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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편지】: 제 642 호
단기 4342. 8. 5 (음력 6. 15) / 발송인 : 윤영환 (poemserver@paran.com) / Music Off =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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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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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직지전국시조백일장』개최요강
‘직지’는 탄생시기가 고려말이고, 우리 민족문화의 대표적인 자존심이라는 면에서 시조를 빼닮았습니다. 세계 最古의 금속활자본인 ‘직지’를 널리 알려 직지를 찾는 역량을 모으고, 우리 민족의 고유문학인 시조 보급과 저변확대를 위하여 ‘직지’의 탄생지인 충청북도에서 제2회『직지전국시조백일장』을 개최하니 뜻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1. 일 시 : 2009. 9. 5(토) 10:00~12:00
2. 장 소 :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직지로113(운천동) 흥덕사지 금당 ※ 우천시 : 흥덕사지 금당 인근 흥덕초등학교 교실
3. 시상내역(인원 및 1인당 시상금, 단위 : 만원) - 대학일반부 : 장원(1명) 300, 차상(2명) 50, 차하(3명) 20, 참방(4명) 10 - 고 등 부 : 장원(1명) 30, 차상(2명) 20, 차하(3명) 10, 참방(5명) 5 - 중 등 부 : 장원(1명) 30, 차상(2명) 20, 차하(3명) 10, 참방(5명) 5 - 초 등 부 : 장원(1명) 20, 차상(2명) 10, 차하(3명) 5, 참방(15명) 3 단 각부 참방은 5%범위 내에서 수상인원을 가감할 수 있음 ※ 장원입상 및 다수 참여학교(초,중,고) 지도교사상 : 6명(부문별 2, 충청북도지사상)
4. 참가비는 없으며 기 등단한 시조시인은 참여할 수 없고, 제한된 구역에서 제한시간 내에 지정된 글제로 제출하여야 하며, 휴대폰을 지참할 수 없습니다. 대학일반부는 신분증을 지참해야 합니다.
5. 심사는 국내 중견문인께 의뢰하고, 입상작 중 추후에 기성문인 또는 모방작으로 판명되면 상금을 회수하고 이를 공개합니다.
6. 참가신청서는 2009. 9. 1까지 다음 주소로 제출하여야 하며, 소수 개인에 한하여 당일 신청서 없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우편주소 : 충북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 51-1 충북시조문학회 나순옥 -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beautypoet - 전자메일 : ykw1229@hanmail.net(윤현자 주간 : 010-4467-5611) - 팩시밀리 : 043-294-6765(윤현자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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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오늘의 어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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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누구에겐가 필요한 존재로 만들라. 누구에게든 인생을 고되게 만들지 말라.(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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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말글 / 창작도움 → 한글바로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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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뒤
언어예절
움직임은 생각 끝에 나올 수도, 생각 없이 할 수도 있다. 말도 움직임의 한 가지로서, 생각 끝에 또는 생각 없이 할 수도 있다. 물질·몸·목숨에서 본능이, 그다음에 생각이 온다면, 이는 좀더 나아간 경지임을 알 수 있다.
헤아림·욕심·판단·기억·상상·마음·의견·견해·사상·느낌·성의·배려 따위 여럿으로 갈래를 잡을 만큼 생각이란 말은 폭넓게 쓰인다.
특히 성의·배려로 일컫는 ‘생각’이 행동·예절과 잇닿는다. ‘눈치를 본다’면 소극적이지만, ‘헤아린다’는 데 이르면 이는 적극적인 표현이 된다. 남을 돕고 보살피는 일이 사람 행동의 끝인 셈이다. 한편, 생각은 있어도 행동에는 굼뜰 수 있다. 게으름도 미덕일 때가 있으나 때를 놓치기 쉽다.
사회·공산·자본 따위 여러 ‘주의·주장’들이 삶의 형편을 헤아려 나왔고, 제도·문물들도 그렇다.
아름다운 ‘생각’도 치우치고 잘못 행사하면 어려움을 부른다. 오래 지켜 가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인류를 유지하는 데 생각이 큰 몫을 한다. 오늘날 지구가 앓는 것은 사람의 생각 가운데 욕심·욕망이 성하여 자신과 자연을 망치게 된 본보기인 셈이다.
‘생각’의 미덕은 삼가는 것으로 나타나고, 이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이어진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솔찮이 짚어(깊어)!
고장말
‘솔찮이’는 표준어 ‘상당히’에 대응하는 고장말로, 전남북에서 두루 쓴다. ‘겁나게’, ‘허버지게’, ‘허벌나게’ 등이 ‘많다’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물리적인 양을 전제로 하는 반면, ‘솔찮이’는 많고 적음의 절대적인 기준 없이 화자가 생각하는 기대치를 넘는 경우 쓰인다. “오소리가 솔찮이 비싸단디라우?”(<녹두장군> 송기숙) “…무슨 일이 잘못돼서 재산을 솔찮이 깨물어먹고는 그냥 빈둥빈둥 복덕방이나 출입하면서 지내는 갑더라.”(<꿈꾸는 자의 나성> 윤흥길)
전라도에서 ‘꽤 많다’는 뜻을 갖는 고장말로 ‘솔찬하다’가 쓰인다. “세상을 잘 들여다보믄 말이여, 주인 없는 물건들이 솔찬허다.”(<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최인석) “허기넌 요분참에(이번 참에) 아랫것덜 대가리에 전보담 삘건 물이 더 진허게 들고, 맘보도 솔찬허니 변혔을 것이요.”(<태백산맥> 조정래)
‘솔찮이’는 형용사 ‘솔찬하다’의 어근 ‘솔찬하-’와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말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서는 ‘솔찬히’, ‘솔찬이’로 적기도 한다. “저그 저… 저 팽나무 말이시… 우리가 첨에 터를 잡을 때 심었던 팽나무가 그동안에 솔찬이 컸구만그랴.”(<타오르는 강> 문순태) “개는 중갠디 워찌 살이 쪘든지 지금도 솔찬히 남았어요.”(<샛강> 이정환)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지'의 띄어쓰기
김창완의 록밴드 산울림이 '아니 벌써'를 들고 가요계에 뛰어든 지 29주년을 기념해 얼마 전 열었던 공연이 팬들의 뜨거운 성원 속에 끝났다. '문 좀 열어줘' 등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노래로 한국 가요사에 한 획을 그었던 김창완은 노래만으로 모자랐는지 중견 연기자로서의 입지도 굳혀 가고 있다.
'뛰어든 지 29년'에 나오는 '지'는 '어떤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동안'을 나타내는 의존명사로, 띄어 써야 한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 3년째다' '그를 만나본 지 3년이 넘었다'처럼 쓰인다.
'노래만으로 모자랐는지'의 '지'는 막연한 의문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연결어미인 '는지'의 일부로, 붙여 써야 한다.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밖에 나갈 수 없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다'처럼 쓰인다. '제때 도착했는지 모르겠다'처럼 동사 뒤에는 주로 '는지'가, '얼마나 부지런한지 그는 세 사람 몫의 일을 해낸다'처럼 형용사 뒤에는 'ㄴ지'가 온다.
헷갈릴 때에는 '지' 다음에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오면 띄어 쓴다고 생각하면 쉽다.
아이구, 아이쿠, 에그머니, 아이구머니
'아이구, 간 떨어질 뻔했다.' '아이쿠, 그동안 이렇게 많이 컸구나.' '아이구머니, 우리는 이제 망했다.' 말하는 이의 본능적인 놀람이나 느낌, 부름, 응답 따위를 나타내는 단어를 감탄사라고 한다. '아이구, 아이쿠, 아이구머니'는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감탄사다.
그러나 이들은 맞춤법상으론 올바른 형태가 아니다. '아이고, 아이코, 아이고머니'로 써야 한다. '아이고'는 아프거나 힘들거나 놀라거나 원통하거나 기막힐 때, 반갑거나 좋을 때, 절망·좌절하거나 탄식할 때 쓰인다. 또한 상중(喪中)에 곡하는 소리로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코'는 거센소리며, '아이고머니'는 느낌이 더 깊고 간절함을 표현한다. 만약 '-우'형태로 쓰려면 '어이구(에구), 어이쿠, 어이구머니(에구머니)'처럼 '아-' 대신 '어-'로 바꾸면 된다. '에구머니'를 '에그머니'로 쓰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잘못이다.
감탄사는 입말이므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들도 적을 때 가능한 한 규범에 따르는 것이 좋다.
사리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고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냉면만큼 시원한 음식이 없다. 냉면을 먹으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사리'가 일본말인지 우리말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사라(さら→접시), 사라다(サラダ→샐러드), 와사비(山葵→고추냉이), 쓰키다시(突き出し→곁들이 안주), 지리(じり→백숙) 등 식당에서 일본말이 많이 쓰이는 것에 비춰 '사리'도 일본말로 생각하기 쉬우나 순 우리말이다.
'사리'는 동사 '사리다'에서 온 말이다. '사리다'는 '국수·새끼·실 등을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는 뜻이고,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 '사리'다. 냉면 사리, 국수 사리, 라면 사리, 새끼 사리 등이 있다. '사리다'는 뱀 등이 똬리처럼 몸을 동그랗게 감거나, 짐승이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를 나타내기도 한다.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슬슬 피하며 몸을 아끼는 사람에게도 '몸을 사린다'는 말을 쓴다. 이 더위에 몸을 사리지 않고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여. 시원한 냉면에 사리 하나를 추가해 맛있게 드시고 힘을 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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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우리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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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등 - 고진하
연인들처럼 팔짱 낀 오징어잡이배들의 환한 불빛, 해안선의 술렁이는 어둠을 난타하며 눈부신 빛의 군단을 이루었네
사방팔방 둥글게 퍼져나가는 그 큰 눈망울로, 먼저 물의 어둠에 그물을 내린 제 욕망을 정확히 읽고
방파제 끝에 우두커니 선 나를 읽으러, 황홀한 내 상실을 읽으러 둥근 은빛 파도를 굴리며 미친 듯이 달려오는
고진하 시집 "우주배꼽"[세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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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현대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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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돌 던지다 - 윤정란
애완용 개가 사람보다 사랑을 받는다고 문 안을 엿보다가 흩어지는 한숨들 눈 한번 마주치지 않는 세상에 돌 던지다
아비라고 당당하게 큰소리칠 수 없고 남자라고 무작정 들이밀 수가 없어서 언제나 뒤로 밀리는 삼식(三食) 놈의 회환을
속수무책 세월에 햇살도 돌아앉아 어디서나 눈치보는 소리 없는 절규는 잊혀진 우리네 삶이 개보다 못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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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나눔 → 고시조 / 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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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며 (飮酒其五) - 도연명陶淵明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사람 사는 마을에 초막을 지었으나 수레와 말의 시끄러운 소리 없다네 결려재인경 이무거마훤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리할 수 있는가? 문군하능이 심원자지편 마음이 멀어지면 땅도 자연 외지게 되는 법입니다.
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어 드니 느긋하니 남산이 보인다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산 기운 해질녘에 아름답고 나는 새들 짝지어 돌아간다 산기일석가 비조상여환
此間有眞意, 欲辯已忘言. 여기에 참된 뜻이 있는데 말하려다 어느새 말을 잊었다 차간유진의 욕변이망언
도연명(317-420)은 동진(東晋)에서 유송(劉宋)시기에 활약한 전원시(田園詩)의 대가로 역대 중국시인들이 섬겼던 위대한 스승이기도 하다. 특히 송대(宋代) 소동파(蘇東坡)는 백 수가 넘는 <화도시(和陶詩)>를 지어 도연명을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한 바 있다. 동진이 망한 이후에는 도잠(陶潛)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진다.
음주(飮酒)란 제목으로 이루어진 20편의 연작시에는, “우연히 좋은 술이 생겨 술을 마시지 않은 밤이 없었는데, 내 그림자를 보며 홀로 잔을 비우다 금방 또 취해버렸다. 취하고 나면 번번이 몇 구씩 시를 써 놓고 혼자 즐기곤 하였다(…偶有名酒, 無夕不飮, 顧影獨盡, 忽焉復醉, 旣醉之後, 輒題數句自娛.…)”라는 서문을 적어 작시 동기를 밝혀 두었다. 그 가운데 천고(千古)의 절창(絶唱)으로 손꼽히는 이 시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이상적인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 여느 시라면 속세와 인연을 끊기에 용이한 자연(自然)이나 산사(山寺)를 들었을 것인데, 도연명은 사람으로 북적대어 늘상 욕심이 꿈틀대고 고통이 따르기에 충분한 속진(俗塵)에다 떡하니 집을 지었다. 불완전한 세상과의 충돌 속에서 부귀공명을 잊고 안분지족하며 살겠다는 부단한 노력과 고매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 결과 시인의 일상은 느긋하고 한없이 여유로웠다. 국화를 따다 우연히 바라보게 된 남산의 풍경은 홀시하기 쉬운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나, 시인에겐 군더더기 없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모습 그 자체로 다가왔다. 해는 뜨면 지고 날던 새는 때가되면 다시 돌아온다는 자연의 순리는 무한한 안식과 평정을 전달하였고 급기야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 일체가 되었다. 온몸으로 체득한 감동의 전율, 그것은 천박한 인간의 언사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저 너머의 경지이기에 시인은 굳게 입을 다물 뿐이었다.
* 結廬(결려) : 초막을 짓다. * 人境(인경) : 사람들이 사는 곳. 은거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을 말한다. * 車馬喧(거마훤) : 수레와 말이 다니며 내는 시끄러운 소리. 고관대작들의 왕래를 비유한다. * 爾(이) : 그러하다. ‘然’과 통한다. * 偏(편) : 외지다. * 悠然(유연) : 느긋하고 한가로운 모양. * 見(견) : 의도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보이다. * 辨(변) : 분별하다. * 忘言(망언) : 말을 잊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심득(心得)하였음을 나타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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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 / 지혜 / 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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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볼 만한 인생 - 해롤드 셔먼 (고동호 옮김)
제7장 내면의 힘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삼으면 버릇을 거두고, 버릇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둡니다.
내면의 눈
불운이나 비극이라고 생각했던 경험이 지나고 보면 자신으로서는 훌륭한 경험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 자주 있다. 실직을 했지만 전보다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거나, 사업에 실패했지만 다른 분야에서 돈을 벌 기회를 발견한 경우도 있다. 비행기나 기차 시간에 대지 못하여 타지 못한 덕분에 사고를 당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혹은 신체장애자로 고통을 받으면서 남들이 얻을 수 없는 능력을 몸에 지니게 된 경우도 있다. 어째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물론 우연히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언뜻 보면 우연처럼 보이는 일도 원인이 있으며, 거기에는 필연인 경우가 많다. 즉 자신이 머릿속에서 일으킨 일인 것이다. 어째서 그럴까? 그것은 인간의 무의식 중에는 하늘에서 부여받은 창조력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창조력은 단순하고 정확하게 작용한다. 만약 매사를 적극적으로 생각하면 적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소극적이라면 소극적인 결과가 일어날 것이다. 창조력은 항상 이 규칙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다.
전에 나는 크로드 브리스톨과의 공저인 'TNT-마음속의 불'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 적이 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골라서 소개해 본다.
1. 당신이 무슨 일을 어떻게 느끼는가, 두려워하고 있는가,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창조력에 영향을 끼친다. 2. 원망이나 공포의 감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창조력의 작용도 커진다. 3. 창조력에는 잘못된 생각을 수정하거나 회피하는 작용은 없다. 단순히 원망이나 공포에 반응하여 자신을 위한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자신이 원하거나 두려워한 것을 가져올 뿐인 것이다. 4. 창조력이란 전자석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의해 자력을 띠게 되며 자신의 원망이 공포와 일치하는 상황이나 정보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5. 자신의 원망이 적극적인 것이라면 결과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심이 강하면 결과적으로 자신을 불행에 빠뜨리게 된다.
이상을 주의 깊게 읽고 의식 깊숙이 새겨두도록 하라. 그렇게 하면 지난날 불행한 경험을 했더라도 이제부터의 운명을 변경시킬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 불운을 당했던 사람은 사고방식을 바꿀 일이다. 창조력을 소극적인 것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일이다. 창조력의 작용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가령 실직을 했다 하자. 게다가 그 이유가 성실치 않았다던가, 능력이 없었다던가, 동료와 원만하게 지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것 등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하자. 그런 일이 있으면 자신 내부에 잠재해 있는 창조력은 소극적으로 밖에 작용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은 점점 잘 되지 않고 마음에는 불만이 쌓여 간다. 이러한 감정을 지니고 있으면 상황은 결코 호전되지 않는다. 더구나 사태는 더욱 악화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도 하면 내재해 있는 창조력은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도록 돕게 된다. 결국 자신이 실직할 날은 하루하루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직한 시점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응시하고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길은 열린다. 제 3자의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면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된 태도나 사고방식에 원인이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과거처럼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며 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기분을 계속 가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것을 실업으로 솔직히 받아들이고 이제까지의 잘못된 사고방식이나 태도를 고칠 결심을 하는 것이다. 만약 적극적인 후자의 길을 선택한다면 머지 않아 새로운 일을 발견하여 행복과 성공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불행을 당했으면서도 성공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사고방식을 개선함으로써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전환시켜 간다. 자신들이 실직이나 사업의 실패, 병이나 부상을 당하는 등의 일을 당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고 자신의 내부에 그러한 불운을 야기시킬 수 있는 구체적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 마음속의 구체적 요인만 제거한다면 창조력도 나쁜 작용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게 바람직하다. 사람은 누구나 많은 짐을 지고 살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므로 지난날의 실패나 불행의 아픔도 가능한 한 빨리 잊는 게 좋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각이 날 때마다 싫어지며 그러한 감정은 또다시 창조력에 작용하여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된다. 새로운 계획에 신경을 집중시키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고통스러운 체험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체험이 잠재의식 속에 새겨져 있다. 그때에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는 것은 그 당한 일과 함께 의식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생각해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이 머릿속에 계속 축적되고 있으며, 그것이 괴로운 경험일수록 응어리가 되어 창조력에 작용한다. 그러면 괴로운 추억에서 해방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방법은 단 한가지이다. 그러한 체험을 의식의 밑바닥에서 끌어내어 마음의 눈으로 자세하고 냉정하게 재 응시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과실이 있었다면 솔직히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탓이라 해도 원망치 말고 용서할 일이다. 그리고 만약 앞으로 같은 일을 당하면 좀더 적극적으로 강력하게 대처할 결심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과 다투거나 성격이 맞지 않아 불쾌한 기분이 되었을 때는 상대방을 비난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생긴데에는 자신에게도 역시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언제까지나 그런 좋지 않은 기분을 가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때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진실로 믿어버릴 일이다.
'그를 용서하자. 그와는 이 이상 친해지려고는 생각지 않지만 불안해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이 그의 탓이라는 생각은 버리자.' 또 상대방과 화해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면 좋다. '나도 그를 오해하고 있었으므로 그를 용서하자. 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버리면 틀림없이 잘 되어 갈 것이다. 성의는 필히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내가 태도를 바꾸면 그도 틀림없이 거기에 응해 줄 것임에 틀림없다.'
긴 인생 중에는 압박감도 상당히 많아 항상 안정된 정신 상태로 지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7세된 딸이 즐거운 듯이 접시를 씻고 있는 것을 본 한 어머니는 감동해서 말했다.
"네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모양이구나." 그러자 딸이 말했다. "지금은 계시지만 자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세요."
명언이 아닌가. 이처럼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항상 정상적이며 안정된 상태로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때로는 장기간에 걸쳐 안정을 잃을 수조차 있다. 자신이 우울하여 의기소침해 있으면 그런 기분은 친구나 연인에게도 전염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울적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가라앉기 쉽다. 나는 일정기간 기분좋은 날이 계속되다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난 일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우울한 날이 올 것을 예기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내재해 있는 창조력이 그러한 식으로 작용하여, 그 결과 기분이 주기적으로 우울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노여움이나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수가 많다. 자신은 무시당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분을 알아주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에게 눈길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등 만족하지 못한 감정이 마음속에 우울하게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에 관하여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우울한 기분이 된다. 그리고 어떻게든 감정의 배출구를 찾아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발작을 일으켜 주위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면 가슴이 시원하고 긴장이 풀린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은 얼마동안은 그들을 친절하게 대해 주기 때문에 그들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반복해도 근본원인을 제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복하는 사이에 사태는 점점 악화되어 갈 뿐이다.
자신의 기분을 철저히 컨트롤하여 올바로 방향을 잡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재해 있는 창조력이 작용하기 시작하여 자신에게 이로운 상황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라는 것에는 큰 힘이 있음을 기억해 두자. 뭔가가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다. -또 감정이라는 것은 내재해 있는 창조력을 활발하게 작용시켜 자신 주위의 정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경시킬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여 항상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내심으로 그것을 원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어떤 형태로든 열매를 맺는다. 어떠한 장애물도 창조력을 작용시켜 전력을 다해 헤쳐 나아가려 하면 이미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열등감이나 자신 없는 마음 때문에 헤쳐나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미 창조력에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한 식으로 생각해버리는 것은 '창조력에 수갑을 채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괴로운 경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자신이 마음을 가지는 방법에 잘못이 있다면 솔직히 고칠 일이다. 원인만 제거하면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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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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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1
3. 죽음에 대하여
죽음은 하나의 도전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금 당장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가르친다. - 레오. 버스카글리아
빛에 둘러싸여
6년 전까지만 해도 캘리포니아 길로이를 대표하는 것은 마늘이었다. 그러다가 작은 천사가 태어났다. 샤논 브레이스는 엄마 로리에게는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는 아기였다. 로리는 지난 수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으며 , 앞으로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학적인 예상에도 불구하고 로리는 쌍둥이를 낳았다. 하지만 석달 반만에 한 아이가 숨지고, 다른 아이인 샤논만 살아남았다. 샤논 역시 불과 세살 반이라는 나이에 암 진단을 받았다. 이때부터 어린 샤논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의사는 샤논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사랑과 본인 자신의 굳은 의지 덕분에 샤논은 몇 년을 더 살았다. 이 시기를 전후해 의사는 샤논의 골반 뼈에서 골수를 채취해 검사를 시도했다 검사 결과 샤논은 척추 속에 종양이 생겼거나 또는 생식 세포에 암이 발생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매년 전국적으로 암에 걸리는 아이가 7천 5백 명인데 그 중에서 생식 세포 암인 아이는 1퍼센트인 75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샤논이 걸린 병은 회귀한 병이었다. 샤논은 2년에 걸쳐 화학요법을 받은 뒤 척수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 수술은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대단히 위험한 수술로 알려져 있다. 척수 이식과 더불어 강력한 화학 치료는 샤논을 끊임없이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게 만들었다. 화학요법을 받고 나면 샤논은 평생 동안 걸을 수도 없고 팔다리가 마비될 것이라는 의사의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의사의 예측은 빗나갔다. 샤논은 몸무게가 불과 10.8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걸었다 엄마 로리는 말한다.
"그 아이의 의지는 정말 아무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샤논의 용기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샤논은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 결과 샤논은 산타 클라라 미인대회에서 용기 있는 사람에게 주는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샤논의 병명이 밝혀질 무렵 샤논의 아버지 래리가 오토바이 사고로 불구가 되는 일이 일어났다 목과 척추와 두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이었다. 샤논과 함께 줄곧 집안에서 지내야만 했던 래리는 이렇게 말한다.
"샤논은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어요. 사람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자 했지요."
샤논의 가족 모두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샤논은 겉으로만 봐서는 전혀 자신이 죽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있는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쾌활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쏟았다. 스탠포드 의료 센터에 머물고 있는 동안 샤논은 어른들이 평생 동안 겪는 것보다 더 많이.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냈다. 의식이 뚜렷할 때면 샤논은 한밤중에 깨어나 똑바로 앉아서 부모를 붙들고 자신을 하늘나라로 보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오리는 그럴 때마다 한숨짓곤 했다.
"나도 너와 약속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때로 샤논은 대단히 직선적이었다. 하루는 엄마와 함께 슈퍼마켓에 들렀을 때 어떤 다정한 남자가 짐짓 농담 삼아 말했다.
"댁의 아드님 머리를 빡빡 깎으셨군요." 샤논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아저씨, 저는 여자아이 구요, 암에 걸려서 곧 죽을지도 몰라요."
어느 날 아침 샤논이 심하게 기침을 하자 엄마가 말했다.
"아무래도 다시 스탠포드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 샤논이 빽 소리를 질렀다. "싫어요! 난 괜찮단 말예요?" "내 생각엔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샤논." "아니라니 까요. 난 감기에 걸렸을 뿐이에요." "샤논, 더 늦기 전에 가야만 해? "좋아요. 그럼 딱 3일만 가서 있는 거예요. 안 그러면 난 자동차를 얻어 차고 집으로 돌아올 거예요."
샤논의 인내심, 그리고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는 자세는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많은 생명력을 선사했다. 샤논 주위에 있게 된 사람들은 그런 점에서 큰 행운이었다. 샤논은 자신보다는 자신의 바깥 세계, 그리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때로는 몹시 아파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종종 벌떡 일어나 같은 병실의 환자들의 요구 사항을 거들어 주곤 했다. 또 어떤 날은 처음 보는 사람이 매우 슬픈 얼굴을 하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샤논은 밖으로 뛰어나가 그에게 꽃을 한 송이 건네주면서 좋은 하루가 되기를 빈다고 말했다.
어느 금요일 오후, 샤논은 자신이 좋아하는 낡은 담요를 꼭 움켜쥐고서 스탠포드 소아과 병동에 누워 있었다 샤논의 입술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취 주사에서 깨어 나는 동안 샤논은 딸꾹질과 흐느낌을 반복했다. 의식이 회복되는 순간 샤논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선 잊어버리고 주위 사람들의 안부부터 물었다. 눈을 뜨자마자 샤논이 한 첫마디 말은 엄마에게 이렇게 물은 것이었다.
"엄마, 괜찮아?"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가 말했다. "난 괜찮다. 샤니. 넌 어떠니?"
가족의 의료보험으로는 치료비를 다 댈 수 없었기 때문에 샤논은 지역의 성금 모으기 운동에 직접 참여했다 길로이 통조림 공장으로 걸어 들어간 샤논은 맨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시작했다. 샤논은 항상 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모두를 사랑했다. 샤논의 생각 속에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편견이 조금도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샤논은 마침내 그 남자에게 말했다.
"전 암에 걸렸고 곧 죽을지도 몰라요."
나중에 샤논을 위해 그 통조림 공장에서 통조림 몇 개를 기부하지 않겠느냐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 남자는 말했다.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주겠소. 그리고 내 명함도 그 애에게 주시오."
샤논의 어머니 로리는 샤논뿐 아니라 불치병에 걸린 모든 아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말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모든 부분을 끝까지 다 활용해요. 그들은 자신에 대해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 주위에 있는 세상이죠."
다섯 살이 되어 샤논이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고 있을 때 가족들은 이제 샤논이 떠날 시간이 됐음을 알았다. 샤논의 침대 주위에 모여 서서 사람들은 그녀에게 빛의 터널을 향해 걸어가도록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샤논이 대답했다.
"빛이 너무 눈부셔요." 천사들을 향해 걸어가라고 격려하자 샤논은 투덜거렸다. "천사들이 너무 시끄럽게 노랠 부르는군요."
길로이 공원 묘지에 있는 어린 샤논의 무덤에 가면 묘비명에 그녀의 가족이 이렇게 적어 놓은 것을 읽을 수 있다.
"언제나 다른 천사들과 손을 잡고 걸어가기를! 우리의 사랑을 바꿔 놓을 것이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1991년 10월 10일, 길로이의 지방 신문 (디스패치)은 13살의 다미엔 코다라가 샤논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했다. 샤논이 세상과 작별하기 직전에 쓰여진 편지로, 그 전문을 여기에 옮겨 싣는 다.
샤논, 너보다 먼저 여행을 떠난 사람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그 빛의 세계로 가거라. 그들은 두 팔 벌려 너를 맞아 줄 거야. 사랑과 웃음과 행복으로 말야. 그런 것들은 여기 이 지상에서나 천국에서나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샤논, 그곳에는 고통이나 아픔이 없을 거야. 슬픔은 절대로 불가능하지. 네가 그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넌 너보다 앞서 신비롭게 네 곁을 떠나갔던 너의 친구들을 모두 만날 수 있을 거야. 넌 그 동안 암이라는 사악한 병과 너무도 용감하게 싸웠지. 죽음의 신이 내미는 분노로 가득한 검은 손을 영리하게 뿌리치면서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우리들은 널 무척 그리워할 것이고, 너의 특별함을 오래도록 기억할 거야. 넌 우리의 가슴과 정신 속에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 거야. 넌 너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가까워질 수 있는 하나의 이유가 돼 주었어 . 진정으로 놀라운 것은 네가 네 앞에 어떤 문제와 장애물들이 가로놓여 있다 해도 넌 끊임없이 그것들 모두를 뛰어넘고 이겨냈다는 것이지 그러나 슬프게도 마지막 싸움이 너를 눌러 버렸어. 우리는 네가 포기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보다는 너의 용기와 도전하는 정 신에 감동 받을 뿐이지. 그래도 우리는 안심이야. 네가 마침내 평범한 어린 소녀로 돌아간 자유로움을 느낄 테니까 우린 알고 있어. 네가 짧은 인생 동안 우리 모두가 앞으로 성취할 모든 것보다 더 많은 걸 성취했다는 걸 말야. 네가 가 닿았던 가슴들은 그 사랑의 느낌을 결코 잊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네가 어둠의 터널 속에서 갑자기 자신이 혼자라는 걸 발견하고 멀리 바늘구멍 만한 빛밖에 보이지 않거든, 샤논, 우리를 기억하고, 용기를 갖고 그 빛으로 나아가야 해. - 도나 로에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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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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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바꾼다 - 송천호
제2장 시작을 위하여
행운
행운이 굴러들어 오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을 기다릴 틈도 없이 열심히 살아라. 행운은 열심히 사는 자에게 찾아들지 밤에 꾸는 개꿈도 모자라 눈을 뜨고서도 꾸고 있는 자에게는 찾아들지 않는다. 행운이 찾아들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갑자기 굴러들어 온 행운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엮어진다. 인생은 종종 행운의 여신이 갑작스레 찾아들거나 줄(인맥)이 좋고 유산을 물려받는 등의 좋은 여건 때문에 출세도 하고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좋은 인생은 언제나 좋은 계획과 좋은 땀(노력)의 대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세상은 한결같이 노력하는 자의 편이다. 행복 또한 열심히 노력하며 살려고 하는 의욕이 있는 자에게 찾아간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챙겨 주지 않는다. 길거리에 거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챙겨 주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증거다.
성공이란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했을 때 얻어지는 열매이고, 복이란 마음을 곱게 쓰고 착한 일을 많이 함으로써 받는 선물이다.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써 최선을 다한 후에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지, 최선도 다해보지 않고서 부귀 영화를 바라고 행운이 굴러들기를 바라는 것은 도적놈 심보밖에는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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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자료 → 명상/지혜/처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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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100장면 - 박은봉
99. 현대의 흑사병, 에이즈 - 제4차 세계 에이즈 날(1991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서울 APEC 제3차 각료 회의 개최
1991년 12월 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제4차 세계 에이즈 날이다. 이날 160개국에서 이 병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졌다. 미국의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에이즈로 사망한 10만 명의 미국인을 추모하는 뜻에서 이날 밤 대형 빌딩과 교각의 불이 일제히 꺼졌으며, 프랑스에서는 파리 시내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에 8백 명의 어린이 에이즈 환자를 상징하는 8백개의 트리 장식물을 내걸었다. 영국에서는 수백 개의 교회가 예배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다루는 한편, 성공회의 조지 캐리 켄터베리 대주교와 가수 클리프 리처드 등이 에이즈 퇴치를 호소했다. 소련 모스크바 시 청사 부근에서는 러시아 동성연애자협회 회원들이 콘돔과 함께 안전하 성생활에 관한 책자를 무료로 배포했다.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91년 10월 현재 보고된 세계의 에이즈 환자 수는 약 42만 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150만 명의 환자와 800만 내지 천만의 보균자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서기2000년에는 에이즈 환자 수가 1,200만 내지 1,800만으로 늘어날 것이며, 에이즈를 발병케 하는 HIV바이러스 양성반응자 수는 무려 4천만에 다다를 것으로 내다보았다.
일단 걸리면, 신체의 면역성이 떨어져 급기야 사망하고 마는 불치의 병 에이즈, 에이즈가 맨처음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아프리카에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최초로 환자가 발견된 것은 미국에서라는 정도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전염되며 치료법이나 예방법이 아직 발견되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그 전염경로가 주로 성적 접촉을 통해서라는 점에서 에이즈는 현대인의 도덕성 문제와 결부되어 현대의 흑사병, 신이 내린 천형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현재 세계 각처에서 매일 5천 명 꼴로 새로운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 에이즈 환자가 처음으로 보고된 것은 1981년이다. 미국 공중보건 당국은 이 병은 반드시 피를 통하거나 성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전염되는 것이지, 공기나 음식으로는 절대 옮기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악수를 하거나, 화장실을 같이 쓰거나, 샤워를 같이 하거나, 음식을 같이 먹거나, 사무실 집기를 같이 쓰는 것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이즈에 대한 공포는 대단했다. 뉴저지 주 워싱턴보로에 사는 9살 된 소년은 누이동새이 이 병의 증세를 갖고 있었다. 사실이 알려지자 소년의 학급 학생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교회의 예배양식도 달라져야 했다. 성찬식 때 사람들이 빵만 받아들고 포도주잔에는 입에 대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90년 3월 현재 보사부에 공식통보된 주한 미군 에이즈 감염자는 33명, 그러나 이 숫자는 한국인 여성과 접촉한 사실이 있는 경우에 한하므로 실제 숫자는 50여 명에 달한다고 보사부는 발표했다. 우리 나라에서 에이즈 환자가 처음 발생한 것은 1985년 6월이다. 외국인 교환교수였던 그 환자는 본군으로 돌아가 사망했다. 이후 우리 나라 에이즈 환자 수는 급증, 90년 3월에는 총 78명, 91년 12월에는 그 두배를 넘는 총 167명이 보고되었다. 그 가운데 15명이 사망하고 1명은 출국, 현재 151명이 있는데 남자가 134명, 여자가 17명이다. 에이즈는 성관계가 문란한 사람이다. 동성연애자들이 걸리는 병으로 여겨져왔지만, 최근에는 수술시 수혈받은 피를 통해 감염된 경우가 상당수 보고되었으며, 91년 11월 한달 동안에만 목사, 가정주부, 외향선원 등 5명이 새롭게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제 에이즈는 동성연애자나 윤락여성만 걸리는 병이 아니라 누구든지 언제라도 걸릴 수 있는 병이 되어버린 것이다.
1991년 6월 21일 이탈리아에서 세계 에이즈 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96년경 예방백신이 개발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현재 에이즈 예방백신에 대한 연구는 미국, 영국 등지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에이즈 바이러스와 겉모양만 똑같은 바이러스를 반들어 항체형성을 유도하는 방법, 에이즈 바이러스를 대량배양하여 바이러스를 죽인 다음 표면 단백질을 잘게 나눠 항원으로 만들어서 체내에 주입하는 방법, 에이즈 바이러스의 핵심 유전자를 죽여 바이러스를 불활성화시킨 다음 그대로 체내에 주입, 항체를 유도하는 방법 등 백신 개발을 위한 접근방법도 다양하나 그 어느 곳도 성공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 14세기에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절반을 쓰러뜨리고 중세를 몰락시킨 한 원인이 되었다. 20세기 말, 급격히 퍼져나가고 있는 에이즈는 과연 어떤 역사적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심각히 대두되는 환경문제, 핵문제와 더불어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되진 않을까 생각한다.
100. 사가라드는 현존 사회주의 - 소연방해체, 독립국가공동체 출범(1991년) *그때 우리 나라에서는 - 1991년 국제노동기구ILO가입, 제5차 남북고위급 회담, (남북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을 위한 합의서) 채택
1991년 12월 8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크라프추크 우쿠라이나 공화국 대통령, 슈시케비치 벨로루스(구 백 러시아) 최고회의 의장 3인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을 선언했다. 벨로루스의 부크 강변에 있는 브레스트에서 비공개회담을 가진 이들은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하고 대신 외교, 국방 핵통제권 을 공동관장하는 독립공화국들의 공동체를 결성한다고 발표했다. 연방 대통령 고르바초프는 3개국만의 합의로 소련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는 없다. 고 반대했다. 그러나 나머지 8개 공화국들이 속속 공동체 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대세가 기울자 고르바초프도 하는 수 없이 이에 승복하고 말았다. 이로써 발트 3국이 독립해 떨어져나간 후, 나머지 공화국들을 묶어 새로운 연방을 결성하려던 고르바초프의 신연방조약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소비에트 연방은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1917년 세계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노동자와 농민의 국가로 당당히 출범한 지 꼭 74년 만의 일이다.
독립국가공동체는 겉으로는 소비에트 연방과 비슷하지만, 실인즉 아주 다르다. 우선 공동체는 구 소련 같은 강력한 중앙정부를 갖지 않는다. 구 연방하에서는 중앙정부 밑에 있는 행정단위 정도의 지위를 갖고 있었는 데 비해, 이제는 각 공화국이 저마다 하나의 독립국이 되어 독자의 법률, 정책, 외교관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본부는 모스크바가 아니라 벨로루스의 수도 민스크에 위치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11개 공화국 가운데 가장 큰 러시아 공화국이 공동체의 주도권을 쥐고, 그 대통령인 보리스 옐친이 고르바초프를 대신하여 새로운 지도자로 떠올랐다. 보리스 옐친을 러시아 공호국이 구 소련의 모든 채무를 승계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보리스 옐친, 그는 1931년 2월 1일 우랄 산맥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우랄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건설기술자가 된 그는 1961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67년부터 85년까지 지방 당에서 일하다가 81년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어 승진했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와 글라스노스트 를 주창하며 소련 내부의 개혁을 단행하자, 옐친은 고르바초프보다도 더 진보적 인 개혁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자유의 기수로 자타가 인정할 만큼 각광을 받은 것은 91년 8월, 보수파의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용감하게도 쿠데타 군의 탱크 위에 올라가 열변을 토한 순간부터였다. 이 순간 이후 옐친은 고르바초프를 누르고 새 시대를 열 주인공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후 옐친은 고르바초프가 지니고 있던 연방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차례차례 빼앗기 시작했다. 옐친은 고르바초프의 신연방조약은 구 체제를 부활시키려는 헛된 노력에 불과하며, 연방이라는 껍데기를 고수해서는 결코 새로운 소련을 건설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구상은 러시아 공화국이 패권을 행사하는 러시아 패권주의 에 다름아니다. 각 공화국들의 독립주권을 인정하되, 러시아 공화국의 세력권 안에 묶어둔다는 구상인 것이다. 옐친의 계획은 일단 성공한 듯하다. 고르바초프는 12월 26일 연방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며, 독립국가공동체는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그렇지만 공동체의 미래와 옐친의 앞날이 장미빛인 것만은 아니다. 독립국가공동체가 우리를 배불리 먹여주기나 했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모스크바에 사는 어느 부인의 말처럼, 소련인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난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옐친은 그 해결책으로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계획경제체제를 유지해온 소련을 하루아침에 시장경제로 바꾸는 데는 무한정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옐친 자신을 비롯하여 소련 국민의 대다수는 시장경제 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구 소연방 시절에는 국가가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대신 그 관료주의와 무사안일주의에 진저리를 쳐야 했다면, 앞으로 소련인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냉혹한 시장경제체제에서 생존하는 법 부터 궁리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시장경제체제는 당분간 어떤 의미로든 견디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과 같이 소련의 앞날을 우려했다.
...소련사회는 정치적으로나 정신적 양면에서 다 같이 자유로워졌습니다...저는 현상황에 대한 여러분의 불만은 물론 전반적 전위체계와 저 자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과거 수년간의 민주적 성과들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성과들은 많은 고통과 비극을 겪을 끝에 얻어진 역사적 산물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이유 아래서도 이들을 포기해선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보다 나은 장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땅 속에 묻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소련은 죽었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가 불붙인 민족주의 돌풍을 너무 과소평가한 건 아니었을까? 20세기가 사회주의의 시대였다면, 그 마지막 10년의 첫해는 현존 사회주의의 대거 참잠을 알리는 서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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