 대답한다.
현대의 기업은 궁정에 대항해, 정반대되는 조직 원리에 기초해서 탄생했다. 관리자는 능력을 바탕으로 뽑히고 이익을 낼 때에만, 기업을 번영시킬 때에만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들은 모두 이용한다. 그는 항상 최선을 추구하며 평범한 사람들을 혐오한다. 불행하게도, 기업에서는 황금률이 항상 신봉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똑똑한 사람, 비판하는 사람, 문화적인 활력이 있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둔감하고 비굴한 직원, 대개 재치도 없고 재미도 없는 진짜 아첨꾼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성과만을 중시하는 사람
직원들과 일을 할 때 무엇보다도 생산품, 즉 결과만을 중시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반면에 그 일에 바친 시간만을 중시하는 지도자들도 있다. 첫번째 사람들은 그 직원의 몸가짐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지, 책상 위의 서류에서 눈을 들지나 않는지, 커피를 너무 자주 마시지나 않는지 따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최상의 결과가 나오고 그 결과를 신속히 만들어내는 데 국한된다. 그들은 직원이 자주적이고 어려움에 맞설 능력이 있고 예기치 못한 일을 당황하지 않고 처리해 나갈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바로 눈에 보이는 몸가짐과 행동을 중시하는 지도자들이 있다. 그들이 보기에는 아랫사람이 일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으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지 않으면, 피곤해하지 않으면, 가끔씩 자신들에게 와서 주의 사항을 물어보지 않으면 그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랫사람들은 자신들이 일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지불기한을 정확히 지켜달라는 고객을 설득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이야기하거나 납품 업자가 부정확하고 엉망이라고 불평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두 가지 유형의 지도자들은 작업 활동에 대해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첫번째 유형은 이 활동을 직업적 능력으로 인식한다. 그는 직원의 직업적 능력을 산다. 두번째 지도자는 이와는 달리 직원의 노동력을 산다. 첫번째 사람은 직원이 여덟 시간이 아니라 여섯 시간 안에 일을 완수하는지 살펴보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두번째 사람은 노동자의 하루를 샀기 때문에 노동자가 여섯 시간만에 일을 해내 다른 두 시간의 작업 시간을 남기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노동력으로서의 작업 활동 개념은 시대 착오적인 것이다. 지주는 <아침부터 밤까지> 농부의 노동력을 샀고, 지주가 고용한 감시자들은 노동자가 밭고랑에 몸을 숙이고 있는지, 정말 힘들여 일을 하고 있는지, 땀을 흘리는지, 일하는 척만 하고 있지나 않은지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했다. 제조업도 이런 원리에 의해 탄생되었다. 소유주는 직공의 노동력을 모두 사서 최대한 그것을 이용하려고 애썼다. 이번에는 생산성을 감독하기가 훨씬 쉬워졌는데, 제품의 숫자를 세거나 생산 라인에서 생산 리듬을 측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런 전근대적인 정신 상태가 회사원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에서도 나타나는 걸 볼 수 있다. 회사원들도 과거의 노동자처럼 가능한 한 힘을 아껴 쓰려고 애쓴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느낄 때에만 일을 한다. 문제의 처리를 내일로 미루고 지연되는 이유를 갖다대기 위해 계속 변명거리만 찾으며 진취적인 동료들을 가로막는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항상 평균 생산력의 수준을 밑돌게 생산하려 애쓴다. 사실 평균 생산력 이상으로 생산을 해내면 일을 주는 사람은 그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 그 후에도 그 만큼을 원하게 된다. 이런 일들의 최종 결과는 아주 저조한 생산성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생산성 및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존중하는 기업들이 있다. 연구소 광고회사 마케팅 부서 신문사 텔레비젼 방송국을 생각해 보자. 이곳에서 일을 주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일의 결과와 직원의 능력을 산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직원이 여덟 시간 일을 하는게 아니라 네 시간만 일을 하고 계약할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 때에는 분명 봉급이 인상되고 승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 매일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적극성과 창으성을 발휘해 계속 뭔가를 개선할 수 있을까. 지급 체계는 경직되여 있기 때문에 보상이나 보수가 끝없이 높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경우 부하 직원은 독립성 책임 권한 개인적 신망이라는 것들로 보상을 받게 된다. 그는 회사 내에서 정말 존경받는 전문가가 된다. 이런 경우는 보다 높은 언제나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더 높은 생산성을 얻어 내려는 공동의 자극제가 된다.
지나간 시대의 농업형 또는 수공업형의 기업이나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노동력으로 빚어진 회사에서 사원들은 가능한 한 조금 일하고 채무자처럼 회사 생활을 한다. 창의적인 기업에서는 사원들이 가능한 한 많이 일하고 자신들이 기업의 채권자가 되고 싶어한다. 돈이 나니라 무엇보다도 존경 자유 개인적 신용 자유 재량권이라는 것으로 지불 받는 개인적인 빚이다. 첫 번째 유형의 회사에서 성장한 지도자가 두번째 유형의 회사로 갈 경우 대개 실패를 하게 된다. 그는 육체적인 태도를 고수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유로운 자세로 이루어 놓은 것을 자신이 해냈다는 듯이 굴어서 남들의 의욕을 없애 버리고 만다. 그런 이들은 종종 모든 것을 파멸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