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4. 돌과 원운동
4-4. 돌과 원운동
흔히 돌림의 현상을 윤회라고 한다. 불가에서는 윤회를 '어리석은 백성이 해 탈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그들의 영흔과 육채가 업(業)을 따라서 삶과 죽음의 과정을 되플이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한편 지리학에서는 지각의 발달단계를 유년기-청 년기-장년기-노년기로 나누는데, 그러한 과정이 되풀이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정치학에서는, 페르겐부르크같은 이들은 홍망성쇠의 반복 속에서 국가의 형태가 발전해 나아간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음도 자연계의 돌림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있다. 밤과 낮으로 돌아가는 지구가 그러하고 대기권의 기상현상 또한 그러하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몸 속에서 돌고 있는 피 또한 그러하다. 본시 '돌다' 라는 말은 '돌 十-다'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돌'은 '사람이 나거나 죽어서 한 해에 한 번썩 해마다 돌아오는 날'로 이해하면 된다. 여기에서 파생된 '돌아가다'는 사물이 '원래 있던 자리로 다시 가는 것이나, 사람이 죽는 것을 높여서 말하는 경어이다. 죽는 것을 일러 '돌아가다' 라고 하는 경우, 원래의 태어나기 이전의 어떤 시간과 공간을 전제하는 것으로 삶의 영원성, 곧 영원회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돌아가다' 는 표현으로서의 설득력을 잃게 된다. 생각해 보니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가 '돈' 이라고 부르는 화폐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화폐는 유통이 안 되면 올바른 제 구실을 할 수 없지 않은가. '정신이 아주 돌았어' 라고 할 때는 수평면에서 보아 일백팔십 도를 돌았다는 얘기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돌림현상의 하나이다. 바다에서 피어 오른 수증기가 모여 구름이 되고, 기압의 골짜기를 따라 구름이 모이면 비가 된다 비는 대지에 내려 모이어 냇물이 되고 냇물은 다시 강으로, 다시 바다로 흐르는 것. 결국은 모든 것이 돌아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동물의 혈관에 흐르는 '피'는 어떠한가. 그 피도 온몸을 돌며 영양을 공급하거나 필요없는 물질을 가지고 가 버린다. 마치 들의 풀꽃들이 피고지고 하여 계절을 살아가듯이 말이다.
그럼 '돌다'의 '돌-' 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의미적인 특징을 갖고 있을까. 필자는 '돌'의 의미적 특성은 '돌림'에 있으며 기본 형태는 '돌' 에서 비롯한 것으로 생각한다. 바위의 조각으로서 모래보다는 크고 바위보다는 작은 것, 또는 암석이나 광석을 통칭하여 우리는 '돌' 이라고 이른다. 돌이 생성되는 과정은 쪼개어 지고 서로 부딪혀 구르는 모습을 전제로 한다. 분절파 회전이 거듭 되어 더 작은 돌뗑이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때로는 산사태에 의해 돌기도 할 것이고, 홍수에 떠내려 가면서 씻기어 점차 작아지고 둥글어져 가기도 할 것이다. 바위에서 쪼개어져 돌이 되고, 다시 쪼개어져 돌껭이가 되었다가 결국 자갈이 되고 다시 모래로 된다. 부딪혀 쪼개져 흙이 되고, 흙은 모이어 다시 바위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돌고 돌아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대지의 토양을 살찌우는 것이 '돌'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돌' 의 순환성에 바탕을 두고 다른 동사나 복함어가 파생되어 간다. 그 낱말겨레는 다음과 같다.
'돌'의 낱말겨레(증세 어) 돌개 (石浦 ; ((용가), 1-38), 돌고(돌달구 ; (박해) 중간 상 10), 돌 ㄷ리 (역해), 상 14), 돌다(월석) 1-25), 돌덩이 다신속삼강행실도), 효 4-89), 돌매 (월석 23-79), 돌보다((송강, 2-3), 돌저귀 ((청구) p. 119), 돌보치(한청) 17l C), 돐((소해), 4-22), 돐서리 (石間 ; ((초두해), 7-l0), 돌탕관(청구,, 대학본 86) 등.
'들'의 낱말겨레 (현대 어) 1) 돌-'계-돌, 돌계집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돌고드름, 돌공이, 돌곪기다(종기가 겉은 딴딴하나 속으로 몹시 곪다), 돌구멍, 돌구유, 돌기둥, 돌기와, 돌길(돌아가는 길), 돌날, 돌담, 돌대 (회전축), 돌덩이, 돌돌(여러 겹으로 둥글게 마는 모양), 돌돌하다(영리하다-머리가 잘 돌아가니까), 돌라내다(남의 물건을슬쩍 빼돌리다), 돌라놓다(각자의 몫으로 나누어 놓다), 돌라대다(돈이나 물건 따위를 변통하여 대다), 돌라막다(둘러막다), 돌라버리다(게워 버리다), 돌라방치다(무엇을 빼돌리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을 살짝 대신 넣다), 돌라붙다(<둘러붙다), 돌라서다(<둘러서다), 돌라싸다(<둘러싸다), 돌라쌓다(<둘러쌓다), 돌려내다(남을 샅살 꾀어서 있는 곳에서 빼돌리어 내 다), 돌려 능다, 돌려보내다, 돌려보다, 돌림, 돌림병, 돌림자(항렬자), 돌립장이 (따로 돌림을 받는 사람), 돌뗑이질, 돌물레(고삐를 꼴 때 새끼 한끝에 달고 돌리어 꼬게 만든 기구로 '자세' 라고도 함), 돌보다. 돌부리, 돌부처, 돌비알(가파른 돌언덕), 돌샘 (돌 사이에서 솟아 나는 샘), 돌순, 돌아가다, 돌아내리다, 돌아눕다, 돌아다니다, 돌아들다, 돌아서다, 돌아앉다, 돌아오다, 돌알(돌로 만든 안경알), 돌우물, 돌이키다, 돌잔치, 돌잡이(돌잡히는 일)돌잡히다(돌날에 여러 가지 음식과 믈건을 상 위에 차려 놓고 돌쟁이에게 마음대로 잡게 하다), 돌장이, 돌절구, 돌집, 돌짬(갈라진 돌과 돌의 틈), 돌쩌귀 (문짝을 문설주에 달아 여닫게 하기 위한 암수 한 벌의 쇠붙이 물건), 돌탑, 돌팔매, 돌함(돌로 만든 함), 돌확(돌로 만든 조그만 절구), 돌비늘 등.
2) 도르_.계_도르다(먹은 것을 토하다, 둘레를 돋려 감다), 도르래, 도르르, 도르리 (음식을 돌려 가며 제각기 내는 일), 도리기(여러 사람이 돈을 내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일), 도리깨, 도리깨침 (탐이 나거나 먹고 싶어서 저절로 삼키어지는 침), 도리깨열(도리깨 채에 달아 곡식의 이삭을 후려치도록 되어 있는 서너 개의 회초리), 도리다, 도리도리 등
3) 도로_'계 도로가다. 도로. 도로 오다 등.
이상에서, 원운동을 하는 물체나 원형의 물체 또는 돌과 같이 단단한 물체에 '돌_, 도르_, 도로_'가 붙어 어휘를 만들어 냄을 알 수있다. 이에 대해 과연 이러한 순환성을 드러내는 말들에 돌이 만들 어지는 과정이 반영된 것일까 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어떤 사물이나 사실의 속성은 언어표현의 바탕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인간이 인식하는 여러 가지 인식방법이나 관점에서 언어적인 사고가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적인 표현들이 내적. 외적 재구에 따라서 호응하는 형태를 보인다면 한 언어의 변천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유익할 것이다. '돌' 의 경우, 돌고 돌아서 이루어지는 '원운동.원형'의 속성을 층족시키는 외연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돌-'은 현대로 내려올 수록 더 많은 합성어를 만들어 낸다. 물이 수증기로, 구름으로, 다시 비가 되어 대지와 바다로 돌아가 듯, 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어느 것 하나도 '돌림'의 속성을 지니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둥글게 돌아가는 물체 위에 존재하기 때문일까.
4-5. 죽음과 뒤
아무 힘도 없는 사람이 힘이 센 사람에게 겁도 없이 달려드는 일이 있다. 속담에서도 이를 '죽은 고양이가 산 고양이 보고 아응한다. 고 이른다. 어느 곳에나 허세가 있는바, 이를 옹자하는 말이기도 하다. 삶과 반대되는 뜻으로서, 삶을 이어가는 데 필수적이고 결정적인 활동이 마비되고 파괴되는 일을 '죽음' 이라고 하며, 동사로는 '죽다'라고 한다. 죽음은 구체적으로 숨이 끊어지는 뜻을 중심으로 하여 쓰이지만, 비유적 인 의미로 '자살하다, 그림 같은 예술품에 생기가 없다, 블이 꺼지다, 움직이던 물체가 정지하다, 생생한 기운이 없어지다, 경기 또는 오락에서 상대방에게 잡히다, 음식이나 철물류가 산화에 따라 빛이나 맛을 잃다'와 같이 여러 가지의 주변적인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벽에 부딪혀 막다른 데까지 이른 상항을 한계상황 이라고 하거니와 그 가운데에서도 죽음처럼 절박한 것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문제에 대하여 진지한 자세로 풀이하려 하지 않는 종교는 없다. 종교는죽음을 새롭고 영적인 삶의 출발로 보아, 죽은 뒤의 새로운 하늘과 땅을 설정하여 영원한 삶에의 기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곧 육체적 죽음을 넘어서려는 지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천국이라든가 극락과 같은 개념이 그 좋은 실례라고 할 것이다. 죽음이란 말은 어떤 문화적인 배경에서 만들어진 말일까. 주거생활의 원시 단계인, 굴살이나 수상생활(樹上生活)과 연관하여 잠시 생각하여 보기로 한다. 중국의 기록이긴 하나 <진서 (辰書) >,에는 동이 (東夷)들의 생활에 대하여 녀.름에는 나무 위에서 살았으며, 겨울에는 굴과 같은 곳에서 살았다(夏則眞居冬則穴處)' 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후한서 (後舊書)에는 '흙으로 무덤과 같은 집을 짓고 살았으며, 여닫이문은 무덤 같은 흙집 위에 설치하였다(作土로如家開戶在上)'고 전해지니, 우리 조산들이 이른바 움집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삼국지),의 기록에 의하면 어떤 대갓집은 무덤과 같은 굴의 깆이가 사다리 아홉 개를 놓고 들어갈 만하다고도 한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우리가 거주하는 집들도 흙집의 모양을 옮겨 변형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몇 계단을 지하로 내려가서 타야하는 지하철 정거장을 보면 위의 기록이 그다지 생소하지만은 않다. 말 그대로 모든 생물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무덤과 같은 굴 속에서 태어난 우리 사람이 죽은 뒤에 다시 무덤으로 돌아가서 묻히니, 요람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돌림의 질서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생명종식어 '죽다'는 '죽十_다>죽다'로 풀이할 수 있는데 이때 '죽'이란 말의 바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풀이가 있다. 서재극은 '기운이 떨어지고 앞으로 기운다' 는 뜻을 드러내는 '숙다' 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중세국어의 단어족연구), l979). 의미론적 인 유연성으로 보아 전혀 무관하지 않을 뿐더 러, 음운의 변화로도 설명할 수 있다. 고대 국어에서 는 터짐갈이소리(파찰음)가 없었음을 감안할 때 '숙다>죽다'의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숙'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물음과, 끼 운이 줄고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곧 죽음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히지 못하는 여백이 남는다. 필자는 말의 짜임새로 보아 '죽다'는 명사 '죽'에 접미사 '-다'가 붙어 된 것으로, 여기서의 '죽'은 '둑'에서 비롯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둑은 홍수의 예방이나 저수(貯水)를 위하여 돌이나 흙 따위로 높이 쌓은 언덕이나, 높은 길을 내려고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언덕을 말한다. 한마디로 이러한 '둑'의 원형(原形)은 거처하기 위하여 만든 무덤파 같은 집이요, 죽은 뒤에 돌아가는 무덤과 같은 공간을 이른 것으로 생각된다. '둑>죽'으로 되었을 가능성은 같은 낱말겨레의 방언자료를 통해 예측할 수 있다. '둑'의 방언분포를 들어 보이면, 둑(경기 포천. 강화. 광주/강원 흥천/충북 충주. 제천/경북 울진 경주 월성. 청도/경남 사천. 고성), 뚝(한반도 대다수 지역), 개뚝(경기 안성), 두거리 (강원 홍천), 걸뚝(경남 진주), 방죽(층남 서천/경남 함양), 방축(경기 파주/강원 양구), 방천 (전북 무주 전주 진안. 순창/경북 영주. 영양 청송 영천. 선산. 금릉. 청도/경남 거창. 울산. 합천. 진주. 하동), 데부(경기 가평/층북 옥천), 데부뚝(강원 양구 화천 춘천. 인제. 원주) 등과 같다.
이상의 보기 중에서 '둑~죽'의 상관성을 보이는 형태는 '방죽'의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도 물을 막기 위한 것을 '방죽'이라한다. 이는 사람의 주거나 무덤의 의미로 상이던 말이 오늘날에 와서 확대. 유추된 경우라고 할 것이다. 또 다른 풀이의 바탕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둑'의 낱말겨레에드러나는, 죽은 뒤 바로 무덤에 묻히는 상태나 과정과의 연관성이다. '둑' 은 모음교체를 따라서 양성모음이 되면 '독(궤. 항아리 ;(구급간), 6-29. (능엄 8-88)' 으로 드러나고, 음성모음이 되면 '둑(유씨명) 5, 덕 (나뭇가지 사이 등에 걸쳐 맨 시렁 ; (금삼),2-25)' 으로 쓰이게 된다. 시루에 안쳐 곡식가루를 찌거나 굽거나 흑은 소댕에 부쳐서 익혀 만든 음식을 '떡'이라 함도 '덕'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중성모음으로 바뀌면 '딕다(찍다 ; (박해), 하 6)' 가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박물관에 가서 옛 사람들의 무덤에서 나온 것을 보면 뼈를 따로 담아 두는 항아리인 '골호(骨豪)'가 있는 데 일종의 '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넉'의 경우만 해도 그러하다. 원래 여름 더운 때면 나무 위에 덕대를 매 놓고 살았다고 하거니와 풍장(風葬)을 하는 고장에선 지금도 사람이 죽으면 일정한 장소에 덕대를 매고 그 위에 시체를 놓아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뼈만 거두어 다시 장례를 모신다. '둑'이 '죽'과 관련이 있음을 드러내 주는 좋은 보기라 하겠다. 닉 다'의 경우는 어떠한가 ? '딕다' 는 어떤 표 같은 데에 구멍을 내어 뚫을 때에 쓰이는 말로, 굴살이나 무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죽음'을 '독/둑/덕/딕-'과 관련짓는 또다른 바탕은, '죽다'와 뜻을 함께하는 이른바 생명종식어에 땅과 관련한 형태가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말의 생 명종식어를 들어 보이면, 밥숟가락 놓다, 입이 닫히다, 입다물다, 눈감다, 숨소리 멈추다, 목숨이 끊어지다, 눈감기다, 목숨이 사라지다, 목숨이 없어지다, 꼭숨이 떨어지다, 숨지다(이상은 주로 신체 부위의 변화)/거꾸러지다, 쓰러지다, 죽어 자빠지다, 죽어 넘 어지다, 몸이 식 어지다, 몸이 굳어지다(이상은 외양의 변화)뒈지 다(뒤지다 ; 비속어) 등과 같다. 이는 주로 고유어의 경우를 든 것인데 이들 형태 중에서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 '-지다'이다. 아주 생산적으로 쓰이어 많은 용언들과 함께 복합동사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지다'는 옛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 중세어 자료를 보면, '지다'는 니 다'로 드러난다. '죽다(월석, 21-215), 떨어지다((용가), 85)' 가 중심된 뜻으로 삽인 것으로 확인되며, 낱말의 짜임새는 니 十-다>디다 (>지다)'로 풀어 볼 수 있다. 이때 '디-'는 공간명사 '뜰'에 니 '가 결합한 'ㄷ十이 >더 (>지)' 로 보든 디 (地)>지'로 보든 간에 땅(ㄷ)'과 관련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죽다.쓰러지다'로 쓰인 예로 보아, 디다'가 죽음에 이르러 다시 땅으로 가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위에서는 '죽음'이란 낱말이 만들어지는 의미의 바탕이 땅과 상관이 있음을 보았다. 과연 '죽음'은 방위의 개념으로는 어느 쪽을 나타낼까 ? '죽다'의 비속한 표현으로 '뒈지다'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뒈지다'는 '두어지다'의 줄임말로서 '두다+지다>두어지다>뒈지다(~뒤지다)'로 풀어 볼 수 있다. 중세어 자료를 보면, '두다'는 '뒷다(석보 6-2)' 의 변이형임을 알게 되는데, 이때 뒷'은 '뒤 (ㅎ)>뒷'과 같이 히읗(ㅎ)종성체언이 변형된 것이다. 흔히 뒤가 방위로는 북쪽을 뜻하고, 계절로는 겨울을, 동물로는 곰이나 뱀을, 별로는 북두칠성을, 소리로는 우면조를, 성으로는 여성을 상징한다. 특히 여성상징과 연계지을 때, 대지 (땅)이나 물 역시 여성 흑은 어머니의 성격을 띰을 상기하게 된다. 땅으로의 회귀, '죽다'가 '뒤'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지 않을까 ? 우리 배달겨레의 북두칠성에 대한 별 신앙은 원시신앙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손꼽을 만하다. 이름 있는 유명한 산의 봉우리 가운데 비로봉은 '별'의 방언형인 빌'에서 비롯된 것이고, 우리말의 '빌다'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화인류학에서는 북쪽의 별이 중시되는 것을 고아시아족의 원거주지가 시베리이 부근이었기때문이라고 플이하기도 한다. 혼인 예식의 자리에 기러기를 놓는다든지 사람이 죽어 초혼(招魂)을 할 때, '복복(復復)'이라고 부름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귀향의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뒤'는 두고 온 우리 고향의 방위 (북쭉)이 며, 다시 돌아갈 영원한 마음의 공간이라고 하겠다. 형태상으로 보아 히읗(ㅎ)종성은, 기역 (ㄱ)으로 소리 나는 일이 종종 있다. 띠라서 '뒤 (ㄱ)다>ㄷ다>쥑다>죽다'의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뒈지다~뒤지다'는 살아있는 현재의 삶이 아니고 이미 과거시제가 된, 멀어진 저승의 삶이라고 보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마침내 본래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매, 땅을 드러내는 '디'에 접미사 '-다'가 붙어 '디다>지다'로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앞에서는 '죽다'의 발달과정을 '둑 >죽'과 '뒤 (ㄱ)다>쥐 (ㄱ)다>죽다'리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다. 필자는 이중 '뒤 (ㄱ)다'에서 발달한 것으로 봄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둑'과 '뒤'모두 공간을 드러내는 말이기는 하지만, 소리가 변하는 규칙성이라는 면에서 볼 때, '둑>죽'의 가능성보다는 '뒤 (ㄱ)>쥐 (ㄱ)>죽'의 가능성이 더 늦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등의 자료를 보면, 뒤'가 '디' 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지금도 경상도에서는 '죽인다'를 '지긴다'로 쓰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해 볼 때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배해수는 죽음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낱말밭은 추상적인 것, 내세관적인 것, 생명체적인 것 등의 세 개의 분절상(相)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현대국어의 생명종식 어에 대한 연구, l982). 이 가운데에서 '뒤 (ㄱ)' 의 내용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내세판적인 것의 분절상이다. 배해수는 종교적인 교리의 바탕 위에서 죽은 뒤 영혼의 이동에 대해 풀이한 낱말의 겨레와, 이승과의 인연을 끊는 내용을 담은 낱말겨레를 보기로 들고 있다. 영흔이 이동하는 방향에 따른 낱말겨떼는 산승이동에 대한 것과 하강이동에 대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영혼의 상승이동에 대한 낱말겨레로는, 승천 (昇天)하다, 승하(昇速)하다, 예척 (禮陟)하다, 척방(陟方)하다, 등선 (효仙)하다, 신선(神仙) 되다, 천당가다 하늘나라 가다, 극락 가다, 왕생극락하다, 입멸 (入減)하다, 원적 (圓寂)하다, 피안(彼岸)으로 가다, 입적 (入寂)하다, 귀화(練化)하다, 귀원 (歸元)하다, 귀진 (歸眞)하다 등이 있다. 일단 죽은 뒤의 공간에 대한 표현은 종교에 따라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은 공통적인 이상향으로서 추구되고 있다. 그러한 신성한 공간으로서의 '하늘'은 후에 임금의 죽음과 관련하여 특별하게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피안(彼岸)으로 가다'의 '피 안'도 이상향으로 일컬어지는바 모든 번뇌에 얽매인 고통의 바다를 넘어선 가장 이상적인 언덕을 뜻한다. 이와는 반대로 죽은 뒤 영혼이 현재보다 나쁜 곳으로 가는 하강 이동에 대한 낱말 겨레로는 지옥 가다, 아귀 (餓鬼) 되다, 축생되다, 명부(冥府) 가다, 창천 (黃泉) 가다, 지하(地下) 가다, 구천(九泉) 가다 등이 있다. 이들은 공간의 위치로 보아 낮은 곳이거나 나쁜 곳에로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상승하는 것도 하강하는 것도 아닌 장소에로의 이동을 드러내는 말로, '연옥 가다(천주교), 환생하다(불교), 귀신 되다(민속신앙)'와 같은 표현들이 있다. 죽음과 관련한 내세관적인 표현에는, 앞에서 상승, 하강, 상승도 하강도 아닌 것으로 나누어 살펴 본 영흔의 이동상태에 따른 것 외에, 이승과의 인연을 끊는 내용을 담는 말들이 있다. 영혼이 떠나다, 혼백이 떠나다, 혼이 떠나다, 영혼이 없어지다, 영혼이 사라지다, 영혼이 나가다'와 같은 말들은 모두 영흔이 육체로부터 멀어짐을 뜻하고 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은 분명 영원한 이별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한평생 동안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겼다 만나면서 살아 간다. 이상(李繪)의 <봉별기 (逢別記)>에서도 나타난바, 죽은 자와 산 자의 만남과 헤어짐을 드러내는 말로는 '생리사별 (生離死別) 하다, 사별(死別)하다, 여의 다, 영결 (永訟)`하다, 영결종천 (永訟終天)하다' 등의 낱말들이 있다. 직접 사람은 아니더라도 세상과의 인연을 끊는다는 내용의 낱말겨레가 있으니 '세상을 버리다, 기세 (棄世)하다, 세상을 하직하다, 별세 (別世)하다, 하세 (下世)하다, 타계하다, 세상을 달리하다, 유명 (幽明)을 달리하다' 등의 형태가 그러한 보기들이다.
이 세상에 살아서 숨을 쉬고 감각할 수 있는 누리가 이승이요 현재요 앞이라면, 죽은 뒤의 세상은 저승이며 과거요, 분명한 뒤가 된다. 죽은 뒤의 세상에 대하여 아무도 객관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우리말의 '깜깜하다/캄캄하다/감감하다'의 '감감'은 어두운 신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중세어의 '감. 곰. 검. 금' 등은 신을 가리키는 말로서, 현대 일본어에서도 신을 '가미' 라고 하지 않는가. 가장 잘 죽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다가 인간스레 죽는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으로 보인다. 결국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펑무사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섭리이기에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확연하게 보석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은 소크라테스보다 산 돼지의 코가 되는 게 좋다고도 하지만,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본향을 그리며 사는 게 아닐까 ? 사망의 그림자를 자연스레 인정하면서 욕망을 조금씩 줄이고 모두가 함께하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가야 함은, 죽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삶의 방향성일 것이다.
4-6. 흙과 살
'흙의 냄새가 고소하다'는 말이 있다. 흙의 냄새를 볶은 콩의 냄새처럼 고소하게 느낄 정도로 죽고 싶은 생각이 들 경우를 이르고 있다. 지구의 겉표면을 이루는 물질로서 바위가 부스러져서 가루로 된 것을 '흙'이라고 한다. 부드러우면서도 기름기가 있으며, 물기를 보존함으로써 풀과 나무를 길러 내는 힘을 지니고 있다. 생물이 호흡하는 공기를 지구의 옷에 비유할 수 있다면 흙은 지구의 몸을 이루고 있는 육체, 그 가운데에서도 살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흙은 용암(마그마)이 굳어지고 굳어진 용암이 풍화되고 이리저리로 흩어져 생성된다. 흙이 전혀 없고 용암상태의 바위만이 있는 골짜기. 거기에 무슨 목숨살이가 가능하겠는가 ? 그곳은 공허한 바위굴과 바위굴의 연속 일 뿐, 참으로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옛말에는 '흙'이 '흙 (석보), 13-51)' 이었는데 뒤로 오면서 모음이 바뀌어 '흙'이 되었다. 일부 지역(경상.평 남)에서는 흙을 '흘이라고도 한다. 생각하건대 이 '흘'은 증세어에 태양 또는 하루를 가리키는 '흘 (능엄), 4-72)' 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한다. 모음이 바썹으로써 그렇게 될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중세어의 '흙'과 이 '흘'은 서로 어떤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흘' 곧 태양은 그 본질에 있어 불이요, 타오르는 사름이다. 조금 더 생각을 이어 보면, 흙이 끓어오르는 용암이 흘러내려 만들어진 결과라는 점과 '흘'의 연관성을 맺을 수 있다 필자는 '흘'이 그 뜻으로나 형태(음운)의 변천 혹은 넘나듦으로 보아 '슬(歲 ;((삼역),, {(계축),) ' 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먼저 뜻으로 본다면, '슬'은 앞서 말한 보기처럼 태 양을 뜻히며 불이 타오르는 연소과정을 나타낸다. '슬다(>사르다 ; (원각), 2-1 :48)가 '불을 사르다'의 의미로 대응하고 있음은, 불 곧 태양의 뜻과 상통함을 보여 준다. 그러던 '실'이 '나이'를 뜻하는 연령의 단위로바뀌어 간 것이다.
흙이 나타내는 모양이나 성질은 여러 가지로 갈라져 나아간다. 이를테면 흙이 용암의 상태에서 액체상태로 움직이는 것을 '흐르다'라고 하던 것이 물이 움직이는 것도 '흐르다'로 표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거나 세워 놓은 집을 부수는 것을 '헐다'라고 함도 '흙'의 생성과정이나 그 모양 또는 성질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한다. '흙'이 관여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형태로는 얼 (할)-/흐(느.리.르)-/흘(ㄱ)-/흩-'과 같은 어형들이 있다. 헐-'계에 해 당되는 말로는 헐다, 헐다, 헐다,, 헐떡거리다, 헐겁다(낄 자리가 너르다), 헐뜯다, 헐 렁 헐렁하다' 와 같은 꼴이 있고 '흐-' 계에는 '흐너지다(포개 있던 작은 물건들이 낱낱이 헐리다), 흐느적이다(하늘거리다), 흐늘거리다, 흐리다(흙이 물에 풀리면 흐려지 니까), 흐르다,(물 따위가 낮은 곳으로 내려가다), 흐르다(짐승이 교배를 하다), 흐르르하다, 흐리디 흐르다, 흐리멍덩하다, 흐리터분하다, 흐릿하다'와 같은 말들이 있다. 한편.흘(ㄱ) 계에는 '흘러 가다(쓰인 예 :홀러 가는 물 퍼 주기 ; 주는 사람은 대수롭지 않으나 받는 이는 고마울 경우), 흘러 나오다, 흘러 내리다, 흘러 보다(남의 속을 슬그머니 떠보다), 흘렁거리다, 흘레붙이다(암수를 교배시키다), 흘리다, 흘림, 흘림이 ('술'의 심마니말), 흘미죽죽(일을 여믈게 끝맺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질질 끄는 모양), 흘쩍거리다(일올 질질 끌어가는 것), 흙다리, 흙내, 흙감태기 (흙을 온몸에 뒤집어 쓴 사람이나 물건), 흙더미, 흙들이다(논에 새 흙을 들이다), 흙받이, 흙밥(가래 팽이 호미. 삽연장 따위로 한번 떠서 올리는 흙, 또는 쟁기. 긁정이 등으로 깔려 넘어가는 흙), 흙질 (흙을 바르는 것), 흙탕' 과 같은 말이 있다. 또한 I흩_계에 드는 것으로는 '홉날리다, 흩다, 흡뜨리다, 홉어뿌리기 (여기저기 씨를 홈어 뿌리는 일), 흩어지다, 홍이다(흩어지게 하다)'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시대를 거슬러 을라가 중세의 '흘 (흘)-슬-' 을 중심으로 하는 낱말겨레의 분포는 어떤지 알아 보도록 하자.
'흘(흘)-슬-' 의 낱맡겨레 1) 흘_ 계 _흘 ((석보)11-26), 흙 ((석보, 13-51), 흙고개 (용가)1-44), 흙구들(노걸대 상 23), 흙ㄷ리 (역해), 상 l4), 흙무디((훈몽, 중 9), 흙덩이 ((소해), 5-52), 흙ㅂㄹ다 (유합, 하 41),흙벽 (훈몽, 중 8), 흙비 (훈몽), 하 2), 흙빚다(훈몽), 하 20),흙성녕 (도기 만드는 일 ; (유합)하 7), 흙손(혼몽), 증 16), 흙집(초두해) 21-2) 등 2) '흘'계_흘리다((능엄), 5-82), 흘림ㅅ장(문서초안 대장 ; <역해>, 상 12) 등. 3) '슬_계'-슬(ㅎ) (능엄, 8-7), 슬다(燒, (원각), 상 2-l :48), 슬다(生 ; <계초> 초26), 슬이다(살라지다 ; ((석보), 9-37), 삶다(삼강) 열 28), 사로다(송강, 1-5),,사라느다 ((화해), 상 31) 등.
1)의 예에서 본래 '흘'은 기역(ㄱ)특수곡용을 하는 말이었옴을 알게 되는데. 말의 형태가 바뀌는 과정에서 아예 기역(ㄱ)이 붙어 오늘날의 '흙'이 되었음이 눈에 뛴다. 결론적으로 '흘-/홀-/슬-' 계의 어휘들은 태양의 '불사름'에 바탕을 두어서 이루어진 낱말의 겨레라고 생각하여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흙을 밟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흙은 삶의 근거인 것 이다. 흙은 블사름의 소산으로 우리는 대지의 품 속에서 따스한 신의 정서와 은혜를 느낀다. 우리는 흙의 내음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죽음에 이른다. 죽어 땅에 묻히면 결국은 흙이 되어 또 다른 나 곧 꽃이 되기도 하고 새가 되기도 하며, 삶의 섭리를 따른다. 그러다 다시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꾸며 온 날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지구의 육신이 흙이요, 피가 물일진대, 그 흙은 숙명적인 존재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것이다. 이 보금자리에서 존재들은 끊임없이 삶과 죽음의 옷을 갈아입으며 자기 나름의 모양으로 머무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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