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응서(1914~1973)
번역 문학가, 평양 출생, 일본 리쿄 대학 영미 학부 졸업. 문예지 '문학' 주간 역임. 원응서는 번역 이외의 일에는 별로 활동을 하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일상의 체험에서 우러난 통찰 깊은 수필들이 몇 편 전해져 그의 진가를 보여 준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인생에 대한 관조와 애정이 곁들여 있어 독자들에게 수필 문학의 묘미를 느끼게 해 준다.
낚시의 즐거움
1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즐거웠던 날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해 본다. 헤아릴 수 있을 정도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 즐거움에도 크거나 작거나 하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런 세분과 아이는 차치하고 개괄적으로 생각해 볼 때 내 경우엔 그 즐거웠던 나날은 낚시가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만큼 내 생활의 즐거움은 낚시질하는 행위가 실어다 준 것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낚싯줄을 물에 드리우고 있지 않더라도 낚싯대나 낚시 연장을 매만질 때가 하루 중에서 즐거운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가난한 묵객은 시름이 있거나 무료할 땐 벼루에다 연적의 물을 부어 먹을 벅벅 갈아 거기에서 안겨 오는 향기로움으로 인생을 달랬다고 한다. 참으로 운치를 담은 경지라 하겠다. 낚싯대를 닦고 매만지는 심정도 이와 상통하는 즐거움일 것이다.
낚싯대를 매만지는 것은 반드시 앞으로 고기 수확에 더 큰 기대를 거는 데서가 아니라 세상의 번거로움을 잠시나마 잊고 묵연히 수면을 바라보고 있는 낚시터의 자세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하루에 한동안이나마 생활의 실무에서 휴식을 주는 시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낚싯대를 매만지면서 무료를 끄며 일요일을 기다리는 마음이란 이야말로 하루하루가 흐뭇해진다.
즐거움은 반드시 큰 것만이 좋은 건 아니다. 즐거움은 크면 클수록 오히려 지속이 안 되거나 반비례되는 일이 따를 가능성이 짙다. 조그만 은은한 즐거움이야말로 영속될 수 있는 바탕을 지니고 있는 까닭인지 모른다.
낚시에는 은근한 정미와 조그만 즐거움이 있는 대신 큰 즐거움이 따르지 않는 것은 곧 영속적인 의미가 내재하고 있어서이리라. 언젠가 어느 낚시인의 글에서 읽은 한 대목이다.
낚시 시즌이 지나고 한참 지루한 겨울 한밤중의 일이다. 가족들이 모두 고이 잠든 방 안에서 주인공은 낚싯대를 꺼내 홀연히 휘둘러 고기를 낚아 본다. 그의 얼굴에서는 회심의 미소가 흐른다. 이 때 밖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낚시의 즐거움이고 낚시꾼의 즐거움의 표현일 것이다.
2
낚시꾼에겐 물은 향수와도 같다. 물만 보아도 낚시꾼에겐 저절로 미소가 안겨 온다. 이것은 낚시꾼이 물고기를 그리는 마음에서이리라. 논바닥에 고인 하잘것없는 물이건, 벌판 한구석에 웅크린 웅덩이건 물이면 그저 좋다. 하물며 호연한 물바다를 보았을 땐 더 말할 나위가 있으랴. 저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나오고 속이 후련해진다. 이건 낚시꾼이면 누구나 느껴지는 감회이고 또 낚시꾼만이 누릴 수 있는 흥취일 것이다. 그러나 기실 따지고 보면 물이 그립다는 그 자체는 물과 불가분의 사이인 물고기를 그리는 심정일 것이다. 고기가 살지 않는 물은 나무 없는 산처럼 낚시꾼에겐 무의미하니까. 해발 1천 미터 이상 높이의 고원에 가로놓인 장진호는 묘묘한 바다나 다름없다. 추운 지대이고 워낙 물이 깊어서인지 물고기가 놀지 않는다. 물빛이 짙다못해 검다. 고기가 놀지 않는 물은 사수나 다름없이 매력이 없고 그 검은 물은 두렵기만 하다. 바라보이는 물은 다 아름답고 시원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물을 좋아하는 낚시꾼이라도 붉은 불이나 더러운 물보다는 물의 본연의 자세인 맑은 운치를 아쉬워하게 된다. 고름을 담그면 파란 물이 들 듯한 물이야말로 눈을 감으면 낚시꾼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마음의 소우주인 것이다.
3
어느 낚시터고 고기가 잘 나오는 자리란 몇몇 군데로 정해져 있고 정해진 자리엔 으레 주인이 있기 마련이다. 자리 주인이 나오지 않았을 땐 좋지만 낚는 도중에 그 주인이 나타나면 멋적다. 그러니 아예 그런 자리는 넘겨다보지 않고 숫제 새 자리를 찾는 수밖에 없다. 말이 쉽지 새 자리를 찾는 일이란 도시 수월한 노릇이 아니라는 걸 낚시꾼이라면 너무나도 잘 아는 사실이다. 모처럼 공휴일을 즐기려던 것이 대개는 새 자리 찾기로 황금의 하루를 낭비하기가 일쑤다. 이런 사실을 마음에 다짐하고 난 후라야 이 어려운 작업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맡겨 두다시피 한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찾아서 낚는데서 낚시의 참다운 즐거움과 참맛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마음의 자세는 어느 정도 돼 있지만 모처럼 그것이 돼 주지를 않는다. 하나 뜻대로 돼 주지가 않는 데에 실은 낚시의 묘미가 있는 것이다. 어느 자리에선 매일 정해 놓고 서너 치짜리가 3, 40수씩 무슨 정리처럼 꼬박꼬박 나오기로 돼 있다면 실로 매력이 없는 낚시일 것이다. 낚싯대를 들어 보나마나 서너 치짜리밖에 나오지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력이 없다기보다도 싱거울 것이다. 사실 그 누구도 앉아 보지 않았던 새 자리에서 상상했던 대로 척척 낚아 질 때처럼 자기만의 황홀을 느끼는 일은 또 없을 것이다. 낚시가 다른 오락이나 스포츠보다도 영속적인 매력을 안겨 주는 것도 그것이 무궁무진한 근원을 지니고 있어서이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이, 좋은 자리란 우연히 얻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좋은 판단과 시간을 투자한 개척적인 노력에서만 이루어지는 총화일 것이다.
4
낚시에 들린 상태를 가리켜 무슨 일이든 낚시를 하듯 하면 안 될 일이 없을 거라고 한다. 무엇에 들린다거나 심취한다는 그 자체는 확실히 즐거운 일이다. 낚시꾼치고 다소 차이가 있을망정 흘리거나 빠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홀리고 들리거나 또 홀리게 하고 들리게 하는 데가 또 하나의 낚시의 무진한 묘미이고 매력인 것이다. 찌는 듯 무더운 여름날의 대낚시나 한겨울의 삼봉낚시라도 낚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꾼'을 나는 너무나도 많이 보아 왔다. 새벽에 낚싯대를 둘러메고 떠나가는 마당이야말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가슴이 부풀 대로 부푼 순간이다. 그리고 자신이 마음먹었단 장소에라도 뜻대로 가 앉게 되어 여건들이 착착 들어맞는 날이면 기분은 더할 나위 없다. 게다가 기대한 대고 낚아질 때는 옆에 벼락이 둘러 떨어져도 모를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여느 때 끼니가 좀 늦어질라치면 아우성이고 으르렁대던 사람도 이쯤되면 적어도 한두 끼니는 무난히 걸러 넘긴다. 이런 걸 두고 몰입 혹은 무아삼매의 경지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 사람일수록 서민적인 오락의 빈곤이 따르고 심지어는 낚시는 한가한 층이 즐기는 것이고 노인네나 소일풀이로 하는 소외된 놀음으로 여기는 편견이 아직도 더러는 잔존하고 있다. 이것은 실은 꽤 실질적인 면을 추궁하면서도 되려 실질적이 못 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의 잘못된 견해로만 여겨진다. 많은 투자가 필요한 승마나 골프는 하나의 떳떳한 스포츠로 보면서도 헐값으로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낚시를 꼬집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현대 생활이 긴장을 낳고 복잡해지는 사회일수록 거기서 오는 피로와 병폐를 푸는 작업, 레크리에이션이란 행위가 절실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영국 사람 같은, 우리들보다도 더 실질적인 국민도 낚시를 더 많이 즐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필드 앤드 스트림"을 보면 영국에서는 해마다 전국 낚시 대회가 국가적인 규모로 열리는데 이 날의 대낚시 대회에는 전국에서 등록된 직업 선수 1천 3백 명 내외가 출전을 하고 더비 데이 못지 않게 벌판에 갑작스런 텐트 도시가 생기고 각종 낚시 연장의 바겐세일, 전국 낚시 상점들의 특제품 전시회, 정부 지정 복권 매매소, 음식점, 술집 등 수십만의 인파와 차량으로 성시를 이룬다. 그리고 영국에는 낚시를 직업으로 사는 사람의 생활 정도는 영국의 보통 공무원 정도이고 그 수효는 1천 명 이상이라고 했다. 이 선수들은 주로 거의 매주일마다 있는 지방 대회에 출전함으로써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들 낚시는 강낚시이고 미끼는 구더기, 그것도 노랑, 빨강, 하양, 그리고 돼지(꼬리난 구더기)등 다섯 가지를 보통 쓰고 있다. 낚싯대는 플라스틱 제품이 많으나 소위 일류 선수들은 일본에서 수입해 온 참대 대낚을 쓰고 있다.
여하튼 1년에 한 번씩 가을에 열리는 이 전국 낚시 대회는 대회일을 며칠 앞두고서부터 즐거운 축제일처럼 낚시 동호인들은 들뜬다. 막상 대회일이 닥치면 각 지방에서 선출되어 출전한 선수들은 선수대로 몇만 달러의 상금으로 가슴이 부풀고 또 낚시 상인들은 1년 중의 최고의 매상을 올리나 그렇고 또 낚시 애호가나 관광객들은 복권으로 해서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이란 나라는 이래서 우리들보다 즐거운 고장이 되어 가는지 모르겠다.
5
중국의 문필가 김성탄의 글을 읽으면 여름날의 무더위를 두고 묘사한 재미스런 장면에 미소를 머금게 된다. 그래서 여름 낚시를 하면서 가끔 생각나는 것이 그의 글이다.
'여름날 삼복 거리에 돗자리는 축축하고 파리 떼가 얼굴 근처를 날아다니나 아무리 쫓아도 달아나질 않는다. 이 때 별안간 천둥이 우르르 진동을 치더니 이윽고 처마 끝에서 폭포처럼 빗물일 쏟아져 내린다. 이래서 성화스럽던 파리 떼는 자취를 감추어 이 때야 겨우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닐소냐.'
김성탄은 꽤는 가난해서 줄곧 방 안에서 여름 무더위와 싸우는 그런 생활이었으리라.
낚시는 봄, 여름, 가을, 그 어느 계절이고 그것대로 독자적인 맛이 있다. 봄은 봄대로 곡우를 전후해서 산란기를 맞아 신록과 더불어 겨우 내 집 안에 갇혔던 울적을 향기로 씻을 수 있으니 즐겁고, 하지를 지난 무더운 여름은 여름대로 깊은 수심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강바람과 들바람을 쐬니 또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가을은 푸른 하늘과 황금 물결 치는 오곡의 벌판과 울긋불긋 곱게 물든 산야에서 샛바람을 맞는 마음도 또한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낚시 계절 중에서도 여름은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땀이 흘러내리는데 어떻게 뙤약볕 밑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느냐고 대뜸 반문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낚시를 드리우고 우선 웃도리와 바지를 훨훨 벗어 던진다. 이렇게 해서 팬티 바람이 되어 맨발을 물에 담그어 보라. 그리고서는 양산을 딱 버텨 놓으면 그만이다. 모자도 삿갓도 소용없다. 몸에는 다만 팬티가 한 장 걸쳐 있을 뿐 어느덧 양산 밑으로는 신선이 오락가락한다. 수면을 타고 불어 오는 미풍은 오히려 간지럽기까지 하다. 이쯤 되면 세상엔 부러운 것이 없을 지경이다.
탑탑한 방 안에서 인공적으로 내는 선풍기의 바람을 나는 병적으로 싫어한다. 에어컨디셔너의 그것도 마찬가지다. 피서를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서민들에게는 양산 밑으로 신선이 노니는 여름 낚시는 안성맞춤이다. 하루쯤 이렇게 낚시를 즐기고 나면 며칠은 더위를 모르고 지나게 된다. 별로 땀도 나지 않는다. 왠지 모르지만 몸까지 가벼워진다. 이것은 또한 겨우내 감기를 막아 주는 약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 경험으로도 여름 낚시만 잘하면 감기는 모르고 지냈으니까. 그러나 여름 낚시는 감기를 이기기 위해서는 아니다. 그런 이점은 어디까지나 부산물에 지나지 않고 낚시의 본뜻은 생활에 즐거움을 실어다 주는데 있을 것이다.
김성탄도 일찍이 이 신선 놀이의 맛을 알았더라면 이러 시시한 글이 아니라 멋진 통쾌한 글이, 혹은 "낚시의 즐거움"이란 제명으로 더욱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놈을 잡으려
나처럼 글재주가 무딘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번역을 한 줄 하는 데도 민망할 정도로 연방 우리말 사전을 뒤적인다. 그럴 것이 목적한 단어를 찾다가 낯선 낱말이라도 눈에 띄면 그것에 정신이 팔리다가는 또 다른 어휘를 발견하면 그것에로 달아난다. 이처럼 '도리기'란 말을 찾다가 '되리'란 말에 눈을 팔듯이 연줄연줄 따라가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버리곤 한다. 이렇게 흘러 버린 시간이 수없으리라.
이 수없는 시간을 나는 아깝다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노라면 우리말 사전과 싸우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가 당장에는 용처가 없지만 앞날을 위해서 눈에 띄는 낯선 말이면 무작정 적어 두는 버릇이 생겼다. 이렇게 해서 적고 적어 둔 것이 어느새 두툼한 노트로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무료한 때면 이 노트를 꺼내 가지고, 어허 이런 어휘도 있었던가, 저런 말도 있었던가고 사뭇 감탄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겉장이 낡고 닳아 새것으로 씌우고 모자라진 데는 손질을 하느라고 화초를 가꾸듯이 매만지기도 했다. 이렇듯 노트는 거의 내 머리맡에서 떠나지 않게 되었고 손땟국이 흐르게 되었다. 몇 번이나 겉장을 갈았는지 모른다.
이런 노트를 나는 잃어버렸다. 사변 때 모든 책과 함께. 잃은 책은 그때그때 사정이 닿는 대로 제일 필요한 것부터 다시 사들일 수 있지만 노트는 어쩔 도리가 없다. 그뿐 아니라 다시는 노트를 만들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를 일이다. 무던히나 열을 쏟았고 정을 부었던 때문인지 모르겠고 이제는 그럴 겨를과 일이 없어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변으로부터 거의 20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에도 문득문득 생각에 떠오르는 것이 노트다. 번역을 하다 우리말이 막힐 때가 더욱 그렇다. 그것이 지금 곁에 있어도 별도움은 안 될 것이지만, 정확히 따지고 보면 거기 적힌 어휘들이라야 대개는 지금에는 눈에 익은 것이 많고 나머지는 별로 쓰이지 않는 말들이다.
거기에는 놀란흙, 자드락, 어리, 버덩, 도리기, 좀 쑥스런 말이지만 '되리'등이 있을 것이고 번역에 필요한 거의 같은 성질의 낱말들을 정리해 놓은--대번, 문득, 별안간, 갑자기, 대뜸, 금세, 고대, 퍼뜩. 또 다른 종류의 계열로는-결국, 필경, 종당, 필시, 나중에, 결말에, 종국에. 그리고-종종, 가끔, 때때로, 어쩌다 등 이런 것들이었으리라. 후자에 속하는 이러한 일상적 용어들의 집합은 같은 뜻의 '결국'이라는 낱말이라도 다양성 있게 쓰이는 영어에 대처하는 데 편의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취해진, 동의어를 모은 소사전의 구실을 해 주는 것이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노트이건만 그것은 날이 갈수록 눈앞에 자꾸 확대되어 오곤 한다. 무료할 때가 더욱 그렇다. 그리고 2,3월 이맘때면 더더구나 거기 적혀 있었던 낱말 하나가 머리를 뱅뱅 돌면서도 생각이 떠오르지를 않아서다. 겨울철 삼림 속에, 내린 눈이 쌓이고 쌓였다가 봄이 되어 낮에 볕을 받아 오후엔 건등이 녹아 내리며 물이 돈다. 하지만 밤에 접어들어 다시 기온이 내려가 물이 돌던 눈의 건등은 얼음으로 변한다. 발로 짚으면 물 위의 살얼음처럼 바삭 하고 꺼져 내린다. 영어로는 crust라고 한다. 이 눈 건등의 얼음진 것을 한 마디의 낱말로 무엇이라고 하는지. 분명히 노트에는 적혀 있었다. 한 5, 6년 전 어떤 수기를 번역하다가 이 crust가 나왔다. 아무리 생각을 해내려고 애를 쓰고 사전을 뒤적여 보았으나 허사였다. 할 수 없이 눈얼음이라고 번역했다. 말이면 다 말은 아니다. 이것은 얼토당토 않은 궁여지책에서 나온 넋두리에 불과하다.
나는 얼마 전부터 하루에 단 1분씩이라도 "우리말 큰사전"을 샅샅이 잡아 나가기로 했다. 저 노트에 적었던 그놈을 잡기 위해서다. 그놈을 잡으려면 몇 해가 걸릴지 모르지만.
이삭주이
책을, 이것저것 주워 읽어 온 데서나 또 번역을 해 온 가운데서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상스레 뇌리에 남아 있는 말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예술인이나 그 밖의 사람이 종신하는 자리에서 남긴 말에 관한 것들이 그것이다.
오랜 동안 병석에서 심신이 쇠약해진 환자이고 보면 방 안의 채광이 너무 밝아도 정신적 피로를 가져오기 쉽다. 이럴 때는 창문의 차광막을 내리어 채광을 조절하게 된다. 괴테가 종신하는 마당에도 이렇듯 커튼이 내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꾸만 의식이 흐려져 가고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그는 문득 자기의 주변이 점점 어두워져 오는 것만 같아졌을 것이다. 이윽고 그는 '커튼을 좀 올려요. 빛이 좀더 들어오게!' 이렇게 주위의 사람들에게 일렀던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대시인의 임종을 대시인다운 임종의 말로 미화시킨 것으로 보여진다. '커튼을 좀 올려요. 빛이 좀 들어오게!'를 '좀더 빛을! 좀더 빛을!'으로, 평범한 아무렇지도 않은 산문조의 말을 운문 격조로 다듬어 고친 것이 아닐까, 이것은 어느 외국의 평론가도 꼬집어댄 바 있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이 비슷한 종신의 장면으로는 O. 헨리의 경우를 또 들 수 있다. 그는 한평생을 두고 뉴욕시를 그렇게도 좋아한 사람이 또 없었을 만큼 사랑했다. 그러한 그가 임종이 가까워 오자 조용히, '차광막을 올려요. 뉴욕 시를 내다보게. 어두운 데서는 죽고 싶지가 않아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괴테의 경우처럼 O. 헨리의 임종 장면에도 차광막이 쳐 있었던 것이 분명하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것을 끌어올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O. 헨리의 경우는 대시인이 아닌 산문가다운 격조로 임종의 말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점은 두 작가가 다 같이 죽음에 임하는 자세가 초연하고 드디어 오고야 말 것이 왔다는 달관의 경지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탐험가 스코트의 마지막 일기를 보면 감히 범인들이 침범하지 못할 인간의 숭고한 존엄성을 엿볼 수 있다.
1911년 아문센은 스코트를 앞지르기 위해 북극으로 탐험길을 떠나는 것으로 위장하고 실은 남극으로 향했던 것이다. 스코트가 사력을 다해 간신히 남극의 극지에 도달했을 땐 그의 눈앞에는 노르웨이의 깃발이 휘날리며 서 있었다. 순간 모든 걸 알게 된 스코트에게는 좌절감이 밀어닥쳤다. 그러나 그는 대원들을 이끌고 영하 37도의 눈보라 속으로 죽음의 귀로에 접어들었다. 일행 4명 중에서 오트스란 대원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자 일행의 행진을 지체시킬까 염려하고 잠시 밖에 나갔다 오겠노라, 한 마디 남기고는 텐트 밖으로 세 사람도 북극의 미이라가 됐지만 그들 누구도 당황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한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 '우리는 끝까지 싸워 보려 했지만 걷잡을 수 없이 몸이 점점 약해져만 가고 있다. 최후가 머지않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상 더 일기를 쓰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스코트는 조용히 붓을 놓았다. 이것은 달관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위대한 정신력을 보여 준 잊혀지지 않는 장면의 하나이다.
초년에는 귀족처럼 화려한 생활 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렘브란트는 부인을 잃은 뒤를 이어 재물까지 잃어버리고는 구걸하다시피 하는 생활의 구렁창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그림에 대한 정열만이 사랑과 재산을 앗아간 그의 여생을 지탱해 주었을 뿐이었다. 드디어 극에서 극으로의 희비고락에 찬 일생을 마치는 마당에 그는 '공허하고도 또 공허하다. 모두가 공허하다!'라고 했다. 이것은 그가 살아 온 인생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내재성을 한 마디로 압축해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우선 외적인 생활과 싸웠고 자기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새로이 구축하기 위해 온몸으로 싸웠다. 그리고 자신의 내적인 세계를 발견했을 땐 세상은 모두가 '공허'한 것으로 느껴졌으리라고 본다.
이와는 좀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임종에 인생을 말한 작가가 크리스찬 프리드리히 헵벨이다. 미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어느 작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극빈과 갖은 고난 속에서 작품 제작에 목숨을 걸었건만 늘 거지와 같은 구차한 생활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가 만년에야 "니벨룽겐"(1862)이란 대작으로 실러 상을 받게 되었을 때는 이미 종신이 가까웠던 것이다.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깨달은 그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술이 있을 때는 술잔이 없고 술잔이 있을 때는 술이 없더라!'고. 그처럼 인생의 무상과 부조리를 실감하고 개탄한 작가도 없을 것이다. '희극은 끝났다!' 이것은 일생이 불운으로 가득 찬, 단 한 번만 있었던 결혼의 기회마저 잃어버린, 그런 생애를 마치는 마당에 친지 하나 없이 외로이 가는 베토벤의 마지막 말이었다. 느끼는 자는 울고 깨달은 자는 웃는다는 말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베토벤의 '희극'은 그가 가장 잘 웃는 최후의 웃음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임종의 짧은 말들은 무엇인가 인생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고 또 그것들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시사해 주는 바 크다고 여겨진다. 그것들은 여유 있게 도사리고 앉아 금언이나 좌우명을 쓰는 마음과는 달리 인생이 종착하는 자리에서 우연이 아니라 그들에게 한평생 축적되었던 체험적 진실의 토로이기에 더욱 의의가 크다. 이러한 말들이 지니는 무게는 금언이나 좌우명보다도 우리들을 한층 일깨워 주는 힘이 크고, 또 이러한 말들을 수집 연구해서 집대성하는 일도 결코 무의미한 노력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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