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3. 풀과 목숨
3-3. 꽃과 두드러짐
꽃의 빛깔이나 모양이 좋아야 나비가 그 꽃을 찾아온다. 그래서 '꽃이 좋아야 나비가 모인다'는 말이 있다. 자기의 상품이 좋아야 고객을 끌어모을 수 있고, 딸이 고와야 사위를 골라잡을 수 있음과 같은 경우를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 식물의 씨받이를 하기 위한 생식의 기관이면서 특유한 냄새와 가루가 있고, 꿀맛 나는 샘이 있는 부분을 일러 '꽃'이라고 한다. 여기 이런 뜻에 바탕을 두어 아름다운 여인 흑은 번창하고 영화스러운 사물이나 사실을 꽃으로 빗대어 쓰기도 한다. 기능으로 보아 꽂은 종족 보존을 위한 기관이다.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고 때로는 꽃말을 지어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꽃 그 자체는 식물의 성을 뜻한다. 수꽃이나 암꽃에 따라서 특성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꽃이 있음으로 해서 세대가 이어지며 번영을 약속할 수 있으니, 꽃은 씨알이며 부활이요, 생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꽃이야말로 식물의 정수리이며 가장 두드러져 뛰어난 곳이다. 꽃은 수직으로 그 봉우리가 솟아 옆으로 둥그런 꽃잎을 펴서 특유의 향취와 언어를 바람에 날린다. 보이지는 않으나 그 냄새를 따라 나비와 벌이 날아들어 서로 함께 살아 가는 지혜로운 생존과 생식의 욕구를 채워 나아간다. 식물의 부분 가운데에서 가장 두러져 솟은 기관이니, 수직성향은 태양을 지향하는 흐름이라고나 할는지. 꽃은 꽃받침과 꽃부리(꽃잎)로 이루어지는 꽃껍질과, 가장 중요한 알맹이인 꽃술로 짜여진다. 입술이 입을 보호하듯이 꽃껍질은 꽃의 내부를 보호하고, 꽃받침과 꽃부리(꽃잎)는 벌레가 꼬이게 하는 구실을 한다. 꽃부리와 꽃잎은 같은 부분으로, 가장 부드러우며 무지갯및의 고운 치마 저고리를 입는다. 그래서 꽃이라고 하면 우리는 우선 꽃잊을 떠올리게 된다.
본디 '부리' 는 새나 짐승의 주둥이를 말하는바, 물건의 끝이 뾰족하거나 병과 같이 속이 비고 한 끝이 터진 데를 이른다. 부리와 잎이 같은 맥락으로 쓰임을 고려할 때, 꽃잎은 특정한 나무나 풀잎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물폰 나무와 풀의 잎이 비교적 오래 가는 것이라면, 꽃잊은 피었다 쉬 지는 것이긴 하지만.
옛말에서 꽃은 '곳((월석),), 곧(두해),), 곶(용가),) ' 과 같은 여러 가지 꼴로 쓰이었다. 오늘날에 와서 서로 독립한 낱말이 되었는데 이 형태들이 드러내는 뜻과 꽃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 '곳'은 꽃의 뜻으로도 쓰이나, '장소'를 뜻하기도 한다. '장산곶'에서의 '곶'처럼 육지로서, 바다에 튀어나온 부분을 기리키기도 하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땅은 만물이 나서, 자라고, 죽고, 다시 나는 죽살이의 본고장이요, 영원한 서식처이다 땅이 없는 국가와 민족을 생각헤 볼 수 있겠는가. 땅은 성으로 보아 분명 여성으로 상징된다. 마찬가지로 꽃은 열대, 즉 생명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니 그 모양과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그 본성은 생산을 뜻하는 아주 주요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모두가 같지 않은가. 원래 땅(뭍)은 바다 위로 솟아을라 존재하는 공간이다. 지구를 이루는 성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물이나 뭍이나 같지만, 인식의 대상으로서는 육지는 분명 물 위에 솟아오른 물체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눈으로 보아 뒤어나온 곳을 '곳. 곶>꽃'이라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꽃이 지닌 생명의 신비는 마침내 모든 종교에서 꽃이 생명과 부활의 상징으로 쓰이게 한다. 대부분의 무녀들이 꽃을 쓰고, 불가에서는 연꽃으로 상징을 삼으며, 모든 나라가 나라꽃을 가리어 정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아 화랑의 시초였던 원화(源花)도 꽃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쓴 것이라고 보이며, 부여의 유화(柳花)도, <헌화가>의 수로부인도 모두가 꽃과 관계를 지어 상징적으로 쓰고 있음에 틀림없다.
'곧'의 경우도 장소를 가리키는데, '곳(곶)/곧/골'로 자음의 바씸을 따라 이루어지는, 두드러진 장소를 의미하는 낱말의 데에 포함된다. '골'은 여러 가지 꼴과 뜻이 있지만, 특히 산골짜기가 대롱과 같이 긴 굴의 모양을 한 장소를 이른다. 굴의 변형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꽃도 안으로는 생명이 만들어지는 조그만 하나의 신비스런 굴이다. 참으로 꽃은 성스러운 삶이 만들어지는 생명의 고향이다. 사람의 목숨이나 풀꽃의 목숨이나 목숨은 다르지 않다 존재하는 방식이나 모양이 다를 뿐, 우리 사람도 짐승들이나 마찬가지로, 따지고 보면 어미의 태에서 태 어나, 자궁이라는 굴 속에서 자라나서, 이 세상에 나온다. 이를테 면 합일의 공간이 굴이요, 그 굴에서 나오면 분리가 되는 것이다. 요약건대 식물이 퍼져나아가는 생명의 굴이 골이라면, 동물이 싹터 생식하는 골이 바로 굴이라고나 할까. 굴은 말의 분화형태로 보아 '궂/굳/굴/궂' 같은 음성모음 계열의 낱말과 '깃-긷-길' 계와 같은 증성모음 계열로 발달해 왔다. 아울러 덧붙여 둘 것은 우리 얼굴의 코도 '골'에서 멀지 많은 낱말이라는 것이다. 중세어로는 '고((초두해), 20-17)' 인데 히ㅇ(ㅎ)종성체언으로서 '곳/곧/골' 과 서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즉 코는 얼굴에서 가장 두드러져 솟아 있는 부분으로, 속은 굴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코를 곤다고 한다. 이때의 '골다' 라는 말은 코가 바로 대롱과 같이 울림성이 좋은 기관임을 단적으로 드러낸 경우라고 하겠다.
우리말의 발달이란 관점에서 볼 때, 근대국어 이후로 오면서 어두자음의 경음화와 어말자음의 격음화를 거쳐 '곶'이 '꽃'으로 적어 쓰이게 되 었다. 그러면서 '꽃[花].곧[卽. 直]/곳[所]/골'은 각기 볍개의 낱말로 굳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 각 단어를 중심으로 하는 낱말의 떼를 현대국어에서 더듬어 보기로 한다.
'꿎/곧/곳/골'의 낱말겨레
1) 꽃-꽃가루, 꽃구경, 꽂(용수 안에 괸 술국), 꽃놀이, 꽃다지(가지, 오이, 호박 따위의 맨 처음 달린 열매). 꽃말, 꽃무늬, 꽃받침, 꽃샘, 진달래꽃, 연꽃, 나리꽃/꼬장(꽃의 제주 방언), 꼬지 (꽃의 함경 방언), 꼬치 (꽃의 함남 풍산 방언), 꼿(꽃의 경상. 강원. 전라. 제주 방언) 등 2) 곧- 곧, 곧다, 곧날대패, 곧은결, 곧은금, 곧은불림(자백), 곧이, 곧잘, 곧장, 곧추, 곧은바닥(수직으로 된 광산 구덩이), 곧은창자(직장) 등 3) 곳- 곳, 곳곳, 꼿꼿하다 등 4) 골-골골샅샅, 골골이, 골다, 골고루(골골十-우>골고루), 골무, 골목, 골마루(안방이나 건넌방에 딸린 골방 모양의 좁은 마루)/세모꼴, 꼴값 등.
'꽃'의 경우 방언에 따라서는 '꼬지'와 같이 파찰음이 유기음화 되지 않은 중간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도 있음은 흥미롭다. 꽃이름 중에서 '-꽃'파 같이 꽃이 뒤에 붙어 꽃 이름을 나타내는 경우는 아주 생산적이다. 보는 이에 따라서 풀이가 다르긴 하지만 <헌화가>에서의 꽃은 진달래로 판단된다(삼유, 권 2). 중세어 자묘나 경북 경산지역의 방언을 보면, '진달배>진달외>진달래'로 되었을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무슨 연유로든지 꽃이 위에 든 <헌화가>와 같은 문학작품이나 종교설화에 등장하는 건 이미 오래다. 한마디로 '꽃/곧/곳/골'의 낱말겨레들이 '두드러져 솟음'을 의미특성으로 하는 데에서 분화 발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무나 풀의 꽃은 다른 어느 부분보다도 횔씬 돋보인다. 꽃이 핀디고 하거니와 사람들은 피는 꽃을 불이 피는 것과 같은 사물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쓰는 듯하다. 환하기에 차이는 있더라도 꽃이 핀 모습은 불이 활활 타오르는 상징을 드러낸다 불은 모든 것을 태운다. 꽃은, 나무가 타 연기 냄새를 내듯, 자신을 불사름으로써 향기를 내어 벌과 나비의 눈길을 모은다. 모든 일에서 이러한 자기연소와자기회생이 없는 변신이란 거의 불가능한 법. 진통과 시련을 겪고 난 뒤에 거룩한 삶의 장이 열리는 것 이니, 불이 타는 원리에 따라 에너지의 변동이 일어난다. 연소현상은 생명을 이어가는 값진 사물의 근본이고, 신진대사를 따라 생물이 자라는 것도 불사름의 원리가 있음으로써 가능한 현상이다. 연소현상이 급하면 폭발과 파괴가 일어나지만, 느리면 동물의 소화작용과 같이 적절한 생명현상을 이루어 나아간다. 이런 연소현상의 한 헝태로 아름다운 많은 꽃송이들은 쉬임 없이 피어서는 이내 지고 만다. 산다는 것 자체가 꽃이 피뜻 자신을 불살라 태움으로써 활동의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이지 않은가.
3-4. 뿌리와 생식
뿌리가 깊은 나무는 심한 바람이 불고 흥수가 나도 혼들림 없이 제 철에 꽃을 피워 퐁성한 열매를 맺는다. 어떤 사물이나 사실의 바탕이 튼튼하면 웬만한 시련이 다가오더라도 본래의 꿈을 이룬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용비어천가), 제 2장에서는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꺾이지 않아 꽃도 좋고 열매가 많이 열리며, 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도 그치지 않아 냇물이 되어 깊은 바다에 이른다'고 하였다. 뿌리는 땅속에서 식물체를 떠받들고, 수분과 양분을 빨아올리는 중요한 부분이다. 뿌리는 고등한 식물에게만 있는데, 그 종류는 여러 갈래다. 땅속에 내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물 속에 내리는 뿌리도 있다. 더러는 대기 중에서 활동하며 호흡을 맡는 것도 있으며. 탄소동화작용에 따른 영양을 저장하는 뿌리도 있다. 옛말에서 뿌리는 '불휘 (용가1)' 의 계열로 드러나기도 하고, '부리 ((두해)). 의 계열로 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뒤로 오면서 '불휘.는 뿌리[根]로 분화되었고, '부리'는 새의 주둥이 또는 산이나 꽃의 한 부분을 뜻하는 말로 분화되어 삽이고 있다. 나타내고 있는 속성으로 보아 부리나 뿌리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 둘을 한 단어족으로 보는데 무리는 없을 듯하다. 나무의 뿌리와 새나 병의 주등이 부분을 틸펴 보자. 사물의 끝 부분에서 무엇인가 처음으로 받아들이고 맞이하며 점차 파고드는 성질이 서로 같다고 할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이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 영양이 될 만한 것을 섭취써야 한다는 점에서는 식물과 동물이 서로 다를 바 없다. 영양을 섭꺼하는 가장 앞선 부분이란 점에서 뿌리의 기능은 제일차적 이다. '먹는 것이 하늘'이라고 모든 생물은 먹어야 사니까. '뿌리가 든든해야 잎이 무성하다(擇固葉茂)'고 하였거니와 뿌리는 삶의 원천 또는 밑으로도 이해되기도 한다. 제 구실을 하는 뿌리를 가진 나무는 무성한 잎과 꽃, 그리고 열매를 맺어, 동식물의 보금자리인 그윽한 숲을 이룬다.
'숲'이 거룩한 삶의 고향으로 상징되는 것은 단군신화를 비롯한 많은 신화에서 드러나거니와, 이는 우리들의 문화가 나무와 풀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집이라는 말도 그렇다. 집'은 짐'이란 형태에서 어말 자음이 파열음으로 바뀌어 이루어진 말인데, 짐 '은 먹는 김, 혹은 논이나 밭의 풀인 '김'이 구개음화하여 이루어진 형태다. 논밭의 풀을 매는 것을 김매다(경상. 전라. 평안), 기심매다(경북 안동. 군위. 예천. 봉화), 지심매다(경북 울진. 영양. 청송. 대구 성주/전남 강진. 완도. 구례)'로 표현한다. 풀을 뜻하는 '김'은, '기심/지심'으로 쓰이는 방언형으로 미루어. 기심 (>지심)에서 비롯한 말로 보이며, 이때 '기심(>지심)' 은 새깃이라 할 때의 '깃 (>짓)'에 걸맞은 말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니까 '집'이 김 (기 심/깃)' 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면, ((삼국지), 나 <진서>의 기록대로 선조들이 나무 위나, 풀로 만든 집에서 살았으며 의복도 풀이나 나무껍질로 해 입고 살았으리라는 언어적 인 추리가 가능하다. 떨어지거나 해진 부분에 조각을 대거나 또는 그대로 궤매는 동작을 닙는다' 고 한다. '깁다'의 '깁 -'은 옷감을 뜻하는 말로서, 풀을 뜻하는 '김>깁'에서 비롯한다.
흔히 남근(男根)을 숭배하는 습속이 있다고 한다. 종족에 따라서는 남자의 성에 장식을 하여 거리를 활보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재미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남자의 뿌리에 대한 숭배는 남자로 상징되는 나무를 숭배하는 습속으로 이어진다. 이미 유명한 신화학자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Golden bought>에서도 풀이해 놓았지만 나무숭배는 상당한 분포를 보이며 고대인 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관습이다. 중국에서는 산소 위에 측백이나 소나무를 심어, 그것을 죽은 사람의 넋으로 생각하는 관습이 있었고, 몽고인의 졍우에는 우주산(宇宙山) 중심에 있는 나무에 신들이 그들의 말을 매어 둔다고 믿었다. 그들은 또한 자무부 라는 나무가 그 뿌리를 수멜산의 밑둥에까지 내믹고 산꼭대기를 덮고 있다고 믿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들은 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며, 악마들은 산골짜기에 숨어서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고 엘리아데는 (샤머니즘)에서 기륵하고 있다. (고조선기)에는 신(神)나무가 등장하고 그 신나무의 거리롤 신시(神市)라고 불렀다고 하는 기륵이 있다. 그 뒤에 와서 옥저는 '와지'라고 불렸는데, 이는 '수풀'을 뜻하였다. 신라의 경우도 시립(始林)이라 하였으니, 나무는 신성한 존재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있음을 옛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무가 생명의 상징이라면, 그 생명은 하늘로부터 신이 주신 것이니 그 나무는 신을 드러내는 이정표 구실을 하였다고 할 것이다. 신나무가 서 있는 지역을 '소도'라 하여 감히 범할 수 었는 거룩한 성소(聖所)가 되었으니. 나무는 겨레의 뿌리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 뿌리에서 가지가 번어 하늘의 백성은 번식을 하게 되고 소담스러운 열매를 맺어 후일을 기약하게 되었을 것이다.
뿌리는 지역에 따라서 '뿌래기 (층청), 뿌랙지 (경상), 뿌랭기 (전라), 뿌렁거지 (강원), 뿌렁구(전라), 뿌레기 (경상 충청. 강원), 뿌팽이 (전라. 경상. 충청)'와 같은 여러 형태롤 분화되어 쓰이고 있다. 사람들은 남자의 뿌리를 '블알/불'이라고 하며. 고구마나 감자의 뿌리로 비유하기도 한다. '블알'의 '블'은 타오르는 불의 뜻으로 보인다. 불은 생성과 창조의 원천이니, 남자의 뿌리가 가지는 기능과 서로 통하는 점이 있지 않을까. 쏠데없는 믈건을 비유해서 '블 없는 화로, 딸 없는 사위'라고 한다. 생명의 뿌리로서의 불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의식 속에 뿌리내려 쉬임 없이 언어적 상상력을 충동시키며 가지를 벋고 있다.
3-5. 움과 구멍
겉으로 보이는 외양은 별로 좋지 않으나 그 내용에서는 흘륭한 점이 있을 때 '움 안의 간장' 흑은 '투가리보다 장맛'이라고 한다. 움 안은 우중충하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조미료의 하나인 간장이 있다는 것이요, 투가리는 별 볼일 없으나 끓인 장맛은 그럴싸하다는 것이다. 땅을 파고 그 위를 거적으로 덮고 다시 그 위를 흙으로 덮어 겨울의 채소나 화초를 두는 데를 '움' 이라 하며, 베어 낸 나무의 뿌리에서 나온 싹도 '움'이라고 한다 어두운 굴과 같은 장소에 넣어 둔 채소에서 싹이 돋는 것이나 나무의 뿌리에서 싹이 터 나오는 것도 '움이 튼다'고 한다 중심을 이루는 의미가 주변적인 것으로 전이되어 간 예라 할 것이다. 움은 또 다른 굴의 변형으로, 생 산적이고 여성적인 정감을 불러 일으킨다. 웅녀도 움 속에서 사람의 몸을 입었다 함은 대단히 암시적이다. '우물' 이라는 말도 '움의 물'에서 비롯한 것으로, 어떤 삶의 본거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서는 '움물(경기. 강원. 층청. 경기 황해 등)'이라고도 하며, '웅굴(경북 안동 대구 등)'이라고도 한다.
가도가도 끝없는 사막의 길에서 움물이란 평안이 깃드는 안식처요, 보금자리요, 희망인 것이다. 그 움물에 마시는 물이 없을 때 거기엔 오로지 이리저리 물을 찾아 헤매이는 무리가 있을 따름이다. '움'과 관련하여 한 무리를 이루는 꼴에는 '움나무, 움돋이(초목의 베어 낸 자리에서 다시 돈아나온 움), 움딸(시집간 딸이 죽은 뒤에 다시 장가를 든 사위의 후실), 움막살이, 움벼(가을에 베어낸 그루에서 움이 나서 자란 벼), 움뽕(봄에 한번 뽕잎을 딴 뽕나무에 다시 돋아 난 뽕잎), 움실대다, 움씨 (뿌린 씨가 잘 싹트지 않을 때, 덧뿌리는 씨), 움잎(움에서 돋아난 잎), 움직이다, 우묵하다, 우묵주묵(군데군데 크고 작게 우묵하게 들어간 모양), 우믈거리다, 우물곁, 우물지다(뺨에 보조개가 생기다), 우물질(우물 물을 퍼 내는 일)'과 같은 겨레붙이들이 있다. 움과 물은 아주 가까운 관계로 인식되어 온 것 같다. 우물에 따라붙는 속담이나 성구들이 상당수 있음도 우연한 일은 아닌 듯싶다. 예 컨대, '우물길에서 반살기 받는다(-뜻밖의 음식}, 우물 들고 마시겠다, 우물에 가서 숭능 찾겠다(-급한 성미), 우물 안 개구리(세상 물정을 모름), 우물 옆에서 목말라 죽는다(-꾀가 었고 고지식함), 우물을 파도 한 우물 파라(-한 가지 일에 몰두하라), 우물가에 애 보낸 것 같다(미숙하여 마음이 놓이지 않음)' 둥의 표현이 있다.
물이 있는 곳에서 곧 삶이 시작되고 발전되기 때문인가. 이름하여 생명수라는 말도 있으니. 움물의 형태는 구멍이다. '움물'은 '움물>우물'로 미음(ㅁ)이 동음생략된 것이다. 우물에서는 이웃 사람들이 모이고, 거기에서 물올 길어다 목을 축이고 밥을 짓는다. 작은 오아시스라고 할 수 잇올까. 움에 성 (性)이 있다면 여성일 것이요, 소리로는 음성모음계열이 며, 우면(羽面)조에 해당하는 겨울의 상징을 자아낸다고 할 것이다. 밤이면 하늘에 뜨는 별이 우물을 비추고 기러기는 철을 따라 하늘을 난다. 애절한 사연이 담긴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도 우물에서 돋은 무지개로 끝이 난다. 어린이의 우물은 어머니의 품이요, 젖가슴이 아니겠는가. 여성적인 것에 의하여 인간의 구원이 있다고 괴테 가 지적하였듯이, 물은 목숨살이를 가능하게 하는 젖줄이고 삶의 고향인 것이다. 단군임금의 어머니 신인 '고마' 가 바로 물의 신이요, 어두운 공간을 떠돌며 신비의 생명력을 북돋우는 지모신이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감사하다는 뜻으로 '고맙다'라는 말을 쓰는데, 이때의 '고마'가 바로 물신이며 어머니 신인 것이다. 고대인의 주생할이 굴살이였음을 돌이켜 볼 때 움, 곧 구멍은 우리 생할의 오래고 낯익은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든 생할이 움 안에서 이루어겼다. 필자의 언어 감으로는 '움'의 모음이 바뀌어 엄十이 >어미 '가 되어 어머니로 발달하였으며, 모음이 바뀌어 '암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움/엄/암'은 하나의 낱말겨레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샘각된다. 움, 곧 싹이 있는 곳에 아름다운 꽃파 소담스러운 열매를 기약할 수 있으니까 '아이를 업는다'고 할 때의 넙 다'도 '엄'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어말자음이 바뀌어 넘 >엎>업'의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닐까 ? 업다'는 등 뒤에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떴어 놓음을 가리킨다. 이는 뱀 '의 방위가 '뒤'라는 것과 깊은 상관성을 보인다. 모음의 대립으로 보아 '아비 (암小-이>아비)' 의 '압'은 넘 '과 대립되는 낱말의 조각이라고 판단 된다. 방위로 보아 아비는 앞인데, 어미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우리의 위대한 어떠니 (엄)은 고마님이시고, 그의 움은 단군이며, 그 가지의 잎과 열매로 이어지는 우리들은 배달의 겨레이니, 겨레는 하나되기를 힘써 '우리'이고자 하는 이상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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